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아버지께서는 깻단을 지고 마당에 들어서셨으며 어머니는 그것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들깨 향기가 배어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글짓기에서 상을 받은 초등학교 3학년 어느 저녁의 풍경입니다. 학교 가는 길은 멀었지만 아이들은 개미굴보다 더 많은 샛길을 만들어내었고, 모롱이 모롱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달아두었습니다. 청보리밭 둑을 지나면서는 풀피리를 불었고, 아무 곳에서나 신발을 벗어 던지기만 하면 바로 뛰어들 수 있는 개울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나무가 많은 숲길 그늘엔 보물인양 공깃돌을 파묻어 두었으며 홍시가 하늘을 메울 만큼 가득한 동네도 지나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샛길들이 모여드는 끝에 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학교에 들어서면 운동장 한켠에서 넉넉한 품으로 우리를 맞아주던 아름드리 노란 은행나무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엄마였고 이야기가 모여드는 우체통이었습니다. 묻어두기엔 아까워 하나 둘씩 끄집어낸 유년의 그림들이 어쭙잖게 시의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유년의 뜰을 마련해 주신 부모님, 나의 글을 읽고 함께 즐거워해 준 가족, 동심의 세계로 길을 내어주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 늘 힘이 되어주시는 동
2009-12-24 10:58내게 이런 우체통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시골에서 올라온 보따리에 딸려온 달팽이 한 마리 누군가 가지고 놀다 날개 부서진 잠자리 한 마리 냇가에서 잡아 와 잊어버린 다슬기들 그 우체통에만 넣으면 다시 제 곳으로 갈 수 있는 내게 그런 우체통 하나만 있었으면 참 좋겠다. 만약에 우표값 만큼만 데려갈 수 있다면 나는 얼마만큼의 기도를 올리면 될까?
2009-12-24 09:59강우방의 ‘한국미술의 탄생’은 문양학(文樣學)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한국미술의 정신적 위대성과 예술적 탁월성을 호방한 구도와 곰살궂은 솜씨로, 도해를 곁들여 서술한 책이다. 나아가 한국미술사의 원형을 고구려에 두고 여기서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오는 미술전통으로서의 영기문양을 구명하고, 동아시아 서아시아는 물론 세계미술사의 출발점을 한국미술사에서 모색하는 야심찬 기획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아야 합니다.” 저자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하면서, 예술 활동을 하듯이 감동으로 써나간 이 책의 결론에서 그는 말한다. “매일 매일 드라마가 일어난다. 너무 오래 지속되는 드라마여서 내 존재를 잊어버리고 세월을 잊어버리는 때가 많다.” 저자의 연구태만으로도 이 책에서 영기가 솟아난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존재의 이해와 자아성장을 도모하는 과정이다. 학생이 교사가 보여주는 삶의 자세를 배우고 지혜를 얻는 것처럼, 교사는 학생에게서 생명의 의지와 그 발양을 감지하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터득하게 된다.…
2009-12-03 15:00일본의 아주 오랜된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아주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AD712년 1월에 쓴 고사기에는『韓郷の島には是金銀あり』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내고향 한(韓)의 나라에는 금은보화가 있는 보물섬이 많다’라는 표현으로 조국에 대한 향수가 어려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반대로 AD720년 5월에 쓴 일본서기에는 똑같은 장소의 표현을『吾が児のしらす国に浮宝あらずは今だよからじ』로 ‘내 아들격인 신라국에 보물이 없다는 건 어린애도 다 아는 일’이란 뜻으로, 이제 한국에 대한 향수 따위는 다 버리라는 식의 강한 표현으로, 신라를 ‘아들나라’라고 까지 격하시킨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의 단군신화의 태백산 설화처럼, 일본도 천황이 내려온 성지에 대한 표현이 있는데, 이것도 두 사기가 전혀 다른 표현을 하고 있다. 먼저 고사기를 보면 『この地は韓国に向ひ笠沙の御前をまき通して朝日の直刺す国、夕日の日照る国なり. 故、この地はいと吉き地』로, 이는 니니기노미코토(일본의 국조신)가 고천원(高天原) 즉 하늘에서 다카치호봉(高千穂峰)으로 천손 강림할 때 한 말
2009-11-04 11:50독일에서 35년을 산 한국 여성. 건축사를 전공한 공학박사로, 물리학 박사인 독일인 남편과 두 아이를 가진 그녀는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아이가 세 살까지는 직접 키우겠다"며 남편과 함께 좋은 직장 그만뒀습니다. 복직한 뒤에도 출세보다는 가족을 우위에 두고 점심도 집에 와 먹는 남편을 두었습니다. 자동차의 나라 독일에서 자전거로 거리를 누비고, 난방기 대신 따뜻한 물주머니를 품고 긴긴 겨울을 납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생선을 먹는 것은 정작 생선에 의지해온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빼앗는 것 아니냐며 식탁에서 고등어까지 추방시킨 그녀의 삶을 당신은 “웬 궁상”이라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인생에서 돈 대신 시간을 선택했을 뿐이며, 나 하나 편하자고 환경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푸른숲)는 이런 그녀의 가족이 추구해온 '품위 있는 삶'의 기록입니다. 남의 시선에 이렇게 둔감한 그녀가 자식 교육이라고 예외를 두었을 리가 있을까요. 그녀는 '놀이가 최고의 학습'이라는 믿음으로 아이들의 성적은 묻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방목(放牧)'에 가깝지만, 난독증까지 있던 아이들은 그녀의
2009-11-03 16:21수학이 인류 문명의 개화와 결실에 엄청난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는 사실을 매우 실감나게 입증해주는 책이 모리스 클라인의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 Mathematics in Western Culture’이다. 클라인은 생애의 거의 절반을 뉴욕대학 수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학의 역사와 철학, 수학 교수법과 관련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고 수학의 대중화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클라인은 이 책을 통해 인류 역사의 한 거대한 단면으로, 그리스 사회조직과 연관해 출현한 연역법으로, 유클리드기하학의 형식과 절차에서 비롯된 이성의 힘으로, 자연에 대한 합리적 해석의 도구로, 로마인의 사고방식과 교회의 신비주의가 질식시킨 인류의 지성과 창조적 정신으로, 그리고 가톨릭의 주장과 충돌하며 결합하는 피타고라스의 물리적 세계의 근본으로 수학을 이해하도록 설명함으로써, 즉 문명의 형성과 발전 곳곳에 수학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설파함으로써,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수학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곧 인류 문명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자신의 수학관이다. 제법 오래전 어떤 사람이 나에게 “고등학교에서 배운 미적분이 어디에도 쓰이지 않는다. 수학을 정말 배워야…
2009-10-14 10:07‘한글은 곧 우리 민족의 혼’ 민족주의적 언어관 한글문화창조·문자 과학화·한글세대 형성에 기여 주시경 선생을 통해 한글을 만나다 외솔 최현배는 1898년 10월 19일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동리(現 울산시 중구)에서 최병수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외솔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어른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으며, 6살 때 서당에 다녔고, 울산 일신학교(現 병영초)에서 신식 교육을 받았다. 일신학교를 졸업한 후 외솔은 혼자 경성에 올라와 한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시험을 봤다. 전국에서 75명만 뽑는 수제들의 학교에 합격했지만 불행하게도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나라를 일제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따라서 학교 이름도 경성고등보통학교로 바뀌고 교장도 일본인으로 바뀌었다. 나라 잃은 슬픔과 울분에 방황하던 외솔은 김두봉의 안내로 한힌샘 주시경 선생을 만났다. 상동교회에서 열린 조선어 강습에서 주시경 선생을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상동교회는 당시 전덕기 목사가 담임목사였는데 독립운동의 본산지로서 많은 애국지사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외솔은 주시경 선생을 통하여 ‘한글’과 ‘나라사랑’이라는 두 주제를 만난다. 이로서 주시경 선생은 외솔의 연원한 스승이 됐고, 국
2009-10-12 09:47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교육문제. 그러나 그 원인과 해결책 모두 지나친 교육열에 떠넘기는 데에 그치고 만다. 이에 한국교육학회장을 역임하고 평생을 교육학 연구에 매진했던 정범모 전 한림대 총장이 우리 교육의 고질화된 병폐에 대해 짚어내고 해법을 제시한 교육의 향방이 발간됐다. 저자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애꾸눈 원숭이 나라에서 두눈박이 원숭이가 주변의 놀림에 결국 눈 한쪽을 도려내는 우화에 비유하며 정상과 비정상이 도착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현재의 입시열풍을 비판하며 인재를 확보하는 정도(正道)는 적절한 교육에 의해 길러내는 것이지, 평가에 의해 골라 뽑는 것은 미개 사회의 특징이라고 꼬집는다. 학교 성적 우등생으로 뽑아 들이는 영재학교, 영재반의 영재는 시험선수일 뿐으로, 영재는 집단 교육만으로는 탄생하지 못한다고 제언한다. 이 책을 통해 교육과정의 구조나 지원구조, 교사론에서부터 교육의 방향을 결정짓는 인간관, 사회관, 지식관 등 교육의 전반적인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2009-10-08 10:19백제가 완전히 멸망하자 나당 연합군은 약속대로 그 창끝을 고구려로 향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연개소문 장군의 막부정치로 강성함이 유지되었으나, 그가 임종을 맞을 즈음에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세 아들을 모아놓고 화살 3개를 주며, “이를 분질러 보아라”라고 하였으나, 아무도 이를 꺾지 못하자, 하나씩 주면서 다시 꺾으라고 하였다. 이에 세 아들이 하나씩 화살을 꺾자, “내가 죽으면 우리 고구려의 운명은 이 화살과도 같을 것이다. 너희 셋이 힘을 합치면 고구려는 유지 될 것이고 흩어지면 망할 것이니 부디 명심하여 잊지 말거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세 아들은 서로 권력을 잡으려고 다투다가, 결국은 장남 남생은 신라로 투항하고 두동생도 역시 갈등해 힘을 분산시킴으로써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668년 9월, 700백년을 이어온 긍지 높은 고구려의 기상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웅장했던 기마민족의 영광! 영웅스럽기까지 하던 우리 민족의 만주사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지워져가는 비통한 순간이었다. 이로써 6000년 전 인류 최초의 홍산문명을 만들어 대륙을 누비던 기마민족은 여기에서 그 빛을 잃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고대에
2009-10-07 0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