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감정일수록 놓아두면 금방 고정관념의 앙금으로 착색되어 마음 안쪽 깊숙이 내려 앉는다. 증오는 생기는 즉시 선동하고 싶어진다. 증오 선동에 약한 것이 인간이다. 선동하고 싶은 유혹에도 약하고, 선동에 넘어가는 데에도 약한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증오를 선동하는 죄는 선동하는 자만이 모른다. 자칫 정의로운 줄로만 안다.
1. 한국 사람들이 일상에서 개인 대 개인으로 싸우는 장면은 살펴볼 점이 많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시장바닥이나 길바닥 위에서도 가리지 않고 싸운다. 시장바닥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이 가파르게 고조되면 주위에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전해 오는 옛말에도 구경 중에는 ‘싸움구경’, ‘불구경’이 우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반말도 나오고 삿대질도 나오고 멱살잡이도 나오고 싸움이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들다가, 감정의 정점을 도발시키는 것은 대체로 상대방 부모를 모욕하는 지점이다. ‘부모가 무식하니 너 같은 자식이 배운 게 뭐가 있겠느냐’ 하는 식이다. 아무튼 싸움이 이런 경지로 접어들면 싸움의 당사자들은 어느새 상대와 싸우는 것은 제쳐두고 잠시 방향을 바꾼다. 몰려든 구경꾼들을 향해서 상대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를 설명하고 호소하는데 정신을 쏟는다. 그 설명과 호소의 말 속에서도 이미 상대에 대한 증오심이 걷잡을 수 없이 드러난다. 구경꾼과 싸움 상대에게 눈길을 번갈아 줘가며, 상대에 대한 조롱과 모욕을 질펀하게 퍼붓는다. 상대에 대한 미움을 싸움 구경꾼들에게 한껏 펼쳐놓는 데에는 ‘사정이 이런데도 저놈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 하고 구경꾼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심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다. 아직도 구경꾼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더 극단으로 몰고 나간다. “아니 이런데도 저놈(싸움 상대)을 나쁘다고 안 할 사람이 여기 (구경꾼 중에)있으면 그놈도 똑같은 놈이야!” 기가 찰 일이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라’는 정도의 충고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조롱과 모욕은 중간에서 멈추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쯤에서는 없는 말까지 만들어서 싸움 구경하는 장터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몰고 간다. “아! 글쎄 저놈이 장터바닥에 장사하는 놈들 모두 사기꾼이라 주둥이를 놀렸답니다.” 상대방은 “내가 언제 그런 소리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여보아도 메아리조차 없다. 그때는 이미 구경하던 장터사람들의 마음에도 증오의 마음이 비온 뒤 독버섯 피듯 생겨난다. 장터사람들은 경위도 따져보지 않고 이 증오의 선동에 속절없이 올라탄다. “뭐라고? 우리가 사기꾼이라고? 아니 저런 죽일 놈이 있나. 저놈의 주둥아리를 그냥!” 이런 식이 되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