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마산은 날씨가 따뜻하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결핵을 치료하는 병원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예술인들이 요양하고 치료하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카프 중앙위원회 서기장이고 좌파 진영의 대표적 문학 이론가이자 시인이었던 임화입니다. 임화는 치료를 찾아온 마산에서 아름다운 여인 지하련을 만나 곧 사랑에 빠집니다. 폐결핵 환자였던 임화를 위해 지하련은 온갖 정성으로 간병했다고 합니다. 둘은 곧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됩니다.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지하련도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작품을 남깁니다. 이렇게 우리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임화와 지하련의 자취가 남은 주택이 아직 창원야구장 뒤쪽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허물어지고 낡은 모습으로 방치되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1947년 가을 임화와 지하련은 월북했습니다. 임화은 남로당 관련 미제 간첩 혐의로 사형받았으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지하련은 평안북도 희천 근처의 교화소에 수용되었다가 1960년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문학에 큰 자취를 남긴 임화를 기억하며 그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그는 “시인이란 시대정신의 훌륭한 대변자
봄비가 내립니다. 비는 초록 잎사귀와 분홍 꽃잎 사이로 보드랍게 흘러듭니다. 꽃잎들이 아스팔트에 무수히 하얀 점을 만들어냅니다. 그 점들은 서로 이리저리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합니다.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꽃잎들이 몽환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저 꽃잎을 따라가면 형산의 연화봉 아래 아름다운 팔선녀와 성진을 만나 꿈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춘삼월 백화는 만발하고 운무는 자욱한데, 봄 새 소리에 춘흥이 무르익고 물색이 발길을 멈추게 하니 팔선녀들로 자연 마음이 들뜨는지라, 돌다리에 걸터앉아 시냇물을 굽어보니...” 이런 풍경 속에서 선남선녀가 만났으니 어찌 춘심이 동하지 않았을지 읽으며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다리에 버티고 서서 길값을 받아내고자 하는 진상 손님과 복사꽃 한 가지를 꺾어 찬란히 빛나는 明珠(명주)로 변하게 하는 재주를 피우는 육관대사의 수제자 성진은 첫 만남부터가 달콤살벌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조선판 로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당대 최고의 유학자가 쓴 소설로 유교와 불교, 도교의 사상이 융합된 상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부귀공명(富貴功名)이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교적 작품 주제가
정말 봄이 왔습니다. 경남의 소도시에는 거리마다 벚꽃나무의 분홍 물결이 눈부십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채색으로 보이던 도시에 환한 꽃들이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아, 눈물이 날 듯 반갑고 고맙고 장합니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지나가자 꽃잎 하나가 팔랑하고 제 옆으로 떨어집니다. 저는 며칠 전에 읽는 신카이 마코토의 소설 속 장면을 기억하였습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래” 아카리와 그녀를 좋아하는 소년 타카키의 모습이 환한 꽃 속에서 생각났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아카리의 전학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아카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내던 다카키는 먼 가고시마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아카리를 만나러 가지만 폭설로 인한 전철이 4시간 늦어집니다. 아카리는 보온병에 담긴 차와 직접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늦은 밤까지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첫사랑의 만남입니다.^^ 그러나 첫사랑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타카키는 전학 간 가고시마에서 자신을 쫓아다니는 고교생 카나에에게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어른이 타카키는 우울하고 외로운 도쿄에서 직장에서도 연인에게도 정착하지
한국의 현대문학은 청춘의 문학이었다. 그것은 본받아야 할 전통의 미약함에도 기인하지만, 안정감과 거리가 먼 한국 현대문학의 기본 동력이었다. 청춘의 감각에 이끌려 오고 있었다. 그런데 젊었던 작가들이 세월과 함께 황혼에 접어들고, 그들의 최근 작품들에 치매, 죽음 등의 노년의 테마가 다루어지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며, 노년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노년이 가까운 나의 글도 청춘의 뜨거운 이야기가 아닌 원숙한 정신세계, 중후한 감수성 그리고 따뜻하고 포근한 지혜를 지닌 작품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노년을 인생에 대한 원숙한 통찰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말년성’을 에드워드 사이드는 제시한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나타나는 형식을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며 ‘화해 불가능성’ 즉 영원히 풀리지 않는 내적 대립의 특성을 발견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성에 관한 논문을 읽으며 여기에 맞닿아 있는 노년 소설들을 읽었다. 그중 황석영(1943~) 작가의 『해질 무렵』은 60대 중반에 접어든 주인공 박민우는 내적 균열과 모순, 그리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보여주며, 출세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살았으며 수많은 인간 삶
남쪽엔 매화가 벙글어지고 있습니다. 무학산을 오르며 납월(臘月) 청매 몇 송이 핀 모습에 감동하였는데, 설을 지나고 나니 여기저기에 하얀 매화꽃이 함박눈처럼 쏟아집니다. 아, 봄은 우리의 실핏줄을 지나 심장을 향해 직진하고 있나 봅니다. 코로나로 인해 독서 모임은 온라인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2월에 함께 읽을 책이 올라왔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입니다. 설 연휴를 지나 택배로 배달된 책 표지는 푸른 소금 알갱이나 사파이어 원석 조각 같기도 한 것이 중앙에 비스듬하게 넘어질 듯 배치되어 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책은 『보건교사 안은영』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 때문에 기분 좋은 느낌으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린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낼 거야.” 이 한 문장으로 소설의 이야기는 압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미술가이자 작가이며 멋진 어른인 그녀, 심시선을 제사 지내기 위해 10주기를 맞이하여 가족들이 하와이로 떠난다는 황당한 상황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녀가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할머니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만든 이벤트를 통해 성장하고 이해합니다. “기일 저녁 여덟 시에 제사를
군대에 간 아들 이름으로 택배가 도착하였다. 상자에 책이 가득하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데 전화가 왔다. ‘병 자기개발 지원금’ 복지제도가 있는데 책을 사면 지원이 되어 주문했는데, 실수로 집 주소로 보냈다고 한다. 다시 군대로 보내 달라고 한다. 알겠다고 하고 무엇을 주문했는지 살펴보니 유시민 작가의 책과 김영하 작가의 소설, 전경일 작가의 『조선 남자』와 인문학 관련 책 몇 권이 보인다. 그중 김영하 작가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기 시작하였다. 책이 얇아 일요일 오후에 읽기 적당해 보였다.^^ 이 책의 제목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법정에서 마약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말한 변론에서 따온 것이라 김영하 작가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말했다고 한다. 첫 장면에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 얼른 인터넷 검색하여 그림을 찾아보고 그 내용도 살펴보았다. 그림이 중요한 모티프인 듯하여 소설을 읽으며 그림도 읽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자살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 그는 마치 화집에서 죽음에 관련된 그림을 바라보는 것처럼 죽음을 바라볼 뿐이고,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 책은 ‘만약 이 세상에서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 사람만이 보게 된다면’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제 눈이 보이는지 계속 확인하였습니다.^^ 눈을 잃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인간관계, 문화, 생존 방식... 작가 조제 사라마구는 이 글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소유를 돌아보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며 차 안에 있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멉니다. 눈이 멀게 되는 이상한 전염병은 급속도로 퍼져나가 도시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한 도시 전체에 ‘백색 실명’이라는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지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소설에서 ‘실명’이라는 것은 단순히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산업 사회에서 생존 양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된 눈먼 자들, 이들을 향해 무차별하게 총격을 가하는 군인들, 비정한 정치인, 특히 총으로 무장한 집단이 저지르는 야만적 폭력은 도덕성이 붕괴된 인간의 끔찍함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눈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은 학교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워크숍을 하였습니다. 내년도 교육과정을 세우기 위해 부서별로 회의를 하였고 내일 모든 교사가 모여서 각자의 생각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데 저는 자꾸만 뒤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젊은 선생님의 빠른 손놀림과 명석한 두뇌를 따라가지 못하고 눈도 침침해지고 순발력도 느려져서 자꾸 눈치를 봅니다. 고민이 깊어집니다. 이렇게 저처럼 고민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 이 지구상에 등장하였을까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인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문명의 배를 타고 진화의 바다를 항해한 인류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약 38억 년 전 지구라는 행성에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해 특별히 크고 복잡한 구조를 만든 것, 그것이 생물의 탄생입니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문화의 출현이며 인류문화가 발전해온 과정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릅니다. 저자는 생물학과 역사학을 결합한 큰 시각으로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의 행태를 개관합니다. 약 3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
동지(冬至)는 겨울의 한가운데 밤이 가장 긴 날입니다. 그 길고 긴 칠흑 같은 밤, 찬바람은 쌩하니 불고 빈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부스럭거리며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바람을 따라 가장자리로 모여듭니다. 이렇게 춥고 시린 인생의 동지를 지나는 사람은 어떨까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 실오라기 같은 빛이라도 잡고 싶을 것입니다. 동짓날의 상념이 깊어집니다. 중학교 3학년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합격증을 받았습니다. 교과서의 진도는 벌써 끝났고 선생님들께서 고등학교 준비를 위한 다양한 수업을 하셔도 심드렁한 얼굴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주역』을 가지고 가서 자신의 궁금한 점에 대해 주역으로 점을 봐주겠다고 하니, 저마다 손을 듭니다. 이참에 동양의 고전인 『주역』에 대한 소개를 하고, 쾌의 종류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주역』에 의하면 우주는 기로 가득 차 있고, 기의 이합집산으로 만물이 생겨난다. 기의 변화하는 이치를 밝힌 것이 역이다. 그 변화는 복잡다단한 듯하지만, 거기에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그것을 태극이라 한다. 그 법칙이 움직이면 음양이 드러난다. 양을 대표하는 것이 하늘 천(天), 음을 대표하는 것이 땅 지(地)이다. 우
절기가 대설로 접어들고, 저는첫눈을 기다립니다. 청명하고 맑은 겨울 바람이 산을 지나오면 싸아한 박하향 날듯 개운하고 기분좋은 느낌이 듭니다. 하얀 눈이 쌓인 들판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우리들은 저절로 세상의 풍경이 되고 잡은 손의 온기만으로도 저절로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하여도 학년말 마무리를 하는 교무실은 정말 바쁩니다. 고등학교 진학 원서를 쓰는 3학년 담임선생님 옆에서 저는 2학년 학기말고사를 출제합니다. 피로한 눈을 들어 학교 앞산을 바라봅니다. 학교와 마주한 앞산은 ‘이불목산’이라고 불립니다. 학교 옆을 휘감고 흐르는 남강이 범람하여 이곳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을 때 산봉우리가 이불만큼 남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겨울산과 마주하고 있으니 지리산의 넓고 큰 품이 그립습니다. 저는 힘들 때면 씩씩하고 멋진 산줄기와 마주하고 왔습니다. 칭얼거림과 푸념도 말없이 들어주고, 심술보가 늘어난 제 얼굴도 ‘괜찮다’하고 웃어 줄 것 같습니다. 지리산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이 지리산을 동일시하는 작가의 책을 읽었습니다. 백남오 작가는 지리산의 수필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는 지리산 산행
겨울 초입입니다. 학교 뒷마당 벽오동나무의 커다란 낙엽을 바람이 구석으로 모아놓습니다. 그 사이로 둥글고 기름한 잎에 완두콩이 붙은 듯 재미있는 모양의 벽오동 열매가 보입니다. 책에서 벽오동 열매를 볶아 커피 대용을 가능하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몇 개를 따서 차로 만들어 볼까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발표를 준비하는 학생이 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립니다. 코로나-19는 학교 풍경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초겨울 학교는 축제 준비로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예년처럼 부모님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밴드반 학생들이 촬영을 위해 밴드실에서 강당으로 악기를 옮기고 설치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제가 한 것은 행정실에서 플러그 선을 가져다주고 목마르다는 학생에게 생수 한 병을 챙겨 준 것이 전부입니다. 우루루 기타와 드럼, 신디사이저와 앰프 등을 옮겨와 연결하느라 분주하였습니다. 무대 위의 혼돈은 조금씩 나름의 질서를 찾아갔습니다. 악기 위치가 틀렸다고 서로 언쟁을 하고, 연주 자리를 조정하고, 앰프의 위치와 소리를 맞추었습니다. 질서는 혼돈 속에 이미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학생들은 그것을 찾아내
가을이 여행가방을 챙기고 겨울이 저만큼 와있는 계절의 경계이다. 이즈음물은 더욱 차고 맑다. 물은 세상 만물을 성장하게 만드는 자양분일 것이다. 본연의 성질대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기꺼이 낮은 곳에 머물러, 도가(道家)에서는 물을 으뜸가는 선(善)의 경지로 여긴다.저자를 처음 만났던 자리에서보이던 풍경은 은행잎이 떨어진 흰 바위틈으로 물이 흘렀다. 저자의 삶의 철학이 위로 향하는 삶이 아니라, 세상의 어두운 곳과 절망에 찬 사람들을 향해 낮추는 물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정직함이 존경의 대상이 되고, 배려가 아름다움으로 남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해 줄 수 없습니다. 바로 ‘내’가 해야 됩니다. 내가 실천하고 ‘우리’가 같이할 때 세상이 아름답게 바뀌는 겁니다. 그렇게 바뀐 아름다운 세상에서 다시 만납시다. 저자는 베이비 부머 세대의 초라한 대한민국 남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내세울 것은 없지만, 세상에 할 이야기가 있기에 책을 내놓았다. 자신이 아니면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었다고 한다.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무능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세상이 싫어, 책을 통해 배려가 만드는 따뜻한 세상을 꿈
노오란 은행잎이 바람에 우수수 날리는 날이었다. 서원곡 계곡 앞에 쌓은 수북한 은행나무잎을 지나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민속산장에서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관음보살의 눈매를 닮아 선하게 보이는 분이 수줍게 내민 한 권의 시집, 그래서 그녀의 글에서는 노랑으로 색칠한 은행나무가 계속 생각나나보다. 후설(Husserl, Edmund)은 “지각은 지각하는 자와 지각되는 것, 그 양자의 관계”라고 하였다. 공간이란 화강암, 대리석 등 수많은 상징을 매개로 우리는 공간과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소통하고 인식하여 왔다. 그래서 일상에서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간화한 기억이다. 시인 박숙희는 시집 『시간 속에 박물관 하나 그려 놓았다』에서 공간 속에 드러나는 기억을 소환하여 그것을 시 속에서 펼치고 응시하고 보듬었다가 다시 자신의 향기를 묻혀서 돌려보내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시 속 공간들에서는 그녀의 향기가 묻어난다. 박물관에서는 싸아한 박하향이, 표충사 계곡에서는 시원한 허브향으로 되살아 난다. 박물관 불빛에 잠자는 그림자들 바람을 손에 쥔채 동수원 사거리의 해탈을 업고 홀연히 돌아간다 어디, 겹겹이 매물도를 껴입고 무엇을 위해 십자가의 길 속으로
상강지절이다. 화단 언저리의 화살나무잎은 청량한 붉은 색으로, 산기슭의 개옻나무는 염부주의 화염처럼 새빨갛게 자신을 드러낸다. 내가 사랑하는 신갈나무숲은 가장자리부터 황금빛으로 서서히 물들어 간다. 참 좋은 시절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지난 여름 뜨거운 목소리로 바깥을 향해 내질렀던 말들을 천천히 불러들여 내 안의 침묵과 만나게 해야 한다. 막스 피카르트의 책 『침묵의 세계』를 가방 속에서 잠자리까지 계속 들고 다니며 읽었다. 책에 나오는 한 구절 한 구절이 절절하게 아름답고 경건하고 심오하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책이다. 내면에서 기절하듯 숨어있는 나의 다른 언어, 침묵과 만나 맑은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싶다. 침묵이란 그저 인간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단순한 말의 포기 그 이상의 것이며, 단순히 자기 마음에 들면 스스로 옮겨 갈 수 있는 어떤 상태 그 이상 것이다. 침묵은 시간 속에서 발전하거나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은 침묵 속에서 성장한다. 마치 시간이라는 씨앗이 침묵 속에 뿌려져 침묵 속에서 싹을 틔우는 것과 같다. 침묵은 시간이 성숙하게 될 토양이다. 침묵은 다만 존재할 뿐 아무런 다른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
가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개울물 소리가 여물어지고, 그 곁으로 은빛 머리를 날리는 억새는 무심한 얼굴로 물에 비친 제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몇 권의 책을 읽으며 긴 연휴를 보냈지만 글쓰기가 되지 않습니다. 글쓰기가 되지 않는 날에는 제가 사랑하는 풍경을 생각합니다. 맨발로 오르는 산길, 조금씩 색이 변하는 신갈나무 숲, 짙은 향기를 풍기는 은목서나무꽃, 방울벌레 소리가 들리는 저녁. 결국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한여름을 온통 투자하였던 책, 저의 마음을 간질간질거리며 이해가 될 듯 말 듯 놀리던 책, 쳐다만 보아도 제 가슴이 뛰는 책, 그리고 다시 시작한 책을 선택하였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리스 가타리가 공동으로 쓴 『천 개의 고원』입니다.^^ 이 책을 펼치면 이런 조언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와 분열증』의 속편이자 완결편으로서 첫째 권은 『안티-오디푸스』였다. 이 책은 장이 아니라고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론을 제외하고 각 고원들은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철학 서적과 달리 순서를 지키기않아도 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들은 책을 ‘성서’처럼 떠받을 것이 아니라 무기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