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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박의수 | 강남대 교수, 한국교육철학회장 근래에 와서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급격하게 높아져서 교원임용시험의 경쟁률은 가히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이는 교사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교직의 권위 회복을 위하여 다행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결코 교육을 위하여 좋은 일로만 볼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교육의 성공을 위한 필수 요건 IMF파동 이후 직업 세계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의 회오리는 대부분의 직장에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조기 퇴직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따라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신분보장이 잘 되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이다. 공무원과 더불어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은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희구하는 것이 평범한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볼 때, 그런 태도를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교육을 위하여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어떤 직종을 막론하고 개인적 차원에서든 공적 차원에서든 그 일을 창조적으로 수행하여 자아를 실현하고 공공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사람들은 일 자체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교직은 학생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없이는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직업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더욱이 교육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지식기반사회에서 교육혁신을 통하여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1차적 책임은 바로 교사에게 있음을 상기할 때 교사의 투철한 사명감과 올바른 교직관은 교육의 성공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그렇다면 교직이 다른 직업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이며, 바람직한 교사의 역할과 자세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전문직인가, 일반직인가? 1999년 교육부가 발표한 교직발전종합방안(시안)을 보면 교원정책방향의 첫째로 '전문직으로서 교원의 위상 강화'를 들고 있다. 이는 교직이 전문직이거나 적어도 전문직이어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직이 전문직이라는 데에 공감하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될 것인가? 전문직의 기준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양하지만 대개 ① 장기적인 교육과 고도화된 능력 ② 엄격한 자격증 제도와 어려운 입문 과정 ③ 전문적 지식과 기술 ④ 폭넓은 자율성의 행사 ⑤ 자율적 통제와 권익 보호를 위한 조직 ⑥ 높은 사회적 위세와 경제적 보상 ⑦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상의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교직은 자격증 획득에 필요한 과정과 소요되는 시간, 직무 수행상의 자율성, 사회적 위세와 경제적 보상 등에 있어서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타 전문직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이 현실이라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와 직무 수행을 위한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기대하는 역할과 업무의 수준은 높은데 반하여 그에 상응하는 권위와 자율성과 보상은 낮은 편이다. 또한 교직 업무의 주된 대상이 미성년자들이며, 그들의 연령대가 낮을수록 그에 비례하여 교사의 사회적 지위도 낮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상이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갖지 못하게 하고, 교직의 전문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교육은 다음 세대의 조화로운 발달과 성장을 돕는 활동이다. 따라서 교직은 올바른 인간이해와 교사의 전문적 식견을 바탕으로 수행된다. 교사는 인간의 심리적·생리적·사회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충분한 기초지식과 교과에 대한 전문지식, 학생생활과 교과를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방법 개발에 관한 전문적 능력, 그리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을 지닌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직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전문직이다. 성직인가, 노동직인가? 오늘날 모든 직업은 원칙적으로 평등하며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수 없다고 볼 때, 목사나 승려처럼 전통적인 성직조차도 하나의 직업으로 전락(?)해가는 판국에 교직을 성직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직이 일반 근로직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교사라는 직업이 일반 근로자처럼 단지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직과는 달라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봉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교사도 노동자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직은 다른 근로자들처럼 노동을 통하여 경제적 가치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을 대상으로 육체적·정신적 성장을 도와주고, 보다 높은 수준의 자율적·도덕적 인간으로 끌어올리는 활동이다. 그런 점에서 교직을 담당하는 교사에게는 성직자에 준하는 특별한 사명감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교사에게 성직자와 같은 윤리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직업 자체가 고귀하고 성스러워서가 아니라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서이다. 교직의 업무는 단지 교과지식을 전달하고 윤리적 규범을 익히도록 하는 일 뿐만 아니라 3D 업종에 가까운 정도의 단순하고 힘든 노동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나 교육은 그 대상이 어릴수록 모방에 의한 학습에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교사는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따라서 모방의 대상이 되는 교사의 삶과 행동양식은 교육효과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또한 교육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참된 의미의 권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교사의 행동이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곧 교육 효과와 직결된다. 케르셴슈타이너는 '교육자 정신의 본질은 인간을 사랑하는데 있다'고 보고 인간 사랑을 교육현장에서 실천한 전형적 교육자로 페스탈로치를 들고 있다. 페스탈로치는 그의 명성이 절정에 달하였던 이페르덴 시절에도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 자신이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가난한 어린이의 학교에서 내가 직접 보여주지 않는 한 그 방법은 학교에서는 필요한 것일 지라도 생활에는 아무 쓸모가 없고 내가 한 일의 성과도 반감되고 말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빈민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고뇌하고 헌신했다(케르셴슈타이너, 문형만역, 교육자론:35). 역사적으로 위대한 교육자들은 이처럼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고 교육에 대한 열정을 몸으로 실천한 실천가에게서 발견된다. 따라서 교직은 성직은 아닐지라도 성직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을 요구한다. 교직만의 전문적인 특성 교직도 하나의 직업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생계유지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문적 식견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으로서의 특성을 갖는다. 이에 더하여 교직은 어떤 전문직과도 다른 교직만의 특수성을 지닌다. 첫째, 교직은 인간을 대상으로 인간의 조화적 발전을 돕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칸트는 '인간은 교육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교육에 의하여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라고 했다. 따라서 교사 자신이 우선 참된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 교직은 주로 인간의 정신적 측면의 발달, 즉 지·정·의의 조화로운 발달을 돕는 활동이다. 물론 신체적 측면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주된 관심은 정신적 측면에 집중된다. 인간의 정신적 측면을 다룬다는 말은 곧 감정의 교류가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뜻이다. 일방적 작용이 아니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나와 너'의 참된 인격적 만남, 영혼과 영혼의 만남을 통하여 참된 의미의 인간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사 자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교직을 사랑하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셋째, 교직은 미성숙한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교사의 인격과 가치관과 태도가 그대로 교육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때로는 의도되지 않은 잠재적 교육과정이 더 크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인간의 학습은 반드시 교사가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교직의 어려움이 있다. 교육은 결코 머리와 사고의 산물인 이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교육은 지식교육과 인격교육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온전한 앎에 도달하려면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손발로 실천하는 세 차원의 기능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인식(지)과 믿음(정)과 실천(의)이 조화를 이루어야 온전한 앎에 도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지식교육과 인격교육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페스탈로치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마음은 어린이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그들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다. 어린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어느 때나 내 얼굴에서 이것을 알아차리고, 내 말 가운데서 이것을 느낄 것이다." 이 구절은 교육에서 '감정이입'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사의 마음, 정열, 사랑, 교육적 에로스가 교육의 성패를 좌우한다. 넷째, 교직은 교육기관의 운영주체가 개인이든 공적 기관이든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공적 활동이다. 이는 학습자가 누구이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이며, 동시에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은 학습자의 자유의지와 자율성을 존중하고 궁극적으로 자유인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하며 결코 특정 이데올로기나 도그마를 주입시켜서는 안된다. 때때로 교사의 지나친 열정이 자신의 믿음이나 가치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있음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또한 공적인 활동이라고 해서 학습자의 개성을 무시하고 모든 학생에게 획일적인 교수법이 적용되어서도 안된다. 학습자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것과 교직이 공적 사업이라는 것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학생 개개인이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될 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회와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개혁과 교사의 자세 지금까지 교직이 왜 전문직이어야 하며, 왜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다른 전문직과 다른 교직의 특수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어쩔 수 없이 원론적 차원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며, 실천 가능한 해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교원평가 문제, 대학입시문제, 고교 평준화 문제, 과열과외와 과다한 사교육비 문제, 교실붕괴, 학교폭력, 교사의 과다한 업무부담, 형성평가의 문제, 열악한 교육시설과 근무환경, 획일화된 통제 등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열거하면 한이 없다. 이런 문제들은 서로 얽히고설켜서 서로가 원인이 되고 원인이 결과가 되어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더욱이 이런 문제들은 국가적 차원의 교육정책 혹은 제도와 연관된 것으로 학교단위는 물론 학급이나 일개 교사의 입장에서는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절망하고 주저앉아서 정책이나 제도가 개선되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먼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본질적인 문제와 비본질적인 문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교육문제가 무엇인가? 예를 들어 과다한 사교육비 문제는 사회적 문제일 수는 있지만 교육적 문제는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그렇게 돈과 시간을 들이고도 결국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데 있는 것이다. 대학입시 문제의 경우도 변별력이 문제가 아니라 중등학교 교육이 파행으로 치달아 전반적으로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하여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이 문제는 대학이 더 큰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초·중등교육에 국한하기로 한다. 제도개혁도 정책적 지원도 다 필요하다. 그러나 일선에서 교육을 담당할 현장의 교사가 실천하지 않으면 어떤 제도나 정책을 도입해도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경험했다. 개혁은 일종의 궤도 수정이다. 궤도를 수정하려면 몇 배의 에너지가 더 소모된다. 개혁을 하겠다고 하면서 그에 따르는 어려움과 고난을 감수할 의지가 없다면 백약이 무효다. '작은 일부터, 나부터' 자세로 "모름지기 교육개혁의 성패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실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들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교육애를 가지고 자신의 의지와 열정을 불태우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백번 해봤자 안 된다는 허무적 패배주의, 힘만 들 것이 뻔한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무사안일주의, 남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돈 될 것도 없는 일에 내가 왜 앞장을 서느냐는 소아병적 이기주의가 판치는 작금의 교단 풍토를 쇄신하지 않고서는 우리 교육은 정녕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경향신문, 2005.10.31)라는 어느 교감선생의 지적이 백번 옳다. '제도가 그렇고 정책이 이런데 나 혼자 무슨 수로 개혁을 할 것인가!' '나는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못하게 한다.' 이것은 게으름에 대한 일종의 변명에 불과하다. 아더 콤즈는 이것을 개혁을 가로막는 일종의 '신화'라고 했다. 이와 같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 희망은 없다. '작은 일부터 나부터'의 자세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들 교사는 적어도 교실이라는 자유의 공간이 있다. 일단 교실 문을 닫으면 교사의 작은 왕국이 전개된다. 마음만 먹으면 교실 안에서는 교사가 홀로 주관할 수 있는 개혁의 가능성과 다양성이 무한하다. '가능한 한 조용하게 허세 부리지 말고' 지금 당장 나부터 개혁에 착수해 보지 않겠는가? 개혁의 성과가 미미할 지라도 스스로의 교직 생활은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창조해 가는 행복이 교육자의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글·사진 | 박하선/사진작가, 여행칼럼니스트 고생 끝에 허락된 왕국과의 첫 만남 여기는 티벳 고원의 서부 변방. 불같은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해발 4000m의 고원에서 나무 한 그루 없는 주변의 산들이 하얀 사막처럼 빛나고 있다. 온 천지가 텅 비어있어 마치 오수(午睡)속의 적막함 같을 것을 느끼게 한다. 세 갈래의 갈림길 옆에 텐트를 치고 지나가는 트럭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지도 이틀이 되었다. 말로만 들어온 '구게 왕국'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오늘도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모래언덕에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기만을 눈이 빠지게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마치 구약성서에서 한 예언자가 신의 계시를 받고 성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분위기라고나 할까.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너무도 생소한 이 구게 왕국. 9세기 한때 중앙 티벳의 '랑 다르마'왕의 불교에 대한 박해로 인해 흩어져 있던 추종자들을 모아 '예쉐 오(Yeshe O)'라는 사람이 866년에 창건한 왕국이다. 불교의 보존과 전래에 역점을 둔 이 왕국은 예쉐 오 왕 자신도 결국 왕위를 버리고 중이 될 정도로 불교가 크게 번성해 티벳 전역에 다시 불교의 부흥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17세기 카시미르 사람들의 침공으로 멸망하기까지 서부 티벳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30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 그 흔적들은 인도와의 국경을 지척에 두고 산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자다'와 '사파랑'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마을들은 워낙 꼼꼼하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사전 정보 없이는 그냥 지나치기가 쉬운 곳이다. 또 설사 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교통이 워낙 불편해 목전에서 포기하는 경향이 많은 오지 중의 오지로 통한다. 3일째 되는 날도 역시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웬만한 거리 같으면 걸어서라도 도전해 보겠지만 150㎞가 넘는 험악한 산길이다. 사실 구게 왕국에 대한 사진 한 장 구경한 적이 없을 정도로 사전 정보가 미흡했지만 그러한 왕국이 있다는 말만 듣고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려서 아까운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누룽지와 육포로 연명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날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한낮이 다 되었을 때 트럭 한대가 모래먼지를 날리면서 이쪽으로 방향을 잡고 다가서고 있었다. 부리나케 짐을 챙겨서 길을 막고 차를 세우니 군용 트럭이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3일을 기다린 마당에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화물칸에 올라타고 구게 왕국을 향해 계곡으로 빨려 들어갔다. 세월과 함께 흩어져가는 흙빛 도시 험악한 산길에 얼마를 몸부림쳤을까. 협곡으로 접어들면서 주변의 산세가 변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웅장하게. 수많은 골이 패인 흙빛의 산들이 마치 거대한 신전처럼, 또는 병사들이 사열을 받고 있는 자세로, 아니면 섬세한 조각으로 장식된 위엄 있는 왕궁이나 장군들의 얼굴 등등이 천의 모습을 띠고 한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구 속의 혹성이라더니 이곳을 두고 한 말인가. 이러한 것들이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에 의해 생겨난 자연적인 것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거대한 제국 속에 빨려 들어온 듯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그저 입만 딱 벌어질 뿐이다. 역시 왕국이 있을 법한 곳이다. 이것은 구게 왕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전초전으로 그 왕국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으며, 또 그 왕국을 찾아가는 우리를 맞아 일종의 대 환영식을 베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자다' 마을은 아주 조그마한 동네였다. 눈에 보이는 것 거의가 흙빛이었지만 마을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톨링'이라는 사원의 모습이 제일 먼저 관심을 끌었다. 예쉐 오 왕의 명을 받고 인도에서 공부하고 있던 '린첸 상포'가 978년에 돌아와 불교의 부흥을 위해 지은 많은 업적 중의 하나다. 또한 1040년에 인도의 유명한 학자 '아티샤(Atisha)'가 이 구게 왕국으로 건너와 티벳 전역에 불교의 부흥을 꾀하면서 이곳 톨링 사원에 2년 동안 머물었던 기록도 가지고 있다.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연적인 것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것인지는 몰라도 많이 훼손되고 파괴되어 있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있어 이곳 촌장인 듯한 노인네가 열쇠를 가지고 와서 본전 옆 건물을 열어주곤 했다. 옳거니 하고 그 순례자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그 노인네가 가로막고 절대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이방인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카메라 때문에 그럴지도 몰라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하면서 살살 구슬려도 보고 화를 내보이기도 하면서 통사정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문 옆에서 고개만 내밀고 입맛만 다시다가 끓어오르는 울화를 달랠 겸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 저기 부서진 성곽과 불탑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흙으로만 만들어진 것들이라 천년이라는 세월을 지탱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도처에 토굴들도 많다. 지금은 모두 비어 있거나 아니면 가축들의 보금자리나 창고 같은 것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왕국 시절에는 물론이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토굴에서 생활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실 지금 주민들이 살고 있는 흙집들도 말이 집이지 토굴이나 다름없을 정도지만. 시간의 깊은 잠 속에 빠져있는 왕궁 구게 왕국의 본산은 이곳 '자다' 마을에서 17km 더 깊이 들어가 있는 '사파랑'에 있다. 그러니까 그곳에 왕궁이 있는 것이다. '사파랑'으로 가는 차편이 없어 간략한 짐만 챙겨서 걸었다. 불볕이었지만 구게 왕국의 하이라이트인 왕궁을 보게 된다는 기대가 앞서다 보니 참을 만 했다. 그러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또 수많은 협곡을 넘나들면서 몸이 파김치가 되었을 때는 '사람이 이러다 죽는 모양이구나' 했다. 악전고투 끝에 이 구게 왕국의 성채 바로 밑에 섰다. 벌집 같은 수많은 토굴과 몇 채 안되는 사원, 그리고 도저히 그냥은 오를 수가 없어 보이는 산꼭대기에 외롭게 떠있는 왕의 거처 등이 쥐죽은 듯한 고요 속에서 우리를 맞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마귀의 성'처럼 제법 으스스한 분위기로 다가왔고, 우리는 그 '마귀의 성'에 들어가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 한판 승부를 치러야만 하는 주인공이 되는 기분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성채를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우리를 불렀다. 이곳 관리인이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드물어서인지 반가운 기색이었다. 이 거대하고 소중한 왕국의 성채를 이 사람 혼자서 관리하고 있다는 말에 그저 놀랄 뿐이다. 그는 단순한 관리인이 아니라 불화를 그리는 젊은 화가로서 이곳 사원내의 많은 단청이나 불화를 자신이 직접 보수하거나 새로 그렸다고 자랑했다. 입장권 얘기가 나왔다. 자그마치 우리 돈 4만 원 정도다.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지만 결국 사람 좋은 관리인 덕택에 할인에 할인을 거듭해서 중국인 요금으로 낙찰이 됐다. 물론 내부의 촬영을 일절 허락해 주지 않은 것이 애석했지만. 관리인을 따라 들어간 성내는 다섯 채의 사원을 빼고는 온통 토굴뿐으로 텅 비어 있었다. 사원 내부의 벽면마다 엄청난 벽화들과 불상들이 있었다. 부조된 불상들은 대부분 파괴되어 떨어져 나간 모습이지만 벽화들은 그런 대로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내부가 너무 어두워 자세히 살펴보기가 힘들었지만, 벽화의 성격이 그 유명한 돈황의 '막고굴' 벽화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전형적인 티벳 불교의 그림 양식과 인도와의 접촉이 많다 보니까 그림 속에 인도인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등이 우선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디에서 떨어져 나온 불두인지는 몰라도 그 위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세월을 얘기해 준다. 내부의 분위기가 천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처음으로 깨어난 듯 제법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이방인의 발길을 잡는 천년의 고독 왕국의 성채에서 곧바로 내려오니 강변에 마을이 있었다. 이곳이 '사파랑'이라는 곳인데 '자다'보다도 더 작고 별 특색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이 마을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바로 이 위에 구게 왕국의 성채가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 마을 쪽으로 돌아 왔더라면 협곡을 건너는 등의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어느 민가에 들려서 버터차를 얻어 마시고 간단한 요기를 한 후 다시 성채로 올라왔다. 시간이 너무 늦었고 또 아침의 왕궁도 보고 싶어서 이곳 관리인의 숙소에서 '참파(티벳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미숫가루)'를 얻어 먹어가며 하룻밤을 신세 지기로 했다. 오고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몸은 극도로 피곤한데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다시 '자다'까지 걸어가야 할 일이 꿈만 같아서 일까? 아니면 이 구게 왕국에 들어오기도 힘들지만 한번 이방인이 들어오면 다시는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이 떠올라서일까? 버터를 태워 밝히는 불빛이 천년의 고독을 희롱하는 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구게 왕국의 밤은 깊어만 갔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수재 가운데 뛰어난 연주자 많아 '모차르트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음악이 머리를 좋게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피아노를 배운 학생이 학업 성적도 우수하다는 조사 결과가 그 동안 여려 차례 나왔다. 그러나 과연 학생이 연주를 하면서 똑똑해져 성적이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피아노 레슨을 받는 학생이 사회경제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자라 성적이 좋은 것인지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얼른 보기에 간단해 보이지만 인과 관계를 따지기 매우 어려운 것이 음악과 두뇌 발달의 관계이다. 연주가 두뇌 발달을 촉진한다는 것은 손놀림이 두뇌를 자극할 것이라는 생각과 유명한 과학자들 가운데도 뛰어난 연주가가 많은 데서 막연히 추측돼 왔다. 상대성 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은 모차르트 연구가였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운 막스 플랑크는 작곡을 하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직업적 음악가 못지않게 피아노 연주에도 능했다. 현대 물리학의 두 거장인 아인슈타인과 플랑크는 친한 친구이자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셉 요아힘을 불러 삼중주를 하기도 했다. 필자도 수재가 모이는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연수를 하면서 학생들의 피아노 연주 실력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2003년 6월 음악과 두뇌 발달의 관련성이 정말 근거가 있는 얘기인지 알기 위해 많은 심리학자들이 다양한 방법의 실험을 고안했다. 미국 어바인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프랜시스 라우셔 교수팀은 1993년에 모차르트의 음악이 머리를 좋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른 바 '모차르트 효과'로 불리는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된 뒤 실험에 쓰인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K448)'가 미국 레코드 가게에서 동이 날 정도였다. 악기 연주가 뇌의 구조를 개선 연구팀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실험을 했다. 종이를 접어 가위로 오린 뒤 펼치면 나타나게 될 모양을 미리 상상하게 한 것. 첫째 집단은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10분 동안 들었고, 둘째 집단은 단순한 구성의 음악만 들었다. 셋째 집단에게는 아무런 음악도 들려주지 않았다. 이 결과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들은 집단은 종이에 어떤 구멍이 뚫릴지 예측하는 능력이 다른 두 집단보다 훨씬 뛰어났다. '공간―시간' 추론이나 형태 비교, 패턴 사이의 관계를 감지하는 능력은 신경세포 사이에 특별한 회로가 잘 발달해야 좋아진다. 이런 종류의 사고는 수학과 과학에 필수적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것은 바로 뇌 안에서 이런 신경세포 연결망을 늘려서 더 잘할 수 있게 한다고 연구팀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 효과가 정말 존재하느냐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다른 연구팀이 반복 실험을 해보았지만 같은 결과를 얻은 팀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 뒤 라우셔 교수팀은 대학생이 아닌 어린이를 상대로 피아노 레슨과 어린이들의 인지 능력 향상이 관련성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만 3∼4살 어린이를 4개의 집단으로 나눠 그림 퍼즐 맞추기를 했다. 이어서 한 집단은 매일 10분 동안 피아노 레슨을 했고, 두 번째 집단은 노래만 했고, 세 번째 집단은 매일 10분 동안 컴퓨터를 가르쳤다. 마지막 집단은 아무런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6개월 동안 이런 훈련을 한 뒤 연구팀은 어린이들의 그림 퍼즐 맞추기 능력을 다시 시험했다. 피아노를 배운 집단의 퍼즐 맞추기 능력은 놀랍게도 34%나 향상됐다. 다른 집단은 능력의 향상 속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떨어졌다. 연구팀은 연주가 뇌의 구조를 개선함으로써 두뇌 능력이 향상된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어린 학생들은 수학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비례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특히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음은 주파수 간격이 일정하기 때문에 반복적인 음악 훈련을 받으면 뇌에 비례 개념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2003년 7월에는 홍콩 중국대 심리학자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심리학회가 발행하는 '신경심리학지'에 발표했다. 이 대학 아그네스 찬 박사팀은 악기 연주가 건강한 어린이뿐 아니라 뇌에 손상을 받은 사람이 빨리 회복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그네스 찬 박사팀은 "어린이에 대한 음악 교육은 왼뇌의 측두엽을 발달시키고 재조직화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뇌의 같은 영역이 관장하는 언어 기억력도 발달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두뇌 음악이 귀를 자극하면 귀의 청각세포에서 만들어진 전기 신호는 주파수별로 뇌의 여러 부위로 퍼져 한바탕 불꽃놀이를 일으키게 된다. 질서 있고 조화된 불꽃놀이는 쾌감을 만든다. 그러면서 뇌 구조에도 질서와 조화를 부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시험관 아기 시술 전문병원인 차병원은 시험관에서 수정란을 성숙시킬 때 음악을 들려준다. 콘서트 홀 같은 실험실에서 자란 수정란은 자궁에 성공적으로 착상될 확률도 높다고 한다. 농촌진흥청 이완주 박사는 비닐 하우스 내의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병충해에도 강해지고 성장도 잘 한다고 실험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옛말에 "곡식은 주인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 곡식도 이렇게 소리를 좋아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인 사람의 두뇌가 음악을 싫어할 리 없다.
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이웃에 사는 한 한인 가정의 자녀가 올해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호주에서도 의대나 치 의대에 진학하려면 대학입시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전 과목에 걸쳐 1등급에 해당하는 고득점을 받아 의대에 진학하게 된 그 학생과는 대조적으로 한 반이었던 한국 유학생 하나는 2등급을 받고도 같은 대학 의예과에 나란히 합격했다. 대학마다 유학생 모집 정원을 별도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이 학생은 비교적 낮은 성적으로 입학허가를 받은 것이다. 일반 호주 학생들과 유학생들 사이에 입시선발기준의 차등을 두는 이유는 유학생들의 언어적 핸디캡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학생 카테고리에 가산점을 부가해 주는 대신, 국내 학생들보다 비싼 학비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수험생들 간의 불공평함을 상쇄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지원한 같은 호주 학생들 사이에도 합격 커트라인의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차등대우의 기준은 대학 등록금을 자비로 마련하느냐, 정부의 융자를 받아 지원하느냐에 있다. 말하자면 호주대학은 유학생뿐 아니라 국내 학생들에게도 소위 ‘돈 많은 집’ 자식들에게 더욱 많은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등록금을 자비로 내는 학생과 정부에서 융자를 얻어 학자금을 마련하는 학생들의 합격 점수를 다르게 적용하고, 동점일 경우 학비 자비부담 학생들에게 우선 입학 혜택을 주되, 대학마다 두 집단 간의 대입 커트라인 격차를 최고 5점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합격점수를 백분율로 계산하여 융자학생이 최소 80점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학과를, 학비 자비 부담자에게는 75점의 커트라인을 적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각 대학이 애초 마련된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데에 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올해 입시에서 각 대학의 최소 10개 학과에서 5점 편차 기준을 무시하고 두 그룹의 학생들 간의 합격점수 차를 임의로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한 대학의 모 과는 학자금 정부보조 희망 학생의 경우 합격 커트라인을 98점으로 적용한 데 반해, 학비 자비부담자에게는 80점을 적용했다. 두 그룹 간에 무려 18점이나 편차가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의대를 비롯하여 고득점자가 많이 몰리는 이른바 인기학과 일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어서 해가 거듭할수록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의 대학들이 등록금 자비 부담 유무를 놓고 입학 점수 커트라인을 이처럼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이유는 각 대학이 봉착하고 있는 재정난을 부족한 정부 지원으로는 효과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학생 유치를 통한 재정마련으로 한계가 있는 부분을 국내 학생들을 통해 메우기 위한 자구책으로 등록금 마련 방식에 따라 입학점수에 차등을 두어 재정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호주에서는 가정 형편과 큰 상관없이 대부분의 학생이 학자금 융자를 받아 대학을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자금 융자를 받게 되면 당장 목돈을 마련할 필요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을 뿐 아니라 융자금 상환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융자받은 학자금을 갚아나가야 하지만 연 수입이 일정 금액(3만 5천 호주 달러-한화 약 2천 8백만원) 이하일 경우에는 융자금 상환을 일시 정지할 수 있다. 학자금 융자에 대해서는 이자를 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원금에 대해서만 수입의 일정부분에서 갚아나가되,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도중에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직장이 있다 하더라도 수입이 충분치 않을 경우 상환을 무기한 미룰 수 있다. 한마디로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하는 일은 없도록, 의욕과 동기를 격려하기 위한 취지를 가진 제도이다. 따라서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대부분의 학생은 정부에서 융자를 얻어 대학 진학을 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져 왔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지금까지 대학생들에게 대출해 준 융자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약 130억 호주 달러(우리 돈 약 10조원)를 넘어선 지경이다. 정부 재정의 상당한 금액이 대학 융자금으로 지원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으로는 충분한 재정이 할당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결과 정부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재정 확보를 강구할 것을 촉구하고자 학비 자비 부담 학생에게 특혜를 주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정부로서는 지금까지 융자에 의지해서 대학 진학을 계획하던 학생들 중 다수를 점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비 부담 생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듦과 동시에,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부담도 더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 셈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호주 대학은 ‘성적순’이 아닌 ‘재산 순’이며 돈으로 학위를 살 수 있게 된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입시생들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은 물론,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낸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 동일한 결과를 얻는 데 따른 허탈감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었다.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성적을 낸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 같은 결과를 얻는 것에 대한 불공평함이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80점만 받고도 갈 수 있는 학과를 또 다른 학생은 98점의 높은 성적을 내야 갈 수 있다면 열심히 노력하는 자체가 허망한 노릇이겠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의 재정확보라는 명분으로 학비 자비부담 학생의 수요와 이들에 대한 점수 혜택을 점차 늘여가고 있는 현상이 심화할수록 머지않은 미래에 호주 대학은 교육의 질적 저하를 필연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공부하지 않는 학생,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대거 받아들인 후 대학 교육기간 내에 이들의 실력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준비되지 못한 인력이 사회로 나오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우리 꽃에 대한 사랑을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때로는 작지만 당당하게, 때로는 우아하고 듬직하게 우리 산야를 지키며 살고 있는 야생화를 아이들만큼 사랑하는 경기도교원야생화사진연구회 '들꽃 i(회장 정재흠 파주 파평초 교사)' 우리 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자생하는 곳을 찾아 처음 탐사를 시작한 것은 2003년 4월. 높고 낮은 산, 습지, 바닷가, 섬 그리고 백두산까지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떠나는 야생화탐사는 들꽃 i 회원들이 우리국토를 더욱 사랑하고,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들꽃 i 회원들에게 우리 꽃은 힘이고, 기쁨이다. 들꽃 i는 매주 한번 정기모임을 통해 우리 꽃에 대한 지식과 사진에 대한 공부를 함께하고 월 1회의 정기출사와 번개출사를 통해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며 계절마다 피어나는 예쁜 우리 꽃에 마음껏 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2004년부터 시작한 백두산 야생화탐사를 통해서 백두산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꽃들을 만나고, 우리 민족의 기상과 기원이 살아있는 그곳이 민족의 영산임을 확인하는 경험을 쌓고 있다. 백두산 탐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며 그곳의 아름다운 꽃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은 들꽃 i 회원들의 큰 보람이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2004년 12월에는 경기도 최우수교과연구회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2005년 KINTEX 교육박람회에서는 야생화 사진 전시회를 가졌다. 들꽃 i는 우리 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아이들과 나누기위해 해마다 릴레이 사진전을 하고 있다. 2004년 처음 시작한 릴레이 사진전은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주제로 경기도내 초등학교에 전시되어 아이들이 우리 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으며, 2005년에는 백두산의 야생화를 주제로 12월까지 경기도내 초등학교 13곳에서 릴레이 사진전을 실시하여 직접 보기 어려운 백두산의 천지를 배경으로 한 귀한 꽃들을 사진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정기 사진전도 개최하고 있으며 특히 2005년 12월 파주 시민회관에서 '사진 속에 담아낸 우리 꽃 이야기'라는 주제로 개최한 정기사진전은 많은 관심 속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회원가입은 우리 꽃을 사랑하고 그것을 사진에 담아내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경기도내 초등학교에 근무하시는 교사면 누구나 환영하며, 회원가입과 활동내용은 홈페이지 www.ict4u.org에 『들꽃 i』 게시판을 참고 하면 된다. | 엄성용 esy@kfta.or.kr *이 공간은 교원동호회를 소개하는 곳입니다. 현재 활동하고 계신 동호회를 자랑하고, 널리 알리고자 하는 동호회에서는 새교육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 (02)575-4185, ·이메일 = esy@kfta.or.kr
서울 성동교육청 운영 ‘여학생 친화적 과학교실’ 인기 서울 성동교육청(교육장 김영일)이 처음 마련한 ‘여학생 친화적 과학교실’이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참여한 여학생들은 “평소 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실험을 직접하면서 좀 더 과학을 친근하게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경일중 한덕주 지도교사는 “앞으로는 과학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들의 참여가 늘도록 과학 교실을 확대해야한다”고 밝혔다. 과학에 대한 여학생의 관심 높이려 첫 시도 지난 겨울 방학 서울 성동교육청 과학중심학교인 경일중(교장 주남수) 과학실에서는 흥미로운 과학교실이 열렸다. 실험에 푹 빠진 학생들은 모두 여학생. 바로 성동교육청(교육장 김영일)의 ‘여학생 친화적 과학교실’에 참여한 것이다. 이 과학교실은 성동교육청이 과학에 흥미와 관심이 있는 여중생들의 창의성과 과학적 탐구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처음 시작한 것으로 교사의 추천을 받은 40여명의 학생들이 두 개의 반으로 나뉘어 총 20시간의 교육을 받았다. 여학생이 중심이 되는 과학교실인 탓에 실험내용도 은거울 만들기, 화장크림 만들기, 투명 비누 만들기, 내 아기는 누굴 닮았을까, 내가 하는 일기 예보 등 여러 분야의 과학에 대해 알 수 있으면서도 여학생들의 흥미를 끌만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기자가 찾은 날은 일명 ‘손에 손잡고 만들기’ 실험이 한창이었다. “책상위에 있는 납땜기는 뜨거우니까 특히 조심해야 해요” 남학생들에 비해 납땜기를 많이 다뤄보지 않은 여학생들에게 교사가 당부를 잊지 않는다. “오늘 만들어 볼 러브미터는 사람 몸에도 전류가 흐른다는 것을 안전하게 알 수 있는 장치에요. 이것을 완성하고 친구와 러브미터의 양쪽을 잡으면 이렇게 전구에 불이 들어오죠” "와! 신기하다!" 교사의 설명과 시범에 학생들의 탄성이 나온다. “이 러브미터를 만들면서 우리는 미세한 전류를 증폭시키는 트랜지스터, 빛을 내는 발광 다이오드인 LED,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는 콘덴서, 그리고 전류에 대해 배울 수 있어요” “러브미터를 완성하면 사람마다 실험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죠. 각각의 사람 특성에 따라 불빛이 깜빡이는 정도가 다르거든요” 다양한 실험으로 학생들에게 호응 얻어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지는 등 실험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반응도 뜨겁다. “선생님, 제대로 연결한 거 같은데 왜 불이 안 들어올까요?” “플러스, 마이너스를 어떻게 구분해야하죠?”“납땜의 원리는 뭐에요?” 또 직접해보는 실험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동마중 김혜원(14·2학년)양은 “이 과학교실에서는 교과서와는 달리 여러 가지 과학 상식을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하다”면서 “여러 기구들을 만지면서 실제로 실험을 해보니까 더욱 재미있다”고 했다. 무학중 이시은(14·2학년)양도 “평소에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지만 학교 수업시간에는 형식적인 실험만 해서 재미가 없었다”면서 “방학 때면 학원에만 다니기 바빴는데 이렇게 별도로 자세하게 설명도 들으면서 과학 실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학생들을 지도한 경일중 한덕주 교사는 “남학생들은 실험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반면, 여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성향이 있는데 실험을 많이 안 해봤을 뿐이지 실력의 차이는 없다”면서 “계속되는 과학실험으로 준비할 것이 많지만 여학생들이 이번 과학교실로 과학에 흥미를 많이 갖게 되는 것 같아 보람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는 각 학교에서 선발된 소수의 학생들이 참가했지만 다음에는 과학에 흥미 있는 많은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더 넓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상미 기자
김연수 | 생태사진가 우아한 발레리나의 몸짓 "꾸룩 꾸룩 꾸욱" 겨울철새의 낙원 천수만 간월호에서 200여 마리 남짓한 큰고니(천연기념물 201호)들이 부르는 합창소리다. 호수를 뒤덮은 물안개 속에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큰고니들의 우아한 자태는 차이코프스키의 를 떠올리게 된다.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보았던 러시아 볼쇼이 오페라단의 기억난다. 발레리나의 선녀 같은 율동에 흠뻑 빠져 치콥의 교향악을 매일같이 반복해 듣던 때가 있었다. 그 발레리나의 원조가 바로 큰고니 들이다. 활주로를 이용한 힘찬 비상 흔히 백조라고 부르는 고니는 11월 말쯤 되면 러시아 툰드라의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 해안가의 호수를 찾았다가 이듬해 3월에 돌아가는 희귀한 겨울철새다. 겨울철이면 수많은 탐조객들이 하얀 천사 같은 이들의 평화로운 춤사위를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갈대밭 속에 위장텐트를 치고 녀석들이 가까이 접근하기를 기다린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동지섣달의 한기에 온몸을 웅크렸다가도, 얼어붙은 호수 가에서 움츠렸던 선녀들이 얼지 않은 호수 한가운데로 서서히 움직이면서 하나 둘 입을 모아 노래 부르면, 어느새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추위 속에서 떨었던 지루함은 금세 사라져 버린다. 곧 이어 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질 테니까…. 하지만 예고편에 이어 본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오페라는 막을 내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밤새 쳐놓은 그물을 거두려는 강태공들 배의 모터소리에 큰고니들이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날아가거나, 호숫가를 무대포로 달리는 차량들로 큰고니들의 고요한 평화는 순식간에 깨져 버린다. 비록 놀라서 급히 날아갔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힘찬 비상은 장관이다. 크기가 140㎝나 되는 육중한 몸매의 큰고니는 가벼운 새처럼 단숨에 하늘로 날지는 못해, 육상에서 도움닫기 하듯이 수면 위 4~5m를 박차고 탄력을 받아야 비로소 하늘로 날 수 있다. 큰 비행기에는 긴 활주로를 필요하듯이 대형종일수록 날기 위한 예비동작이 힘차고 웅장하다. 낙동강하구가 주된 서식지 우리나라를 찾는 고니류는 혹고니, 큰고니, 고니 세 종류가 있다. 간혹 드물게 검은고니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필자는 이 검은고니를 외국의 동물원에서 보았다. 부리 위에 혹이 있는 혹고니가 몸집이 가장 커 152㎝ 가량 되고 고니는 120㎝ 정도다. 갈대와 부들 같은 수생식물의 뿌리와 수서곤충을 먹으며, 보통 네댓 마리의 가족단위로 생활한다. 풀잎과 줄기를 주재료로 큰 화사 모양의 원추형 둥지를 만들고, 크림색을 띤 흰색의 알을 3~7개 낳는다. 암컷이 알을 품고 35~42일이 지나면 부화한다. 가족단위 중에서 머리와 목이 잿빛을 띠는 녀석들은 태어난 지 1년이 채 안 되는 어린 새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의 호수나 강가에서 매우 적은 수가 월동하는데, 낙동강하구를 가장 많이 찾고 충남 천수만과 금강하구에도 100여 마리 정도가 찾아온다. 최근 몇 년 동안은 한강의 팔당댐하류, 미사리에서도 여러 마리가 월동하고 있다. 공존 위해선 이기심 버려야 14년 전 전북 고창의 한 저수지에서 4월 말이 되었는데도 고니가 고향인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호숫가를 맴돌며 구슬프게 울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필자는 조류보호협회 김성만 회장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망원렌즈로 보니까, 그 녀석은 날개 아래에 총상을 입고 있었다. 날개는 축 처져 날 수 있는 역할을 이미 잃었고, 오히려 움직이는 데 짐만 될 뿐이었다. 보다 못해 필자와 조류보호협회 회원들은 가까운 전주동물원의 수의사를 현장으로 불렀지만 수술기기가 없어 그 자리에서 치료를 할 수가 없었다. 전주동물원으로 고니를 옮겨와서 3시간의 수술 끝에 총 맞은 날개를 잘라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노력도 보람 없이 고니는 사흘 후에 숨을 거두었다. 선녀 같은 고니들을 총으로 잡는 사람들의 심보는 어떻게 생겼을까? 지금의 문화재보호법으로는 천연기념물을 훼손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되어 있다. 고니를 총으로 쏜 밀렵꾼은 운 좋게 발각되지 않았지만, 결코 편안히 잠을 이루진 못할 것이다. 지금도 그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이 고여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큰고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람의 이기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은 영원한 숙제 같다. * 우아한 호수의 선녀 큰고니의 모습을 새교육 3월호에서 만나보세요.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기원전 221년 시황제의 통일 진제국은 이후 중국 역대왕조의 기틀이 되었으나 결국 15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전란에 시달려왔던 중국인들은 이번에는 전쟁의 고통 대신 급진적인 국정운영과 사상통제, 각종 노동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군주 한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사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외교력'이다. 만약 분쟁이 있을 때마다 무력만을 앞세운다면 비록 승리한다 해도 자국의 아까운 생명과 국가재산을 소모하여 자칫 망국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돈 한 푼 안들이고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면 도랑 치고 가재잡고, 마당 쓸고 돈 줍는 셈이 아닌가? 소진(蘇秦)이 합종책(合從策)을 들고 나와 여섯 나라가 연합하여 북방 오랑캐 나라인 진나라를 고립시키려고 하자(한족 제후국의 입장에서), 진나라는 북방 유목민 특유의 탁월한 정보 수집과 분석력을 발휘하여 장의(張儀)를 발탁, 연횡책(連橫策)을 씀으로써 '진나라 말려 죽이기 작전'을 허사로 돌려놓는데 성공하였다. 즉 다른 여섯 나라 책사들의 술책이 진나라의 정보력을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 진나라의 특징은 '존왕양이'의 이념을 전통으로 하는 제후국이 아니라, 서쪽 변방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국력을 키운 흉노 계열의 '자주성가형 국가'였다. 다시 말해서 정통중화를 표방하는 나라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말이다. 진나라 제31대왕으로 즉위한 정(政)은 부왕인 장양왕(莊襄王)의 뒤를 이어 13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으나 일찍부터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섭정을 맡고 있던 재상 여불위(呂不韋)를 제거하고 말았다. 여불위는 원래 대상인(大商人)으로서 정의 부왕인 장양왕이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을 때 구해준 인연으로 재상이 된 인물이었고 자신의 첩을 장양왕의 소실로 들여보내 자신의 핏줄로 하여금 진나라의 왕통을 이어가게 하였다. 쉽게 말하면 정의 생부가 사실은 여불위였다는 말이다. 이렇게 여불위를 제거하는데 성공한 정(政)은 과감하게 정책을 밀고 나가면서 16년간에 걸쳐 여섯 나라를 차례차례 멸망시키고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하였다. 오랑캐가 이룬 중화의 기본 틀 진왕 정(政)은 춘추·전국이라는 복잡한 정치국면을 하나의 나라로 통합함으로써 역설적인 말이지만 오랑캐(?)에 의한 한족(漢族)과 중화(中華)라는 이데올로기를 확립하였다. 다시 말해서 전국 칠웅이 패권을 다투던 지역이 통일제국이 됨으로써 '중국의 영역이 물리적으로 지정되어' 중국인이라는 민족적 실체가 서서히 태동하기 시작함으로써 중국 민족사적으로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왔다는 말이다. 춘추시대에는 남방 오랑캐인 초나라가 중국에 편입되었고, 전국시대에는 서쪽의 변방에서 발흥한 진나라가 대륙을 통일함으로써 서부지역의 이민족도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편입되었지만, 이후의 중국은 중원의 한족 문화권과 북방 유목민족 문화권으로 재편되었으며 양 문화권 간의 기나긴 충돌과 마찰이 시작되었다. 진왕은 중국을 통일하자 고민이 생겼다. 자신에 대한 호칭문제였다.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기존 여섯 나라 왕들을 낮추어 공(公)이라고 하자니 반발할 것이 뻔하고 그냥 두자니 똑같은 왕이니 체통에 문제가 있어 왕 위에 군림하는 왕으로서 임금 황(皇), 임금 제(帝)(= 곱빼기 임금), 즉 황제라 칭하고 제국을 운영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다.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시키고 화폐를 정비·통일하였는데, 이미 도량형과 문자, 화폐의 통일은 기나긴 분열시대와 전란시대를 거치는 동안 각국의 교류가 활발하였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또한 자신의 명령이 중앙은 물론 지방의 최말단까지 미치게 하기 위해서 강력한 독재적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고 효율적으로 중앙집권체제를 담당할 행정기구를 설치하였다. 전국을 36군(郡)으로 나누고 각기 군수·군위·군감이 관장토록 하였으며 중앙에는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승상, 국방장관격인 태위, 검찰총장격인 어사대부로 구성되는 3공(三公)과 각 부서 장관에 해당하는 9경(九卿)을 두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시황제는 너무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매사를 챙기는 스타일의 통치형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황명이 제대로 집행이 되고 있는지 수시로 제국을 순회하면서 시시콜콜 점검하고 다녔다. 그 바람에 일선 관리나 백성들이 죽어났다. 일찍이 진나라는 상앙을 발탁하여 법가사상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아 철저한 사상통제를 함으로써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국을 통일하고 보니 모자이크 국가가 되고 말았을 뿐만 아니라, 얌전하게 복종하고 있던 진나라 백성들도 물이 들 우려가 있어 법가사상을 더욱 강화하였고 그 책임자로 재상 이사(李斯)를 임명하였다. 시황제는 무리수, 아니 악수를 두기 시작했다. '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460여 명의 유학자들을 생매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실용서와 진기를 제외한 모든 책을 불살라버려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어냈다. 그래도 시황제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왜냐하면 비록 중원 물을 마신지 오래되지만, 원래 출신이 흉노계열이라 북방에 둥지를 틀고 있는 저들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리장성을 축조하기 위한 대 역사에 들어갔다. 현재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시대에 완성된 것이며 길이 약 2400㎞, 높이 6~8m, 두께 4.5m이다. 그러나 정작 진나라 백성들은 흉노보다는 무자비한 노동착취가 더 무서웠다. 시황제의 열의는 대단했지만 너무 서둘렀다. 그렇지 않아도 망해버린 한족의 여섯 나라 백성들은 그를 자신들의 황제로 인정하지도 않고 호시탐탐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민심을 달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는 격언만 알았지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아예 모르고 있었거나 잊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시황제는 안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자신만을 위한 역사에도 백성들을 동원하여 고생을 시켰다. 호화로운 아방궁과 자신이 죽어서 묻힐 여산능 등, 황제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각종 건설 사업을 벌였다. 비록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이 시황제가 남긴 여산능의 병마총과 만리장성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한몫 단단히 챙기고는 있지만 말이다. 백성들은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백성들의 천지개벽을 원하는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고, 실제로 연나라 출신의 형가(荊軻)가 시황제를 암살하려고 하였다. 기원전 210년, 시황제가 제국을 순시 하다가 병으로 급사하고 권력의 공백기가 생기자 그 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백성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또 그 권력이 막강하면 막강할수록 그 권력자의 빈자리 때문에 한동안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진의 멸망 불러온 농민반란 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趙高)가 승상 이사와 음모를 꾸며 시황제의 큰아들 부소(扶蘇)를 죽이고 막내아들 호해(胡亥 : 재위 BC 209~207)를 옹립하여 2대 황제로 추대하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조고는 시황제의 철권통치를 한층 업그레이드하여 무자비한 잔혹정치를 폈다. 백성들은 싸우다가 죽던가, 아니면 무자비한 통치에 고생만 하다가 죽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처음에는 농민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지식인들이 이에 합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최초의 반란은 시황제의 사후 기원전 209년에 일어났다. 주동자가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라 하여 일명 '진승·오광의 난'이라 하는데, 그들이 거병했다는 소식을 들은 농민들이 각지에서 합세하여 점차 세력이 커져 혁명군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황하 이남의 수십 개 성을 점령하고 세력을 떨쳤다. 진승은 처음에는 장군을 칭하다가 나중에는 '진나라 타도'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면서 옛 강국이었던 초(楚)나라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국호를 '장초(張楚)'라 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陳王). 진나라 장수 장감(章邯)은 기원전 208년, 대대적인 반란군 토벌에 나섰다. 사직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것이니 만큼 조정으로서도 총력전을 폈다. 정규군을 농민군이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농민군은 거병한 지 6개월 만에 진압되었지만, 결국 진의 멸망 그리고 유방과 항우의 패권다툼으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되었다. 유방 승리의 비결은 민심잡기 기원전 208년 장감(章邯)이 농민군을 진압하고 개선하였으나 이번에는 통일 이전 6국 세력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자칫하면 옛날의 전국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었다. 당시 환관 조고의 포악한 성격은 극에 달해 있었다. 승상 이사를 숙청하더니 이제는 황제 호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 부덕한 황제를 폐하여 민심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호해를 용상에서 내몰아 버리고 그 자리에 자영을 앉혔다. 한편, 초나라의 귀족출신이었던 항량(項梁)은 진승·오광의 군대가 거병하자, 경포의 군대와 합세하여 전선을 구축하고 초나라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으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장감(章邯)의 진압군에 패하고 항량이 전사하자, 그의 조카인 항우가 전권을 이어받아 유방(劉邦)과 연합하여 거록(鉅鹿)에서 장감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이후 진 황제 자영은 국사를 농단한 환관 조고를 죽이고 국세회복을 꾀하였으나 민심이 떠난 사직을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어 결국 기원전 206년 유방에게 항복함으로써 진나라의 사직은 3대 15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한편, 항우는 팽성(彭城)에 도읍을 정하고 스스로 서초(西楚)의 패왕(覇王)이라 칭했으며 거사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의제(義帝)를 시해하자, 유방이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유방은 원래 강소성(江蘇省) 풍읍의 하급 관리(농민출신)였으며 처음 거병할 당시에는 그 세가 약했으나 항우가 거두어 자신의 휘하에 두었던 것이다. 출신성분이나 무력, 무공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유방은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항우와 유방은 전우였지만, 적이 사라진 마당에 한쪽은 반드시 도태되어야 했다. 항우의 입장에서 본다면 호랑이 새끼를 키운 셈이었고 게다가 진의 황제(자영)가 유방에게 항복했다는 사실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정치적 의미가 있었다. 홍문(鴻門)의 위기를 벗어난 유방은 장량(張良)을 책사, 전략에는 한신(韓信), 정치와 행정에는 소하(蕭何)를 배치하여 전세를 역전시키니 항우는 결국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내몰리고 말았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 氣蓋世)의 힘과 무용을 떨치던 초패왕 항우는 민심을 잡는데 실패하였다. 항우의 군대가 입성하면 백성들은 달아나기에 바빴으나 유방의 군대가 오면 수고한다고 물이라도 떠왔다. 초나라 병사들이 속속 대열을 이탈하자, 이내 항우는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그를 따르는 몇몇 장수를 데리고 전전긍긍하다가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에서 포위되어 자결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漢)과 초(楚)가 천하를 두고 다투는 장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곳곳에서 내기장기를 두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짧지만 굵게(?) 살다간 진(秦)은 서양에 'China'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국의 국가명이 되었다.
학교 인성교육이 퇴색되어 가는 것을 안간힘으로 받쳐보려고 발버둥치는 현실에서 학생들의 마음을 순화시켜 동료들과 협동심을 기르고, 이웃을 사랑하고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바람직한 결실을 만들어 보고자 출간된 한 권의 책,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뿌리들의 이야기”가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와의 공존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기존에 학교 문턱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세대들까지도 이 한 권의 책이 지나온 그들의 시대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하고 현재의 학교 운영을 잘 알게 해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각 학교에 인성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지만, 담당 부서만으로는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교생이 이에 동참하고 교장 선생님 이하 여러 담임 선생님이 적극 나서 각 동네에 흩어져 있는 옛 선인들의 얼을 채취하고 또 생존하는 노인들의 체험담을 듣고 녹취하여 그것을 글로 옮겼다. 풀뿌리 인생의 잔잔한 향기가 이 한 권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들의 마음에 기성세대들이 살아온 아픈 인생사를 인식하게 함으로써 기성세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또 책 속의 갖가지 이야기들이 풍겨내는 향기는 삭막해져가는 학내 분위기를 토속적인 풍토로 만들어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을 형성하고자 출간되었다. 그러기에 이 책은 온고이지신 정신을 계승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인성은 말로만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고 생각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여유에서 싹트는 것이다. 아무리 수업시간에 인성교육을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듯이, 자라나는 학생들의 내면에 심어주어야 할 고운 심성은 주변 환경과 부모, 그리고 간접체험을 통한 경험이 절대 다수를 이루어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변화를 모르고 살아가는 산업사회에 물질에 매료되어 편리와 안락이 주어지면 그것이 삶의 전체인줄 알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내면에서 자라나는 것은 인간의 성스러움을 중요시하기보다는 물질에 예속되는 인간의 질곡을 깨달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의 매너리즘에 때로는 슬픔을 느끼곤 한다. 교실에 예사로 떨어져 뒹구는 10원짜리 동전을 보면서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게 해 주지 못하는 교육의 아쉬움도. 1970년대만 해도 1원에 건빵 7개를 주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화폐가 가치가 너무 떨어졌다고만 하기에는 뒷맛이 남는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신설된 도내 5개 특수목적고가 이달초 입학식과 함께 개교한다고 1일 밝혔다. 개교하는 특목고는 수원외고, 성남외고, 김포외고 등 외국어고 3개와 가평 국제고, 고양예술고 등이다. 수원시 팔달구 이의동 수원외고는 신입생 240명의 입학식을 오는 6일,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성남외고는 역시 신입생 240명의 입학식을 오는 3일 가질 예정이다. 김포시 월곶면 갈산리 김포외고 280명 신입생도 2일 입학식을 치르고 국내 최초 사립 국제고인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청심국제고교는 4일 신입생 100명의 입학식을 한다. 경기북부지역 유일의 예술고인 고양시 일산구 고양예고의 입학식과 개교식은 오는 3일 열린다. 이들 특목고 외 안성에서는 탈북 청소년들의 남한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한겨레고등학교가 2일 개교한다. 도내에서는 특목고를 포함한 고등학교 20개와 중학교 31개, 초등학교 27개 등 모두 78개 각급 학교가 이달초 개교식과 함께 입학식을 한다.
경남 창원시가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방문학습도우미제를 시행, 사회 양극화 해소에 나섰다. 1일 창원시에 따르면 오는 6일부터 학습 도우미 교사 15명을 180여 저소득층 가정에 파견해 아동의 학습을 지도하도록 했다. 이들 도우미 교사는 매주 2차례 해당 가정을 방문, 1대1 교습 방식으로 과제물 정리와 함께 인성 교육도 병행하기로 했다. 시는 이를 위해 지난달 공고를 통해 15개 읍.면.동별로 도우미 교사 1명씩을 선발했으며, 이들에게 의료.국민연금.산재.고용 등 4대 보험 가입 혜택과 함께 주.월차 수당 등 인건비를 지급키로 했다. 시 관계자는 "방문학습 도우미제는 전국서 처음 시행하는 것으로 사교육비의 부담이 커 교육 혜택에서 소외되는 저소득층 자녀에게 학습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양극화 해소에 어느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우리부모님들은 우리가 외출을 하여 어른들을 뵙거나 또는 다른 사람 앞에 내세울 때는 가장 좋은 옷을 입혀서 보냈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집안에서 심한 말썽꾸러기 아이라고 할지라도 부모가 함부로 대하고 야단을 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 아이를 함부로 대하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 아이는 우리 집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으니 당신도 우리아이들을 무시하지 말고 귀하게 여겨주라” 는 뜻이 아니었을까? 모든 정책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양면성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사람이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호불호(好不好)가 결정되어질 것이다. 그러한 양면성을 논의하다보면 의견이 다른 사람끼리 서로가 논쟁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럴 경우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정책이 얼마나 객관적이며 얼마나 보편성이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얼마 전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전문직은 교육만 알고 능력이 부족하다"라는 발언 이후 비판 댓글과 e-리포터들의 비판들이 있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이 발언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발언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그 이유는 대다수 많은 교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좀 속된말로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바가지만 깨뜨리는 격'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물러난 허준영 경찰청장은 많은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으면서도 경찰들의 승진적체를 위하여 일정기한이 지나면 순경에서 경장, 경장에서 경사, 경사에서 경위로 자동 승진하는 경찰공무원법의 개정을 꿋꿋이 밀고 나가 관철시켰던 일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왜일까? 얼마 전 국산영화의 스크린쿼터 감축에 항의하여 배우와 감독들이 광화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적이 있었지만 우리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야할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교원들의 능력을 도매값으로 평가절하 시키는 그 발언을 듣고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하는 우리 40만 교원들의 태도에 울분이 치솟는다. 공인은 말과 행동에 항상 신중해야한다. 말은 자기 입으로 하고 생각은 자기 머리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사람이 누군가 바로 우리 40만 교원들의 입장을 대변해야할 장관이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지어 '전문직은 교육만 알고 능력이 부족하다' 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이며 한 국가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장관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라는 말의 기본 원칙도 모른다면.... 또한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경기지사에 출마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그가 경기지사에 당선된다고 가정해 볼 때 도민의 뜻을 반영하지 못하는 사람이 지사가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 아닐까? 우스개 말이라 할지 모르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허준영씨 같은 분이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말은 한번 입속에서 나오면 주어 담을 수는 없지만 그 말 한마디에 리포터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장관이 요즘말로 유감이라고 표현하여 우리들을 다독여 줄 수는 없을까.
연세대학교 법대 대학원이 학생선발 과정에서 대학별 등급제를 시행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받은데 이어 전형점수를 놓고 조작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법대 대학원 전형에서 탈락한 이가 '점수 조작'을 주장하며 교육부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학교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조작설을 일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대 법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지원했다 탈락한 A(61)씨는 28일 전형 당시 연대 법과대학 학장과 학과장이 성적환산점수(100점)와 토플환산점수(100점)를 합산ㆍ평가하는 서류전형에서 임의로 성적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대학원 2005학년도 1ㆍ2학기 입학 서류심사표를 증거로 제시하며 163점을 받은 모 지방대 출신 지원자는 떨어뜨리고 119점을 받은 연세대 출신은 합격시켰으며 아예 일부 지원자의 성적을 조작해 대학원 본부에 제출하기도 했다고 항의했다. A씨는 또 학장과 학과장의 요구에 따라 1천만원의 기금을 학교에 내고 식사비용도 부담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당시 법과대학원 소속인 B교수는 "점수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 대학원 입학전형요강에 명시돼 있듯이 학업계획서와 진학동기 등 다른 요소를 감안해 점수를 가감했을 뿐"이라며 "대학원 전형시 학업계획서를 모두 제출하도록 돼 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B교수는 "연세대 법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A씨가 자발적으로 기금을 내겠다고 해서 받았을 뿐 먼저 요청하거나 대가성이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백태승 현 법과대학 학장은 "서류심사에서 일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자체 조사를 통해 문제점이 명확히 파악되면 조속히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A(61)씨가 최근 '연세대 대학원 석ㆍ박사과정 입학 전형 비리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진정서를 접수함에 따라 진상을 조사 중이라고 밝혀 조작논란은 교육부 조사결과가 나와야 진위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혁신위원회가 28일 전주에서 연 '교원정책 혁신방안 토론회'에서는 교장선출제 도입 여부를 놓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전북 전주시 교육정보과학원에서 학부모와 일선 교사, 사회단체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진안중학교 김종진 교장은 "교장선출 보직제는 학교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없고 책무성이 약화되는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며 "현행 교장 자격증 제도를 유지하면서 자격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대 박세훈 교수도 "교장의 자격증 제도를 강화하되 제한적 공모제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현행 제도를 부분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광삼 변호사는 "현행 교장 자격증 제도 하에서 효율적으로 교장 연수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익산교육시민연대 양민숙 사무국장은 "교장의 자격증 제도를 폐지하고 공모제를 실시하되 농어촌 벽지학교 등 공모 신청자가 없는 경우 초빙이나 파견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선출제에 찬성했다. 전주여고 정찬흥 교사도 "학교 구성원에 대해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사람을 교장으로 임용하기 위해 교장 선출 보직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교장의 자격 요건을 10년 정도로 완화하고 교장 자격증 제도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남대학교가 여수대와 통합해 17개 단과대, 9개 대학원 규모의 대학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전남대는 다음달 2일 오전 전남대 여수캠퍼스 체육관에서 김진표 교육부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남대 현판 제막식을 연다고 28일 밝혔다. 전남대는 이어 같은 곳에서 전남대 여수캠퍼스 첫 신입생을 위한 입학식과 통합기념식도 열 예정이다. 통합에 따라 전남대는 전임 교수 1천140여명으로 전국 대학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연구진을 갖추게 됐다. 학사조직은 17개 단과대, 9개 대학원(1개 대학원, 2개 전문대학원, 6개 특수대학원) 체제로 개편되며 이 가운데 3개 단과대와 2개 대학원은 여수캠퍼스에서 운영된다. 행정조직은 통합 전 두 대학을 합쳐 2총장, 6처, 2국, 15과, 1담당관, 1센터, 1실이었던 것이 통합 후 1총장(강정채 총장)과 1부총장(여수캠퍼스 이삼노 부총장), 4처, 1국, 1본부, 1관리단, 14과, 1센터, 1실로 변경된다. 전남대는 또 2008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309억여원의 통합지원금을 받아 특성화사업, 대학경쟁력 강화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특히 151억원을 대학 특성화사업에 투입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세부 연구단을 선정,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등 세계적인 연구 그룹 육성에 힘쓸 방침이다. 강 총장은 "대학 역량을 강화하고 우리나라 고등교육 체계 개선에 기여하기 위해 통합을 추진한 만큼 전남대의 국제 경쟁력이 향상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구성원들이 한 가족이라는 동질감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충남도는 올해 민간 보육시설의 영아 보육료를 국.공립 시설 수준으로 조정하고 차등보육료 전액지원 대상을 차상위계층으로 확대하는 등 보육 지원을 확대키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도는 올해부터 만 2세 이하 영아에 대한 기본보조금이 도입됨에 따라 민간 보육시설의 보육료를 만1세 미만의 경우 지난해 36만원에서 35만원으로, 만1세는 36만원에서 30만8천원으로, 만2세는 30만3천원에서 25만4천원으로 각각 인하키로 했다. 또한 만 4세 이하 저소득층 영.유아를 대상으로 부모 소득과 아동 연령에 따라 지원하는 '차등보육료'는 4인 기준 도시근로가구 평균소득 70%(월 247만원) 이하까지로 확대돼 월 35만원에서 6만3천원까지 차등 지원되며 전액지원 대상도 지난해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서 차상위계층으로 확대된다. 만 5세 이하 아동의 균등한 교육 기회 제공을 위한 무상보육료 지원 대상도 지난해 4인 기준 도시근로가구 평균소득 80%(월 272만원) 이하에서 90%(월 318만원) 이하로 확대된다. 도 관계자는 "이에 따라 도내 보육시설 이용 어린이 4만4천600명 중 2만7천600명(62%)이 보육료 지원 혜택을 받게 된다"며 "보육료 지원을 받으려면 관할 읍.면.동사무소를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지난해 11월부터 두달간에 걸쳐 전국 초․중․고 65개교에 대해 비정규직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취업규칙과 최저임금 등의 법 위반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이번 조사에서 적발된 법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시정조치를 내리고 교육부에 조사결과를 통보해 일괄적으로 개선토록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노동부는 학교 노무관계자를 대상으로 노동관계법 교육을 실시하고, 학교 비정규직 등 근로자의 복무등에 대한 규정(취업규칙)을 표준화하도록 해 각급 학교간 혼선과 법 위반을 예방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 학교관계자들의 노동법 이해 부족 등으로 총35건의 법규 위반이 적발됐다. 구체적인 위반 사항은 근로조건 명시 4건, 최저임금 2건, 취업규칙 15건, 근로시간 1, 휴게 3건, 퇴직금․연월차수당 산정착오 3, 휴가 1건, 근로자명부 미비치 등 6건이다. 한편 조사결과에 따르면, 총 65건의 사용유형 중 학교가 강사를 직접고용한 사례가 40건으로 다수를 차지했고, 학교와 개인강사간의 도급계약은 12건, 학교와 교육업체 간의 도급계약은 11건, 학교와 교육단체간 도급계약 체결했으나 실제로는 파견사용한 불법 사례도 2건이 적발됐다. 특히 학교와 개인강사간 도급이나 직접고요 모두 도급과 근로관계의 특성이 혼재돼 구분이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았고, 학교와 교육업체의 도급은 컴퓨터 업종에만 나타났다. 이외에 특기적성강사 외에 조리원, 영양사, 조리사, 사서, 교무․전산․행정․과학․특수교육보조원 등 비정규직의 계약기간, 근로시간, 임금수준, 기타 근로조건 등은 교육부의 ‘회계직원 계약관리기준’에 따라 적용되고 있었다. 계약기간은 통상 3월에서 3년 사이였으며, 수업시간은 주 1-3회에 1-4시간이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 위반을 하는 등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초․중․고에 대해 노무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학교폭력예방과 교육복지증진을 위해 현재 시범운영 중인 학교사회복지사에 대한 활용을 높여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교사들은 교내 사회복지실 이용에 대해 만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부는 최근 교원대에서 ‘학교폭력예방 및 교육복지증진을 위한 사회복지사 활용 연구학교 합동보고회’를 갖고 전국 22개 시범운영 중학교 교사(482명)와 학생(1880명)의 설문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교사 76%는 사회복지실 이용 경험이 있으며 이용 교사의 69.2%는 학교생활 부적응자나 비위학생 상담,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 도움 요청 등 ‘학생의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교사의 90.3%는 ‘사회복지실이 꼭 있어야 한다’고 답했으며 ‘학생지도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교사는 86.9%에 달했다. 학교사회복지사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교사들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42.0%) ▲지역사회 자원은 연계하는 사람(24.4%) ▲상담하는 사람(17.2%) ▲학교문화를 변화시키는 사람(10.5%) 등 우호적인 응답이 많았다. 사회복지사에 대해 학생들은 65.2%의 학생들이 이용 경험이 있으며 81.8%의 학생들은 ‘친구들에게 사회복지실 이용을 적극 권장하겠다’고 응답했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사회복지사를 활용한 학교사회복지사업이 학교문화를 즐겁고 편한 곳으로 변화시킨 결과”라며 “학교폭력예방과 복지 친화적 환경조성에 학교사회복지사가 기여하고 있는 만큼 이 사업을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2004년 5월 학교폭력예방 및 교육복지 증진을 위한 사회복지사 활용 연구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한 이래 전국 초·중·고에 약 100명의 사회복지사가 배치돼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교육인적자원부와 함께 ‘외국인과 함께하는 문화교실(CCAP)’ 참가대상학교를 11일까지 모집한다. 모집대상은 수도권 50개교, 기타지역 50개교, 외국인과 접촉이 어려운 도서벽지학교 4개교 등 총 104개 학교다. 신청은 인터넷(http://ccap.unesco.or.kr)에 접속, 학교에 관한 기본정보를 입력한 후 참여동기와 운영방안을 한글화일로 작성해 첨부하면 된다. 선정된 학교는 외국인 문화교류자원활동가로부터 매월 1회씩(도서벽지학교 분기 1회) 1개국의 문화교실 수업을 지원받게 된다.
"…이야기하기 힘든가 보구나.(정서 되돌려주기) 그럼 선생님이 한번 이야기해볼까?/ 네./ 음~ 선생님은 지영이가 상담을 받는 이유가 지난번 지영이 학급에서 있었던 안 좋은 일 때문인 것 같은데…지영이는 어떻게 생각해?/ ……침묵/ 대답이 없다는 것은 선생님 말이 맞다는 뜻이니?(해석)/ 네에. 맞아요./ 자, 그럼 지영이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 지영이가 상담받기를 참 잘했구나하는 생각이들까?(화제 바꾸기)……" 이 대화는 도벽이 있는 학생과 교사의 상담사례로 실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현한 것이다. ‘초등학교 현장 상담대화기법’(학지사)은 이렇듯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대화 상황을 채집, 이를 대본 원고로 정리하고, 배우 역할을 할 학생을 섭외해 연기를 지도, 2장의 CD로 제작했다. 청주교대 교육대학원 상담 교육과 1~3기 이석두 충북 영동 영동초 교사 등 40여 명의 교사들이 4년간 사례 채집에 참여했으며 대본은 침묵, 명료화, 내용 되돌리기, 요약, 정서 되돌리기, 저항다루기, 즉시성, 화제 바꾸기, 구체화, 직면, 정보제공, 자기 개방, 해석 등 14개의 상담대화기법별로 구성했다. 또 각 기법마다 두 개의 모의 상담 장면 과 다섯 가지 연습상황이 들어있어 자연스럽게 상담대화기법을 익히도록 했다. CD제작을 총괄한 박성희 청주교대 교수는 “아동과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초등 담임교사는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아동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교육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 CD에 나온 방식을 참고해 아동과 대화하고 상담한다면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