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간에 ‘4억 명품녀’가 한창 화제다. 그녀는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3억 원이 넘는 차를 몰고 다니며 8억 원이 넘는 명품가방을 가지고 있고, 일시 몸에 걸친 옷과 악세사리만 4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 동안 돈 있는 사람들의 호화스런 생활에 대해 안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와 같이 지극히 사치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묘사하는 성어로 ‘지취금미’(紙醉金迷)가 있다. 옛날 당나라 소종(昭宗) 때에 맹부(孟斧)라는 의사가 있었다. 그의 치료는 아주 신통하여 늘 궁중에 불려 들어가 황제와 황비들의 병을 고치곤 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황소의 난이 일어나 장안이 어지러워졌다. 그는 그곳을 빠져나와 사천(四川)으로 이주했다. 얼마 후 그는 황궁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그는 기억나는 대로 황궁의 장식을 모방해 자신의 집을 짓고 또 화려하게 꾸몄다. 그는 특히 햇빛이 잘 드는 방 하나를 골라 황궁과 같은 여러 가구와 집기를 들여놓고는 모든 기물에 황금으로 만든 금박지를 씌웠다. 그러자 창문을 통해 환한 햇살이 비출 때면 온 방안에 찬란한 황금빛이 출렁였다. 맹부의 친척이나 지인으로 이 방을 들어와 본 사람은 모두 그
전국시대에 노중련(魯仲連)이라는 고사(高士)가 있었다. 그가 조(趙)나라에 머물고 있었을 때 진(秦)나라가 쳐들어와 조나라의 수도를 포위했다. 진나라를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진나라 임금을 황제로 받드는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의 후환의 두려운지라 조나라와 친한 다른 나라들조차 조나라에 사신 보내어 그리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이때 노중련은 본래부터 흉악한 진나라가 황제국이 되고나면 천하에 끼쳐질 그 폐해가 더욱 클 것이라는 점을 조목조목 논증하고는, 만약 진나라가 황제국이 되면 자신은 그러한 세상에서 굴욕적으로 사느니 차라리 바다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노중련의 말에 크게 깨달은 각국은 진나라의 칭제를 허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며 군대를 보내어 조나라를 도왔다. 그러자 진나라는 할 수 없이 조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에서 벗어난 조나라는 감사의 표시로 노중련에게 천금을 주고자 했다. 이때 노중련은 “진정한 선비는 남을 위하여 환난을 풀고 반란을 해결하고도 보상을 받지 않습니다. 만약 보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장사치의 도(道)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조나라를 떠났다. 이와 같은 고사에서 나온 성어 ‘사금도해’(辭金蹈海)는 의를 위해 재물을
일상에 찌든 우리에게 참 지혜의 글로 오랫동안 깨우침을 주셨던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 스님은 마지막의 순간까지도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하셨다. 자신의 사리는 찾지도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고 하셨다. 더 이상 자신의 책을 출간해 세상에 말빚을 지게 하지도 말고, 또 자신의 머리맡에 있는 책은 신문배달부에게 전해주라고 하셨다. 아울러 자신에게 소유한 것이 있다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일에 쓰라고 하셨다. 열반 뒤에도 무소유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신문을 통해 스님의 일생을 돌아보니, 공자의 말 한 마디가 떠오른다. “선비는 마음을 크게 하고 굳세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어짐의 실천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으니 막중하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할 일이 끝나니 먼 길이 아니겠는가?”(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이 말에서 나온 하나의 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은 막중한 임무를 오랫동안 실천해야 함을 비유한 말이고, 또 하나의 성어 ‘사이후이’(死而後已)는 어떤 일에 죽을 때까지 온 힘을 기울임을 가리킨다. 불자에게 유가의 말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북송시대의 화가 문동(文同)은 대나무 잘 그리기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문동은 자기 집 앞뒤 마당에 여러 종류의 대나무를 가득 심고서, 춘하추동 흐리거나 맑거나 바람 부나 비 오나 항상 대숲에 가서 대나무의 성장과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하여 대나무의 길이와 굵기, 댓잎의 모양과 색깔 등을 음미해보고 새로운 느낌을 얻으면 곧 방으로 돌아와 지필묵을 준비하여 마음 속의 대나무 이미지를 그렸다. 이렇게 하기를 날이 가고 달이 흐르자, 다른 계절, 다른 날씨, 다른 시각의 대나무 형상이 모두 그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게 됐다. 그리하여 그는 붓을 들고 종이 앞에 서기만 하면 즉시 평소에 관찰했던 각종 모습의 대나무를 생생히 재현해내곤 했다. 그가 대나무를 그릴 때면 매우 침착하면서도 자신에 차있었고, 그가 그린 대나무는 마치 실물인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그는 늘 겸손히 “나는 단지 내 마음속에 이루어진 대나무를 그려낼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성어 ‘흉유성죽’(胸有成竹), 즉 ‘마음 속에 이미 완성된 대나무가 있다’는 말은 ‘어떤 일을
중국 속담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장돌림이 강을 건너다 배에서 떨어졌다. 다행이 한 어부가 근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장돌림은 그에게 소리쳤다. “나는 큰 부자요. 나를 구해주면 금 백 냥을 주겠소.” 어부는 그를 구하여주었다. 그러나 그 장돌림은 어부에게 금 열 냥만을 주었다. 어부가 약속과 다르다며 항의하자 장돌림은 말하였다. “당신은 물고기를 잡아 하루에 얼마를 버시오? 잠깐의 수고로 금 열 냥을 벌고도 만족하지 못한단 말이오?” 어부는 실망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떴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이 장돌림이 탄 배가 이번에는 암초에 걸려 뒤집어졌다. 이때 마침 전에 이 장돌림을 구해주었던 어부가 그곳에 있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은 왜 저 사람을 구해주지 않는 것이오?” 어부가 대답했다. “저 사람은 금 백 냥을 주기로 약속하고서는 주지 않은 사람이오.” 어부는 서서 상인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국시대 정(鄭)나라의 어떤 사람이 신을 사기위해 먼저 끈으로 자기 발의 크기를 재고 나서 시장에 갔다. 그가 마음에 드는 모양의 신을 골랐는데 그제서야 그 끈을 집에 두고 온 것을 알았다. 그가 집에
후한(後漢) 초에 두융(竇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때 광무제(光武帝)는 아직 천하를 다 통일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두융은 처음에 하서(河西)지역 장액군(張掖郡)의 한 곳에서 도위(都尉)라는 작은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선정을 베풀어 얻은 민심을 바탕으로 주변 다섯 군(郡)의 태수들과 두터운 친교를 맺고 난 후 그들을 잘 설득하여 다섯 군의 십만 병사를 지휘하는 하서오군대장군(河西五郡大將君)으로 추대될 수 있었다. 그는 추대될 때 한 약속을 지키고 정치를 관대하게 하여 점차 세력이 강대해졌다. 이때 감숙 지역에서 외효(隗嚣)라는 사람이 황제를 참칭하고 촉 지역에서는 공손술(公孫述)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황제라고 하면서 후한의 광무제와 대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무제는 두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깨달아 사신을 보내어 말하였다. “외효와 공손술이 스스로 황제라 부르며 나와 대립하고 있는데 당신은 저울을 가지고 있는 격이다. 당신이 발을 어느 쪽으로 옮기는가에 따라 가볍고 무거운 쪽이 결정될 것이다.”(擧足左右,便有輕重)라고 하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두융이 광무제의 신하가 되어 십만 병력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자 과연 후한이
작년 한 해도 교육계는 많은 굵직한 이슈들로 어수선했다. 학업성취도평가 공개, 외고입시 개혁, 교육세 폐지, 입학사정관제 확대, 미래형교육과정 제정, 교원평가제 실시, 학원 심야교습 단속 등이 그것이다. 작년에 이루어진 이러한 정책의 초점은 대부분 사교육 억제에 맞추어져 있다. 즉 망국적 사교육의 뿌리를 뽑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람직한 교육을 위한 건설적인 조치라기보다는 교육외적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조치였다.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교육의 근간을 건드린 적이 없다. 다만 기존의 교육 틀로 인해 나타나는 그때그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새 정책으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옛 책에 “한 쪽으로 휜 것을 똑바로 잡으려다가 다른 쪽으로 휘게 하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벌어진다.(矯枉過直, 古今同之)”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현재의 우리 교육정책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정권과 교육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이러한 느낌을 갖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논어'에서 유약(有若)이라는 공자의 수제자는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쓴다. 왜냐하
온 나라가 세종시 문제로 벌집을 쑤신 듯이 시끄럽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선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도 옳아서 도대체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이 문제가 모두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 혹은 경제적 이익과 중차대하게 연관돼 있어 첨예한 대립과 논쟁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과 논쟁 속에 우리가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어느 읍의 수령이 되어 공자에게 정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을 빨리 이루려고 하지 말라. 작은 이익을 보지 말라. 일을 빨리 이루고자 하면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 작은 이익을 보면 큰일을 성취하지 못한다(無欲速. 無見小利. 欲速, 則不達. 見小利, 則大事不成.)." 이 말에서 나온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성어는 어떤 일이든지 철저한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추진하지 않으면 미처 생각지 못한 변수에 적절히 대응을 할 수 없어 도리어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뜻이다. 세종시 건설 원안에 대하여 찬성하는 쪽의 ‘지방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화해소
얼마 전 김연아 선수가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210.03점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녀는 이번에 그랑프리 6회 연속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녀의 성공신화는 타고난 자질 때문이라기보다는 혹독한 훈련과 초인적인 극기의 결과라는 사실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함께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주었다. ‘맹자’에 ‘기린은 달리는 동물에 대하여, 봉황은 나는 새에 대하여, 태산은 크고 작은 구릉에 대하여, 하해는 여러 시내에 대하여 모두 각각 같은 종류들이지만, 이들은 자기 동류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고 무리 가운데서 가장 빼어난 존재들이다.(出乎其類, 拔乎其萃)’라는 글이 있다. 이 글에서 나온 ‘출류발췌(出類拔萃)’라는 성어는 일반적으로 어떤 집단에서 인품이나 능력이나 혹은 외모가 가장 출중한 존재를 묘사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앞의 출전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사실은 이보다는 좀 더 강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즉 동류의 개체가 모두 포괄된 집단 중에서, 그것도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모든 동류 가운데서 홀로 탁월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김연아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보면 ‘출류발췌’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만큼 일반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섰다. 정부가 하는 일에는 보통 찬반이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이번 일만큼은 모든 국민들이 환영하며 반겼다. 이를 지켜보면서 우리 역사상 세종대왕보다 더 훌륭한 인물은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홀연 떠올랐는데, 그 해답은 바로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성인(聖人)을 나타내는 말로 ‘박시제중(博施濟衆)’이라는 성어가 있는데, 세종대왕이야말로 여기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대중을 잘 구제할 수 있다면 인자(仁者)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제자인 자공이 어느 날 공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어찌 인자에 그치겠느냐? 그런 사람은 반드시 성인(聖人)일 것이다. 요 임금이나 순 임금도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자책하였다”고 답한 것으로 ‘논어’에 나와 있다. 여기에서 나온 ‘박시제중(博施濟衆)’이란 성어는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고 대중을 고통에서 구제한다’는 뜻이지만, 나아가 인자보다 더 높은 단계에 성인이 있으며 성인이 되려면 ‘박시제중’의 공로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박시제중’은 지도자가 달성해야 할 최고의 목표이자, 성인으로 추앙받는 표지인 것이
요즘 우리 사회는 ‘조두순사건’이나 ‘은지사건’ 등 아동성폭력에 관한 일로 국민들 사이에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이 일로 가만 생각해보니, 얼마 전부터 신문에 친부나 의부에 의한 성폭력을 비롯한, 온갖 상상하기조차 싫은 성범죄들이 부쩍 많이 오르내리는 듯하다. 이러한 인간 이하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곧잘 표현하는 말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성어가 있다. 곧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그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의 출전인 '열자(列子)'를 살펴보니, “하나라 걸(桀) 임금, 은나라의 주(紂) 임금, 노나라 환공(桓公), 초나라 목왕(穆王)은 얼굴에 일곱 구멍이 있는 것이 모두 사람과 같지만 짐승의 마음을 지녔다.”고 하였다. 하의 걸 임금은 잔인하고 포학하였으며, 은의 주 임금은 주색에 빠져 살았고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 들였다. 노 환공은 이복형인 은공(隱公)을 죽이고 군주의 자리에 올랐으며, 초 목왕은 아버지인 성왕(成王)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이다. 이런 사람들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앉았으니 나라가 잘될 리 없었다. 하나라와 은나라는 곧 멸망하였으며, 노나라와 초나라가 큰 혼란과 침체에 빠지게 된 것도 필연의 결과였다. 이에 비추어
한바탕의 인사청문회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얼마 전 두 검찰총장 후보자를 비롯해 이번의 총리, 장관, 대법관 등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몰염치한 준법의식에 국민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논어’에 의하면 노(魯)나라 군주인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따릅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곧은 사람을 등용하고 굽은 사람을 내치면 백성이 따를 것이요, 굽은 사람을 등용하고 곧은 사람을 내치면 백성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한번은 번지(樊遲)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무엇이 지혜로운 것인지를 묻자 공자는 “지혜란 사람을 아는 것”이라며 “곧은 사람을 등용하고 굽은 사람을 내치면 굽은 사람도 곧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자하(子夏)라는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감탄하기를 “의미심장하구나, 말씀이! 순(舜)임금이 고요(皐陶)라는 충신을 등용하자 천하에 악인이 사라졌고, 탕(湯)임금이 이윤(伊尹)이라는 충신을 등용하자 악인이 사라졌었다.”라고 했다. ‘거직조왕(擧直措枉)’이란 성어는 곧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간사한 사람을 해임한다’는 뜻으로, 그래야만 국민이 정부를 믿고 따르며 사회에 올바른 도덕적 기풍이 형성된다는 의마가 내포돼
순수 경제학자 출신 정운찬 교수가 총리 내정자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경제총리라 하니 중국 역사상 최초의 경제이론가이자 일국의 재상으로 부국강병을 이뤘던 관중(管仲)이 떠오른다.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에 의하면, 관중은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자랑스러움과 욕됨을 분간한다.”고 여겨 경제적 기초가 윤리도덕보다 앞선다고 여겼다. 그는 제나라의 재상이 된 후 전국의 생산물을 유통시키고 나라의 재물을 늘려 부국강병을 이뤘는데, 그 실행원칙은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제나라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천하의 패주(覇主)가 되어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이룰 수 있었다. 관중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한비자(韓非子)’에 의하면, 한번은 관중이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잃고 말았다. 그는 “늙은 말의 지혜를 쓰면 된다.”고 말하고는 즉시 늙은 말을 풀어주어 그 뒤를 따라갔다. 얼마 후에 과연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한다. 즉 늙은 말은 평생 전쟁터를 떠다닌 결과 자연히 길을 찾는 능력도 뛰어나게 발달되었다는 뜻인데, ‘늙은 말이 길을 안다.(老馬識道:노마식도)’란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