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위기에서 국악 명문고로
최근 전남 진도 석교고(교장 하상규)가 최근 각종 국악대회에서 두각을 보이며 화제가 되고 있다.
지역 인구 감소로 한때 폐교 위기까지 갔지만, 국악과를 신설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제11회 박동진판소리 명창 · 명고대회’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대단한 실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시골의 작은 일반계 고등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빠른 변화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학교 하상규 교장은 도교육청과 진도군, 지역 예술인들의 장기적인 안목과 적극적인 도움을 첫손에 꼽았다. 도교육청과 진도군의 행 · 재정적 지원, 수준 높은 지역 예술인들 강사 지원 등이 있었기에 이런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고 수준 국악 교육이 거의 무료
예술관련 교육비는 무척 비싸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기본적인 수업료도 비쌀 뿐 아니라 대학 진학을 하려면 고액의 과외수업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교고에서는 이런 비용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도교육청과 군에서 강사료와 방과후학교 비용을 전액 지원할 뿐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비까지 지원해 준다. 그래서 학생이 부담하는 비용은 기숙사 생활에 드는 월 5만 원뿐이다. 물론 수업료도 면제다.
이렇게 비용이 저렴하면 당연히 교육의 질이 걱정되겠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석교고의 국악강사는 모두 국립남도국악원 단원으로 전국에서 4개밖에 없는 국립국악원에 선발됐을 정도의 쟁쟁한 실력자들이다. 정규 수업시간은 물론 방과 후 시간까지 이런 수준 높은 강사들에게 수업을 받으니 석교고 국악반에는 따로 과외를 받는 학생이 거의 없다.
저력의 근원은 기본기 위주의 교육
석교고가 각종 대회에서 거두고 있는 수상실적이 더욱 놀라운 이유는 학생 대다수가 고등학교 입학 후 본격적으로 국악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라는 경우가 많은데, 석교고 학생들은 불과 1~2년 사이에 이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과의 바탕이 된 것은 바로 운지법이나 발성법 같은 기본기 위주의 교육이다. 이는 눈앞의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장기적 안목으로 차후 대학에 진학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탄탄한 발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석교고의 교육철학에 따른 것이다.
또한 공연경험이 별로 없는 학생들이 무대에 대한 부담감을 떨칠 수 있도록 매일 방과후 시간에 무대공연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주 1시간 이상 전문가와 일대일 맞춤식 지도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하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국악교육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국악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에 비해 부족한 점은 있겠지만, 어설픈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공연을 펼치니 대회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짧은 시간 내에 성과를 내려 하기보다는 앞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 데 주력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악 교육에 더없이 좋은 환경
석교고의 장점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환경이다. 깨끗한 자연에 둘러싸인 입지조건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사회에 전통문화가 잘 보존돼 있어 일상생활 속에서도 늘 우리 전통가락을 친숙히 접할 수 있다. 강강술래를 비롯한 무형문화재만도 여러 가지다.
학교에서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남도국립국악원에서는 매주 금요일 단원들과 전국적인 단체나 명인의 정악 공연이 열리고, 향토문화회관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민간 예술가의 민간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이러한 공연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참여도가 무척 높은데, 어설픈 공연을 했다가는 혹독한 비평을 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객의 수준이 높아 학생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된다. 지역사회의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교사의 별도 지시가 없어도 거의 모든 학생이 자발적으로 매주 공연을 관람하며 안목을 키우고 있다.
또한 올해 3월 2일 개관한 기숙사에는 학생들의 생활공간 외에도 1층에 국악연습실이 갖춰져 있어 언제든 개인연습을 할 수 있고, 4층에는 교원 숙소가 있어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중국 동포에게 전하는 남한 국악의 멋
현재 석교고에는 남한의 전통 가락을 배우기 위해 중국 길림 · 장춘 · 장백 지역에서 온 한국계 중국인 학생 4명이 재학 중이고, 내년에도 2명의 학생이 입학할 예정이다.
중국에서도 조선족을 중심으로 전통 국악 공연이 꾸준히 열리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북한식 국악 공연이었다. 같은 민족의 국악이기 때문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반인이 들어도 큰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남북한의 국악에는 제법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올해 6월 중국 길림시에서 열린 조선족민속예술제에서도 북한식 국악공연이 주를 이뤘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석교고 학생 3명이 남한식 국악 공연을 선보여 관객들로부터 매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에 힘입어 석교고는 앞으로도 중국 조선족군중예술관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남한식 국악을 중국 동포에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할 계획이다.
특히,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이 대학까지 마친 후 중국으로 돌아가면 우리 문화 전파에 매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년째 되는 내년부터가 더 크게 기대돼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국악반 개설 3년째인 내년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졸업생들이 대학입시에서 어떠한 성과를 거두느냐가 앞으로 이 학교의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능계 입시지도는 일반계와 다르기 때문에 석교고는 이 부분에 최대한 초점을 맞춰 준비하고 있다.
석교고 자체적으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는 판단이다. 이미 각종 대회에서 다수의 수상 실적을 냈을 뿐 아니라 내년에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체 학년이 갖춰져 보다 체계적인 수업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하 교장은 “지금까지가 시작단계였다면 앞으로는 하나하나 체계를 잡아가야 하는데, 전체 학년이 구성되는 내년이 학교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 적기”라며 “앞으로 석교고가 국악명문고로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틀을 다질 것”을 다짐했다. | 강중민 jmkang@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