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과 함께 겨울의 연을 날리며 동네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연을 날리고 있네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나는 예쁜 꼬마 연들이 나의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 앉아 세상 소식 전해준다 지난 1979년 TBC방송에서 개최한 젊은이의 가요제 금상 수상곡인 라이너스의 ‘연’은 지금도 겨울이면 한번쯤 들을 수 있는 노래다. 곡조도 정감이 가고 노랫말도 소박하면서도 순수해 옛 시절을 잔잔하게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명곡이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들은 후 아이들을 데리고 송정해수욕장으로 연날리기를 하러 가게 되었다. 한적한 겨울 바다에 도착하니 저 멀리에서 한 무리의 연이 하늘을 희롱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쩜 저리도 많은 연이 하늘에 날리고 있는지. 갈매기들도 연들의 위용에 놀라서인지 단 한 마리도 겨울 바다에 나타나지 않는다. 연들은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수 십 개의 연들이 하롱거리는 모습은 용의 현란한 움직임을 닮아 있었다. 맨 끝에 매달린 연은 비행기연이고, 그 아래에서 출렁이는 연들은 새 그림이 박혀 있는 비닐 연이다. 종이가 아닌 비닐이라서 다소 흥취는 떨어졌지만 겨울의 놀이인 연날리기가 저렇게도 아름다운 모습을
억새밭과 돌탑이 어우러진 장산 뒷길 장산은 해운대의 주산이다. 부산 금정구에 있는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이요, 부산 최대의 유흥가인 서면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황령산은 부산의 중심에 있는 산이다. 반면에 장산은 해운대를 해운대답게 만든 산이다. 이 산에는 장산국의 전설이 오롯이 숨어 있다. 옛 문헌에도 나오는 신비의 장산국. 옛 사람들은 이 산의 정상에 넓은 분지가 있고, 이 분지에 작고 아름다운 나라가 하나 있었다고 했다. 이 분지엔 백설기처럼 하얀 억새가 눈처럼 날리고 있다. 너무나 서러울 정도로 흰 빛을 가진 억새가. 장산은 온통 억새밭이다. 그러나 정상 근처의 분지에만 억새밭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장산의 뒤편, 즉 기장 안적사로 내려가는 길에도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억새밭이 그림처럼 숨어 있다. 대천공원을 통해 올라가는 등산로가 화려한 패션쇼장의 모델이라면 안적사를 통해 올라가는 등산로는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의 여인을 닮은 등산로다. 이 등산로 한 쪽에 숨죽이듯 서려있는 억새밭을 보지 않고선 장산의 참맛을 느꼈다고 말해선 안 된다. 또한 억새밭 너머엔 장산의 평안을 기념하는 돌탑들이 있다. 고혹적인 억새밭을 지나 약간의 경사로를 돌아가면 만나게 되는
블랙코미디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끔찍하거나 병적인 풍자로 된 희극’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웃음을 주긴 주되 뭔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코미디란 뜻이다. 블랙코미디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극 중 장치는 ‘풍자’이다. 인물의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특정한 사건이나 역사적 배경을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정치나 사회풍자적인 요소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탠리 큐브릭이 1964년 초에 만든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블랙코미디가 무엇인지, 블랙코미디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명작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이 영화는 1963년도에 개봉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해에 케네디가 암살되는 바람에 개봉이 늦춰지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큐브릭이 이 영화를 만든 계기가 ‘쿠바 미사일 위기’때문이었는데, 이 미사일 위기는 케네디의 단호한 태도로 인해 일단락되었었다. 케네디는 큐브릭에게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의 소재를 제공한 후에 생명의 끈을 놓았던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극중 무대는 크게 보아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하나는 편집광적인 좌익 혐오증에 걸린 공군사령관 리퍼와 보좌관인 맨드레이크
- 옆줄무늬 퇴적암의 신비가 감도는 곳 친구는 늘 나에게 자기 집을 자랑하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전망이 좋고 천연에어컨이 켜져 있는 곳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자기 집과 가까운 혈청소 가는 길은 더 끝내준다며 무조건 놀러 오라고 하였다. 그때가 고2의 여름날이었다. 천마산 중턱에 있는 친구의 집은 그의 말대로 정말 전망이 좋았다. 멀리 영도대교와 부산대교가 유유히 바다위에 떠있었으며, 북항과 신선대터미널이 한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안개에 싸인 영도의 봉래산은 신선이 노닐만한 곳이었고, 멀리 자갈치 시장과 영도를 오가는 통통선 위로 흰 갈매기들이 눈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게다가 폐부를 찌를 듯 왁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그 얼마나 신선했던지! 얼굴의 절반을 가릴 정도로 큰 안경을 꼈던 그 친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노그라지게 감상하던 내 어깨를 툭 하며 건드렸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 혈청소로 가자."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며 한참을 궁리하였다. 발음하기도 다소 낯설었고, 뜻을 풀이해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피를 맑게 해주는 곳' 혹은 '피가 맑은 곳?' 친구는 그 말의 자세한 연원을
영화나 소설은 허구의 세계이다. 허구의 세계란 무엇인가? 현실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현실에선 없는 세계이다. 사람들은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지만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세계는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공의 세계이며 상상의 세계이다. 잘 된 영화나 소설이란 그걸 감상하는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현실과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란 장르가 있다. 현실 세계를 카메라로 그대로 카피하여 적당하게 편집한 기록영화를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이다. 가공의 세계가 아닌 현실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다큐멘터리는 편집의 과정만을 거쳤을 뿐, 허구나 상상을 가미하진 않는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에는 현실 세계가 가지고 있는 명징성이 담겨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인간의 정서를 깊숙하게 건드리는 부분에선 한계가 있다. 대저 인간이란 자신의 가슴 밑바닥에 있는 ‘정서’를 누군가가 건드려줄 때 감동이라는 바다에 빠지게 된다. 1948년 이태리의 탁월한 사실주의 감독인 비토리오 데시카는 영화적 장치와 다큐멘터리적 장치를 변증법적으로 결합한 작품 하나를 세상에 발표했다. 영화 같은 다큐멘터리이자,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인 자전
- 무명용사들의 젊은 죽음을 추도하며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1592년의 어느 날, 구름떼처럼 몰려든 일본군을 향해 동래군민들이 포효하듯이 외친 말이다. 족히 수 십 배가 넘는 일본군의 막강한 무력 앞에서도 그들은 결코 기가 죽지 않았다. 일본군은 즉시 총공격에 들어갔고 처절한 혈투가 동래성에서 벌어졌다. 마침내, 성 안의 군사와 백성들이 일본군에게 무참히 도륙될 즈음 송상현공은 조복으로 갈아입은 후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어느 공명심에 불탄 왜병 하나가 공을 베었고, 공의 몸에서 솟구친 붉은 피가 바닥을 슬프게 물들였다. 이 동래성 전투를 시작으로 조선과 일본은 7년간이라는 기나 긴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동래성 전투는 조선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첫 대규모 전투였다. 그리고 전쟁 초기의 가장 의미 있는 전투였으며,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하나의 모범으로 전해지는 전투였다.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에 가면 임진왜란 전사들을 모시는 사당이 하나 있다. 충렬사라고 불리는 이곳은 방대한 규모의 사당이다. 총 면적은 약 삼만 평 정도이며 본전을 포함하여 15개동의 건물이 있다. 이 충렬사의 가장 큰 목적은
- 서평, 고급 추리 소설 소설 은 추리소설이다. 그것도 아주 난해한 내용을 담고 있는, 특이한 형식과 내용을 갖춘 수준 높은 추리소설이다. 보통의 상식으로 추리소설이라면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특정한 인물이 사건을 둘러싼 주변의 상황과 여타의 조건을 의미 있게 해석하여 사건을 풀어나가는 형식을 취한다. 이 사건은 범죄이기도 하며, 난해한 퍼즐 혹은 치밀한 논리게임이기도 하다. 장미의 이름은 일견 살인사건을 다룬 전형적인 범죄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나 그 배경이 되는 시대적 상황이 중세 유럽이며, 그 장소 또한 신성한 수도원이라는데 자못 범상한 느낌을 주는 추리소설이다. 300명의 수도사들이 경건한 신심을 닦는 수도원에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하나의 죽음이 발생한다. 아델모라는 젊은 수도사가 거대한 탑루 절벽 밑에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면서 소설의 서두는 시작된다. 현학적이며 냉철한 지성과 판단력을 지닌 윌리엄 수도사, 그리고 순백한 감성의 소유자이면서 지적인 호기심에 충만한 어린 제자 아드소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차분한 발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주는 흥미는 종교소설이라는데
- 최치원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즈넉한 봉오리 부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항구와 바다이다. 좀 더 세밀하게 말하면 해운대를 필두로 한 해수욕장과 우리나라 최고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하는 거대한 부두들이다. 국내 최대 항구도시인 부산항에는 언제나 비릿하면서도 상큼한 해풍이 넘실거린다. 전국 최대의 물류·항만 기능을 담당하는 부산항에서는 국내 수출 물량의 40%와 컨테이너 화물의 95%가 나간다. 만일 부산항이 그 기능을 정지한다면 한국은 일시에 대규모 경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만큼 부산항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엄청나다. 이렇게 엄청난 부산항의 역동적인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그게 바로 용당동에 있는 ‘신선대’라는 곳이다. 사실 신선대는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더라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지명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선이 놀다 갈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 경치가 너무 웅장하고 수려하여 감히 인간이 즐기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을 신선대라고 부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산에 있는 신선대도 그 유려한 경치를 따지자면 전국 어디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부산의 중심가에 있는 황령산에서 산등성이가 하나 뻗어
- 부산의 내륙을 찾아서 부산을 생각할 때 가장 흔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항구 도시라는 것이다. 국내 1위의 항구인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어딜 가나 비릿하면서도 상큼한 해풍이 살랑거린다. 자갈이 깔린 곳이었다는 의미를 가진 “자갈치”시장은 수산물 유통 시장으로써 전국적인 규모를 자랑하며, 국내 수출 물량의 70%가 부산항을 통해 나갈 정도이니 물류, 항만의 기능으로선 전국 최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부산에도 내륙의 향이 아스라이 번지는 곳이 있다. 그곳은 향나무와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그리고 한적한 호수가 어우러져 있으며, 잉어회와 붕어회를 맛볼 수 있는, 부산 8경의 하나라는 오륜대라는 곳이다. 국내 아무 도시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도 그 도시의 이름을 딴 8경이란 용어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속초 8경, 부산 8경, 단양 8경, 관동 8경, 대한 8경 등등. 대개의 경우 이런 용어들은 지방자치단체가 관광홍보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정한 것들이다. 부산 8경이란 용어도 이와 비슷한 의도에서 탄생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부산에서는 예전부터 풍광이 빼어난 곳을 五臺라고 부르며 그 주변의 경치를 즐긴것만은 사실이다. 이른바 해운대, 몰운대, 태종대, 오륜
해운대의 주산이라고 하면 좌동, 기장, 반여동, 반송에 걸쳐있는 장산을 말한다. 장산은 그 높이도 부산에서 두 번째 인데다가, 산 정상에 서면 금정산과 기장 앞바다, 또 울산 일부 바다까지 볼 수 있어 장쾌한 풍광이 일품인 곳이다. 이 장산의 줄기 가운데 하나가 해운대 동백섬 방향으로 가다가 중간에 작은 봉우리 하나를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바로 간비오산이다. 이 간비오산의 정상에 올라가면 해운대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것이 관측소로써의 역할을 하기에는 아주 그만이다. 옛 선조들이 이렇게 훌륭한 관측소를 그냥 둘리 없었다. 당연히 간비오산에는 관측소와 군사적 역할을 한 시설물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해운대 유일의 봉수대인 ‘간비오산 봉수대’이다. 간비오산에 있는 봉수대는 봉화대라고도 했는데, 고려 말부터 조선 고종 31년 까지 700년간 해운포 일대에 침입한 왜적을 감시하던 곳이었다. 이 간비오산의 서쪽에 황령산 봉수대와 기장 남산 봉수대가 있으며, 왜적이 출현하면 봉화를 피워 올려 다른 봉수대에 연락을 했던 것이다. 봉수대는 우리 조상들이 오랜 시절부터 중요하게 이용하던 통신수단이었다. 삼국유사를 보면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김수로왕의 치세 중에 이미
- 그곳에 가면 걸리버의 신발도 볼 수 있다. 부산의 자갈치 시장에 가면 꼼장어 구이로 유명한 먹거리 골목이 있다. 정확한 명칭으로는 먹장어라고 불리는 꼼장어는 턱이 없고 입이 흡반 모양처럼 생긴 원시어류로서 꼬리지느러미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꼼장어는 내장이 다 없어지고 살덩이만 남아도 꾸물거리는 것이 다소 엽기적이기도 하다. 허나 양념에 배인 꼼장어를 한 입 먹으면 그 들큼하면서도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맛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장어는 그 생김새가 가늘고 길게 생긴 어류로써, 언뜻 보면 뱀처럼 생겼기 때문에 예전에는 먹지 않고 버리는 고기였다. 그런데 근세 들어 장어류에 대한 요리법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 인간이 먹는 장어의 종류는 크게 보아 네 종류라고 한다. 민물장어, 먹장어, 붕장어, 갯장어가 그것인데, 부산 자갈치 시장이 이 먹장어(꼼장어)로 유명하다면 기장군 연화리라는 곳은 붕장어 구이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기장군 대변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가다보면 도로변에 횟집, 장어구이집, 순두부집, 칼국수집 등 온갖 종류의 음식점이 늘어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연화리로 가는 입구는 이들 먹거
- 부산에서 가장 큰 억새밭을 다녀오다 억새는 가을을 대표하는 풀이다. 자줏빛 억새도 있고, 노랑빛을 띠는 억새도 있지만 역시 억새는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장관이다. 그것도 수 십 만평, 수백만평의 대지 위에서 휘몰아치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일렁거리는 억새밭은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왜 하필이면 억새라고 했을까. 억울한 심정을 담고 있는 풀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억 만 겁처럼 못 다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 풀이라서 그런가. 억새는 가을의 전령사이자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오묘한 풀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억새밭을 꼽으라면 화왕산 억새밭과 천황산 억새밭이 있다. 두 군데 다 족히 수백만평을 자랑한다. 그것도 산 정상 근처에서 웅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 장쾌한 억새밭에 서면 인간은 그저 초라해진다. 그 장대한 서기를 뿌리는 억새밭에 서면 인간은 하염없이 소박해진다. 억새밭은 인간의 나약함과 자연의 웅혼함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제인 것이다. 이 웅대한 억새밭을 부산 근교에서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승학산이다. 고려 말 무학대사가 산천을 유람할 시,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이 나는 듯하다 하여 승학산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전
- 가을에 만난 단풍의 향연을 담으며 “아빠, 왜 단풍은 여러 가지 색깔이야?” “음, 그건 말이야. 나무마다 제각기 꿈이 있기 때문이야.” “나무도 꿈을 꿔?” “그럼. 나무도 사람처럼 꿈을 꾸지. 가을 수채화처럼 맑고 고운 꿈을 꾸지.” 딸아이는 함박 웃는다. 순진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가 아이의 얼굴에 흐른다. 그 얼굴 위로 가을 단풍의 미소도 살포시 흐른다. 계곡에 흐르는 비취빛 물줄기는 또 어찌 그리 투명한지. 딸아이와 함께 가을 단풍 여행을 떠났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 계곡을 따라 산들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길을 떠났다. 배낭에는 향긋한 점심과 생수, 그리고 막걸리 하나 담았다. 딸이 먹을 과자도 잊지 않고. 10여분을 걸었을까? 발그속속하게 물든 단풍잎을 계곡 가에서 만났다. 그 단풍잎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민 계곡의 물은 에메랄드빛이었다. 물이 너무 맑아 그 어떠한 생물조차 살 것 같지 않았다. 그 물빛을 뒤로 하며 다시 가기를 10여분. 이번에는 계곡 사이로 노라발갛게 서있는 소박한 단풍을 만났다. 계곡의 바위는 역광을 받아 순두부처럼 말갛게 빛나고 있었고, 작은 다람쥐들은 먹이를 상수리나무 근처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그때 하늘은 여전히
-천혜의 자연해상 공원에서 광안대교를 쳐다보며 부산사람들에게 '용호동'이라는 지명은 오랜 세월동안 뭔가 스산하면서도 선뜻 가기 힘든 곳, 시내 중심가에서 너무 외진 곳이라는 인상을 준 곳이다. 용호동이 이런 이미지를 가진 이유는 용호동 해안가에 위치한 한센병 환자들의 집단 거주지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대규모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것에서도 기인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곳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군부대와 한센병 환자촌이 철수한 상태여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부산에서 제법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대'라는 말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곳이 이른바 5대로 불리는 해운대, 태종대, 몰운대, 신선대, 오륜대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 5대에 하나를 더 붙여 6대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었는데, 그 하나가 바로 '이기대'라는 자연해상 공원이다. 이기대는 용호 3동에 속해 있으며 남부운전면허 시험장을 거쳐 용호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해안가다. 입구에서 차를 주차시키고 약 15분 정도 걸어가면 장산봉(225m)과 탁 트인 전망을 가진 넓은 해안가를 만나게 된
- 갈밭새들이 날아오르던 조마이섬 을숙도. 한자로 풀이하면 새 乙자에 맑을 淑, 그리고 섬 島. 새가 많고 물이 맑은 섬이라는 뜻이다. 낙동강이 남해와 만나는 하구 언저리에 고구마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을숙도에는 이름 그대로 새들이 많다. 아니 많다기보다 그저 새들의 천국이다. 50여종, 10만 마리의 철새들이 쉬어가는 을숙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철새 도래지이자, 희귀한 새들을 연중 관찰할 수 있는 갈대와 개펄의 땅이다. 지금은 낙동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하구둑으로 인해 찾아오는 철새들의 숫자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을숙도에는 각종 철새들이 해마다 무리를 지어 찾아오곤 한다. 세계적인 희귀 새인 재두루미, 저어새, 흰꼬리수리 등이 무리를 지어 겨울을 나는 모습은 장관 중의 장관이다. 어디 그뿐인가. 긴 부리에 눈부시게 하얀 깃털을 자랑하는 백로들이 붉은 노을을 등지면서 낙동강과 갈대밭 사이로 나울거리는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요산 김정한 선생이 1966년에 발표한 의 주 무대는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을숙도라는 섬이다. 이 을숙도는 낙동강이 운반해 온 토사의 퇴적에 의하여 형성된 모래섬으로써 총면적이 0.08km2 정도이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