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이 미라의 주인공은 문정왕후의 종손녀. 부검 결과 미라의 태아는 머리가 질 입구까지 내려와 있었고 산모의 자궁은 파열된 끔찍한 상태였다. 자그마한 몸집의 이 여성은 출산의 고통 속에 아기와 함께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요즘에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출산하는 여성이 없다. 하지만 옛날에는 미라가 된 ‘윤씨’처럼 죽어간 산모와 태아가 부지기수였다. 20세기 초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유아 사망률은 4명 중 한 명 꼴이었다. 출산 과정에서 죽는 것까지 합치면 거의 절반가량이 세상에 태어나 걷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다. 출산의 고통은 커진 뇌와 좁아진 골반 때문 우리는 흔히 출산의 고통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만 동물의 출산은 사람보다 훨씬 수월하다. 고통스런 출산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간이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두뇌가 커져 생긴 부작용이다. 인간은 두뇌가 커지면서 고도의 기술을 만들고, 추상적 사고 능력과 언어 능력을 키워 복잡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인간은 같은 몸 크기의 포유류에 비해서는 두뇌의 크기가 6배나 크며,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나 고릴라에 비해서도 3배
2005-08-01 09:00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저금리와 유동성 함정 이자율 곧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은 싼 이자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 그만큼 전보다 자금을 많이 빌려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생산이 늘어난다. 금리가 낮은 자금이 시중에 풍부하면 가계 소비도 부추겨진다. 늘어나는 소비는 생산 증가와 맞물려 경기를 확대시킨다. 이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금리 저하와 통화량 증가 →기업 투자, 가계 소비 확대 →경기 확대 그런데 저금리가 경기를 확대시킨다고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현실에서 반드시 공식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금리가 낮아 자금을 얻기 쉬운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투자에 의욕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경제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졌을 때 그런 일이 생긴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가 충분히 낮은데도 경기가 좋아지지 않아 마치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경제 상태다. 현금을 구하기도 쉽고 예금해봤자 이자도 못 버는데 투자와 생산, 소비가 요지부동 늘어나지 않는 경우다. 유동성 함정은 금리가 매우 낮을 때 생긴다. 경기도 좋아졌다가는 나빠지고 나빠졌다가는 다시 좋아지듯이 금리도 경기와 함께 올랐다…
2005-08-01 09:00박경민 | 역사칼럼니스트 cafa.daum.net/parque 불가피했던 충돌의 시작 오리엔트를 두 번째로 통일한 페르시아! 이란에서 발흥하여 리디아와 신 바빌로니아를 정복하더니 기원전 525년에는 제26왕조의 이집트도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와 나일 강 일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니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나아가 발칸 반도에 둥지를 틀고 있는 그리스의 폴리스가 잔뜩 긴장하게 되었다. '빛은 동방에서(Lux ex Orient)'가 아니라, '전운(戰雲)은 동방에서(Guerra ex Orient)'가 된 것이다. 거대한 통일제국 페르시아는 전성기인 다리우스 1세 치세에 그 여세를 몰아 그리스를 원정하게 되었는데, 그의 눈에 지중해가 눈에 들어오니 바다 건너편에 있는 발칸반도와 펠로폰네소스의 폴리스를 평정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폴리스는 대내적으로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에 걸친 체제정비를 통해서 문화적으로는 성취기반을 확립하면서 식민지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입장에서 페르시아라는 존재는 눈엣가시와 같았다.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는 아테네를 비롯한 폴리스와 흑해와 지중해 방면으로
2005-08-01 09:00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 말은 어떻게 생긴 말일까?’, ‘언제부터 쓰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원에 대한 궁금한 점을 물어오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어원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예전에 우리말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시대 이전의 우리말에 대해서는 전체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비교적 우리말의 옛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시기는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우리말을 온전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라고 할 수 있다. ‘행주치마’의 어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은 것인데 예전에 교과서에 실렸던 내용이라고 한다. "이 싸움의 경과를 살펴보면, 비단 실전(實戰)한 장졸(將卒)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단결된 국토 수호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으니, 부녀자들이 일제히 앞치마를 해 입고, 그 치마폭으로 돌을 날라 다투어 석전(石戰)을 도운 것이 그것이다. 이로 하여 앞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행주 대첩에서 행주치마가 유래했다는 내용은 백과사전에도 올라 있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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