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요란스럽게 준비하고 맞이했던 새 천년의 첫해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볼 때 우리 교육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가장 힘든 한해였으며, 교육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한해였다. 1년 내내 교육의 근본이 송두리째 흔들렸고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학교교육을 보호하고 육성하며, 교권을 옹호하고 교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정책은 없이 학교교육을 황폐화시키고 교원의 권위와 사기를 추락시키는 정책들만이 무성하게 발표되고 논의되고 추진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교원정년 단축, 공무원 연금법 개정, 교육자치제 폐지안, 교육재정 감축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참다 못한 교원들이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정부의 교육실정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강행하기도 하였다.
이 집회에서 교원들은 교원정년 환원, 연금법 개악 중단, 교육청문회 개최, 학급당 학생수 25명으로 감축 등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 후에도 교직단체는 교원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국회, 정당, 행정부 등 관계 기관과 지구당사를 방문하여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들 중에 어느 하나도 이루어진 것 없이 한해가 저물고 있으니 아쉽고 허탈한 마음뿐이다. 특히 교원들의 초미의 관심사인 교원정년 환원이 여당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은 심히 유감이다.
교직단체에서는 '98년에 교원정년 단축반대 서명운동을 했고, '99년에 교육공황을 초래한 이해찬 교육부장관 퇴진 서명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정부에서는 교원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교육부 장관을 퇴진시켰다. 교원정년 단축을 강행한 장관을 퇴진시켰다고 하는 것은 교원정년 단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여당에서는 교원정년 환원을 한사코 반대하여 왔으며, 교육실정의 책임을 물어 퇴진시킨 장관을 당의 정책위 의장으로 승진(?)시키지 않았던가? 이는 논리적 모순이며 교원들을 우롱하는 처사인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당시에 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러나 교원의 정년을 65세로 환원시키지 않고는 교육대통령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학교교육을 붕괴시키고 있는 주범이 바로 쿠데타적인 교원정년 단축이기 때문이다. 노교사 1명을 내보내고 젊은 교사 2.7명을 채용하여 교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했으며, 정년단축으로 인한 부족교원을 충원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교원경시 풍조를 유발하고 명퇴파동을 초래하여 교원수급상의 큰 차질을 빚고, 교육청의 부채를 증대시키고, 파행적인 교원임용으로 교육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지 않았던가?
교원정년 단축은 심층적인 연구나 논의 없이 단순한 여론조사 결과에 터해서 개혁을 위한 개혁으로 추진된 것이다. 국민들에게 "세금을 인하할 것인지 인상할 것인지, 휘발유값이나 의료수가를 내릴 것인지 올릴 것인지"를 조사한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교원들을 대상으로 "7차 교육과정을 도입할 것인지 아닌지"를 조사한다면 그 결과 역시 자명하다. 그런데 교육의 주체인 교원들의 정년을 단축시키는 중차대한 문제를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정책결정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류를 시정하는데는 당연히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인 여당이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실추된 신뢰를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시종일관 반대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나라당이 65세로 환원을 주장하고 자민련이 63세로 상향조정을 주장할 때 여당은 못이기는 체 야당의 주장을 수용하거나 양당에 대하여 64세로 조정하는 타협안을 제시한다면 교직단체가 여당에 대하여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란 타협의 산물이 아닌가? 40만 교직자의 한결같은 주장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정치, 폭 넓은 정치가 아쉽다.
교원들의 주장을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하지 말기를 바란다. 교원이 흔들리면 학교가 흔들리고 붕괴되며 국가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부나 정당은 국민들로부터도 강력한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하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00년에 이루지 못한 교원들의 소망이 2001년에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정일 학교바로세우기실천연대 위원장,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