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군들 사연 있는 이야기 하나 없을까마는 40년이 가까워지는 교직인생에서 쓰고 싶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 같다. 어렸을 때 할머니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소설책 2~3권은 거뜬할 거라고 얘기하셨다. 나도 그랬나보다. 교단수기공모라는 글을 읽는 순간 바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2시간 만에 완성한 원고를 수정하자마자 바로 보냈으니까. 손에 가시처럼 그 아이는 불쑥 불쑥 내 삶의 어느 순간에 나타나 마음을 불편하게하고, 궁금하게 하고, 슬프게 하기도 했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괜히 미안하고 눈치가 보이고, 상대가 마음을 다칠까봐 노심초사했던 기억의 편린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 자신이 무능하고 괴로웠던 시간들. 그런데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쓰고 나니 마치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한 것처럼 마음이 조금 덜 무겁다. 살면서 후회 없는 인생도 있을까? 남에게 한 번도 상처주지 않은 삶도 있을까? 언제나 봄날처럼 따뜻하고 화사하게 지낸 삶도 있을까? 아침 출근길, 화단 옆 시멘트 틈 사이에 돋아난 잡초를 보고 무릎을 구부려 앉아 들여다본다. ‘그래, 열심히 살아. 바람도 마시고, 물도 마시고, 구름도 보면서. 햇살에 빛나는
2016-10-10 10:11지금부터 30여년전, 나는 5년차 교사였다. 새 학교로 발령받아 처음 출근하는 날. 버스에서 내려 교문에 서니, 운동장을 지나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교무실이 보였다. 다행히 교무실 문은 열리는데 사람은 안보이고, 날씨는 차가운데 난로도 피워져 있지 않았다. ‘교장선생님도 오늘 부임하신다던데 나 혼자 참 빨리 도착했구나.’ 혼자 중얼거리며 추워서 앉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교무실 밖을 무연히 바라봤다. 눈송이가 하나둘 내리는 차가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6학급의 작은 시골학교라 학생 수가 적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넓은 운동장을 적은 숫자의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는 게 아침햇살에 반사돼 약간은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뛰는 아이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과 공을 쫓아 뛰어가는 데 이상하게 옷자락이 유난히 펄럭거리는 것이다. 아무리 형의 옷을 물려 입었더라도 너무 덜렁거려서 ‘혹시 팔이 없는 아이인가?’라고 생각했으나 그러기에는 너무나 잘 뛰고 움직임이 빨랐다. 그러나 교문을 들어서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이내 그 아이는 잊혀졌다. 나는 5학년을 맡게 됐다. 교장선생님께서 "잘 부탁합니다. 그 반…
2016-10-10 10:10어찌보면 작은 해프닝으로 끝난 일을 적은 글이기에 다소 부끄러움이 앞선 수상소식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아이들에게서 자살이라는 말이 너무도 쉽게 회자되는 상황에서 저에게는 강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어서 언젠가 한번은 곱씹어 보고 싶은 이야기였다. 막연히 자살하거나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곳이 학교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돌이켜 보면 겁도 없이 시작한 교직생활이었다. 일년 일년 교직 경력이 쌓여갈 때마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전달자가 아니라 보다 많은 부분에서 아이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졸업 후 찾아와 10년 전에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는 제자들을 볼 때마다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는 절망감을 느꼈을 때 찾아올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아직 여물지 않은 글을 선택하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2016-08-18 22:06인문계 고교의 학기 초 학생 면담은 대부분 장래희망이나 학업에 대한 고충, 희망 대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뒤 가볍게 고민이나 학교폭력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20여분 정도면 끝나곤 한다. 5년 전 4월 면담 마지막 날, 내겐 한 학생과의 잊지 못할 만남이 있었다. 7교시 마지막 자율학습 시간, 미영(가명)이와 시작한 면담은 특별했다. 작은 키에 마련 몸매, 얌전한 성격의 미영이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머리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수업시간에 졸기도 하고 가끔 이해가 되면 필기도 했지만 잘하는 과목은 별로 없었다. 장래희망은 공예가였는데 막상 물어보니 공예가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중학교 미술시간에 했던 색종이 바구니 짜기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공예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예술적 재능이 커 보이진 않았다. 성적에 대해서도 별반 할 말이 없었다. 대학 진학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했다. 딱히 싫어하는 것도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민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때 마지막 차례인 다른 학생이 재촉하며 교무실 문을 빼꼼히 열었다. 그렇게 면담은 끝나가는 듯했다. 적어도 미영이가 불쑥 충격적인 말을 던지기 전까지는.
2016-08-18 22:03이번 수기를 쓰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준 공업기계직 9급 공무원 준비반 학생 11명. 이중 세 명이 지난해 12월 최종 합격했다. 합격을 한 학생도 떨어진 학생도 똑같은 제자인지라 기쁘지만 또한 짠한 마음이 아직까지 공존하고 있습니다. 수업 중에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으면 수기에 등장하는 제자 2명에 대해 얘기한다. 언제나 내 가슴을, 듣는 아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앞으로 수년이 지나 이 2명의 제자가 40대가 됐을 때 얼마나 성공했을지 보고 싶다. 물론 돈을 많이 벌고 큰 명예를 가진 제자가 꼭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가족과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잇는 직업이 있고, 가족이 갑자기 병났을 때 치료할 수 있는 돈이 있다면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다. 순대국을 아주 좋아한다. 지나가다 만나면 같이 순대국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옛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성공한 제자가 될 것이라 믿는다. 밤 10시가 다 돼가는 지금, 제출한 수기를 읽고 또 읽어 본다. 학생들이 있어 학교가 있고, 학교가 있어 내가 있음을 또다시 느끼다. 매년 내게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수원공고 학생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아이들을 지도하는 100여 명의 수원공
2016-06-30 17:572015년 10월 17일 토요일은 특성화고 대상 공업기계직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시행하는 날이다. 이제 10일 남았다. 오늘은 학교장 재량 휴업일(가을 방학)이 시작되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11명의 기계직 공무원반 학생들이 등교해 지도교사인 나를 보고 인사한다. 5명은 기계과 학생, 5명은 자동차과 학생, 1명은 자동차과를 졸업한 공무원 3수생이다. 매일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우리 아이들, 오늘은 아침부터 서너명이 졸고 있어 약간 힘이 빠진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여러분들, 어제 내가 말했죠. 이젠 잠자는 시간을 줄이라고. 잠이 오면 여러분도 이젠 성인 몸과 같으니까 커피 한잔 정도 마시라고. 몇 그램도 되지 않는 눈꺼풀, 위로 들어!” 깜짝 놀라 잠을 깬 한 아이가 “선생님, 어제 잠이 많이 와서 커피 한 개를 타서 먹었는데, 계속 잠이 와서 또 먹고 또 먹었는데도 계속 잠이 와요. 커피 3잔 먹어도 잠이 오는데, 잠 안자는 방법 없나요?”란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갑자기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 줄까? 넌센스 퀴즈나 유머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10일 동안…
2016-06-30 17:47신규교사로 지민(가명)이를 맡게 됐을 때 끊이지 않는 학생 간의 갈등으로 버거워서 운 적이 많았다. 그 때 중등교사인 친언니가 이런 말을 했었던 게 기억난다. “네가 지민이를 만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 학생 입에서 널 만나서 감사했다는 말을 들어야 돼. 그건 의무야. 우리가 선생님을 하는 목적이고.” 이 말을 되새기며 1년을 보냈다. 그 시간들이 4년 후 금상이라는 큰 기쁨으로 저를 웃게 만든 것 자체가 감격스럽다. 단어 하나, 어미 하나 자세히 첨삭해주신 아빠, 삶의 고비마다 정신적 지주가 돼준 언니 그리고 무한 사랑으로 지지해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그리고 부족한 담임을 잊지 않고 찾아와 준 지민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또한 항상 교사의 권익을 위해 애쓰시고 이런 뜻 깊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메모하는 습관과 사전을 찾는 습관을 길러주신 사랑하는 엄마께 이 상을 드리고 싶다.
2016-06-08 13:53스물일곱 나이에 난 첫 발령을 받았다. 일반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대를 뒤늦게 들어가 남들보다 졸업과 취업이 늦었다. 한 번에 올 수 있는 길을 빙빙 돌아오니 교사에 대한 간절함이 남달랐다. 그토록 바라던 초등교사가 되고 첫 담임을 맡았다. 2011년 3월 2일. 30명 아이들의 이름을 하루 만에 외우며 마치 출산을 앞둔 산모처럼 아이들과 만날 날을 손꼽았다. 드디어 첫 날, 나는 문 앞에서 한 명씩 악수로 맞이했다. 4학년을 갓 지난 아이들이라 얼굴에는 아직 젖살이 있고, 키는 내 허리 정도였다. 하나같이 앳된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이름표에 맞게 앉았다. 그런데 유독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키는 내 어깨 높이, 한 쪽 얼굴은 마비가 돼 힘겹게 눈 뜨는 이 아이. 당시 스물두 살 나이에 5학년인 지민(가명)이었다. “선생님, 내 자리 어디예요?” “응. 안녕 지민이구나. 여기 앉아.” “나 눈이 아파요. 여긴 안 보이는데. 딴 자리 없나?” “첫날이라 번호대로 앉는 거야. 선생님이 칠판 잘 보이도록 글씨 크게 쓸게.” 이렇게 웃으며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반말이야 존댓말이야, 다른 애들은 다 이름표에 앉는데 무슨 불만이 저렇게 많은 거야?’라며 지민이가 나
2016-06-08 13:50‘나비를 키우는 아이들’은 남대구초 3학년 학생들과 ‘언어활동 중심 동물의 한 살이’ 프로젝트수업을 진행하면서 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이 학생들은 당시 1학년부터 3학년 때까지 3년간 담임을 맡아 지도했던 터라 유달리 추억도 많고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남대구초는 학년 당 2학급인 대도시 속 소규모학교다. 이곳에서 나는 6년 동안 대구교대 교수님들과 프로젝트수업을 함께 연구했다. 이 글의 소재가 된 동물의 한살이 프로젝트는 국어과의 언어 사용 능력 신장 방법을 고민하면서 시작됐다.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사를 고려해 과학과의 동물의 한 살이 단원을 국어과와 통합해 본 것이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각자 기르고 싶은 동물을 선택하고 그 이유를 들어 1·2차 글쓰기를 했다. 또한 동물의 한 살이 과정을 역할극, 시, 노래로 표현하고 개인별 책으로 엮으면서 68시간의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다. 애벌레가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을 관찰해 설명하는 글쓰기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생명의 신기함과 소중함을 배웠고 친구들과 함께 사육 상자를 돌보면서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협력, 배려, 나눔, 존중을 실천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
2016-04-14 20:53꽃 주위를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오월의 나비를 보면, 교실에서 애지중지 키운 나비들을 창밖으로 날려 보내주면서 너무나 아쉬워했던, 뿌듯해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때는 2010년, 남대구초 재임시절 3학년 아이들과의 특별한 경험이 떠오른다. 3학년 1학기 과학·국어를 통합한 동물의 한 살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내가 교실에서 기르고 싶은 동물이란 주제로 글쓰기를 했는데,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달팽이, 나비를 키우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 이유는 소리가 나지 않아 공부에 방해되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아 공기오염이 없고, 털이 날리지 않아 병에 걸릴 염려가 없다는 것이었다. 모둠별로 장수풍뎅이 애벌레,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애벌레, 사슴벌레, 개구리 알, 달팽이를 준비했다. 그런데 나비 알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남해에 있는 나비생태원에서 나비 알을 주문했다. 4월 25일, 배추흰나비와 표범나비의 알이 동대구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생태원 관계자는 나비 알을 택배로 보내면 알이 스트레스를 받아 부화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며 고속버스 화물칸에 실려 보낸 것이다. 그 상자를 승용차 뒷좌석에 조심스럽게 실어 와서 교실로 옮겼다. 상자 속에는…
2016-04-14 2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