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봄은 어떤 빛일까? 설천면 벚꽃길 유채와 노량바다, 서면 예계마을 벚꽃 터널과 남색 바다, 상주 고개를 넘어가는 붉은 동백꽃과 앵강만 윤슬이 남해 봄빛이지만 일부분이다. 남해는 사계절 내내 아름답다. 언제나 두근거림 그 자체이다. 제주, 거제, 강화도를 둘러보았지만 아늑한 품과 부드러운 산세는 남해에 비할 수 없다. 4월에 접어들 때 아이들과 남면 다랭이마을을 찾았다. 홍현마을을 지나 한 고개 돌면 소치도를 품은 에메랄드빛 하늘이 수평선에 내려앉아 품을 벌린다. 아이들은 바다라고 외치며 윤슬이 예쁘다고 한다. 윤슬 참 어려운 우리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일상에서 벗어나 다랭이마을 지겟길 정자에서 간식을 먹으며, 파도 소리에 몽환에 젖어든다. 680여 개의 논다랭이와 삿갓배미 이야기, 108층의 논을 300여 년에 걸쳐 지게와 손으로 일구었던 이 마을 사람들의 근면함과 성실함, 어려움을 이기려는 생활 모습을, 눈을 반짝이며 듣는 모습이 너무 대견했다. 그리고 이 체험을 엮어서 다랭이논에 스민 남해인의 정신을 사투리로 나타내는 수업을 하였다. “쎄가 빠지고 지게를 지고 까꾸마글 오르고 하면 허리가 뿌라질 것 같심니더.” 잊혀져 가는 남해 사투리를
2024년을 보내고 2025년 을사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혼란한 정치와 어려워지는 민생, 하향곡선을 긋는 국가 신용도는 나라의 현실이 내우외환에 처했음을 알 수 있다. 너나없이 모이면 작금의 현실을 걱정하는 말과 혼란한 정국 상황이 빨리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01년부터 교수신문에서 공표하는 그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살펴보며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2024년 12월 3일 교수신문은 전국 대학교수 10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도량발호(跳梁跋扈)’가 41.4%의 지지를 얻어 2024년의 사자성어로 꼽혔다고 했다. 도량발호는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으로 단일 사자성어가 아닌 ‘도량(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어 다님)’과 ‘발호(권력이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뜀)’ 등으로 각각 달리 활용하던 고어가 붙으며 만들어졌다. 도량발호를 추천한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권력자가 지켜야 할 규범의 본질은 위임받은 권력을 선용해서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판이하다. 권력자들은 자신이 곧 권력의 원천인 것처럼 행동한
타다가 고개 숙인 여름이 저만치 가고 있다. 쭉 뻗은 철길은 언제나 그리움을 부른다. 끝없는 평행의 소실점을 바라보면 유년의 로망이 떠오른다. 그 로망을 반추라도 하는 듯 빠름의 일상을 잠깐 물리고 플랫폼에 선다. 지열과 복사열을 더한 플랫폼의 열기는 비릿한 쇠 냄새까지 더해져 송골송골 땀방울로 맺힌다. 가끔 아이를 보낼 때 배웅한 그 자리에 오늘은 주인공이 되어 몸을 싣는다. 열차는 덜커덩거림도 없이 레일 위를 미끄러지며 고속으로 달린다. 열차 여행의 묘미는 완행열차처럼 쉼과 약간의 덜커덩거림이 있어야 하는데 빠른 속도는 로망의 아쉬움을 남긴다. 예년보다 빠른 추석이 생활의 간이역을 지나며 기다림과 기쁨, 슬픔과 회안이 녹아있는 어머니 역으로 다가오고 있다. 기억 속 제일 따듯한 곳은 어머니가 계신 고향 집이다. 아마 어머니의 마음이 모자이크처럼 배어있어서일 것이다. 느림이 일상화됐던 그 시절, 추석은 왜 그렇게 더디게 오는지 기다림은 설렘을 품은 아름다움이었다. 추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객지에서 고향 집 찾는 일이다. 대처에서 버스, 열차, 승용차를 이용하여 인파에 휘말리고 기다리면서도 반갑고 즐거운 귀성길을 밟는다. 평소보다 더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