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부터 비가 조금씩 내린다. 비가 비답게 내려야 속이 시원할 텐데 그렇지 아니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전혀 안 오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비가 비답게 내려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아니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하지 않겠는가? 우리 문학의 뿌리인 향가 안민가(安民歌)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나라 안이 태평하고 행복을 누리게 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백성은 백성다워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평안하게 되고 행복하게 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교장은 교장다워야 하고 교감은 교감다워야 하고 부장은 부장다워야 하고 선생님은 선생님다워야 하고 모든 직원들은 직원다워야 하며 학생들은 학생다워야 한다. 한 분도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자기다운 행동을 하지 못하면 행복한 학교가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는 것이다. 자신의 할 일을 잘 알아서 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잘 지키는 것이다. 명심보감 성심편에 신종 황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가 아닌 재물은 멀리하고 정도에 지나치는 술을 경
커텐을 열었다. 새소리는 여전하다. 집에 있어도 새소리, 학교에 있어도 새소리, 새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덕불고라 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라.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나무에게는 벗이 있다. 그게 바로 새다. 새가 언제나 벗이 되어 곁에 있으니 외롭지 않다. 기쁘다. 즐겁다. 시끄러운 차소리보다 자연을 노래하는 새소리가 훨씬 정겹다.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유쾌하다. 선생님은 나무와 같다. 나무는 덕이 있다. 언제나 마음이 넓다. 마음이 올바르다. 언제나 유익만 준다. 그러니 새들이 떠나지 않는다. 새들이 찾아온다. 이와 같이 우리 선생님들도 마음이 올바르다. 마음이 넓다. 포용력이 탁월하다. 온후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을 바르게 인도한다. 학생들을 경복(敬服)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새들이 나무를 그리워하며 떠나지 않듯이 학생들은 언제나 선생님 곁은 떠나지 않는다. 존경하며 말씀에 순종한다. 선생님의 말씀에 탄복한다. 선생님이 황금이 많아서가 아니다. 물질로 혜택을 주어서도 아니다. 오직 덕(德)이 있기에 덕(德)이 있는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위해 모여든다. 명심보감 성심편에 “황금 천 냥은 귀할
토요일 아침은 언제나 희망차다. 한가롭다. 여유가 있다.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주말 틈새교육이 한창이다. 희망자에 한해 수업이 이루어진다. 논술수업, 자격증 취득을 위한 영어, 중국어, 일본어 수업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보충을 위한 수학수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선생님들은 평소보다 더 열기찬 것 같다. 오늘 오후는 찾아오는 입시설명회가 열리는 날이다. 우리 학교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한 홍보 차원에서 중3 학생들과 학부모님을 모셔놓고 열리는 것이다. 작년에는 어떤 학생은 우리 학교를 방문하고서 학교가 너무 마음에 들어 진학했다는 학생도 있다. 우리 학교는 일반 학교의 두 배의 크기다. 학생의 숫자는 약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사실상 네 배의 크기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모두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유쾌한 학교다. 사제가 함께 하는 행복한 학교다. 책을 많이 읽는 생각의 학교다.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학교다. 꿈을 키우는 미래의 학교다. 새소리를 아침마다 들을 수 있는 숲속의 학교다. 싱그러운 계절에 꽃향기 나는 자연의 학교다.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가 샘물처럼 솟아나는 생산적인 학교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커텐을 열었다. 평소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풍광이다. 하늘은 맑고 또 맑다. 청량한 바람은 내 곁에 다가온다.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몇 학생들은 기숙사 앞마당에서 줄넘기를 한다. 내가 머무는 학교가 바로 내 집이다. 이런 넓은 마당이 어느 집에도 없다. 이렇게 많은 식구도 없다. 이렇게 잘 가꾸어진 화단도 없다. 모두가 편히 쉴 수 있는 휴식처도 없다. 그러기에 기쁨이 다가오고 평안이 넘친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여기에 있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맹자의 양혜왕장구상에 이어 양혜왕장구하에서도 왕도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맹자는 인(仁)을 가장하여 실제로는 무력으로 다스리는 것을 패도라 하고, 덕으로 어진 정치를 실시하는 것을 왕도라 하였는데,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면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게 되고,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면 사람들은 진심으로 따르게 되므로, 덕에 의한 왕도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 힘으로 하는 교육은 허사다. 학생들을 따르게 할 수 없다. 덕으로 하는 교육, 즉 사랑으로 하는 교육이 학생들을 진심으로 따르게 할 수 있다. 소리 지른다고 따라오지 않는다. 자기의 가진 지식으로도 따라오지 않는다. 자기의 가진 힘으
우리 학교는 아침만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소리의 합창,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맡으면 잃었던 기운이 새로 생긴다. 좋은 아침 글을 대하면 절로 상쾌해진다. 이게 행복이다 싶다. 독일의 어느 시인이 ‘산 너머 행복이 있다기에 남 따라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고 읊은 적이 있다. 행복은 바로 자기가 머무는 그곳에 있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맹자의 양혜왕장구상 제7장은 마지막 장이다. 이 장은 가장 길다. 제7장에는 제선왕이 나온다. 제선왕과 맹자의 대화에서 얻는 교훈이 있다. 선생님은 힘보다 덕이 더 중요함을 가르치고 있다. 힘으로 하는 것은 겉으로는 효과가 근방 나타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반대로 사랑으로 하면 근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믿음을 가져 늘 따라오게 되어 있고 그 효과는 오래 간다. 제선왕은 힘으로 맹주(盟主)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맹자께서는 거기에 대한 질문에는 언급이 없었고 왕도(王道)에 대해서 말씀 하신 것이다. 맹자께서는 제선왕에게 “백성을 보호하고서 왕도를 실행하면 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아파트 커텐을 열면 두 가지의 잔디가 보인다. 가까이는 자연 잔디이고 멀리는 인조 잔디이다. 아파트 앞 잔디는 자연산이라 신선하다. 활기찬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멀리 보이는 학교의 운동장 잔디는 인조 잔디라 보기는 좋지만 기쁨을 안겨다 주지 못한다. 거짓보다 진실이 더 낫다. 거짓이 꿀과 같이 달콤해 보여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생명이 없다. 하지만 진실은 매력적이지 않지만 생명이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리게 한다. 우리 선생님들은 자연 잔디와 같다.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다. 얼핏 보기에는 어설퍼 보이고 질둔해 보이지만 생명력이 있어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감동이 있다. 이끌림을 받게 한다. 진실하다. 연삽하다. 삽삽하다. 인조 잔디는 첫눈에는 이끌리지만 아무리 보아도 감동이 없다. 처음 보기에는 연삽해 보이지만 사실은 질둔하다. 선생님은 황금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진실이 있는 사람이다. 황금은 빛이 나고 값이 나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하지만 황금 천 냥보다 진실된 선생님의 한 말씀이 더 값이 나간다. 가치가 있다. 진실된 선생님들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비록 한 마디이지만 황금 천냥보다 더 귀하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내리는 비는 단비 중의 단비다. 농심이 타들어가 마음 자체가 검게 물들 즈음에 하늘은 우리들에게 단비를 내려주었다. 농심을 달래주었다. 위안을 주었다. 용기를 주었다. 희망을 주었다. 주름진 얼굴을 활짝 펴 주었다. 우리 선생님은 단비 중의 단비가 아닌가 싶다. 애타게 기다릴 때 꼭 필요할 때 줄 줄 아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단비는 내려도 요란스럽지 않다. 야단스럽지 않다. 시끄럽지 않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성실하게 필요한 이들에게 모두 내려주기만 한다. 우리 선생님들은 요란스럽지 않다. 야단스럽지도 않다. 말이 많지도 않다.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저 필요한 이들에게 유익을 주기만 한다. 우리 선생님은 그릇된 말은 반 마디도 하지 않는다. 한 점의 불티와 같은 그릇된 말, 도움이 되지 않는 말, 남을 해롭게 하는 말은 반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한 점의 불티와 같이 만경의 숲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릇된 말은 반 마디라도 하면 평생의 덕을 허물어뜨림을 알기 때문이다. 단비는 필요할 때 필요한 것 나누어주면서 생색내지 않고 말을 아낀다. 필요 없는 말 하지 않고 도움이 되지 않는 말
커텐을 열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학교 전경은 어둠에 깔려 멀리 있는 불빛만 보였다. 학교 주변의 나무들만 단비를 즐기고 있었다. 중국 당대의 정치가 허경종은 봄비가 기름처럼 소중하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비는 봄비는 아니지만 기름처럼 소중한 비다. 농민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비다. 농심이 타들어가고 있는데 초여름비가 내려주니 기름보다 더 값비싸다 싶다. 우리 선생님은 비와 같다. 애타게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들이 많다. 선생님의 상담을 기다리는 학부모님도 많다. 선생님은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듯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단비를 내려주신다. 시원하게 답을 주신다. 학생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다.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진로를 제시해 주신다. 물은 생명이다. 물이 없으면 만물이 다 죽는다. 생물이 다 죽는다. 사람도 죽고 짐승도 죽고 식물도 죽는다. 물이 그만큼 귀하다. 그러니 물이 기름보다 더 귀하다. 선생님은 물과 같다. 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학생들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깊은 밤에도 교실에서 불을 밝히고 차랑차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 목소리는 학생들을 살리는 외침이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학생
우리 학교는 새소리를 아침마다 들을 수 있는 숲속의 학교다. 싱그러운 계절에 꽃향기 나는 자연의 학교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신록들을 보면서 날마다 푸른 꿈을 심는 미래의 학교다. 아침에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공급받는 유쾌한 학교다. 학교가 시내와는 좀 떨어져 있어 선생님들이 출퇴근하기는 조금 불편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자연이 다 해주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자연의 고마움을 느끼며 사제가 함께 하는 행복한 학교다. 모두가 즐겁게 가르치고 배우는 평화의 학교다. 좋은 환경 속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은 좋은 제자를 많이 배출한다. 좋은 선생님의 영향을 받으면 좋은 제자가 나온다. 공자는 좋은 스승이기에 좋은 제자를 많이 배출하였다. 논어의 학이편에 보면 제자인 유자가 나온다. 스승인 공자 못지않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학문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 다음에는 제자인 자하가 나온다. 자하도 공자 못지않게 인간됨이 돋보인다. 자하도 공자의 영향을 받아 인(仁)을 강조한다. 즉 사랑을 강조한다. 사랑의 사람을 섬기라고 한다. 어진 사람을 섬기라고 한다.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을 최고로 삼기에 사랑의 사람을 섬기고 존경하라는 것이다. 미색을 좋아하
커텐을 열었다. 맑고 푸른 하늘도 마음을 훔쳐가고 자연도 마음을 빼앗아간다. 나뭇가지에 흔들리는 미풍도 유혹한다. 자연의 성실함 때문이다. 그들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추어진 진면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실함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기쁨을 준다.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것 보면서 우리 선생님들의 성실함을 떠올리며 기쁨을 얻는다. 선생님들의 참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어제 우리 학교에서 1년 동안 사감선생님을 하신 선생님께서 찾아오셨다. 이 선생님은 정년퇴직을 하시고 우리 학교에서 기숙사 기반을 닦아놓으신 분이시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학교 일을 그만 두셨다. 지금은 회복이 되어 어느 중학교에 영어 강사로 나가신다고 하셨다. 정말 성실하신 분이시다. 언제나 감동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 선생님께서 지금 맡은 중학생들은 정말 문제가 많아 보인다고 하셨다. 교과서는 반 이상 가져오지 않고 아예 들을 생각도 안 하고 때릴 수도 없고 무어라고 말하면 대꾸하고. 그래도 잘 따라하고 배우는 학생들이 있기에 그들을 바라보고 참고 열심히 가르치고 계신다고 하셨다. 학교마다 문제없는 학생이 없다. 그래도 참고 또 참는다. 그들이
커텐을 열고 창문을 열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가 마음을 새롭게 한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푸른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하얀 반달은 공주처럼 너무 아름답다. 푸른 나무와 푸른 잔디는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며 희망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산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엷게 깔린 안개 때문이다. 무엇이든 100% 만족과 기쁨은 잘 주지 않는다. 늘 2%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이를 채우기 위해 참고 또 참는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우리 선생님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100% 만족을 얻지 못한다. 늘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래도 참고 또 참는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반드시 만족을 채워주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 주위의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하늘을 알고 싶으면 하늘에서 보이는 해와 달과 별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늘이 품고 있는 해와 달과 별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유익을 준다. 기쁨을 준다. 건강을 준다. 맑은 마음을 준다. 그래서 하늘은 늘 고맙다. 우리 학교의 학생들을 알고 싶으면 우리 학교의 선생님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선생님들이 품고 있는 학생들은 인사를 잘한다. 예의가 바르다. 언제나 밝다
오늘 아침 주옥같은 시 한편을 읽었다. 김려(1766-1822)의 시다. ‘그리움이 동글동글, 앵두’라는 시다. 지금은 앵두와 오디가 제철이다. 앵두와 오디를 생각하면 그리움이 떠오른다. 늙으신 부모님이 떠오른다. 우리 선생님들은 앵두와 오디를 생각할 때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게 된다. 부모님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늘 가슴 속에 간직하게 된다. 주름진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이가 바로 우리 선생님이다. 이런 마음이 학생들에게 바로 전달된다. 수정처럼 동글동글 영롱하게 빛난 앵두를 그리며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학생들에게 효를 가르친다. ‘살아생전 효를 다하여라.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다. 부모님의 걱정거리가 되면 안 된다. 자녀들은 언제나 붉게 빛난 앵두와 오디처럼 아름다운 열매가 되어라.’ 이렇게 학생들을 지도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수정같이 빛난다. 공자께서는 논어 학이편 제6장에서 이렇게 가르치셨다.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면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하셨다. 부모님이 항상 집에 가면 계시지만 않는다. 때가 되면 부모님과 떠나 있을 수도 있다. ‘집에 계실 때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효도 잘하는 이가 되고 나서 글을 배워라고 하신
세월이 너무 빠르다. 엊그제가 토요일이었는데 또 토요일 아침이다. 커텐을 열었다. 푸른 산, 푸른 나무, 푸른 잔디가 희망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은 푸른 하늘로 동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들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특징이다. 또 이들은 언제나 말이 없다. 침묵을 지킨다. 자기의 할 일만 한다. 보아주면 보아주는 대로, 보아주지 않으면 보아주지 않는 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산은 역시 대장부답다. 나무를 잘 길러낸다. 뿌리가 굳어지게 한다.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한다. 기둥과 들보의 재목을 이룰 때까지 가슴에 품는다. 땅 속에 품는다. 기운을 준다. 누가 뭐라 해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소신껏 한다. 자기의 사명을 알아 자기의 사명만 다한다. 제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이리저리 옮기지 않는다. 나무가 시들어간다고 냇가로 가지 않는다. 가지와 잎이 무성하지 않다고 아우성치지 않는다. 기둥과 들보의 재목이 되었다고 자랑을 하지 않는다. 깃발을 흔들며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선생님은 산과 같다 싶다. 언제나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 떠나지 않는다. 학생이 있는 곳에 선생님이 계신다.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따
우리 학교의 교화인 장미가 피기 시작했다. 빨간 장미가 제법 많이 피었다. 장미는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는 꽃이다. 우리 학교에서 생활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는다. 장미처럼 우리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외모뿐 아니라 내적인 면도 아름답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과 같이 빛난다. 공자께서는 아름다운 장미와 같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분이시다. 논어 학이편 제5장도 우리 선생님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제5장을 보면 “천승의 나라를 다스리되 일을 경건하게 다스리고 미덥게 하며, 쓰는 것을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을 부리기를 알맞은 때로써 한다”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천승지국(千乘之國)은 병거(兵車) 천 대를 갖출 힘이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 제후가 다스리는 나라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만승을 보유한 천자도 아니고 백승을 보유한 대부에게 한 말도 아니며 천승을 보유한 제후에게 말한 것이라 짐작된다. 공자께서는 제후에게 경사(敬事)하라고 먼저 가르치고 있다. 일을 경건하게 하라고 하였다. 敬(경)의 뜻을 보면 일을 어떻게 하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우선 敬(경)은 감사
커텐을 열었다. 미풍이 일었다. 바람 같지 않은 바람이지만 그래도 나뭇가지는 바람의 사실을 알렸다. 미풍이라도 바람은 바람이었다. 선생님이 때론 선생님 같지 않아 보일 때가 있어도 선생님의 존재는 언제나 살아 있다. 겉모습과 관계없이 선생님은 언제나 선생님이다. 맹자도 역시 공자 못지않은 훌륭한 선생님에 틀림없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다운 교육임을 가르치고 있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맹자 양혜왕 장구상 6장을 읽었다. 6장에는 양혜왕의 아들인 양양왕과 맹자와의 대화가 나온다. 제6장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양양왕은 겉모습보다는 속이 꽉찬 속모습이 더 중요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맹자께서는 양양왕의 모습을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임금 같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도 두려워할 만한 바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양양왕은 겉으로 볼 때 왕 같지도 않았고 두려워할 만한 위엄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속이 꽉 찼다. 어느 왕 못지않게 나라가 안정되기를 바랐다. 맹자에게 “천하가 어떠한 상태에서 안정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양양왕은 바보가 아니었다. 모자라는 왕이 아니었다. 속은 오히려 꽉 찼다. 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