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 형사사법제도에 세 가지 큰 변화가 있다. 1월 1일부터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1.21.), 7월 1일부터 자치경찰제 시행이다. 형사사법제도(刑事司法制度)란 형사의 재판 및 그에 관련되는 국가 제도를 말한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선생님들은 “교육과 무슨 상관이냐?” 이런 반문을 할 것 같다. 맞다. 교육자는 교육에만 전념하면 되고, 경찰·검찰·공수처·법원과는 무관하게 사는 게 최고다. 또 많은 선생님이 깨끗한 교직 윤리를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인생사도 그렇듯이 교직생활도 본인 의사에 반하는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교권 업무를 오랫동안 하면서 평소 선생님들이 갖는 순수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 △난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야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다 알고 있는데 뭐 △발생하면 그때 고민하면 되지 △학교나 교육청에서 알아서 다해주는 거 아냐?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경찰서에서 조사받으라고 연락이 오는 순간, 그 당당함과 냉정함은 사라지고 멘붕에 빠지게 된다. 또 근거 없는 자신감, 또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오라는 시간에 혼자 가서 실수와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면서 선처를 호소하기도 한다. 이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흐름출판 펴냄, 371쪽, 1만6000원) 시대를 초월한 고전문학의 가치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두껍고 어려운 고전을 읽는 건 쉽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25권의 고전문학을 인간의 생애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 풀어냈다.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고전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설명하고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뽑아내 펼쳐낸다.
들어가며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수업이 증가하면서 교사 개인의 개인정보 유출이나 선생님 사진을 합성하여 올리는 등 사이버 교권침해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교육부는 교권침해 유형에 ‘사이버 교권침해’를 포함한 교육활동 보호 조치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는 「헌법」 제31조 제4항, 「교육기본법」 제14조, 「경기교권보호 헌장」,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을 근거로 하여 각 시·도교육청의 교육정책으로 추진 및 운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교권침해 현상은 증가하고 있으며, 교권침해 주체와 침해 행위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활동 침해 사안의 증가는 교원의 교육력 상실과 사기 저하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교권의 개념과 보호해야 할 교육활동 범위에 대한 학교 및 교직사회의 합의는 미흡한 실정이다(소미영·홍석노, 2019. 5). 이에 교육활동 침해의 의미와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운영, 교육활동 침해 피해교원에 대한 보호 조치 등을 통해 교원의 지위 향상과 교육발전 방안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교육활동 침해의 의미 가. 교육활동 침해에
교실 맨 앞줄 (김성일 외 7명 지음, 돌베개 펴냄, 228쪽, 1만2000원) 10대와 가장 밀접한 공간인 학교에 관해 8명의 작가가 SF·판타지·기담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한 8가지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이다. 학교생활 곳곳에 숨은 두려움과 설렘, 기쁨과 슬픔, 잔혹과 다정을 기발하고 개성 넘치는 이야기로 녹여냈다. 벗어나고도, 숨어들고도 싶은 우리들의 ‘이상한’ 학교의 모습을 풀어낸다.
마음에도 근육이 필요해 (마음꽃을 피우는 사람들 지음, 고래이야기 펴냄, 140쪽, 1만5000원) 어린이잡지 월간 마음꽃의 ‘이달의 마음굴리기’ 꼭지에 연재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 관계, 공부, 게임, 이성친구 등 어린이들이 직접 보내온 고민에 마음을 다해 도움이 되는 답변을 담은 상담 모음집이다. 힘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의 언어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교육계 최고의 현안은 학급당 적정 학생 수이다. 이른바 과밀학급 해소라고 불리는데, 학생들이 쾌적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교사의 세심한 학생생활지도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임으로써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줄이자는 취지이다. 교육정책이나 지침을 둘러싸고 자주 갈등하던 교원단체들조차 한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입법 청원 운동까지 하고 있다. 실제 2020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21.8명, 중학교 25.5명, 고등학교 23.4명으로 OECD 평균인 초등학교 21.1명, 중학교 23.3명을 상회한다. 객관적 지표를 봐도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 또 보통 교실이 20평임을 고려할 때 학생 1명당 교실 1평을 확보하면 코로나19나 이와 같은 역병이 유행하더라도 원격수업을 하지 않고 거리두기를 하면서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학급당 학생 수 20명은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이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재 과밀학급에 대한 연구자료나 다른 OECD 국가를 봐도 과밀의 기준으로 학급당 상한 학생 수를 20명으로 제시한 근거는 없다. 특히 학급당 학생 수 평균이 개별 학교 간에 실질적 분포도를 고려하
이미지 정치인의 감성적인 눈물·겸손은 장점 ‘엄마표’ 교육은 아이들 미래에 큰 동력인데 정치 공학적 ‘라떼’ 교육에 매몰된 행보 실망 역대 최악 ‘기초학력’ 추락에 책임감 보여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감성적이다. 잘 웃지만 잘 울기도 한다. 유치원 파동 때도,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사망 사건 때도, 고3 학생들의 강릉 펜션 참사 때도, 그리고 총선 불출마 선언 때도 울먹였다. “저도 또래 자식이 있다”, “부모님 아픈 마음 누구보다도 잘안다”, “제 터전이었던 일산을 생각하면 큰 용기가 필요했다” 등등 그의 눈물은 대중의 마음을 녹였다. 함께 울며 눈물을 닦아주는 이도 있었다. 유은혜의 감성 행보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았던 전임(김상곤 장관)과는 달리 겸손했다. 애간장 태우던 ‘유치원 3법’이 국회를 통과해 엄마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그러다 보니 2018년 9월 청문회 당시 치명적이었던 ‘딸 위장 전입’을 비롯한 너저분한 흠결도 지금은 거의 잊혔다. 입각 당시 “청문회에서 시달린 분이 일을 더 잘한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이상한 격려를 받더니 취임 초기 1년 남짓 동안에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눈물을 흘렸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이 무너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가고, 수업 듣고, 급식 먹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집에 오던 평범했던 일상을 빼앗겼다. 학교를 안 가서 신나던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외로움과 불안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무기력해졌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뭐라도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지만, 실천하지 않는 자신이 실망스러워졌다. 이러다 나만 뒤쳐질 것만 같은 불안감과 우울감에 빠졌으며, 불규칙한 생활패턴으로 점점 게을러지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자존감도 바닥까지 내려왔다. 아이들은 어른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변화를 가장 크게 체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들도 경험한 적이 없어 우왕좌왕하느라 아이들을 찬찬히 챙겨줄 겨를이 없었다. 부모님은 불어 닥친 경제위기 속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릴 방법을 찾느라, 선생님 역시 변화된 교육환경에 적응하느라 너무 바빴다. 그래서 아이들은 본인들이 뭘 감당하고 있는지, 왜 자기 마음이 이렇게 우울하고 불안한지, 갑자기 자존감이 왜 이리 낮아졌는지 영문도 모른 채 홀로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교육계의 가장 큰 걱정은 코로나19로
A가 B와 대화하고 있다. A가 말한다. “그 사람들, 이단 집단이야.” “이단은 아니래.” “이단이라던데?” “이단 아니라니까.” “그럼 뭐야?” “이단 아니고, 삼단이야. 삼단!” 이견으로 긴장이 감도는가 했는데, 급전직하 맥 풀리는 대화로 변전한다. 서로 헛웃음이 번진다. 이단임을 주장했던 A는 B가 ‘삼단’ 운운하니, 너 지금 장난하는 거냐고 역정을 내려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B의 우스갯말에 그 이단을 더 치명적으로 희화화하는 의도(이단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비아냥거림)가 들어 있다. 삼단이라는 말에 묘미가 아주 없지는 않다. 말의 소리나 의미를 엉뚱하게 비틀어서 우스갯말로 만드는 전형적인 예다. 국민이 다 아는 우스갯말을 나는 늦게야 듣고서, 그럴 법하다고 생각했었다. 친구가 가르쳐 준다. “1 더하기 1은 뭐지?” 나는 별생각 없이 ‘2’라고 대답한다. 친구는 ‘너 이런 거, 잘 몰랐지’ 하는 표정으로 말해 준다. “2가 아니고, ‘과로’야 ‘과로’!” “그게 왜 과로야?” “이미 일이 있는 데에 또 일을 더 해야 하니, 그러니 과로라는 거지.” 웃기는 구조는 좀 단순해도, ‘피로 사회’로 치닫던 시대상을 담고 있다. 친구가 다시 말한다.
운명처럼 내 눈앞에 나타나 2020년 겨울, 코로나19 때문에 주말에도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는 어느 심심한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맥주 한 캔에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 하염없는 시간을 달래고자 했지요. 우연히 모 방송국이 제작한 2050 생존의 길 다큐멘터리를 본 후 ‘코로나19가 그저 스쳐지나가는 전염병으로 끝나지 않을것 같다’는 경각심과 함께 ‘다양한 생명과의 공존을 위하여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사회문제들이 ‘기후 위기’ 앞에서는 별것 아닌 우스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광명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교육연구회 선생님 한 분이 2021년 1학기의 공부 주제를 ‘환경’으로 잡아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꺼냈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원인이 인간이 파괴한 지구의 생물다양성과 긴밀히 맞닿아 있는데 방역으로 인하여 오히려 일회용품 사용 증가 등 환경적으로 우려될만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철저한 방역교육을 넘어서 재난의 시대가 도래한 근본적 원인에 대해 성찰하고, 기후 위기 세대들에게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가르칠 것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