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중국 실크로드를 다녀왔습니다. 시안[西安] 일대-천수-난주-가욕관-주천-둔황-투루판-우루무치를 거치는 일정이었습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볼 때 이 일정은 실크로드 전체의 반에도 미치지 않는 짧은 거리입니다. 하지만 서쪽으로 달려 갈수록 눈에 띄게 달라지는 자연환경이나 사람들의 생김새는 ‘역시 실크로드다!’하고 감탄하게 합니다. ‘사막에서도 흰 눈이 덮인 산맥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듣고 사진으로 확인도 했지만 정작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요, 나와 상관없는 남의 집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렇게 뻣뻣했던 나그네에게, 감탄에 익숙지 않은 내게 실크로드는 말로 못할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새벽을 종착지로 해서 밤새 서쪽으로만 달리던 기차는 종착지에 다다를 무렵 드디어 저 멀리서 흰 눈을 뒤집어 쓴 채 나를 향해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코 앞에는 누렇고 메마른 사막인데도 말입니다. ‘어리석은 중생아,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넓단다’하는 가르침을 던져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에어컨이 설치된 버스를 타고 편안한 숙소에서 머물며 실크로드를 다닐 수 있다지만 그 옛날 척박한 이 땅에
모든 단체와 조직은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조직력을 강화·촉진하기 위해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대 상황과 수요자의 요구에 맞는 치밀한 전략과 기획을 하고, 홍보와 조직의 기능 및 유연한 조직형태로 회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교총에 가입을 한 것은 30여 년 전 초임발령을 받았을 때 특별한 의미나 관심도 없이 그냥 교장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것도 한국교총이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가입을 하여 어떤 혜택이나 도움을 받는 것인지, 고려해 본 일도 없다. 오랜 기간 동안 교원단체 회원이라는 것조차도 잊고 생활해 왔던 것이 어언 30여년이 넘었다. 그야말로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고 단체에 가입을 하여 남들이 흔히 한국교총이 승진자들의, 승진자들을 위한, 승진자들을 대변하는 어용단체로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도, 한국교총이 어떤 일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고 넋두리를 하여도 계속 회원으로 유지하였던 것이다. 관료적인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참신한 새바람을 불어 넣는다며 참교육을 부르짖는 새로운 단체의 회유도 있었지만, 회원을
컴퓨터를 켜면 하루에도 수많은 스팸메일이나 지인들로부터 편지가 도착해 있다. 그리고 중요한 업무나 전달사항도 전자메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연말연시가 되면 정성들여 쓰던 카드도 이젠 전자메일 편지지를 이용해 내용에 알맞은 갖가지 예쁜 도안들로 채워진다. 옛날처럼 기다림도 설렘도 줄어든 전자메일은 글의 내용 외에는 어느 한 곳이라도 상대방의 향기를 맡기 힘들다. 그것은 아마도 직접 쓴 글씨를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글씨는 사람마다의 개성이나 마음씨를 알 수 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삐뚤삐뚤하지만 그 아이의 마음이나 태도를 읽을 수 있고 어른은 어른대로 글씨만 봐도 그 사람의 품성과 인격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주인의 인간성과 교양 반영해 서양화가 유입되기 전 먹이 주재료였던 우리 선조들은 글씨 혹은 그림 속에 자신의 감정과 능력을 담아냈으며, 그림과 글씨를 나타낼 때는 완벽하게 재료를 준비하고 표현을 할 때도 최선을 다했다. 흔히 문방사우라 일컫는 벼루, 먹, 종이, 붓 외에도 글과 그림의 재료로 종이를 누르는 서진과 종이 아래 놓는 깔개가 있고, 먹을 갈 때 사용할 물 담는 연적 등이 있다. 그 중 연적은 글씨와 그림으로 완성된 작품을 보기
“명품 환경으로 명품 교육 제공해요”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서부초(교장 김성) 운동장에 들어서면 옛 초가집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선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운동장 한 쪽에 위치한 체육 교보재 창고에 그려진 벽화의 모습이다. 건립된 지 30년이 넘어 미관상 보기 싫었던 건물의 외벽에 벽화를 그린 것은 김 교장의 아이디어. 김 교장은 학교 환경 개선을 위해 지난 여름방학 내내 아이들과 직접 벽화를 완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벽화는 운동장 한쪽에 조성돼 있는 정원과 함께 서부초의 자랑이 됐다. 주민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학교 만들어 서부초는 행정구역상 경기도지만 서울시 강동지역과 인접해있어 학생들이 모두 서울로 진학을 하는 특수한 환경에 있다. 서울의 인접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낙후한 지역 환경 탓에 지역 주민들로부터도 외면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지난 2003년 김 교장이 부임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김 교장은 우선 학교 환경미화에 공을 들였다. 학교 담을 없애고, 체육관을 새롭게 지어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또 오래된 온실 내부에 벽화를 그리고, 마치 작은 숲속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정원을 새롭게 조성했다. 수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
조국의 주권을 되찾은 해방의 기쁨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 해인 1947년 11월 23일에 조선교육연합회가 태동하여 정부수립 다음해인 1949년 2월 7일에 대한교육연합회로 변신하여 수많은 역경을 딛고 발전을 거듭해 오다가 1989년 5월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라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하여 이제 회갑을 맞게 되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16개 시·도의 지역조직과 5개의 직능단체, 산하단체 25개를 두고 교원의 지위향상과 교직의 전문성 확립을 기함으로써 교육의 진흥과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교총은 명실 공히 건실하고 튼튼한 교원단체로 발전해 왔으며 올해는 사상처음 보통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회장으로 당선되어 학교현장에 근무하는 많은 교원들이 현장과 한발 가까워진 교총으로 변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하나의 교원단체로 안주하면서 관변단체였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었고 현장교원과 거리감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러나 1999년 전교조의 합법화와 한꺼번에 3년이나 정년단축이 되면서 학교현장은 반목과 갈등으로 얼룩졌고 안정이 흔들리면서 복수의 교원단체가 생겨나 경쟁의 대열로 들어선 후 수년이 흘러오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교총의 육순을 축하합니다. 짝짝짝.” 한 생명이 태어나 자라서 결혼을 하고, 새 가정을 이룩해 낳은 아이가 성장해 결혼한 뒤에 한숨 돌리는 나이가 육순이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약 30년 기간을 1세대라고 한다면 정확히 2세대를 산 시기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60년 동안 불귀의 객이 되지 않고 온전하게 육순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더군다나 자기가 이룬 세대의 후손들에게 육순 잔치상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터이다. 한 개인의 가족사도 이렇게 영광스러울진대 하물며 20만 교원의 식솔을 거느리고 있는 대규모 단체가 육순을 맞았다면 박수를 한 바가지로 받는다 해도 모자랄 것이다. 1947년의 격변기에 태어나 세대가 두 번 바뀌는 동안 수많은 외풍을 견디면서 교총이라는 단체를 굳건히 지켜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고 작은 신생단체가 하루에도 수십개씩 생겨났다 사라지는 다변화 시대에 육순이 되도록 오직 외길만을 고집한 장인정신만으로도. 190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그 이름을 고수하며 60년을 버티고 있는 단체는 아마 우리 교총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60살이면 귀가 순해진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