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문학상 응모작은 예년에 비해 편 수가 적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작품의 수준차는 크지 않아서 낙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소재도 다양해서 세상을 촉지하는 여러 생각들을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정서를 평이하고 상투적으로 표출하거나 심정 토로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올해도 산견돼서 아쉽다. 이는 시의 긴장이나 밀도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므로 늘 유념해야 할 것이다. 시 부문 당선작 (정영희)는 사물을 의인화하고 이를 인간의 이력과 연계시켜 삶을 통찰하는 예리한 눈을 확보했다. 눈부시게 흰, 그러나 이제는 ‘누렇게 탈색된’ 와이셔츠와 퇴락한 자신의 삶을 연계시키는 발상이 신선했다. 구멍난 와이셔츠 그리고 골다공증과 관절이상으로 신음하는 화자가 일체되며 묘한 연민을 자아낸다. 섬세한 감수성과 삶을 진지하게 통찰하는 안목이 뛰어났다. 당선작 외 응모시편들 역시 시적 긴장을 끝까지 잘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안정적이라는 것은 자칫 시를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통찰하는 작품을 기대하고 싶다. 시적 모험이 동반된 생동하는 개성을 선보여 주길 기대한다. 가작 (안영선)는 당선작에 비해 경쾌하고 날렵하
2010-12-23 13:16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깜짝깜짝 놀란다. 여리고 예민한 풍경은 바람이 오는 소리를 먼저 듣고 바람이 불기 전에 소리를 내며 바람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풍경의 추에 부딪친 바람은 아프다고 엄살떨고 풍경은 감싸는 바람이 간지럽다고 앙탈을 부린다. 바람이 풍경을 흔드는지 풍경이 바람을 울리는지 가는 바람이 마냥 아쉬워 풍경은 바람이 올 때마다 운다.
2010-12-23 13:13
고등학교 시절 문학소년으로 한동안 심취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이 장르 저 장르 넘나들며 습작을 통하여 꿈을 키웠었습니다. 얼마큼의 습작을 해보니 자신이 생겼습니다. 이 정도 수준이면 다른 전공을 택하여 대학에 가서도, 아니 사회에 나가서도 충분히 창작활동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대로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공학(건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교수가 되니 다른 분야는 좀처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고, 선택한 전공분야에만 전심전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학과 병행이 가능하리라는 예상은 무척 잘못되고 건방진 생각인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바야흐로 정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한 분야에만 열중하느라 겸업이 가능하리라 예상했던 문학은 도저히 접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이가 드니 자다가 문득 잠이 깨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지겨워져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동시가 되었습니다. 동시는 별로 습작해보지 않던 장르입니다. 옛날의 감각을 회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입니다. 공학은 호기심으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문학은 즐기면서 하고 싶습니다. 정년이 되면 어떻게 지낼까 고민했는
2010-12-23 13:11
자연의 바위 하나, 풀 한 포기조차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조화를 이룬 풍광. 녹우당이 있는 연동마을, 현산고성 주변을 원림으로 조성하고 풍류를 즐겼다는 금쇄동과 문소동, 수정동. 세속의 뜻을 버리고 정착하여 노후를 보낸 보길도 부용동. 시 속에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빚어낸 남도의 끝자락 해남을 찾아 나선다. 고산 윤선도와 관련된 유적지로는 생가 터인 서울 연지동과 명동성당 앞의 집터, 고산이라는 호를 짓게 된 남양주시 수석동, 유배 생활 중에 황학대를 즐겨 찾던 부산 기장군 죽성리, 간척 사업을 통해 백성들의 어려운 생계를 해결해 준 진도군 굴포리, 유배지였던 경북 영덕군 우곡리와 전남 광양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적지들이 주로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해진 곳이었다면 고산 문학의 산실인 해남은 자연을 사랑한 시인 스스로가 선택한 곳이기에 그 가치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해남까지는 승용차로 달려도 6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이다. 녹우당까지는 이미 답사 경험이 있지만 이번 답사는 땅끝마을을 지나 보길도까지를 일정으로 삼았다.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광주, 다시 나주와 영암을 지나 해남을 향해 달려간다. 넓은 들녘을
2010-12-08 09:07
서정주는 고창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초기 시의 대표 시집인 과 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을 썼다. 또 로 대표되는 후기 시 역시 고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늦가을. 미당 서정주 문학의 시작과 끝이 있는 곳, 고창으로 그를 찾아 나선다. 선운산 나들목에서 서정주 생가의 약도를 받아 들고 734번 지방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고창을 찾았던 10여 년 전을 생각해 보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생겨났고, 문화에 대한 높은 인식으로 세심한 노력을 쏟는 지자체의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논과 밭, 그리고 멀리 야산이 펼쳐진 들길을 달려간다. 미당시 문학관과 복원된 생가 시인의 고향인 선운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답사객을 맞는 것은 ‘미당시문학관’이다. 문학관에는 서정주 시인의 유품과 육필원고, 발간된 시집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고 논쟁의 씨앗이 되었던 친일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2001년 11월에 개관한 미당시문학관은 폐교가 된 선운분교를 인수하여 조성을 했는데 그 규모가 국내에서는 가장 크다. 이곳에는 시인이 사용하던 가구와 유품, 육필원고와 시집 등 총 1만 5000여 점의 전시물이 있다고 한
2010-11-30 10:16
몇 년 만의 공개수업인가. 더구나 고3이다. 수업시간에 소설문학 문제집을 풀고 있는데 그걸 공개수업으로 하라니. 고민하다 시점문제가 들어있는 부분을 주제로 해서 다양한 시점의 사례를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 시점 변형의 지존, 오르한 파묵의 이 책을 붙들게 됐다. 터키어로 쓰여 3대 신문사 문학 지면에서 대서특필 된 적 있는 이 책으로 2006년 “자신이 태어난 도시의 우울한 영혼을 찾는 여정에서 문화들 간의 충돌과 융합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한 작가”라는 평가를 들으며 저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6세기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소설은 펼쳐진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로 시작돼 21가지 ‘나’가 토해내는 사건은 다음과 같다. ‘술탄’ 즉 왕은 헤지라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자신의 관심사를 담은 그림을 제작하게 한다. 당시엔 금기였던 서역 베네치아 화풍을 따라 밀서를 제작하게 했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에서 사용되던 ‘원근법’이 사용된 것이 원인이 돼, 당시 전통적인 그림을 그려오던 세밀화가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이들은 가까운 것을 더 크게 그리는 원근법은 성스런 ‘사원’
2010-11-29 13:58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이름을 새긴 이윤기 선생이 타계하고 한 계절이 지났다. 자신의 말 대로 “꽃 대접 받기엔 애초 틀린 인생”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남긴 텍스트는 꾸준히 ‘꽃’ 대접을 받을 건 분명하다. 그를 세상에 대중적으로 알린 장미의 이름은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역작이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1986년 번역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논리학, 신학, 인류학, 기호학 등 다양한 지식들 사이를 오가며 미스터리 형식을 취했지만 결국 한 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윌리엄과 아드소가 그렇게 찾고자 했고 수도사 호르헤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한 권의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또 다른 주인공. 텍스트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책이 인류에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어김없이 독서의 계절(?)이 돌아왔다. 하지만 연평균 11.9권의 책을 겨우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책이 갖는 위력이 실감나지 않는 계절. ‘책에 대한 책’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골라 읽어도 되는, 그래서 좀 ‘헐렁’
2010-10-20 10:52
벽초 홍명희의 고향인 괴산에 들어서면 험상궂은 모습보다는 다소 귀엽게 표현된 임꺽정의 캐릭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의적이라면 모름지기 칼이나 굵은 몽둥이 정도는 들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괴산의 특산물을 어깨에 들러낸 모습이 어찌 보면 소박한 농민의 대변자 같다. 오늘은 의 저자 홍명희를 찾아간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세상이 어수선하고 가난한 민중들이 권력자의 횡포로 핍박을 받을 때마다 민중의 편에 서서 홀연히 나타나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 역시 가장 설움을 받아온 민중이지만 ‘빈민구제, 탐관오리 응징, 이상향 건설’을 꿈꾸며 칼과 죽창을 들었고, 우리는 그들을 의적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의적으로는 홍길동(洪吉童)과 임꺽정(林巨正), 그리고 장길산(張吉山)을 들 수 있다. 조선조의 대학자인 성호 이익(李瀷)이 그의 저서인 에서 이 세 사람을 조선의 3대 도둑으로 꼽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평범한 일개 도적의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의적들은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한낱 화적패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난 민중의 영웅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3대 의적 임꺽정…칠장사 이 세 의적의 이야기는 모두…
2010-10-11 09:04
홍성은 나라가 어려울 때면 홀연히 일어나 구국의 일념으로 나라를 지키던 선열의 얼이 고을마다 스며있는 고장이다. 만해 한용운 역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위대한 독립운동가요, 시인이요, 불교를 혁신한 승려요, 학자였다. 홍성에 서려있는 만해 한용운의 숨결을 따라간다. 충남 홍성은 예로부터 충절의 고향이라 한다. 고려말의 명장으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청렴과 충절의 상징이 된 최영 장군과 단종에 대한 충절로 사육신의 지조와 절개를 보여준 매죽헌 성삼문이 홍성군 홍북면 출신이다. 한용운의 생가와 가까운 갈산면 행산리에서 출생하여 우리 나라 최초로 노예를 해방하고 항일 투쟁에 참여하여 청산리대첩을 이끈 백야 김좌진 장군이 또한 홍성 출신이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의병의 기개가 살아 숨 쉬는 곳이 바로 홍성이니 충절의 고향이라는 말이 헛말은 아닌 듯싶다. 충절의 고장 홍성, 그리고 성곡리 홍성 나들목을 빠져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갈산면소재지가 나오는데 한용운 시인의 생가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왼쪽으로 난 좁
2010-09-07 09:15
주말 내 비를 뿌려대고도 하늘은 성에 차지 않았나보다. 눈을 뜬 월요일 새벽까지도 심술을 부린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와이퍼의 움직임은 더 격렬해지고 악천후를 각오할 생각에 머릿속은 하얗게 변한다. 기적일까? 신기하게도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즈음 비가 멎었다. 이제 이곳에서 까까머리 아이들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니, 더 자세히는 말하자면 밤톨 같은 아이들을 태운 두 바퀴들의 행렬을 기다려야 한다. 맞다. 이곳은 자전거의 도시, 경상북도 상주다. # 면허증, 박물관…자전거에 미친(?) 도시 이 시대 입담꾼으로 불리는 소설가 성석제의 고향. 초등학교 때 농업용 자전거로 타는 법을 배웠다는 그는 인구 당 자전거 보급대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학교를 오가는 통학수단도 단연 자전거가 으뜸일터. 남산중과 상주공고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연이은 폭우에 물이 넉넉해진 논은 모내기가 한창이다. 시선이 모판을 옮기느라 분주한 아주머니와 이앙기를 통해 심겨지는 모들에 가 닿는다. 얼마나 흘렀을까. 따르릉~. 드디어 등교시간을 알리는 요란한 신호음이 들려온다. 상주시는 일선 학교와 함께 학생들에게 안전하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2010-08-31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