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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여행 스케치

풍차, 튤립, 히딩크 감독 등... 네덜란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네덜란드는 우리에게 꽤 익숙한 나라이다. 하지만 ‘유럽 여행’의 목적지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꼽는 경우는 많아도, 네덜란드를 목적지로 하는 여행은 드물다. 네덜란드를 여행한 이들도 대부분 암스테르담에 잠시 레이오버(Layover) 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여행 테마와 네덜란드가 잘 맞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유럽 국가들보다도 네덜란드 여행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해양박물관과 하링, 황금기로의 시간여행

17세기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을 벌인 끝에 독립한 신생국 네덜란드는 이내 세계의 패권 국가로 거듭났고, 이 시대를 일컬어 황금기(Golden Age)라고 부른다.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해양 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그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면서 부를 축적하였다. 황금기의 해양 무역의 역사에 특히 중점을 둔 해양박물관(Het Scheepvaartmuseum)을 소개하려 한다. 이곳에 가려면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걷거나 버스를 타면 된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 몇 안 되는 박물관이어서 반가웠다. 전시실에는 해군 제독 및 지도자들의 초상, 당시 해양 무역을 통해 거래되었던 물자, 식민지 개척에 대한 이야기들이 중심이었다.

 

특히 인상 깊은 전시실은 지도 코너이다. 황금기 네덜란드에서 지도 제작은 부를 거머쥐는 사업으로 여겨졌다. 해양 무역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이 세계의 최신 지리정보를 알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지리 교사였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망상에 빠져 보았다.

 

혹시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경험하고 싶지만, 박물관이 지루할 것 같다면 가까운 마켓으로 가서 ‘하링(herring)’을 먹으면 된다. 하링은 소금에 절인 청어 음식을 일컫는 말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어민들은 북해에서 청어를 잡아서 어선 위에서 내장을 제거하고 염장을 한 뒤, 바로 유럽 각지에 판매해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즉 하링은 그냥 전통음식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황금기의 토대가 된 효자 음식이다. 나는 국립미술관에서 가까운 알베르트 카위프(Albert Cuyp) 시장의 한 수산물 가게에서 하링을 먹었다. 네덜란드인들은 하링만 먹는다고도 하는데, 나는 채소와 빵을 곁들여 샌드위치처럼 먹는 것을 택했다. 조금 비린 맛이 났지만 나름 별미였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김치를 처음 먹을 때 이런 기분일까 상상해 보았다.

 

운하를 보아야 암스테르담이 보인다

암스테르담 도심에는 수많은 운하가 거미줄처럼 놓여 있어, 어디서도 운하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물의 도시’는 꽤 많지만, 이 정도로 운하가 도시 경관에서 지배적인 곳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이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무역 상인들이 모여서 만든 도시라서, 대부분의 집이 물자 운송을 위해 운하와의 접근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작은 유람선을 타고 도심 곳곳을 누비는 관광 상품을 통해 암스테르담 무역 상인들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다. 유람선 위에서 보면, 옆으로 좁고 위아래로 길쭉한 전면이 운하 쪽과 맞닿아 있는 수많은 건물을 볼 수 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17세기 황금기에 만들어졌고, 당시의 경제적 호황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 오래된 시가지와 운하는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암스테르담 시내에는 여러 유람선 투어가 있고, 암스테르담 중앙역, 안네프랑크 하우스, 국립미술관 등에서 이용 가능하다. 유람선만 1시간 정도 타는 것부터, 선내에서 피자와 맥주를 마시는 것까지 다양한 상품이 있으니 취향별로 즐기는 것을 권한다.

 

유람선으로 운하를 둘러보았다면 운하 박물관(Het Grachtenhuis)을 꼭 들려보길 권한다. 암스테르담의 운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작은 박물관이다. 지도, 디오라마, 영상을 통해 흥미로운 방식으로 운하 중심의 도시 경관 형성과정을 보여준다. 유람선 투어에 이어 운하 박물관까지 경험하면,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가 우리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미술의 나라 네덜란드를 감상하는 법

네덜란드는 유명한 화가를 많이 배출한 미술의 나라이고, 그래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방문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인 렘브란트(Rembrandt)의 작품 <야경>을 비롯하여 여러 미술 작품과 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상단에는 2/3는 구름이 가득한 하늘, 그리고 하단에는 들판과 풀밭, 풍차, 운하 등이 배치된 수많은 17세기의 풍경화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관람객 중 인상 깊은 장면은, 미술관 체험활동을 나온 학생과 교사가 함께 작품 앞에 앉아서 교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우리에겐 교과서에나 보던 작품을 실제로 눈으로 보면서 배우는 과정이 부러웠고, 또 교사와 학생이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면서 공부하는 것도 좋았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학생 무리 중에서 한 학생이 작품 앞에서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소위 ‘갤러리 워크’를 하는 장면도 실제로 보니 재미있었다.

 

한편 고흐 미술관과 국립미술관 등이 모여 있는 이곳을 미술관광장(Museumplein)이라고 부르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Iamsterdam’이라는 도시 브랜드 조형물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관광객 급증으로 도시 거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여 철거된, 여행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사건이 있으니 참고하여야 하겠다.

 

국립미술관 바로 앞에는 세계 최대의 고흐(Vincent van Gogh) 작품의 컬렉션인 고흐 미술관이 있다. <꽃피는 아몬드 나무>, <해바라기>, <감자 먹는 사람들> 등 고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인터넷 예매 없이는 몇 시간을 대기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책이나 인터넷으로 접한 적이 있는 작품을 실제로 미술관에서 만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미술관으로 갔지만, 이러한 걱정은 나의 기우였다. 방금 붓으로 그린 듯 유화 물감의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작품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 하나하나에 대해 편안하게 감상하니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우울한 삶을 살았던 고흐이지만, 평범한 농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거나 조카를 위해 아름다운 꽃 그림을 그려줬다는 이야기들이 흥미를 끌었다. 해변 풍경을 그린 작품은 유화 물감 내에 모래가 끼어 있다는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은 놀라웠다. 미술관 내에서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네덜란드에 온 이상 고흐의 작품을 만나는 것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고흐의 삶과 작품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크뢸러 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에도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은 고흐의 작품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아서, ‘반 고흐의 두 번째 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흐의 유명한 <밤의 카페 테라스>, <우체부의 초상화> 등의 작품은 이곳에서 만날 수 있고, 이외에도 여러 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동쪽으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면서 2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이라 접근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고생해서 방문한 만큼 특이한 경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은 호헤 펠루베 국립공원(Hoge Veluwe National Park) 내부에 위치하여, 숲, 모래언덕, 풀밭 등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야외 설치미술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입지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베르메르를 만나는 고즈넉한 소도시 델프트

네덜란드 여행에서 굳이 인구 10만의 작은 소도시 델프트를 방문한 것은 우선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베르메르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그린 17세기 화가이다. 그런데 델프트의 베르메르 센터(Vermeer Centrum Delft)에는 사실 베르메르의 작품이 한 점도 없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과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미술관에 있거나,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전 세계 유명 미술관에 흩어져 있다. 복제본만 전시되어 있어서 흥미가 떨어질지 몰라도, 이곳은 어떤 곳보다도 베르메르라는 인물의 생애 및 그의 모든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깊이 있게 안내하고 있다.

 

<델프트의 풍경> 그림을 보면서 세계 곳곳에서 귀중품과 지리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17세기 델프트를 상상해볼 수 있다.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을 통해, 먼바다로 떠난 남편의 소식을 고작 편지 한 장으로 접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당대 아내들의 삶에 감정 이입해 볼 수 있다.

 

물론 <장교와 웃는 소녀>, <여인과 두 남자>와 같이, 아내가 반드시 절개를 지키기보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를 외치며 돌아설 수도 있다는 발칙한 상상을 불러오는 작품도 재미있었다.

 

델프트에는 베르메르 말고도 여러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은근히 많다. 델프트도 암스테르담처럼 도심 곳곳에서 운하를 만날 수 있다. 베르메르의 묘가 있는 구교회와 운하가 함께 보이는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도심 광장에는 신교회가 있는데, 신교회에는 17세기 스페인과의 독립 전쟁을 이끈 지도자로서 네덜란드의 ‘국부’로 추앙받는 오라녜 공(Willem van Oranje)의 묘가 있다. 신교회의 상징인 거대한 탑의 계단을 10분 넘게 고생해서 올라가니, 델프트 도심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높은 건물이라곤 이곳 신교회, 그리고 서쪽에 있는 구교회 건물뿐이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독립한 네덜란드로 수많은 신교를 믿는 ‘종교 난민’들이 각국에서 피난을 왔고, 구교회와 신교회 건물이 공존하고 있는 네덜란드적인 풍경이 흥미로웠다.

 

<에필로그>

네덜란드 여행에서 조심할 점은 자전거이다. ‘사람보다 자전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는 자전거 중심의 교통 체계가 정착되어 있다.

 

자전거 전용 통로를 지날 때는 주위에 자전거가 쌩하고 오지 않을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대마초와 성매매가 합법화된 것으로 유명한데, 정작 현지인들은 그런 부정적 이미지가 관광객들 때문에 형성되었다며 달갑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최근 암스테르담에서는 과도한 관광객의 수를 줄이기 위해 대마초와 성매매를 규제하는 제도를 시행하려 한다니 참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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