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거주형태, ‘전세’ 우리나라에는 세 가지 거주 형태가 있다. 바로 매매·전세·월세다. 매매와 월세는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지만, 전세는 매우 드문 형태이며 사실상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독특한 제도다. 외국인들에게 전세 제도를 설명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낯선 개념이지만, 전세는 수십 년 동안 우리 주택시장에 계속 남아있었다. 또한 만기 때 보증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으니 사회초년생 입장에서는 주거비를 낮추는 동시에 자산 형성의 종잣돈을 모으는 경로로 많이 활용됐다. 이토록 특이한 임차 형태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고도 성장기와 고금리 시절, 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은 은행 대출보다 저렴하고 유용한 ‘무이자 사적 금융’이었다. 이를 통해 집주인은 자산을 증식하거나 또 다른 부동산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세입자 역시 매달 생돈이 나가는 월세를 아껴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즉 전세는 집주인도 세입자도 모두 만족한 공생의 산물이다. 전세는 시장의 공급과 수요를 매끄럽게 잇는 윤활유 세입자가 이처럼 매달 나가는 고정 주거비 없이 자산을 축적하는 동안…
2026-08-05 10:00
최근 드라마 참교육을 계기로 ‘교권보호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물론 현실의 교육행정이 드라마처럼 작동할 수는 없다. 교육활동 보호는 감정적 응징이나 즉각적 제재가 아니라, 법령과 절차에 따라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호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회복하는 공적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교사가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에 공감한 이유는 분명하다. 악성민원, 반복 민원, 생활지도 이후의 아동학대 신고,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뒤섞일 때 교사는 여전히 혼자 대응해야 한다고 느낀다. 제도는 늘어났지만,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체감은 충분하지 않다. 최근 민주연구원에서 제안한 교육활동보호국 논의의 핵심은 별도의 ‘응징 조직’을 만들자는 데 있지 않다. 교사 개인에게 전가되어 온 민원·신고·분쟁 대응 부담을 학교·교육청·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책임지는 체계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교육활동보호국은 교사 대신 싸워주는 조직이 아니라, 교사가 혼자 싸우지 않도록 만드는 국가책임형 교육활동 보호체계의 상징이다. 서이초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서이초 사건 이후 정부는 교권 보호와 학부모 민원 대응을 위한 여러 대책을 추진해 왔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보호하기 위…
2026-08-05 10:00
‘딸깍’ AI 시대, 우리에게 ‘질문하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 “선생님, 그래서 정답이 뭐예요?” 교실에서 가장 흔히 들리는 질문 중 하나이다. “정해진 정답은 없으니 자유롭게 생각을 이야기해 보자”고 격려해도, 학생들은 여전히 교사의 입만 바라보며 ‘정해진 답’을 기다린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누구나 손가락 클릭 한 번, 이른바 ‘딸깍’하는 것만으로 AI 광고, AI 뉴스, 심지어 AI 책까지 손쉽게 만들어 내는 환경이 되었다. 이처럼 정보가 범람하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답을 찾아내고 있다. 하지만 AI가 제공한 정보가 정확한지, 다른 관점은 없는지, 혹은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깊이 고민하는 과정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AI 시대, 이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답을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를 판별하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질문하는 연습’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발맞추어 우리 학교는 올해 ‘질문하는 학교’로 선정되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실 안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아몬드와 함께한 비경쟁 독서토
2026-08-05 10:00
체육관 구석의 목소리에서 시작된 물음 체육교사로서 운동장 라인을 그리고, 공을 챙기며, 아이들과 부대끼는 삶은 늘 역동적이고 보람차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에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는 듯한 부채감이 존재해 왔다. 학기 초가 되면 어김없이 마주하게 되는 체육관 구석의 두려운 눈빛들 때문이다. “선생님, 어차피 운동 신경은 타고나는 거 아닌가요? 전 원래 몸치예요. 체육시간은 잘하는 애들만 신나는 시간인데, 굳이 힘들게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땀을 흘려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학생건강체력평가(PAPS)를 측정하는 날이면 고개를 숙인 채 위축되어 있던 아이들, 팀 스포츠 경기가 시작되면 실수하여 팀에 피해를 주지는 않을지, 공이 자기에게 오면 어쩌나 두려움에 눈을 피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한국 체육교육이 기능 중심, 교사 주도의 서열화된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아픈 단면이다. 팬데믹 이후 급격하게 확산된 비대면 문화는 아이들에게서 대면 소통과 협력의 기회를 앗아갔고, 이는 고스란히 학교 현장에서 신체 능력 저하와 사회적 고립, 정서적 불안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자기주도성
2026-08-05 10:00기획과 문제의 만남 기획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이 더 좋은 가치를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도모하는 인간 고유의 문제의식과 해결 본능이 어우러진 아날로그적 사고(思考) 작업이다(남충식). 기획에서 문제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규정하는 것이고, 문제 규정은 가장 창의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문제 규정은 기획 과정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문제의 정의는 문제 해결보다 훨씬 본질적이다. 문제 규정만 제대로 잘되면 해결책은 상식적으로 만들어진다. 기획력이란 한마디로 ‘어떻게 문제를 잘 찾고, 어떻게 해결책을 잘 발상할 수 있을까’의 게임이다. 문제는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문제를 잘못 찾거나 지나치게 많이 찾거나, 문제를 두리뭉실하게 규정하는 것 중 하나이다. 문제를 찾으려면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문제란 이상적인 목표와 그렇지 못한 현재 상태의 차이(gap)다. 문제란 이상과 현실의 괴리이고, 그 차이를 좁히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다. 문제의 본질을 찾는 방법은 심플하게 왜(why)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왜’란 질문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유발한다. 질문의 중요성과 관련된 사례를 소개
2026-08-05 10:00
프롤로그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지리 교사로서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장소 중 하나였다.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많은 지리 교과서에 실려 있는 그 사진이었다. 지면을 뚫고 치솟는 거대한 물기둥,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간헐천의 그 장면은 어린 시절부터 ‘언젠가는 직접 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으로 남아 있었다. 지구가 살아 숨 쉰다는 것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눈앞에서 체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행의 첫 번째 동기가 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장소 자체가 갖는 의미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1872년에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옐로스톤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보전이라는 철학이 처음으로 법제화된 장소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연을 개발과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시대에 이 땅만큼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결단이 어떤 풍경을 만들어 냈는지, 두 발로 걸으며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을 결정적으로 이끈 것은 아이들을 위한 주니어 레인저(Junior Ranger) 프로그램 워크북의 존재였다. 옐로스톤을 방문하기 전후로 꾸준히 접해 온 이 프로그램은 교육자로서 큰 영감…
2026-08-05 10:00
최근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학부모와의 관계다. ‘학부모’는 본래 학생의 보호자를 의미하지만,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이 단어는 종종 교권침해나 악성민원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되곤 한다. 현장에서는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라는 탄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오늘날의 학부모는 실제로 달라진 것일까? 달라졌다면 무엇이, 왜 달라진 것일까? 지금 필요한 것은, 현상의 표면 아래에 숨겨진 ‘요즘 학부모’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렌즈다. 이들의 정체성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학교가 나아가야 할 공존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 ‘밀레니얼 세대’ 학부모의 등장 오늘날 유·초·중등학교 학부모의 주축은 1980년대생과 1990년대 초반생을 아우르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다. 이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물질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세대다. 핵가족 환경에서 개인주의에 익숙해졌고,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초기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서 정보탐색 능력 또한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환경 속에 자란 요즘 학부모는 의문이 생기면 즉시 검색하고, 심지어 전문가의 말조차 검색을 통해 검…
2026-08-05 10:00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한 교사가 갑자기 아동학대로 신고되고, 교육활동 침해를 호소해 교권보호위원회를 신청한 뒤 다시 고소를 당한다. 한 번의 신고가 혐의없음으로 끝나도 항고와 재정신청, 다른 혐의를 덧붙인 고소가 이어진다. 그사이 교사는 수업을 멈추고 진술서를 쓰며, 병가를 내고 변호사를 찾아다닌다. 필자가 국회 토론회를 준비하며 보도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 이후 확인된 사건만 중복을 제외하고 15건이었다. 학교폭력 처리와 연동된 사례가 10건, 교권보호 절차 개시 뒤 신고가 제기된 사례가 9건이며, 두 유형이 겹친 사건도 4건이었다. 이는 공식 통계가 아니라 보도자료들로 선후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 사건군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9월부터 2026년 2월까지 교원을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 신고는 1,870건이었다. 이 가운데 수사가 종결된 993건의 90.4%(898건)가 입건 전 종결·혐의없음·불기소로 마무리됐다. 물론 무혐의가 곧 허위신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을 보호하고 선의의 신고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신고 가능성이 학교폭력 조치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작동하는 문제까지 외…
2026-08-05 10:00
올여름 전 세계 영화팬들이 가장 기다리는 영화 중 한 편은 누가 뭐라 해도 오디세이(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임에 틀림없다. 고대 그리스신화의 정수이자 현대 문학의 근간이 된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아에서 트로이 전쟁부터 함락 이후 오디세우스가 10년 동안 미지의 세계를 거쳐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웅장하고 장대한 서사시로 스크린에 그려냈다. 이번 ‘시네마 톡톡톡’에서는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포인트들과 함께, 그리스신화를 다룬 영화들도 함께 복습해 본다. 609km 분량 IMAX 필름에 담은 이탈리아·스코틀랜드의 광활한 자연 “영화감독으로서 아직 채워지지 않은 영화적 영역,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것들을 늘 찾게 된다. 내가 자라면서 봐온 수많은 신화적 영화가 있었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예산과 IMAX 스케일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게감과 진정성으로 구현된 신화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오디세이는 거대한 이야기이고, 정말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영화로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놀란 감독이 누구던가! 5분마다 기억을 잃는 남자가 아내의 복…
2026-08-05 10:00
변호사라는 직업 때문일까. 매일 같이 교권 침해로 고통받는 교원들의 연락을 받는다. 2023년 교권 5법의 개정이 있었고, 분명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현장이 힘든 건 여전하다. 교권 침해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인 말이 있는데, ‘그간 교사로서 노력과 삶 전체를 부정당한 것 같다’, ‘다시 예전처럼 회복될 수가 없다’라는 것이다.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도 크다. 그럼에도 교원들이 교권 침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권 침해에 대응하다가 오히려 더 괴롭힘을 당할까 두렵다’, ‘학생이나 보호자와 법적 다툼을 할 용기가 없고, 용기를 내더라도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도 않지 않냐’라는 이유다. 맞는 말이다. 지난한 교권 침해 처리 절차 끝에 침해 학생과 보호자에게 내려지는 행정적 조치들은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보호자에 의한 교권 침해는 재발 방지 서약이나 특별교육, 특별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부과되는 과태료 외에는 없다. 반면 교원은 학교라는 공공기관에 소속되어 있고 해당 학생을 여전히 관리해야 하는 이상 교권 침해 절차 이후 보복성으로 이어지는 민원들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으며, 심지어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2026-08-05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