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6월은 붉은 달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담벼락 위엔 가시 돋친 빨간 장미들이 출렁였고, 교실에선 ‘멸공방첩’을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와 6·25 전쟁 관련 포스터며 표어 제작에 열을 올렸었습니다. 포스터에는 너나없이 전면에 빨간 도깨비 탈을 쓴 북한군의 모습을 그려 넣었었지요. 그때는 정말 북한 사람들의 얼굴엔 도깨비 뿔이 달려있는 줄로만 알았으니까요. 포스터의 영향이었는지, 6월 달력의 빨갛게 칠해진 6일은, 다른 공휴일보다 더 유난스레 빨갛게 보였었습니다. ‘청’ 군과 ‘백’ 군으로 나눠 싸우는 운동회가 봄, 가을로 빠짐없이 열렸음에도 그 시절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의미로 ‘빨간’ 색과 ‘파란’ 색을 주로 쓰곤 했었습니다. 나쁜 것은 무조건 ‘빨갱이’로 말하는 버릇도 생겼던 걸로 기억됩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공산당, 공산당은 나쁜 놈…. ‘빨갱이’란 말이 촌스럽게 느껴지던 80년대 말. 빨간색은 운동권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그 시절, 빨간색은 또다시 빨간색을 경계하는 층과 옹호하는 층으로 나누는 아픔의 색이었습니다. 87년 6월, 대학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붉은 장미는 빨간색 머리띠를 두르고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