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교직에 몸담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 누구나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 일 수도 있기에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하지만 30여년 교직 생활동안 많은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한번쯤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본 어설픈 글입니다. 젊다는 패기 하나로 시작한 교직생활이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더할수록 교육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란 생각도 자주하게 됩니다. 지식의 전달을 넘어 더 크고 소중한 것들을 가르쳐야 하기에 교육은 참으로 힘겨운 성직(聖職)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도공이 빚어내는 도자기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깨뜨려버리면 되지만 인간을 빚는 교육은 그럴 수 없기에 애정을 갖고 참고 기다리는 인고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성규와 같은 아이와의 만남을 통해 저는 참된 교육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보잘 것 없는 글을 선택해 수상의 기회를 준 한국교육신문에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3-04-11 21:17“안됩니다! 안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당장 데리고 가이소!” 그날도 예외 없이 낯선 전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교무실에 나타났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아 화를 참지 못하고 학부모를 향해 소리쳤다. 재직 중인 학교가 도시에 인접한 시골학교이다 보니 도시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이나 문제 학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학교로 전학 오겠다며 교무실을 찾아왔다. 그렇게 전학 온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학교를 뒤흔들어 놓은 뒤 중도에 그만두거나 또 다른 학교로 옮겨가는 일들이 반복되곤 했었다. 그런 아이들을 맡게 된 학급 담임과 교과담임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골고루 쏟아야 할 정성을 오로지 전학 온 학생에게 쏟느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볼멘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동안 학적 업무를 담당한 죄(?)로 자의반 타의반 문제 학생들을 많이 맡아 왔던 터라 민감해진 상태였는데 새로이 전입을 의뢰하고자 온 그 학생과 학부모를 보자 순간적으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내뱉은 일성이었다. 갑작스런 큰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진 학부모는 당황해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교무실 입구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순간 교무실 분위기는 냉랭하게 변해버
2013-04-11 21:15“교단 수기공모에 입상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미술 수업 중에 우연히 보게 된 문자 한 통. 얼핏 본 문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가라앉히기 힘든 기쁨의 감정을 애써 누르고 자세히 살펴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금상’이었다. 열심히 미술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나도 모르게 “얘들아, 선생님 금상 받았어!”하니 아이들은 일제히 “와!~”하며 일어서서 박수를 쳐줬다. 교단수기 공모에 응모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5학년 9반 꿈쟁이들’ 이야기를 글로 써서 공모전에 제출했는데 결과가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미리 얘기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금상’의 의미를 금방 알았다.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혼자 남은 교실에서 내가 쓴 수기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부족한 글이지만 진정성을 인정해주신 교단수기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했다. 그리고 이 상이 특별한 목적 없이 출퇴근을 반복하던 10년의 월급쟁이 같은 생활을 마감하고 아이들을 향한 나만의 꿈으로 진짜 교사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최근 2년 동안의 노력에 대한 가장 큰 보상으로 여겨졌다. 어떤 교사가 훌륭한 교사일까? 수업을 잘하는 교사? 학급경영을 시스템화해 능숙하게 운영하는 교사?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
2013-03-11 15:27월급쟁이 같은 생활 마감 “연금 받으려면 학교에 얼마나 더 다녀야 하지? 어유~ 아직도 많이 남았네.”, “방학이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학교를 그만두면 뭘 할 수 있을까?” 지난 10년 동안 난 ‘교사’가 아닌 그냥 그런 월급쟁이였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이 갖는 정체성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2010년 겨울 길목에 들어선 11월 어느 날, 퇴근길 라디오 89.1MHz에서 평소 듣던 진행자가 아닌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였다. 김연아 선수의 슬럼프 이야기를 잠깐 하면서 ‘꿈 너머 꿈’을 꾸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이상하리만큼 몰입이 됐다. 우리 아이들이 ‘의사’, ‘변호사’, ‘교사’ 등의 명사형의 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형용사로 말하는 꿈을 꿔야 한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교사가 되어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삶은 아름답다고 알려주는 작가가 되겠다’, ‘저소득층의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영자가 되겠다,’ 다소 포괄적이고 모호할 수 있어 보이지만 ‘꿈 너머 꿈’, ‘형용사로 말하는 꿈’은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2013-03-11 15:27죄 없는 아이들의 고통은 ‘세상의 업’이라고 한다. 교육 현장에서 위기 가정의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어린아이 시절 입은 영혼의 상처는 세상 뭇 어미인 나의 가슴에 슬픔으로 각인되곤 했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의 비뚤어진 행동을 질책하고,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바뀌지 않는 그들에게 속상해 했겠지만 그들 역시 가정과 사회의 피해자라는 생각에 인내하며 기다려주게 됐다. 전문상담교사로서 나의 작은 소양을 그들을 위해서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영은이는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언니의 학대를 못 이겨 가출했던 아이였다. 아이를 찾았을 때 마른버짐이 핀 얼굴과 벌에 쏘인 것처럼 온몸에 생채기 투성이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잘살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온정의 손길도 많다. 당시 처녀티가 나던 아이를 잘 보살펴 주었던 시장의 국수집 할머니, 번갈아가며 아이를 보살펴주던 우리 반 학부모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현재 전국에 가출이 아동 10만 명, 학업 중도 포기 청소년 20만 명, 학교 부적응학생 178만 명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예비 사회부적응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2013-03-11 15:26아이들을 사랑으로 골고루 감싸주는 진정한 교육자가 되겠노라 다부진 마음으로 디딘 교직생활 30여 년. 그동안 나와 인연 맺어졌던 수많은 학생들을 나는 과연 사랑으로만 감싸줬을까? 돌이켜 생각하면 시행착오로 얼굴 붉어질 일이 더 많았다. 항상 아이들을 공경으로 섬기자는 마음 끝에 나풀거리는 단발머리 하나가 걸어 나온다. 3월은 새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설렘의 달이다. 생활기록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학부모 란에 사선이 그어져 있는 쪽에 눈이 머물렀다. 보호자는 외조모, 5학년 2학기에 전학 왔으며 교과학습 발달사항에 양, 가가 키 재기를 하고 있었다. 행동이 느리고 실천력이 부족하며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우울한 편이라는 아이, 영은이와 첫 만남이었다. 영은이의 부모는 생존해있었다. 생모는 영은이가 여섯 살 되던 해 남편과 헤어진 후 영은이는 친정에 보내고 언니만 데리고 재혼했다가 외할머니가 작고하자 할 수 없이 데려왔다고 했다. 단정치 못한 용모에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전학 온 후 줄곧 따돌림을 받아왔던 아이는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고 매사에 신경질적이며 공격적이었다. 한 학기에 걸쳐 반 아이들과 나는 영은이를 공경으로 대했다. 기초 실력을
2013-03-11 15:25새내기 교사로 교직에 들어왔을 때 열악한 교육환경 때문에 그리 보람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교사는 성직자 못지않게 소중한 직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정이의 담임을 하면서 1학년인 수정이가 혹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조바심과 걱정이 앞섰다. 수정이가 보통 아이들과 함께 건강하게 성장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이들은 교사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아이들은 교사의 관심만큼 성장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수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교사에게 있어 담임은 정말 매력적인 보직이다. 담임을 맡아 소속감을 느끼고 아이들과 함께해야만 교사의 진정한 생명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있어 교사는 행복한 것이다. 비록 높은 보수와 지위는 없지만 교사는 세상 어느 누구도 누릴 수 없는 보람이 있어 행복하다. 한국교육신문 교단수기 공모 입상소식은 그동안 바쁜 교직 생활로 나를 잊고 살았던 차에 다시 한 번 삶의 활력소를 넘치게 해준 행복한 사건이었다. 더불어 앞으로 더욱 열심히 교직에 정진하라는 메시지로 이 상을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
2013-03-11 15:23몇 해 전일이다. 우리 반에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수정이는 키가 보통 아이들보다는 조금 컸다. 아이는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자리가 어디예요?”라고 묻고는 겸연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왠지 어딘가에 그늘이 있어 보였고 자꾸 눈동자를 마주치지 못했다. 수정이 아버지도 무슨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함께 온 여동생과 수정이를 잠시 나가 놀게 하고 아버님께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아버지는 묻지도 않았는데 “저 아이가 지난번 학교에서 좀 문제가 있었어요. 친구들 돈도 훔치고 거짓말을 해서 많이 힘들었답니다. 선생님께서 각별히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정도야 뭐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문제지’하는 생각에 안심하며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지도하겠습니다”하고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했다. 쌀가게 털이 사건 수정이가 전학 온 지 며칠이 흘렀지만 염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드디어 대형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어느 날 방과 후 교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웬 젊은 남자가 수정이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교실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여기 사물함에 있니? 빨리 말 해봐!”하며 몹시 흥분한 상태였
2013-03-11 15:15중국에 민족주의 정서가 회오리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주변국가와 벌이는 영토분쟁이다. 우선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분쟁을 보자. 센카쿠 열도는 동중국해에 위치한 무인도다. 7평방킬로미터의 이 열도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큰 대립의 중심지다. 이외에도 중국은 인도, 베트남 등과 남중국해에서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이런 현상이 최근 들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된 것은 중국의 민족주의 정서와 관계가 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은 군사력, 경제적 성과, 소프트 파워 영향력 면에서 커다란 힘을 가진 국가로 부상했다. 이때부터 주변 국가들과 영토분쟁을 겪게 됐는데, 주변 국가들은 중국의 성장이 이성적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중국의 공격적인 반응은 그들의 인식을 바꿔놓도록 하고 있다. 중국은 평화적인 역할로 부상하기 보다는 헤게모니를 주장하는 국가로 나서고 있다는 인식을 주변국가에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헤게모니 쟁탈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조공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이런 중국이 100년 정도 잠자는 호랑이로 지냈던 것이다. 그러다가 경제력 등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감춰졌던 민족주의가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2013-03-08 09:57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을 여행하면서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 있다. 바로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이다. 이 두 도시는 중국의 대표적 도시로서 정치, 경제의 중심지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이 두 도시는 과거부터 우애가 좋지 않고, 질시하고, 경쟁하는 관계에 있다. 오죽하면 베이징과 상하이의 관계에 대해 루쉰(魯迅)을 비롯한 중국의 많은 문학가들이 쟁론을 벌이기도 했을까. 현대에 들어서도 이런 두 지역 사이의 경쟁의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상하이의 일부 관료들이 선진적 정책을 학습하기 위해 베이징을 찾았다. 이는 근래에 보기 힘든 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왜냐하면 경쟁의식을 갖고, 상대방을 폄하하던 자존심 강한 상하이 관료들이 베이징을 학습하고자 찾아온 것이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럼 과연 베이징과 상하이는 어떤 연유에서 이런 경쟁관계 내지는 질시하는 관계가 되었을까. 이는 역사·문화적 차이로부터 시작된다. 당연히 양 도시의 문화적 코드를 읽어내는 것이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베이징은 중국의 원, 명, 청 3대 왕조의 수도였다. 그러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하면서 다시 중국의 수도가 됐다. 베이징
2013-02-22 0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