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窮卽通.’ 궁하면 통하게 되어있다. 삶의 핵심은 극복이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과 회의는 파괴를 초래한다. 하지만 불확실은 오히려 확실성을 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파괴에 매달려 ‘나’를 소진시키기 보다는 변화를 통해서 해법을 찾자. 새로운 도전을 통해 삶이 영역을 넓혀나가자.
요즘 따라 내거인 듯, 내거 아닌, 내거 같은 너, 니 꺼인 듯, 니꺼아닌, 니거같은 나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사실 헷갈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썸’이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이다. 썸은 정확한 유래는 없지만 ‘썸싱(Something)’의 줄임말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Something은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무엇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이는 용어이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핑크빛 기류’를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한다. 위 유행가 가사에서는 ‘내 것 같은데 내 것이 아니고’ 그래서 정확하지 않아 헷갈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와 같다’라는 종결형 어미는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표현이다. 예를 들어보자. ‘그 여자는 여우이다’는 주어인 그 여자를 단정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으로 ‘그 여자=여우’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하지만 ‘그 여자는 여우와 같다’는 ‘~이다’에 비해 단정적이지 못하며 ‘아마도’의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는 표현이다. ‘내일 눈이 온다’는 것은 자신의 말에 대한 확신이고 ‘내일 눈이 올 것 같다’는 자신의 말에 확신이 없을 때 사용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나’를 상실한 채 살아가다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은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현대를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원리가 사라진 불확실한 시대’라고 규정하였다(불확실성의 시대 ; The Age of Uncertainty). 현대는 과거처럼 확신에 찬 모든 존재가 없는 시대이고, 이제까지 진리라고 여겨왔던 것들과 합리성과 이성에 근거한 로고스(logos) 중심주의적 담론도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것이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는 혼란스러운 시대이다. 혼란스러운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공통의 통분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따라서 개별자로서 ‘나’를 상실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파괴에서 창조로! 21세기는 비연속성(Discontinuity)의 시대이며, 예측 불능성(Unpredictability) 시대이다. 총체적 난기류(turbulence)의 시대이다. 난기류(亂氣流)란 기(氣)가 어지러워 분분(亂)해지는 것이다. 방향감의 상실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은 불안과 회의이며, 미래에 대한 불안과 회의는 파괴를 초래한다. 파괴에 매달려 ‘나’를 소진시켜야 하는가? 자기 파괴가 아닌 자기 해체를 통해 자기 창조를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불확실은 오히려 확실성을 줄 수 있는 기회’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변혁의 시대였으며, 불확실성의 시대였다. 고통과 생존에 대한 처절함이 있었기에 춘추전국시대는 백가지 학문의 꽃이 함께 어우러져 필 수 있었던 백가쟁명의 시기를 이룰 수 있었다. 논어 역시 이 시대에 탄생했다. 혼란의 시기는 새로운 도전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공자는 “나는 어린 시절에 천한 삶을 살았기에 모든 일에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吾少也賤故 多能鄙事)”라고 말한다. 여기서 어린 시절은 혼돈의 세계를, 천한 삶은 불안과 회의를 나타낸다. 주역(周易) 역시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지속된다(窮卽變 變卽通 通卽久)’고 설명한다. 힘들면 변하게 되고, 변화를 통해 해법을 찾고, 이를 오래 지속한다는 것이다. 삶의 핵심은 극복이다. 자신의 해체(Derrida)는 삶을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변하라! 변하는 자가 통분된 삶이 아닌 주체적이고 실존적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