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교과 세부능력 사항에 달랑 두 줄만 적어 주고, 그것도 다른 아이들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똑같은 내용이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최근 어느 3학년 학생의 분노에 찬 하소연이다. 이 말을 들은 순간 한편으로는 학생에게 미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교사에 대한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당락 좌우하는 초미의 관심사 학부모들은 매년 어떤 교사를 만나는가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일반고 대다수 학생이 수시전형으로 대학진학을 하기 때문이다. 담임교사나 교과 담당 교사를 잘 만나는 게 수시합격의 비결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 여러 교육활동 중에서도 특히, 학생부 기록을 자상하고 성의있게 작성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럼에도 학생의 불만이 반복되는 원인은 두 가지다. 우선, 교사가 학생부 오류 점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경우다. 학교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학생부 기록을 교차점검하며, 학생들에게 직접 확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부 교사는 동료 교사와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를 거부하거나, 의도적으로 학생부 점검 시기를 넘겨 마감 시간에 작성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다. 학생들도 이의 제기를 꺼린다. 해당 교사가 이를 불쾌하게 여길…
2022-08-28 08:17하필이면 만우절이었다. 열일곱 살 소녀들의 다소 짓궂은 장난에도 선생님들은 기꺼이 속아주셨다. 유랑극단의 변사처럼 첫사랑 얘기를 풀어내는 선생님의 유려한 말솜씨에 사춘기 여고생의 마음은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탔다. 눈부시게 만개한 벚꽃 같은 소녀들의 웃음으로 교정이 들썩였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금방이라도 별들이 쏟아질 듯 맑은 밤이었다. 흥겨운 콧노래도 절로 났다. 현관문을 열 때까지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나의 역할일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 씩씩하게 엄마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볼일의 해결이 급선무인지라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검붉은 피로 범벅이 된 옷가지가 변기 옆에 쌓여있었다. 너무 놀란 탓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달려오신 옆집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아 거실로 나왔다. 아주머니께서 막냇동생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갔다고 말씀해주셨다. 담담 하려 애쓰셨지만,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졌다. ‘귀한 자식은 귀신이 탐한다더니.’ 짧은 설명 끝에 한숨처럼 내뱉는 아주머니의 낮은 혼잣말이 귀에 꽂혔다. 사고가 심상치 않다는 걸…
2022-08-27 11:13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20만 명에 육박한 가운데 개학을 맞이했다. 학생 건강을 지키며 교육해야 하는 학교의 부담은 크다. 이번 방학은 그야말로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폭우는 176개 교육시설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큰 피해를 남겼다. 교육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불쑥 나온 만 5세 취학을 골자로 한 학제 개편안은 불쾌 지수를 높였다. 교육부 장관 사퇴와 교육비서관 교체가 있었지만, 아직도 정책 형성과정 어디서 잘못이 비롯된 것인지 알 수조차 없다.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다. 이제 이런 잘못과 실패는 없어야 한다. 신임 교육부 장관은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 입은 작고 귀는 큰 장관, 인기보다는 현장 애환 해소에 관심이 큰 장관, 교육개혁이나 혁신 같은 거창한 이슈보다는 교사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장관이었으면 한다. 학제 개편에 가린 교권 침해 이슈 폐기된 학제 개편 논란이 더 아쉬운 것은 생활지도법 마련 등 국가적 교권 보호 시스템 필요성이 한창 이슈화되던 시점에 터졌다는 점이다. 학교와 교원의 어려움을 국민과 정부, 정치권에 제대로 알려 교권 보호 시스템을 더 강화할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갑자기 터진 학제 개편 논란으로 생활지도법 이슈
2022-08-21 08:03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 지금까지도 사회 곳곳에서는 장애인 지원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필자는 얼마 전까지 광주교대에서 장애학생지원센터를 맡아 운영했다. 장애학생지원센터는 2007년 제정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명시된 법정기구다. 광주교대 장애학생지원센터는 2020년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 우수대학과 2021년 장애대학생을 위한 원격수업 수강 지원 사업에 선정돼 장애학생의 교육지원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강화되는 지원 정책 장애 학생 지원 정책에는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이후 장애 학생의 교육권 보장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교육기관은 무엇보다 모든 법규를 잘 숙지하고 준수해야 한다. 정보접근·편의시설 제공, 교내 외 활동 참여 제한 및 배제, 차별 및 모욕 금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반할 경우 형벌은 물론, 입학생 정원 감축 등의 제재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법무부 장관의 시정명령 등을 받을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장애학생의 개인정보가 당사자를 제외한 교원이나 다른 학생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실습, 상담, 평가 시 주의해야 한다.…
2022-08-20 08:02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1명으로 3년 연속 세계 꼴찌를 기록했다. 저출생·고령화 현상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의 0~14세 인구 구성 비율이 12%로 세계평균(2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65세 인구 비율은 17%로 세계 평균(10%)보다 높다. 문제는 출산이 아니라 보육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내놓은 많은 처방에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어느 하나 시원하게 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원인 파악이 제대로 안 되니 처방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고,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 우리나라는 결국 세계 최저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병원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학교○○병원 어린이집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병원 어린이집의 존재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젊은 여교사들의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육아시간의 활용도가 높은 편이고, 육아휴직 중이거나 앞둔 경우도 있다. 이 여교사들은 저출산의 원인은 보육 문제라는 데 대부분이 공감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나름의 진단을 통해 출산 인센티브와 다양한 복지혜택 등을…
2022-08-19 13:02학교전담경찰관(이하 spo)이 매일 아침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간밤에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들을 챙기는 것이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A, B 두 중학교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이다. A중학교 2학년 ‘기훈이(가명)’는 아파트 복도에 몰려온 16명의 아이들(B중학교)이 현관문을 발로 차며 위협하는 소리에 공포감을 느꼈다. 기훈이는 직접 경찰에 신고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다급히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알렸고 친구가 대신 112로 신고했다. 출동 경찰이 작성한 신고 처리표의 사건 개요란에는 “친구 집 앞에 10명 이상이 찾아와 벨을 계속 누른다. 친구를 대신해 신고한다”라고 간단히 적혀 있었다. 먼저 기훈이 학교의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업 중이라 받지 않아 문자로 자초지종을 보내 놓고 학생부장 교사에게 전화를 건다. 역시 받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교감 선생님에게 전화하니 받으셨다. 신고 내용에 대해 알리고 학생과 면담이 가능한지 학부모와 학생에게 의사를 물어달라고 요청한다. 수업으로 바쁜 담당 선생님들을 대신해 교감 선생님께서 면담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제복을 챙겨 들고 학교로 출발했다. 기훈이를 기
2022-08-18 11:12안나 도스토옙스카야 지음|엑스북스 펴냄 교사는 두 번 태어난다. 처음 발령을 받고 교사가 되었을 때 처음 태어나고 자식이 생기면 두 번째 태어난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부모 뜻대로 성장하지 않는 것을 실감하고 엄격하기만 했던 학생에 대한 지도 기준이 누그러뜨려지기 마련이다. 내 딸아이는 비교적 순탄하고 자랐고 입시도 무난하게 치렀고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딸아이와 의견 충돌이 많았고 심지어는 버릇이 없으며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느꼈던 적도 간혹 있었다. 오죽했으면 다른 집은 어떻게 자식을 훈육하는지 궁금한 나머지 홈스쿨링을 성공적으로 한 부모를 인터뷰하는 책을 내려는 생각도 했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에 대한 확증편향을 갖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본인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자식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자식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고 성에 안 차서 화가 나고 자괴감에 빠져들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자식이 하는 일에 비교적 간섭하지 않고 공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대학 진학을 할 때만은 딸아이에게 교육대학에 지원하도록 권했다. 그러나 딸아이는 우리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본인이 원하는 전공을 쫓아
2022-08-18 11:06초등학교 3학년, 나는 항상 나머지 공부를 하는 열등생이었다. 읽기도 셈도 잘 안 되었던 나는 늘 선생님에겐 무거운 과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늘 속에 그저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있는 아이. 괜히 주눅 들고 위축되어 남의 눈치만 살피면서 무언갈 끄적이다 보면 일과가 끝나 있었다. 그렇다고 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심하고 조용했던 나는 친구를 사귀는 데에도 재능이 없어서 늘 조용히 주변부에 머물렀다. "다음은 지민이가 읽어 보자." 국어 시간,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지명하셨다. 그래도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시 내 이름을 지그시 부르셨다. 읽기에 서툴던 나는 떨리고 긴장된 마음에 주춤할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였다. 선생님이 성큼 다가오셨다. 나는 이제야말로 불호령이 떨어지려나 보다, 흠칫 놀라며 벼락이 떨어지기만을 참담한 기분으로 기다릴 뿐이었다. "그럼 같이 읽자. 네가 한 자 읽으면 내가 한 자 따라 읽으마. 해 볼까?" 그러고도 한참 입을 떼지 않았던 나. 시간은 덧없이 흘렀다. 여러 번의 망설임과 숱한 주저함을 선생님은 참 끈질기게 기다려주셨다. 결코 채근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2022-08-16 10:27지난 8일, 박순애 교육부장관이 취임 35일만에 사퇴했다. 취임 전부터 음주운전 경력 등의 논란에 흔들린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한 소위 ‘한 방 카드’가 자충수가 됐다. 만 5세 취학연령 하향이 그것이다. 교육거버넌스의 총체적 부실이 주된 원인이다. 교육 비전문가 일변도로 주도되고 있는 교육거버넌스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취학 연량 하향 같은 메가톤급 이슈에 대한민국이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비전문가 외부 수혈의 한계 돌이켜 보면, 새 정부 초기 인수위 시절부터 ‘교육’은 ‘과학’과 ‘기술’보다 후순위에 놓인 과학기술교육분과위에서 명맥만 유지했다. 그 가운데 논의된 정책마저도 교육부 폐지, 대학 관련 업무의 과학기술부 이관 등 교육을 등한시하는 것들이었다. 강물에 빠질 뻔한 교육부를 겨우 건져내긴 했지만, 김인철 교육부총리 후보자의 자진 낙마로 휘청했다. 이어, 국회 청문회를 생략한 채 박순애 부총리 임명을 강행했지만, 두 번의 ‘실격 처리’는 결국 정권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는 악수가 됐다. 더욱이 교육부 차관과 차관보 역시 교육 관료가 아닌 국무총리실과 기획재정부에서 수혈해 온 외부인사다. 지난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만
2022-08-15 09:48우리는 자유와 권리, 성과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타인을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며 개인 발전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복지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만 우선하는 태도를 보인다. 능력주의 강조…유대감 시들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며 타인과의 경쟁을 중시하면 상호 협조와 유대관계에는 무심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만성적으로 외로움에 젖어 있으면서도 이웃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별로 없고, 주변의 관여를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면서 혼자서 자유롭게 지내려고 한다. 그러나 혼자 살기 편한 생활구조와 1인 가구의 증가는 외로움을 유발하는 경향을 보인다. 2020년 한 기관 조사에 의하면 성인의 60%가 외로움을 느끼며, 특히 20~30대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간의 외로움은 우리의 사회성을 차단하고 사회적 접촉을 점점 주저하게 만든다. 10여 년 전에 수행된 미국 브리검 영 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개인주의로 인한 지나친 외로움은 조기 사망률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우리는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며 철저히 구획화된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2022-08-15 0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