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교원문학상에 응모한 응모자수는 시 부문 91명, 동시 부문 37명으로 전체 교원수에 비하면 지극히 소수라 하겠다. 어쩌면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조차도 문학에 대한 관심도가 점차 옅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염려되었다. 그렇지만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전체적으로 작품 수준이 골랐으나 고르다는 그 점이 바로 문제점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개성적이지 못하고 평균적이라는 뜻으로, 문학은 ‘개성’에 많은 점수를 주지 ‘평균’에 많은 점수를 주진 않는다. 교실현장을 평면적으로 노래한 시, 여행지 풍경을 일차원적으로 묘사한 시, 감상적 추억담을 나열한 시, 일상을 정리한 일기풍의 시,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등과 같은 뻔한 교훈시, ‘삶의 향기’ 같은 상식적 기도시 등은 이번 심사를 통해 숙고해봐야 할 문제점이라고 생각되었다. 시 부문 당선작 ‘풍경의 살해(권영준)’는 군계일학이라고 할 정도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의 시에 의하면 카메라로 풍경을 찍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풍경을 살해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카메라로 찍은 풍경을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는 풍경의 존재가 살해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어
2009-12-24 11:04당선 소식을 받았다. 일단 기쁨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 무언지 모를 이유로 나는 며칠 동안 이 소식을 입안에 물고 우물거렸다. 학교에 당선 공문이 도착했다. 당선소감을 써 달라는 것인데, 무엇을 써야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 한편 쓰는 것보다 소감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닐 때가 있었다. 내면에 우울한 무기력이 창궐하여 시간을 생매장시키던 때가 있었다. 나는 반생을 그렇게 살았다. 산 자의 몸에서 나는 腐臭가 사라진 자의 소멸보다 지독하다고 느꼈을 때, 나는 썩어도 거름이 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 때 바싹 마른 나뭇잎 하나가 내 가슴을 건드리며 날아갔고, 나는 살고 싶었다. 火口의 재처럼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간절히 詩를 찾았고 시의 젖가슴을 더듬었다. 몸속의 죽은 꿈들에 새살이 돋기 시작하자 나의 별에도 따스한 봄이 몰려왔다. 생은 지독하게 허무했고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내일이 나를 담보해 주지 않을지언정, 오늘 나는 살아 눈 뜬 자가 되고 싶다. 한국교육신문사에 고마움을 전한다.
2009-12-24 11:01기억될만한 풍경이 스쳐 지난 후 다시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풍경은 이미 창백하게 숨져 있다 갓 피어난 저 꽃도 지금 스쳐 지나가는 저 사람도 좀 전의 그 꽃이 아니다 좀 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어느 공원에 가더라도 풍경의 목을 치는 자들이 있다 찰칵, 찰칵, 살아 숨쉬는 풍경의 숨통을 끊고 있다 아름다운 꽃과 단풍든 가을산, 화사한 웨딩드레스의 행복한 웃음의 육질이 예리한 시선의 렌즈에 떠져 액자에 걸리고 있다 사람들은 풍경을 도려내어 기억에 끼우고 풍경은 사물의 표정을 쉴새없이 베어 추억에 걸어둔다 이것이 시간이라 불리는 슬픈 통념임을 아는 자들은 풍경의 살해에 함부로 동참하지 않는다 시시각각 풍경은 새로 태어나 이미 죽은 꽃잎과 사랑을 속삭이며 시선의 칼날이 닿지 않는 먼 미래에 광속도로 이관된다 한때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쉼 없이 타오르던 풍경들아, 창백한 시간이 날(刀)이 너의 마지막 웃음을 베고 조용히 지나갈 때까지 아름다운 꽃잎 앞에 섣불리 무릎을 꿇지 마라 너는 다시는, 지금 스쳐 지나는 이 풍경을 보지 못한다
2009-12-24 11:00그 날 아버지께서는 깻단을 지고 마당에 들어서셨으며 어머니는 그것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들깨 향기가 배어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글짓기에서 상을 받은 초등학교 3학년 어느 저녁의 풍경입니다. 학교 가는 길은 멀었지만 아이들은 개미굴보다 더 많은 샛길을 만들어내었고, 모롱이 모롱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달아두었습니다. 청보리밭 둑을 지나면서는 풀피리를 불었고, 아무 곳에서나 신발을 벗어 던지기만 하면 바로 뛰어들 수 있는 개울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나무가 많은 숲길 그늘엔 보물인양 공깃돌을 파묻어 두었으며 홍시가 하늘을 메울 만큼 가득한 동네도 지나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샛길들이 모여드는 끝에 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학교에 들어서면 운동장 한켠에서 넉넉한 품으로 우리를 맞아주던 아름드리 노란 은행나무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엄마였고 이야기가 모여드는 우체통이었습니다. 묻어두기엔 아까워 하나 둘씩 끄집어낸 유년의 그림들이 어쭙잖게 시의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유년의 뜰을 마련해 주신 부모님, 나의 글을 읽고 함께 즐거워해 준 가족, 동심의 세계로 길을 내어주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 늘 힘이 되어주시는 동
2009-12-24 10:58내게 이런 우체통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시골에서 올라온 보따리에 딸려온 달팽이 한 마리 누군가 가지고 놀다 날개 부서진 잠자리 한 마리 냇가에서 잡아 와 잊어버린 다슬기들 그 우체통에만 넣으면 다시 제 곳으로 갈 수 있는 내게 그런 우체통 하나만 있었으면 참 좋겠다. 만약에 우표값 만큼만 데려갈 수 있다면 나는 얼마만큼의 기도를 올리면 될까?
2009-12-24 09:59강우방의 ‘한국미술의 탄생’은 문양학(文樣學)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한국미술의 정신적 위대성과 예술적 탁월성을 호방한 구도와 곰살궂은 솜씨로, 도해를 곁들여 서술한 책이다. 나아가 한국미술사의 원형을 고구려에 두고 여기서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오는 미술전통으로서의 영기문양을 구명하고, 동아시아 서아시아는 물론 세계미술사의 출발점을 한국미술사에서 모색하는 야심찬 기획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아야 합니다.” 저자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하면서, 예술 활동을 하듯이 감동으로 써나간 이 책의 결론에서 그는 말한다. “매일 매일 드라마가 일어난다. 너무 오래 지속되는 드라마여서 내 존재를 잊어버리고 세월을 잊어버리는 때가 많다.” 저자의 연구태만으로도 이 책에서 영기가 솟아난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존재의 이해와 자아성장을 도모하는 과정이다. 학생이 교사가 보여주는 삶의 자세를 배우고 지혜를 얻는 것처럼, 교사는 학생에게서 생명의 의지와 그 발양을 감지하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터득하게 된다.…
2009-12-03 15:00일본의 아주 오랜된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아주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AD712년 1월에 쓴 고사기에는『韓郷の島には是金銀あり』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내고향 한(韓)의 나라에는 금은보화가 있는 보물섬이 많다’라는 표현으로 조국에 대한 향수가 어려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반대로 AD720년 5월에 쓴 일본서기에는 똑같은 장소의 표현을『吾が児のしらす国に浮宝あらずは今だよからじ』로 ‘내 아들격인 신라국에 보물이 없다는 건 어린애도 다 아는 일’이란 뜻으로, 이제 한국에 대한 향수 따위는 다 버리라는 식의 강한 표현으로, 신라를 ‘아들나라’라고 까지 격하시킨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의 단군신화의 태백산 설화처럼, 일본도 천황이 내려온 성지에 대한 표현이 있는데, 이것도 두 사기가 전혀 다른 표현을 하고 있다. 먼저 고사기를 보면 『この地は韓国に向ひ笠沙の御前をまき通して朝日の直刺す国、夕日の日照る国なり. 故、この地はいと吉き地』로, 이는 니니기노미코토(일본의 국조신)가 고천원(高天原) 즉 하늘에서 다카치호봉(高千穂峰)으로 천손 강림할 때 한 말
2009-11-04 11:50독일에서 35년을 산 한국 여성. 건축사를 전공한 공학박사로, 물리학 박사인 독일인 남편과 두 아이를 가진 그녀는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아이가 세 살까지는 직접 키우겠다"며 남편과 함께 좋은 직장 그만뒀습니다. 복직한 뒤에도 출세보다는 가족을 우위에 두고 점심도 집에 와 먹는 남편을 두었습니다. 자동차의 나라 독일에서 자전거로 거리를 누비고, 난방기 대신 따뜻한 물주머니를 품고 긴긴 겨울을 납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생선을 먹는 것은 정작 생선에 의지해온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빼앗는 것 아니냐며 식탁에서 고등어까지 추방시킨 그녀의 삶을 당신은 “웬 궁상”이라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인생에서 돈 대신 시간을 선택했을 뿐이며, 나 하나 편하자고 환경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푸른숲)는 이런 그녀의 가족이 추구해온 '품위 있는 삶'의 기록입니다. 남의 시선에 이렇게 둔감한 그녀가 자식 교육이라고 예외를 두었을 리가 있을까요. 그녀는 '놀이가 최고의 학습'이라는 믿음으로 아이들의 성적은 묻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방목(放牧)'에 가깝지만, 난독증까지 있던 아이들은 그녀의
2009-11-03 16:21수학이 인류 문명의 개화와 결실에 엄청난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는 사실을 매우 실감나게 입증해주는 책이 모리스 클라인의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 Mathematics in Western Culture’이다. 클라인은 생애의 거의 절반을 뉴욕대학 수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학의 역사와 철학, 수학 교수법과 관련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고 수학의 대중화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클라인은 이 책을 통해 인류 역사의 한 거대한 단면으로, 그리스 사회조직과 연관해 출현한 연역법으로, 유클리드기하학의 형식과 절차에서 비롯된 이성의 힘으로, 자연에 대한 합리적 해석의 도구로, 로마인의 사고방식과 교회의 신비주의가 질식시킨 인류의 지성과 창조적 정신으로, 그리고 가톨릭의 주장과 충돌하며 결합하는 피타고라스의 물리적 세계의 근본으로 수학을 이해하도록 설명함으로써, 즉 문명의 형성과 발전 곳곳에 수학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설파함으로써,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수학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곧 인류 문명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자신의 수학관이다. 제법 오래전 어떤 사람이 나에게 “고등학교에서 배운 미적분이 어디에도 쓰이지 않는다. 수학을 정말 배워야…
2009-10-14 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