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등산가가 말 했다.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그러나 때로는 자신이 거기 있어 산으로 가기도 한다.
나는 혼자가 좋을 때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이 불편하게 여겨졌다. 마음이 편한 친구 몇이서 다니는 것은 좋다. 아니면 혼자가 더 좋다. 혼자는 쓸쓸한 반면 편안하다.
오늘은 혼자인 나를 일으켜 세워 산으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무료하여 점심도시락을 준비하여 산으로 갔다. 물론 이름난 산은 아니고 동네에 있는 산이다. 버스를 대절해서 전국의 명산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다. 산행의 동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산을 만나기 위하여 가는 산행도 있지만 나를 만나기 위하여 산행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 나는 명산의 수려함이나 그 꼭대기를 내 발로 밟아야 한다는 그런 목적은 아니다. 그냥 '산은 다 산이다'라는 소박한 생각으로 내게 가장 편한 친구를 만나게 해준다는 마음으로 나를 데리고 나섰다.
사실 산은 쳐다보지도 않고 길만 따라 그냥 간다.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귀에다가 리시버를 끼우고 음악을 들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간다.
얼마간은 무심(無心)으로 가게 되고 때로는 이런 저런 묵상(黙想)도 하게 된다. 잠시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니 하얀 구름이 줄을 긋고 산허리를 넘어 갔다. ‘참 좋다’하고 가슴으로 말한다. 어쩌면 목표가 없이 사는 인생이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가는 것이다. 가다 보면 가야 될 곳이 생기기도하고 보아야 할 것도 생기고 쉬어야 할 곳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목표가 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살다가 때가 되면 그 자리에서 영면(永眠)하는 것, 그런 삶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한 시간을 걷고 나니, 고갯마루에 도착하였다. 누군가가 죽은 나무를 이용하여 걸터앉을 수 있도록 의자도 만들어 놓고 이정표도 세워두었고 붉은 천 조각을 매 달아서 가는 길을 알려 놓기도 하였다.
인생이 고달프더라도 쉴 수 있는 곳을 가지고 있을 때 다시 일어나 걸어 갈 수 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쉴 수 있는 공간이나 마음을 만들어 준다면 하룻밤 쉬어서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으리라. 인생에는 몇 개의 고갯마루를 거쳐야하는 것이다. 두려워하거나 힘들어만 할 일은 아니다. 그 곳에는 의자도 있고 안내표시도 있다. 천천히 산(山) 공기를 깊이 들여 마시면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일어나 계속 가는 것이다.
고갯마루에는 서너 곳의 갈림길이 있게 마련이다. 오늘 같은 산행에서는 갈 곳에 대한 선택을 요구 받는다. 이정표에는 거리가 표시되어있다. 우선 보아 평탄하게 보이는 곳과 가팔라 보이는 곳이 육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건 육안에 들어오는 것에 불과하다. 보기에는 평탄해도 한 구비 돌아가면 어떤 상황의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초행(初行)에는 알 수가 없다. 인생은 누구나 초행이 아닌가. 우선 보기에 가파르다고 외면할 것도 아니다. 그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면 얼마나 평탄하고 아름다운 길이 준비 되어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은 누구나 초행이니까.
그러니 머리를 굴리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아무 생각 없이 잔꾀부리지 말고 그냥 가는 것이다. 이런 인생은 너무 대책 없는 인생인가. 인생의 대책이라. 그 또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로다. 산이 가지고 있는, 산이 보여 주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면서 그냥 쉬엄쉬엄 가는 것이다.
오늘은 가파른 길을 택했다. 평지 보다 속도가 늦은 것 같다. 그러나 숨은 더욱 가쁘게 쉬어야했다. 가파른 비탈 한쪽에 무덤이 있었다. 배낭을 벗고 죽은 자의 주택 툇마루에 앉았다. 물 한 잔을 마시고 한 개만 가지고 온 사과를 여기서 깎았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매일 산자와 산다는 것이 결코 생동감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친한 친구가 배신을 하고 믿었던 회사가 부도가 나고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자연산 회를 먹고 식중독이 걸리기도 한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편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끔 죽은 자들 옆에서 죽은 자들의 평화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영원할 수 없으며 죽음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살아있음에 대하여 감사하고 겸손함을 죽은 자의 옆에서 배우게 되는 법이다. 내가 여기서 물 한 잔을 마시고 단 하나 가지고 온 사과를 깍은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의미를 새겨 놓고 일어섰다.
다시 일어나 가파른 산길을 숨을 몰아쉬면서 올라간다. 그러나 산위에 무엇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나 반드시 올라가서 정복을 해야겠다는 절박함이나 간절함을 가지고 오르지는 않는다. 나는 길이 계속 있으니 가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좋은 것도 있다. 산을 오를수록 주변의 산이 낮아지면서 내 눈 아래로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나쁜 쾌감이라는 향의 유혹에서 멈칫 거리게 된다. 묵묵히 받아라. 그리고 마셔라. 그렇게 산신령이 말씀하시는데도 말이다. 삶을 연구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있는 대로 보고 다가오는 대로 사는 것이다.
인간은 소유욕과 지배욕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은 치열하여 때로는 열정으로 아름답다 하기도하고, 때로는 치졸하여 스스로를 한 없이 왜소하게 만들기도 한다. 산을 오를수록 낮아지는 주위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오를수록 낮아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상에 서서 '야호'를 외치는 마음은 정복자의 감격일가. 삶의 찌꺼기를 토(吐)해 냄에 대한 시원함일까.
두 시간을 걸어서 나는 첫 번째 작은 봉우리위에 올랐다. 많은 산들이 내 발아래로 엎드리고 있었다. 울컥 서러움이 몰려들었다. 그 까닭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첫 번째의 의미가 의미로 형상화 되면서 주는 새로운 깃발이 되어서 펄럭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잠시 후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니 더 높은 봉우리가 몇 개 더 눈에 들어왔다. 한숨이 나왔다. 채우고자 함으로 인해서 좁아진 나의 공간의 비명이리라.
인생에 있어서 목표는 부질없다. 목표를 위하여 살면 죽는 날까지 목표를 위해서 목표만 바라보다 죽게 될 것이다. 사는 것은 사는 것일 뿐이다. 스스로 굴레를 만들 필요는 없다. 내 마음과 산이 손을 잡으면 평화와 행복을 입고 안고 가는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갖는 생각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위로 올라 가야하는 이유를 물어 보라. 아, 인생의 본질은 욕심을 채우려고 허덕이다가 죽는 것이구나. 첫 번째 봉우리를 자신의 마지막 봉우리로 가슴에 품으면 행복할 것 같다. 법정(法頂)의 말씀 중에 한 벌의 다기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다기를 한 벌 더 선물로 받으니 그 소중함이 덜 하여 한 벌을 남에게 주었더니 훨씬 더 소중하고 좋아 보였다 하셨다. 정복은 욕심이며 욕심은 소중함을 갉아 먹게 되는가 보다. 나는 ‘첫 번째.의 의미를 잃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의 의미도 함께 공유하기를 원한다.
나는 그 작은 정상에서 다시 돌아 갈 것을 결정하였다. 나의 체력을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돌아올 체력을 생각지 않고 갔다가 혼이 난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의 첫 번째 봉우리를 마지막 봉우리로 가지고 돌아가고 싶음과 또 한 여기 까지가 오늘 내가 볼 수 있도록 허락된 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인생은 반드시 왔던 길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돌아갈 여력을 생각지 않고 앞으로만 가다 보면 어느 산길 험한 계곡에서 영원히 머물지 모른다. 욕심에 대한 자제와 자신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잃지 말아야한다. 자기를 지나치게 앞으로 내몰아 혹사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산이 허락한 이상의 영역을 침해하지 말아야한다. 더 이상 새로운 세계는 없기 때문이다. 모양과 색상만 다를 뿐이지 그 영혼의 세계는 한가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은 산 한곳에 이르고 세상의 모든 산을 너끈히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인생이 아름다울 것이라 믿고 싶다.
나는 그 작은 산 정상에서 도시락을 열지는 않았다. 사방을 한 번 씩 둘러보고 나니 알 수 없는 산의 어떤 기운이 바람을 타고 발끝을 쓸며 머리끝으로 빠져 나갔다. 참으로 힘들게 오른 산이지만 사람들은 결코 그곳에 오래 머무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생은 언제나 황홀한 것은 아니다. 회사의 대리가 팀장이 되던 날 많은 동료나 친구들과 건배를 하면서 축배를 든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오래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과 다시 여기서 도시락을 함께 먹을 것에 대하여 염려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들과 제2의 건배를 위하여 일어서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잦은 건배는 참으로 피곤한 일임을 아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산정(山頂)을 나는 다시 돌아보지 않고 내려가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 산 7부 능선을 걸으면서 휘청거리는 다리를 위하여 바람을 막아 주는 바위가 고고히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천년을 한 결 같이 품기만 했음직한 노송이 굽어보는 양지에서 도시락을 풀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 놓고 소리 없이 웃었다 .혼자서 침묵과 함께한 산행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산이 씩 웃어 줌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들래 마을에서 키 작은 아이들을 한 없이 사랑하는 무관의 나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행복한 등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