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저 00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다음에 출장 오실 때는 꼭 연락해 주세요”라고 말이지요. 학교 다닐 때도 모범적이고 예의가 바른 학생이었는데 그 모습은 여전한가 봅니다. 인사를 전하는 말투도 그때 그 시절 그대로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넌 참 잘 컸구나.’ 24살 첫 부임을 받자마자 만난 띠동갑의 첫 제자들. 생각해 보면 제가 뭘 알고 있다고 아이들을 가르친 건지. 그저 큰 언니처럼 아이들과 재미나게 놀았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 열정만 넘쳤지, 전문성도 노련함도 부족했던 저라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점도 참 많습니다. ‘참 잘 컸구나!’ 전임 학교 교장선생님의 정년 퇴임식에 제자들이 참석했습니다. 말 그대로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며 퇴임하시는 스승을 향한 애틋함을 나타내었지요. 어리기만 했던 초등학생 아이들이 반백이 넘어 선생님, 하고 외치는 모습은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을까?’, ‘나의 제자들도 훗날 나를 그리워할까?’ 그렇게 혼났는데도 선생님이 좋았다며 회고하시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몇 년 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은 저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2023-11-02 14:53올해는 2015년 시행된 ‘인성교육진흥법’이 10년째를 향하고 있는 시점이며, ‘제2차 인성교육 종합계획(2021~2025)’도 중반을 지나고 있다. 10년째를 맞이하는 인성교육이 올바르게 추진되고 있는지 되짚어 보고자 한다. 과학적 정책분석 아쉬워 우선 미래 인성교육은 학교보다 학부모 대상의 인성교육 프로그램 확대와 가정 내 인성교육의 실천적 강화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재 추진되는 인성교육은 학교 현장 중심으로 기획돼 효과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과거 서울시교육청의 종단연구 혹은 인성교육에 대한 연구를 보면, 학생의 인성교육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성과는 부모교육이 효과가 가장 크며, 학교 인성교육은 그 절반 수준이다. 실제 초등 저학년은 맞벌이와 육아로 부모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시기다. 이에 부모들은 인성교육에 대한 학교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기 쉽다. 하지만 이 시기에 학생들이 부모에 받는 인성교육의 영향력은 학교교육으로 대체가 불가하다. 둘째, 변화하는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반영하기 과학적 접근이 부재하다.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는 인성교육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매해 동일한 학년 학생들이 응답한 유사한 설
2023-10-30 09:10대학입시는 국가 정책 중 이슈 몰입도가 가장 큰 사안이다. 교육부는 10일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하면서 보도자료 제목으로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대입 개편안’이라고 했다. 현시점에서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정부 개입 가능한 대입 정책 미래 사회의 가장 큰 어젠다는 저출산이라 할 수 있다. 수출 부진, 보호무역주의, 안보 위협 등은 시간이 지나면 반전을 기대할 수 있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 문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고 궁극적으로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정부의 역할은 모든 정책의 최우선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난 2분기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이다. 지난해 0.78명에서 더 떨어졌다. 세계 1위다. 몇 년 전부터 나라가 소멸될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던 일본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34명이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두 배 가까이 벌어졌다. 이 같은 저출산 문제는 바로 ‘대학입시’와 ‘집값’에서 연유한다고 본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대학입시는 치열한 경쟁을 유발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출산을…
2023-10-30 09:10최근 교권 4법의 개정과 같이 교권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변화의 물결은 매우 바람직하다. 담임·보직 수당 인상에 대한 소식 역시 20여 년간 거의 오르지 않은 각종 수당을 감안하면 환영할 만하다. 특히 교육부와 인사혁신처, 기재부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사회부총리의 확언에 이은 대통령의 약속까지 이어지면서 담임‧보직 수당의 인상은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이 같은 조치는 이제 교감에게로 이어져야 한다. 업무 부담에 비해 보상 적어 개별화 교육의 강조에 따른 학교혁신, 교원학습공동체, 자율장학 및 이를 위한 각종 사전‧사후 협의회, 학교자체평가, 학생 및 교사 상담, 생활지도 지원 등에서 교감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학교폭력과 교권 사건 등에 대한 민감한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학폭위 개최, 양측간 협의, 고소‧고발 대응 등 관련 업무도 대폭 증가하고 있다. 또한 결원 발생 시 시·기간제 교사 선발, 방과후강사나 공무직 선발 과정에서의 공개채용 업무(면접) 등 다양한 인사업무와 이들의 각종 요구사항 관리 등 노무 관련 업무도 늘고 있다. 수업 종료 후에도 방과후특강, 돌봄으로 인해 학교를 계속 개방해야만 하고 그로 인한 학생안전, 시설관리 등 제
2023-10-23 09:10최근 교육부가 2028 대입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수능을 공통과목 중심으로 간소화해 모든 수험생이 ‘같은’ 시험 문제를 풀게 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부터 치르게 될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부터는 기존의 선택과목 없이 통합형으로 치르고 고교 내신은 고교학점제가 본격 도입되는 2025학년도부터 기존의 9등급제에서 5등급 체제로 개편된다. 학교 현장은 부정평가 다소 높아 교육부 발표 후 일주일 남짓 지난 지금, 학교 현장은 개편안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여론에 예의주시하면서도 앞으로 닥쳐올 변화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직 교사로서 필자가 체감하는 이번 대입 개편안은 부정적 여론이 약 60%로 조금 더 많아 보인다. 이에 일선 고교의 진로·진학 담당자의 관점에서 이번 대입 개편안을 수능과 내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이번 개편안에 대한 긍정적 여론은 현행 선택형 수능에서 선택과목 간 유·불리 문제와 점수 따기 좋은 특정 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을 해소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 여론은 고교학점제와 엇박자 정책이라는 것, 탐구 영역에 대한 학습 부담 증가로 인한 사교육비 증가
2023-10-23 09:10치료에 전념해야 할 의사가 비본질적 업무에 체력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의료 질이 저하될 것이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비본질적 업무에 의해 교사 역량이 소진되면, 교육 질이 낮아져 학생 성장에 지장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교원의 비본질적 행정업무 경감, 즉 교원 업무 정상화는 교육 공동체 성장을 위해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다. 비본질적 행정업무 부담 계속돼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해 그동안 교사들이 담당하던 행정업무 경감 노력은 상당 부분 실현됐다. 그러나 교원 감축과 정책 변화 등에 의해 교사들의 부담은 여전히 존재한다. 힘든 과정을 거쳐 임용에 합격했으나 교무행정 업무로 인해 새벽에 수업 준비를 간신히 한 저경력 교사, 운동장 잡초를 뽑고 쓰레기장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체육 교사 등을 본 경험이 있다. 또 통합학급에서 특수 학생을 교육해야 할 특수 교사는 여러 잡무와 함께 다양한 행정업무를 혼자 감당하면서 심리적 소진을 겪었다. 이처럼 수업과 생활지도 외에 교사를 압박하는 다양한 업무는 생기 넘치는 초롱초롱한 교사의 눈을 로봇과 같은 눈으로 만들어 버린다. 비교육적 업무로 인한 교사의 부담은 교사에 대한 교권 침해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이러한
2023-10-16 09:10언제부터인가 학교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학교가 됐다. 이제 교사들은 학생들의 감정 소모의 대상, 무조건적 서비스 종사자로 전락했다. 혹여 학생 비위에 거슬려 기분이라도 나쁘게 하면 ‘아동 학대죄’로 고소·고발을 당하는 존재가 됐다. 정녕 공교육을 되살릴 방안은 없는가. 교실에는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따르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수업 시작부터 엎드려 자거나 딴짓을 하고, 잡담으로 수업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교사가 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키려 적극성을 보이기라도 하면, 이에 불응하는 것은 물론 불손하고 무례한 행동으로 교사의 교권(인권)을 심각히 훼손한다. 심각한 교권 훼손 되살려야 또 지금 학교는 ‘학생 인권’이라는 키워드로 인해 지도력을 상실했다. 학교폭력 사안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교육 지도에도 학생과 학부모가 거세게 항의하고, 불복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행 이후 학생은 이른바 ‘왕’으로 대접받아야 해서, 예전처럼 교육적 벌을 줄 수 없고, 용의 지도, 준법 지도도 할 수 없다. 학생이나 학부모는 교사의 최소한의 교육 지도를 부정하고, 악의적 민원으로 각종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2023-10-16 09:10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만화책을 많이 읽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그다음이 ‘어떤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으냐?’는 겁니다. 책을 읽어주거나 권해주고 싶은데 ‘정답을 알려달라’는 답답한 심정이 담긴 질문입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인터넷을 뒤지거나 어린이도서관, 학교 도서관, 독서 단체에서 배포하는 책 목록을 활용하면 됩니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한 권 질문하는 학부모의 마음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만들기보다는 특효 처방을 찾는 환자들처럼 ‘우리 아이들의 증상과 수준에 딱 맞는 책을 알려달라’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알약 몇 개를 처방해 달라는 건데요. 그런 책이 있을 리 없습니다. 특히 어렸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읽어주기 좋은 책, 소개하거나 권해주기 좋은 책은 아주 많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학부모에게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체계적인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권장 도서 또는 필독 도서가 없다는 점, 아이들의 성장·발달·학습에 필요한 어휘와 문장의 수준, 그리고 책의 수준, 연령대의 적합성 등을 기반으로 한 책 분류가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는 AR(Acc
2023-10-16 09:00“10월 9일은 무슨 날?” 너무 쉬운 질문이지만,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대답한다. “달력의 빨간 날짜요”, “쉬는 날이요”, “참 선생님도, 한글날이잖아요.” 다시 한번 질문을 한다. “한글날은 왜 쉬는 걸까?” 다양한 답이 쏟아진다. 디지털 시대답게 바로 인공지능으로 검색한 답을 이야기하는 학생도 있다. “1970년 대통령령으로 공포된 ‘관공서의공휴일에관한규정’에서 관공서의 공식 공휴일이 됐지만, 1990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돼 단순한 기념일이었어요. 그러다가 2006년에 다시 국경일로 정해졌어요.” 선생님의 황당한 표정을 읽은 똘똘한 제자가 이야기한다. “한글이 훌륭하니까요, 한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니까요.” 세계 최대의 보물 ‘한글’ 해마다 한글날 즈음이 되면 필자는 학생들에게 한글날 이야기를 꺼낸다. 한글날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학생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에게 세계 최고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한글날 교육의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 학생들을 설득하는 교육보다는 ‘깨달음을 주는 교육’이 더 가치가 있다고 본다. 정답을 알려주
2023-10-10 09:10집안의 ‘어른’이라 함은 부모님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양육에 있어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을 달리해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기본예절을 배우도록 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남녀평등이 강조되는 등으로 인해 그 역할이 바뀌기도 했지만, 아이들 교육을 위한 엄부자모(嚴父慈母)의 기본 철학에서 살펴보면 그 역할은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유효한 교육철학 엄부자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경우 사회생활을 위한 자기 절제, 때로는 힘들어도 참는 인내, 경우에 맞는 행동 등에 대해 엄격히 교육하고, 어머니는 아이에 대한 인정으로 아이가 어려움을 겪어도 의지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모의 교육은 자녀들이 자라서 성인이 됐을 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그럼 가정을 제외한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와 교실에서의 ‘엄부자모’ 역할은 누가 어떻게 해야 하나? 교실은 수많은 아이가 함께 살아가면서 배려와 양보를 배우고, 때로는 타협하기도 하면서 지내게 된다. 그런데 ‘마냥 내 아이에 대한 인정’만을 바라고 교사에게 ‘엄부’의 역할을 제외시키면 그에
2023-10-10 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