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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속 희망 찾기, 그 지난한 여정

대안을 쉽게 찾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교육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던 중에 학교를 다룬 도발적인 영화 한 편을 발견했다. 바로 작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클래스>다.


작년 모 공중파 방송에서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학생의 성취도가 대학 입시 하나로 평가받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대놓고 대학 입학을 강조’하는 드라마의 등장은 그리 놀랍지 않다. 도리어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현실을 잘 반영한, 영리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드라마를 보는 내내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재능도 취미도 다 다른 학생들이 오직 한 길, 대학에 목을 매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일까. 가치관이 형성되는 인생의 소중한 시기를 입시 경쟁에 바친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그렇게 해서 대학에 입학한 후에 그들의 인생 목표는 무엇이 될까. 대안을 찾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던 중에 학교를 다룬 도발적인 영화 한 편을 발견했다. 바로 작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클래스>다.


교육에 관한 도발적 질문
영화 <클래스> 한 상호작용과 다양한 시도로 완성된 영화에서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생동감과 현장감이 매순간 느껴진다.
그런데 <클래스>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런 외적인 형식이 아니다. 실제 교육현장을 리얼하게 담아낸 영화가 보여주는, 엉망진창인 교실 풍경이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도 학생들은 자기 일 하기에 바쁘다. 수업 시간에 떠든다고 핀잔하면 또박또박 대들고, 책을 읽어 보라고 하면 지금 책 읽을 기분이 아니라며 반항한다. 무력한 교사와 무례한 학생,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공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이런 풍경은 교육이 전 지구촌의 보편적 문제임을 체감하게 해준다.

로랑 감독은 교육 문제에 더해 프랑스의 사회적 과제인 인종문제를 학교로 옮겨와 고민의 장을 확대한다. 파리 교외의 삼류 중학교에 속한 프랑수아의 교실에선 말끝마다 대꾸하기를 즐겨하는 아랍계 여자아이, 불법체류자의 자녀인 중국인 남자아이, 다른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온 흑인 남자아이 등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학생들로 인해 여러 돌발 상황들이 벌어진다. 성, 인종, 계급별로 세심하게 대비된 인물들 간의 역학 관계는 이 작은 교실을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으로 만든다. “외국인 학생들이 프랑스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감독은 다문화, 다인종 국가로서의 프랑스가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생생한 교육현장 체험 소설 <클래스>
영화 <클래스>의 원작 소설 <클래스>는 질 높은 공교육 시스템으로 높게 평가받던 프랑스 교육의 실상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프랑스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설은 파리 빈민가의 모차르트 중학교를 배경으로 시니컬한 록 마니아 교사와 반항심 가득한 말썽꾸러기 학생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개학날 출근하기 싫어 앞으로 남은 수업일수를 따지는 주인공 교사는 졸업반인 3학년 담임을 맡게 된다. 대부분이 이민 가정 출신인 학생들의 학습 태도나 수준은 엉망진창이다. 주인공의 고충은 일 년 동안 계속되고, 다양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갖가지 사건 사고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말썽만 부리던 아이들은 때때로 천진난만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선생님은 사고뭉치에 반항이 일상화된 아이들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다. 저자인 프랑수아 베고도는 오해와 말다툼이 빈번한 사제관계,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웃음과 활기가 끊이지 않는 교실 풍경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 보인다. 본인이 파리의 한 중학교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재직하며 겪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완성한 만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학생들과 시니컬하고 무기력한 선생님이 벌이는 소동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프랑스의 생생한 교육현장을 솔직하게 묘사한 이야기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불안정한 교권, 반항하는 아이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교육 불평등 문제가 화두가 되는 요즘 세태에서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준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기 소설과 영화 <클래스>는 심각한 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무거운 주제의식으로 관객을 훈계하지 않는다. 냉정한 듯 무심한 카메라가 담아내는 대립과 갈등의 이면에서 예기치 않은 교감의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교과서에서는 ‘주체적인 인간’에 대해 배우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이 상존하는 한국 사회와 대비되어,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발언권을 주고,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일단 그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는 <클래스> 속 어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고민을 안겨 준다. 생소한 프랑스 교육시스템을 엿보는 것도 이 영화의 부가적인 재미다. 학생 평가를 담임이나 교과 담당 교사 홀로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함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참신하고, 그 자리에 학생 대표가 참석해서 얼마나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듯이 소통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교사 프랑수아의 오랜 인내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제 간에 쌓여온 앙금은 끝내 폭발하고 만다. 완벽할 수 없는 어른과 미성숙한 아이들이 섞여 있는 교실은 끓어서 넘치기 직전의 용광로와 같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찾아온 파국을 지켜보며 관객의 한숨은 늘어만 간다. 하지만 로랑 감독은 이런 용광로의 감정적 분출을 차단하면서 ‘있는 그대로’ 볼 것을 요구한다. 그저 무력한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교사와 학생이 어우러져 축구를 하는 운동장의 활기와 어지럽혀진 채 텅 빈 교실의 정적을 대비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제시하는 미래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영웅적인 선생님도, 어느 한순간 개과천선하는 학생도, 시스템의 변화도 없는 현실에서 <클래스>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토대로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섣불리 미래를 재단하지 않는 이 영화는, 지난한 기다림의 과정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조금씩 변화시킬 것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클래스>의 원제인 ‘벽 사이에서’처럼 그 구성원들에게 학교는 사방 벽으로 가로막힌 탈출구 없는 공간이다. “가르쳐봐야 알죠, 울화통 터지는 거”, “배워보면 알죠, 말 뿐이라는 거”. 영화 포스터의 카피처럼 이 시대의 교실은 소통 부재와 부조리한 시스템의 문제가 그대로 노출되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따라서 우리가 ‘미래의 희망’이라고 쉽게 말하는 아이들을 온전히 보듬는 일은 사회 공동체의 책임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과 부딪히며 인생을 경험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위해 현실을 저당 잡힌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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