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구체적 모습 정성스러운 자는 힘쓰지 않아도 적중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답을 알아내며, 언제 어디서나 차분하고 침착하게 ‘중도(中道)’를 걸으니 바로 ‘성인(聖人)’이시다. 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정성스러움(誠)’이란 말(言)을 반드시 실천하여 이루는(成) 것을 말합니다. 늘 올바른 말을 하고 그 말을 반드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바로 ‘성인(聖人)’입니다. 그래서 중용은 ‘정성스러움(誠)’과 ‘성스러움(聖)’을 하나로 봅니다. 우주자연만이 늘 그 법칙(言)대로 묵묵히 실천하여 이루어(成) 갑니다. 자신이 품은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존재가 바로 우주자연입니다. 이런 우주자연을 닮아서 늘 공명정대한 ‘선(善)’을 그 뜻에 품고 말하며(言), 이를 반드시 실천하여 이루는(成) 존재가 바로 ‘최고의 인간’, ‘성인’입니다. 그래서 중용은 우주자연과 하나가 된 ‘성인’을, 생각하지 않아도 ‘선’을 명확히 알고, 언제 어디서나 ‘중도(中道)’를 걷는 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용은 ‘선과 악’을 균형과 불균형, 조화와 부조화로 봅니다. 과하거나 모자람 없이 균형이 잘 잡힌 조화로운 상태를 ‘선’이라고 하며, 반대로 과하거나 모자라서 치우쳐 조화롭지
양심을 따르는 삶을 살라 ‘도(道)’와 ‘덕(德)’에 머물며 이를 잘 지키는 자는 한때에 적막할 뿐이나, 권력과 세력에 의지하고 아첨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 통달한 사람은 사물 밖의 물건을 보며 이 몸뚱이 뒤의 몸뚱이를 생각하여, 차라리 한때의 적막함을 받을지언정 절대로 만고의 처량함을 취하지 않는다. 棲守道德者 寂寞一時 依阿權勢者 凄凉萬古 達人觀物外之物 思身後之身 寧受一時之寂寞 毋取萬古之凄凉 인간이 걸어야 할 길, 도(道) ‘도(道)’란 ‘머리(首)’로 밝게 헤아려야만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길’을 말하니, 우주는 물론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따라 걸어야만 하는 ‘자연의 길’을 말합니다. 자연의 길은 ❶ 낳음(生) ❷ 기름(長) ❸ 거둠(收) ❹ 저장(藏)과, 이 4가지가 쉬지 않고 굴러가는 ❺ 성실(誠)의 원리에 불과합니다. 우주는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팽창이 있으면 수축이 있어서 늘 음양의 균형이 알맞게 일진일퇴하며 돌아갑니다.[PART VIEW] 그래서 우주 자체를 포함하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은, 이러한 원리의 지배를 받습니다. 4계절도 바로 이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 안자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사랑(仁)’을 잘 실천했다고 평가받는 제자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안자’입니다.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늘 공자에게 칭찬만 받았던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애공(哀公)이 제자 중에 누가 제일 학문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공자님께서 대답하시길 “안회라는 이가 학문을 좋아하였습니다. 분노에 물들지 않았으며 허물을 두 번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 단명하여 요절하였습니다. 이제는 없으니 학문을 좋아하는 자를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셨다.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논어 ‘옹야(雍也)’) 안자(안회)는 공자가 평가하는 제자 중 가장 학문을 좋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한 위대한 학자였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안자에 대해 “내가 안회와 더불어 온종일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내말을 조금도 어기지 않아 마치 어리석은 바보와 같았다. 그런데 물러나서 개인적으로 지내는 것을 살펴보니, 또한 충분히 내 뜻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회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논어 ‘위정(爲政)’)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안자의 요절에 대해 공
경(敬), 마음챙김의 중요성 학자는 모름지기 항상 ‘경(敬, 마음을 하나로 모음)’을 주로 하여 경각이라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일을 처리해야 할 때에는 정신을 집중하여 깨어있으면서, 마땅히 머물러야 할 데에 머무를 수 있어야 한다. 學者須是恒主於敬 頃刻不忘 遇事主一 各止於當止 이율곡은 자신의 마음을 모아서 학문을 완성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 ‘마음챙김(敬)’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경각’ 즉 아주 잠깐의 순간이라도 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모든 일을 ‘마음’으로 처리합니다. 일을 처리할 때나 공부를 할 때나 아무 일이 없이 쉴 때나 모두 마음을 활용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니 ‘마음챙김’은 공부는 물론 모든 일상생활을 바르게 영위하기 위한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모으지 않고 되는 일은 없으니, 모든 일에 마음을 모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PART VIEW] 마음은 ‘순간순간 변화하는 생각의 다발’일 뿐입니다. 이러한 복잡한 생각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손쉬운 방법은 바로 마음의 대상을 한 가지로 몰아가는 것, 즉 한 가지 대상만을 주시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대상이 하나로 모아지면 마음은 하나로 통일되고 잡념이 사라지면서 맑고
맹자가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 공손추 : 감히 묻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디에 장점이 있으신지요? 맹자 : 나는 남의 말을 알고,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 敢問夫子惡乎長 曰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맹자는 늘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을 꿈꿔왔던 철학자이며, 늘 ‘지혜(知)’와 ‘사랑(仁)’이 성인의 덕목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왜 자신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 남의 말을 잘 앎(知言)과 호연지기를 잘 기름(善養吾浩然之氣)을 자랑했던 것일까요? 여기에 성인이 되는 힌트가 숨어있습니다.[PART VIEW] 맹자는 남의 말을 들을 때 선악을 정확히 판별할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를 계발한 실증’입니다. 그리고 늘 양심대로 살았기에 당당하고 떳떳한 ‘도덕적 에너지’인 호연지기가 충만했던 것입니다.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 바로 ‘덕성을 계발한 실증’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증명될 수 있을 때 학문은 온전해지는 것이니 맹자는 추상적 이론보다 실증을 더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대는 실제로 남의 말을 들을 때 선악이 판단 되며, 온몸에 호연지기가 충만한가? 나는 늘 이것을 잘 배양해왔도다!” 이것이 맹자가 전하고 싶었던 말일 것입니다. 호연지
선한 마음을 이룬 뒤에 지식을 습득하라 마음자리가 청정해진 뒤에 비로소 책을 읽고 옛 것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한 행실을 보면 그것을 훔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선한 말을 들으면 그것을 꾸어다 자신의 단점을 가린다. 이것은 또한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는 것이요, 도적에게 식량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마음이 순수하지 않은데 지식만을 습득하다면 참으로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재능’이 클수록 더욱 ‘큰 악’을 저질러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능이 적으면 큰 악을 저지르기 힘듭니다. 그러니 재능의 방향타가 될 ‘인성’이야말로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PART VIEW] 언제나 우리 마음에 훤히 빛나고 있는 양심 마음자리가 청정하다는 것은 우리의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는 마음인 ‘양심’을 각성하고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내면에는 언제나 이 순수한 마음이 훤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마음을 인식하지 못하며 이 마음을 따르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무리 욕망에 휘둘리고 온갖 추잡스러운 생각에 시달릴지라도, 내면의 순수한 양심은 단 한 순간도 오염되지 않고 늘 광명한 빛을 뿜어내
독서의 3가지 원칙 주자의 독서에 대한 가르침은 주자어류(朱子語類)의 ‘독서(讀書)’에 잘 실려 있습니다. 주자어류는 주자학자인 여정덕(黎靖德)이 주자와 그 제자들 사이에 행해졌던 문답을 기록한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선조 8년(1575)에 처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이후로 주자어류는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등 수많은 조선 선비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주자어류에서는 ‘독서의 3가지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글을 볼 때는 ① 조금씩 보면서 숙독하고 ② 자기주장을 세우려 하지 않고 단지 반복하여 체험하며 ③ 머리를 처박고 이해하되 미리 효과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 3가지 원칙을 항상 지켜야 한다. 太凡看文字 少看熟讀 一也 不要鑽硏立說 但要反覆體驗 二也 埋頭理會 不要求效 三也 三者 學者當守此 [PART VIEW] 독서는 ① 조금씩 익숙하게 보아야 하며 ② 선입견을 세우지 말고 저자의 뜻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어야 하며 ③ 몰입하여 과정을 즐기며 읽어야 합니다. 이 3가지 원칙이 지켜질 때 훌륭한 독서가 이루어지며, 독서를 통해 무한한 영감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조금씩 숙독하라 무엇보다 독서는 많은 양을
‘학문’은 과연 즐거운 취미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동양 최고의 고전인 논어는 공자(孔子)가 학문의 즐거움에 대해 노래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공자가 생각한 학문은 너무도 기쁘고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학문’이야 말로 최고의 취미이며, 학문의 재미가 무엇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교육의 많은 문제는 이 ‘학문의 즐거움’을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서로 공유할 수 없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공자의 가르침으로 학문의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논어의 핵심이 되는 구절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방문하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라고 하셨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PART VIEW] 이 구절은 논어의 맨 첫 구절로서, 논어 전체의 핵심이 되는 구절입니다.[PART VIEW] 이 구절의 핵심 내용은 바로 ‘학문의 즐거움’입니다. 공자는 이 구절에서 3가지로 학문의 즐거움에 대해 설명합니다. ❶첫째는 바로 스스로 학문을 익히는 즐거움에 대한 노래입니다.
소학과 대학 동양 고대의 초등·중등 교육기관인 ‘소학’은 8세에서 14세의 아이들이 입학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이때 교육과정은 크게 6가지로 전해집니다. 바로 ‘육예 (六藝)’라고 하는 것인데요. ❶ 예절(예, 禮) ❷ 음악(악, 樂) ❸ 활쏘기(사, 射) ❹ 말 타기(어, 御) ❺ 글자의 원리(서, 書) ❻ 수학(수, 數)의 6가지 과목이 그것입니다. 이 중 ❶~❷는 ‘덕성 교육’에 해당하며, ❸~❹는 ‘체육 교육’에 해당하고, ❺~❻은 ‘지혜 교육’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6가지 과목을 통해 ‘지덕체’를 고루 배양하는 것이 ‘소학과정’입니다. 이렇게 ‘지덕체’의 기본적인 소양교육을 마친 학생 중에 왕이나 귀족의 자녀, 혹 뛰어난 인재가 15세 이상 혹 20세 이상에 진학하여 배우던 고등 교육기관이 바로 ‘태학’입니다. 중국에만 있던 교육기관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고대부터 이 태학이 존재했습니다. 고구려 때 ‘태학(太學)’이나 고려시대의 ‘국자감(國子監)’이 모두 고등 교육기관인 ‘태학’입니다. 또한 얼마 전
우리는 누구나 제한된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제한된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며, 어떤 삶을 살 때 가장 ‘올바른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교육’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타고난 ‘본성’과 ‘재능’을 온전히 계발하도록 도와서 ‘올바른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니,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이는 교육의 목적과 방법도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을 유교의 대표적 경전인 중용을 통해 찾아보겠습니다. 중용이 밝히는 인간의 길 ‘하늘’이 명령한 것을 ‘본성’(性)이라 이르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길’(道)이라 이르며, 길을 닦는 것을 ‘교육’(敎)이라 이른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이 글은 중용의 제1장으로 중용 전체의 핵심을 3줄로 정리한 것입니다. ‘중용(中庸)’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길’에 대해 노래한 책입니다. 우주자연의 규칙성 속에 마련된 ‘인간의 길’을 명확히 이해하고 실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 실천법으로 ‘중용’ 즉 ‘중심과 균형’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길’을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중심’을 잘 잡고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니까요. 이것을 잘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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