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은 궁금하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자신이 가지 않은(못한) 길에 대해 갈망한다.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는 더 갈망이 크다. 또 다른 인격이 한 인간 안에 있다면? 다중인격 드라마, 영화를 통해 현재 자신의 삶을 돌아보자. 다중 인격 이야기 ‘나의 내면에 나도 모르는 누군가 있다면?’ 우리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하곤 합니다. 대부분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종종 자기 자신이 아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도 익숙한 자신의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지거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마치 타인처럼 느껴지거나……. 인간의 개성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personal’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persona’에서 왔다고 합니다. 페르소나는 얼굴에 쓰고 있는 가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페르소나를 바꾸어 쓰며 삶을 살아갑니다. 집에서는 가족의 가면을,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가면을, 교무실에서는 또 다른 이름의 가면을 쓰며, 상대가 누군가에 따라 가면을 바꾸어 씁니다. 오늘 다루게 될 다중인격이 그저 재미를 위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쓰고 있는 수많은 가면들을 생각해보면 꽤나
그들에게, 아니 우리에게 미래는 있는가 영화의 시작은 단란한 한 가정의 모습에 출발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구상의 모든 것이 불타고 회색빛 재로 뒤덮이고 맙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잿더미가 되지 않은 희망의 땅을 찾아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위태롭기만 합니다. 극단적인 모습으로 파국을 맞고 있는 우리 인류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 상황에 대입하여 영화를 보게 됩니다. 영화의 배경처럼 암울한 상황 속에서 우리에 희망은 있을까요? 먹을 것이라고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통조림 몇 개가 전부이고, 살아남은 인류는 서로를 학살하고 잡아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어두운 상황 속에서 희망은 그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아들을 위해 그 길(the road)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암울한 현실 속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더 로드 들춰 보기 장소의 이동에 따라 진행된다는 측면에서 로드무비이며, 인류의 파멸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재난영화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우울함이 지속되고 있어 보는 내내 불편하지만 여러 차원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01 선과 악의 구분은 무엇인가 _ 아버지는 아
빨리 흘러가는 세상, 느리게 걷기 인터넷이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후반을 기억하십니까? 그때는 원하는 사이트로 이동하기 위해 클릭을 하고 30초는 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진이라도 많을 경우 1분을 훌쩍 넘기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와이파이가 있는 곳에서는 몇 초 걸리지 않아 음악과 영화를 내려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몇 년 후에 읽혀진다면 ‘내려가 받기’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는 말처럼 빠르게 살며 지나치게 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KTX를 타고 지방에 갈 때면 풍경을 볼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치며 도착을 하고 나면 멍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 완행열차를 타고 창밖을 보며 풍경을 하나하나 눈과 가슴에 새기던 일은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빠름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줍니다. 한 시간에 해야 할 일을 단 몇 초에 끝내기도 해버리죠. 그렇다면 그 나머지 시간은 우리에게 여유를 주었을까요? 아마 아니라고 답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마치 목마른 이에게 바닷물을 주는 것처럼 목마름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는 ‘교사’이다. 그래서 학교는 ‘남들보다’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학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간이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삶의 터전이다. 아이들에게도, 우리들에게도 학교는 행복하고 보람된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여러 이유로 ‘억압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세워진 외딴섬의 로젠탈 스쿨에서 자신의 위치를 추적당하고, 알 수 없는 약물을 주입 받으며 사이보그처럼 생기를 잃은 채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올바른 교육의 모습을 찾아보고, 함께 대안을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 피그말리온 아이들 들춰보기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교육 현실을 그려낸 작가 구병모의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가상의 학교 로젠탈 스쿨의 비밀을 밝히려는 다큐멘터리 PD와 이를 막으려는 교장의 대결을 중심으로 획일적인 교육과 사회에 대한 비판을 던진다. 태생이 불우한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세워진 외딴섬의 로젠탈 스쿨. 다큐멘터리 PD인 ‘마’는 한 번도 언론에 노출된 적 없는 로젠탈 스쿨을 취재하기로 결심한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교장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가식 없이 맑은 모습을 ‘순수’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점점 순수를 찾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학업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은 순수보다는 경쟁이라는 현실이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학 선행학습을 7년이나 먼저 한다는 기사는 요즘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순수함을 유지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어른들을 위한 일입니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들춰 보기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바바라 오코너의 소설 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높았던 소설이지만, 흥행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재미와 순수함에 끌려 개봉관을 늘려달라는 요청까지 있었을 만큼 입소문이 났던 작품이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매우 유쾌하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흥미진진하고, 어마어마한 트릭이나 반전은 없지만 지루하지 않다. 아이들과 함께 보며 웃고 즐기는 사이 ‘잊고 살았던 순수함’과 ‘가족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한
극한의 상황에서 무력화되는 인간 작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에볼라가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치사율이 90%에 이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우주도 정복할 기세의 우리 인류가 한 순간에 무력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알베르트 카뮈의 페스트는 14세기에 유럽을 휩쓸며 당시 유럽인들의 생존을 위협하였던 페스트가 평화로운 바닷가의 한 도시에서 갑자기 다시 나타난다는 이야기이다. 발병 당시, 유럽 인구가 1/5로 감소하고, 경제 기반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시련을 안겨줬던 무시무시한 질병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는 설정은 오늘날의 재난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작품은 2차 대전 이후 최고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중요한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카뮈에 대해 ‘실존주의적 작가’라는 아주 어렵고도 추상적인 칭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어려운 설명을 떠나 그의 작품 페스트가 시대의 고전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은 공포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다는 점 때문이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페스트는 우리에게 어떤 점을 생각하게 할까? -줄거리 오랑시에 살고 있는 리외(의사)는 어느 날, 쥐들이
우리나라 성인은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을까?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으로 한 달에 책 한 권을 채 못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중 그나마 독서를 많이 하는 대학생들의 독서량도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문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도 빼놓을 수 없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 속도는 우리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며,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의 상태를 뛰어넘는 새로운 기술이 태어나고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은 미디어의 환경 변화와 직결된다.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어렵지 않게 드러낼 수도 있다. 이러한 미디어의 발달은 정보의 폭발적인 증가와 유통으로 이어져 사람들의 인식 세계의 변화를 함께 가져오게 되었다.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출판되는 모든 책을 스캔하여 웹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DB를 구축하고 있는 구글 프로젝트는 정보의 증가와 유통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정보의 ‘
한글에 대한 논쟁 ‘인간의 음성 기관을 본 따 만든 세계 유일의 문자’, ‘음양의 조화와 철학을 기반으로 만든 문자’, ‘실제 발음과 유사도가 가장 높은 문자 체계’ 등의 찬사는 모두 한글에 대한 세계 언어학자들의 평가이다.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도 편리와 효율 측면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이는 한글은 한류의 확산과 함께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한글이 우리의 문자 언어라는 점은 축복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한글 창제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글 창제를 모두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반포조차 못한 채 수없이 많은 논쟁에 시달렸다. 반포 이후에도 기득권세력에게 철저히 외면당했고, 일부 식자층과 여성들에게만 사용되었다. 현재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구습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한글 사용을 반대한 입장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게 된다. 하지만 분명 반대에도 타당한 명분과 근거는 있다. 문자의 창제와 사용이라는 측면만을 보지 않고, 정치적 혹은 국제 정세의 관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문자 도입은 쉽게 허용하기 힘든 부분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지식과 정보의 통로가 다양하지 못하고 특정 문자에 국한되어 있던 당시의 상황을
신화는 힘이 세다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적 사료로써 역할을 한다. 신화는 한 민족 내에서 전승되기 때문에 지역적 범주가 확장될 경우 신화의 기본 전제인 신성성이 상실된다. 외국인들이 우리 단군신화를 본다면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으로 변신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나라를 세웠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이 이야기를 국조신화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뿌리로 생각한다. 이렇듯 신화는 한 민족에게 자긍심을 주고 정체성을 확인해준다. 어려서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굳이 배울 필요가 있을까 인식되기도 하지만 신화를 가르쳐야 하는 것은 당위적 명제다. 우리의 경우 상고사에 대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감안하면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신화에 대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별 학교 특성에 따라, 아이들 수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겠지만 신화를 교육하는 접근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질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흥미 요인을 고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야기 전반의 내용과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함 초등학교 고학년 ·역사적인 상황과 관련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연결할
올바른 역사 인식은 정체성 높여 ‘역사가 중요하다’는 말은 재론이 필요 없는 명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역사가 존재한다. 그 어떤 것도 통시적인 역사의 과정 없이 이루어진 것은 없으며 우리는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에드워드 카(E.H. Carr)가 말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의 정의는 역사의 생명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다. 최근 역사는 단순히 우리 과거에 대해 알고 배우는 문제를 넘어 국제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 등만 보더라도 역사는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유효한 문제로 대두된다. 국가 간 이익이 상충하고,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더욱 중요하다. 한 국가의 경쟁력은 과학기술, 경제력, 군사력 등 다양한 척도로 평가될 수 있지만 문화와 역사적 인식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 그러나 국경이 무너지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 역사의 중요성은 간과될 우려가 있다. 또 자신만의 역사를 고수하고 다른 이에게 관철하려는 태도는 분쟁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말도 되지 않는 역사 왜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