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초대 임금인 태조부터 25대 철종까지 궁궐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책이다. 중요사건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임금의 개인적인 고민이나 취미부터 조선 백성의 일상사, 당대의 과학과 천문 등이 기록돼 있다. 이 조선왕조실록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재미있는 내용을 골라 엮은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역사학자 장학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은 '우리가 몰랐던 조선'(플래닛미디어 펴냄)에서 임금의 개인 생활과 조선 백성의 일상사를 알려주는 부분을 뽑았다. 그는 이 책에서 두 차례의 사화(士禍)를 일으키는 등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통하는 연산군이 사실은 '연산군일기'에 자작시 110여 편을 남긴 시인이었다고 소개한다. 연산군일기에 실린 연산군의 첫 시는 재미있게도 공무를 보느라 몸이 아파서 '임금의 수업'인 경연에 나가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침 번열이 잦고 피곤함이 계속되어 /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새 잠 못 이루었네 / 간관들이란 종묘사직의 중함을 생각지 않고 / 소장 올릴 때마다 경연에만 나오라 하네" 연산군은 재위 6년 초까지는 자작시를 지금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 보내면서도 "감히 시라고 할 수 없으나 내 생각을 적어본 것"이라고 겸
2010-05-11 11:31# 한옥 옆 돌담길 사람냄새 물씬 톨게이트를 나와 60번 지방도를 달린다. 1006번 국도와 만나는 길이 나타나면 서서히 마을도 안개 사이로 드러날 것이다. 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단계(丹溪)마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이 묵은 동네에는 집집마다 단계천 냇돌로 쌓은 돌담길이 정말로 정겹고 예스럽다. 어떻게 이 깊은 산골에 이처럼 전통을 귀중히 간직해온 동네가 있을까 신기롭고 고맙기 그지없다”고 한 바로 그 곳이다. 그리고 그 마을 속에 잠겨있는 초등학교를 찾아 걸어야 한다. 등굣길 아이들을 만나볼 심산으로 일찍 서둘렀더니 제대로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동네부터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산청에는 고택이 즐비한 곳이 두 곳 있다. 이곳 단계 마을과 ‘옛스러운 담’ 혹은 ‘옛사람을 닮자’는 뜻을 담고 있다는 남사예담촌이다. 남사예담촌은 돌담길 양쪽에서 뻗어나온 회화나무 두 그루가 X자로 걸쳐 자라고 있는 이씨 고가 사진으로 익숙한 곳. 관광객의 발길도 잦다. 그런데 굳이 이곳으로 온 것은 작은 마을 전체가 사람냄새로 가득한 한옥들의 모양새 때문이다. 1630년에 지어졌다는 박씨고가와 경남문화재자료 제120호인 권씨고가를 지난다. 아침잠 없는 녀석들도 골목
2010-05-11 09:19무릇 세상사가 다 그런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첫 경험은 오래 기억의 창고에 갈무리가 되는가 보다. 특히나 그것이 한창 감수성 강할 때 겪은 일이라면. 학창 시절의 어느 늦은 가을날이었던 듯싶다. 그때 무슨 일로 해서인가 교외로 나갔다가, 줄기까지 다 말라 허물어진 연 밭에서 뿌리를 캐내는 낯선 광경을 목격한 뒤로 한동안 깊은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했었다. 그리고 그날의 일은 긴긴 세월 동안 의식 가운데서 떠나질 않았다. 물 위로 솟은 모습만을 그것의 전부로 알고 있던 시절, 불가(佛家)에서 성화(聖花)로 우러르는 꽃인 연의 뿌리를 캐낸다는 것은 당시 내 정서상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경스런 행위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몇 차례 더 이런 광경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었다. 하지만 그럴 적마다, 처음 맞닥뜨렸던 그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 충격은 많이 가시었다. 대신 한결 담담해진 마음으로 연의 삶과 우리들 인생행로의 상관관계를 곰곰이 헤아려 보는 특별한 계기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일을 보는 눈이 세월 따라 시나브로 넓어지고 깊어져 온 까닭에서이리라. 연의 한살이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연만큼 생로병사의 구분이…
2010-05-04 14:35▲ 수학의 눈을 찾아라(김서준 외 5인/랜덤하우스) = 서울과학고 선·후배 사이이자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출신 등 6명의 수학고수들이 자신들의 핵심 수학 공부법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집합은 누가 만들었을까? 어떻게 수식을 그래프로 그리게 됐을까? 등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질문에 대해 답변해 주는 형식이다. 수학 교과의 연관 단원표를 수록해 초,중,고 수학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면서 각 개념들이 어떻게 연결, 발전되는 지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배경 설명을 첨부해 수학에 대한 흥미를 높이도록 했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현길언/계수나무) = 제주 출신 소설가인 저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겪었던 삶의 체험과 아픈 기억들에 대해 담아낸 성장소설이다. 하루 아침에 아버지와 헤어지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잃고 가축들까지 모두 잃게 된 어린 규명이. 제두 4·3 사건으로 가족이 해체돼 어머니와 단둘이만 남은 규명이는 외갓집에 얹혀 살 수 없어 소달구지에 가축을 싣고 불타 없어진 고향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잡초가 무성한 옛 집터, 그 속에서도 여전히 만발한 꽃들을 보며 힘을 얻는 규명이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변하
2010-04-27 10:15"현장교사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기 때문에 현장 교사도 그런 신뢰에 부응할 만한 인재이지 않으면 안되고, 질 높은 교원을 양성해야 하는 것이다." “오페타야, 오페타야, 오페타야! 교사의 빼어난 역량이지요.” 핀란드가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에 대해 어느 교장이나 같은 답을 한다. ‘오페타야’는 교사를 가리키는 핀란드어다. 세계 1위의 학력을 자랑하는 핀란드 교육의 비밀을 찾는 책들이 국내에서도 줄을 이었다. PISA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다 점차 순위가 하락해 ‘학력 저하론’이 나오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같은 핀란드 열풍이 더욱 거세다. 오죽하면 ‘핀란드 참배’라는 자조섞인 말이 나올 정도겠는가. 그럼에도 일본 고등학교 교사이자 교육 칼럼니스트인 저자 마스다 유리야는 핀란드를 찾았다. 저자는 “일본인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있던 터라 기대에 가득 차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며 “하지만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단지 정도(正道)를 실천하고 있는 것일 뿐. 그 ‘정도’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본 교육이 결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깨닫기까지 3년이나 걸렸다”고 했다. 저자가 3년에 걸친 취재
2010-04-27 10:09자고나면 달라지는 세상. 3D에 스마트폰에…세상은 사람의 마음마저 디지털로 만들 기세입니다. 학교 안 가도 인터넷으로 충분히 공부할 날이 곧 올거라 합니다. 신주머니를 빙글빙글 돌리며 친구와 손잡고 가던 등굣길, 지각할까 무조건 뛰고 보던 골목길, 말없이 안아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날이 오는 걸까요? 정보화시대의 발전에 숨이 찬 우리 모두를 위해 잠시 쉬어가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디지털처럼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 가슴에 오래 기억될, 느리지만 따뜻함을 느낄수 있는 풍경을 담는 기획, ‘이야기가 있는 학교 가는 길’을 시작합니다. # 걸음을 세우는등굣길 담장벽화 고개 돌려보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역사가 70년에 이르는 초등학교가 있지만 재학생은 스무명도 되지 않습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사정이 나아보이지는 않습니다. 대도시 한 반 꾸미기에도 벅찬 숫자가 이곳에선 전교생입니다. 아이들이 발걸음을 서두릅니다. 그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데 학교 앞 개울 맞은편의 담벼락들이 울긋불긋합니다. 꽃과 나비가 보이는가 했더니 광부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습니다. 석탄을 실어나르는 열차와 갱도 폭파장면, 땀을 닦는 모습까지. 지금은…
2010-04-01 15:1021세기 교육의 화두는 창의성과 개성으로 압축되는 것 같다. 시험 성적이 우수하고 똑똑한 학생보다는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상상력과 나만의 개성을 지닌 창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리더십의 소유자들을 추구하고 있다. 학생들이 사회적 규범이나 종교적 관점과 기존의 과학적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서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교사들의 생각이 자유롭고 거침없어야 한다. 이 책은 현직 교사나 예비 교사들에게 미래의 세계에 대한 안목과 학생들의 진로 교육에 대한 안내자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어른들이 바라볼 때 학생들은 가끔 유치하고 엉뚱하다 못해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더러 있지만 그들이 위험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위험한 생각들’에 있는 모든 위험한 생각은 세상의 모든 사물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법이며, 인간에 대한 사랑의 폭을 넓혀갈 수 있게 해준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학생들에게 위험한 생각들이 없다면 미래도 없을 것이다. “지식의 끝에서 발견한 위험한 생각들”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글 제목에서처럼 학생들
2010-01-20 13:30한국 근대 수필은 너무 경수필 위주로 발달해온 면이 있다. 글에 대한 편협한 관념 때문에, 그마저도 흔히 ‘문학적’이라 여겨온 몇 가지 형태로 굳어졌다. 응모작들을 보면서 글쓰기의 재미와 보람에 맛들인 이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통적 범주에 갇힌 ‘교과서적’ 수필이 많아서 다소 답답하였다. 사적인 체험을 어떻게든 일반적 진실과 연결시키려는 내용도 많았는데, 필자의 진솔한 태도는 느껴져도 글로서의 참신함은 아쉬웠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5편이다. 앞의 셋은 자료를 모으고 논리를 밀고나가 애초의 착상을 발전시키려 노력한 작품들이다. 그 결과 앞의 문제점들에서 다소 벗어났지만 일반적인 내용을 반복하는 데 머문 경향이 있다. 뒤의 둘은 새로운 글감을 포착하는 섬세함과 상식에 매이지 않고 사색을 전개하는 날카로움이 돋보인다. 그러나 그 중 이 경험을 겹치고 편지투를 활용하여 표현 효과를 높인 반면 은 구성이 평면적이다. 논의 끝에 앞의 계열에서 을 가작으로, 뒤의 계열에서 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글쓰기는 이른바 심신수양에 도움이 되지만 심신수양을 위한 방편이 아니다. 규범을 넘어섬으로써 보다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세계와 만나는 데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2009-12-24 11:38비눗방울 속에는/ 내 마음 들어있고/ 내 마음은 두둥실/ 비눗방울 따라가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갈대 성이 보이고/ 비눗방울 터지면/ 내 마음 허전하네. 한글을 깨치고 글로써 제가 본 풍경이나 떠오른 생각을 붙잡아 둘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해 아홉 살쯤엔가 처음으로 써본 시입니다. 30년이나 지났지만 이제껏 그 시를 외울 수 있었던 건 짧기도 짧아서였겠지만 무언가를 글로 써서 간직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순수한 즐거움을 참 오래도록 잊고 지내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비눗방울 놀이만큼도 제 가슴을 울리고 흔드는 것이 없다고 변명하며 지내왔습니다. 혹은 성급하고 경직된 언어들로 채 익지 않은 상념들을 붙잡으려 헛된 노력을 하기도 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다 문득 바람처럼, 공기처럼 제 마음에서 떠오르는 비눗방울들이 그저 흘러가도록, 그러다 마침내는 터져버린 비눗방울마저도 가만히 감싸 안을 수 있는 언어가 제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그저 지그시 바라보고자, 찬찬히 응시하고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어보고자 하는 노력이 지금 제겐 소중한 일이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이라 해도 좋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2009-12-24 11:37선생님, 며칠 전 학교 급식에 고추장 비빔밥이 나오던 날이었습니다. 밥먹다 말고 한 아이가 울상을 짓고 있길래 밥 먹던 숟갈을 내려놓고 그 아이에게로 갔죠. 평소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아이였기에 고추장을 덜어주어야 하나 맨밥을 더 퍼 줘야 하나 하면서요. 제가 맡고 있는 1학년 교실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니까요. 부지런한 숟가락질 소리, 몹시도 매웠는지 후울쩍 콧물을 들이마시는 소리, 조곤조곤한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비교적 뒤 쪽에 위치한 그 아이 자리로 갔습니다. “○○야, 밥 먹다 말고 왜 울상이니? 누구하고 다퉜어?” 다른 아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말하려고 허리를 달싹 엎드려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아이는 여지껏 참고 있던 울음을 한꺼번에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묻지나 말 걸 제 물음은 그 아이의 한껏 부풀어 오른 울음보를 바늘로 콕 터뜨린 꼴이 되고 만 겁니다. 이미 봇물처럼 터져 버린 아이의 울음이 어찌나 구슬프고 처절하던지 저희 반 아이들은 모두 목이 메이는 점심을 꾸역꾸역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랬거나 말거나 제 몫의 비빔밥을 한 그릇씩 뚝딱 비운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가고 교실에는 어느새 그 아이와 저만이 남았습니다
2009-12-24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