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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잭 웰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대 복합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을 1981년부터 2001년까지 20년 동안 경영해 놀라운 성과를 거둔 인물이다. 다른 기업이 한두 가지 주요한 사업에 대대적으로 집중하려고 했던 반면 웰치는 비행기 엔진에서부터 시작해 열두 가지 부문에서 사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웰치에게 좋은 아이디어란 이전에 성과가 있었던 그 아이디어들이었다. 이미 누군가 이루었던 성과를 찾아보고 그 성과를 분석해 자신의 업무에 응용하고 변형하여 사용한 것이 그의 사업적 성공 비결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하라”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따라 그리고 지금껏 그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미 이룩해낸 어느 분야의 업적조차도 내가 더 많이 탐구하고 연구한다면 그리고 내가 더 많은 나만의 아이디어를 곁들여 내 것으로 만들자 노력한다면 나도 그 사람 못지않은 또 다른 업적을 나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미래의 성공 키워드인 창의성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새로움이 아니다. 창의성은 과거의 성공을 새롭게 새로운 관점에서 조합한 결과물이다. 내가 과거의 사건에 대해 많은 걸 배우고 공부할수록 내게 다가온 문제의 상황이 더 익숙해 보이고 그 익숙한 상황만큼 그 문제의 해결점도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이 유독 싫어하는 과목이 사회고 역사다. 그들에게 사회란 역사란 단지 암기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외우고 사건이 일어난 해를 외우고 무의미한 관계의 사건들을 단순 암기하고 시험지의 문제에 맞는 정답을 써 내려가야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학생들이 생각하는 사회 시험이다. 하지만 잭 웰치처럼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미래의 성공을 과거의 조합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역사 교과야말로 그리고 사회 교과야말로 우리들에게 살아있는 교훈들로 가득한 살아 숨 쉬는 생명력 있는 교과이다. 나보다 앞선 생을 살다간 자들의 삶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등불이 되어준다면 역사 공부야말로 가장 진지하게 사색하며 즐겨야 할 과목이 아닐까 한다. 다산 정약용은 나 그리고 국가의 낡고 오래 묵은 체제를 새롭게 하는 신아구방(新我舊邦)을 공부의 목적으로 삼았다. 옛것을 살펴 취하고 발전시키고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창조해 가는 신아구방의 정신도, 역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안목을 기르는 역량도 교사인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전해야 할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 중 하나는 아닐까? 시험지에서만 빛을 발하는 죽어있는 지식이 아닌 우리들의 삶 속에서 삶의 지침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살아있는 지식, 지식의 유용성을 넘어 지식의 가치를 전하는 교사이고 싶다.
언젠가 신문학습을 통해 학생들의 실력을 다져간 세화여고의 사례를 접했었다. 세화여고에서도 처음부터 모든 교사나 학부형 그리고 학생들이 신문학습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신문보다는 문제 하나 더 풀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주위의 시선을 이겨내며 발전적 교육의 대안을 찾아간 활동이기에 그 성과는 더 의미 있다. 이렇듯 내가 실천하는 교육활동에 확신이 있다면 때론 나를 믿어주지 못하는 주위의 시선도 과감하게 이겨내며 그 교육에 올인하고 그 교육활동의 열매를 기다려볼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학생들에게 학부형들에게 나의 교육활동에 대한 적극적 안내도 펼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학급 아이들이나 담임의 사진을 활용해 수업 동기를 유발시키는 활동이 유행이다. 텔레비전 화면 가득 학급 친구들의 얼굴이 나타나는 신기함 때문에 학습에의 집중을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유한적인 말초적 흥미로 수업 초기의 감각적 흥미가 학습의 질을 끝까지 담보하지 못할 수 있음을 염려해야한다. 그래서 필자는 학습 목표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의 일화 들려주기나 역사적 사건 들려주기 그리고 신문 자료를 활용하여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안목을 기르는 수업을 즐긴다. 그래서 평소 이런저런 책을 편독 없이 읽으며 내가 읽는 책을 어떻게 가르칠까를 늘 고민한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가 무엇을 읽든지 늘 나의 관심은 ‘ 내가 아는 것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할까’ 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들려주는 정약용과 정조의 일화도 앞으로 그 어린아이들이 더 많은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배경지식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지도한다. 단 내가 읽은 지식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맞춰 흥미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자칫 지루한 암기의 대상으로만 여길 수 있는 형식적 지식을 에피소딕 지식으로 재구성하고 그 지식 속 교훈도 함께 전한다. 화려한 사진자료 없이도 나의 이야기만으로 전해지는 에피소딕 지식은 이해가 쉽고 장기 기억으로 전환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순 시청각 자료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화려하고 더 번득이는 자료이어야만 아이들의 학습 호기심을 계속 유지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인터넷과 전기가 끊긴 교실에서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재미를 오롯이 교사에게만 집중시킬 수 있는 교사의 역량이 수업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한다. 수업 중의 동영상 시청의 재미, 게임의 재미보다는 하나 둘 알아가는 지적 성장의 기쁨과 새로운 배움에 대한 호기심의 성장이 진정한 수업에의 재미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세화여고의 신문학습의 성과는 매우 중요하다. 교육가족 대다수가 불신했던 신문읽기를 교사와 학생 모두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하나 둘 더 많이 알아가는 지적 성장의 즐거움, 학습의 지루함을 이겨내고 알게 된 앎의 즐거움만이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큰 행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난 믿는다. 자신 있게 용감하게.
명예와 돈은 같은 부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편안함, 행복함, 부유함과 넉넉한 상황 속에서는 명예를 얻을만한 위대한 업적이 탄생되기 어렵다는 의미이리라. 사기를 쓴 사마천도 곤경과 가난이 사람을 분발하게 하고 걸작을 만들어 낸다고 말하며 이를 발분지서라고 표현했다. 역경이 업적을 만들어 낸 사례는 역사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그러했으며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그러했다 글이 사람의 울분을 어떻게 순화시킬까?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마음속 울분을 지면 위에 쏟아냄으로써 내 울분을 객관화 시키는 과정이다. 내 맘속 격정을 글로 쏟아내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속 울분이 한 번 걸러진다. 지면 위에 쏟아놓은 내 울분들을 내가 다시 한 번 읽을 때 나는 독자라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내 울분을 들여다보게 된다. 타자의 입장에서 나는 나의 울분에 대해 좀 더 냉정해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글쓰기는 영혼의 카타르시스이고 필자 자신에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이 괴롭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인터넷과 신문지상을 채우는 어린 학생의 자살, 학교폭력 기사들은 그네들의 아픔의 아우성 같다. 대구광역시 교육청에는 독서교육만을 전담하는 장학사가 있고 학생 글쓰기 동아리를 운영해 해마다 학생의 글들을 정식으로 출판하고 있다. 학생 출판 활동은 정서적 치료를 통한 놀라운 지적 성장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괴롭고 아프고 힘든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자.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자신의 괴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안내하자. 통섭교육의 대가 최재천 교수는 글쓰기가 모든 안다는 것의 최종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시험지에서만 빛을 발하는 지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는 방법이 글쓰기이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내면을 객관화하여 되돌아봄으로써 어제와 다른 내일을 살아내는 지혜와 결단도 기를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하여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낸 안네 프랑크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보호 관찰 대상인 아이들과 마약 중독에 걸린 아이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통해 희망을 가르친 에린 그루엘을 통해 글쓰기의 치유기능은 이미 검증받았다. 이젠 글쓰기를 통한 변화가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나야할 시간이다. 변화와 성장이 바로 내 아이들에게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하루 한 줄이라도 나의 생각을 진솔하게 정리하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쓰게 하자. 바로 나 자신을 서술하는 나만의 글이기에 굳이 허세도 멋도 부릴 필요도 없다. 실크같이 매끄러운 글쓰기가 아니어도 좋다. 그렇게 내 생각을 적어가다 보면 내가 고집했던 나만의 감옥이 보인다. 내가 살았던 나만의 동굴의 깊이가 보인다. 내 감옥의 깊이에서 탈출하고 내 동굴의 어둠을 이겨낼 내 반성과 다짐의 글은 앞으로 내가 내일을 살아갈 지침이 되어준다. 그렇게 글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이끌어준다. 글쓰기를 강조한 사마천의 절실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요일 오후가 기다려진다. 12시간 후면 다시 고단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일요일 오후를 손가락 헤아려 기다리는 이유는 슈퍼맨을 만날 수 있어서다. 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강한 파워를 발휘하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슈퍼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슈퍼맨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슈퍼맨과 함께 하는 예쁜 아이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모두 예쁘다. 젊음이라는 것 자체가 고가의 화장품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발산하듯 아이의 사랑스러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단어를 열거해 표현해도 부족한듯하다. 슈퍼맨 속 예쁜 아이들 중 삼둥이의 귀여움은 더욱 특별하다. 삼둥이가 뿜어내는 귀여움이 KBS 시청률의 효자로 떠올랐다고 한다. 삼둥이를 모델로 한 2015년 달력의 판매 수익금이 10억 원 이상이라는 기사만으로도 우리 국민들의 ‘삼둥이 앓이’가 피부로 전해진다. 삼둥이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보는 이들의 혼을 쏙 빼놓는 그들의 귀여움일 것이다. 삼둥이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언어량의 폭발적 증가 시기인 어린 그들이 내뿜는 서투른 말 한마디가 세련되게 완성된 언어보다도 더 많이 어른들의 마음을 빼앗아간다. 삼동이의 모습을 보며 장성한 자녀를 가진 가정에서는 어린 내 자녀들을 키웠던 지난시간들을 떠올리며 내 자녀가 주었던 기쁨을 다시금 떠올리고, 미혼의 남녀들에겐 어여쁜 자녀를 키우는 즐거움과 보람을 가상 체험함으로써 결혼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시켜주기도 했다. 그와 함께 아빠들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 증가라는 긍정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내가 삼둥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좋은 것을 양보하는 어린아이의 의젓함이 있고, 내가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도 동생에게 형에게 나누어 줄줄 아는 어린아이의 양보가 있고, 어린 내가 어린 내 동생의 손을 꼬옥 잡고 길을 가는 어린아이의 책임이 있다. “이모 밥 주세요. 배고파요.”라고 예의를 지켜가며 나의 배고픔을 전할 줄 아는 어린아이의 예절도 있다. 그런 너희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은 사랑받을 행동을 하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사랑받을 자격을 가진 그 사람에게서 사랑은 시작된다.’는 너무나 명료한 삶의 진리가 떠오른다. 나이 들면서 지켜내야만 하는 삶의 의무에 갇혀 모른 척 넘겨온 소중한 관계의 예의를 다시 내게 깨우쳐주는 거울이 바로 삼둥이다. 서로 도와주고, 참아주고, 나눠주는 삼둥이의 모습에서 순간순간 나를 잠식해오는 나태함과 이기성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어서 일요일 오후를 기다린다. 내가 먼저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려 노력하지도 않은 채 사랑받는 누군가의 모습만 부러워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나의 형편을 한탄했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Super Baby를 만날 수 있어서 너희들을 기다린다. 사랑받을 자격을 가진 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것처럼 나를 감동시키는 일도, 나를 성장시키는 일도 없기에 난 일요일 오후 그 시간을 기다린다.
이젠 슬픔의 눈물을 거두고 희망의 노래로 너희들이 못다 한 시간을 채워 가리라. 충청북도 영동초등학교 수석교사 김명희 비상상황 발생 시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으며 탑승객 구조를 도와야 하는 세월호의 선장을 비롯한 선원 대부분은 침몰 직전까지 탑승객에게 객실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만을 남기고 자신들은 배 밖으로 탈출해 해경, 경비정에 의해 제일 먼저 구조되었고 선박 안전운행기준을 초과하는 무리한 화물 적재와 청해진 해운의 불법 노후선박 개조 작업 그와 함께 청해진해운의 배후가 되는 유병언 일가의 탈법행위들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커다란 불신을 초래하였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을 슬픔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너희들이 수학여행이라는 설렘으로 승선했던 그 배 세월호가 남긴 얼룩들이다. 4월 아름다운 봄날의 한가운데서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져간 너희들의 죽음 앞에서 막 피기 시작한 아름다운 꽃망울조차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너희들은 차가운 물속에서 작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고 대한민국은 온통 가슴 저리는 막막함과 울분으로 그리고 가슴치는 후회로 꽁꽁 얼어붙은 2014년의 봄과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누구의 아들딸의 죽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아들이고 딸인 너희들의 애달픈 죽음은 이 땅의 어른들에게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통한의 죄책감을 남겼다.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너희들에게 우리 어른들의 부도덕함과 부주의의 결과로 남긴 죄악이었기에,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고 피할 수 있었던 참사이었기에 우리 어른들은 더 긴 긴 날들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단다. 2015년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일주기를 맞는다. 할 수만 있다면 2014년 4월 16일 이전으로 시간을 돌려 헐거워지고 허술해진 이 나라 곳곳의 빈틈을 꼭꼭 메워 미처 피지도 못한 너희들의 꿈을 그리고 웃음을 다 되돌려 놓고 싶다. 하지만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우리가 과거로부터 얻을 것은 미래를 살아갈 삶의 교훈뿐이다. 교훈 없는 기쁨은 순간의 화려하고 달콤한 축제로 끝나지만 가르침 가득한 슬픔은 또 다른 성장을 위한 멈추지 않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 세월호라는 차가운 배 안에서 차마 피지 못하고 사라져간 꽃 같은 너희들이 지금 우리 남겨진 대한민국 어른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우리 어른들이 울음을 그치는 일이며 원망을 그치는 일이며 사회를 향한, 지도자를 향한 불신의 언어를 멈추는 일은 아닐까! 너희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하나하나 헤아려보고 되짚어보며 우리의 옷깃을 여미고 새로운 다짐과 실천을 통해 너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 살아있는 자의 의무임을 기억하는 이 땅의 어른들이어야 하리라. 너희들의 죽음이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지금 우리가 목을 놓아 눈물 흘리는 일보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지탄하는 일보다 우선해야 할 일임을 기억하며 교사인 내게 세월호가 남긴 교훈을 풀어 헤치려 한다. 세월호에 선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이 있었다면 학교라는 배에서 삶의 바다라는 학생들의 항해를 책임지고 있는 나는 교사라는 선장이다. 내 배는 지금 아름다운 순항 중인가? 학교라는 배에 승선한 그들의 영혼을 건강하게 성장시키기 위한 책임에 소홀하지 않은 나인가? 그들의 지력과 지혜를 무럭무럭 알차게 성장시키는 책임에 나의 시간과 땀방울을 기꺼이 내어주는 선장인가? 쉽게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정신과 지혜의 성장이기에 때론 이런저런 교육 현장의 어려움들을 앞세우며 학생들의 성장에 대한 선장의 책임을 내려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니 세월호의 선장을 탓하기조차 두려워진다. 그와 함께 무책임한 선장의 행위에 대해 선장 개인의 직업윤리에 대한 책임만을 비난하고 벌주기에 앞서 이젠 개인의 반사회적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적 책임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스쳤다. 군부대의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 묻지 마 칼부림 사건 등 내가 무심히 넘긴 이웃집 아이의 외로움이, 사회 부적응이 어느 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의 칼을 휘두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칼끝에서 최고의 정성을 들여 키워낸 내 아이가, 사랑하는 내 가족이 상처를 입고 있다. 개인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양산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준석이라는 선장의 부도덕한 소양이 불러온 엄청난 참사를 통해 우리는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뼛속까지 기억해야만 한다. 아픔으로 소리치고 있는 내 이웃의 문제를 그네들만의 문제로만 치부하며 외면하는 대신에 이웃의 문제를 내 가족의 문제처럼 지켜보고 함께 고민하고 염려해주는 것이 사랑하는 내 가족을 지키는 또 다른 지혜라는 것을. 각종 보도를 통해 접하게 되는 이 땅 젊은이들의 가슴 아픈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교사로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절대적 시간 양을 차지하는 학교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무심히 넘긴 어느 학생의 마음의 상처가 지금 오늘 사회에 대한 분노의 결과를 초래하진 않았을까?’ 에 대한 가슴 찔림이 있어서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무심히 던진 상처의 말 한마디가 지금 사회의 어느 곳에서 곪아 터진 상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아닌지 가슴이 섬뜩해진다. 또한 배의 침몰을 직감하고 죽음의 위기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지키고 선내에서 기다리라는 선원들의 안내방송을 그대로 따른 학생들이 오롯이 희생자로 남았음은 더욱 마음을 서늘하게 하였다. 양심을 저버린 선장의 어처구니없는 지시와 안내를 너무나 잘 따라준 대가가 너희들의 귀하디 귀한 목숨 값이 되었음에 남은 자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크기만 했다. 그 안타까움 뒤에 남은 것은 물음이었다. 삶의 연륜과 경험을 앞세워 전하는 어른들의 충고가 가지는 허점은 정녕 없는 것일까? 어른의 경험과 지혜라는 명목으로 너희들의 삶의 틀을 지나치게 결정하고 구속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 어른들이 선택하지 않은 노란 숲 속의 또 다른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어른들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제는 옳다고 굳게 믿었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너희들 마음 깊숙한 곳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너희들의 눈높이에서 너희들을 존중하며 어른으로서 먼저 경험한 삶의 지혜를 안내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생각한다. 그것이 소중한 너희들의 목숨 값으로 미생의 어른이 가슴으로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남긴 더 긴 깨달음은 다음의 시로 대신하며 다시 옷깃을 여민다. 더는 슬픔의 눈물이 아닌 희망의 결의로 너희들이 못다 한 이 세상을 채워가는 삶을 살아야겠노라고. 너희가 남긴 것들 드넓은 세상을 향해 크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힘찬 날갯짓을 준비하던 너희들을 차가운 바닷속에 묻어 버린 어른들은 밥을 먹어도 허기가 지고 마음속 채워지지 않는 커다란 슬픈 구멍 하나 짊어지고 그렇게 너희가 떠난 그 뒤의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차가웠을까? 얼마나 목 놓아 외쳤을까? 얼마나 애타며 기다렸을까? 너희가 떠난 후 어른들은 그토록 당연하던 내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내 옆의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내가 행여 마음으로라도 행한 잘못을 돌아보게 되었단다. 허물 많은 이 땅의 어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고 오늘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옷깃을 여미게 한 너희들은 영혼의 어버이였고 영혼의 스승이었음을
스타벅스의 혁신은 이탈리아의 편안한 카페 문화를 미국으로 가져오자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착한 화장품 가게를 표방하는 더 바디샵의 혁신은 일반 화장품 제조사들의 비인도적인 동물실험을 싫어하는 소비자들이 있다는 데서 착안되었다. 두 기업의 성공 요인은 바로 지금 현재 매장의 모습을 살핀 통찰이었다. 혁신의 출발점인 Insight(통찰)의 영어 사전적 정의는 clear, deep, and sometimes sudden understanding of a complicated problem or situation이다. 복잡한 문제나 상황에 대한 명확한 때론 섬광 같은 이해가 통찰인 것이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무엇만이 혁신이 아님을 Insight의 영어 사전적 정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행복 교육을 모토로 혁신학교가 학부형들의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지금,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충북 도의회의 혁신학교 예산 배정금액 보다 더 먼저 헤아려야 할 중요한 교육 문제들이 있다. ‘갔다’와 ‘갖다’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글을 쓰는 교실 속 많은 아이들이 글에서 얻어야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며 글을 읽을 수 있을까? ‘선생님께서는 친구를 베려 하라고 말씀하시자만 난 친구를 베려 하면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여름 어느 교장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강의 슬라이드의 하나였던 이 문장은 차마 웃어넘기기엔 교사로서 마음 서글픈 문장이었다. 이 글을 쓴 아이는 ‘보살펴 주려함’의 배려와 ‘날이 있는 물건으로 상처를 내다’는 베려의 의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노후를 대비할 여력도 없이 자녀 교육에 모든 걸 다 쏟아부었음에도 교육 투자비용이 무색할 만큼 늘어만 가는 청년 실업문제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는 아닐까?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은 문법교육 때문이 아니라 문법만 가르치고 문법을 활용한 말하기 연습 활동을 소홀히 한 잘못된 영어교육 때문은 아닐까? 정확한 맞춤법을 익히게 하는 공부, 수업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공책 정리 방법의 필요성을 알게 해 주는 일 등 너무 기본적인 학습이어서 누구나 이미 다 잘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미시적 문제의 진단 또한 시급한 혁신과제이다. 이와 함께 사회적 이슈의 근본적 대책으로서의 교육의 책임도 두루두루 살피는 폭넓은 안목이 학교혁신의 핵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혁신학교를 운영함에 있어서 별도의 혁신학교를 선정하기보다는 각 학교별로 학생들의 지적, 정서적 특성에 맞는 혁신 과제를 발굴하고 혁신의 과정 및 성과들을 서로 벤치마킹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혁신학교 운영방법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누군가만 할 수 있는 거창한 계획과 구호가 혁신이 아니며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기 위해서 혁신은 우리 모두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에 그 이야기와 문장의 포로가 되었다. 나는 인도의 햇볕이 내리쬐는 긴 대낮부터 저녁 무렵까지 열심히 읽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듯 끝까지 탐독하고 완전히 만족감에 젖었다. 그리고 책 페이지마다 곳곳에 나의 의견을 적어 넣었다. 처칠이 지은 (나의 청춘기)에 수록된 글이다. 처칠이 포로가 되어 읽은 책은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성망 사이다. 처칠의 고백 속에서 행복한 독서의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니?”라는 질문에 “ 재미있었어요.” 라는 대답을 가장 많이 하는 우리 아이들이 체득해야 할 독서의 과정을 이 짧은 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을 주는 독서의 첫 단계는 내가 읽는 이야기와 문장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포로가 된다는 것은 그 문장으로 내 마음이 저려온다는 것이다. 그 문장에 의해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뜨거워진 마음으로 내 의지의 변화가 그리고 실천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둘째, 시간의 흐름도 잊게 만드는 사로잡힘의 경험이다. 한국인의 독서량이 적은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글을 읽어내는 지혜의 눈이 부족하고 사로잡힘의 경험이 없어서는 아닐까? 그래서 독서지도의 첫 단계는 “책 읽어”라는 지시적 말이나, 방안 가득 책을 채워주는 환경제공이 아닌 아이들이 책 속 보물 문장을 찾아내는 눈을 먼저 길러주는 일이 되어야만 한다. 셋째, 책을 읽으며 스스로 성장의 기쁨을 스스로 느끼는 일이다. 독서를 통해 성장의 경험을 한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읽는 자신에 대해 만족을 느끼며 누가 말하지 않아도 책을 끝까지 탐독한다. 마지막 책 읽기의 가장 절정적 단계는 책 페이지마다 곳곳에 나의 의견을 적어 넣는 비판적 사고 즉 저자의 생각에 대한 나의 이견이나 저자의 생각에 대한 나의 비판 및 대안 제시하기이다. 처칠처럼 우리 아이들도 책의 포로가 되기 위해 현장에서 시급한 교육활동은 어휘력 신장이다. 학력 우수 아동조차도 쉬운 단어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족한 어휘력으로 책을 읽은 들 책의 내용이 얼마나 이해될까 걱정이 든다. 책을 읽으면 어휘력이 향상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고, 어른들께 여쭈어 볼 때 어휘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그저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어휘력을 향상시키지 않는다. 낯선 어휘를 사전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 없이 책을 읽어 똑똑해지지 않는다. 책 속 어휘가 내 삶 속에서 체득화될 때 세계가 내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사가 부모가 책 속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책의 내용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독서 지도가 필요하다. 질문을 받을 때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해결해야 하는 그 순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나에게서 시작된 자발적 궁금증이 진정한 배움의 씨앗이 된다. “책 읽어.”라는 지시보다는 “이렇게 책을 읽어보세요.”라는 책 읽기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는 교육이 시급하다.
혁신학교와 행복교육, 충북 교육의 두 가지 키워드이다. ‘오늘의 배움이 즐거워 내일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학교’가 충북교육이 추구하는 행복 교육이다. 충청북도 혁신 학교의 별칭이 행복 씨앗학교로 선정된 것만 보아도 행복이 충북교육의 기저임을 말해준다. 배움과 행복의 조화에 대해 그리고 행복한 배움이란 표현에 혹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좋은 직장을 위해서 내 안락한 미래를 위해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쓰디쓴 과정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부다. 학창 시절 우수한 성적표의 결과가, 치열한 공부의 결과가 행복이지 배움의 과정 제체를 행복이라 여기며 즐기는 이들은 아주 미미할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배워라. 열심히 공부해라. 그 배움의 끝에 행복한 너희들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우리 어른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요즘 종종 접하게 되는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비도덕적 행위는 좋은 직장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누군가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크림과 행복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달콤함, 거저 얻어지지 않는 것, 그리고 거저 지켜지지 않는 것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게 행복이라면 아이스크림을 맛보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듯이 행복도 거저 얻어지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필자는 우리가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것은 독서라고 생각한다. 책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책 읽는 사람은 책 속 수많은 타인의 삶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려 노력하게 된다. 책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의 현실에 더 감사할 수 있다. 책 읽기로 얻은 행복은 삭막한 현실에서 마르지 않는 나만의 오아시스를 얻은 것과 같다. 그 오아시스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 속에서도 그가 당당하게 고난과 맞서게 해준다. 아이스크림을 더 오래 맛보기 위해 냉동고가 필요하듯 독서를 통해 얻은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책에서 얻은 교훈을 끊임없이 나에게 적용하는 실천의 아이스박스가 필요하다. 책에서 얻은 교훈을 어떻게 나에게 적용할까를 고민하고자 하는 노력과 실천에서 책의 뒤대함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그렇게 책이 나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한 이들은 책을 늘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책을 통한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은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일 뿐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독서교육 없이는 행복 교육의 시작도 완성도 불가능하다. 교과서를 뛰어넘어 나의 행복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주는 사회인의 육성이 교육의 막중한 역할 중 하나이기에 행복 씨앗으로서의 독서교육은 시급하다. 모든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행복교육에 가슴 설레며 기대하는 많은 학부형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 행복 씨앗으로서의 독서교육을 체험하지 못한 학생들이 너무나 많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오늘(6월 16일)까지 국내 감염자수 154명, 사망자수 16명으로 연일 늘어나고 있다. 정부와 보건당국은 메르스 확산 방지에 대한 확신을 하고 있지만 줄어들지 않은 두려움은 다시 공포로까지 다가오고 있다. 어린 초등학생까지 양성, 음성 판정을 거듭하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학교휴업 연장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의료 선진국의 이미지는 물론 자존심마저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세계적 기업의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환자 부실관리가 하나씩 들어나면서 사회적 경제적 손실도 세월호를 능가할 정도다. 삼성서울병원이 이번 메르스에 대한 대처능력은 그 명성을 무색할 정도도 무능했다. 그 결과 메르스에 대한 새로운 진원지가 되었고 온 국민이 메르스 공포에 시달리게되었다. 메르스의 전국 확산으로 모든 국민이 불안해 하고 국가경제는 물론 국민들의소비심리까지 더 위축되는 상황에서 우리 교육에도 위기로 다가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교육현장을 찾고 있다. 이미 일부 국가들은 한국여행과 유학 자제를 권고하고 있고, 한국인 입국자까지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이미 한국인에 대한 신뢰와 우정이 금이 가는것이다. 어떻게 하든 우리는 이 위기를 단시일 안에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메르스확산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연일 골드타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이 골드타임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 합심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메르스에 대한 위기관리 의식을 가져야 한다. 만일하나 확진환자가 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도 없다. 지금과 같이 몇일 학교휴업만으로도 그 후유증은 너무나 크다. 학교휴업으로 인해 학교교육과정에서 수업일과 수업시수를 수정해야 하고 학교행사를 다시 재수정해야 한다. 이들은 학부모들의 생활계획과도 맞물려있어 생각보다 그리 단순하지 않는 일이다. 매일 학생들의 등하교에 체온을 재는 일도 교사의 새로운 업무로 나타나면서 메르스로 인해 교사의 피로도도 다시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한 학부모의 민원 증가는새로운 학교갈등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번 메르스로 인해 우리 교육이 더 이상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도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학생 보건교육이 필요하다. 아울러 외부인의 학교 출입 통제를 포함한 학부모들의 학교 출입자제에 대해 상호이해와 '메르스 의료진' 자녀들에 대한 배려교육도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서산 서령고등학교(교장 김동민)에서는 6월 16일(화) 학부모 공개 수업을 실시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한국사, 음악, 미술 체육 등 전과목에 걸쳐 공개했다. 본격적인 수업참관에 앞서 오전 9시시에는 2층 다목적실에 모여 수업참관 방법에 대한 연수를 받았고, 이후 교장, 교감선생님의 안내로 각 학년의 수업을 참관했다. 학생들은 학교생활 모습과 함께 수업시간에 진지하면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렸고, 학부모님은 흐뭇한 모습으로 이를 지켜봤다. 2학년 조재신 군의 어머님께서는 “서령고 선생님들의 수업역량 및 교육환경 그리고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으며 수업을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고 참관 소감을 밝혔다. 이번 학부모 대상 수업공개와 함께 급식에 대한 공개도 있었다. 이를 통해 교육수요자인 학부모의 학교운영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서령고에서는 앞으로도 학부모 공개 수업을 주기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메르스가 6월을 강타해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모두가 청결에 힘을 써야 할 것 같다. 소독을 해야 하고 깨끗하게 주위를 청결하게 해야 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말과 행동은 삼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 아닌가 싶다. 좋은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 편애를 하지 않는 선생님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에 끌리기 마련이고 마음에 드는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든다고 편애하면 좋은 선생님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워하는 것도 선생님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어떤 학생이면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이런 선생님이 되려면 마음이 넓어야 하겠다. 하늘처럼 마음이 넓어야 하겠다. 하늘의 마음은 너무나 깊다. 하늘은 멀고 멀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늘과 같은 넓은 마음, 하늘과 같은 그윽한 마음이 있어야 학생 모두를 가슴에 품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 편해하지 않게 된다. 편애하는 선생님은 속좁은 선생님이다. 반복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선생님은 일의 우선순위를 아는 선생님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바둑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바둑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낭패를 당한다. 다 이긴 바둑, 순식간에 지고 만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있을 것이다. 이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제일 먼저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긴급한 업무처리가 있다고 하여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업무보다는 수업이 먼저다. 수업을 가장 중요시여기는 선생님이 우선순위를 아는 선생님이라 하겠다. 좋은 선생님은 때를 중요하게 여기는 선생님이다. 그리고 때가 중요함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학생들이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시험이 그렇다. 시험시간표가 발표되고 시험날짜가 발표되었는데 이때는 시험준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그런데 이 시간에 공부가 싫다고 하면서 페이스북에 빠져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이건 학생으로서의 때를 놓치는 꼴이 되고 만다. 때가 참 중요하다. 농부 청년이 봄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때를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농부는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할 때이다. 그런데 이때에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되나? 가을에 수확의 꿈은 사라지고 만다.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때를 놓치면 어떻게 되나?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가 없다. 모자라는 과목을 나이가 들어 보충한다고 하면 얻는 것도 없고 부끄러움만 쌓이게 된다. 말하는 것도 그렇다. 필요한 때 필요한 말을 하는 이가 지혜로운 이다. 상황에 맞는 말을 잘 할 줄 아는 선생님은 지혜로운 선생님이고 좋은 선생님이다. 시도 때도 없이 학생들에게 공부하라 하고 어떻게 하라고 하고 힘들게 하면 그건 학생들에게 약이 아니도 오히려 독이 되고 만다. 필요한 때 필요한 말, 적절한 말만 할 줄 알아야 하겠다. 좋은 선생님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선생님이다.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성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성실하지 않고 많은 것, 좋은 것 풍성하게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 부지런해야 얻는 것이 있다. 좀 더 자자, 좀 더 놀자, 좀 더 즐기자, 좀 더... 이런데 좀 더 사용되어져야 하겠다. 좀 더 공부하자, 좀 더 책 읽자, 좀 더 글을 쓰자, 좀 더 선한 일 하자. 좀 더 돕자. 좀 더 성실하자. 좀 더 베풀자...
학부모님, 최근에 어느 학부모님께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았던 내 딸인데 요새는 말조차 거는 게 쉽지 않다고 고민하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부모노릇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사랑과 열정만으로 자녀를 키우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시겠지요? 따라서 내 자녀를 잘 키우고 싶으시다면 부모님도 자녀와 관계맺는 법을 매우면 좋을 것 같아서 안내드립니다. 인간의 성장은 최초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인도 민족운동 거장 간디는 인도인이 잘 아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그는 인도의 지도자나 위대한 영혼이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은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19세기 후반 인도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난 간디는 13세에 결혼해 성에 눈을 뜨면서 향락에 빠져들었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당시 인도에서는 금기였던 육식과 음주를 하면서 마약에 까지 손을 대는가 하면 돈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의 지난 날을 고백하고 뉘우치는 장문의 편지를 아버지께 쓰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보통의 부모라면 심하게 꾸짖을 상황에서 간디의 아버지는 그를 야단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편지를 찢어버리고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아들을 껴안았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간디는 충격을 받고 그 이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가 없었다면 아마도 세계적인 비폭력주의자 간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세계 최고의 성악가인 카루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성악가를 꿈꾸는 소년이었는데, 그의 목소리에 대해 그의 선생님은 “마치 바람에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 같구나. 아무래도 네게는 성악이 맞지 않은 것 같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단다. 그러니 열심히 노력하면 틀림없이 위대한 성악가가 될 거야. 엄마는 널 믿는다.” 이런 어머니의 칭찬과 격려의 힘을 얻어 그는 결국 전설적인 테너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간디나 카루소 외에도 세상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 뒤에는 반드시 그들을 있게 한 훌륭한 부모가 존재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케네디는 목표를 세우고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한 아버지가 있고 식사시간에 자연스런 토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어머니가 뒤에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인 워렌 버핏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1살 때 1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하여 지금은 금융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흑인 인권운동의 선구자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평등과 자유 평화에 대한 신념을 심어준 어머니가 계셨으며, 현재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는 정직과 도전정신을 강조한 어머니 교육 덕분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사회 자선사업가인 빌 게이츠 역시 항상 존경받는 부자가 되라는 가르침을 준 부모가 뒤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메르스로 혼란스러운 모습이지만 너무 걱정마시고 훌륭한 의사들의 헌신을 믿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서 나오는 ‘정신적 에너지’ 말입니다. 아이들을 안아 준 적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 너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얘기만 하지 말고 아이들 손도 잡아주어야 합니다. 정말 필요한 것들을 부모들은 놓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을 만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아이와 건강한 관계가 아이와 건강한 관계가 이루어지면 부모와 자녀 모두가 행복해지고, 아이들에게 에너지가 생겨서 이것이 학습에 동기부여가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만 공부를 시키지 말고 어머니들도 글로벌시대를 사는 부모로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아이들의 의식을 일깨워 아이들에게 비전과 꿈을 심어주는 부모가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제 부모님들도 아이들에게만 몰두하지 말고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에 맞춰 준비하는 부모, 공부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계화’에 대해 미국 등 서구세계만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곁에 있는 인도네시아나 인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합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만 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되어 아이들이 따라오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자녀의 인생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도록 지도하는 방법을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의견을 보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실행하시면 여러분의 자녀는 훌륭한 리더로 성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항상 훌륭한 지도자 뒤에는 그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노력한 훌륭한 부모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공문생산을 줄이기 위한 자구책으로 매주 수요일을 공문없는 날로 운영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은 교육청은 물론이고 각급학교, 산하기관까지 공문생산을 원칙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공문을 생산하게 되면 그 사유를 기재한 후에 생산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긴 경우는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략 수요일은 서울시교육청에서 공문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교원들은 이런 정책의 추진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수요일 오전에 공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받는다기 보다는 전달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옳다. 즉 공문이 학교에 도착한 것은 화요일오후 늦은 시간이다. 정확이 이야기 하면 5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실제 담당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수요일인 경우가 있다. 왜 이런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수요일이 공문없는 날이니 화요일에 서둘러서 공문을 발송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라면 학교에서는 접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학교의 접수담당자가 퇴근한 후에 공문이 오게되면 전달을 수요일에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각 부서로 공문을 분류하는 교감이 조금더 시간을 끌게 되면 수요일오전이 다 지나간 뒤에나 담당자가 공문을 전달받게 된다. 수요일이라고는 하지만 당연히 수요일에 공문을 전달 받으니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수요일에 공문이 없다고 하더니 공문이 온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결국 교육청 등에서 수요일에 공문을 생산하지는 않았으나, 학교에서는 수요일에도 공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공문없는 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청과 학교에서 다같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교육청에서는 화요일 오후 4시까지는 공문발송을 마치고, 학교에서는 업무종료시간 이전에 공문을 접수해야 한다. 담당자에 전달되는 것이 화요일 업무종료 전이면 수요일에 공문을 전달받지 않게 되어 실질적인 공문없는 날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공문이 없는 수요일이라고 해서 교원들의 일상에 크게 변화된 것은 없다. 어차피 수요일에 받을 공문이 목요일에 집중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교육청에서 중점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문없는 날 운영에 모두가 동참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공문이 없는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여기에 한가지 더 욕심을 낸다면행정구청등 일반행정기관에도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교육청 및 산하기관에서 오는 공문은 없지만 다른 기관에서 오는 공문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지를 잘 설명하고 적극적인 협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청할 필요가 잇다고 생각한다.
11일 오전, 휴업조치가 내려진 경기도 수원의 학 피시방(왼쪽)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학생들이 몰려있다. “학교에 안 가는게 더 문제”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학교, 학부모 모두 고민이 커지고 있다.
최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발표한 2016학년도 초중등 교사 가배정 인원수를 종합한 결과 2015학년도 대비 약 2300명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아직 우리나라의 교원 1인당 학생 수와 학급당 학생 수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매우 당황스러운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17년까지 교원 충원을 통해 학급당 학생 수를 OECD 상위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공약한 바 있는데 도대체 어찌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지난해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초·중·고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각각 18.4명, 18.1명, 15.4명으로 OECD평균 15.3명, 13.5명, 13.8명보다 많다. 학급당 학생 수 역시 초교 25.2명, 중학교 33.4명으로 OECD 평균 21.3명, 23.5명과 격차가 크다. 대통령의 ‘공교육 정상화’ 공약 이행과 교육여건 개선, 교·사대 학생들의 청년실업 및 교단 고령화 현상의 해소 등을 위해서는 오히려 매년 3000명 이상의 초·중등 교원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교육부, 행자부, 기재부 등은 이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으며 저출산 등으로 인한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감원한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교원 증원은 단순히 공무원 정원 동결이나 인건비 같은 행정적, 경제적 관점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교원 증원은 대명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수 기준만 고집해 신규교사 선발을 감원한다면 교육복지 확대에 역행하는 처사다. 교육여건은 더욱 열악해져 질 저하로 연결될 것이다. 따라서 교육부는 향후부터 교원 증원을 학생 수만을 척도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OECD 기준, 교육의 질 향상, 농어촌 등 소외 지역의 공교육 활성화와 도농 교육격차 해소 등 거시적 정책 기조 아래 접근하길 기대한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온 나라가 비상이다. 경기 평택지역에서 시작된 메르스 확산사태가 전국 유·초·중·고 2300여 곳이라는 사상 유래 없는 휴업사태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구체적인 기준 없이 ‘학교휴업은 학교장에 있다’는 책임 전가 등 교육행정의 일관성 부재로 혼란과 갈등만 키웠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도 그랬듯 이런 상황에서 휴교를 학교장 재량과 판단에 맡기는 건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법적 수업일수 문제로 학사운영의 차질이 따르게 되는데 어떻게 학교장 판단으로 휴교를 할 수 있겠는가. 법적 수업일수를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방학을 줄이면서까지 마냥 휴업을 하게 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럴 땐 정부가 기준을 재빨리 만들어주거나, 법적 수업일수를 줄여주겠다는 등 대책을 과감히 내놨어야 한다. 교육당국과 학교가 서로 떠넘기는 사이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증폭됐다. 병원명단 공개로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학생 수백 명이 확인되고 고교 메르스 확진환자까지 나오면서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향후 이런 상황이 또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교육당국은 확실한 대처 기준과 방침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대량 학교휴업만이 학생 건강을 담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교휴업은 메르스에 대한 최적의 처방이라기보다 학생, 학부모들의 불안과 걱정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책에 불과하다. 오히려 학교휴업을 틈타 일부 학생들은 사교육에 더 놓이게 됐고, 부모가 없는 틈을 이용해 PC방이나 노래방을 전전하는 문제로 메르스 위험에 더욱 노출되는 등 실효성 논란도 따랐다. 무분별한 휴업보다 단위학교 차원의 질병예방교육이 더 철저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대량 휴업사태로 인한 적절한 후속조치는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을 강화한다던 정부가 1년 만에 또다시 초기 대응을 잘못해 더 큰 화를 자초했다는 불신을 키운 만큼,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책임 있는 일관된 행정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올해 3월 27일, 국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이 법안은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당초 취지 무색, 논란만 양산 이 법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이라 해서 ‘김영란 법’으로 더 유명하다.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 원 이상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논의될 때만 해도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부정청탁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부패예방시스템’이 사회에 완전히 정착되기를 기대했다. 법안은 금품과 결부된 청탁에 한해 처벌하던 기존 법률과는 다르게 청탁행위 자체를 규제함으로써 부패통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장기간 숙의와 논란 끝에 통과된 법안은 당초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숱한 문제점만 낳고 있다. 첫째, 위헌 논란이다. 원안은 적용 대상을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직자 또는 준공직자로 한정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사립학교 이사장·교원과 학교법인, 그리고 민간언론 등을 포함시켰다. ‘사립학교’와 ‘학교법인’은 일반 공공기관과 공공성의 정도와 성격이 다른 사인(私人)임에도 이들을 적용대상으로 간주한 것은 법적 근거 없이 ‘필요’에 의해 구성 요건을 확대했다고 볼 수 있다. 공직자의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함으로써 오히려 민간영역을 제한할 수 있다. 둘째, 과잉입법 논란이다. 지금 전국의 많은 교육감들이 이 법안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자극적인 ‘촌지 근절대책’을 내놓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고 1억 원 신고포상금을 내걸었고, 1만 원만 받아도 주의・경고・감봉・견책 등을, 10만 원 이상이면 파면・해임・강등・정직 등의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부산, 인천, 경기, 충남 등 많은 지역에서도 이에 준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교육공무원 징계 양정 등에 관한 규칙’은 또 어떤가. 복종의무, 직장 이탈, 친절・공정의무 등 항목별로 세밀한 기준을 두어 이를 위반할 경우 파면과 해임, 강등, 정직, 감봉 등의 절차가 따르게 된다. 이미 교원의 부정 청탁에 대한 규정이 각종 정책과 규칙에 의해 명시돼 있는데, ‘청탁금지법’을 또 마련해 과잉입법 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선의 피해자, 자정노력 물거품 우려 셋째, 대다수의 선량한 교원을 선의의 피해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 이 법안은 부패예방시스템을 구축, 보다 청렴한 공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교육계는 교원과 학생, 학부모가 서로 협력해 건강한 학교를 만듦으로써 국가의 경쟁력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부와 교육당국은 교원을 규제와 개혁으로 대상으로 몰고 있다. 특히 교원과 학교의 권한과 자율성은 대폭 축소하고 대신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 ‘청탁금지법’은 교직 사회 전반의 위축과 복지부동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아울러 묵묵히 교단을 지키는 대다수 선량한 교원들이 이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선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 우리 교원들은 다양한 자정노력을 통해서 신뢰받는 교직사회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자칫 ‘청탁금지법’이 교원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몹시 우려된다.
교육재정 사정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교부금이 많이 늘어난다 해도 2조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내년에도 3조원 이상의 지방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험 수준 도달한 지방채 돌려막기 최근 계속적으로 교육재정이 부족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세수결손이 발생할 경우 지방채를 발행하여 메우는 정책을 계속 썼기 때문이다.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한 지방채 발행은 신용카드 돌려막기와 다를 바 없다. 개인의 경우에도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계속하다보면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듯이 세수결손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없이 임기응변적으로 지방채 발행을 반복하다보면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교육재원이 부족해지자 민간투자사업(BTL)으로 학교신설을 함으로써 지방채카드에 BTL카드까지 돌려막기에 동원하였다. 돌려막기 규모가 금년 말에 이르면 2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상태로 계속 갈 경우 머지않아 늘어나는 재원규모보다 부채 상환 규모가 더 커지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예산당국이 교육재정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계속 했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이미 교육재정 상황이 심각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으나 표면적으로는 교부금이 전년도보다 증가했으므로 교육부도, 시·도교육청도 교육재정 상황을 낙관한 듯하다. 교육재정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시·도교육청은 무상복지 시리즈를 양산하게 되었고, 교육부와 기획재정부와 국회는 누리과정지원사업을 밀어붙였다. 연간 4조원 이상 소요되는 국책사업을 추가재원 확보없이 기존 재원으로 시행했던 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재원 부족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며, 오히려 2015년에야 문제가 된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학생 수가 감소하는 추세였으므로 향후 교육재정 수요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학생 수가 줄어도 학교 수와 학급 수는 늘었고, 교원 수도 많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교육재정 수요가 줄지 않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교육재원을 학급수와 학교수를 기준으로 배분함으로써 소규모 학교 및 학급을 통·폐합할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학교 수와 학급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교육청이 반응했다고 비판하지만, 사실은 교육여건과 교육서비스의 개선을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2000년대에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시기였기 때문에 추가적인 교육재원 확보없이 교육여건과 교육서비스를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었다. 무상 재검토, 재정확충 나서야 교육재정 부족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수결손이 발생했을 때, 지방채 발행을 통해서 메우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세수결손의 원인이 시·도교육청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책임을 시·도교육청에 전가하면 안 된다. 세수결손 시에는 교부금 정산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다음으로, 보편적인 무상 시리즈를 재검토해야 한다. 누리과정 지원은 물론이고, 무상급식 등 무상복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교육이 곧 복지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복지가 교육일 수는 없다.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도교육청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와 국회도 교육재정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누리과정 지원비를 지방재정법상의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며, 교부금 배분기준을 학생 수로 바꿔서 해결될 상황도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보다 적극적으로 추가적인 교육재정 확보책을 강구해야 할 적기다.
지금 대한민국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2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나는 메르스와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메르스 공포 심리와의 전쟁이다. 우선 첫 번째 전쟁에서 우리가 밀리고 있는 느낌이다. 초기 방역의 실패와 비전문가에 의한 전문가의 지휘체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엇박자, 허술한 응급의료 체계, 후진적 병실문화, 낙후된 시민의식 등 우리 사회의 경박함과 몰합리성이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 사태가 심각할수록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현 상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국이 자료를 집계하고 발표를 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우리 정부의 자세가 아쉽다. 그 결과로 국민들은주요 책임자들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느끼고 있다. 한국에 상륙한 메르스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전하는 메르스와는 딴판이었다. 그러나 아직 비관하기에는 이르다. 우리가 메르스에 대해 알게 된 사실도 많기 때문이다. 변이는 없다는 정부 발표를 믿기 힘들 정도다. 메르스는 2차 감염자부터 감염력이 뚝 떨어져 3차 감염이 없다고 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이미 4차 감염에 이르고 있다. 메르스 감염력은 1인당 0.7명에 불과하다고 했으나 1번과 14번 환자는 각각 31명과 37명에게 전염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치사율이 40%라고 했으나 현재 7.36%이고 사망자도 대체로 심각한 질환을 가진 고령자들이었다. 공기감염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에어컨을 통한 에어로졸 형태의 감염 가능성은 제기되고 있다. 메르스가 두려운 이유는 아직 그 정체성을 확실히 모르는 병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중세시대 흑사병, 대항해시대 괴혈병, 산업혁명 시대 콜레라, 20세기 에이즈가 그랬다. 1740년 영국 해군이 아메리카를 정복할 때 배에 타고 있던 1955명 가운데 997명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이때 전투로 인한 사망자는 단 4명. 이 저승사자의 정체는 1928년에 와서야 비타민C 결핍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질병은 극복의 대상은 될지언정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메르스도 마찬가지다. 1992년에 이라는 책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교수는 1995년에 라는 책에서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는 데 ‘사회적 미덕’으로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러 나라와 민족의 예를 들어가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즉, 그 사회의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깊을수록 사회 조직의 형성이 쉽고 활발해지며, 보다 큰 자본의 형성도 원활해져 결국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적·경제적 조직과 협력이 어렵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하는 큰 자본의 형성도 어려우며, 또한 그 규모도 자연히 작아지기 마련이란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시장이 위축되고 그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다. 우리가 채택한 시장경제체제는 자유로운 계약으로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준수해 가며, 사유재산권을 지켜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정직하지 못하고 남을 속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한 사회에서 사회구성원 간에 신뢰가 두터워지기를 바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국가와 시민, 시민과 시민 상호간의 신뢰가 두터운 사회에서는 거짓말로 상대를 기만하는 것을 무엇보다 부끄럽게 생각 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뚫렸다느니 병원이 뚫렸다느니 이야기기 많지만 진정 뚫린 것은 국민의 가슴이 아닌가! 이에 경제활동이 위축된 현상을 체감하게 된다. 우리들의 경제활동이란 사회생활의 중요 부분을 나타내며, 그 사회를 형성하는 다양한 기준·규칙·도덕적 의무, 그리고 이들 이외의 관습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후쿠야마 교수는 설명했다. 따라서 경제생활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떤 국민의 복지 및 다른 국민과의 경쟁력(결국 국제경쟁력)은 그 사회에 널리 보급되어 있는 문화적 특징, 즉 그 사회의 고유한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직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문화, 환언하면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문화가 그 민족이나 국가의 ‘달성 가능한 번영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위기가 더 이상 신뢰의 위기로 확산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최선책을 찾아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 진학했다는 천재 한인 소녀 김모양의 이야기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미국 버지니아주 토머스제퍼슨(TJ)과학기술고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양은 지난해 말 하버드대에 조기 합격한 데 이어 올해는 스탠퍼드대 등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고 했다. 김양은 처음 1∼2년을 스탠퍼드대에서 수학하고 이후 2∼3년을 하버드대에 다닌 뒤 졸업 대학을 학생이 최종적으로 선택한다. 이것은 전례가 없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두 대학은 유학생 신분인 김양을 위해 수업료와 기숙사비를 포함, 거액의 학비를 전액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하버드는 김양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교수 장학금을 특별히 제공하겠다는 보도였다. 그리고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와의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김양이 지난 4월 말 두 대학을 놓고 마지막 고민을 할 때 저커버그에게 이메일로 조언을 구했다는 내용은 전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며칠 지나 이 기사가 거짓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사 내용 중에 김양의 수상 실적, 대학 교수의 인터뷰, 대학 동시 합격 등이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 김양이 직접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까지 해서 전국적으로 퍼졌는데, 그 미담 사례가 모두 허위였다. 김양의 사건은 여러 면에서 충격이 크다. 어린 소녀가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언론사에 사실처럼 말했다는 것이 놀랍다. 사건 후 보도에 의하면, 김양의 부모는 아이의 치료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이로 추리해 보건대 김양은 마음이 많이 아픈 듯하다. 김양의 집안은 소위 명문가이다. 그러다보니 집안과 부모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김양은 정신적으로 명문 대학 입학해야 한다는 심한 압박감을 받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국내 언론사의 보도 과정과 대응이다. 언론 보도는 사실이 생명인데 보도 과정에서 검증이 전혀 없었다. 기사 제보자가 제시한 합격증서와 기타 자료를 근거로 책상에 앉아서 기사를 썼다. 기장 기본적인 사실 관계만 확인했어도 이런 엄청난 오보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해당 기사를 확인 과정 없이 그대로 베껴 쓴 언론사들도 문제다. 우리나라 언론 매체는 보도 자료를 적당히 편집해서 보도하는 관행에 익숙하다. 이런 언론사들이 아무런 도덕적 양심도 없이 타사의 기사를 베끼는 보도를 하고 있다. 이번 사건도 한 매체에서 기사를 내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슈라고 판단한 언론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베끼기 기사를 냈다. 역시 이 과정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거짓을 사실이라고 믿고 냈던 것이다. 언론사의 과오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거짓이 판명난 후 일부 언론사는 오보임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미흡하다. 정론을 펼쳐야 하는 언론사의 사명을 잊은 채 느슨하고 안이한 조치다. 치명적인 실수에 대한 대응 방식이 업무 처리 하듯 했다. 신문 구석에 반성 기사만 냈을 뿐 오보에 대한 책임, 그에 따른 회사 방침, 차후 예방책은 없다. 속칭 아니면 말고 식이다. 일부 언론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김양의 거짓 사건은 우리 사회의 학벌중심주의 문화가 낳은 폐단이라고 진단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벌보다는 능력이 인정받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우리 사회의 학벌 숭상주의가 책임이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물론 언론사의 진단이 틀린 것은 없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학벌을 중시하고 있다. 명문 대학 학벌이 정치, 경제, 사회 분야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배력을 발휘한다. 명문 대학 출신은 직장을 들어갈 때 이익을 보고, 이것으로 승진과 기타 혜택을 누리면서 평생 덕을 본다. 이러한 현상은 광복 후 시작해 산업 사회에서 절정을 이루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학벌 중심 사고는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고, 창의적 인재들의 길을 막아 그들을 좌절의 늪에 빠뜨리는 역할을 했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 막는 독소이다. 김양의 대학 입학 거짓 사건은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사람이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생이라고 속이고 교수에게 결혼식 주례까지 받았다가 들통 난 사례도 있다. 대학 교수까지 지낸 사람도 학위가 가짜로 판명 났다. 그때 사회 지도층 인사 및 인기 연예인들도 학력을 속이고 활동한 것이 속속 드러났다. 이때 학력 위조 사실이 밝혀져 법의 심판은 물론 대중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도 연예인들의 학력 위조는 개인적 문제로 끝났다. 대학도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그냥 지나갔다. 대학들은 인기 연예인이 자기 대학 출신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학적 관계만 확인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을 덮어두고 모교 출신임을 활용해 대학의 이미지를 높이려고 했던 반성은 없었다.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도 언론사들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내 언론사들이 김양 사건을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한 것도 결국은 미국 명문 대학에 합격한 사례 자체가 기사 거리가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즉 언론사들이 이미 학벌 우선주의 문화에 젖어 있다. 국내 언론사들은 실제로 대학 순위 조사를 보도하고 있다. 이 조사 보도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핑계를 댈지 모르지만 순위로 경쟁력이 강화되지 않고 있다. 득보다 실이 많은 대학 순위 조사에 대해서 비판적 여론이 많으니 중지해야 한다. 언론사의 사명은 진실보도다. 발로 뛰지 않는 보도는 세월호 사건 때도 엄청난 오보로 충격을 주었다. 김양의 대학입학 위조 사건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나치게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그것을 소리 없이 부추기고 있는 언론사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확인 과정 없이 무작정 베껴 쓰는 언론사의 시스템도 이 사건을 키웠다. 이번 사태는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남 탓하기 전에 반성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