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금 소식이 있었다. 매일 매일이다. 5일 연속이다. 사재혁 선수가 남자 역도 77㎏급에서 금을 들어 올렸다. 그 무거운 금을 들어올렸다. 오늘은 금소식이 없나 하면서 기대를 했었는데 사 선수가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12세이던 1997년부터 역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으로 역도계에 기대주로 떠올랐지만 그에게도 내리막길이 있었다. 장애물이 있었다. 고통이 있었다. 무릎으로 수술을 받았고 어깨 부상으로, 손목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무려 5년 사이 네 번이나 수술을 받아야했고 힘든 재활의 훈련을 거듭해야 했다.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정신까지 피폐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포기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멈춤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꾸준함이란 단어가 더 어울렸다. 계속하기라는 낱말이 사 선수에게 어울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네 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다면 그것도 역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어깨, 손목, 무릎이 망가졌으니 포기하고도 남을 것이다. 멈춤이 영원한 멈춤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왜 포기하느냐고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 선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수술기간을 통해 적당한 쉼
어젯밤은 천둥 번개가 많이 쳤다. 비도 많이 왔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무서울 정도였다. 밤잠을 설치게 할 정도였다. 이른 아침에 보니 태풍이 지나갔을 때와 비슷했다. 태풍 뒤의 하늘처럼 하늘은 너무 맑고 깨끗했다. 태풍 뒤의 공기처럼 너무 맑고 깨끗하다. 어느 때보다 멀리 보인다. 높게 보인다. 아름답게 보인다. 평소에는 안개로 시야가 좁지만 오늘은 한없이 넓다. 공중에는 한 마리의 하얀 새가 평화를 알린다. 어제 `간판 총잡이' 진종오 선수가 50m 권총에서 대망의 금메달을 명중시켰다. 가장 값진 메달을 선사했다. 4년 전 아테네올림픽 때도 은메달, 이번 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이라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딸린 식구들과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결국은 해냈다. 진 선수가 금메달을 따게 된 원동력은 뭐니뭐니 해도 진 선수의 ‘집중력’이다. 진 선수는 "4년 전 실수를 반복했다는 말을 들을까봐 더 집중했다"고 했다고 한다. 베이징에 오고도 표가 없어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한 아내와도 9일 10m 공기권총 은메달을 딴 뒤 5분밖에 만나지 않았다고 하니 진 선수의 집중력은 뛰어나다 아니할 수가 없을 것이다. 중국까지 온 아내는 금메달을 못 따 안타까워하는
베이징 올림픽을 보면서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된다.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단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수백 명, 수천 명의 경쟁선수를 물리치고 태권마크를 달았으니 그것만 해도 엄청난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것만 해도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족하다. 그런데 비록 금빛 아니더라도 은빛 찬란한 메달을 목에 걸면 그것만 해도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비록 금빛, 은빛도 아니고 동빛을 목에 걸어도 그 빛은 엄청날 것이다. 땀의 결실, 노력의 결실, 열심의 결실이기에 조금도 마음 아파할 필요가 없고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왕기춘 선수가 유도 73㎏급 결승서 13초 만에 허무한 한판패를 당하고서 얼마나 아쉬웠던지 순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회한의 눈물을 보이며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가슴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강한 상태에서 실력으로 졌다면 덜 아쉬웠겠지만 8강전에서 왼쪽 옆구리 쪽에 부상을 당해, 이후 경기에선 허리에 압박붕대를 감고 출전할 정도로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시합을 했으니 어이없이 한판패로 끝나고 말았으니 가슴을 쓸어내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왕 선수에게 8강전에서 어둠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무덥덥한 여름 우리를 시원케 하는 소식이 있어 좋다. 더위를 식혀주는 베이징올림픽의 승전보. 연일 기대가 되고 기다려진다. 계속해서 금,은,동이 무더기로 쏟아져 여름 더위를 식혀주면 좋겠다. 땀을 흘린 것 이상으로 좋은 결실을 기대해 본다. 처음으로 금메달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 시원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기쁨의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답답한 마음을 시원스럽게 해주는 소식이었다. 유도의 최민호 선수가 베이징올림픽 유도 남자 60㎏급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최 선수는 한판승으로 온 국민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눈물로 온 국민을 감동시켰다. 경기마다 한판승으로 승리하여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작은 거인이었다. 찜통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린 시원한 승리였다. 연이어 10대 청소년 박태환 선수가 금물결을 가르는 통쾌한 소식이 전파를 타고 우리의 안방까지 들어왔다.박 선수는 온 국민을 놀라게 했다. 이웃 일본을 놀라게 했다. 중국을 놀라게 했다.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온 세계인들이 부러워했다. 아시아 선수로는 72년 만에 딴 올림픽 수영 자유형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두 선수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다른 상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최
말복도 지났다. 삼복더위가 끝났으니 폭염도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는데 거기에다가 소나기까지 내려주니 더없이 시원하고 좋다. 깨끗하고 아름답다. 울산이 좋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막바지 여름이 아쉬운 듯 매미소리는더욱 목소리를높인다. 울산은 가장 잘 사는 도시다. 가장 젊은 도시다. 거기에다 머지않아 가장 이름난 교육도시가 될 것 같다. 그런 믿음 속에 오늘도 울산교육가족의 한 사람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금 이웃 중국에서는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우리 국민의 스포츠 중의 하나인 축구 시합이 개막 전에 있었다. 이 날은 박주영 선수의 날이었다. 아니 박성화 감독님의 날이었다. 왜냐하면 박 선수는 올림픽 대표 22개월 만에 골 맛을 받기 때문일 것이고 박 감독은 골 맛을 볼 수 있도록 끝까지 인내하며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중요한 카메룬과의 시합에서 박주영 선수의 절묘한 프리킥 슛은 온 국민을 기쁘게 한 슛이었다.골문을 흔드는 황금 같은 슛이었다. 아무도 발을 쓰지 못했고 몸으로 막지 못했다. 그러기에 온 국민이 환호했다. 온 국민의 더위를 씻어줬다. 온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줬다. 가뭄의 단비
오늘이 말복이다. 전국이 말복더위에 많이 시달릴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울산지역은 어제에 이어 날씨가 시원하다. 지난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창문을 열고 자면 목이 아플 정도고 새벽에는 약간의 추위를 느낄 정도였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전 국민이 함께 더위에서 벗어나 시원함을 누렸으면 더 좋겠는데... 어제는 울산 강북교육청 관내 한 중학교에서 일본 구마모토현의 중앙중학교와 토모치중학교 학생들과 문화교류의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참석을 하였다. 강단에서 바라볼 때 왼편에는 일본 두 학교 90명의 남녀학생이 교복을 입고 행사장인 강당에 앉아 있었고 오른쪽에는 관내 한 중학교 남녀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네들의 하는 짓이 하도 얄밉기 때문이다. 우기기도 하고 생떼를 부리는 그들이 야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두 학교 90명의 학생들이 너무 촌스러워 보였다. 촌티가 났다. 얼굴도 시꺼멓게 거슬러 있었다. 볼품이 없었다. 학생들도 그렇고 인솔교사도 그러하였다. 반면 우리 학생들은 교복도 더 세련되어 보였다. 얼굴도 더 화사해 보였다. 표정도 더 밝아보였다. 그들을 맞이하는 우리 학생들이 더
오늘은 의미가 있는 날이다. 오늘이 입추(立秋)다. 가을을 알리는 날이다. 가을이 들어서는 날이다. 가을을 세우는 날이다. 가을을 계획하는 날이다.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가을을 세우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말복(末伏)을 하루 앞두고 계획을 세우다니! 마지막 더위가 지나가지 전에 가을을 준비하다니! 어제 오후부터 조금씩 달랐다. 초가을 정취를 느낄 만큼 파란 하늘은 하얀 구름과 함께 아름다운 평화를 그리고, 공기는 맑고 깨끗하게 다가와 마음을 상쾌하고 유쾌하게 하며, 산도, 들도 푸르고 또 푸르러 푸름의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신선한 바람이 우리의 피부에 촉촉하게 와 닿아 초가을을 예감케 하였다. 어제 오후 시간을 붙들어 놓고 싶을 정도의 아름다운 날씨였다.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오래도록 담아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더니 지난 밤은 열어놓았던 창문까지 닫게 할 정도였다. 오늘은 아침부터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긴다. 덥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시원하다는 생각이 오히려 든다. 이 시간쯤이면 매미가 여름을 힘껏 노래하는데 오늘은 가을이 들어서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아예 숨을 죽이고 있다. 이렇게 자연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을을 준비하고 가을을
선생님은 참 힘들다. 왜냐하면 교과, 인성, 청소지도 등 각종 지도를 통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상처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체벌로 몸에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되고, 말로 인한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되고, 말이나 행동으로 인한 모욕감을 주어서도 안 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되고, 인격에 흠을 내어서도 안 되고, 비난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언짢은 소리를 해도 듣기 싫은 하는 세상인데, 좋은 소리만 들으면서 자라온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선생님으로부터 쓴 소리는 듣기 좋아하겠는가? 쓴 소리를 듣기 싫어하다 보니 선생님이 나무랄 때 선생님의 흠집내기에 골몰하게 되고, 선생님이 나에게 잘못하는 말이 없나, 잘못하는 행동이 없나 하면서 선생님의 단점만 자꾸만 찾으려고 하고,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쓴 소리를 약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게 독인 양, 자기를 해롭게 하는 것인 양 그것으로 문제를 삼으려고 하니 참 힘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도 소신껏 하지 못하고 학생들의 민감한 반응부터 먼저 살펴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혹시나 말실수로 인해 학생이 마음 상하지 않았는지, 나도 모르게 상처주는 말
장학사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교육청에 있으면 많은 전화를 받게 되는데 어느 날 두 분으로부터 동일한 호칭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장학사씨'였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들렸고 거부감마저 들었다. 왜 그렇게 불렀을까? 아무리 세상이 메말라 가고 인정이 메말라 간다 하더라도 호칭에까지 인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학사는 직위인데 직위 다음에 '씨'자를 붙이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개 장학사님 하고 불렀다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인데. 같은 호칭의 전화를 서로 다른 분으로부터 두 번이나 받았으니 유쾌할 일은 아니었다. 10년이 지나서 다시 되씹어 보게 되는 것은 호칭에 대한 관대함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 때문이다. 씨(氏)는 성(姓) 또는 이름 밑에 붙이어 부르는 접미사 아닌가? 김씨, 길동씨...에 붙이어 부르면 자연스럽다. 그런데 ○○○교감씨, ○○○교장씨, ○○○과장씨, ○○○학무국장씨, ○○○교육장씨...직위 다음에 붙이어 불러보니 우습게만 들린다. 아무래도 잘못된 호칭인 것 같다. '님'자를 붙이기 싫으면 차라리 '○○○씨' 하든지, '○○○장학사' 하는 것이 더 낫
학생들로부터 칭찬 받는 선생님, 학생들에게 유익 주는 선생님. 이 둘을 다 갖추면 선생님으로서 금상첨화 격이 되겠다. 이 둘을 다 갖춘 선생님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나아가기 위해 여름방학에도 땀을 흘리며 각종 연수와 자기연찬에 여념이 없다. 학생들로부터 칭찬 받는 선생님? 학부모님들로부터 칭찬 받는 선생님? 교장,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선생님? 아니면 학생들에게, 학부모님들에게, 교장, 교감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은 받지 못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유익을 주는 선생님? 어느 선생님이 우선일까? 우선이 따로 있겠나마는 그래도 칭찬을 덜 받더라도 아니 칭찬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유익을 주는 선생님이 먼저 되어야 될 것 같다. 칭찬 받는 선생님이 되려고 하다가 보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게 된다. 내용보다 형식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다. 주위를 더 많이 의식하게 된다. 불필요한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수업 내용보다 수업 외적인 것에 관심을 쏟게 된다. 칭찬을 받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수업을 준비하다 보면 수업다운 수업이 소홀히 될 가능성이 많게 된다. 학생들에게 유익을 주는 수업에는 관심이 없기에 학생들의 흥미에만 관심을 둔다.
얼마 전 경찰관이 하시는 말씀을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다. 10대 문제청소년들이 경찰서에 많이 오는데 그 중에 한 청소년이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사를 받은 후 돌아서서 가는 경찰관에게 다가와서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경찰관은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난데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처벌을 받는지, 몇 날을 경찰서에서 보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어야 마땅함에도 그런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했으니 좀 특이하다 싶어 다른 분들에게 말씀을 했는지 모른다. 어찌 보면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 문제청소년에게는 빛이 있기 때문이다.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장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보이는 문제 뒤에 보이지 않는 꿈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저지른 문제를 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까지의 습관, 지금까지의 행동, 지금까지의 노력, 지금까지의 의지로는 그 문제가 쉽게 풀릴 수가 없다. 이런 청소년들에게는 무엇보다 비전이 필요하다. 비전을 가슴에 품어야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나라당에서 교육감 선거제도 문제가 있으니 개정을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서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도 현 교육감 직선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고 아예 다른 방향으로 키를 돌리려고 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저조한 투표율, 과다한 선거비용, 대표성의 결여 등을 문제로 삼아 시.도 단체장과 교육감 러닝메이트 출마 제도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발상이고 위험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투표율이 저조한 게 문제라면 시.도 단체장과 교육감 러닝메이트제를 실시함으로 투표율을 올리려고 하지 말고 지금처럼 교육감 직선제 하에서 시.도 단체장과 동시에 실시하도록 하면 저절로 투표율이 올라갈 것 아닌가? 대선이나 총선 때 동시에 교육감 선거를 해도 투표율이 자동적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울산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시의원들과 동시에 투표를 하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를 가지고 투표율 저조를 빌미 삼아 러닝메이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순수한 발상이라 할 수가 없다. 이건 단지 투표율 저조를 빌미로 교육감도 정치의 손아래 두고자 하
드디어 서울시교육감이 결정되었다. 어느 지역보다관심이 많았던 지역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중심역할을 해온 지역이기 때문이다. 서울교육이 15개시도에 직간접으로 교육의 영향을 많이 끼쳐왔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느 분이 교육감에 당선될지 숨을 죽이며 지켜왔던 게 사실이다. 공정택 후보가 당선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 싶다. 선거기간 동안 피를 말리며 선거운동에 임했을 것인데 그게 열매로 나타났으니 기쁨이 그지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으로 만족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어깨에 더 무거운 짐을 짊어졌으니 그 짐을 함께 하는 모든 교육식구들과 함께 지고 가야 할 것이다. 공 교육감께서는 평생 50년 가까이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경륜이 높으신 분이시기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공 교육감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아직 젊은 분 못지않게 넘쳐흐르는 건강미가 전국 모든 교육가족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다. 추진하고자 하는 모든 교육정책들이 밤하늘의 별과 같이 반짝반짝 빛나 새바람을 줄 것 같다. 공 교육감께서는 이제 공약으로 내세운 모든 교육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손에 의해 뽑혀진 교육감이기에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 과감한 추진력으로
바람이 그리운 때다. 태풍 말고 시원한 바람 말이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이 때 시원한 바람은 무엇보다 가장 귀하게 느껴진다. 값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바람아 제발 불어다오. 선선한 바람 말이다. 오늘 같은 날은 산바람이 그리워진다. 자연바람이 그리워진다. 솔바람을 보고 싶기도 하고 강바람을 보고 싶기도 하고 바다바람도 그리워진다. 어제는 사무실 앞 태극기가 제법 많이 휘날리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태극기가 덜 움직인다. 오늘 날씨가 장난이 아님을 예고하는 듯하기도 하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좋다. 선선한 바람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마음 속에 그리는 그 바람이 나를 손짓한다. 그 바람이 나를 보게 한다. 그 바람이 나를 듣게 한다. 그 바람이 나를 마음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 바람이 나를 가르친다. 그 바람이 나를 교훈한다. 그 바람이 나의 눈을 뜨게 한다. 그 바람이 나의 귀가 열리게 한다. 그 바람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바람은 나에게 바람(희망)을 가르친다. 바람은 나에게 꿈을 가르친다. 바람은 나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우리 아이들에게 비전을 가르친다. 장래를 가르친다. 바람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 안개가 피어난다. 꽃이 피어나듯이 말이다. 지난 토요일도 그러했는데. 무더위 속에서도 유달리 울산만은 시원한 구름띠로 인해 시원한 공기 마시고 맑은 공기 마시고 푸른 공기 마시면서 안개의 피어남에 매료된다. 피어남 때문에 미소를 머금는다. 피어남 때문에 생각에 젖는다. 피어남 때문에 기뻐한다. 피어남 때문에 평안을 느낀다. 이른 아침에 안개는 피어났다. 얇지만 우리의 사무실을 감싸주고 있다. 살며시 내려 앉아 신비감을 더해 준다.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흥미를 더해 준다. 내가 앉은 사무실 아니면 그걸 맛볼 수가 없다. 우리 사무실 아니면 안개로 인해 상상의 바다로 헤엄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머무는 사무실이 아니면 안개와 나무를 동시에 볼 수가 없다. 안개와 나무는 생각을 만든다. 안개와 나무는 삶을 가르친다. 안개와 나무는 우리를 고상하게 만든다. 안개와 나무는 우리에게 상상력을 키우도록 한다. 안개와 나무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비록 짧게 피우다가 사라지긴 해도 나에게 교훈을 준다. 안개는 장애물만은 아니다. 걸림돌이 아니다. 안개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안개는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안개는 영원히 없어져야 할 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