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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지구촌 풍경] 말레이시아 국경 도시 조호르바루 여행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조호르바루에 도착했다. 말레이반도 최남단에서 싱가포르섬과 마주한 이 도시는 양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과 자본의 흐름 속에서 성장을 거듭하는 중이다. 울창한 열대우림 사이로 내륙 교통망이 유기적으로 발달한 말레이시아의 지리적 특성 덕분에 쿠알라룸푸르에서 탑승한 버스는 안락하게 조호르바루로 도착했다.

 

조호르바루 숙소 관찰기 _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경험하다
조호르바루는 세계도시 싱가포르의 인프라를 공유하는 일일생활권이면서도 생활 물가는 훨씬 저렴하다. 그래서 가성비를 추구하는 한국인들에게 한 달 살기로 소문난 곳이다. 고심 끝에 싱가포르로의 국경 이동을 고려해 JB 센트럴역에서 가까운 현대적인 주상복합단지를 숙소로 정했다. 정형화된 호텔을 벗어나 공유숙소를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일도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덕분에 새로운 주거 공간이 가진 특성을 다각도로 관찰할 수 있었다.


단지에 들어서자마자 이 공간의 철저한 방어적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입구에는 경비원이 출입을 경계하고 있었다.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며 정문의 제복 입은 경비원에게 스마트폰 예약 화면을 제시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별일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메일함에서 카드 키를 찾아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시스템도 경비만큼이나 엄격했다. 카드를 태그하면 우리 가족이 머물 숙소가 있는 층의 버튼만 누를 수 있다. 다른 층은 출입할 수 없는 폐쇄적인 구조였고, 카드 키가 없는 외부인은 발붙일 틈조차 주지 않을 만큼 철저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자본과 치안이 촘촘하게 결합한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의 전형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성벽을 쌓듯 외부와의 차단벽을 세우고 내부 주민끼리만 인프라를 공유하는 이 폐쇄적 주거 형태는 소득 격차가 크거나 치안 불안을 자본으로 해결하려는 대도시 환경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표적인 공간적 격리 현상이다. 


내부 숙소는 가족이 머물기에 대단히 넓고 쾌적했다. 물가 비싼 싱가포르의 호텔 가격을 생각하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단지 내 쇼핑몰과 곧장 연결된 동선 덕분에 열대의 뜨거운 햇볕이나 갑작스러운 스콜을 피해 언제든 편리하게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쾌적하게 관리된 커뮤니티 시설과 해협 너머 싱가포르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발코니에서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높은 물가를 피해 조호르바루를 선택한 사람들의 일상을 잠시나마 살아보는 경험은 인상적이었다. 그곳은 단순한 숙소를 넘어 국경 도시가 지닌 역동성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이슬람국가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마스지드(모스크)
국경 도시의 역동성 너머 깊게 뿌리 내린 이슬람 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조호르바루의 상징인 술탄 아부 바카르 모스지드(모스크)을 방문했다. 19세기 말 아부 바카르 술탄에 의해 세워진 이 웅장한 이슬람교의 종교 건축물은 언덕 위에서 조호르 해협을 굽어보며 도시의 정신적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아랍어로 ‘엎드려 절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마스지드(모스크)는 이름 그대로 공동체가 경건하게 머리를 맞대는 도시의 구심점이었다. 


외국인의 이슬람 사원 내부는 입장이 제한적이라 외부를 중심으로 관찰했다. 누구든지 이슬람 사원 내에서는 다리를 가리는 단정한 복장을 갖추어야 한다. 이슬람교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덥지만, 긴 옷을 입고 조심스레 건물 밖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슬람 전통 건축 양식인 첨탑과 돔이 서구 빅토리아 양식과 절묘하게 결합한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이슬람교의 종교 경관의 특징인 창문을 장식한 별과 초승달 문양을 직접 살펴볼 수 있어서 기억에 특별히 남는다. 건물 내부에는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는 현지인들의 뒷모습도 볼 수 있었다. 비로소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한국인에게 이슬람은 여전히 낯선 문화이다. 히잡 쓴 여성들을 볼 때마다 이곳이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사회임을 새삼 깨닫는다. 오랜 세월 이웃과 공동체를 하나로 결속해 온 술탄 아부 바카르 마스지드(모스크)는 단순히 종교적 공간을 넘어 말레이시아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문화적 구심점이자 이 국경 도시가 품은 독특한 문화 경관이다.


전통과 현대, 그 경계에서 즐긴 조호르바루의 일상
이슬람의 전통은 조호르바루의 현대적인 쇼핑몰 문화 속에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강렬한 열대 햇볕을 피하려는 현지인과 여행자들에게 대형 몰은 일상의 구심점이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실내 액티비티로 유명한 패러다임 몰의 이스케이프(ESCAPE)를 찾았다. 암벽등반부터 집라인까지 다이내믹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이곳은 단순한 상업 시설을 넘어 도시의 에너지가 모이는 광장이었다.


실내 체험을 마친 후, 현지 음식을 맛보기 위해 말레이시아의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식당인 오리엔탈 코피(Oriental Kopi)를 찾았다. 입구에 선명하게 붙은 할랄(Halal) 인증 마크는 이곳이 이슬람 문화권임을 다시금 실감케 했다. 특히 잔이 넘칠 듯 가득 담긴 화이트 커피는 19세기 말, 이포(Ipoh) 지역 중국계 이민자들의 로스팅 기술에 동남아의 향신료 문화가 더해져 탄생한 지리적·문화적 융합의 산물이다. 한국인의 입맛에도 제법 잘 맞았다. 함께 주문한 나시르막은 코코넛 밀크로 지은 고소한 밥에 매콤한 삼발 소스와 닭튀김을 곁들여 먹는 말레이시아의 대표 요리였다. 가족들 입맛에 완벽히 맞지는 않았지만, 현지 특유의 풍미를 직접 경험해 본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높은 빌딩이 늘어선 세련된 쇼핑몰 안에서도 이슬람 전통을 소중히 지키는 모습, 그리고 그곳을 즐겁게 누비는 우리 가족까지. 조호르바루의 쇼핑몰은 이 국경 도시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세계 _ 기차로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 버드 파라다이스로
조호르바루 구도심에 숙소를 정한 가장 큰 이유는 국경 이동의 편리함 때문이었다. 사실 육로를 통한 국경 이동은 분단국가인 한국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반도는 비행기나 배를 타야만 비로소 타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실상의 섬이기 때문이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루와 싱가포르는 기차와 버스 같은 대중교통 시스템이 국경을 가로질러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저렴한 비용으로 조호르 해협을 건너는 셔틀 기차를 타고 싱가포르로 이동할 수 있었다. 


기차로 국경을 넘는 경험은 무척 신기했다. 여권을 챙겨 출입국 심사를 거치는 과정이 다소 번거롭긴 했으나, 충분히 감당할 만한 흥미로운 여정이었다. 기차가 철교 위를 달리는 짧은 순간, 차창 밖으로 조호르 해협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두 도시를 잇는 거대한 송수관들이 길게 뻗어 있었다. 호기심에 찾아보니, 이 파이프들은 1962년 체결된 물 공급 협정에 따라 싱가포르로 식수를 나르는 생명줄이었다. 말레이시아 조호르강에서 정수한 물이 저 거대한 파이프를 타고 싱가포르로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자원이 부족한 도시국가 싱가포르와 그 자원을 공급하는 말레이시아, 두 나라의 운명적 관계가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기차를 탄 지 5분 만에 말레이시아를 벗어나 싱가포르의 우드랜드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곧장 싱가포르의 생태 명소인 ‘버드 파라다이스’로 향했다. 국경을 통과해 마주한 버드 파라다이스는 콘크리트 빌딩 숲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정원 속의 도시’가 구현한 생태계의 연장이었다. 단순히 새를 관람하는 동물원이 아니라, 거대한 새장 속으로 사람이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새들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새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인위적인 철창 대신 자연적인 해자와 수풀을 활용해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허문 공간 설계는 자연과 공존하려는 싱가포르의 창의적인 철학을 엿보게 했다.

 

 

다만 국경을 넘자마자 마주한 싱가포르의 물가는 체감상 조호르바루의 두 배는 족히 넘어 보였다. 불과 5분 전만 해도 넉넉했던 지갑이 이곳에서는 사뭇 가볍게 느껴졌고, 음료 한 잔을 고를 때도 망설여질 만큼 물가 차이가 컸다. 빨리 조호르바루로 돌아가 마음껏 먹고 싶다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좁은 영토라는 지리적 한계를 고도의 기술과 환경 전략으로 극복해 낸 싱가포르의 역량은 경이로웠지만, 동시에 그 뒤에 숨겨진 높은 생활 비용은 국경을 사이에 둔 두 도시의 경제적 체급 차이를 실감케 했다.


지리적 경계를 넘어 완전히 다른 두 체제의 도시를 하루 만에 오가는 경험은 국경 도시 조호르바루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존의 물길을 나누며 서로 다른 일상을 꾸려가는 두 도시의 풍경은 국경을 넘나드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게 할 만큼 특별한 여행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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