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생활을 한 지 어느덧 20년이 다 돼가지만, 신학기만 되면 내 마음은 갓 시집온 새색시 마냥 콩콩 뛴다. 올해는 어떤 살구 같은 새콤한 웃음들을 만날까. 입학식 며칠 전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꼬옥 움켜쥐고 이불 속에서 잠을 이리저리 뒤척인다. 그러다 입학식 전날 하얀 봉투에 일급비밀이라도 들어있는 듯한 학급명단을 받아 떨리는 손으로 펼쳐들면, 까만 활자들은 꼬물꼬물 눈으로 기어들어 온다. 고 꼬물거리는 활자들은 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활자의 주인공들을 만날 때까지 또 다른 행복한 설렘에 빠진다. 드디어 입학식 날, 궁금증에 단걸음으로 달려가 우리 반 아이들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본다. 어떤 얼굴들일까? 입학식 때 학교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해도 신입생들은 여기저기를 자꾸 낯선 눈으로 살핀다. 그 눈빛들을 인솔해 교실에 와도 여전히 아이들은 나에게 어리둥절한 눈빛을 던진다. “안녕, 올 일년 동안 너희들과 함께 할 담임이야….” 내 소개를 다시 간단히 하면, 그제야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입을 손으로 막고 킥킥 웃어댄다. 어쩌면 내 깻잎 머리 모양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중학교 3학년을 몇 년 가르치다 신입생을 만나면, 남자 아이들이지만 꼬오옥 주머니에…
2013-08-08 19:29먼저 우연찮게 공모한 ‘학교 바꿀수 있다-2012 교단 수기’에 은상을 수상하게돼 매우 기쁘고 감사드린다. 지난 11월 중순 우리 학교 청소년 농부학교 ‘씨앗’ 동아리 행사인 김장 담그기를 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밤 8시 넘어서야 우리 학교의 어려운 아이들의 가정에 김장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파김치로 변한 내 몸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 뿌듯하고 보람이 넘쳤다. 나의 작은 생각과 행동으로 학교를 변화시키고 같이 일하는 선생님에게도 희망과 활력을 줄 수 있으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꿈과 긍지, 행복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올 해로 3년째 접어든 농사 실습반인 청소년 농부학교 ‘씨앗’은 교육 경력 10년 째 접어들었는데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는 나의 절박한 심정에서 출발했다. 늘 똑같은 교과 내용을 앵무새처럼 가르치는 타성에 젖어 있었고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무력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머리로서는 이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그래 몸을 놀리고 움직이자’라는 생각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그래도 의미있는 일이면 더 좋을 거 같아 찾아본 게 농사일이었다. 다행이 우리 학교 근처에 몇 년째 농사를 짓지 않
2013-08-08 19:19휴~ 한숨부터 나온다. 저녁 8시, 두 번의 김장 김치 배달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서 내쉬었던 한숨이다. 우리 청소년 농부학교 ‘씨앗’의 일년 중 가장 큰 축제이자 이벤트인 사랑의 김장 김치 담그기를 마무리하면서 성취와 보람, 또 무사히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안도와 고단함의 표현일 것이다. 횟수로 2회째를 맞은 사랑의 김장담그기 행사, 참 무모하기도 하지만 정말 큰 보람과 감동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활력이다. 나만의 노력으로도, 학생들만의 노력으로 쉽지 않으며 나와 학교, 학생, 학부모가 혼연일체가 되어 헌신과 노력으로 이루어내는 소중한 결실이다. 김장 담그기 행사를 끝으로 올해 농사는 갈무리다. 작년부터 방과후 학교에 아이들과 농사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교무실 안에만 있는 것이 참 무료했다. 새로운 교육 모델과 방향을 고민하던 차에 학교 인근에 놀고 있는 밭이 보였다. 물론 우리 학교 땅이다. 그동안 마을 주민이 임대해 농사를 지었다가 학교에서 실습지로 사용하려고 묵히고 있었던 밭이었다. 약 400평 규모라고 했다. 지금은 시작했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빼도 박도 못하는 입장이지만 400평이 정말 큰 것인지 알았으면 감히 농사 실습반을 운영하겠다고 했을까
2013-08-08 19:16중국 학부모들은 한국보다 더 치열한 입시경쟁이 시달리고 있다. 대입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면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하고, 좋은 초등학교에 가야한다. 심지어는 좋은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학부모들이 밤새워 줄을 선다. 중국의 교육열이 진화하고 있다. 대입경쟁이 치열한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여기저기에 값비싼 머리 좋아지는 과정이 생겨나 학부모를 유혹하고 있다. 학비가 한화 1800만 원이나 하는 한 과정에서는 아이들이 20초 만에 책을 읽고, 느낌으로 포커 카드를 알아내는 방법 등을 배우고 있다. 조금 더 뛰어난 학생은 시험문제를 보는 즉시 답을 떠올 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 등록했던 한 학부모는 수업을 한 지 10일이 지났지만 아이에게 뛰어난 능력이 생기지 않았고, 아이가 속이는 법만 배운 것 같다고 한탄한다. 이런 가당찮은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인기를 끄는 이유는 경쟁적인 입시경쟁에서 자녀들을 살아남게 하려는 학부모들의 극단적인 열망에서 비롯된다. 중국은 매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2013-04-12 02:35어쩌면 교직에 몸담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 누구나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 일 수도 있기에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하지만 30여년 교직 생활동안 많은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한번쯤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본 어설픈 글입니다. 젊다는 패기 하나로 시작한 교직생활이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더할수록 교육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란 생각도 자주하게 됩니다. 지식의 전달을 넘어 더 크고 소중한 것들을 가르쳐야 하기에 교육은 참으로 힘겨운 성직(聖職)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도공이 빚어내는 도자기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깨뜨려버리면 되지만 인간을 빚는 교육은 그럴 수 없기에 애정을 갖고 참고 기다리는 인고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성규와 같은 아이와의 만남을 통해 저는 참된 교육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보잘 것 없는 글을 선택해 수상의 기회를 준 한국교육신문에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3-04-11 21:17“안됩니다! 안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당장 데리고 가이소!” 그날도 예외 없이 낯선 전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교무실에 나타났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아 화를 참지 못하고 학부모를 향해 소리쳤다. 재직 중인 학교가 도시에 인접한 시골학교이다 보니 도시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이나 문제 학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학교로 전학 오겠다며 교무실을 찾아왔다. 그렇게 전학 온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학교를 뒤흔들어 놓은 뒤 중도에 그만두거나 또 다른 학교로 옮겨가는 일들이 반복되곤 했었다. 그런 아이들을 맡게 된 학급 담임과 교과담임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골고루 쏟아야 할 정성을 오로지 전학 온 학생에게 쏟느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볼멘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동안 학적 업무를 담당한 죄(?)로 자의반 타의반 문제 학생들을 많이 맡아 왔던 터라 민감해진 상태였는데 새로이 전입을 의뢰하고자 온 그 학생과 학부모를 보자 순간적으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내뱉은 일성이었다. 갑작스런 큰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진 학부모는 당황해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교무실 입구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순간 교무실 분위기는 냉랭하게 변해버
2013-04-11 21:15“교단 수기공모에 입상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미술 수업 중에 우연히 보게 된 문자 한 통. 얼핏 본 문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가라앉히기 힘든 기쁨의 감정을 애써 누르고 자세히 살펴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금상’이었다. 열심히 미술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나도 모르게 “얘들아, 선생님 금상 받았어!”하니 아이들은 일제히 “와!~”하며 일어서서 박수를 쳐줬다. 교단수기 공모에 응모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5학년 9반 꿈쟁이들’ 이야기를 글로 써서 공모전에 제출했는데 결과가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미리 얘기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금상’의 의미를 금방 알았다.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혼자 남은 교실에서 내가 쓴 수기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부족한 글이지만 진정성을 인정해주신 교단수기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했다. 그리고 이 상이 특별한 목적 없이 출퇴근을 반복하던 10년의 월급쟁이 같은 생활을 마감하고 아이들을 향한 나만의 꿈으로 진짜 교사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최근 2년 동안의 노력에 대한 가장 큰 보상으로 여겨졌다. 어떤 교사가 훌륭한 교사일까? 수업을 잘하는 교사? 학급경영을 시스템화해 능숙하게 운영하는 교사?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
2013-03-11 15:27월급쟁이 같은 생활 마감 “연금 받으려면 학교에 얼마나 더 다녀야 하지? 어유~ 아직도 많이 남았네.”, “방학이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학교를 그만두면 뭘 할 수 있을까?” 지난 10년 동안 난 ‘교사’가 아닌 그냥 그런 월급쟁이였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이 갖는 정체성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2010년 겨울 길목에 들어선 11월 어느 날, 퇴근길 라디오 89.1MHz에서 평소 듣던 진행자가 아닌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였다. 김연아 선수의 슬럼프 이야기를 잠깐 하면서 ‘꿈 너머 꿈’을 꾸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이상하리만큼 몰입이 됐다. 우리 아이들이 ‘의사’, ‘변호사’, ‘교사’ 등의 명사형의 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형용사로 말하는 꿈을 꿔야 한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교사가 되어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삶은 아름답다고 알려주는 작가가 되겠다’, ‘저소득층의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영자가 되겠다,’ 다소 포괄적이고 모호할 수 있어 보이지만 ‘꿈 너머 꿈’, ‘형용사로 말하는 꿈’은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2013-03-11 15:27죄 없는 아이들의 고통은 ‘세상의 업’이라고 한다. 교육 현장에서 위기 가정의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어린아이 시절 입은 영혼의 상처는 세상 뭇 어미인 나의 가슴에 슬픔으로 각인되곤 했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의 비뚤어진 행동을 질책하고,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바뀌지 않는 그들에게 속상해 했겠지만 그들 역시 가정과 사회의 피해자라는 생각에 인내하며 기다려주게 됐다. 전문상담교사로서 나의 작은 소양을 그들을 위해서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영은이는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언니의 학대를 못 이겨 가출했던 아이였다. 아이를 찾았을 때 마른버짐이 핀 얼굴과 벌에 쏘인 것처럼 온몸에 생채기 투성이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잘살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온정의 손길도 많다. 당시 처녀티가 나던 아이를 잘 보살펴 주었던 시장의 국수집 할머니, 번갈아가며 아이를 보살펴주던 우리 반 학부모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현재 전국에 가출이 아동 10만 명, 학업 중도 포기 청소년 20만 명, 학교 부적응학생 178만 명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예비 사회부적응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2013-03-11 15:26아이들을 사랑으로 골고루 감싸주는 진정한 교육자가 되겠노라 다부진 마음으로 디딘 교직생활 30여 년. 그동안 나와 인연 맺어졌던 수많은 학생들을 나는 과연 사랑으로만 감싸줬을까? 돌이켜 생각하면 시행착오로 얼굴 붉어질 일이 더 많았다. 항상 아이들을 공경으로 섬기자는 마음 끝에 나풀거리는 단발머리 하나가 걸어 나온다. 3월은 새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설렘의 달이다. 생활기록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학부모 란에 사선이 그어져 있는 쪽에 눈이 머물렀다. 보호자는 외조모, 5학년 2학기에 전학 왔으며 교과학습 발달사항에 양, 가가 키 재기를 하고 있었다. 행동이 느리고 실천력이 부족하며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우울한 편이라는 아이, 영은이와 첫 만남이었다. 영은이의 부모는 생존해있었다. 생모는 영은이가 여섯 살 되던 해 남편과 헤어진 후 영은이는 친정에 보내고 언니만 데리고 재혼했다가 외할머니가 작고하자 할 수 없이 데려왔다고 했다. 단정치 못한 용모에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전학 온 후 줄곧 따돌림을 받아왔던 아이는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고 매사에 신경질적이며 공격적이었다. 한 학기에 걸쳐 반 아이들과 나는 영은이를 공경으로 대했다. 기초 실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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