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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진정한 주인공은 학생

수업이란 가르치는 기술에 숙달된 사람이 학생들에게 과거의 지식을 전수해주는 시간으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교사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경험과 사고과정을 이용해 과거의 지식을 전수받음과 동시에 주관적으로 재해석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시절 배운 것만으로 학교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 학생들이 학문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동료 교사 간에 연구 모임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끊임없는 연구와 공부를 해야 한다.

최원호 | 서울 중동고 교사


가르치는 기술 이상의 것이 필요
필자의 대학시절을 회고해보면 사범대를 다니는 동안 교사로서의 꿈을 탄탄히 키워온 것 같지는 않다. 사범대를 다니는 4년 동안 앞으로 교사로서의 생활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는 커녕 감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교사라는 직업을 원하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직업이 아닌 교사를 직업으로 택한 것은 주일학교 교사로서의 경험 때문이었던 것임은 확실하다. 사범대를 다니는 4년 내내 초등학교 1~3학년에 해당하는 유년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필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사는 가르치는 기술자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1997년 필자는 강남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지만 그 전 6개월 간 공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서의 경험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기간제 교사로서 정식 교사들에 비해 책임이라는 것에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었고 열심히 가르치기만 하면 됐었다. 그 때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느낌은 '이렇게 재밌는 직업이 또 있을까?'였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지만 고등학교 1학년 공통과학을 가르칠 때는 생물을, 2학년 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물리1, 고등학교 2학년 이과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화학2를 가르치면서 수업준비의 부담과 다른 전공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히 있었을 텐데, 늘 수업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준비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빨리 가르쳐주고 싶었다.

'여기서는 조금 지루하니까 이런 농담을 해야지'하는 식의 굉장히 자세한 대본을 짜서 수업에 임했던 것 같다. 사범대학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짜보았던 지도안의 형식 그대로 말이다. 솔직히 매시간 학생들과 만난다는 기대감보다는 준비한 내용들을 빨리 가르치고 싶어 몸달아 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필자는 남자 고등학교의 정식 교사가 되었을 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정식 교사가 되었을 때인 1997년을 회상해보면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꿈에 그리던 명문 사립고에서 교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교직생활은 즐거웠지만 임시교사로서 있었던 6개월 동안 발견하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시교사 때와 마찬가지로 정식 교사로서의 첫 해는 학생들을 위해 나름대로 수업 교안을 열심히 준비했었다.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3~4시간은 교재 연구에 매달렸고 머릿속으로 수업하는 모습을 미리 상상해보면서 수업교안을 고쳐나갔고 매시간 수업에서 부족했던 점을 반영하여 다시 수업교안을 수정해 나갔다.

'분필수업'은 소극적 반응 보일뿐
하지만 필자가 알아챈 것은 교사 혼자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특이한 몸짓을 연구해 가면서 학생들을 수업에 빠져들도록 노력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학생들의 반응은 소극적이었다. 그 동안 필자는 교안과 칠판을 열심히 보면서 가르쳤던 것 같고 학생들의 눈과 가슴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열심히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열심히 듣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말 그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고 필요한 내용을 잘 정리하여 가르치고 있는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학점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화학이 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사범대학교를 다녔으면서도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지 고민하지 못했기 때문에 화학을 단지 시험점수를 잘 받아야만 하는 하나의 과목으로만 인식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화학의 정수를 맛보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화학 교과서에 들어있는 내용은 오랜 세월 수많은 과학자들의 실험에 근거하여 세워진 이론, 법칙, 사실들이다. 이 내용들을 분필 하나만으로는 가르칠 수는 없다. 학생들을 이해시킬 수는 있지만 진짜 화학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통하여 눈으로 확인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는 정보가 부족했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흉내만 내었던 어려운 대학교의 수많은 실험들은 고등학교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수업시간엔 교과서에 몇 개 나오는 실험을 흉내 내어 볼뿐 실험을 어떻게 구성해야할지, 무슨 재료가 적당한지, 양은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안전의 문제는 괜찮은지 등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교사들과의 만남을 갖기로 하고 서울·경기 지역 과학교사들의 모임인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에 매주 화요일마다 참석하기 시작했다. 멀리 인천과 평택에서까지 매주 그 모임에 참석하는 교사들이 있는 것을 보면 과학교사들이 얼마나 목말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모임은 학생들에게 과학을 신나고 재밌게 가르치기 위한 실험방법을 창의적으로 개발하거나 기존 실험을 교육과정에 맞춰 재미있게 변형하는 연구모임이었다. 필자는 정식교사가 된 1997년에 그 모임에 등록하였는데, 매주 참석해야 하는 성실함이 없었는지 장기결석에 들어가고 말았다. 역시나 그 당시 갈구하고 있었던 것은 얄팍한 실험 기술이었다.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런 실험 기술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 대신 교육청 주관 여러 실험연수에 나가서 수많은 실험을 배웠고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도 거의 다 해보았다. 하지만 교사 대상의 실험연수는 교과서에 나오는 많은 실험을 배우는 기회는 제공했지만 그 실험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는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연수가 끝나고 나면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다시 고민했었고 그러다가 실험보다는 개념강의 위주의 수업으로 다시 돌아가기 일쑤였다.

1999년부터 다시 그 교사연구 모임에 출석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정식 활동한지 6년이 되었다. 그 동안 화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분야의 실험과 답사 경험을 쌓으면서 실험에 자신이 생긴 것도 긍정적이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실험을 포함하여 교수활동의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수업을 '가르치는 기술에 숙련된 사람이 학생들에게 과거의 지식을 전수해주는 시간'으로 여겼던 필자는 수업을 '학생들이 수업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경험과 사고과정을 이용해 과거의 지식을 전수받음과 동시에 주관적으로 재해석하는 활동'이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교사로서 생각하지 못했던 학생의 존재를 관객에서 주인공으로 격상시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수업을 화려하게 잘 진행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업에 잘 동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동료 교사들 간 정보 공유가 중요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과학교사들의 연구모임에서는 매주 두 명의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실험을 연구하여 발표해서 동료교사들의 수업진행 방식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시간에 매번 준비하면서 해보기 어려운 다양한 실험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개념적으로나 방법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을 토론하여 해결하는 과정은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에 참석하는 과학교사들의 수준을 한층 올려 주었다. 특히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 일종의 과학교실과 과학캠프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실험을 개발하였고 과학 동아리 학생들과 실험을 발표하는 경험을 가지면서 실험을 교수학습 방법의 한 도구 정도로만 바라보던 인식을 바꾸어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교사들의 연구모임에서는 그 실험의 개발과정과 실험의 장단점을 함께 토론하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토론과정도 가지면서 단순한 테크닉만 익히던 실험교사 연수와 달리 실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운 임용고시에 합격하여도 학교에서 가르칠 자신이 없다면서 교사모임의 문을 두드리는 초임 선생님들을 보면서 과학교사로서의 중요한 능력을 대학시절에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필자가 교사가 되기 전과 초임 교사시절에 생각했던 교사는 개념적으로 잘 구성된 교안을 가지고 잘 가르치는 교사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는 좋은 교사도 그러한 교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잘 구성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대학시절 동안 배운 것을 학교 현장에서 다시 가르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교사의 중요한 사명임을 느꼈다. 그렇지만 어느 한사람이 변한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니다. 학교와 교사의 목표는 학생들을 훌륭하게 양성하여 좋은 대학에 합격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앞뒤의 순서를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진정한 교육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경쟁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은 한가하게 '진정한 교육' 따위를 논할 시간이 없었고 학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치열한 현실 속에서 학교가 살아남기 위해 많은 학생들을 그들의 소원대로 포장해주어야 했고 교사는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하여 학교의 위상을 높여야 하는 사명을 가져야 했다. 학창시절 경험했던 1차원적인 목표를 교사로서 다시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진짜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학생들에게 실컷 베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학문의 진수를 경험토록 유도해야
요즘 필자는 과연 이렇게 빨리빨리 서두르는 선행학습 위주의 공부가 진짜 효과적인지 반문하고 있다. 최소한 과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1차적인 목표를 삼는 대학입학 시험에서 조차도 천천히 학문의 진수를 맛보면서 커나가는 학생들이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필자는 경험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전체 학생이 이상한 교육방방법에 얽매인 상황에서 개인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속한 과학교사 연구모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목과 다양한 방법적 수업을 추구하는 다양한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교육학자들과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단지 대학 입학을 위해 문제풀이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 아님을 교사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입시라는 현실 속에 서로의 진정한 속내를 감추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의 극복은 학생들이 진정한 공부를 해볼 수 있고, 교사가 스스로를 진정한 스승으로 인정할 수 있을 때 이루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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