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율 높이는 것 실태조사의 기본
왕따‧일진 등 의미 충분히 설명해야
“학교폭력을 드러내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드러내야 지역사회와 학부모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고, 무엇보다 가해 행위가 인간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며 어른들이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신뢰하게 됩니다.”
19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초청으로 ‘일본 이지메의 현황과 대책’ 강연을 위해 방한한 모리타 요지(森田洋司 71‧
사진) 오사카시립대 명예교수는 “학교폭력을 제대로 인식하고 드러내 사회가 함께 대처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했다. 모리타 교수는 일본 문부과학성의 이지메 대책 전문가로 집단 따돌림에 대한 국제비교 연구자로도 저명하다.
이지메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1985년부터 문부과학성의 실태조사와 대책수립에 참여해 온 모리타 교수는 한국의 학교폭력 전수조사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회수율을 높이는 것은 실태조사의 기본”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학생설문조사는 90.4%가 참여해 전국 대부분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고, 거의 모든 학생이 답변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문조사만으로는 실태파악을 위한 자료가 부족해 개별면담 기록, 가정방문, 보호자와의 연락 메모 등의 정보를 다면적으로 수집하고 있죠.”
모리타 교수는 설문조사 방식 자체가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설문지에 사용된 ‘학교폭력’, ‘왕따’, ‘일진회’ 등의 정확한 의미를 학생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학생·학부모 모두에게 학교에서 피해학생을 어떻게 보호하며 대처할 것인지 가시적 형태로 인식시켜야 제대로 된 실태파악이 가능하다고 첨언했다.
“교사가 교내폭력이나 왕따의 피해자를 졸업할 때까지 지켜보고 끝까지 지켜준다는 결의가 학생들에게 전해져 교사와 학생과의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는 일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피해를 신고한 학생에 대해 익명성을 담보해 준다면 학생들은 안심하고 설문조사나 면담에도 응답해 줍니다. 정보는 신뢰할 수 있는 교사에게 모이게 마련이죠.”
일본의 경우도 2007년 이지메로 초등생이 자살했으나 학교와 교육위원회가 이를 은폐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문부과학성의 실태조사 방법을 개선하게 됐다. 모리타 교수는 한국도 실태를 은폐할 수 없도록 조사결과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 공개를 부끄럽거나 학교에 부담 주는 일이 아니라 보호자나 지역사회로부터 구체적 협력지원을 설득하는 행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직원들도 모두 이런 인식을 공유해야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놓고 해결할 수 있어요.”
모리타 교수는 지난 2월 마련된 학교폭력 종합대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장기적으로 학교폭력 대책이 정착하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에도 학교폭력전담교사가 배치됐다고 들었습니다만 일본의 경우 중·고교에는 다른 업무를 일체 하지 않고 학생지도를 전담하는 교원을 두고 있는 점이 다르죠. 보건교사나 상담교사는 학생지도와 별도로 배치돼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전담교사 배치에 예산이 마련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지메와 학교폭력 문제가 제일 심각한 중학교에는 전국 모든 학교에 스쿨 카운슬러(전문 상담사)가 배치돼 있습니다.”
그는 또 학교에서 교사들이 실행할 수 있는 실질적 방편으로 학생들 스스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발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교사는 학생 스스로 학교가 학생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하고 의미 있는 곳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학교를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지원해야 합니다.”
모리타 교수는 한국의 학교폭력대책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으로 인성교육을 꼽았다. “인성 교육은 바로 효과가 나오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죠. 하지만 인성교육이야말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에 인내를 갖고 추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