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왔을 때만 해도 4년을 끌어온 예지중·고 사태와 비정규직 문제, 무상교복 갈등까지 전쟁터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이 어려운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업무 파악을 통해 원인을 분석하고 직접 만나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노력하고 당장 들어줄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다 보니 접점이 보이더군요. 이젠 교육청 마당에 그 흔한 플래카드 한 장 걸려있지 않아요.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되면서 대전교육이 새로운 비전에 도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똑똑한 아이보다는 생각하는 아이, 잠재력을 가진 아이를 길러내 대전이 대한민국 교육수도로 우뚝 설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남부호 대전시부교육감은 교육전문직 출신으로 9년 만에 부교육감에 오른 인물이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교육부 연구사로 선발돼 대변인실, 국제교육, 교육과정, 교과서 등 초중등교육 정책을 두루 거쳐 전문성과 행정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 대표 교육공약으로 꼽히는 고교학점제와 2015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총괄 지휘했고 자유학년제도 그의 손에서 구체적 실천 플랜이 마련됐다.
지난 13일 대전시교육청 집무실에서 만난 남 부교육감은 활짝 웃고 있었다. 그는 “대전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도시다. 뛰어난 잠재력을 갖춘 학생, 열정적인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의 신뢰와 교육청의 지원이 힘을 모으면 21세기는 대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곳에 와서 놀란 게 또 하나 있어요. 대전교육이 굉장히 역동적이라는 겁니다. 사실 충청도 하면 점잖은 게 특징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무상급식과 같은 교육복지 정책이 잘 추진되고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 등 실질적이고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곳입니다.”
그는 대전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설동호 교육감에 대해서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모든 업무의 중심을 아이들에게 두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즐거운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는 분이세요. 교육철학에 대한 이해도 깊고 굉장히 해박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전문직 출신 부교육감으로서 각오와 포부도 밝혔다. “교육청은 현장과 소통하는 최일선의 창구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이 언제든 믿고 찾는 대화 창구가 되고 싶습니다. 학교 가는 게 즐거운 대전교육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 부교육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 곧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의미다. 남 부교육감 부임 이후 대전교육청은 이전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활기찬 모습이다. 직원들은 ‘뭔가 해보자는 의욕이 충만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솔직하고 명쾌한 업무 스타일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다. 혁신정책과에 근무하는 강명원 사무관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정책을 조율하는 능력이 탁월해 배울 점이 많다”면서 “타 부처 직원들로부터 부럽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고 말했다.
- 장학관 출신 부교육감은 9년 만에 처음이다. 소감은?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일부에서는 ‘잘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직경력 31년 중 교사로 11년, 교육부에서 20년을 보냈다. 학교 현장의 정서를 이해하고 이를 행정과 조화시키는 것은 내가 가진 강점이다. 그동안 배운 노하우를 모두 쏟아부어 대전교육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 말 그대로 교육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교육청에서 근무해 보니 어떤가?
“교육청은 현장 소통의 최전선이다. 현장의 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 정부 정책이 학교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느냐 여부는 중간 허리 역할을 하는 교육청의 역량에 달려있다. 교육청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 대전교육계 최대 현안이던 예지중·고 문제가 해결의 국면에 들어선 것 같다. 만학도들은 무기한 농성을 풀었고 졸업식도 무사히 치렀다.
“교육청 출근 첫날부터 그분들을 만났다. 농성장을 찾아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했다. 우선은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들었다. 그리고 교육청에서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직접 만나보니 그분들도 교육청과 대화 창구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초짜’ 부교육감의 진정성을 받아 준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해 보답할 생각이다.” (한때 대전시교육청 청사 주변에는 예지중·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들이 어지럽게 걸려있었으나 지금은 말끔히 사라졌다.)
- 예지중·고 사건을 해결하면서 부교육감 인기가 치솟았다고 들었다. 시의회 답변이 결정적 계기였다고 하던데.
“인기까지는 아니고 직원들 사이에 뭔가 해보자는 의욕이 높아졌다는 말은 전해 들었다. 부임 3일째 되던 날 예지중·고 건으로 시의회 출석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회의 개시 30분 전에 연락이 왔다. 나보다 직원들이 더 당황했다. 보나 마나 부교육감이 시의회에서 실컷 두들겨 맞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다(웃음). 업무 파악도 안 됐을 터이니 답변을 제대로 못 할 것이고 그러면 ‘교육청이 뭐 하는 곳이냐’는 질책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대전교육이 안고 있는 6대 현안을 열심히 공부했고 짧은 기간이지만 학생과 교사, 재단 측과 충분한 대화를 했던 터여서 자신이 있었다. 시의회에서 사태 원인과 현황, 해결방안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고했고 의원들의 질의에 성실하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아마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해 준 것 같다.”(한 대전시교육청 직원은 부교육감이 정확하게 현안을 파악하고 대안까지 제시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귀띔했다.)
- 스포츠강사 등 비정규직 문제와 무상교복을 둘러싼 갈등이 많았는데 이 부분도 해소됐다는 평가다. 비결이 뭔가?
“교육부에서 2015 교육과정개정이나 학생부 개정 등 갈등과 대립이 불가피한 정책들을 많이 다룬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때 자주 만나 대화하다 보면 안 풀리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수용하고 교육청 차원에서 할 수 없는 영역은 정확하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
-고교학점제는 이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이다. 어떻게 전망하나?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자유학기제를 거치면서 학생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학생들은 이제 주입식 지식 교육보다 자기들끼리 서로 부딪히며 찾아가는 교육, 생각하는 교육을 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래 없는 교육, 자기를 돌아보는 교육을 하지 않았기에 학생들은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회의를 느끼곤 했다. 이제부터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면서 성취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자기주도학습이고 학교 가는 것이 행복한 교육이며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 ‘SKY 캐슬’에서 보듯 우리 교육 현실은 정부가 생각하는 것만큼 녹녹치 않은데.
“정부가 어떤 정책을 발표하면 학부모들은 지레 결과를 예상하고 대책을 찾는데 골몰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학생을 믿고, 교사를 믿고, 정부를 믿고 기다려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능력, 흥미에 따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받아주고,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학부모가 돼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학부모도 만족하는 교육을 기대할 수 있다.”
- 부교육감 재임 동안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남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역량중심교육에 역점을 두겠다. 이제는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했던 똑똑한 인재가 아니라 생각하는 인재, 잠재력을 가진 인재, 어떤 과제를 던져주면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대전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한 부교육감으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