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살면 식성도 따라가는 모양이다. 유난히 고구마를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내 식성이 변했기 때문이다. 생각만 나면 고구마를 쪄달라고 주문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스스로 씻어서 쪄 먹곤 하는 남편이다. 나는 고구마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때문에 고구마를 싫어하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 점심 시간이면 가난한 친구들은 밥 대신에 고구마를 먹던 시절. 어떤 친구는 거의 날마다 점심 도시락 대신 고구마를 먹었으며 그나마 없을 때는 수돗가로 달려가 물을 마시기도 했었다. 그 친구는 한 겨울에도 양말을 신고 온 적이 거의 없었고 헤진 바지에 길이마저 짧아진 옷을 입고 학교에 오곤 했다. 한 반 친구 50명 중에 제대로 점심을 가져오는 친구는 70% 정도 되었으리라. 나눠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식사 시간이 되면 운동장에 나가 놀거나 어디로 가버려서 교실은 빈 자리가 많았었다. 내 기억 속의 고구마는 가난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우리 집도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다른 집들처럼 자식들이 많지 않으니 점심을 고구마로 때울만큼 형편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새 살림을 차린 새 어머니는 쌀을 아낀다며 호박밥이나 콩나물밥, 김치밥, 고구마밥을 즐겨 하
2월 26일자 한겨레 신문은 우리 나라 초등학생의 수은 중독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그 내용은,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전국 26곳의 초등학생 2천명을 대상으로 소변 속 총수은농도를 조사한 결과, 독일의 어린이들보다 3.6배나 높았고 일본의 경우보다 두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 같은 중금속 오염의 심각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인 뇌손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과 덴마크 과학자들은 화학오염물질에 의한 자폐증, 주의력결여증후군, 지체장애, 뇌성마비 등의 증상이 어린이들 사이에 증가하는 것을 ‘소리 없는 유행병’이라고 부르고 있으며,과학자들은 뇌에 피해를 주는 202가지 공업화학물질을 밝혀내고 이에 대한 사용통제를 요청했다. 사우스덴마크대학 환경의학과 필리페 그랜드장 박사는 뇌는 아주 섬세한 부분이기 때문에 미미한 손상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수은과 납 등 몇몇 물질만 통제되고 있지만 나머지 200여개 화학물질이 미치는 심각성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200여개 공업오염물질 중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납, 메탈수은, 비소, 폴리염화비페닐, 톨루엔 등에 의한 중독증세를 밝혀냈다.
2007년이 시작된 지 벌써 두 달째입니다. 그런데도 학교의 풍경은 3월이 되어야 새 학년도가 열리는 탓에 2월 말의 풍경은 어쩐지 설 대목같습니다. 뭔가 덜 채워진 느낌같은, 아직도 설빔을 준비하는 설 대목처럼. 옮겨가는 교직원들이 짐을 챙겨 이사를 가시며 사택을 비우고새로 오시는 교직원들을 맞이하며 서운함과 기대가 맞물리는 2월 말의 풍경. 이제 겨우 1년을 같이 살고 서로에게 익숙해졌는데 교직원의 반 수 이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이미 자리를 채우고 맡은 업무를 인수 인계하느라 날마다 바쁜 학교입니다.삶이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지만 교단 경력이 쌓일수록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커져서 걱정입니다. 새롭게 만나는선생님들과 아이들 생각을 합니다. 다시 새로워져야한다고, 새 봄처럼 새싹을 낼 준비를 해야 한다고날마다 새날이듯 나도 신규 선생님처럼 새로운 열정과 불씨를 지펴야 한다고.
죽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인가?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는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이미 우리 나라는 불명예스럽게도 자살이 빈발하는 나라 중에서도 으뜸 가는 나라가 되었다. 연간 1만1523명·매일 32명· 46분마다 1명, 2004년 우리나라 자살통계이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1주일마다 경험하는 셈이라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가? 이같은 통계 수치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46분마다 1명씩 자살한다는 통계 수치, 자살과 관련된 소식을 매체를 통해서 날마다 접하면서 사는 지금, 우리는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 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워진다. 더구나 청소년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연예인들의 죽음을 앞다투어 보도하는 텔레비젼과 신문을 비롯한 언론 매체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의 죽음 소식을 어느 정도 미화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죽하면 그랬을까`라거나 `우울증을 앓았다`거나 개인적인 가족사에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듯한 취재 보도 등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몇 해 전 언론의 자살 보도에 관한 원칙을 발표했다. 잘못된 보도 행태가 모방 자살,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금세기 최고 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 쇼크, 제3의 물결, 권력 이동은 미래학 도서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내 놓으며 미래학의 석학으로 군림한다. 그의 책들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여 전 세계적인 문제를 분석하고 예측하여 조망해 주곤 했다. 지난 가을에 사 들인 이 책의 두께는 656쪽에 달해서 얼른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책을 사 놓고 군데군데 읽어보곤 했지만 끝까지 읽는데는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었다. 그가 펴낸 다른 미래학 서적들에 비해 전문 용어와 신조어가 많으며 정치, 경제, 의학, 정보, 지식,문화 등 광범위한 주제들을 한꺼번에 펼쳐 놓고 읽지 않으면 뭔가 불안할 것같은, 숙제처럼 읽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은 압박감을 주었다. 그는 이 책을 내놓기 까지 1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같은 예감으로 책이 출간되자마자 사들인 책이기도 하다. '제1부 혁명'부터 '제10부 지각 변동'까지 모두 10부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석학인 토플러가 펼치는 부의 미래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온 것을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한다'는 메세지로 긍정적이며 희망적인 미래를 그렸다. 난해한 주제를 좀더 쉽게 접근하
사람들은 힘들 때 무엇을 찾을까? 누구를 찾을까? 어디로 도피할까? 내 존재가 사람이니 당연히 사람을 찾아야 마땅할 것 같은데 찾아갈 사람을 두지 못한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드는 요즈음. 같이 웃던 친구들, 마음을 터놓고 산다고 생각했던 초등학교 친구들도 많건만 막상 마음이 힘들 때는 찾아 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아픔을 토로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고 학대하다 못해 자신을 놔버려서 생기는 마음의 병이 우울증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심리학에서 에릭슨에 의하면 장년기(성인 후기:45세~65세) 심리․사회적 발달의 특징을 생산성 대 침체성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의 발달과업은 직업적으로는 최고 수준에 이르는 시기이고, 가정적으로는 텅 빈 가정에 적응하기, 배우자의 사망에 대처하기, 자녀 및 손자녀들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보고 있다. 이를 잘 이뤄내면 생산성을 취득하는 것이고 실패하면 침체성을 갖게 된다는 이론이다. 침체성을 좀더 깊고 넓게 확대시키거나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장 힘들 때는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고 철저하게 내 아픔의 원천으로 깊이 들어가 그 아픔 속에 빠져서 상처
사람의 인생에는 두,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물론 준비된 사람에 한정된 이야기겠지요. 나도 내 인생에서 그런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검정고시를 합격한 후 공무원 시험을 통과하여 가족을 부양하며 행복해 했을 때가 첫 번째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행운은 공무원 생활을 3년 하는 동안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통신대학 초등교육학과를 졸업하여 취득한 자격증으로 순위고사를 다시 봐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남아 있는 세 번째 행운의 기회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기회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왔습니다. 전문직 도전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확신이었습니다. 교육 경력 26년이 지났지만 승진을 해야겠다는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평교사로서 교실에서 아이들과 나누는 아름다운 교감과 사랑, 가르치는 보람과 기쁨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천명을 넘기며 다가온 세상의 소식들은 나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교단의 나이든 선생님을 바라보는 세상의 부정적인 시각과 전해지는 소식들은 긍정적인 소식보다 답답한 소식들이 더 많았습니다. 이러한 불안은 나이를 먹어서도 아이
마량 앞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2학년이 될 여러분의 앞날을 축복하려는 듯, 겨울답지 않게 포근합니다. 사랑스러운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 찾아온 마량 초등학교에서 만난 3월은 선생님에게는 참 힘든 시간이었답니다. 그것은 어느 해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만남이었기 때문입니다. 첫날 입학식 날부터 나는 진땀을 흘리며 권영이를 따라다니며 달래야 했고, 울면서 집으로 가겠다며 3시간 이상 징징거리며 우는 선영이 곁에서 천방지축 뛰고 싸우며 엉덩이에 뿔이 난 1학년 개구쟁이들을 의젓한 초등학생으로 자라게 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함께 모여만 있으면 서로 지지 않으려고 덤비다 주먹질하기, 여자 친구들 울리기, 화장실에 보내면 어디 가서 놀아버리던 영찬이와 민혁이, 늘 다치는 권영이, 성질이 급해서 소리 지르는 버릇으로 영민이와 우기기 잘 하던 승현이, 거울보기가 취미인 거울 공주 고은이는 조금만 야단쳐도 울어버려서 선생님을 힘들게 했었지요. 이제 돌이켜 생각하니, 우리 1학년 20명 친구들을 만나 힘들고 어려웠던 만큼 그 어느 해보다 보람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1학년은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때
아침에 등교하면 서로 목례만 하고 바로 아침독서에 들어가는 우리 반 아이들이 며칠 전부터 내게 다가와서 뭔가를 속삭이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나바다 시장'을 하는데 가져온 물건들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선생님, 오늘 아나바다 시장 해요?" "쉿! 지금은 독서 시간이야. 독서 시간 끝나고 이야기하자." "저는 오늘 10원 짜리 동전을 많이 가져왔는데요?" "응, 잘 했어. 어서 독서를 해야지?" 바른생활 시간에 쓰레기 처리를 바르게 하는 방법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재활용 문제를 얘기하면서 '아나바다 시장'을 말해 놓고 나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우리 반 꼬마 화가인 유림이가 분홍생 골판지에 타이틀을 만들어서 가지고 왔답니다. 글씨를 파서 골판지에 붙이고 꾸며온 솜씨가 아까워서 교실 뒤쪽에 붙여 두었지요. 그랬더니 그 다음날은 선영이가 또 꾸며 놓았습니다. 내가 말을 하면 평소에는 늘 그림만 그리던 유림이 귀에 '아나바다 시장'이라는 단어가 번쩍 띄였던 겁니다. 내 말은 나중에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내 말의 뒷부분만 들은 아이가 준비를 해 와서 참 기특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아나바다 시장을 열기 위해 일주일 동안 재활용이
1년을 마감하며 추수를 앞둔 요즈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 모르고 있다. 정규 수업 후에 '방과후학교'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나면 금방 4시가 되고 밀린 공문서 처리에 교실 청소를 끝내면 퇴근 시간이다. 1학년 담임으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문자 해득'임을 생각하면 마음이 바쁘다. 20명 중에서 떠듬떠듬 글을 깨치는 아이들이 있으니 날마다 남겨 놓고 일대 일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 아이들이다. 그나마 그 아이들은 대부분 한부모가정이거나 조부모 밑에서 사는 아이들이니, 집에서는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이미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교우관계나 사회성을 길러주고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자세를 습관들이는 것만으로 버거웠었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때문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 한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시골에 보내진 채 무관심과 방치 속에 몇 년을 살아온 아이들이다. 심지어는 1년 동안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집에 가면 글씨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조부모 슬하에서 유치원 과정까지 마쳤어도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쓰고 1학년에 들어온 아이들까지 있었다. 1학년 과정에서 글을 깨우치지
유아기의 생활 환경과 부모의 가치관, 사고방식, 그리고 매일의 습관 등이 아기의 잠재의식에 깊이 새겨진다.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축적한 데이터를 나름대로 해석해 잠재의식 속에서 자기의 인생 각본을 쓰기 시작한다. 서너 살이 되면 대강의 줄거리가 정해진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이 줄거리에 상세한 스토리가 덧붙여져 마무리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교류분석법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에릭 번(Eric Beme)이 제창한 '인생각본'이론이다. 교사 중에는 부모가 모두 교사인 경우가 많으며, 장사를 하는 집 아이가 부모의 대를 이어 장사를 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바로 이 이론의 핵심이다. 따라서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유아기에 형성된 성격이나 가치관은 어른이 된 뒤에 바꾸기가 매우 힘들다. -나카이 다카요시, , p.181. 참담한 교육 소식(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거나 선생님이 학부모를 성추행 등)에 어두운 마음이 크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어둠이 깊어야 아침 해를 볼 수 있으니 너무 낙망하지는 말일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절대적인 가치관보다는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상황론이 우세한 현실이니 교직에서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어린이 유괴 미수, 남의 일이 아니다 12월 2일 토요일, 퇴근하는 차에서 받은 다급한 전화 목소리를 생각하면 하루가 지난 지금도 가슴이 철렁합니다. "선생님, 우리 00가 이상한 청년에게 산속으로 끌려 갔습니다. 동네 아이가 방금 연락을 해와서 지금 막 아빠가 찾으러 갔습니다. 어떻게 해요. 선생님!" 놀라서 다시 연락을 했다. " 아이를 금방 찾아 왔으며 다행히 아무 일도 없으나 딸 아이가 많이 놀라서 울고 있습니다. 당분간 학교에 못 갈 것 같습니다." "00엄마, 엄마가 당황해 하시면 아이가 더 놀라니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시고 아이를 달래 주세요.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학교에서도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잘못이 있나요? 그나마 아무 일이 없는 것만으로 감사해야지요. " "월요일 아침에는 지나는 길에 들러 데리러 갈 테니 혼자 보내지 마십시오. 아이를 안정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그 아이는 읍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 온 여자 아이였습니다. 항상 동네 언니들과 같이 가던 아이였는데, 오늘은 혼자 갔던 모양입니다. 집에 가는 길을 다 익힌 터라 혼자서도 자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침이면 어느 아이보다 아침 독서에
우리 학교에는 한 가정에서 4남매가 다니고 있습니다. 1,2,4,6학년에 재학하고 있는데 한결같이 밝고 명랑한 아이들이랍니다. 우리 반에 다니는 아이는 `김미심`이라는 귀여운 아이인데, 처음 학급을 맡았을 때 제일 먼저 이름을 외운 아이이기도 합니다. 8살밖에 안된 1학년 아이였지만 의젓하게 일을 도우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모습에 감동했지요. 1학년 아이들 20명이 공부를 하고 간 교실 청소는 늘 담임인 내 몫이었기 때문에 온통 어질러 놓고 간 교실은 날마다 대청소를 하고 청소기를 대서 먼지를 흡입시키지 않으면 실내 공기가 혼탁했습니다.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를 다 옮기면서 물건들을 정리하고 청소기까지 대고 나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게다가 칠판을 물걸레로 닦아 분필가루가 교실에 날리지 않게 정리하는 일을 날마다 반복할 때, 선생님을 돕겠다며 자청하는 아이가 바로 우리 미심이었습니다. 1학년 아이들에게 청소를 시킬 수도 없고 청소를 도운다고 찾아오는 2명의 4학년 아이들이 3일에 한번 정도 쓰레기통을 비워주는 심부름만 해줘도 고마울 정도입니다. 날마다 교실 청소를 마치고 나서 후줄근하게 땀에 젖어 쉬고 있으면 우리 미심이는 한 동네에 사는 선영이
교육인적자원부는 29일 장애인의 교육권을 획기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특수교육진흥법 개정안을 마련, 공청회 등을 거쳐 9월 중 입법예고한 뒤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는대로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특수교육지원대상인 장애학생이 일반학급에 통합교육을 받기를 원할 경우 특수교육운영위에서 배정한 장애학생을 학교측이 거부하면 학교장을 1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규정이 강화된다는 내용이다. 나는 특수교육이 절실한 아동과 함께 살면서 우울증에 가까운 마음의 병을 앓으며 1학기를 보냈다. 학교를 옮겨간 곳에서 처음으로 1학년을 맡던 날, 입학식 내내 한 아이를 안고 어르며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1학기 119일 동안은 정말 시행착오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통상적으로 장애아동이 있는 학교에는 특수학급이 있고 특수교사가 있어서 하루 1, 2시간 정도는 일반학급에서 생활하고 나머지 시간은 특수학급에서 따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일반학급에서 데리고 사는 어려움을 덜 느낀다. 그것도 18명의 1학년 아동들이 학교생활에 처음 적응하는 시기인데 천방지축 제맘대로인 장애아동과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누나의 하교 시간
한 아이도 아프지 않게 -정채봉 를 읽고- 가녀린 코스모스 허리에 얹혀 벌써 가을을 이고 앉은 코스모스꽃들이 나그네의 시선을 붙드는 출근길 아침. 가을 열매들은 벌써 돌아온 자리를 찾아 심겨진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연어처럼 회귀하는 날을 잰다. 큰 바람이 오기 전에 부지런한 벌레들에게 일찍부터 몸을 내맡긴 밤알들이 무엇이 그리 급한지 톡톡 굴러나온 산길. 아직은 여름이 물러가기 싫은 듯 태풍을 몰고올 구름들을 가득 입에 물고 하늘을 덮고 있다. 곱디 고운 때깔을 자랑하는 백일홍은 키 작은 봉숭아꽃, 맨드라미꽃을 타이른다. "얘들아, 아직 우린 할 일이 남았단다. 아직 우린 가을을 지켜야 한단다. 상사화 꽃이 오는 날까지만 참자꾸나." 낮은 음계로 가을을 노래하는 계곡도 지난 여름 그를 사랑해주던 나그네를 그리며 아래로 아래로 여행을 가는 지금. 가을이 남기고 갈 지난 봄의 약속들이 밤나무마다 주저리주저리 세상 구경을 서두르며 속삭인다.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 졸시, 가을 앞에서, 장옥순 - 가을이면 서가에서 잠자는 정채봉님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그 화두가 나를 잡아 이끈다. 이미 지상의 옷을 벗어버린 맑은 웃음 속에 슬픈 큰 눈을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