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AI 시대, 우리에게 ‘질문하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
“선생님, 그래서 정답이 뭐예요?” 교실에서 가장 흔히 들리는 질문 중 하나이다. “정해진 정답은 없으니 자유롭게 생각을 이야기해 보자”고 격려해도, 학생들은 여전히 교사의 입만 바라보며 ‘정해진 답’을 기다린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누구나 손가락 클릭 한 번, 이른바 ‘딸깍’하는 것만으로 AI 광고, AI 뉴스, 심지어 AI 책까지 손쉽게 만들어 내는 환경이 되었다. 이처럼 정보가 범람하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답을 찾아내고 있다. 하지만 AI가 제공한 정보가 정확한지, 다른 관점은 없는지, 혹은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깊이 고민하는 과정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AI 시대, 이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답을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를 판별하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질문하는 연습’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발맞추어 우리 학교는 올해 ‘질문하는 학교’로 선정되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실 안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아몬드>와 함께한 비경쟁 독서토론 수업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올해 ‘인간과 심리’ 교양과목을 맡게 되었다. 사서교사로서 독서교육과 정보활용교육을 심리학에 적용해 보겠다는 취지였다. 본 글에서는 그중 독서교육의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학생들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심리학적 지식을 주체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를 활용한 비경쟁 독서토론 수업을 기획했다.
<아몬드>는 알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증)로 인해 감정을 느끼는 데 어려움을 겪는 소년 ‘윤재’가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심리 변화를 추적하며 청소년의 심리적 특징을 학습하고,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어, 심리학 이론을 실제 삶과 서사에 적용해 보는 질문 중심의 토론에 매우 적합하다. 이번 독서토론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 1단계 _ 책과의 첫 만남 및 독서 계획 수립
학생들은 먼저 <아몬드>의 표지와 서지사항(지은이·출판사·목차 등)을 꼼꼼히 살펴보며 책의 내용을 예측해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책을 어떻게 읽어 나갈지 주도적으로 독서 계획을 세우며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했다.
● 2단계 _ 질문 유형 학습과 ‘질문 만들기’
학생들은 책을 찬찬히 읽어 나가며 매 차시 자신만의 질문을 만들었다. 이때 사서교사로서 학생들이 올바른 질문을 생성할 수 있도록 질문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안내했다.
사실질문은 책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작가가 답하는 질문’이고, 확장질문은 책 속에 답이 없어 독자의 경험과 가치관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독자가 답하는 질문’임을 설명하며 독서토론을 위해서는 ‘확장질문’을 잘 만들어야 함을 강조했다.
● 3단계 _ ‘좋은 질문’ 공유
매 차시 학생들이 만든 확장질문 중, 깊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잘 만든 질문’들을 선정하여 수업시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정된 학생에게는 소소한 간식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곁들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가?”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었고, 가치 있는 질문을 만들기 위해 책을 더 깊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 4단계 _ 모둠 토론 및 ‘우리 반 최고의 질문’ 선정
충분히 질문이 쌓인 후, 학생들은 각자 만든 질문을 가지고 모둠별로 모였다. 모둠 내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질문을 만든 의도와 이를 통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서로 설명했다. 활발한 대화를 바탕으로 모둠원들은 가장 깊이 있게 토론해 보고 싶은 ‘모둠 대표 질문’을 하나씩 선정했다.
이후 각 모둠의 대표 질문들을 학급 전체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포스트잇을 활용해 공유된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적어 붙이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발표하며, 다각도로 의견을 나눴다. 수업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학급 전체의 논의를 거쳐 ‘우리 반 최고의 질문’을 최종적으로 하나 선정하며 활동을 마무리했다.

질문으로 생각의 문을 여는 학생들
질문 독서토론 과정은 필자가 학생들의 마음속 깊은 생각과 마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 장난꾸러기 학생이 던진 “감정을 느끼면서도 사건 현장을 방관하는 어른들과,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 중 과연 누가 괴물일까?”라는 질문에서는 학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뜻밖의 진지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평소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에 흥미가 없던 학생이 만든 “평범함의 기준은 무엇일까?”라는 질문 속에는 학생 스스로가 안고 있던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교사가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했을 때, 아이들은 비로소 생각의 문을 열었다. ‘왜?’, ‘정말 그럴까?’,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텍스트를 주체적으로 읽어내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학교 현장에서 끊임없이 ‘질문의 장’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