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부터 전면 실시한다는 고교학점제를 두고 말들이 많다. 교육 주체 중 고교학점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교사들이 제일 먼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어떤 학교는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나 선도학교로 지정돼 고교학점제를 다른 학교보다 먼저 시행 중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며 어차피 고교학점제로 갈 건데 미리 준비하는 게 낫지 않냐고 말하기도 한다. 교육부 주장에 동의 어려워 정말 그러한가? 만약 고교학점제가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불리한 제도라면 굳이 먼저 시행해 불이익을 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가능한 한 늦게 시행해 그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말 그대로 일정한 학점(192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쉽게 이해하려면 대학의 학점제를 생각하면 된다. 현재의 교육제도에서는 학생들은 출석만 하면 성적과 무관하게 졸업할 수 있다. 그러나 학점제에서는 수업 2분의 3 출석과 학업성취율 40% 이상을 충족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교육부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 변화로 우리 교육도 변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며, 삶에 대한 적극성과 주도성 및 책임감을 지닌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고교학점제가 필요하다고 주장
2021-11-28 09:00학력 격차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 교육의 불안 요소이며,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의 약화와 불평등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다. 교육당국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막대한 규모의 예산을 ‘교육회복’이라는 이름으로 투입하고 있다. 기초학력보장법에 대한 큰 기대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 9월 24일 공포된 기초학력 보장법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년 3월 25일 시행 예정인 이 법률의 시행령 제정을 위한 의견 수렴이 한창이다. 기초학력의 중요성을 전제로 마련된 법률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시행령 제정 과정을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기초학력보장법 제8조(학습지원대상학생의 선정 및 학습지원교육)와 제9조(학습지원 담당교원) 관련 시행령 마련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안이 제시됐다. ‘1. 기초학력 보장 업무 경험이 있거나 당당할 능력이 있는 교원 1명 또는 다수를 학습지원 담당교사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되, 2, 학교장이 해당 교원의 수업 시수 및 근무 조건을 학교의 여건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되, △ 본인의 희망과 학교장의 동의에 따라 전보를 유예할 수 있으며, △ 담당 교원 지정 후 1년 이내에 직무교육(연수)을 이수하여야 한다.’ 기초학력 업무를 중요
2021-11-27 09:21"선생님, 예림이 오늘 몸이 아파서 못 온 게 아니에요." 방과후 빈 교실에서 자리를 정돈하던 나를 수경이와 다은이가 찾아왔다. 숨을 헐떡거리고, 눈에는 눈물을 방울방울 달고서. 설명을 늘어놓는 중에도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흘러 멈출 줄을 몰랐다. "우리끼리 싸웠는데 화해 안 하니까 중간에서 스트레스 받아 안 나온 거예요." 다은이는 예림이가 보냈다는 문제의 문자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하, 너희들이 자꾸 이러니까 나, 정말 지쳐. 이제 그만 살고 싶다.’아이들은 예림이의 전화가 불통이라 너무 걱정된다고, 당장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 어떡해요. 예림이 잘못된 거면……그러면……그러면……어떡해요?" 아이들의 말을 듣는 그 순간, 12년 전의 아픔이 데자뷰처럼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잊은 줄 알았던 과거의 상처가 어느새 내 마음을 노크질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전화해 볼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휴대전화를 잡는 손이 나도 모르게 떨렸다. 그러나 전화를 반복해 걸어도 예림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나는 괜히 창가를 서성거렸다. ‘설마!’ ‘어쩌면!’ ‘이번에…
2021-11-15 09:22정권 말기, 무리한 ‘교육 대못 박기’ 정책에 대한 현장의 우려가 고조 되고 있다. 짜 맞춰진 시한과 내용에 따라 절차적 요식만 거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고교학점제가 그렇고, 정파적 민주시민 교육과정 개편이 대표적이다. 특히, 2022 교육과정 개정은 앞으로 10여 년간 초·중·고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교육의 핵심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없이 중요하다. 마땅히 사회적으로 합일(合一)된 가치를 담아야 하나, 한쪽으로 기운 답이 정해져 있는 듯하다. 지난 4월 여당 의원이 교육기본법의 ‘홍익인간’ 교육이념을 삭제하려 했고, 동시에 교육부의 수탁 연구에도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민주시민교과 신설 등 관련 교육을 의무화하는 ‘민주시민교육촉진법안’도 발의된 상태다.일부 국회의원이 정부수립 이래 대한민국 교육을 관통해 온 ‘홍익인간’ 이념을 어떠한 사회적 논의도 없이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국민적 저항도 거셌다. 교원의 73.4%도 특정 정파에 경도된 민주시민 교육이념 설정에 반대했다. "불평등, 혐오를 노래하라" 그럼에도 정치 진영논리에 경도된 민주시민의 가치는 이번 교육과정 개편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민
2021-11-15 08:54ESG란 경영학 용어로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지칭한다. 기업은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성을 높여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이는 이미 국제적 흐름이다. 이윤을 목표로 삼아온 많은 기업들이 지역사회, 환경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해 함께 성장하는 것을 미래 기업 가치의 핵심으로 삼고 변화를 모색 중이다. 이런 변화는 기업뿐 아니라 미래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전망이다. 이미 대세, 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것 미래사회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교육 방향과 학교 교육에도 ESG를 반영해야 할 시기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한 기술 발전이 진보한 모습의 미래사회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개발과 풍요에 취해 지금과 같은 삶을 반복하며 생태계와 환경 파괴를 방치한다면, 현재 학생들이 성인이 된 시기의 지구는 예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참담한 모습일 수 있다. 최근 매스컴에서는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 이야기가 연일 화두다. 이윤추구에 목매던 기업들조차 환경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당장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어가기 위한 교
2021-11-14 09:51"자~ 여러분. 지금 기훈(가명)이를 어디에 밀어 넣고 있는 거죠?" "청소도구함요." "청소도구함에 왜 사람을 밀어 넣고 있는 거죠? 헤드락 걸면서 웃고 있는 이 학생이 누구죠?" 2021년 10월 ○○중학교 상담실 CCTV 영상을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멈춰가며 각자의 행동을 직접 말로 설명해 달라고 하자, 가해 학생 모두 반색한다. 헤드락을 걸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어깨동무’를 한 것이라고 항변하기까지 한다. 괴롭힘과 장난, 그리고 방관 십 수년간 경찰 일을 해 오면서 잔인한 범죄 현장을 적지 않게 봐 왔음에도 이날 CCTV 영상은 무척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네 명이 한 명을 괴롭히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많은 아이가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모습이 너무 잔인해 보여 슬프기까지 했다. 말린다거나 선생님을 부르러 가는 학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울산지역 2021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경험 장소는 교실(24.5%) 복도(15.7%) 운동장(8.5%) 순이었다. 피해 시간은 쉬는 시간(29.0%), 하교 이후(21.6%), 점심시간(10.7%) 이 많았다. 피해 신고 대상은 가족(38.8%), 학교 선생님(27.3%) 순이었는
2021-11-13 09:49교직 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요즘 말로는 ‘갑툭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그런 상황 말이죠. 업무가 많은데 갑자기 우리 반 아이가 전학을 가요. 생활기록부를 정리해서 전학을 보내야 하죠. 생활인권부장인데 퇴근 후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요. 학교폭력 신고가 들어왔다고요.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반 아이가 아직 안 들어왔다는 학부모님의 전화를 받아요. 갑자기 분주해져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아이를 찾기 시작해요. 그런데, 아이는 감감무소식. 퇴근은 안녕!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일어나는 상황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어요.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는 그런 ‘갑툭튀’에 대한 이야기를 단편 소설 『어느 관리의 죽음』에서 그려냈어요. 이반 드미트리치 체르뱌코프. 이름도 엄청나게 긴 회계원이에요. 그는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앞자리 대머리 노인의 반질반질한 머리에 재채기하고 말았어요. 반짝이는 머리에는 침이 튀고, 노인은 투덜거리면서 머리와 목을 닦기 시작했죠. 안타깝게도 그 노인은 운수성의 고위급 장군이었어요. 체르뱌코프는 사과를 했고 장군은 괜찮다고 말해요.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은 그는 몇…
2021-11-11 14:50"선생님, 동시 낭송대회에 가서 저는 대상은 안 탈거예요. 왜냐하면 대상을 타게 되면 내년에는 못 나가잖아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우리 혁준이. 동시 낭송대회요강을 살피면서 꿈도 야무지게 대상을 탈까봐 걱정했다. "선생님 저는 동시가 시시한 건 줄 알았는데 소리내어 노래 부르듯이 친해지다 보니 마음의 문을 열어주어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아요." 교직 생활 30년 만에 처음, 3학년 과학 교담을 하면서 만난 혁준이는 호기심이 많고 지적 수준은 높으나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타인에게는 무감각, 무관심으로 소통이 안 되는, 자폐와 유사한 행동을 보이는 학생이었다. 교담 전담교사는 학부모와의 관계나 생활지도에 대한 심적 부담이 적어 아주 자그마한 것이라도 혁준이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여유가 생겼다. 해리 왕은 ‘좋은 교사 되기’에서 교사는 4단계(환상→생존→ 숙련→영향)를 거쳐 성장한다고 했다. 그런데 ‘담임교사로서 나’를 돌아보니 교실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생존’과 ‘숙련’ 단계에만 머물러 있었던 자화상이 떠올라 많이 부끄러웠다. 성찰의 시간을 통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진 장점이…
2021-11-08 14:46지난달 29일, ‘여교사 화장실에 몰카 설치한 초등학교 교장 긴급체포’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이를 접한 많은 교원의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과 참담함 그 자체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오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해당 교장 구속 등 관련 내용이 언론에 계속 보도되자 교육자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몰카, 국민적 지탄받아 마땅 교총은 이러한 교원 정서를 대변해 ‘성범죄는 교육악! 철저히 수사해 사실이면 교단 영구 퇴출 등 엄벌에 처해야!’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해당 학교장의 범죄 행위는 코로나 극복과 교육에만 전념하는 전국 교육자 모두를 허탈하고 부끄럽게 만들었다"며 "교직 사회에 더 높이 요구되는 도덕성과 책무성에 부응하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기초·기본교육을 하는 초등학교 교장이 이런 범죄 행위를 한 것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 마땅하다. 학교장의 여교사 화장실 몰카 설치 사건은 그 전례를 찾기 어려워 교육계 안팎의 충격이 더 크다. 정확한 사실은 수사와 재판으로 드러나겠지만 이번 사안으로 교육계 전체의 도덕성은 크게 훼손됐다. 2020년 1월, 대법원은 ‘60대 여
2021-11-08 09:00교사들은 매년 11월 교원평가 기간이 다가오면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자유서술식 문항 때문이다. 평소에 교사와 작은 말다툼이나 문제가 있었던 학생들은 교원평가 문항에 욕설, 반말 등 학생으로서 도저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개의치 않고 기록한다. 교사 괴롭히는 막말 평가 학교 현장에서 묵묵히 근무해온 교사들은 학생들의 이러한 글이 담긴 서술형 평가 결과지에 교사로서 회의감과 모멸감이 들고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다.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된 연예인에 대한 악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혐오스럽고 무자비한 언어폭력 탓에 유명 연예인들은 물론 일반인에게까지 베르테르 효과가 확산되자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연예인 기사에 댓글 달기 기능을 차단한 바 있다. 이처럼 성숙한 어른도 익명이 보장되는 댓글을 달 때는 당사자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심한 욕설과 비하 발언을 쏟아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물며 교원평가라는 명목으로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익명 댓글 권한을 주었으니 그 결과는 뻔하다. 긍정적 이야기보다는 악의적이고 부정적인 내용이 많을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외모 비하, 성희롱, 인격모독 등 학생들의 아무 생각 없는 악성 평
2021-11-07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