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국모가 일본 자객들에 의해 처참히 살해되고 궁의 앞마당에서 불태워졌다. 능욕을 당하고도 제대로 된 항변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때 황해도에서 한 청년이 칼을 차고 다니는 일본인을 추궁하다 싸움이 벌어지고, 울분에 차 있던 청년은 맨손으로 일본인을 때려죽인다.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던 당시 조선의 법정은 청년에게 사형을 선고 한다. 인천감옥소에 수감되어 고초를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그의 이름은 ‘김창수’, 훗날 ‘김구’로 이름을 바꾸고 죽는 날까지 민족을 위해 헌신을 한다.
김창수를 아는가?
우리는 대부분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고,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습을 통해 이름과 책의 몇 구절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민족을 위한 김구 선생의 헌신과 노력, 어떤 국가로 거듭나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철학과 사상은 <백범일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젊은 날의 모습 속에서도 우리는 많은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내우 외환이 클 때일수록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때 마다 백범 김구 선생의 가르침이 자주 언급되곤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의 20대 초반을 그리고 있는 영화 <대장 김창수>는 삶에 있어 어떠한 가치와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름은 너무도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잘 알지 못했던 백범 김구 선생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대장 김창수> 줄거리 살펴보기 1896년 황해도 치하포, 청년 김창수가 일본인을 죽이고 체포된다. 그는 재 판장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았을 뿐이라고 소리치지만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감옥소에 수감된다. 일본의 편에 선 감옥소장 강형식은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김창수를 갖은 고문으로 괴롭히고 죄수들마저 김창수에게 등을 돌린 다. 하지만 그곳은 그에게만 지옥이 아니었다. 못 배우고, 못 가졌다는 이유로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조선인들을 보며 김창수는 조금씩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변화를 꿈꾸기 시작한다. 천하고 평범한 청년이 대장 김창수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625일의 이야기! [네이버 영화 소개] |
깊이 들춰보기
▶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
최초로 가설된 전신 체계와 경인철도를 근대화의 신식 문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일본의 수탈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김창수를 포함한 수많은 우리 민족의 피로 건설된다. 최초의 전보가 김창수의 사형 집행을 중지한다는 고종 황제의 칙령이었다는 사실 등은 우리 민족 역사의 한 부분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 교육의 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천감옥소에 수감된 죄수들은 죄를 지어서 왔다기보다 무지하기 때문에 자신이 지은 죄보다 더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다. 이들을 위해 탄원서를 대신 써주고 소장을 검토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쳐 준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 같지만 교육을 받음으로써 세상을 다르게 보고 바꾸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민족을 위한 헌신
남북으로 분열된 우리 민족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동분서주했던 백범 김구. 지금도 우리 민족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백범의 정신이 항상 언급된다. 민족의 문제는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와 쇼비니즘의 이유로 논의 자체를 꺼리기도 하지만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관점을 떠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 재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는 <백범일지>는 우리가 반드시 공부해야 할 필독서다.
수업 속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청년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을 더 의미있게 하기 위해서는 <백범 일지>를 함께 연결하여 다루는 것이 가장 좋다.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교과서에 서도 일부가 소개된 심훈의 <상록수>를 연결하는 것도 좋다. 사형 직전에 사면되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의 일화를 연결해보는 것도 가능 하다.
토론으로 확장하기
강형식은 영화 속에서 조선인이면서도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일본인들과 결탁하여 죄수들을 부당하게 노동에 동원한다. 그의 비리가 밝혀져 잡혀가면서도 당당하게 ‘무너져 가는 조선에서 무엇을 기대하냐’며 반문한다. 실제로 당시의 많은 지식인과 위정자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망국의 속도를 빠르게 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한 모의법정 상황을 가정하여 잘못된 점을 찾아보는 활동을 진행해보도록 한다.
상황 가정 |
강형식은 인천감옥소 소장으로 재직하던 조선인이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철도인 경인선 가설을 위한 인력 제공을 약속하고 일본 인으로부터 거액을 받는다. 강형식은 ‘어차피 망해가는 조선에 기대할 것이 없으며 그래서 근대화를 위해 자신이 먼저 나선 것’이 라고 항변한다. 김창수의 교육에 대해 비난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힐난한다. 이러한 강형식의 부당함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다. |
찬반으로 나누어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강형식의 생각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진행한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강형식의 생각이 부당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당시의 상당수 지식인과 위정자들은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토론과정을 통해 식민지의 합리성을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이 가진 문제를 지적한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활동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졌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논술문항지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맞게 논술하시오. (가) 백범 김구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다. 영화 <대장 김창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을 위 한 일이라면 과격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으로 의심되는 일본 낭인을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인천감옥소에 투옥된 일만 봐도 김구 선생의 기개를 알 수 있다. 감옥 안에서 끊임없이 교육 활동을 전개하며 개개인의 역량을 키워갈 수 있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고종의 칙령으로 사형을 면한 후 김창수는 탈옥을 감행하여 성공한다. 이 후 민족교육을 위해 힘쓰며 몇 차례의 투옥을 거친 뒤,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초대 대통 령에 취임한다. 임시정부를 운영하며 자주적 조국독립을 위해 윤봉길 의사 의거 등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한다. (나) 나는 인도정부에 편지를 썼으나, 접수 통지 외에 아무 답도 받지 못했다. 그 뒤 챔스퍼드 경을 만나고 나서야 겨우 해 결되었다. 내가 그 사실을 그에게 말하자 그는 놀라워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바로 전화를 걸어 비람감에 대한 공문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 당국자가 해명이나 변명을 하지 못하면 그곳 세관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그 회견을 한 지 며칠 뒤 나는 신문에서 그곳 세관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읽었다. 나는 이 사건을 인도에 돌아와서 한 최초의 진실관철투쟁이라고 생각했다. 뭄바이 당국과 만났을 때 차관이, 내가 카티아와르 바가스라 연설에서 진실관철투쟁에 대해 언급한 것을 비난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물었다. “그건 협박 아니었습니까? 게다가 당신은 강력한 정부가 그런 협박에 굴복하리라 생각합니까?” 내가 대 답했다. “그것은 협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민교육이었습니다. 인민에게 불평을 합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나의 의무입니다. 자주독립에 이르고자 하는 민족은 자유에 이르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보통 그 속에는 최후의 방법으로 포함됩니다. 반면 진실관철투쟁은 절대적으로 비폭력적인 무기입니다. 나는 그 실천 과 한계를 설명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영국정부가 강력한 정부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지만 동시에 진실관철투쟁도 최고의 해결책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 마하트마 간디의 자서전 <나의 진실 추구 이야기> 중에서 ● 논제 (가)와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하여 분석해 보고, 자기 생각을 논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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