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밥상에 올라온 콩나물국. 씹을 때마다 줄기가 톡톡 터지면서 입안으로 퍼지는 물기가 싱그럽다. 버스정류장에서 본 은행나무. 나란히 서 있어도 성질 급한 놈은 벌써 노랗게 숨이 넘어가고 느긋한 놈은 아직 초록이 성성하다. 거미줄에 맺힌 이슬의 아름다움에도 눈길이 간다. 무심히 지나쳤던 모든 것에 눈길이 간다. 창의성이 요구되는 광고장이로 살아온 저자의 ‘책은 도끼다’(박광웅‧북하우스)를 읽고 나면 촉수가 예민해진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서 읽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카프카’를 인용해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생각이 에너지다’ 등 인문학적 깊이가 있는 카피로 유명한 광고인다운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꽃 보내고 보니/ 놓고 가신/ 작은 선물/ 향기로운 / 열매(본문 24쪽) 누구나 꽃이 지면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꽃이 두고 간 선물이라는 ‘이철수’의 시선. 저자는 이 판화 그림을 본 후로는 열매를 보게 되면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보고 만질 수
2012-02-08 11:20물은 굽이굽이 흘러서 바다로 간다. 바다로 흘러가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 비로 내려온다.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이유는 바다가 다 받아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다가 이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 줄 수 있는 원동력은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내려감은 올라감이다.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아래로 두려움 없이 내려가는 용기도 필요하다. 폭포는 자신이 아래로 떨어질 시점에서 고민하거나 멈칫거리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던진다. 아래로 떨어진 물은 다시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물을 받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계적으로 물을 퍼 올리는 서양의 분수 밖에 없다. 폭포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지지만 분수는 기계적 힘에 의해 강제로 올라갔다가 추락한다. 학생들의 아픔을 감지하려면 학생들에게 내려가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 위에서 ‘관망’하지 않고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내려가서 ‘관찰’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감동적인 수업을 하려면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학생들의 마음을 읽으려면
2012-02-04 14:58‘가르치다’는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어 배우게 하다는 말이다. ‘가르키다’는 '가르치다'의 잘못된 표현이다. 예를 들면 ‘동생을 가르켰다’가 아니라 ‘동생을 가르쳤다’가 맞는 말이다. ‘가르치는’ 일에는 언제나 혼신의 힘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한다. ‘가르치는’ 일은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가르치는’ 일은 내용과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기보다는 자신의 철학과 신념이나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이다. 특정 내용에 대한 자신의 체험적 스토리, 거기에 담겨진 철학과 신념, 지식을 얻는 동안 고뇌했던 체험적 열정을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치는’ 가운데 학생들이 받는 감동은 ‘가르침의 기교’에서 오지 않고 가르침에 임하는 스승의 ‘자세와 태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가르침은 기법과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과 열정, 자세와 태도의 문제다. 제자가 원하는 것은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메시지에 대한 스승의 관점과 철학, 체험적 스토리와 열정이다. ‘가르치다’라는 말과 혼동될 수 있는 말이 바로 ‘가리키다’이다. ‘가리키다’는 손가락으로 어떤 대상이나 사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말이다. 스승은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사람이므로 ‘가르침’은 곧…
2012-01-16 09:18아들이 죽었다…. 아들이 살해당했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 ‘히로시’는 목이 잘려 나가고 47군데 칼자국이 선명한 채 진달래 흐드러진 강둑에서 발견됐다. 동급생인 범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어서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1969년 4월 일본 도쿄 근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오쿠노슈지/웅진닷컴)는 그렇게 30여년이 지난 후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피해자 가족을 찾아 그들의 삶과 고통을 논픽션으로 재구성한다. 엄마는 정신을 놓기까지 했고, 어린 딸은 오빠의 부재에 울지도 못한다. 아버지는 그런 가족 때문에 정신을 추스르려 애를 쓰지만 아들의 피가 묻은 손목시계를 죽는 날까지 차고 있었다. 대화가 끊긴 가정은 어두운 침묵만 흘렀고 서로가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게 됐다. 가족들에게 아들의 죽음은 삶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복수도 생각할 수 없는 비통한 슬픔…. 그런데 가해자는 어떨까. 소년원을 나와 변호사가 되었으나 사과 한번 없었고, 전화를 하니 돈이 필요하면 빌려 주겠다는 말만 한다. 갱생을 하라고 소년원에 보냈건만 어디에서도 갱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살인현장에 만개했던 그 꽃, 진달래 화분을 사무실 베란다에 늘어놓
2012-01-09 16:36여행을 떠납니다. 학교와 학생을 뒤로 하고, 집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납니다. 교원 평가를 뒤로 하고, “대학 떨어지면 선생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하는 학생의 말씀(?)을 뒤로 하고, 밥벌이의 서글픔을 뒤로 한 채 길을 떠납니다. 학(學)은 채우는 것이고, 도(道)는 버리는 것이라지요. 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길을 걷습니다. 그릇의 용도는 비어있기 때문인 것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길을 떠납니다. 강원도 영월에는 눈발이 수묵화를 툭툭 치고 있었습니다.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산 속에서 자작나무 한 그루를 만났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서 명상하고 묵상하며, 동안거(冬安居) 수행정진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위대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탑돌이를 하 듯 자작나무를 세 바퀴 돌았습니다. 겨울바람이 거세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자작나무는 내 영혼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산에서 내려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길을 잃고 싶었습니다. 눈이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 깊게 내립니다. 짧은 여행을 끝내고 다시 사람들의 마을로 내려옵니다. 모든 사람을 더 사랑하기 위해 길을 서두릅니다. 연등처럼 켜지는 도시의 불빛이 환합니다. 올해도 겨울 깊은
2012-01-09 14:38또 10월을 맞는다. 예년처럼 교정에서는 철따라 목련이 순백의 십자가를 환하게 걸었다가 졌고, 학교 정문 근처 살구나무는 살구꽃 편지를 곱게 띄우고는 흩어졌다. 학교 후문의 해당화는 시절 인연이 다 했는지 연붉은 화장을 지웠고, 찬바람이 불자 급식소 앞 능소화는 나팔을 팡팡 불다가 뭉텅뭉텅 졌다. 시간의 강물은 야속하고 애달프지만 항상 이렇게 흘러가는가 보다. 노란 은행잎을 한 장 한 장 줍는 마음으로 그 해 10월을 조용히 펼쳐본다. 그 때 그 아이들은 교정에 없지만 그네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해 본다. 10월 가을 소풍이 우리 반 가까이 와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정규 수업과 보충 수업, 그리고 야간 자율학습 속에서 가을 소풍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의 기도’ 사이에서 가을 소풍이 다가왔다. 소읍 시골의 인문계 남자고등학교 1학년 7반 담임을 맡아서 나는 몸과 마음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론보다는 실천을 통해 교육의 본질을 한 생각 깨우치고자 바쁜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었다. 딴에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위해 학반 체육대회도 열고, 교실에서 비빔밥도 함께 해…
2012-01-09 14:37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박수도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다. 가르침과 배움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가르치는데 배울 의욕과 열정이 없다면 가르침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의 열정이 없는데 배우려는 사람만 의욕이 강하다면 이 또한 바람직한 현상이 될 수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말도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밖에서 쪼는 사람은 스승이고, 안에서 쪼면서 알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은 학생이다. 알은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어미는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의 과정을 도와줄 뿐이다. 가르침과 배움도 고장난명과 줄탁동기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한 판의 춤이다. 멋진 춤을 추기 전에는 항상 마음이 설레듯이 멋진 가르침과 배움의 여정에는 언제나 깨우침과 깨달음의 즐거움이 있다. ‘깨달음’은 생각처럼 쉽게 오지 않는다. 깨달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깨달음에 담겨진 의미를 알면 이해가 갈 수 있다. ‘깨닫다’는 ‘깨다’와 ‘닫다’가 어우러진 말이다. ‘깨다’는 잠과 꿈과 술에서…
2012-01-02 09:49“문제아는 느는데 대안 없이 침묵하는 학교, 그 경계에 교사가 있음을 행간이 말해준다” 이번 ‘교단 체험수기 공모’에 응모한 교사를 분석하면 다양한 프리즘으로 나타난다. 유치원 교사로부터 장학사, 대학교 교수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를 이루고 있다. 400여 편 중 초등학교 교사의 작품이 206편으로 단연 우위를 차지했고 이어 고교 105편, 중학교 61편 등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연령층도 소재도 다양하다. 20대 초임 교사로부터 정년을 앞둔 교사까지 비교적 정상분포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일반 신춘문예와도 비슷한 양상이다. 즉, 젊은 교사들의 참신한 표현과 시각, 그리고 중년 교사들의 중후한 어조와 성찰, 원로교사의 교단회고 등이 퍼즐처럼 교단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해주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우수 프로그램 소개, 동아리 소개, 개인적 프로젝트 연구보고 같은 글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이들은 하나의 코드로 읽히는데, 그것은 학교생활에 부적응을 보이는 학생, 문제 학생들에 대한 것이었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때,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의 현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결과로 해석된다. 즉, 갈수
2011-12-30 18:53총 401편의 수기를 읽으면서 새삼 교사들의 노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수기의 특징은 자기 목소리를 담는 진솔성의 문학이며 감동을 담아내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감동을 생생하게 담아내어야 하며, 문학적인 글이니만큼 미적 장치도 갖추어야 하는 것이 그 특성이다. 아울러 내면적 성찰도 묻어나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단순히 체험을 글로 옮긴다고 하여 모두 수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수기는 단순한 서술이라든가, 개인적 감상(感傷)만으로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학생에 대한 교사의 고뇌와 역할이 녹아있어야 한다. 오늘날처럼 교실이 붕괴되고 학생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벼랑 또는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그들을 희생과 사랑으로 끌어안는, 그리하여 ‘영혼’까지 울리는 휴먼스토리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들이 교사의 피상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어, 교사의 진정한 희생적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교사들이 자신의 삶을 양보하면서 학생의 고민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을 부둥켜안는 내용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얼마나 감동적인가, 생생한 현장감과 역동성이 있는가, 표현이 정제되고 탄탄한 구
2011-12-30 18:51한국교육신문이 주최한 ‘교단 수기 공모’에서 대상을 차지한 김복순(49·사진) 경기 금빛초 교사는 2011년을 ‘가장 많이 뛰어 다닌 해’로 기억한다. 왕따, 학교폭력, 삐끼 등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린 아이들이 선생님을 찾으면 밤낮없이 한달음에 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다는 6학년, 수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5학년 때 교실 붕괴를 경험한 아이들이다. 신뢰가 무너진 교실에서 학생들은 교사를 따돌리고, 수업을 거부했다. 견디다 못한 담임교사가 병가를 내고 말았다. 김 교사가 6학년 담임을 자처해 이 아이들을 품으려고 했지만 설상가상 학생인권조례까지 시행되면서 아이들의 반항은 날로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순간순간 힘든 고비를 맞으면서 제가 바뀌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부모가 ‘포기했다’는 그 아이들을 저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예쁜 구석 하나 없는 아이들의 장점을 하루에 세 개씩 찾으려고 노력하니 어느새 아이들을 향한 제 마음이 열리고 정말 예뻐 보였습니다.(웃음)” 방학이 시작된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은 말썽을 부리지만 김 교사는 행복하다고 했다. “바뀔 것 같지 않던 아이들이 이제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제일 먼저 전화해 사정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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