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축축 처지는 날씨,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 앞에서 아이들이 교복 단추를 풀어헤치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지도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소금에 절인 배춧잎마냥 늘어진다. 딱딱한 교실, 이곳은 이 나라 청소년들의 사춘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소름처럼 여드름이 송송 나는 고교시절까지 남자 아이들은 주체할 수 없는 기운을 교실과 먼지 폴폴 나는 작은 운동장에서 보낸다.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 5, 6학년이면 가슴은 봉긋하게 올라온다. 중고 시절을 보내면서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성숙한 몸, 아직 덜 성숙된 마음, 그 속에서 아이들은 우정을 쌓고, 이성에 또는 사랑에 눈을 뜨기도 한다. 때론 또래 친구들과 관계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여러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호기심 천국, 고민의 천국, 웬 천국타령 하겠지만 이게 아이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 행복해 하기도 하고 우울해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문제에 고민을 한다. 그러한 고민을 친구에게, 부모에게, 때론 선생님에게 털어놓고 상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
“왜 우리가 미친 소를 수입해야 합니까? 누구 맘대로 대통령은 우리들에게 미친 소를 먹이려 합니까? 나나 여러분은 머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죽기 싫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런 소를 먹으라고 합니다. 아무 염려 없으니 먹으라고 합니다. 값도 싸고 질도 좋으니 먹으라고 선전합니다. 대통령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업자입니까. 왜 남의 미친 소 광고를 해줍니까?” 학교에서 행하는 ‘나의 주장 발표대회’에서 한 아이가 ‘왜 우리가 미친 소를 수입한 것을 먹어야 하느냐’라고 반문합니다. 그러면서 일부 사람들이 ‘소고기? 그거 안 먹으면 되지’ 하고 있다며 잘못된 어른들의 생각들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사실과 대책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소고기는 무조건 안전하다’라는 말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학교에선 해마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대회를 엽니다. 이번엔 유난히 광우병과 관련된 소고기 수입문제와 독도와 관련된 주장이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두발자유화나 학교폭력, 성문제 같은 주장들도 가감 없이 나왔지만 작금의 현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최고의 대화거리는 미국산 소 수입과 관련한 촛불집회입니다. 많
“선생님, 죄송해요. 뵐 면목이 없어요.” 선아(가명)는 날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떨군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기 왜 또 왔어. 다신 안 온다고 약속했잖아. 내가 너희들 땜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없어.” “죄송해요. 약속 어겨서….” 선아라는 아이는 2학년 때 우리 반 아이다. 2학년 때도 흡연 때문에 학생부에 불려가곤 했었다. 그러던 녀석이 3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문제로 걸려 들어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또 화장실에서 흡연을 하다 적발되어 학생부실에 온 것이다. 선아는 착한 꾸러기다. 난 이 아이를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자꾸 흡연 때문에 학생부 출입이 잦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 달 전에도 적발되어 요즘 한의원에 의뢰하여 금연침을 맞고 있는 중이었다. 이때 나하고 약속한 게 있었다. 이번 기회에 담배를 피우지 않을 거고, 금연침 10회를 맞은 다음엔 밥을 함께 먹기로 했다. 기운이 빠진 녀석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해 저녁을 사주기로 한 것이다. 선생님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실망이에요 5월 초쯤이다. 무엇 때문인지 녀석은 혼나고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나 또한 ‘너 자꾸 말썽 피울래.’ 하고 약간 목소리를 높
모래 속에, 진흙 속에 감춰져 있다 어느 날 물결에 쓸려 모습을 드러내는 사금파리라는 존재를 참 좋아한다. 부드러운 흙이 옹기장이나 도공의 손에 의해 사발이 되고, 고급스런 자기가 되었다 자의반타의반으로 부숴져 조각이 되어 버린 사금파리 한 조각. 조각난 상처 속엔 생명이 숨 쉬듯 무언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난 여행을 떠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어 부안 줄포의 다리 밑에서 두루미 아저씨와 살고 있는 목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과거 속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현재를 거닐게 되었다. 먼 과거의 이야기이면서도 현재의 일인 양 생생하다. 은 도공의 이야기이다. 장인 정신이 투철한 도공 민 영감과 목이, 그리고 두루미 아저씨의 삶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과거의 시공간을 뛰어 넘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며 감동의 여행을 떠나게 한다. 그 여행을 한 번 떠나 보자. 남의 것을 빌어먹으나 빌어먹지 않은 목이와 두루미 아저씨. 자신의 작품에 온 혼을 불어 넣고 최고의 고려청자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도공 민 영감. 이들과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는 즐거움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내내 여운으로 남았다. 목이는 역병으로 부모를 잃고 절에 맡겨지
초록의 풀 냄새가 교실창문을 타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5월의 냄새이다. 5월의 냄새, 5월은 신록의 향기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디맑은 미소도 있고, 세파에 주름살 깊게 패인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부모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을 잊은 채 살아간다. 늘 관심을 받고 있으면서도 관심을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기처럼 말이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종요로운 것이 공기(산소)이면서도 우리는 그 공기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항상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부모는 공기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이들(학생)과 이야길 나누다보면 의외로 부모에 대한 안 좋은 감정들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엄마는 나 싫어해요.’ ‘우리 아빠하고 이야기 한 적이 거의 없어요. 혼내기만 해요.’ 엄마나 아빠가 사랑스런 이유 20가지를 써보자고 할 때도 아이들 몇몇은 노골적으로 투덜대기도 했다. 왜 엉뚱한 짓을 하려고 하여 우리들을 괴롭히려고 하느냐는 의미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한 번 써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설득했다. 그리
목포에서 배를 타고 5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저녁 어스름 속에 한 섬이 보입니다. 탐라 제주도입니다. 2시 30분에 출항하는 배를 탔으니 도착시간은 7시 30분입니다. 함께 간 동료들과 배안에서 복분자 한 잔 했습니다. 파도에 흔들거리는 선실에서 잠 한숨 자고 책을 읽었습니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라는 책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읽을 만한 책으론 바다이야기와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기록한 글이 제격이라 생각하여 배낭 속에 넣어두었던 것입니다. 한라산 등반. 이게 제주에 간 목적입니다. 작년부터 몇몇 사람이 계획했던 것인데 실행엔 옮겼으나 결국 등반은 하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함께 간 동료 한 사람이 몸살에 배탈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 셈이지요. 대신 편하게 가볼만한 곳으로 몇 군데 들러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제주 제주에 대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딱 두 번 있습니다. 10여 년 전 겨울과 7.8년 전 우연찮게 들렀던 주상절리입니다. 10여 년 전 그해 겨울은 눈이 참 많이 왔던 것 같습니다. 아침, 숙소에서 창문을 열고 바라본 밖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
사라져가는 것은 노을처럼 아름답다. 사라진 뒤의 애잔한 흔적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아픔이 되기도 한다. 다시 아픔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추억이 되어 우리 가슴 속에서 늘 숨을 쉰다. 간이역. 기차가 멈춰버린 간이역도 사라져가는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애잔한 추억을 남기고 간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라진다는 것은 추억 이전의 쓸쓸함이다. 늦가을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같은 쓸쓸함이 묻어있다. 또한 아픔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있다. 얼마 후면 문을 닫아야 하는 간이역인 ‘반달역’에도 이런 아픔과 쓸쓸함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부자도 아니다. 젊은이의 힘참도 없다. 간이역처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죽어가는 그림이 할아버지와 그림이, 반달역을 끝까지 지키는 반달역 아저씨, 늘 술에 취해 사는 늙은 총각인 순명이 아저씨가 반달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다. 그림이는 갓난아기 때 반달역에 버려진 아이 이름이다. 버려질 때 종이에 아기 얼굴이 그려져 있어 ‘그림이’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그 그림이을 할아버지가 키우고 있다. 할아버진 그림이를 키우며 열아홉에 칙칙한 시골 동네가 싫다고 떠나가 소식조차 없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초등
아침 일찍부터 젊은 교사들이 운동장에 만국기를 달아놓느라 여념이 없다. 운동장과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만국기를 바라보려니 초등학교 코흘리개 시절이 물안개처럼 떠오른다. 요즘은 초중고 체육대회에서 만국기가 펄럭이는 학교가 많지 않지만 예전엔 꼭 만국기가 운동장이 꽉 차도록 주렁주렁 박넝쿨처럼 걸려있었다. 머리에 청군 백군 머리띠를 하고 학교에 가면 언제나 하늘을 수놓은 만국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각 국기가 어느 나라의 국기인지는 모르지만 그 다양한 색깔만으로 운동회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어린 우리들은 참새떼처럼 조잘대며 닿지도 않은 만국기를 만지기 위해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뛰어다녔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만국기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운동회란 이름이 체육대회란 이름으로 바뀌었듯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엔 맨 운동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근래 들어 체육대회 때 만국기를 다는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우리학교도 그 만국기가 걸린 것이다. 고등학교 체육대회에 웬 만국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모두들 좋아한다. 아이들은 체육대회 분위가가 나서 좋아하고, 나이 먹은 우리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아한다. 체육대회는 하나의 경쟁이며 놀이
5일 만에 본 아이들이(학생) 갑자기 달려들며 모여들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큰일 났어요" "우리 죽어요"이다. "선생님, 저 죽어요. 어떡해요." "무슨 소리야. 왜 죽어?" "모르세요. 우리 광우병 걸려 죽어요. 저 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을래요." "맞아요. 롯데, 농심, 크리스피, 햄버거 이런 거 먹으면 이제 안 돼요. 선생님도 먹지 마세요." 이젠 주변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달려들어 쇠고기 수입에 따른 열변을 쏟아놓는다. 어떤 아이들은 오는 17일에 항의하러 서울에 갈 거라며 한 술 더 뜬다. 다 큰 녀석들이 어린아이마냥 말하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쏟아내는 이야기를 쑥 듣고 있으려니 속은 차 있다. 며칠 만에 본 아이들은 예전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예전엔 사회의 어떤 현안이 생겨도 나몰라라 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이번엔 아니다. 조금 과장된 생각들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 표출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현 정부가 내놓은 여러 정책들에 대한 불만도 가감 없이 쏟아냈다. 0교시 수업, 우열반 수업, 학원자율화에 따른 학교의 학원화에 대해서 별 말이 없던 아이들이 갑자기 쇠고기 수입을 계기로 한반도 대운하까지 들먹이며 모든 불만들을 퍼붓고
일요일. 아이들과 함께 구례로 향했다. 여름 날씨마냥 햇볕은 뜨겁다. 남원은 춘향제로 흥청거리지만 우리는 곧바로 구례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북적거림을 벗어나 한가로움을 맛 보기 위해서였다. 구례에 들어섰다. 노란 산수유 꽃으로 수놓아졌던 길가엔 꽃의 흔적은 사라지고 녹음을 드러낸 이파리만 길손을 맞이한다. 구례에서 연곡사, 쌍계사, 하동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토지면 들녘이 보인다. 들판 여기저기에 고추모종과 양파가 심어져있다. 들녘 곳곳에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농부들이 눈에 띈다. 지금 농촌은 농사준비에 바쁘다. 이 바쁜 기간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잠시뿐이다. 하동 방면으로 길을 잡다 보면 운조루라는 글귀가 보인다. 이를 따라 가면 운조루가 나온다. 운조루가 있는 오미리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구불구불한 고샅길은 잘 정돈되어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운조루 앞에 한 할아버지가 구기자와 땅콩 쥐포와 약초 몇 가지를 놓고 팔고 있다. 동네분이다. 차에서 내리자 할머니 한 분이 소쿠리에 미나리를 가득 담은 것을 가지고 다가오더니 옆에 있는 분에게 사라한다. 그 많은 것이 삼천 원이라 한다. 직접 농사지
요즘 우리 교육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선 연하여 새로운 것들을 쏟아내는데 관련단체나 시민단체들의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막 쏟아내고 있다. 내놓은 정책들의 면면을 보면 모든 초점이 경제성과 효율성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의 눈엔 아이들의 성적만 보일뿐 아이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만 살리고 돈만 벌게 하면 모든 정책이 성공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이들도 높은 성적을 올리기만 하면 모든 교육정책은 성공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돈과 성적만 보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그저 답답하고 답답하여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교실 속에 있는 아이들은 입버릇처럼 외쳐댄다. 벌레가 아닌 사람이길 원한다고. 쉬는 날 쉬고 싶고 공부하는 날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인문계 학생들에게 토요일은 사라진지 오래다. 평일엔 지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깜깜한 교문을 공부의 멍에를 메고 나선다. 교문을 나선다고 그들이 쉴 곳은 없다. 다시 학원을 가거나 독서실로 향한다. 집에 들어와 잠드는 시간은 빨라야 새벽 한 시다. 잠 잘 시간이 없다
역모인가? 음모인가? 어떤 이는 역모라고 하고 어떤 이는 음모라고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실체는 미로의 실타래도 아닌 깊은 미궁 속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1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기축옥사’의 주인공인 정여립를 두고 한 말이다. 정여립.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인 1589년 그는 역모 죄로 죽임을 당했다. 자살했다는 말도 있고 살해당한 뒤 자살로 위장했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조선 최대의 역적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기록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 하나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옥사가 끝나고 호남은 반역의 땅으로 지목되었다. 그리고 연좌제로 인해 호남의 사림은 몰락했다. 호남의 인물은 모두 정여립과 눈길만 스쳤다는 고변만 있어도 모두 죽임을 당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 눈물을 흘린 것을 두고 정여립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죄목을 쐬어 죽이기도 했다. 단순히 이웃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집단 죽임을 당했다. 조선은 피의 광풍이 몰아쳤고, 죄 없는 수많은 선비와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다. 비밀장계 한 장과 기축옥사 그리고 피바람 1589년 음력 10월 2일, 한 장의 장계가 조정에 당도한다. 황해감사
예술에도 생애가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흥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도 있다. 우리의 소리인 판소리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판소리를 모르는 이는 없다. 노래는 몰라도 '판소리'란 이름은 알고 있고 소리꾼들의 노래를 어디서든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소리는 모른다. 춘향이와 심청이는 알아도 그 노래는 모른다. 어렵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소리인 판소리가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던 시기를 뽑으라 하면 19세기부터 20세기 초가 아닌가 싶다. 이때 권삼득, 송흥록, 이날치, 김세종, 박유전, 정정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창들이 나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민중은 그들의 소리에 울고 웃으며 흥겨운 몸짓을 함께했다. 그런 판소리가 이젠 대중들에게 어렵고 먼 소리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판소리 발생 초기엔 쉽고 이해하기 쉬어 대중적인 음악으로 보편성을 띠었다. 그러다 점차 양반들이 향유하게 되고 왕실까지 판소리를 향유하면서 전차 어려워지기도 하고 예술성도 가미되면서 대중들로부터 멀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우리 판소리는 대중의 시대를 지나고 상실의 시대를 넘어 세계무
교정 이곳저곳에서 꽃들이 활짝 웃고 있다. 나중에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되는 앵두꽃도 흰 눈망울을 내밀었고, 치마 입은 여자아이들로 하여금 나무를 타도록 유혹하는 살구나무에도 이른 벌들이 잉잉거리며 향을 즐긴다. 피어나는 봄은 아이들 마음속에 들어가 바람이 된다. 나근나근한 바람이 되기도 하고, 간질간질한 바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 치마폭은 짧아지고 아이들 얼굴은 화사해진다. 봄바람이 든 것이다. 지금 3학년인 은미(가명)이도 그랬다. 지난 2년 동안 바람이 잔뜩 들어 늘 혼나기만 했다. 2학년 첫 수업 시간 은미는 화사한 얼굴을 하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통통한 볼은 불만이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마주쳤을 때 은미는 심드렁하게 날 바라보았다.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이는 자주 자리를 비웠다. 며칠 째 결석을 하든가 여러 가지 문제로 학생부에 불려갔다는 것이다. 자리를 자주 비우면서 아이는 한 마디로 문제성 있는 꾸러기로 찍힘을 당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내 눈에는 그 아이가 예뻐 보였다. 얼굴을 볼 때마다 복도건 교실에서건 짧게, 짧게 이야기를 했다. 또 수업 들어가 보이지 않으면 “
7시 20분. 출근준비를 서두르는데 손전화기가 삐리릭 울린다. 또 어떤 녀석이 차를 놓쳐 늦게 온다든가, 아니면 몸이 안 좋아 병원에 들렀다 온다든가 하는 문자이겠지 하고 내용을 확인하다 가슴이 철렁한 내용을 보았다. “00병원부상자 왕00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로 통보해드립니다. 새벽(4:31) 사망추정” 갑자기 웬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인가. 00은 어제까지만 해도 교실에서 웃고 떠들고 함께 장난치던 녀석 아닌가. 근데 갑자기 사망 소식이라니. 아내에게 문자를 보여주며 “얘, 우리 반 아이인데 죽었다는 문자 왔어. 그럴 리가 없는데 말야.” 했더니 아내는 혹시 어디 아팠던 건 아니냐, 사고 난 건 아니냐 하며 오히려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속으로 아니다 싶어 하면서도 돈과 지갑을 챙겨들고 평상시 입었던 옷마저 갈아입고 자동차 키를 들고 집에서 나왔다.(평상시 출근할 때 걸어 다님.) 집을 나서며 손전화기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통화 불능이다. 그런데 사건(?)은 우습게 해결되었다. 교문에 들어서며 아이들이 조잘대는 소리가 들리는데 “야, 오늘 4교시 한다며?” “히히, 난 오늘 우리 담쌤한테 시체문자 보냈다.” 한다. 그 녀석의 ‘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