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 독서교육이 이토록 열성적이었다면, 책을 싫어했을 것 같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의 글짓기 대회와 사생대회가 끝이었던 학창시절이 오히려맘껏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나 싶다. ‘미리미리 한권이라도 더 읽어놔야 나중에 학습이 쉽다’는 독서 강박은 오히려 책을 아이들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독서교육은 유난스럽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부모들은 책과 친하지 않은 아이를 너무 걱정스러워 한다. 아마도 ‘책 읽기’가 좋은 성적이나 입시의 성공과 연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책은 방바닥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읽거나,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가장 편안한 자세로 읽어야 행복하다. 미친 듯이 빠져들어 한번에 읽어 내려가는 책이 있는가하면, 세월아 네월아 하며 팽개쳐뒀다가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 읽기를 반복하는 책도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읽을 때마다 중심 주제를 찾아내고, 독후감을 써야 하며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확인받아야 하는 상황은 고통스럽다. 교육컨설팅을 해준다는 곳을 찾아다니다 보면 독서경험이 어떻게 아이들의 가치관을 형성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 책은 성적과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 저 책은 몇 학년 때 나오니 꼭 읽어야 하느니’하는 정보제공뿐이다.
‘한 권이라도 더 읽히자’는 독서 강박 독서교육 역시 선행학습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미리미리 한 권이라도 더 읽어놔야 나중에 학습이 쉽다’는 어른들의 불안감이 아이들과 책을 멀어지게 하고 있는 셈이다.
그뿐인가. 어려서부터 책을 읽으면 뒤쪽에 나와 있는 문제를 풀어야 하고, 초등학교에 올라가기가 무섭게 문제집을 풀면서 ‘글을 읽는 행복감’보다 ‘글을 읽고 난 후의 귀찮음과 부담감’을 먼저 학습하게 된다.‘책을 읽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아는 아이들은 책을 읽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읽는다. 그러면서 서서히 독서의 양이 많아지고, 독서의 폭도 넓어지게 된다. 하지만 어른들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독서의 양과 폭이 아무리 많고 넓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되기는 어렵다. 독서는 그만큼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적 동기를 키워줄 수 있을까? 일단 독서를 한 후에는 재미있는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용을 파악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학교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독서 후 활동을 소개한다.
01 _ 제발, 문제집과 쓰기활동은 버리자 독후 활동으로 가장 흔하게 접하는 것이 책 내용에 대한 간단한 문제풀이식 학습지이다. 좋은 책에서 아이들이 하나라도 뭔가를 느끼고, 깨닫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은 교사의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아이들은 반대로 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하게 될수 있다. 책은 재미없고, 읽고 난 후에는 귀찮고, 딱히 느낀 것이 없는데 뭔가 좋은 내용을 써야 하니 부담스럽다. 결국 아이들에게 ‘책 읽기’는 또 다른 공부인 셈이다.문제집과 학습지활동의 문제점은 또 있다. 문제가 단순 내용을 측정하는 얕은 수준인 경우가 많고, 책 전체의 내용을 아우르는 문제이기보다 짧은 단락의 지문에 대한 문제인 경우가 많다 보니 ‘전체’를 보지 못하고 ‘단락단락’ 끊어서 이해하고 읽게 되는 나쁜 독서 습관이 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어린왕자>의 전체를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논술학습지에서 한 부분을 읽고 풀어본 경험으로 “읽었다”라고 대답하기도 하고 줄거리와 교훈 핵심 주제까지 술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말 누구를 위한 책 읽기였는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책을 많이 읽으면 다양한 간접경험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나쁜 독서 습관으로 인해 대학입학을 마치면, 1년간 책 한 권 이상 읽은 사람이 10명 중 7명도 안 되는 참혹한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책 읽기’는 ‘괜찮다’로 시작해야 한다. 아이가 고르는 책과 아이가 읽는 책에 대해서 심지어 책과 친하지 않은 아이에 대해서 너무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우리들은 아이가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02 _ 스크래치종이로 ‘여러 가지 생각 나타내기’ 독서 활동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가 있어야 흥미를 보이고, 흥미를 보여야 지속적인 활동이 유지된다. 저학년에서부터 고학년까지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활동이 바로 ‘스크래치종이로 여러 가지 생각을 나타내기’이다.
스크래치종이는 일반 스케치북이나 두꺼운 도화지에 여러 가지 크레파스를 칠한 뒤 검정색 크레파스로 덮어서 만든 종이이다. 예전에는 직접 만들어 썼지만(물론 지금도 만들어서 사용해도 된다.), 지금은 문방구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뾰족한 것(샤프, 찰흙칼, 이쑤시개 등)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면 알록달록 무지개색이 나오면서 아이들의 흥분은 극에 달한다.
스크래치종이에 책을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기록하도록 한다. 글로 써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좋다. 짧아도 길어도 아무 상관없다. 그냥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뭐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완성된 작품은 교실 뒤편에 게시해도 좋지만, 사진과 같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으면 아이들이 더욱 좋아한다.
03 _ 읽기 체험을 깊게 하는 ‘책 수다’ 같은 책을 읽은 친구들과 책에 대해 수다를 떨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도 독서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리는 좋은 방법이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책따세)’에서 제안하는 독서교육 방법의 하나이다. ‘책 수다’는 학생 개개인의 읽기 체험을 깊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은 혼자 책을 읽게 되면 줄거리만 따라가는 식으로 읽게 되기 때문에 정작 그책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책 수다’는 훌륭한 ‘다시 읽기’와 ‘깊이 읽기’의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책에 관해 던져진 몇몇 질문 거리를 놓고 의견을 교환하면 ‘아, 이게 그 뜻이야?’,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지은 거구나’ 하는 통찰이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모둠을 적절하게 구성한 후 발문지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한데, 아직 아이들이 적절한 발문을 뽑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하는 부분을 교사가 뽑아 직접 발문을 던져주는 것이 좋다.
04 _ ‘생각을 여는 열쇠’, 발문하기 발문을 흔히 독서교육의 꽃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어떤 질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고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과 발문은 서로 다른 의미이다. 질문이란 학생이 모르는 것을 교사에게 물어 알아보고자하는 것이고, 발문은 교사가 학생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또한 발문은 교사가 학습활동을 목적으로 학생이 의식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사고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적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 발문하느냐에 따라 학습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그렇다면 발문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발문에도 단계가 있다. 독서교육의 발문은 대개 6단계로 이루어진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에는 1, 2, 3단계까지 가능하다. 고학년의 경우에는 전단계 모두 가능하다. 발문에 익숙해진 후에는 ‘책따세’의 제안처럼 단편소설의 경우 ‘소설을 읽고 떠오르는 단어 20개 말하기’, ‘그중 단어 3개를 엮어 소설의 내용과 일치하는 문장 10개 만들기’, ‘소설을 읽고 떠오른 질문을 개인당 2개 말하고 그중에서 토론하고 싶은 질문 2개 뽑아 토론하기’ 등의 발문으로 수업을 진행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다음에서 6단계의 발문형태를 자세히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