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우리는 뚱뚱하고 게을러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던 판다 한 마리가 알고 보니 엄청난 쿵후 실력을 지닌 강호의 고수였다는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에 열광했다. 어마어마한 식탐에 운동 신경도 둔한 이 평범한 판다는 의외로 귀엽고 순수해서 정이 갈 뿐 아니라 몸을 혹사하는 수련 과정이 애처로움과 친근감을 불러일으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화려하게 등장해 강호를 재패한 ‘포’가 4년 만에 다시 귀환했다. 전편의 친숙한 목소리들과 함께 돌아온 포는 속편에서 어떤 모험담을 펼쳐 보일까.
<쿵푸팬더>, 소시민적 영웅의 탄생 삿갓을 쓴 판다가 하늘을 날아오른다. 한치의 빈틈없는 현란한 필살기에 수많은 적들은 사방으로 나가떨어진다. 하지만 눈을 비비고 나자 그것은 허무한 백일몽임이 드러난다. 잠에서 깬 판다는 비대한 몸을 뒤뚱거리며 주방으로 가 작은 앞치마를 두른다. 마음은 쿵후 고수를 꿈꾸지만 몸은 아버지의 국수가게에서 국수나 나르고 있는 판다 ‘포’(잭 블랙)는 늘 그렇듯 평범한 일상을 시작한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는 단순하고 상투적인 스토리의 한계를 활기차고 다양한 캐릭터와 창의적인 유머로 당당하게 극복해냈다. 주인공인 판다 포를 비롯해 쿵후의 권법을 응용해서 배치한 호권(호랑이), 후권(원숭이), 사권(뱀) 학권(학), 당랑권(사마귀)의 동물 캐릭터들은 무협장르의 팬뿐 아니라 어린이 관객들에게도 친근감을 안겨준다. 특히 포는 배우 잭 블랙의 코믹한 이미지와 혼연일체된 목소리 연기로 완벽한 시너지 작용을 해 귀여움 그 자체다. 뱃살을 출렁거리며 계단을 힘들게 오르고 엉뚱한 실수를 남발해도 낙천적인 성격과 능청스러운 넉살로 인해 도무지 미워할 수 없다. 판다와 쿵후, 한눈에 봐도 중국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쿵후하면 쉽게 떠올리는 소림사와 다양한 권법으로 무장한 무림 고수들이 출전하는 무술대회 등도 등장인물이 동물로 의인화되었을 뿐, 이 영화에서는 익숙하게 차용된다. 이미 성룡, 이연걸 등의 스타를 통해 친숙해진 무협 장르의 공식을 따르는 것은 물론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소림축구>식의 독특한 유머 코드가 더해져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포의 도전에 빠져들게 된다. 포는 어느 날 우연히 쿵후세계 최고의 비법이 적혀 있는 용 문서를 물려받을 후계자를 선발하는 대회에 구경삼아 들르게 된다. 그 자리에서 의도치 않게 덜컥 후계자로 뽑혀버린 포. 쿵후의 달인들인 ‘무적의 5인방’은 후계자 선정에 크게 반발하고,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타이그리스(안젤리나 졸리)가 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싸늘한 냉기가 감돈다. 이런 와중에 갖은 악행으로 감옥에 갇혔던 타이렁이 탈옥해 용 문서의 전수자는 자신이라며 거세게 도전해온다. 타이렁의 출현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마을에는 위기가 닥쳐오고, 무적의 5인방만으로는 타이렁을 상대하기가 벅찬 포는 단시간 내에 쿵후를 수련해 타이렁을 물리쳐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너구리 쿵후 스승 시푸(더스틴 호프먼)에 의해 맹훈련에 돌입한 포, 물렁거리는 뱃살에 파묻혀 뛰어다니기도 숨차하는 그에게 ‘단기속성 쿵후 달인되기’의 과정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쿵푸팬더>의 잔재미와 기발한 유머들은 포의 이 훈련 과정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시푸가 포의 식탐을 이용해 만두 먹기로 유연성 훈련을 시키는 등 포를 능숙하게 조련하는 에피소드들은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쿵푸팬더 2>, 긴박감 넘치는 액션 올 5월에 개봉한 <쿵푸팬더 2>는 전편에 비해 유머를 줄인 대신 포의 ‘내적 성장’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속편 역시 진정한 고수의 자리에 서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무협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고 있기에 여전히 친근하지만, 전편의 깨알 같은 잔재미를 기대한 관객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 아무리 진지해졌다고는 하나 포는 역시 포다! <쿵푸팬더 2>에서 종횡무진인 포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엉뚱하며 소심하지만 의외의 듬직한 면모도 선사한다. 1편에서 악당 타이렁을 물리치고 용의 전사가 된 포(잭 블랙)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다. 예전보다 국수 가게 일을 덜하고 훈련량이 늘었을 뿐, 여전히 한입에 만두 38개를 집어삼키는 식탐을 자랑한다. 달라진 점은 국수 가게에 포의 사진이 붙어 있고 그의 사인을 원하는 어린 쿵후 팬들이 늘었다는 것과 5인방과 함께 악당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2편에서 스승 시푸(더스틴 호프먼)는 포에게 ‘내면의 평화를 다스리라’는 과제를 주지만 ‘내면의 포만감’에만 관심 있는 포에게 이번 과제는 난공불락으로 보인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떨어지는 풀잎의 이슬을 정확히 가격해 강물로 흘려보내는 시푸의 폼을 따라해 보지만 흉내도 못 낼 지경이다. 그러던 중에 악당 ‘셴’(게리 올드먼) 일당이 평화의 계곡에 쳐들어와 무기 재료로 쓰일 쇠붙이들을 죄다 훔쳐가고,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셴에게 포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전편과 차별화되는 2편의 가장 큰 흥행요소는 스케일과 내용면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액션 장면이다. 중국 정복을 꿈꾸는 백색 공작새 셴은 쿵후 고수들을 제거하기 위해 지하의 비밀 기지에서 신무기를 개발 중이다.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지하 공장에서 엄청난 수의 늑대들이 무기를 생산하는 모습은 흡사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악당 사루만의 지하 세계를 연상케 한다. 포와 셴 일당이 좁은 시장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는 추격신은 긴박감이 넘치고, 바다에서 펼쳐지는 포와 셴 의 마지막의 대결은 마치 영화 <적벽대전>을 패러디한 듯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진화한 영웅의 성장스토리 <쿵푸팬더> 1편에서 포의 훈련 과정에 버금가게 눈길을 붙잡는 에피소드는 타이렁과의 대결 장면이다. 스승 시푸와 무적의 5인방이 선보이는 화려한 필살기는 어린이 쿵후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며, 결국 다 나가떨어지고 포와 타이렁과의 최후의 대결만 남게 된 상황은 극적 긴장감을 조성한다.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액션 장면과 악의 세력은 2편에서 더 화려하고 거대해졌지만 경쾌하고 아기자기한 손맛이 느껴지는 액션은 줄어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2편에 새로 추가된 캐릭터인 셴에게선 악당의 비열함이 뿜어져 나오고 점쟁이 할멈 역을 맡은 양자경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에 비해 시푸와 5인방의 역할이 축소되고 포의 심리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부분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만한 지점이다. 영웅의 고독한 내적 성장을 그리는 ‘히어로물’에 근접한 2편의 내용은 단순 명랑한 포의 성격과는 동떨어져 보이지만 진정한 영웅의 성장스토리에서 내적 갈등과 정신적 성숙은 필수적인 요소다. 따라서 2편에서 보이는 포의 고민은 제작진들이 1편과의 차별화 지점을 찾고 포라는 캐릭터의 발전사를 그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포석으로 보인다. 그렇게 2편에서 내세우는 비장의 무기는 내면의 평화를 찾는 과제의 출발점이기도 한 포의 ‘출생의 비밀’이다. 판다인 포가 어째서 거위 아빠와 살게 되었는지등의 내막들이 한 꺼풀씩 드러난다. 어린이 관객을 염두에 둔 만큼 ‘출생의 비밀’에 얽힌 스토리는 예측 가능한 흐름을 따라가지만, 흥미진진한 코드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동글동글한 아기 포의 귀여운 모습은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하고 자신이 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포를 다독이는 거위 아빠의 부정은 애틋하다. <쿵푸팬더 2>가 선사하는 마지막 선물은 바로 3편에 대한 깜짝 예고이다. 포의 친 아빠의 등장을 암시하는 마지막 신을 통해 3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제작진의 애교가 2편에 대한 아쉬움을 다소나마 달래준다. 영화 <쿵푸팬더>는 잘 만든 캐릭터 하나가 다양한 이야기의 변주를 통해 충분히 롱런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3편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외국 애니메이션 그림체보다 월등히 아름다운 국산 애니메이션들이 빈약한 소재, 창의적이지 못한 캐릭터와 스토리로 인해 맥을 못 추는 현실이 문득 안타깝게 여겨진다. 국산 애니메이션, 그들의 선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