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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을 때에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고 자기 시간대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이 있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진리라는 생각을 할 때 아침형 인간이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조사한 것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잠자는 시간이 전 세계에서 3번째로 늦다고 한다니 너무 늦게 잠을 자는 국민이라는 말이 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새벽 시간대인 1시 이후에 잠을 자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가 생각을 하였던 것보다는 상당히 늦은 시간대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은 그 시간이 되면 자라고 해도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아침형 인간이라는 사람들은 저녁 늦은 시간대에 활동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언제나 새벽에 일어나서 활동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좋은 것이 일반적인 습관이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의 형편으로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어느 누가 밤 12시안에 잠을 자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거기다가 요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낮 동안에는 자기 회사 일이나 직장 일에 매달리고 있다가 저녁에 자유스런 시간대에 컴퓨터에 매달려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금새 새벽 시간이 되고 마는 탓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저녁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열심히 일을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젊은이들은 그 시간대에 유흥에 빠지거나 오락에 미쳐 있기도 하고, PC에 매달려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일찍 잠을 자야한다. 인간에게 잠이란 결코 필요 없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시간이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사람이라면 잠이라는 휴식이 없이는 내일의 일에 지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흔히 인간이 잠을 자지 않고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시간이 72시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악독한 고문 기술자들이 매질을 하지 않고 가장 악질적으로 사람을 괴롭히고 고문하는 방법으로 잠을 재우지 않는 방법을 써온 것이라 한다. 인간의 한계에 다다르면 인간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쓰고, 손도장을 찍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필요한 잠은 사람에 따라서는 그 필요한 시간이 각기 다르다고 한다. 나폴레옹 같은 사람은 항상 3시간 안팎을 자고도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는데 무리가 없었다니 대단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사람에게 필요한 잠자는 시간에 대해서 7시간이니 8시간이니 하지만, 반드시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또 긴장을 하면 그 보다 훨씬 덜 자고서도 아무런 부담이 없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그 시간이라는 것이 필수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잠이 무척 많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어떤 특별한 일에 임하게 될 때에는 그 잠자는 시간이 줄어도 전혀 부족함을 모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소풍을 가는 날이 되면 어린이들이 어서 학교에 가고 싶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사실 사람이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닥친 어떤 일이 있을 경우에는 잠자는 시간이 조금 부족하여도 잘 참고 견딜 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은 잠을 자는 시간이 꼭 그만큼 필요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버릇 때문에 그 시간을 자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지 참아 내고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잠자는 시간을 줄이면 그 짧은 시간에 좀 더 집중적으로 잠을 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완전한 숙면으로 잠을 잔다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잠자는 시간은 불과 3시간 내외라고 한다. 그렇다면 3~4시간만 자면 되는 것을 왜 7~8시간을 자야 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깊은 숙면을 갖지 못하고 자꾸만 뒤척이다가 잠을 자야할 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으로 길들여진 사람은 오히려 7~8시간을 자라고 하면 허리가 아프고 피곤해서 잠을 잘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잠을 자는 시간의 양만으로 잠을 잤다고 하기보다는 실제로 숙면을 한 시간을 잠자는 시간으로 계산을 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잠을 자는 시간이라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잠자는 시간을 길게 잡는 것보다는 짧게 숙면을 할 수 있게만 한다면,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짧은 시간에 숙면을 하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이 훨씬 더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버릇을 들이려고 한다면 일주일 정도만 잠자는 시간을 좀 더 일찍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연습하면 그 다음부터는 별로 힘들지 않게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내가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 담임 선생님의 말씀 때문이었다.그 무렵에는 학교 화장실이 재래식이었다. 그래서 6학년은 그 학교의 화장실을 퍼서 학교 옆에 딸린 실습지에 심은 채소나 작물에 뿌려 주기도 하고, 퇴비를 만드는데 섞어서 쓰기도 하였었다. 이런 일을 맡은 우리는 학교에 와서 용변을 보지 않기 운동을 벌였다. 그 방법으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으로 정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실천한 방법은 약 보름 동안 아침 일어나기만 하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는 버릇을 들인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용변을 보고 싶지 않아도 무조건 가서 앉아 있기만이라도 하라는 것이 선생님의 가르치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며칠 뒤부터는 이것이 효과를 보기 시작하였다. 특히 뱃속의 묵은 것들을 모두 쏟아 버릴 수만 있다면 우리 몸을 가뿐하고 상큼하게 아침을 출발 할 수 있어서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몇 주가 지나자 그 시간만 되면 화장실로 달려가는 버릇이 길들여져서 늦잠을 자려고 해도, 더 누워있고 싶어도 화장실에를 가야한다는 몸의 신호를 미루고 참아 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아침형 인간으로 습관을 바꿀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간단하고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므로 한 번 시도를 해보면 좋을 것이다.
권투 시합 “얘, 너 쪼그만 게 또 까불어?” “까불다니? 네가 뭔데 이렇게 자꾸 내게 시비니?” “네가 자꾸 까부니까 그렇지.” “까불다니? 내가 너에게 뭘 어떻게 했길레 그러는 거냐?” “너 말야, 어제 오후에 친구들에게 그랬다며? 나쯤은 문제도 없다고?” “걔들이 그러던데, 날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고 그랬다며.....” “짜아식들 그런 소릴 다 까 쳐먹었군.” “그래? 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란 말이군.” “그래, 그랬다 왜? 내가 뭐 네가 무서워서 그런 소리도 못할 것 같으냐?” “그래? 결국 나에게 한 번 붙어 보겠다는 말이군!” “그래 임마! 네까짓 거 때문에 내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못난인 줄 알았다면 큰 잘못이지. 아무튼 붙고 싶으면 붙어 봐. 언제든지.” “좋아, 그럼 오늘 오후에라도 만나자. 난 뭐 네까짓 게 무서운 줄 아니?” “좋다. 그럼 오늘 오후에 하교 뒷산의 솔밭에서 만나. 한판 붙어 보자구.” 항상 말썽꾼인 경양이가 오늘도 무슨 일을 벌일 모양입니다. 덩치가 크고 힘 깨나 써 무서운 게 없는 종찬이의 이야기를 듣고 한판을 붙기로 약속을 한 것입니다. 종찬이야 덩치가 얼마나 큰지 중학생만큼이나 크고 기운도 세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아이들과 별로 다투고 싸우는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기어이 한 판을 붙기로 한 것은 항상 남들에게 싸움을 잘 붙이는 말썽이 경주의 장난이 작용한 것입니다. 경주는 심심해서 견딜 수 없는데다가 요즘 친구들 사이에 점점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종찬이에게 은근히 시기심이 발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경양이를 부추기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얘, 경양아, 요즘에 종찬이가 은근히 주먹 자랑을 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아마 곧 너에게도 붙게 될 것 같더라.” “그게 무슨 소리냐?” “요즘에 종찬이가 한 사람씩 불러서 슬슬 다른 아이들과 함께 패를 만들고 있어 그런데, 네가 안 들어 올 것 같으니까 한 판 붙어서 항복을 받을 계획을 세운 것 같더라구.” “그럼 내게 한 판 붙자는 이야기가 아니냐?” “그래 너도 지고 싶지 않지?” “그럼? 나도 질 수는 없지.” 이렇게 부추겨 놓고서 이번엔 종찬이를 찾아가서 꼬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양이가 남다르게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것이 눈에 거슬리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경주에게 듣고 보니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구? 경양이가 내게 붙어 보겠다구? 제까짓 게 뭔데 날 마음대로 할려고 그러냐구? 그럼 제까지 건 뭔데 날 이렇게 깔아뭉개려고 해. 건방지게 제까짓 건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구 그래. 내가 쪼그만 제까짓 걸 무서워 할 것 같애?” 종찬이의 성질을 건드리게 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찬이의 이런 분한 마음에 한 이야기까지 몽땅 경양이에게 다 털어놓고 없는 이야기까지 더 보태어서 꼬아 붙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속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은 그냥 자기들의 성질들만 참지 못하고 덤벼들게 된 것입니다. 이 싸움엔 경주가 심판을 하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시간에 이 이야기는 아이들의 사이에 쫙 퍼졌습니다. 아이들은 제 각기 모여서 수군거리면서 “얘, 우리 이따가 살짜기 가 보자. 누가 이길 것 같으냐?” “그거야 뭐? 덩치가 있는데 종찬이가 이기겠지.” “야 싸움이 어디 덩치로만 하니? 경양이가 얼마나 깡다군지 넌 모르는 모양이구나. 저의 집 식구들도 아주 내 놨데. 너무 고집이 세다고.” “조용히 해. 너 그런 소리 함부로 떠들다가 경양이 한테 혼나려고 그래?” “뭐? 없는 이야기 했나? 정말인 걸.” “아무튼 이따 한번 가보자.” “그래. 얼른 청소나 마치고.” 이렇게들 떠들고 있을 때 여자아이들도 이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여자 얘들은 싸움이라는 말만 들어도 말리고 싶어서 안달들이었습니다. “너희들 또 싸우려고 그러는구나? 선생님한테 일러 버릴 거야?” 여자아이들이 이렇게 안달이었지만 남자아이들은 오히려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생각을 하고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연 누가 이길까?’ 이것이 관심거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은근히 자기들을 괴롭히는데 손꼽히는 두 사람이 싸운다는 데는 누가 이기든 상관이 없이 한판 실컷 싸워 봤으면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힌 죄로 어디가 좀 터지고 부어 가지고 다니는 꼴을 좀 봤으면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만큼 종찬이나 경양이가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고 귀찮게 해왔던 것입니다. “이르긴 뭘 이르니? 우리가 누구 이야기 한 줄도 모르는 것들이 까불고 있어?” “누구든 싸우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야. 알았으면 말려야지?” “우리가 말릴 수 없는 싸움이야. 너흰 가만히 있어 까불다가 얻어터지지 말고. 가만두지 않을 걸?” “우리들에게 협박을 하는 거냐?” “아무튼 누가 그런 소릴 했다간 경양이 하고, 종찬이에게 맞을 각오해!” 이렇게 학급의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이 다 알다시피 하였습니다. 다만 선생님께만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 모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걱정을 하던 것과는 달리 그래도 누구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공부가 끝나고, 청소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자기 청소를 빨리 마치고 구경을 할 양으로 열심히 청소를 하였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깨끗이 청소를 마친 아이들은 한 사람 두 사람 슬금슬금 교문을 빠져나갔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어린이, 고무줄을 하는 여자아이들을 건드리며 낄낄거리는 어린이들로 운동장이 떠들썩할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이들이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술술술술 교문을 빠져나가고 없었습니다. 학교가 산등성이를 조금 비켜선 자리를 파고들어 앉았기에 교문을 나선 아이들이 가는 길목이 훤히 내다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교문을 나서서 자기들의 동네가 있는 길목으로 나가지 않고 산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선생님들이 눈치를 채시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비켜서 바로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길을 따라 약 100m쯤 가서 있는 길가의 풀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곳은 학교에서 아주 가깝지만 산이 가려서 학교도 보이지 않고, 다른 동네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이고, 뿐만 아니라 이 길을 다니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언젠가 '수풀 속의 식물들'을 공부할 때 여기로 와서 한번 공부를 했기 때문에 아이들만이 잘 알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학급의 전체 아이들 중에서 불과 서너 명을 빼고선 모두 다 모여들었습니다. ‘이 많은 아이들의 속에서 싸움에 지는 것은 이제 영영 다른 아이들에게 무시 당하는 못난이가 되는 것이다.’ 둘은 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어이 상대의 기를 꺾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하였습니다. 특히 경양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쪼꼬만 것이 까불어!”하는 소리를 들어 왔고, 또 그것 때문에 자주 싸움을 해야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오늘 내가 종찬이를 멋지게 눌러 놓아야 다른 아이들도 나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인데.’하는 생각으로 종찬이를 어디부터 공격을 할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다 결코 질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싸움은 시작도 되기 전에 벌써 잔뜩 긴장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결과를 보기 전에는 누가 이긴다는 소리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잘못 짚어서 싸움에 이긴 아이를 진다고 했다간 나중에 자신들을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습니다. 한 학급의 아이들이 모여서 놀 수 있을 만큼의 넓이인 이 묘터에는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싸움이 시작되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싸움을 하지 말라거나, 어서 해보라는 소리도 하지 못하고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모두들 차분하게 아니 숨이 막히게 조용한 분위기였습니다. 다만 종찬이와 경양이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고, 심판을 보기로 되어있는 경주가 두 사람을 살피면서 언제 싸움을 시작하게 할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가 상대의 움직임을 눈도 깜짝이지 못하고 살피고만 있었습니다. 언제라도 덤벼들면 막을 수 있는 자세로 우선 자기를 보호할 생각을 먼저 한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양이로선 덩치가 자기보다 훨씬 더 큰 종찬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고, 종찬이도 경양이의 그 지독한 깡다구를 모르고 있지 않았습니다. 경주가 두 사람을 향하여 “자 이제 준비는 다 되었지? 이제 시작을 하면 마음껏 싸워 봐라. 여기 많은 학급의 친구들이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니까. 알았지?” “야! 너희들도 조금 물러 서 줘”하고선 아이들에게 조금씩 물러나도록 하였습니다. “자! 준비! 시이..” “잠깐!” 아이들은 금방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우렁찬 그 소리는 바로 선생님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꼼짝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듯이 누구 하나 무어라고 말을 하거나 움직이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차분하게 아이들의 앞으로 걸어 나오시며 “언제부터 이렇게 결투를 하게 되었어? 이거 안 되겠구먼, 아주 전교생 앞에서 결투를 하게 해줄까?”하시면서 얼굴에 웃음을 띄우셨습니다. 아이들은 조금씩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어느새 얼굴빛이 화기가 도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가만히 둘러 보시다가 “이 싸움은 누가 시킨 것이지? 경주지? 또 말썽을 부린 게? 또 심심해서 발동을 하였군. 왜 네가 싸우지 남을 싸움을 시켜? 응 아주 나쁜 사람이군!” 선생님은 벌써 다 알고 계시는 듯 경주를 지목하셨습니다. “아니예요. 제들이 싸운다 길레.” “그래? 그냥 싸운다고 그래서 심판을 보기로 했다 이 말이지?” “네.” “네에? 정말 그럴까? 한번 물어 보면 금방 알 일을 가지고 남자답지 못 하게 변명을 하려고 해?” 선생님은 싸움을 하려고 덤볐던 두 사람과 경주를 남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셨습니다. “너희들은 같은 반 친구들이 싸움을 하려고 하면 말리는 게 아니고 구경을 하려고 이렇게 모여들어? 이게 그렇게 재미난 구경거리인가? 그렇담 여기서 짝을 지어 줄 테니까 한번 싸움들을 해 보실까?”하시면서 꾸중을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꾸중을 듣고서 슬금슬금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다시 아이들에게 “자 이제 아주 재미난 구경을 한 번 하실까? 오늘은 아주 선생님이 심판을 보아 줄 테니까 실컷 한 번 싸워 보시지?”하시면서 아이들을 빙 둘러앉게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빙 둘러 앉았습니다. 호기심도 생기고 선생님의 꾸중이 무서워서 그냥 갈 수도 없었습니다. “자 책 보자기들을 있는 대로 모두 풀러 내어라.” 선생님은 아이들의 보자기들을 모아서 종찬이와 경양이의 주먹에 간이 글로브를 만들었습니다. 책보자기들로 둘둘 말아서 풀리지 않게 해주시면서 “너희들 이제부터 30분 동안 싸움을 하는 거야! 그 대신 얼굴을 때리면 안 되고 만약 30분 동안 싸움을 계속하지 못 하면 내게 맞을 거야 알겠나?”하셨습니다. 아이들은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막상 싸움을 해야 할 종찬이와 경양이도 정말 싸워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만 두고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 건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또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왜 안 싸우고 있는 거야. 빨리 하지 못해?” 선생님의 독촉에 두 아이는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그냥 계시지 않고, 매를 들고서 두 사람을 후려갈길 자세를 취하자 겁이 많은 종찬이가 먼저 경양이를 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방을 얻어맞은 경양이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마구 덤볐습니다. 두 아이는 서로 지지 않으려고 계속 손을 내밀어 상대방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맨 주먹이 아닌 상태에서 서로가 얻어맞아도 별로 아프지도 않고, 견딜 만하였습니다. 이젠 두 아이가 서로 열심히 주먹을 갈겨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지 선생님이 정해준 30분이란 정말 엄청난 시간이었습니다. 단 5분도 못 되어서 벌써 아이들은 기운이 빠지는지 주먹을 날리는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을 눈치 챈 선생님이 다시 독촉을 하였습니다. “벌써 기운이 다 했어? 어서 해야지 다시는 싸움을 하지 않도록 두 사람이원 없이 싸우라고 오늘은 허락을 하였으니 안심하고 부지런히 싸워!” 선생님의 독촉이 떨어지자 다시 손을 뻗는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만, 금방 다시 속도가 느려지곤 하였습니다. 두 아이가 붙어서 싸움을 시작한지 딱 15분 만에 두 아이는 모두 기운이 없어서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왜 더 이상 싸울 수 없단 말인가? 이제 그렇게 쓸데없는 싸움일랑 다시는 하지 않겠단 말이야?” 선생님의 물음에 두 아이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는 싸우지 않겠습니다”하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내가 언제 싸우지 말라고 했나? 이런 쓸데없는 싸움일랑 하지 말라고 했지? 사람이 싸움을 하더라도 반드시 싸워야 할 이유가 있을 때는 싸워야지, 그러나 친구들끼리 이게 뭐냐?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이라면 얼마나 이 나라를 위해 보람 있는 일이냐? 그런 보람 있는 싸움에서 용감히 싸우란 말야, 이런 쪼무래기 싸움일랑 웃음으로 넘길 줄 알아야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것이야”하시면서 두 아이의 손을 풀어 주면서 “약속은 잘 지켰군. 상대방의 얼굴은 때리지 않았으니.”하고 두 아이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웃음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종찬이와 경양이는 남아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좀 나누고, 나머지 너희들은 싸우는 친구를 말리기는커녕 싸우라고 시켜 놓고 구경을 하려고 했고, 이제까지 싸움구경을 하였으니 그 값을 톡톡히 해야 한다. 지금부터 여기에서부터 학교까지 산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모두 줍는다. 쓰레기는 한 사람이 한 아름씩 주워 가지고 교문 옆에 모여서 검사를 받는다. 알았지?” 아이들이 흩어지자 선생님은 세 사람을 불러서 “이경주! 넌 이제부터 다른 사람에게 싸움을 시키면 그땐, 아주 6학년 제일 덩치 큰 사람하고 권투시합을 시킬 거야. 알았지? 다신 그런 못 된 짓을 하지 않도록!” “예, 조심하겠습니다.” “조심하는 게 아니라 명심하라고? 알았지?” “넷.” “좋아. 넌 가봐. 쓰레기나 듬뿍 줍구.” 선생님의 꾸중을 듣고서 경주는 뒷통수를 긁적이면서 멀어져 갔습니다. “너희 둘은 교실로 와! 나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좀 해야 하니까.” 뒤에 남은 두 아이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겸연쩍은 웃음을 나눴습니다.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의 쓰레기 줍는 것을 검사를 해주시고 있는 동안에 두 아이도 쓰레기를 한 아름 주워서 가지고 갔습니다. 쓰레기를 모두 모아서 불을 태우고 교실로 들어오신 선생님은 우두머니 앉아 있는 두 아이를 보시면서 “그 동안 뭘 했어?”하고 물으셨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보면서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야? 우리 더러 교실에 있으라고 하셔 놓구서 하긴 뭘 했다고?’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시고선 “이런 못난이들 단 두 사람이 있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고 일부러 시간을 주었는데도 아무 얘기도 없었단 말이야?”하시고선 두 아이를 가까이 오라고 불러 세웠습니다. “너희들 싸운 것이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사람이 되어 가지고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자기가 다칠 줄 뻔히 알면서 싸움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너희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말해 주는 것이야. 정말 싸워야 할 일에 싸워야 해. 아까 말했듯이 육군사관학교라도 나와서 군인이 되어서 나라를 위해 싸운다든지 말야.” “김종찬! 넌 덩치가 크다고 아무나 때리고 싸움을 거는 모양인데? 그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야. 짐승이라면 힘이 센 놈이 약한 것들을 몰아내고 먹이도 빼앗아 먹고, 둥지도 빼앗고 하지만, 사람은 법이라는 게 있지 않니? 힘이란 깡패들의 세계에서나 쓰이는 법이지, 우린 법이라는 가장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거야. 지금 당장은 힘센 사람에게 한 주먹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법에 의해서 반드시 처벌을 할 수 있는 거야. 한 주먹 보다 더 크고 센 힘으로 몇 배의 무서운 벌을 주는 것이지. 또 함부로 싸움을 벌리고 약한 사람을 괴롭힐 거야?” “아닙니다. 인제 남을 안 괴롭히겠습니다.” “좋아! 남자대 남자로 약속 할 수 있지?” “네, 약속하겠습니다.” “그럼 가 봐.”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그래, 잘 가.” 종찬이가 뚜벅뚜벅 교실을 나가자 경양이를 보면서 “경양이 일로 와 봐! 난 경양이 너에게 몇 가지 할 말이 있어. 넌 가끔 어른들에게서 눈이 무섭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네에.” 경양이는 그게 무슨 큰 죄라도 되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으음, 그런 소리를 많이 들어 왔군. 더구나 그게 좋지 않은 소리로들 말이 지’하고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넌 눈빛이 무서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나쁜 인상을 주 기 쉽지. 그러니까 넌 아주 경찰이나 육사 같은 곳으로 가서 군인 생활을 하는 게 좋겠어. 그렇지 않으면 그 인상 때문에 항시 조금은 손해를 보게 되어 있으니까 앞으로 조심을 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앞으로 너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어디 가서라도 그렇게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늘 웃는 얼굴을 해야겠다.” 경양이는 늘 이런 소리를 들어 왔던 것을 생각하면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난 언제나 웃는 얼굴을 할 것, 그리고 경찰이나 군인으로 나가서 활동을 할 것, 그리고 항시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 것 등을 잊지 말고 실천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다짐을 하여 보았습니다.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이 군인이 되라던 아이는 지금 목사님이 되어서 돈독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테니스 대회 참가자 모집 ○…대구교총(회장 신경식)은 교원들의 신뢰와 화합을 위한 제9회 대구교총회장배 교원체육대회(테니스) 참가자를 모집한다. 유·초등(특수)교원 부문은 5월 18일 두류운동장, 중등(특수)교원 부문은 5월 28일 영남대 테니스장, 대학교원 부문은 5월 11일 대구교대 테니스장에서 열린다. 참가 희망자는 대구교총 홈페이지(www.tfta.or.kr)에서 참가신청서를 다운받아 29일 17시 30분까지 제출하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회원 자녀 대상 2011년도 장학생 선발 ○…충남교총(회장 정종순)은 회원의 중·고·대학생 자녀를 대상으로 2011년도 장학생을 선발한다. 선발인원은 각 시·군교총 별로 중 1명, 고 1명, 대 1명 등 3명이며, 천안시의 경우는 각 2명씩 추천 가능하다. 희망자는 신청서, 성적증명서, 관계증명서 등을 시·군교총에 제출하면 되며 마감일은 29일이다. 장학금은 5월 11일 공주교대에서 전달된다. 제출양식 및 자세한 내용은 충남교총 홈페이지(www.cnfta.or.kr) 참조. 중등학교 분회장 협의회 ○…부산교총(회장 김진성)은 26일 6시 옛골토성 연산점에서 중등학교 분회장 협의회 및 산하분회장 협의회를 개최한다. 논의 내용은 교총·학교분회 활성화 방안, 분회 의견 수렴, 교총 복지회원증 보급 등이다. 분회장 회의 열어 ○…서울교총(회장 임점택)은 20일 분회장 4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교대 종합문화관에서 ‘서울교총 분회장 회의’를 개최했다.(사진) 회의는 우수 분회·구교총 시상, 송광용 서울교대 총장의 특강 ‘학교분회 활성화를 위한 분회장의 역할’, 분회활동 강화를 위한 의견 교류 등으로 진행됐다. 사천시교총 총회 개최 ○…경남교총(회장 강동률)은 12일 사천시교총 총회를 열고 박종주 사천동성초 교장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분회장 뿐 아니라 사천교총 회원 누구나 참석해 좋은 반응을 거뒀다. 회원 등반대회 가져 ○…인천교총(회장 윤석진)은 벚꽃철을 맞아 23일 관모산에서 회원 약 300여명이 참석하는 회원 등반대회를 개최했다.
"땡, 땡, 땡." 자정 종소리와 함께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밤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자동 차단한다는 것이 바로 신데렐라법(셧다운제)이다. 이 법은 현재 여성가족부가 발의한 상태이며 활발한 의견수렴을 거쳐 조만간 제정될 전망이다. 이 같은 법이 발의된 것은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게임몰입과 중독증상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에도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시간이 지나면 게임접속시간을 알려주거나, 접속자의 피로도 등을 경고해주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나 큰 실효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리포터는 얼마 전 김제의 마늘밭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인터넷불법도박으로 벌어들인 110억원이란 거액을 마늘밭에 묻었다가 들통난 사건을 보며 인터넷게임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깊게 파고들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리포터도 가끔 무료한 생각이 들 때면 인터넷게임사이트에 접속해 바둑이나 오목을 두곤 한다. 리포터 생각엔 분명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접속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어느새한 두시간이 훌쩍 지난 것을 알고 깜짝 놀라곤 한다. 그만큼 인터넷게임이 재미와 스릴이 강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자제력과 인내력이 꽤나 강한 편인 리포터도 이럴진대 하물며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인터넷게임에 접속했을 경우 그 중독성은 가히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요즘 은둔형 외톨이, 사회 부적응학생, 자살자 등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인터넷게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란 것이 리포터의 추측이다. 학교와 집만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왔다갔다하던 리포터의 학창시절과 요새 청소년들의 생활을 비교해 보면 요즘 아이들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무한한 정보와 각종 오락 및 스릴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격세지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지나치면 해롭듯이 청소년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라도 신데렐라법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 리포터의 생각이다. 혹자는 신데렐라법이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게임산업 종사자들의 영업을 방해한다며 결사 반대를 표방하기도 한다. 또한 신데렐라법은 이미 베트남과 태국 등지에서 실시했으나 청소년들이 해외 게임 서버에 접속해 게임을 즐기거나 남의 아이디를 도용해 게임을 계속하는 등 실효를 거두지 못해 결국 사문화했다고 주장한다. 일견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마다 늘어가는 방대한 온라인게임과 도박 및 음란사이트, 그리고 이러한 사이트를 제재할 마땅한 현실적 방법이 없는상황에서 신데렐라법이야말로 유일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리포터의 생각이다. 우리 기성인들은 청소년들이 좀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보살필 의무가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 다음 세대를 책임질 소중한 인재들이요 국가의 동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건강과 보다 낳은 삶의 여건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 어떤 방법이라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실행해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청소년들의 기본권과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처사가 결코 아니며 그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보살핌이기 때문이다.
봄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가 마음을 적시고 있다. 초점을 잃은 채로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텅 비어버린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봄비를 맞는 생명들은 새로운 힘을 얻을 터인데, 그 비를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은 왜 이렇게 허전한 것일까?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였던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는 봄비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빗방울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우 당당 탕 ------.”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복도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놀라서 바라보니, 3학년 어린이들이다. 1교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다음 시간 공부를 하기 위하여 교실로 향하여 달려가는 소리였다. 힘을 주체하지 못하여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어린이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고 생기를 되찾는다. 내리는 비에 빼앗긴 마음을 추수를 수가 있다. “무엇이 그렇게 신나니?” “공부하는 일이 즐겁잖아요.” 힘없이 물어보는 선생님을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대답하고 있었다. 힘을 잃어버리고 있는 선생님이 더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순간순간이 즐겁고 신나는데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다. 생동감 넘치는 어린이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빗방울에 빼앗긴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어린이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통해서 생동감을 본다. 내일의 희망을 본다. 그들이 있기에 세상 살맛이 난다. 비가 내리는 것 정도는 즐거운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어린이들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비가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연현상일 뿐,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괜히 나 혼자 감정에 젖어서 가라앉아 있었던 것이다. 봄비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생기 넘치고 활기 넘치는 어린이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어린이를 통해 세상을 본다. 희망이 넘치는 모습에 내일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고 오늘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어른들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죽순처럼 쑥쑥 자라는 어린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잘 다듬어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모습이 씩씩하다. 구김살 하나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더 환하고 눈부시다. 어린이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통해 가라앉은 내 기분을 다시 세운다.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어린이들이 있어서 내 삶이 행복하다. 그들이 있어서 내 삶도 윤기로 넘쳐난다.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어린이들과 함께 즐겨본다.
무분별한 교원 정책과 교육 비리로 스승의 날 기념식조차 치르지 못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다양한 행사로 스승의 날 분위기가 한껏 고조될 전망이다. 교총은 이를 위해 제59회를 맞는 올 교육주간을 9~15일로 하고 깨끗하면서도 사제 간 정과 스승 존경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추진한다. 교육주간의 주제도 ‘올바른 교육, 훌륭한 선생님’으로 새롭게 정하고 올해를 ‘교육의 본질과 정체성 회복’의 원년으로 삼기로 했다. 특히 올해는 매년 해오던 교육주간 행사 외에 ‘스승과 제자, 사랑의 편지 보내기’, ‘교육명문가 발굴’ 등 관심을 끄는 이벤트를 추가했다. 은사나 제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스승과 제자, 사랑의 편지 보내기 캠페인’은 교원과 학생이 서로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취지다. 교원, 학생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25일부터 5월 20일까지 계속된다. 좋은 사연이 담긴 편지 100통에는 소정의 기념품도 증정한다. 또 3대 이상의 가족들이 모두 정규 교원으로 교육에 헌신한 ‘교육명가’도 발굴한다. 3대 이상이 교육계에 근무하거나 퇴직한 가족에게는 표창패와 부상품을 시상한다. 해당 가족은 5월 6일까지 교총으로 신청서, 재직(경력)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보내면 된다. 교총 관계자는 “국가 발전과 미래 세대의 교육을 위해 헌신한 교원들이 존경 받고 긍지와 보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라고 밝혔다. 13일 오전 10시 30분부터는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제30회 스승의 날 기념식이 개최된다. 현장 교원, 학생 및 학부모, 정·관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올해 스승의 날은 한국교육신문 창간 50주년 기념식과 함께 개최된다. 이 자리에서는 교육공로자 표창식 및 교육본질 선포식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매년 교육주간 및 스승의 날을 맞아 실시해온 교원인식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될 예정이다. 교총이 실시해온 설문조사는 그동안 교원들의 삶을 들춰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받아왔다. 지난해에는 교원이 좋아하는 학생상·부모상, 교원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떤 것이 있나 등을 발표해 교직 사회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밖에 교육주간의 의미를 렌즈에 담은 디지털 카메라 사진전, 학교생활 및 교직 활동에서 겪은 따뜻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교육수기 공모전 등도 펼쳐진다. 자세한 내용은 교총 홈페이지(www.kfta.or.kr)에서 참고하면 된다. 교총 관계자는 “교육 사랑과 교육 존중의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이번 교육주간에만 국한하지 않고 지속적이고 범국가적인 활동을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수원 칠보초(교장 양원기)의 6학년 학생들은13~15일 2박 3일동안 수학여행을 떠났다. 여행이라는 단어는 아이들의 마음을 설렘으로 가득 채우고, 아이들의 가방을 맛있는 점심과 간식들로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다. 장소는 수학여행지의 인기테마, 바로 ‘경주’였다. 그러나 모든 참가자들이 100% 만족하는 행사는 드문 것처럼, 6학년 학생 모두가 ‘경주’라는 단어를 반가워하진 않았다. 우리들만의 개성, 우리들만의 멋을 추구하고 싶어하는 6학년 아이들은 다른 학교 학생들도 거의 찾는다는 ‘경주’보다는 우리들만의 미지의 여행지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왜 수학여행지는 항상 경주인가요?” 한 반에 2~3명씩은 꼭 하는 질문이다. "경주는 지붕이 없는 박물관이라고도 불릴 만큼 수 없이 많은 문화유적들이 많은 곳이란다." 우리가 왜 경주를 가야만 하는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 주시는 분도 계셨다. “그러게 말이다. 너희들은 좀 더 특별한 곳을 가고 싶었을 텐데 아쉽겠구나. 선생님도 왜 경주를 가는지 잘 모르겠네. 너희들이 2박 3일을 보내면서 우리가 왜 경주를 가는지 알려줄래? 선생님도 정말 궁금하구나.” 아이들의 어린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 주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경주행 수학여행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지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 상태에서 논리적으로만 설명한다면 담임선생님에게조차 2박 3일 동안 마음을 닫을 것 같더라고요. 일단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해주면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먼저 하나가 된다면, 아이들은 충분히 경주의 멋, 1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의 멋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김선주 선생님(6-1)께서는 웃으면서 말씀을 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교관 선생님들의 설명도 열심히 듣고, 준비된 학습지와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들은 돌아오는 차안에서 하나같이 말했다. “정말 배운 것이 많았어요. 이제는 ”닦을 修, 배울 學“ 여행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박 3일 너무 짧아요. 3박 4일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박 3일 동안 아이들은 한층 더 성숙해 있었다. 부모님의 소중함도 느끼고, 친구들과의 인간적인 교감도 충분했다. 경주, 신라의 역사와도 한층 더 가까워지면서 역사의식도 한껏 고취되고 공공장소에서의 질서의식도 길러졌더라. “ ‘수학’여행은 꼭 ‘수확’여행 같아. 그치?” 돌아오는 휴게소에서 한 아이가 지나가면서 한 말. 매 년 수학여행을 다녔던 교사인 나조차도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메시지였다.
초등학생이 공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택하고, 꿈 많은 청춘 시절 학업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명문대 학생이 목숨을 포기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바늘 구멍만한 취업 문제로 인하여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동량들이 극단적인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다면 이는 기성세대와 그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아닐런지? 한 석학은 이같은 시대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솔직한 고백을 한 것을 들었다. 학생 자살이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학업에 대한 중압감이 가중되고 있는데, 우리의 비뚤어진 교육현실이 자살을 불러일으킨 요인이 되고 있다면 교육정책이나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심도 깊게 분석하여 이에 대한 처방전을 내려야 한다.이를 바라본 전문가들은 이같은 자살 사건은 개인과 가정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라며 정부가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초등학생 등 10대 초반의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라는 것이 한 연구기관의 보고이다. 서울의 초등학교 5~6학년생 15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80% 정도가 학원수업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어고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 입시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특목고 입시를 위한 별도의 학원에 나가는 초등학생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우리 사회는 다원화되고 있지만 아직 청소년 사회는 다원화되지 못한 채 성적이라는 하나의 가치만 강요받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가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파급효과는 매우 느린 속도를 내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이같은 문제가 한때 심각했지만 국립대의 특권을 폐지하는 등 대학 개혁을 통해 서서히 해소해 가고 있다. 우리 나라도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여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뢰형성에 시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회가, 일부 욕심 많은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정신적 탄력성을 부여하지 않은 채 영재교육을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영어교육을 비롯한 어릴 때부터의 과도한 경쟁은 아이들을 주눅들게 만들고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어른들의 욕심이 아이들의 상심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떼어내야 할 책임은 이 시대의 어른들이 갖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치유의 열쇠일 것이다.
얼마 전 EBS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일요일 12:30~13:00) 다큐멘터리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스승의 날 프로그램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다고 전해 준다. 주인공 대상자를 물색하고 있는데 필자가 작년에 한국교육대상을 받은 경력이 있어 그 후보의 하나가 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인터뷰 대상은 스승이 아니라 제자라며 제자들 연락처를 알려달란다. 34년 전 초임지 제자 4명을 소개하였다. 전화를 받고 보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만약에 방송이 된다면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 스승이라 불리기가 참으로 멋쩍다. 필자 스스로 그냥 학생을 가르치는 평범한 선생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득 머릿속 필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대학을 갓 졸업하고 학군단 짧은 머리의 햇병아리 교사의 언행은 그야말로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어린이, 학교, 교직, 학부모, 교직선배, 지역사회의 실정이 어떠한지 모른 채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철부지 선머슴아였던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초임지에서의 어린이, 학부모, 선배 선생님, 지역사회가 나를 가르치며 성장시켰고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은 44살로 학부모가 된 그들.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귀공자 타입으로 공부도 잘하고 늘 반장을 맡았던 김○○. 조부모님의 번듯한 가정교육 덕분으로 그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할머니가 보내주신 찐고구마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자연시간 시냇물에서 개인행동 때문에 내게 뺨을 맞았던 최○○. 그 다음날 등교했을 때 퍼렇게 멍든 얼굴을 보니 자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전화 항의 한 말씀 없으신 그 부모님은 필자의 교직생활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었다. 구멍가게를 하는 부모님의 경제관념이 그대로 나타난 빡빡머리의 이○○. 그는 소풍 후 귀가 때면 배낭에 빈 음료수병을 가득 채워 부모님께 갖다드렸다. 빈 병이 돈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그였다. 부모님이 젖소목장을 하던 얌전한 어린이 김○○은 2008년 신부가 되었다. 그 부모님은 학년 초 주전자, 컵 등 학급비품을 채워주셨다. 학교가 어려울 때 늘 힘이 되어 주신 분이다. 3학년부터 5학년까지 담임하면서 30여명과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여름철 토요일 오후 개울에서 천렵국 끓여먹은 일, 공부시간에 산불을 발견하고 공비 토벌하듯 달려가 진화 작업한 일, 장의(葬儀)차 타고 군(郡) 체육대회 입장식에 참가하여 1등 수상한 일, 여자배구 창단하여 맹훈련한 일, 싸리비 재료인 싸리나무 베어온 일, 난로 불쏘시개로 솔방울 모은 일, 방학 때 동네 방문하여 영사기로 영화 상영한 일 등.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30여년 전 어린이, 학부모, 지역사회가 학교와 교사, 교육에 보내는 굳건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오늘날의 한국교육이 이루어졌다고 확신한다. 교육은 믿음에서 출발한다. 교사가 학생을 믿지 못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불신할 때 교육의 설 자리는 없다. 교육청 등 교육행정 기관이 학교와 교장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 담임교사 시절, 집에서 싸 온 점심 도시락을 교실 책상위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먹으며 반찬도 나누어 먹고 담소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거기에는 제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 선생님에 대한 순수한 존경이 남아 있었다. 지금의 학교 현장, 막나가는 학생들을 교사들이 지도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들에게 얻어맞는 경우도 생긴다. 교육을 앞세워 체벌을 하다간 교사 신분이 위태로워진다. 세상이 너무도 변했다. 이렇게 나가다간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 올바른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힘을 합쳐 교육입국으로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교육이 실종되다시피 하였다. 교사들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교육은 정치판화 되어가고 있다. 초임지 젊은 교사의 설익은 교육열정을 인내와 사랑으로 감싸주고 교직에서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준 주위 여러 사람들이 고맙기만 하다. 지금 생각하니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 교단 30년을 축하해주고 부부동반으로 시상식에 달려와 준 그들. 제자가 스승이다. 제자들이 세상살이를 가르쳐 주고 있다.
22일 서산 서령고는 학급별 환경미화심사 결과를 발표하고 최우수학급에 대한 시상식을 가졌다. 이번 학급별 환경심사는 교실청결상태, 시설관리상태, 교실 벽과 커텐 관리상태, 게시판 정리상태, 특별구역청소상태, 창의력 등 총6개 사항에 대한 종합적 심사를 통해 고득점 순으로 선정되었다. 최우수학습으로 선정된 반들은 1년 동안 최우수학급이란 로고가 새겨진 현판을 교실에 부착하게 된다. 아울러 이번 환경미화 심사를 통해 학생들의 청결의식 함양과 학급에 대한 애착 그리고 무엇이든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번에 최우수학급으로 선정된 반들은 다음과 같다. 1학년 - 1위 1반(담임 정재욱 선생님), 2위 2반(담임 이근갑 선생님) 2학년 - 1위 8반(담임 김동수 선생님), 2위 9반(담임 김영화 선생님) 3학년 - 1위 4반(담임 권종진 선생님), 2위 9반(담임 황문신 선생님)
교육과학기술부는 차세대 NEIS 사업을 위해 총 1711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2014년까지 운영 인프라 구축, 업무 프로그램 개발, 대국민 서비스 확대 등 18개 과제를 완료할 계획이며 작년에 나이스 노후 장비 교체와 정보 자원의 효율성 증가시키고 사업 예산 절감을 위해 삼성SDS컨소시엄에 의뢰하여 기존의 나이스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 차세대 NEIS는 오류로3월 적용 초기에 실제적으로 운영이 되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오류로 인해 도내 학교 오류 접수 건수가 100건이 넘는다는 보도가 발표되었고 학교 현장에서는 3월의 학교 교육과정 운영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다. 오류투성이인 허울 좋은 차세대 NEIS의 문제점은 기존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지 않는 부분과 서브의 다운 현상, 응용 프로그램의 오류, 오류를 처리하기 위해 삼성SDS컨소시엄 개발팀에 직접 접수하여야 처리되므로 오류 처리 기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업무포털 시스템에서 나이스 화면으로의 전환에서 시스템 다운현상 등으로 교사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발생시킨 이유는 차세대 NEIS의 전국적인 3월 적용이 문제점이라 하겠다. 예전 나이스의 적용에서도 교육 현장에서는 전면 도입을 찬성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떤 완벽한 시스템이라도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운영하면 오류와 에러로 인해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을 모두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 나이스 또한 작년 개발을 완료하고 준비를 하였지만 올해 3월 바로 전국적 적용은 교육현장을 힘들게만 하는 책임 없는 교육정책이라고 판단된다. 예전의 나이스 적용처럼 시범학교 운영 확대를 통해 1년간 미리 시범적으로 적용하여 오류와 에러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다음 해에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원의 업무 경감과 교육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단독 서버 또는 그룹 서버로 운영되는 3600여대의 서버가 시·도교육청 단위로 통합되어 운영비 절감, 학부모와 학생들은 인터넷 상에서 손쉽게 성적과 출석·결석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녀 교육에 관한 알권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3월부터 지금까지 교원의 업무 부담 가중, 교육행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마침내 차세대 나이스 업무를 맡은 선생님이 관사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유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며 오류가 많아 업무가 진척되지 못하게 한 차세대 NEIS가 많은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었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교과부도 3월 이전에 시범 운영을 마쳐 시스템의 안정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삼성SDS측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과부가 관리와 감독을 강화하여 3월 이전에 시범 운영을 마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했다. 또한 오류가 많다면 운영 시기를 늦추어야 했으며 시범 운영 기간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22일 오후 1시 30분 한국교육신문 창간 50주년 기념 '교육 사진 전시회'가 서울 우면동 교총회관 1층 특설전시실에서 개막됐다. 개막식에는 교육계 인사 400여명이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안양옥 교총 회장은 "오늘 사진전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넘어 우리 교육이 나갈 길을 고민하는 장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961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의 교육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110여 점이 전시된 이번 행사는 5월 20일까지 계속된다.
전국의 지역교육청이 교육지원청으로 바뀐지 벌써 1년여가 지났다. 당초 목적은 교육지원의 기본 취지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선적으로 명칭을 바꾼 것이다. 의욕적으로 추진되는 듯했지만 서울의 경우는 고등학교도 교육지원청의 관할로 들어오면서 도리어 업무가 가중되었다. 시교육청 소속에서 지역교육지원청 관할이 된 것이다. 모든 고등학교가 다 바뀐 것은 아니지만 많은 고등학교들이 지역교육청으로 들어왔다. 원래 지역교육청을 교육지원청으로 바꾼 것은 학교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라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교육지원청으로 명칭만 변했지, 달라진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시일변도의 공문, 보고하라는 공문을 쏟아내는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장학사들의 성향에 따라서는 기본적으로 지원청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종전의 교육청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다. 학교교육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학교교육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도 많다. 촉박한 일정으로 공문보고를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어쩌다가 단 하루라도 제 날짜에 공문을 보내지 못하면 학교에 연락을 해서 빨리 보낼 것을 종용하고 있다. 공문 도착이 늦어지면 장학사들은 반드시 교감에게 연락을 한다. 때로는 교감들을 언짢게 하는 경우까지 있다. 담당부서가 어딘지 명확함에도 교감에게 연락을 하고 있다. 담당부서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교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업무도 교감을 찾아서 마치 교감에게 지시하듯이 하는 것은 교육지원청에서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일정을 정해놓고 공문을 보고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보지 않고 하위 교육행정기관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수업을 팽개치고 공문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 간혹 발생하기도 한다. 국정감사 때가 아님에도 학교에 독촉하는 공문들이 많다. 그것이 과연 옳은 방법인가 따져보고 싶다. 언제까지 보고하도록 되어 있는데, 왜 보고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보고 날짜는 교육지원청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것일뿐, 일선학교와 단 한 마디라도 상의한 적이 있는가.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그날까지 제출인데 왜 제출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물론 이런 현상이 교육지원청에서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교육청의 지시에 따르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학교를 하위 교육행정기관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장학사들이야 그런 업무와 분위기에 익숙해 있을 수 있지만, 일선학교 교사들은 그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다. 도리어 수업을 하는 것에 익숙해 있을 뿐이다. 교육지원청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지원청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뿐이다. 학교교육을 도와주어야 하는 교육지원청,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교육행정체제의 개편이 필요하다.교육지원청이 어차피 학교교육을 지원해야 하는 위치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학교를 어렵게 하고 무조건 교감만 찾는 이런 행태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일선학교 교사들에 비해 교감의 길이 보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을 학교에 지시하면 따른다는 생각을 버려야 진정한 지원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루빨리 지원기능을 갖춘 지원청의 모습을 보고 싶다.
쫓겨난 무덤들 “여보시오. 김 교수, 이거 아주 조그만 성의니 받아 두구려!” 한 사장의 은근하고 사람을 못 견디게 하는 유혹의 손길은 이렇게 뻗쳐 왔습니다. 김 교수는 눈을 지그시 감고서 자존심을 내세워서 자신의 인격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이 재벌과 적당히 손을 잡고서 세상이 돌아가는 데로 흘러가고 말 것인가를 마음 속에서 결정하려 했습니다. 여우 같은 한 사장은 벌써 이런 눈치를 알아차리고서 또다시 손길을 뻗쳐옵니다. “김 교수, 이거 별 뜻이 담긴 것은 아니오. 그 흙단지가 얼마나 값진 것이라고 내가 그걸 욕심내서가 아니고, 다만 나의 이름으로 남기고 싶은 저 익운(새털구름이라는 뜻을 지닌 한 사장의 호이자 자신이 수집한 각종 문화재를 진열하여둔 개인 박물관)에 골고루 갖추어 두고 싶은데, 마침 이곳에서 이런 것이 나왔다니 반가워서 그러는 거라오. 조그만 것이오 받아두구려.” “한 사장님, 저의 사정을 좀 보아주십시오. 사실 저도 전국적인 발표와 이 조그만 항아리의 문화재적 가치만 아니라면, 아예 그냥 드리고 싶습니다. 제 발 40여 년을 쌓아온 학문의 길을 지킬 수 있도록 저를 좀 도와 주십시오.” 김 교수가 사정을 하며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애걸하듯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장의 끈적끈적한 시선은 김 교수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을 깡그리 다 읽고 있다는 듯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차근차근히 말을 합니다. “김 교수, 내 김 교수의 사정을 다 알고 있습니다. 요즘 딸아이의 혼수를 장만할 돈이 필요하다는 거 들어서 알고 있는데, 이거 조금 모자라면 내가 나머지를 책임지리다. 내가 뭐 안 되는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발굴된 저 토기들을 내게 주는 게 아니라, 나의 박물관에 진열하게 해달라는 거 아니오. 자, 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구려. 그리고 내 이거 그냥이라도 드리고 싶었던 것이니 일단 받아두구, 정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돌려주어도 좋겠오. 자 그럼 난 바빠서 이만.” 한 사장은 총총히 다방을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아! 어떻게 한단 말이냐? 이렇게 검은 돈 인줄을 알면서도 내 앞에 닥쳐 있는 일들이 나의 명예와 인격까지도 팔라고 하는구나.’ 김 교수는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길게 소리를 내어서 내뿜었습니다. 김윤근 교수하면 우리나라의 역사학도들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국민들도 다 아는 고고학의 권위자이십니다. 그는 구석기시대 유물의 발굴로 우리나라의 역사가 적어도 3만 년은 더 오래된 것으로 증명이 되었고, 그러므로 해서 우리 역사를 깎아 내려서 자기들보다 훨씬 역사가 짧은 나라, 그러니까 자기들의 문화와 역사를 따르고, 자기들의 지배를 받음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해오던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어서 온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훌륭한 역사학자입니다. 그러나 자기 앞에 닥쳐 있는 일이 많은 돈을 요구하는 일이고, 더구나 딸자식의 결혼식에 필요한 돈이니 안 쓰고 견딜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것쯤은 잘 알고 있는 김 교수입니다. 그러니 더욱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김 교수라면 아마도 한 사장이 내민 돈 봉투를 집어서 한사장의 얼굴에 던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참을 가만히 생각에 잠기어 있던 김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탁자 위에 놓인 돈 봉투를 집어서 속주머니 깊이 쑤셔 넣으면서, 혹시 누가 보고 있지나 않는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살폈습니다. 아무도 자기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는 안도의 한숨을 들이쉬며 다방 문을 나섰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고, 검은색 고급 세단의 뒷자리에 깊숙하게 파묻혀 있던 한 사장은 전화기의 스위치를 올리며, “네에, 한솔그룹 한이요”하자, 저쪽에서 반가운 듯한 밝은 목소리가 울려 왔습니다. “사장님, 저 박입니다. 지금 김 교수가 나가는데 봉투를 소중히 넣으면서 누가 보지 않나 살피기까지 했습니다. 성공하신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으음, 알았네. 어서 자네는 돌아가게. 이 일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네, 사장님. 제가 어디 함부로 입 벌리는 사람입니까?” 한 사장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자기가 아무리 훌륭한 학자라고 하더라도 지금 자식의 결혼을 앞두고 한푼이 없어서 쩔쩔매는 처지에 어쩌지도 못하겠지.’ 섬진강 물이 발원하여 약 16㎞를 달려오다가 구비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산골에 조그만 들판을 이루어 놓은 율어면이 있습니다. 이 면의 남동쪽 끝에 조그만 산골이 분지를 이루어서, 굽이굽이마다 산기슭을 따라 조그만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이동 들판이 있습니다. 이 들판의 동쪽 산기슭에 한 골이 있고, 마을에서 산줄기를 따라 몇 백 m를 내려와서 산기슭에 널따란 벌판을 이루는 곳에 이형국 씨의 개간지가 있습니다. 한창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던 60년대에 이곳에 터를 잡고 국유지이지만 개간 허가를 받아서 일구어 사과와 배를 심어 조그만 과수원의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형국 씨가 사과밭에 거름을 주려고 나무 주위를 약 두자 깊이로 파고 있을 때 괭이에 딸그락거리며 무슨 그릇이 걸렸습니다. 형국 씨는 일을 하다가 잠시 허리를 쉬면서 무엇이 걸렸을까 하고 괭이로 살살 땅을 긁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괭이에 무슨 그릇 같은 것이 걸려 한 조각이 깨어져 나왔습니다. “이게 뭐야 ?” 형국씨는 다시 조심스럽게 그곳을 파보았습니다. 거기에서 생전 처음 보는 조그만 흙 항아리가 나왔습니다. 밑받침이 약 5㎝ 정도나 되게 높음직 하고, 네 군데에 네모난 창 모양의 구멍이 뚫린 것이 아무리 보아도 요즘의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릇의 모양도 요즘의 것보다 약간 허리 부분이 굵고, 주둥이 쪽도 제법 높게 만들어진데다가 위쪽은 넓게 퍼진 모습입니다. 그러나, 형국씨는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남의 무덤을 파헤친 것이 아닐까 ?”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항아리를 사과나무 밑에 놓아둔 채로 나머지의 나무들에게 거름줄 구덩이를 다 팠습니다. 아직 이른 봄볕이 따사롭게 내리 쬐었지만, 하루의 일이 끝날 무렵에는 구름에 가린 하늘에서 비라도 뿌릴 듯 찌푸렸습니다. 형국씨는 그릇을 집으로 가지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남의 무덤에서 나온 것을 집안에 들여다 놓기는 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록 형국씨는 이 일을 잊은 채로 과수원을 가꾸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냥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딸 은화가 우연히 과수원에 나와서 아버지의 일을 돕는다고 하다가 이 항아리를 보았습니다. “아버지, 이거 어디서 나왔어요 ?” “으응, 그거 거기 그 나무 밑에서 나왔는데, 아마도 거기가 누구 무덤이었나 보구나.” “아버지, 그럼 여기 좀더 파 봐요. 이런 것은 우리가 배우는 역사 시간에 많은 참고가 된데요. 우리 선생님은 옛날 사람들이 쓰던 화살촉이랑 그릇 같은 것들을 잘 모아서 가지고 다니시면서 공부시간에 우리에게 보여 주었어요.” 형국 씨는 딸아이의 부탁을 거절 할 수가 없어서 그러자고 나서서 땅을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 조심하셔요. 무슨 소리가 났어요.” 은화가 소리를 치면서 가까이 덤벼들었습니다. “조심해라. 어디 내가 팔 테니까 넌 조금 기다려라.” 형국씨가 조심스레 땅을 파자 또 그릇이 나왔습니다. 조금씩 모양이 다른 그릇이 세 개 더 나왔습니다. 한 개는 길쭉하게 생겼는데 모양은 거의가 비슷하지만 길이가 다르고, 약간 더 넓고 좁은 차이만 있었습니다. 은화는 그것들을 모두 집으로 가져다가 물로 깨끗이 씻고 잘 닦아서 한쪽에 잘 간수를 하였습니다. 형국 씨는 그런 그릇을 방안에 들여놓으면 재수없다고 밖에다 내어놓으라고 하였고, 언니들은 귀신이 붙은 무덤에서 나온 물건이라고 무섭다고 하면서 “얘는? 너 그걸 뭐 하려고 그렇게 잘 모셔두는 것이냐? 어서 가져다 던져버려! 네가 안 가져다 버리면 우리가 가져다 버릴 거야”하고, 싫은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은화는 이것이 비록 무덤에서 나왔을망정 우리가 공부하는데 직접 보고 배울 것이라고 한사코 버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아무리 공부 시간에 쓸 것이라고 하여도 온 식구가 싫다고 하니 어쩔 수없이 밖에 내어다가 헛간 구석에 놓아두었습니다. 이튿날 은화는 그릇들을 잘 챙겨서 보자기에 싸 가지고 학교에 가지고 갔습니다. 식구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가면서 가지고 가는 은화는 선생님이 귀중한 것이라고 칭찬이나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선생님도 이런 걸 어디서 주워 왔니? 하고 꾸중이나 하면 나는 이걸 어떡 하지?’하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은화는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싸 가지고 온 그릇들을 보여드렸습니다. “선생님, 이런 것들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얘! 은화야, 이런 것이 어디서 나왔니? 이건 아주 오랜 옛날의 물건들 같은데? 아마도 이건 신라 초기나 그보다 더 오랜 가야시대쯤의 그릇인 것 같구나.” “잠시만 기다려 보아라, 이거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그릇들을 소중히 잘 간수하고서 학교 뒤에 있는 사택으로 가셨습니다. 잠시 후, 선생님은 대백과 사전을 가지고 오셔서 여러 가지 그릇의 모양이 있는 곳을 찾으시더니 “으음, 바로 이거군. 은화야, 이리 와봐”하고 은화를 불러서 책의 사진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그릇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중에서 두 개의 그릇을 짚으시면서 “자, 보아라, 이 그릇들은 바로 이런 모양이 아니냐? 이 그릇들은 가야시대의 것들이고, 여기 이것들은 삼국시대, 그러니까 통일신라 이전의, 그릇들이라고 되어 있지 않니? 그래서 이것들은 아마 그 시대의 그릇인 것 같구나”하시면서 무척 반가워 하셨습니다. 은화는 선생님께 그 그릇들을 학교에 가져오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이구, 고마워라. 우리 은화가 아니었더라면 이 귀중한 문화재가 그만 박살이 나서 쓰레기가 될 뻔 하였구나?”하시며, 은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은화야, 이건 우리가 그냥 갖고 있을 물건이 아니란다. 이걸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서울에 있는 유명한 학자에게 알려 주어야 그 분들이 이걸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게 되는 것이란다”하고 학급의 아이들에게 그릇을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라면 우리 고장은 모두 옛날 백제의 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본 이 그릇들은 어쩌면 이곳이 백제의 땅이 되기 훨씬 전에 벌써 가야의 땅에 속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이 그릇들을 서울의 대학교수님들께 알려서 좀더 자세한 것을 알아보아야겠지만.” “여러분, 이 그릇들은 아주 오랜 옛날의 무덤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은화가 아니었다면 이것들이 그냥 버려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을 함부로 보고 아무렇게나 생각하기 쉽습니다. 은화처럼 선생님이 이야기한 것들을 잘 기억하고 지키면 이런 귀중한 자료를 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은화는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모두 전하자 아버지도 매우 기뻐하시면서, “우리 은화가 아주 훌륭한 일을 했구나. 그런데 그것도 이 아빠 덕분이라는 것은 잊지 말아라”하고 뽐내는 시늉을 하시더니 “참 그보다 선생님이 더 훌륭하시구나. 너에게 그처럼 칭찬을 해주시고 또 그렇게 아는 것이 많아서 너희들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 주셨구나”하고, 말씀을 하시자 은화는 자기가 칭찬을 받은 것보다 선생님을 칭찬해 주시는 것이 더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몇 달이 흘러가고 여름방학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동안에 그릇에 관해서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는데,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나서 갑작스럽게 선생님께서 은화네 집에를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늙수룩한 손님을 한 분 모시고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손에 조그만 상자를 하나 들고 오셨습니다. “은화야, 아버지 집에 계시냐?” “예, 아버지 저기 과수원에서 일하시고 계시는데요.” “음 그래, 그럼 우리가 그리로 가지.” 늙은 신사 분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편지에 썼던 그 고마운 아이 입니다.은화라고 하는데, 가정은 어려워도 구김살이 없고 도회지 아이들과 달리 집안일도 잘 도와드리고, 예절도 바른 아이입니다. 자! 교수님께서 사오신 선물이다.” 선생님께서는 선물을 맡기면서 은화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아주 똑똑하고 야무지게 생겼군. 너의 덕분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구나. 고맙다. 우리 어린 학생이 우리 역사를 다시 찾는데 크게 공을 세웠어.” 은화는 어깨가 으쓱하도록 기분이 좋아서 앞장을 서면서 “제가 아버지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릴께요”하고, 집 뒤를 돌아서 안내를 하였습니다. 저만큼 산비탈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은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버지, 선생님이 손님을 모시고 오셨어요.” “은화아버지 일하시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에서 교수님이 오셨어요.” “서두르지 마세요. 저희가 그리로 올라 갈 테니까요.” “거기들 계십시오. 제가 내려갈께요. 그릇이 나왔던 곳도 거기 집 가까운 곳이어요.” 은화아버지가 서둘러 내려오시자, 교수님과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서 계셨습니다. “알려드렸던 은화 아버지이십니다.” “은화 아버지 서울에서 오신 김윤근 교수님이십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하신 교수님이시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전 번에 그 그릇을 직접 보시고 또 그릇이 나온 곳을 확인하시고 싶으시다고 이렇게 오셨습니다.” “이 산골까지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김윤근입니다. 귀중한 물건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차분하게 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선 땀을 좀 식히시고 말씀을 드렸으면 하는데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기 그늘이 좀 나을 것입니다. 은화야, 여기 앉으시게 멍석이라도 좀 깔고 시원한 냉수라도 좀 떠오너라”하며, 우물가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올려서 시원하게 씻는 모습을 보고 김교수도 나서시며, “그 물이 참 시원해 보입니다. 나도 물 맛 좀 봅시다”하고, 우물가로 다가 가셨습니다. 두 분이 정답게 물을 퍼주고 부어 주면서 손을 씻고 얼굴에 물기를 하시고서 멍석을 깔아 놓은 그늘에 마주 앉았습니다. 선생님은 교수님이 사오신 양주병을 가져오면서, “은화에게 저기 오이 밭에 가서 오이를 두어 개 따다가 씻어 오너라”하고, 술상을 간단히 차리게 하였습니다. 이제 국민학교 6학년이지만 은화는 집안 살림을 거의 하다시피 하는 아이라서 하나도 망설임이 없이 척척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한동안 서울의 이야기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시던 교수님과 은화아버지는 월남에 간 우리 국군의 이야기로 옮아갔습니다. 은화아버지는 돈을 많이 번다는 꼬임에 은화 오빠가 월남에 가겠다고 한다고 한숨을 쉬시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 교수님은 자기 친척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걱정을 하시더니 은화 오빠가 2대 독자이니 증명을 떼어서 붙이면 안 가게 될 것이라고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두어 시간을 이렇게 정담을 나누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시다가 드디어 여기 오신 목적을 이야기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은화 아버지께서 저 그릇들을 발견하셨다는 곳이 어디인지 좀 알고 싶군요. 지금 저 그릇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인데, 더구나 이 지방에서는 나오기 힘든 것이란 말입니다. 그게 왜 그러느냐 하면 이 모양의 토기는 가야의 옛터인 경상남도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발견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 고장에서 이런 것이 나왔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 되는 것이예요. 어쩌면 이 고장의 역사가 바뀌고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이 고장의 옛날 소속이 바꾸어지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로서는 매우 뜻깊은 발견이 되는 것이랍니다.” “우리 같은 농부가 무엇을 알겠어요. 그냥 땅을 파다가 그릇이 나와서 무덤에서 나온 것이라고 버리려고 했는데, 저 꼬마가 글쎄 선생님의 얘기를 기억하고서 꼭 가지고 가겠다고 하여서 보내드렸을 뿐입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귀중한 자료를 그냥 버리지 않고 신고하여 주셔서 우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제 이곳을 좀 살펴보도록 하였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그럼 가시죠. 제가 안내를 하여 드리겠습니다.” 은화아버지는 교수님과 선생님의 앞장을 서서 과수원으로 안내를 하셨습니다. 세 분은 과수원의 가운데쯤에 있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 곁으로 다가가서 멈추어 섰습니다. “여기입니다. 이 나무밑을 이렇게 파는데 요 부분에서 처음 그릇이 나왔어요. 그 다음에 저 녀석이 파 달라고 해서 여기서 여기까지 팠더니, 요쯤에서 길쭉한 항아리가 나왔고, 저기에서 납작한 그릇이 나왔어요.” 손짓을 하여 가면서 설명을 하자 교수님은 수첩을 꺼내어서 대략의 그림을 그리면서 그릇이 나온 자리들을 표시하고, 간단히 그릇의 모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줄자를 꺼내어서 그릇이 나왔다는 자리에 표시를 하고서 그릇들 사이의 거리를 재어서 적어 넣었습니다. “여기에서 뭐 조그만 것이라도 다른 것은 안 나왔습니까?” “예, 다른 것들은 별로 나온 것이 없었구요. 약간의 부스러기가 나왔지만 우리가 뭘 알아야죠. 그냥 쓸어 묻어버렸지요.” “그럼 여기에 그냥 묻혀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겠지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냥 묻어버리고서 그 뒤로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어디 거기를 한번 파 보도록 합시다. 제가 파겠습니다. 삽과 호미를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은화아버지는 곧장 집으로 내려가서 삽과 괭이, 호미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저를 주십시오. 제가 파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팔 터이니 가르쳐만 주십시오.” “아닙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참고가 되는 것이 있을는지 모르니까 제가 차근차근 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묻었으니 제가 파야 잘 알고 팔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제가 부탁을 드리는 만큼만 파 주십시오. 그것들이 묻힌 만큼만 파시고서 제게 주십시오. 우린 이런 일이 직업이니 파는 것쯤은 문제가 없습니다.” 은화아버지가 윗 부분의 흙을 파내고 속의 흙을 파기 시작하자, 교수님은 바짝 붙어 앉아서 나오는 흙의 모습을 세심히 살피고 계셨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기서부터는 제가 파도록 하겠습니다”하고, 손을 내어 저으면서 호미를 들고서 구덩이로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은 그때부터 꼬박 사흘 동안이나 구덩이에서 호미로 흙을 긁어내면서 조심조심 파내려 갔습니다. 그 동안에 조그만 그릇 조각과 다 부스러진 쇳조각이 몇 개가 나왔을 뿐이었습니다. 사흘 동안의 작업의 결과는 아무 보잘것없는 것들이 약간 나왔을 뿐이었지만 교수님은 “이 다음에 겨울방학을 하면 학생들과 함께 와서 며칠 간 발굴작업을 해보겠습니다”하는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가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난 다음에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이 고장 은화네 집에서 발견된 토기의 사진과 함께 자세한 이야기가 커다랗게 실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가야의 유물이 뜻밖의 고장에서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이동리에 있는 이형국(48세 농업) 씨의 과수원에서 가야시대의 것이 분명한 토기 3점이 지난 3월 하순에 과수에 거름을 주기 위한 구덩이를 파다가 발견되었는데, 고고학의 권위자인 김윤근(서울 가락대 교수) 박사에게 감정을 의뢰해와서 조사를 하여본 결과 밝혀진 것이다. 김 교수에 의하면 이 그릇들은 서남방을 향하는 전형적인 가야시대의 무덤 형태를 지닌 고총에서 발굴되었는데, 이 그릇들이 발굴되므로 해서 역사적으로 백제의 영토라고 생각해왔던 이 고장이 가야의 땅이었으리라는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이 그릇을 발견하고 그냥 버리려고 했던 것을 어린 국민학생인 딸 은화(12세:국교 6년생) 양이 한사코 보관을 주장하고, 학교에 가져와 학습자료로 제출한 것을 담임 선을수(38) 교사가 김 교수에게 감정을 의뢰하였고, 김 교수는 지난 23일부터 3일간에 걸친 현지 답사와 발굴을 해본 결과를 밝힘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신문의 기사를 들고 은화네 집으로 달려온 담임선생님은 은화를 불러 기사를 읽어주며 “우리 은화가 착한 일을 해서 신문에까지 났구나, 축하한다. 은화야”하며 은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한편으로 이 기사가 신문에 나가자 여러 곳에서 김 교수에게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고고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은 자세한 기록을 알고자 하는 사람, 직접 그 그릇들을 볼 수 없느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 유독 관심을 가진 사람이 바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한솔그룹의 회장이고, 익운박물관의 설립자인 한창달 씨였습니다. 그는 곧장 비서실장을 불러서 “이 실장, 이 기사 읽어보았오. 지금 이 기사를 읽어보니 그곳에 가야의 유물이 더 있을 것도 같은데, 한 번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김 교수를 만나서 그 유물을 우리 박물관에 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보시오. 돈은 얼마든지 낸다고 하시오“하고, 명령을 했습니다. “네, 염려 마십시오. 우리 박물관의 고문이신 강교수님과 함께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실장은 곧장 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김교수와 만날 수 있게 주선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실장과 함께 자리를 갖자는 것입니다. “이 실장, 나 강 교수요. 지금 김 교수와 전화 연락을 했는데, 오늘 저녁을 함께 하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녁 7시 고려호텔 커피숍으로 나오십시오”하고 금방 연락이 왔습니다. “이 실장 오늘 저녁엔 잘 좀 이야기를 해서 꼭 일을 만들어 보시오”하는 회장의 말씀을 듣고 이 실장은 무거운 책임을 느꼈습니다. “김 교수님 우리 고문님을 통해서 들으셨겠지만, 저는 한솔그룹의 한 회장 밑에서 일하는 비서실장 이충수입니다. 우리 회장님께서 김 박사님의 기사를 읽으시고 많은 관심을 기울이시면서 한 번 뵙고 인사를 드리라고 하여서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네에, 강 교수를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 회장님께서 우리 역사학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또 익운박물관으로 해서 잊혀져 가는 귀중한 문화재를 잘 보관하고 수집을 해주신다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실장은 이렇게 우리를 잘 이해해 주는 것을 보니까 오늘 일은 쉽게 잘 되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김 교수님 사실은 바로 그렇게 우리 한 회장을 잘 이해하여 주시기 때문에 이렇게 뵙자고 한것입니다. 한 회장님께서 그 기사에 나온 그릇들을 직접 보고 싶어 하시면서, 김교수님께서 힘을 써 주신다면 그걸 익운관에 진열할 수 있도록 하여 달라는 부탁이십니다"하고, 쉽게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습니다. “익운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이미 중앙박물관에 신고가 되어 있는 물건이 되어서 도저히 그렇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딱 잘라서 한 마디로 거절을 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따로 부탁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이 실장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닐 뿐아니라, 이미 국가에 등록이 되어 있는 물건이 아니라도 이런 골동품은 그냥 거래를 할 수가 없는 물건이 아닙니까?” “저희가 이렇게 많은 물건을 수집하는 동안에 그런 기본도 모르고 어떻게 수집을 하였겠습니까?” 이 실장과 김교수는 끈질기게 줄다리기를 하였습니다. 곁에서 강 교수가 “김 선배님, 우리가 어디 이런 유물을 한두 번 다루어 보았습니까? 그거 발표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선배님이 잘 처리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하고, 거들고 나섰습니다. 김 교수는 벌컥 화를 내며 “강 교수, 정말 못 쓰겠구만. 내가 이 분야를 40여 년이나 연구해 왔지만 자네 같은 친구는 오늘 처음일쎄. 그래 내가 나의 양심을 팔아야 옳다는 말인가?” “김 선배님, 너무 하십니다. 제가 어디 양심을 팔라고 하였습니까? 제가 고문으로 있고, 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유물을 수집하여 보관하는 곳이니 이왕이면 이곳에 보관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입니까?” “그만두게 나는 이런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 소화가 안 되어서 반드시 탈이 나고 만다네. 그만 가보겠네.” 한 마디를 남기고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이 실장과 강 교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서 멍하니 창 밖만 쳐다봅니다. 이튿날 이 보고를 받은 한 회장은 몹시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이 실장, 어떻게든지 이 일을 만들어 보시오” 한마디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 실장은 한 회장이 이렇게 화를 내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 실장은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김 교수와 가까운 사람을 찾아서 김 교수에게 어떤 사람을 시키면 움직일 수 있는지, 아니면 김 교수에게 어떤 결정적인 어려움이나 잘못 같은 것이라도 찾을 수는 없는지를 샅샅이 조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 이 실장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 교수가 앞으로 20여일 후에 딸을 시집 보내게 되었는데 결혼 자금이 없어서 집안에서 여간 걱정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장은 곧장 이런 사실을 이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결혼비용이 될 만큼의 돈을 집어주고 일을 마무리지을 속셈 이었습나다. 한 회장의 돈을 받은 김 교수는 그걸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지를 몹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과연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탑을 이렇게 허물어뜨려야 할 것인가? 그러나 안에 들어서면 돈 걱정 때문에 한숨 소리만 들리니 과연 나의 자존심만을 끝까지 지키는 게 옳을까?’ 이런 생각에 김 교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룻밤을 꼬박 세운 김 교수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곧장 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강 교수, 지난번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아주 우습더구만 아예 나를 무시하고 돈으로 나를 사려고 덤비더구만. 나는 불쾌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몇 푼을 맡아 있는데 당신이 소개한 사람들이니 좀 전해 주시오”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돈을 돌려주고 난 김 교수는 허탈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 준 것 같아서 속이 후련하였습니다. 돈을 되돌려 받은 한 회장은 자신이 하는 일이 이렇게 까다롭고, 거절을 당하였다는데 몹시 마음이 편치 못하였습니다. 한 회장은 며칠을 끙긍대며, 속을 끓이다가 드디어 한 가지 새로운 방법을 쓸 것을 계획하였습니다. 한 회장은 곧장 이 실장을 토기가 발견된 곳으로 내려보내서, 그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조사하게 하고, 그 땅을 사도록 하였습니다. 이 실장이 현지에 내려가서 조사를 하여 본 결과 그 땅은 개인의 땅이 아니고, 국유지여서 개인이 개간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땅을 불하받으면 그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장, 며칠이 걸리더라도 그 땅을 불하 받을수 있도록 조치를 해두고 올라오라고,알겠나?” 한 회장의 명령은 군대에서 상관의 그것보다도 훨씬 무서운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이 실장은 자신의 목을 걸고 이 일을 이루어야만 하였습니다. 군청에서는 “그깐 땅을 대그룹의 회장님이 무엇을 하려고 사려고 하느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실장은 담당 계원과 과장을 불러 저녁을 함께 나누며 “우리 회장님이 이 고장에 관심을 가지고 이곳에 투자를 하실 의향을 가지신 것 같은데, 잘 좀 도와주십시오”하고 은근히 한 회장의 막대한 재산을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야 뭐, 그깐 쓸데없는 땅을 누가 가지고 있던지, 그것보다는 이 고장에 큰 공장이나 하나 지어서 고장 사람들에게 일터라도 주었으면 감사 하겠습니다”하고 도리어 어서 사도록 하라는 듯이 말을 하였습니다. 이 실장은 식사가 끝난 다음에 그들에게 한달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을 용돈이나 하라고 내밀었습니다. 이 돈의 효력은 금방 나타나서 이튿날 국유지 불하 신청서는 아무런 말썽이 없이 쉽게 접수가 되었고, 빠른 시간 안에 연락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었습니다. 불하 신청서를 접수 시킨 뒤 약 2주일 뒤에 이 실장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이 실장이십니까 ? 여기 군청인데요, 실장님이 신청하신 불하 신청이 받아들여져 허가가 날 것 같습니다.” 이 과장은 곧장 한 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드렸습니다. 한 회장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이 실장 수고 많았어.” 한 달쯤이 지나서 이 땅의 불하가 결정되었다는 통지서가 한 회장에게 전달이 되었고, 이 땅에서 과수원을 가꾼 이형국 씨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이형국 씨 귀하. 귀하가 점유하여 개간을 한 땅은 국유지로서 그 동안 귀하가 개간 관리하고 있었으나, 이번에 정식으로 불하 신청을 한 한창달 씨에게 정식절차를 밟아 불하를 결정하였으니,1985년 12월 31일까지 현재의 땅을 인도 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서류가 전달이 되었습니다. 이형국씨는 서류를 들고 면사무소로 군청으로 다니면서 호소를 하였으나, 누구 한 사람도 어떻게 도와 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형국 씨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자 도청으로 찾아가서 사정을 호소하였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조처입니다.곧 조사를 하여 알려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약 일주일이면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약속을 받고서 집으로 돌아와서 일주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약속했던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시 도청을 찾아간 이형국 씨는 그만 기가 막혀서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청에 연락을 해봤더니, 그 땅은 허가도 없이 당신이 마음대로 개간을 하여서 몇 년 씩이나 그냥 농사를 지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당신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어요. 반드시 신고를 하고서 세금을 내었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데”하며 자기로서는 어떻게 도와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온 집안이 쑥밭이 되어버린 것을 보고 있던 은화가 마지막으로 해보겠노라고, 서울에 있는 김 교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김 교수님. 우리집을 좀 도와주십시오. 이제 겨우 이 땅에 과일 나무를 심어서 열매를 따게 되었는데, 이렇게 억울하게 땅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혹시 한창달 씨라는 분을 아시면 우리 식구가 이곳에서 살수 있도록 좀 부탁 해주세요." 김 교수는 편지를 받자 무서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창달, 이런 못된 사람이 결국은 그곳을 사서 나의 연구를 방해하려고 하는구나. 어디 두고 보자.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너희에게 기어이 본때를 보여 주겠다.” 김 교수는 이를 부드득 갈며, 다짐을 하였습니다. 김 교수는 신문사에 전화로 이런 사실을 알리고, 그 곳이 역사적 유물이 있는 곳이므로 유적지로 지정을 하여 개발을 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신청을 하였습니다. 김 교수의 이런 신청은 국가에서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권위가 있는 학자의 주장이었으므로, 곧바로 허가가 났습니다. 김 교수는 곧장 한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회장님, 대단히 죄송합니다. 토기가 발굴된 땅을 불하받아서 발굴하시려고 하셨다는데, 그만 그곳이 유적지로 지정을 받아서 함부로 손 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동안 그 땅을 불하받기 위해서 군청이며, 도청에까지 수많은 돈을 뿌리신 모양인데 만약 더 이상 그 땅에 대해서 어떤 짓이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당신이 한 일들을 모두 세상에 알리고 말겠소. 이제 더 이상 그 사람들을 괴롭히지 마시오”하고 자신의 말만을 마친 채 전화를 뚝 끊어 버렸습니다. 김 교수가 그 동안에 한솔그룹의 한 회장이 골동품을 수집하기 위해서 벌인 각종의 부정한 짓들과 이번에 은화네 땅을 사기 위해서 군청, 도청에다가 뿌린 부정한 돈과 도지사에게까지 골동품을 선사하는 야비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일일이 조사를 하여 다 알고 있다는 것은 강 교수를 통해서 훤히 알고 있는 한 회장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김 교수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쯤을 모를 한 회장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가 있어서 그가 유적지로 지적을 하면 국가에서 하는 건설공사도 중단을 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후에 은화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은화 양에게. 이제 안심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내가 그곳을 유적이 있는 곳이니까 함부로 땅을 파거나 사고 팔아서는 안 되는 곳으로 지정을 하였으니, 땅을 산 사람들이 이제 그 땅이 필요가 없어졌단다. 부모님께도 안부 전하여라." 은화는 편지를 읽으며 환한 미소를 띄웁니다. 온 가족은 은화의 얼굴을 보며 궁금해 하지만 은화는 그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며, “아버지, 우리 이제 괜찮대요. 김교수님이 이 땅을 지켜 주셨어요”하고는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공립정신지체특수학교인 미추홀학교(교장 박인호)는20일 제31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전교생 227명을 대상으로 제2회 미추홀 건강걷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건강걷기대회는 학교에서 인천대공원까지 걷기, 인천대공원 내에서 걷기 등 학생들의 연령과 체력에 따라 목표거리를 다양화하는 등 학생들이 완주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건강걷기대회는 걷는 활동이 부족한 장애학생들에게 건강한 운동습관을 갖게 하고 학생들 자신이 목표로 한 지점까지 도달하게 하여 성취감을 갖도록 하자는 목적으로 실시되어 학부모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박 교장은 "장애학생들이 경험하지 못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인내심을 키우고,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을 갖게 하며, 완주한 모든 학생들에게는 완주기념메달을 수여하고, 이번 건강걷기대회를 계기로 다른 교육활동에도 성취동기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추진하게 되었다"라고 건강걷기대회의 취지를 밝혔다. 미추홀학교는 학생들이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체력을 단련하고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자 '건강한 삶을 위한 체력증진 프로그램'을 학교특색사업으로 선정, 실천하고 있다.
인천남부교육지원청(교육장 이재훈)에서 지원하는 2011학년도 어린이 환경교실 초록수비대 2기 발대식이21일 인천송림초 강당에서 열렸다. 관내 송림초를 포함하여 4개교 278명의 학생과 동부교육지원청 관내 도림초를 포함한 3개교 153명의 학생 등 총 431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발대식에서는장신호 서울교대 교수의 개식선언과 박순근 현대제철상무의 환영사와 함께 기업기부 프로그램의 의미를 알렸고, 남부교육지원청 정영수 창의인성교육지원과장은 축사를 통해 올바른 환경적 소양과 녹색생활 실천에 앞장서는 환경지킴이가 될 수 있는 학생들이 되도록 당부했다. 초록수비대는 인천, 당진, 포항 등에 위치한 현대제철에서 기업이 위치한 지역의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기업기부사업이며, 서울교대 창의융합교육연구센터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번 발대식에는 참가하는 지역의 학생들을 위해 학교별로 차량을 지원하였고,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는 티셔츠와 함께 연간 운영되는 모든 프로그램과 재료비, 강사비 등 전액을 현대제철에서 지원하게 된다.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생활에서 에너지 절약을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태도를 함양하는데 크데 도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천남부교육지원청(교육장 이재훈) Wee센터는 연평초 학생 81명을 대상으로21일과 22일 양일에 걸쳐 개개인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자신의 꿈을 되짚어볼 수 있는 집단상담프로그램 '희망무지개 프로젝트' 행사를 실시한다.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임시대피소인 인스파월드와 임시 학교인 운남초등학교에서 개인상담 및 집단상담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던 인천남부 Wee센터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연평초등학교 학생들의 정서적 건강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 나아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확인하고 미래에 대한 비젼을 세워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인천남부 Wee 센터장 김수남 교수학습지원과장은 "이번 상담프로그램이 연평초등학교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과 행복한 학교생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며 더불어 집단활동을 통해 긍정적 자아인식을 갖고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인천 남부Wee센터는 앞으로도 도서벽지 등 소외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상담지원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진행형이지만 그 동안 전국 여행지를 참 많이 떠돌았다. 그러면서 느낀 게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면 여행지도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3일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다녀온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산막이 옛길(http://sanmaki.goesan.go.kr)이 그런 곳이다. 흥덕구청 광장에서 일행들을 만난 후 1시간 30여분 거리의 산막이 옛길로 향했다. 바람은 차지만 날씨가 따뜻해 차창너머로 보이는 농촌의 일손이 바쁘다. 이른 시간이지만 할아버지 한 분이 밭에서 소로 쟁기질하는 모습도 보인다. 도착하니 입구의 비닐하우스에서 미선나무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의 특산식물 미선나무는 군락을 이룬 자생지 5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데 그중 3곳이 괴산군에 위치한다. 미선나무는 열매의 모습이 둥그스름한 부채를 닮고, 개나리를 닮은 흰색의 꽃이 은은하고 매혹적이어서 관상용이나 울타리용으로 인기가 높다. 꽃구경을 하고나니 발걸음이 가볍다. 옛길이 괴산호를 끼고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산속의 마지막 마을)까지 이어지는데 숲속의 자연환경이 한국의 자연미를 그대로 보여주고, 전망대와 여러 가지 볼거리가 옛 정취와 향수를 느끼게 해줘 날씨 따뜻한 날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먹을거리 챙겨 하루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다. 산막이 옛길 안내도를 살펴보고 아래로 내려가면 선착장과의 갈림길에 새로 지은 화장실이 있다. '여기좀 봐유! 산막이 선착장까지 화장실이 없대유~ 이곳에서 버리고 가유~' 충청도 말은 '유~'가 길어 느리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겸손이 함께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재미있는 문구 때문인지 사람들이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처음 만나는 곳이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와 큰 바위덩어리들이 놓여있는 고인돌 쉼터다. 연리지는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진한 것을 비유하는 사랑나무다. 연리지를 한 바퀴 돌아보며 사랑과 소망을 기원하는 사람도 있고, 하트 모양의 나무판에 사랑을 속삭인 글들도 걸려있다. 이곳의 연리지를 보며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고사목이 된 청천면 송면리의 소나무 연리지를 생각하니 은근이 부아가 치밀었다. 소나무동산에 오르면 시원스레 펼쳐진 괴산호의 풍광이 눈앞에 나타나 가슴이 확 트인다. 이곳에 그네와 그네벤치, 예쁜 우체통이 있어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낭만을 누리기에 좋다.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은 구름사다리를 닮은 소나무 출렁다리에 올라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번에 산막이 옛길을 찾은 주목적이 가을이면 전국 등반대회가 열리는 등잔봉에서 천장봉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산책하고 한반도 전망대에서 괴산호를 내려다보는 것이라 노루샘과 연화담 못미처에서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등산로 초입이 하늘과 어우러진 모습이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 풍경과 닮았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칠성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등잔봉(해발 450m)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처음부터 오르막이 이어져 힘이 든다. 숨을 헐떡거리다 산허리에서 만난 이정표 '힘들고 위험한 길, 편안하고 완만한 길'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인생살이가 그렇듯 각자의 길에서 행복을 찾아내면 된다. 힘들고 위험한 길을 걸으며 또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은 내가 택한 인생살이다. 등잔봉 정상의 조망을 나뭇가지들이 가린다. 잡목 몇 개만 제거해도 호수의 멋진 풍광이 제대로 보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산을 오르며 가지 제거 작업을 한 잡목을 이용해 산책로를 개척 중인 사람들을 만났는데 등잔봉도 잡목을 이용해 전망대를 만들고 있다. 세계적으로 청정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뉴질랜드에서 놀이기구, 운동기구, 벤치 등이 모두 목재로 만들어진 것을 보며 감동했던 터라 자연을 이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등잔봉부터 1.1㎞ 거리의 한반도 전망대까지는 나뭇가지 사이로 괴산호가 보이고 평탄한 산길이라 두런두런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망대에 도착해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 호수와 어우러진 모습과 괴산댐, 반대편 산 밑의 오지마을 갈은(갈론)구곡 가는 길을 바라봤다. 전망대에서 천장봉(437m)까지는 300여m 거리로 가깝다. 천장봉 못미처에는 진달래 동산으로, 지나서는 산막이 마을로 가는 갈림길이 있어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산막이 옛길로 향하지만 우리는 천장봉을 지나쳐 삼성봉(550m)까지 갔다. 평평하고 제법 넓어 쉼터로 알맞은 정상부분에 사랑나무 연리지가 있어 반갑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바람소리뿐 적막강산이지만 가끔은 이런 곳이 좋다. 삼성봉에서 내려오는 하산 길은 가파른데다 쌓여있는 낙엽이 미끄럼을 타게 해 엉덩방아 찧기 쉽다. 산 아래로 내려오면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농원을 만난다. 물길을 내려다보며 걸으면 물에 막히기 전부터 오지의 유배지로 산막이 옛길의 끝인 산막이 마을이다. 이제 3가구만 남은 마을에 들어서면 노수신적소와 하얀 집이 눈에 띄는데 노수신적소(충북기념물 제74호)는 우의정·좌의정·영의정을 지낸 조선시대의 문신 노수신이 유배생활을 할 때 거처하던 곳으로 괴산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하얀 집은 최근에 지어졌다. 이곳에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포장마차에서 두부 안주로 막걸리도 한 잔 마시는 게 인생살이의 묘미다. 산막이 마을에서 옛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경치가 좋은 선착장이 있다. 5000원이면 이곳에서 배를 타고 초입의 선착장까지 갈 수 있다. 젊은이들이 그네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선착장을 지나 흙길을 걸으면 가까운 거리부터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아름다운 호수 옆으로 산딸기길, 가재연못, 진달래동산, 다래 숲 동굴, 마흔고개, 고공전망대, 괴음정, 호수전망대, 얼음 바람골, 앉은뱅이 약수, 망세루와 연화담, 노루샘을 차례로 만난다. 산막이 옛길은 때 묻지 않은 청정지역이고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쪽빛 호수와 어우러져 산책길이 지루하지 않다. 산책로 주변에 군데군데 놓인 지게 위에서 이 고장 문인들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인상적이다. 가끔은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지기도 해 인생살이가 재미있다. 시 '이슬'을 직접 쓴 김경안 시인을 그의 작품 앞에서 만나 이곳이 임각수 괴산군수가 나뭇짐을 지고 다니던 길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괴산읍에서 감초식약동원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 시인은 괴산문협 회원들과 옛길로 나들이 나왔다가 마침 이곳을 지나는 중이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회라지만 변주섭 괴산문협 지부장은 가까운 일가라 더 반가웠다. 산막이 옛길에서 두 곳의 나무줄기가 물을 내뿜는 앉은뱅이 약수에 사람들이 많다. 모터로 지하수를 퍼 올린 약수인지 물맛이 좋고 시원하다. 몇 번 다녀간 곳이지만 두 곳의 약수에 남녀가 있고 성을 구별해 먹어야 효험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가끔은 누군가가 만들어내 '믿거나 말거나'인 얘기가 머릿속에 진실로 각인된다. 싱거운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앉은뱅이 약수가 물을 내뿜는 모양을 유심히 관찰하니 세상 이치에 둔한 나도 남녀를 구별한다. 새로운 역사가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여행의 말미에서 새삼 실감했다. 역사가 늘 새로운 것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듯 몸이 떠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며 느끼는 게 진정한 여행이다. 그런 면에서 산막이 옛길만큼 찾을 때마다 새롭고 마음 편한 곳도 드물다. 산새의 노랫소리와 봄꽃의 화려함이 밖으로 유혹하는 이 좋은 날 몸을 자연에 맡길 수 있는 산막이 옛길로 떠나보자. 그곳에 숨어있는 당신의 행복이 기다린다.
서림초(학교장 이병로)는 20~22일 경주 및 포항일원으로 6학년 5개반 163명의 학생들이학교장이 총 인솔 책임자가 되어 수학여행 중이다. 학생들에게 현장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확인하게 하고 조상들의 얼과 슬기를 접하게 함으로써, 나라 사랑의 정신 및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사랑하는 마음을 함양하고 전통문화 계승 발전에 대한 신념을 고취시키고자 마련되어진 이번 수학여행은 지난 3월 중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의 심의 과정 등을 거쳐 결정되어졌다. 2011학년도에 시행되고 있는 서림초 수학여행은 충청남도교육청 자치법규391호(2001.2.15)인 '충청남도각급학교현장교육학생안전관리규칙'에 의거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불쾌감을 주는 행동이나 말은 삼가고, 스스로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노력한다" 등 나름의 현장학습 체험규칙을 제정19일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6학년 관계 선생님 및 학부모 대표들 앞에서 준수 서약식을 갖기도 하였다. 이 교장은 “신라라는 테마를 가지고 사전 학습, 본 학습, 사후 학습을 미리 마련되어진 교육프로그램에 의해 진행함으로써 교육적인 성취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림초(학교장 이병로)는 3월 신학년도의 시작과 함께 독서교육 활성화를 통한 글로벌 미래 인재 육성이라는 학교교육목표 구현을 위해 아침 8시 30분부터 9시까지 전교직원 및 전교생이 참여하는 아침 독서 30분 운동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림초는 지속적인 아침 독서 30분 운동으로 동기유발 강화를 통한 독서습관 형성 및 내용 이해 중심의 독서능력 향상 방안 모색하고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독서와 사고 태도 함양을 위해 학교장 특색 교육사업으로 선정 운영하고 있는데 이의 정착을 위하여 학교에서 자체 구안 제작한 120페이지 상당의 독서록을 전체 학생 813명에게 배포하여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독서 활동의 이력관리에 철저를 기하여 초등학교 시절의 독서 이력부터 상급학교 진학 등에 중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통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능력 신장으로 충남교육의 인재 상인 스마트 인재로 커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서림아침 독서 30분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이 교장은 “고등사고 능력 신장 및 미래사회 인재의 핵심역량인 상황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의 배양 등은 많은 독서를 통해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며 학생들의 독서활동 지도에 진력하는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