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이후 수험생들은 나약할 대로 나약해지기 쉽다. 평소의 자신이 아니다. 꿈도 잃고 길도 잃고 만다. 자신감은 떨어지고 자신은 한없이 작아 보인다. 자신을 한탄하고 자신을 미워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명심보감 존심편에 보면 손사막이 이르기를 “담력은 크게 가지도록 하되 마음가짐은 섬세해야 하고, 지혜는 원만하도록 하되 행동은 방정하도록 해야 하느니라”고 하셨다. 우선 담력은 크게 가져야 한다. 자신을 회복해야 한다. 마음이 강해야 한다. 약한 자신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배짱이 있어야 하고 용맹이 있어야 한다. 겁낼 것이 없어야 한다. 한없이 낮아진 자신을 제자리로 갖다 놓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평상심을 찾을 수가 있다. 부정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비관적인 생각은 버리고 낙천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이 좋다. 자신이 나약해지면 자신의 행동도 비굴해진다. 자신이 가야 할 길도 잃고 방황하게 된다. 탈선하게 되고 폭력을 행하기도 하고 음주에 빠지기도 한다. 지혜가 필요하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바른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 곧게 자란 나무처럼 곧은 행동을 해야 한다. 바람에 흔들릴 수는 있어도 넘어져
수험생들은 시험을 치고 나서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 생각된다. 시험을 잘 쳤다고 너무 기뻐하지 말고 시험을 못 쳤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라. 시험 한 번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은 고3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오히려 낫다. 명심보감은 우리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준다. 좋은 사람 되게 만든다. 훌륭한 인품을 가지게 만든다. 높은 인격을 갖춘 자가 되게 한다.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바르게 제시해 준다. 그래서 명심보감 성심편 상(上)의 내용을 중심으로 수능 이후의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명심보감 성심편 상(上)에 보면 “보화는 쓰면 다함이 있고, 충성과 효성은 누려도 다함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우리 수험생들은 돈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다. 자기에게 주어진 돈은 한정이 있다. 지나치게 지출이 많으면 적자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도에 넘치는 지출로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시험을 치고 나서도 돈에 대한 생활은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나친 낭비는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은 부모에 대한 효도이고 학교에 대한 사랑이다. 충성과 효성은 누려도 다함이 없다고 하였다. 공부한다고 학교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
오늘은 수능일이다. 전국적으로 날씨가 따뜻하다 하니 다행이다. 수험생들은 안 그래도 마음이 떨리고 있는데 날씨까지 추우면 얼마나 많이 떨리겠는가? 차분하게 시험을 모두 잘 쳤으면 한다. 본인이 바라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수능이 끝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수능이 끝나면 수험생들은 허탈해지기 쉽다. '시험을 잘 쳤을까? 내가 희망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다른 친구들은 시험을 어떻게 쳤을까? 나의 성적이면 내가 꿈꾸는 대학과 학과에 합격할 수 있을까?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이 문제도 맞출 수 있었을 텐데…'아쉬움 속에서 자신을 한탄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자녀들에게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부담을 가중시킨다. ‘좀 더 열심히 하지, 그 정도밖에 시험을 못 쳤어? 그래가지고 대학이나 가겠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든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하게 되고 잠은 오지 않고 여러 가지 잡념 속에 빠지게 된다. 수험생들은 수능시험을 치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명심보감 훈자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지극한 즐거움은 책을 읽는 것만 같음이 없다”고 하였다. 시험 치고 난 것에 대한 생각은 아무런 도움이 되
언젠가 “우리 아이들, 욕 빼고도 말하게 하자”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욕설을 하는 것이 심각할 정도라고 한다. 언론을 통해 욕설을 하지 않도록 홍보를 하는 것을 보았다. 욕설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은 인성교육의 첫걸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은 친해도 욕설, 화가 나도 욕설, 스트레스 풀기 위해서도 욕설, 습관적으로 욕설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학생들이 욕설을 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욕설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욕설을 한다는 게 좋은 것이냐, 아니냐? 욕설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욕설을 어떤 경우에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왜냐 하면 욕설을 하는 것은 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욕설하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하는 이가 있는가? 없다. 지금이나 예나 할 것 없이 욕설을 많이 한 것 같다. 그것을 보다 못해 욕설을 해서는 안 됨을 가르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명심보감 계선편에 보면 공자께서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주고 착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 갚는다”고 가르치셨다. 욕을 하는 사람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인가? 착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인가? 태공(
산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하루 하루 색감을 덧칠하고 있다.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함이다. 남에게 기쁨을 준다는 게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 우리 선생님들은 산과 같은 기쁨을 학생들에게 주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선생님은 산과 같다. 산은 정말로 묵직하다. 산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외부의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위풍을 드러낸다. 우리 선생님이 그러하지 않나 싶다. 우리 선생님들은 오직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업무에만 충실할 뿐이다. 산은 언제나 앞만 바라본다. 뒤로 돌아보지 않는다. 앞에 있는 것들을 바라다본다. 잘하는 것도 지켜보고 못하는 것도 지켜본다. 우리 선생님이 그러하다. 우리 선생님들은 오직 학생들만 바라본다. 뒤로 돌아보지 않는다.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본다. 산은 언제나 보호막이 되어준다. 산은 태풍도 막아준다. 홍수도 막아준다. 우리 선생님은 언제나 보호막 역할을 한다. 학생들의 안전에 책임을 진다. 학생들이 사고가 나지 않도록 늘 지켜준다. 산은 언제나 유익을 준다. 나무들이 자랄 수 있도록 품어주기도 한다. 자라나는 나무들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
깊어가는 가을이다. 가을은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것 같다. 생각의 폭도 넓게 해준다. 오늘 아침은 교육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하면 좋은 성과를 가져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달 전 교직에 있는 딸이 딸을 낳았다. 할아버지가 되었다. 어린 애에 대한 애정이 남다름을 보면서 교육도 어머니가 자녀에게 가지는 마음만 있다면 좋은 교육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메모해 본다. 우선 선생님은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갓난아기는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잠을 깨며 젖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도 싫다 하지 않고 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힘들다 하면서도 잠을 설치면서 어린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열심히 젖을 먹이고 잘 키우려고 애를 쓰지 않는가? 선생님이 나에게 주어진 애들에게 이런 열정, 사랑이 있으면 모든 학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나리라 본다. 또 어머니는 어린 아기에 대한 헌신이 대단하다.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아기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을 조금도 돌보지 않는다. 애가 우선이다. 우리 선생님들의 마음도 학생들을 위한 헌신적인 자세가 있다면 학생들은 행복한 학생이 될
모스코바 공립 34번 학교에서 놀란 것 중의 하나가 교장실이었다.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속실이 있었다. 교실 반 크기였는데 두 명의 직원이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행정실인 줄 알았는데 부속실이었다. 교장실은 70년이 넘은 오래된 학교지만 너무 아름답게 잘 꾸며져 있었다. 교장실이 교실의 삼분의 이 크기였고 바닥은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교장선생님의 책상과 쇼파 등은 최신형 새 것으로 놓여 있었다. 분명 우리 때문에 새로 들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모두 고급스러워 보였다. 교장선생님을 예우하는 차원인 것 같았다. 또 하나 감명 깊은 것은 우리가 아침에 도착해서 오후에 돌아올 때까지 두 교감선생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학교 업무도 바쁠 텐데 우리들에 대한 배려심은 한없이 깊었다. 그리고 한국인 학부모님도 6명이 참석하였는데 아침 일찍부터 참석해서 우리들을 맞이해 주었다. 한 분은 대사관에 근무하셨고 다른 한 분은 또 다른 요직에 근무하셨고 한 분은 개인사업을 하셨다. 이분들이 모스코바에서 살면서 자녀들을 34번 공립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만족을 하셨고 우리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까지 준비하셨다. 잡채를 비롯해 한
러시아는 그림이 많은 나라다. 특히 모스코바 34번 공립학교에도 학생들이 그린 그림이 벽에 많이 걸려 있었다. 그림의 나라다웠다. 러시아 하면, 그림은 아름답고 문학은 심오하며 노래는 감동적이라는 것쯤은 그 나라에 대해 관심이 없어도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의 문인 듀체프의 〈초가을〉의 후반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힘찬 낫질로 이삭이 떨어졌던 곳엔 이제는 모든 것이 텅비었고 어디나 광활하다. 거미집들만 거밋줄을 빈 고랑에서 반짝이는구나” 모스코바에는 산이 없다. 광활한 넓고 넓은 평지이다. 이들은 아무 보잘 것 없는 자연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거미집을 노래하는 솜씨는 탁월하다. 거미집들만 거밋줄을 빈 고랑에서 반짝이고 있음을 볼 줄 아는 감각적인 안목은 특히 돋보인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삶이 아름답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본다. 그들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 예절바른 성품, 훌륭한 인격이 밑바탕이 되어 아름다운 시를 읊을 수 있었으리라. 그들의 인성교육은 우리의 인성교육 못지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운 심성에서 길러진 깊고 심오한 창의적 능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학교 안에서의 생활지도도 엄격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학교 안에서 한 학생도 담배
1교시 수업을 끝내고 2교시 수업을 참관했다. 고등학생들이었다. 예쁜 교복을 입고 있으니 더욱 예뻐 보였다. 지리수업이었다. ‘한국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이 수업 주제였다. 교실도 아담하고 예뻤다. 우리나라 교실의 3분의 2정도 크기였다. 직사각형 넓은 탁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분임토의를 할 수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ㄷ’자 모양의 교실 벽에는 폭신한 하나로 된 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칠판을 향한 맨 뒤쪽에는 저와 러시아 34번 교장선생님이 나란히 앉았고 그 옆에는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앉았으며, 양 옆에는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러시아 선생님이, 다른 한 쪽에는 한국 학부모님들이 앉았다. 양 테이블에는 10명 정도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수업은 파워포인트로 진행됐다. 지리선생님께서 한국에 한 번 다녀간 일이 있는데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등 여러 도시를 방문하여 특색 있는 것은 모두 사진으로 찍여 파워포인트로 학습자료를 만들었다. 이 선생님은 평소에도 주말이 되면 다음주 수업을 위해 농장에서 교재연구를 한다고 하셨다. 그 정도로 수업준비가 철저했다. 이 날도 수업준비를 아주 많이 한 것 같았다. 한국에 대한 것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이순신
소문만 듣던 멀고도 먼 러시아의 삶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그것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아닌 교육으로 다가온 것이다. 1990년 수교 이래 러시아의 교육, 더 좁은 의미로 말하면 모스코바의 교육을 우리의 눈으로 확인하고 함께 공유하고 함께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가 낳은 문인 튜체프의 〈초가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초가을에/ 짧지만 아름다운 때가 있으니-/ 낮은 수정과도 같이 빛나고/ 저녁에도 햇빛 찬란하다.” 지난 9월 26일 러시아는 초가을은 아니었지만 단풍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비록 짧은 3일간의 아름다운 때이었지만 듀체프가 노래한 것처럼 낮은 수정같이 빛나고 저녁에도 찬란한 햇살을 볼 수 있어 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하였다. 러시아 하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겨울만 있는 나라로, 추운 나라, 눈의 나라, 얼어붙은 나라, 살기 힘든 나라 등으로 기억되곤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계절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 미적 감각이 탁월한 나라, 넓은 평온한 평원의 나라, 문화의 나라, 예술의 나라, 예절의 나라, 특히 교육의 나라였다. 지난 9월 27일 러시아의 모스코바에 있
논어의 학이편 제5장은 공자께서 정치에 관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자왈 도천승지국하되 경사이신하며 절용이애인하며 사민이시니라’ 이 말의 뜻은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천승의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정사를 신중히 하여 백성들의 신의를 얻어야 하며, 비용을 절약하여 백성들의 수고를 덜며, 시기를 잘 맞추어 백성을 부려야 한다”이다. 제5장은 비록 정치지도자가 지녀야 할 내용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교육을 담당하는 모든 선생님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된다. 우리 선생님들이 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 가져야 할 것 중의 하나가 敬事而信(경사이신)이다. 즉, 일을 신중히 하여 신의를 얻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의의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인정을 받는 교육, 신뢰를 얻는 교육, 믿음이 가는 교육이 바로 敬事而信(경사이신)이라 할 수 있다. 신뢰를 얻는 비결은 무엇인가? 敬이다. 경은 존경하다. 공경하다의 뜻인데 존경하고 공경한다는 의미의 속에는 신중함과 정성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일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논어 학이편 제4장의 말씀은 공자의 제자 증자가 가르치신 내용이다. “曾子曰(증자왈) 吾日三省吾身(오일삼성오신)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위인모이불충호)아 與朋友交而不信乎(여붕우교이불신호)아 傳不習乎(전불습호)아니라.” ‘증자가 말하기를 “나는 매일 자신을 세 차례씩 반성한다. 남을 위해서 일을 하는 데 있어 정성을 다하였던가. 벗들과 함께 서로 사귀는 데 신의를 다하였던가. 제대로 익히지 못한 바를 남에게 전하지는 않았던가” 증자께서는 매일 자신을 돌아보기를 권하고 있다. 자기 반성을 하라고 하신다. 하루에 한 번 반성이 아니라 하루 세 번 반성을 하라고 하신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좋은 것이다. 자신의 하는 일이 잘못된 것이면 돌이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빨리 돌아서는 것이 좋다. 잘못된 길은 간 것만큼 손해다. 간 것만큼 되돌아와야 한다. 그러기에 하루에 세 번을 반성하는 것은 자기의 잘못된 길을 되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무엇을 반성하라고 하고 있나? 반성의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하면 진실이다. 진실을 강조하고 있다. 학이편도 3장에서도 진실을 강조하고 있듯이 4장에서도 진실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학이편 3장
논어의 학이편 제3장은 우리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巧言令色 鮮矣仁 (교언영색 선의인)” ‘듣기 좋은 말이나 보기 좋게 꾸민 얼굴 중에는 어질고 순박한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다. 巧言令色(교언영색)은 따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동작이라 생각된다. 교묘한 말과 아름다운 표정은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교묘한 말은 진실된 말이 아니고 거짓이 숨겨진 말이기에 거짓을 아름다운 얼굴빛으로 포장하게 되는 것이다. “巧言令色 鮮矣仁 (교언영색 선의인)”의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접해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공자의 제자 중에 중궁(仲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29세나 아래였는데, 일찍이 공자 자신이 ‘중궁은 임금 노릇을 할 만하다’라고 칭찬할 만큼 덕망이 많으나 말주변이 없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중궁은 어질지만 말재주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공자는 중궁을 이렇게 감싸고 있다. “(교묘한 말재주와 비위를 맞추는 가식의) 약삭빠른 구변으로 남의 말을 막아서 자주 남에게 미움만 받을 뿐이다. (그런) 말재주는 어디에다 쓰겠는가. (교묘하게)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논어 학이 제2장은 공자의 제자, 유자가 하신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은 인성교육에 관한 말씀이다. 지금 학교에서는 사람됨 교육, 즉 인성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다. 좋은 사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땅히 가야할 바른 길이다. 공자의 제자, 유자의 가르침에서 인성교육의 내용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인성교육의 핵심은 ‘부모 공경’과 ‘형제 사랑’이다. 부모 공경과 형제 사랑이 없는 인성교육은 헛것이다. 부모를 섬기고 형제를 사랑하는 효제(孝弟)가 인성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인성교육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부모를 섬기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인성교육의 출발이어야 한다. 부모를 섬기고 형제를 사랑하는 이가 윗사람(上者)에게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어른은 물론 자기가 속해 있는 윗분들에게도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이들은 부모 공경과 형제 사랑을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부모 공경과 형제 사랑의 실천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하는 것이 좋은 것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윗사람에게 도리에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 질서를 잘 지키고 나라 법규를
가정의 달 5월도 저물어가고 있다. 부모님을 기억하게 하고 스승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5월이 끝나가고 있다. 세월은 역시 빠르다. 5월이 다 지나가더라도 부모님의 사랑, 스승님의 사랑은 늘 간직해야 될 것 같다. 오늘 아침은 공자님의 학이편 첫 장을 음미해 본다.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면 유붕자원방래면 불역락호면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음미해 볼수록 깊은 맛이 나는 것 같다. 배움이 참 좋다. 배움이 기쁨을 선물로 안겨다 주니 말이다. 그걸 깨우친 이가 공자 선생님이시다. 그런데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기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배움이 기쁨이 아니고 고역이요 슬픔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아무리 배움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기뻐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행복한 교육이란 생각이 든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가르치기 위해서 배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