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80,56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익살스러운 호박의 모습이 떠오르는 10월의 마지막 날은 '할로윈데이'. 해마다 10월 31일 밤에 축제를 여는 연례행사로 서양의 어린이들이 갖가지 상징물과 가면 그리고 옷 등으로 변신해 집집마다 다니는 축제로 유명하다. === 서양의 할로윈데이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 이용의 잊혀진 계절 === 10월 31일하면 생각나는 것 청소년 :『서양의 할로윈데이』... 기쁨, 현실, 즐거움, 축제 중장년 :『이용의 잊혀진 계절』... 슬픔, 추억, 외로움, 낭만 똑같은 날인데도 세대에 따라 떠올려지는 이미지는 이렇게 다르다. 어쩜 이렇게 달라도 한참 다른지... 10월의 마지막날이라는 주인공을 한가운데에 두고 서로 반대편에 서서 한쪽은 울고 한쪽은 웃고 하는 그런 상황이다. 나이가 들면 서러움이 많아진다고 하더니 그래서 할로윈데이가 아닌 잊혀진 계절부터 먼저 떠오르는 것인가? 10월 31일을 맞는 아침, 매달 맞이하는 마지막날이건만 무덤덤한 다른 달과는 달리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저절로 떠올랐다. 옷깃을 파고드는 쌀쌀맞은 추위도, 바람에 하염없이 떨어져 뒹구는 낙엽에도 괜시리 의미가 부여해졌다. 간만에 느껴보는 낭만적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기분도 모르고 만나자마자 할로윈타령을 해대었다. “선생님, 오늘이 할로윈데이인데 우린 축제 안해요?” “뭔데이?” “할로윈데이요?” “그딴걸 왜해?” 그렇게 무심코 내뱉고 보니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기쁨에 들떠 선생님이 맞장구쳐주길 바라고 묻는 말인데 단절음의 노우였으니 말이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더 이상 내 말을 번복했다가는 아이들이 할로윈이니 뭐니 해가면서 하루종일 난리칠 것이 뻔해서 그냥 모르는척 넘어갔다. 더군다나 오늘은 정숙 또 정숙해야할 장학지도날이 아닌가? 준비하느라 마음도 급했지만 아이들을 들뜨게 만드는 것이 안좋겠다는 생각에 무시를 해버렸다. 오늘이 할로윈데이라는 징조는 며칠 전부터 있었다. 개구쟁이 몇 놈이 얼굴과 손목에 온통 핏빛 물감을 바르고 내 앞에서 얼쩡거렸다. “선생님, 형아들에게 얻어터졌어요. 엉엉엉.” “으으윽, 손목이 아파 죽을 것 같아요.” 확연하게 가짜인 것이 표가 나는 어설픈 분장이었다. “야야야, 물감인거 다 표난다. 할래면 제대로 해야지. 글구 너희들이 몇 살인데 아직도 얼굴에 물감을 묻히는 놀이를 하냐?” “어, 형들은 진짜 속았는데. 운동장에 엎어져 있으니까 정말 죽은줄 알더라고요. 울엄마도 진짜 속고 병원에 데려갈려고 했는데...” 그러면서 아이들은 이 반 저 반 휩쓸고 다니며 무슨 큰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듯 희희낙락했다. 그때만 해도 그 행위가 할로윈데이의 전초전임을 꿈에도 몰랐다. 요즘에 유행한다는 시체놀이려니 했다. 진즉 알았으면 유치하더라도 좀 멋지게 속아줄껄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말이다. 10월 31일은 할로윈데이, 분명이 서양에서 들어온 축제이지만 이렇게 열광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즐길만한 마땅한 축제가 없어서이다. 이제 우리도 가면을 쓰고 한바탕 멋지게 놀아보는 축제일이 하루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늘 학교와 학원으로 뺑뺑이를 도는 아이들에겐 일탈의 시간이 없다. 기껏해봐야 사이버공간에서 핸드폰, 게임기, 컴퓨터와 씨름하며 기계에다 스트레스를 푸는 일 뿐이다. 가상의 공간에다 화풀이를 하는 그런 서글픈 현세태보다는 직접 몸으로 가슴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청소년만의 건전한 축제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남의 나라 축제에 웬 열광이냐고 비판만 하지 말고 우리도 우리나라만의 특성을 살린 가면축제일을 만들었으면 한다. 오랫동안 전통문화로 내려오는 지방의 고유축제를 그냥 지방의 행사로만 묵히지 말고 그 탈들을 모두 모아 가면축제로 승화시키는 그런 10월 31일면 좋겠다는 말이다. 북청사자탈, 안동하회탈, 고성오광대탈, 강릉관노탈이 모두 한 곳에 모여 한바탕 놀음을 벌이는 그런 대규모 축제가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꼬마귀신으로 분장한 개구쟁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트릭 오어 트릿 Trick or Treat(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칠 테야!)”하고 외치면서 자루를 내밀면, 그 자루에다 한줌의 과자, 사과, 오렌지 혹은 사탕 등을 넣어준다고 할로윈데이! 도깨비분장을 한 개구쟁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떡 하나 주면 안잡아먹지”하고 외치면서 돌아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심청전, 놀부전, 별주부전, 콩쥐팥쥐전, 장화홍련전, 춘향전 등등 전래동화나 민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면 얼마나 신바람날 것인가? 외국의 축제처럼 무섭고 으스스한 엽기적인 가면이 아닌 해학적이고 친근한 우리 고유의 탈을 쓰고 하하호호 웃는 그런 10월의 마지막 가면축제일이 되었으면 한다.
엊그제 한국교육신문과 e-리포터 글을 보다가 학급당 학생 수에 대한 국감 자료 논박 기사를 보고 느낀 점 몇 가지가 있어 말하고자 한다. 그 기사는, '과밀학급 1위 충북' …엉터리 국감통계, 경기 45명, 충남 43명 등 반해 ‘순진한’ 충북만 37명 기준 (2007.10.29. 한국교육신문 기사 참조), 과밀학급 기준도 없는 통계 무슨 의미가 있나?(2007.10.31. 이찬재 e-리포터 글 참조)였다. 우선 위 두 기사를 간략히 추려보면 국감자료로 제출한 과밀학급 통계자료가 교육부의 분명한 기준이 없어서 각 시도교육청마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제출한 결과 실제보다 충북의 부풀려진 자료로 말미암아 오명을 뒤집어 쓴 것에 대해 기준 제시를 제대로 못한 교육부에 질타를 한 모양이다. 어느 정도 이유 있는 항변이라고 본다. 리포터는 새삼 경기도가 학급당 학생 수가 높고 어느 시도가 낮다는 것을 비교하지는 않겠다.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택지개발과 인구유입이 활발한 경기도가 단연 학급당 학생 수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서 제기하고 싶은 것은 학급당 학생 수가 과연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측정이 있었냐는 것이다. 결론은 학급당 학생 수와 학업성취도 측정에 대한 연구는 매년 있어왔으나 지금까지도 명확한 기준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시적 수준에서의 교육목적과 방향, 교육제도, 교육정책 및 전략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교육개발원 소속의 한 연구원이 “적정 학급규모에 대한 연구가 주기적으로 이뤄졌지만 어느 기점이 학습효과가 떨어지고, 생활지도 효과가 떨어지는 과밀 개념인지 실증적 연구가 제대로 이뤄진 바 없다”고 한 것으로 그 고갱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말을 확인하는 교육부 연구 자료로 2002년과 2003년 대도시, 중소도시, 읍면 지역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한 학급당 학생 수별 학업성취도 측정결과표를 보면 더욱더 분명해 진다(위 측정 결과표 참조). 더욱이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조사한 학급당 학생 수 감소를 경험한 학생들이 교사의 개인적 관심과 지도, 수업분위기 향상, 교우관계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조사한 결과도 그렇다. 즉, 급당 인원이 낮다고 해서 반드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고, 인격형성과 교우관계가 좋아진다는 상관관계는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면 교사 입장에서 보면 학생의 교육, 인격지도, 학급 운영, 업무 경감 등에 있어서 순기능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동안 교육부는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학교신설사업의 목표로 당연시하여 왔지만, 위와 같은 그에 상반되는 학업성취도 평가결과나 각종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학생 수가 늘어나면 그에 비례하여 교육업무 및 교육 외 업무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작용은 각종 보고체계라든가 인력보조 등 제반 여건을 바꿔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여지도 분명히 있다. 따라서 학급당 학생 수가 학생의 학업성취도나 교육관계(인성형성)에 미치는 영향, 교원의 학습지도나 생활지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연구가 면밀히 선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학급당 학생 수에 대한 과학적이고 교육적인 학생 수 목표치를 설정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이러한 기준을 제시토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더불어 교총을 비롯한 교원단체에서도 교원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달라고 막연히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반되는 교육적 효과와 인성교육에 바람직한 영향을 끼치는 과학적인 기준을 정하는 연구 검토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컴퓨터를 켜면 하루에도 수많은 스팸메일이나 지인들로부터 편지가 도착해 있다. 그리고 중요한 업무나 전달사항도 전자메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연말연시가 되면 정성들여 쓰던 카드도 이젠 전자메일 편지지를 이용해 내용에 알맞은 갖가지 예쁜 도안들로 채워진다. 옛날처럼 기다림도 설렘도 줄어든 전자메일은 글의 내용 외에는 어느 한 곳이라도 상대방의 향기를 맡기 힘들다. 그것은 아마도 직접 쓴 글씨를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글씨는 사람마다의 개성이나 마음씨를 알 수 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삐뚤삐뚤하지만 그 아이의 마음이나 태도를 읽을 수 있고 어른은 어른대로 글씨만 봐도 그 사람의 품성과 인격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주인의 인간성과 교양 반영해 서양화가 유입되기 전 먹이 주재료였던 우리 선조들은 글씨 혹은 그림 속에 자신의 감정과 능력을 담아냈으며, 그림과 글씨를 나타낼 때는 완벽하게 재료를 준비하고 표현을 할 때도 최선을 다했다. 흔히 문방사우라 일컫는 벼루, 먹, 종이, 붓 외에도 글과 그림의 재료로 종이를 누르는 서진과 종이 아래 놓는 깔개가 있고, 먹을 갈 때 사용할 물 담는 연적 등이 있다. 그 중 연적은 글씨와 그림으로 완성된 작품을 보기 전에도 그 주인의 마음씨를 잘 알게 해 준다. 물체는 자그마해도 큰 모습을 지닌다든가 형체로는 안 보여도 지조와 도량 있는 마음씨가 숨어 있다든가 하는 잠재적인 아름다움은 문방 용품들이 지닌 미덕이리라. 특히 벼루나 연적처럼 항상 주인의 좌우에 놓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고 또 손수 길들이는 알뜰한 물건일 때는 주인의 인간성과 교양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서울 성북동 옛집에는 박물관과 달리 진열장이 아닌 문갑 위에 놓인 아름답고 귀한 연적을 쉽게 볼 수 있어 좋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유난히 잘 읽는 감식안을 가진 혜곡 최순우 선생은 특히 두꺼비연적을 좋아하여 항상 그의 문갑 위에는 두꺼비연적을 올려놓기도 했다. 연적을 만든 도공의 마음과 그것을 알아챈 주인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그것을 사용하여 표현되는 글과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감동을 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대개 연적 하나라도 안목이 세련된 문인이나 묵객 스스로 손수 선택하는 경우가 보통이므로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쓰는 이들의 높은 안목에 이끌려 호흡을 맞추어가는 것이리라 여겨진다. 또 손 안에서 체온을 느끼도록 자그마하게 만들어졌지만 적당하게 물을 쏟아내는 기술은 매우 과학적인 지혜가 들어 있다. 지금은 연적까지 제대로 갖추어 쓰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과학적 실용미와 기운 생동하는 문기(文氣)를 간직한 연적을 살펴서 참다운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기로 한다. 숭고한 선비정신 그대로 나타내 연적(硯滴)은 벼루에 붓기 위한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수적(水滴) 또는 수주(水注)라고도 한다. 적절한 양의 물을 담아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문자를 쓰거나 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릴 때 벼루에 적당한 양의 물을 떨어뜨려주어야 하는데 그 목적을 위하여 고안된 그릇이다. 두 개의 작은 구멍이 있어 물을 담고 따르기에 용이하게 만든 것으로 은, 동, 유기(鍮器), 자기(磁器), 대나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형태는 매우 다양하며 공기구멍과 물을 주입시키는 구멍으로 나뉘어 있고, 수구(水口)쪽으로 기울여 공기를 조절하면서 적당량의 물을 따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즉, 구멍을 둘로 내어 공기를 조절함으로써 연적 안에 물을 넣고 또 원하는 만큼의 물이 나오도록 조절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위진남북조 무렵부터 청동제의 연적이 나왔으며, 도자기제는 송나라 이후에 많이 만들었다. 명나라에서 청나라에 걸쳐 번창했던 강소성의 의흥요(宜興窯)에서는 붉은 색, 검정색, 갈색 등의 차주전자형 연적이 활발하게 제조되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래 벼루를 써왔으므로 벼루에 물을 주기 위한 연적도 함께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의 것으로 희귀한 고구려의 도제 거북연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려에 들어와서는 지식인 사이에 문방 취미가 보급되면서 아름다운 청자연적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거북형이나 오리형 등의 청자연적을 많이 사용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백자로 된 것이 많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연적 역시 그 형태에 있어 다양해졌다. 전기에는 분청으로 만들기도 하였으나 지금 전하는 대부분의 연적은 백자연적이다. 조선시대 순백의 연적은 유교를 숭상하던 선비정신을 그대로 잘 나타내주며, 또 산수화가 그려진 연적은 후기에 한강변의 분원에서 구워낸 것으로 작은 연적에 산수를 그려 넣어 호연한 세계를 보려한 조선선비들의 아취(雅趣)와 문기를 엿보게 한다. 청자나 백자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놋쇠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자기로 만든 것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대나무, 은, 동, 주석으로 만든 것도 있다. 표면엔 각종 무늬를 넣어 완상(玩賞)하게 하였다. 그 형태는 거북이, 원숭이, 오리, 산의 모형, 복숭아, 동자상(童子像), 사각, 부채, 육각, 보주, 두꺼비, 해태, 물고기, 화형(花形). 무릎형, 고리형 등에 산수나 꽃, 동물, 곤충을 그려 넣기도 하여 운치를 더했다. 무늬와 그림이 없는 순수 백자도 있으나 청화백자 또는 청화에 동화를 곁들여 아름답게 장식한 것이 많다. 그러므로 연적은 문방에서 실용으로 쓰이면서 완상품의 구실도 했다. 18세기 들어서면서 조선백자의 기형과 문양이 더욱 다양해져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의 관요 시대부터는 괄목할 만하게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1752년에 관요가 남종면 분원리로 옮겨진 이후에는 문방구의 종류와 의장이 매우 자유분방하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특히 ‘집 모양 연적(백자청화가형연적(白磁靑畵家形硯滴))’은 여러 형태의 집 모양 연적 중에서도 제대로 격식을 갖춘 뛰어난 예이다. 우진각 지붕에 난간이 있고 공예적으로 변형되긴 했지만 누대(樓臺) 위에 앉혀진 기와집 모양을 하고 있다. 기둥과 문살, 기와 등에 청화를 칠해 장식하였는데 청화의 색깔이 고우며 또 농담을 적절히 구사하여 백자의 고운 피부와 매우 잘 어울리고 있다. 대범한 듯 하면서도 음각과 양각을 잘 조화시켰으며 안정감이 있는 연적이다. 특히 18세기 이후는 청화백자의 유약 발색이 이전보다 짙어지고 도자기의 기형과 문양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면서 연적도 많이 제작되었다. 청화로만 장식된 것도 있지만, 청화에 동화를 곁들여 아름답게 장식한 것도 많다. 이와 같이 도자기로 제작된 연적은 문방에서 실용적으로 쓰이면서도 여러 가지 모양과 형태로 제작되어 장식품의 구실도 했다. 조용한 빛깔의 아취, 청자연적 명상적인 조용한 빛깔과 은은하고도 지체 있는 청자연적은 고려시대 상형청자의 아름다움에 고요와 신비의 생명감을 불어넣은 것이다. 대개 공예조각이란 예술의 경지에 미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나친 잔재주와 아첨이 깃들어 속물스럽게 되기 쉬운 법이다. 그러나 청자연적이나 문진과 같은 작은 문방구들은 조형이 자칫 복잡해질 듯 하면서도 도리어 간명하고 물체가 지닌 습성과 아름다움을 잘 살렸다. 지금 전하고 있는 청자연적의 예로는 동자 모양, 도석인물, 원숭이, 원숭이 모자형, 오리모양 연적 등이 남아 있다. 그 중 청자오리연적은 이러한 장점을 가장 잘 살린 12세기 전반기 무렵의 작품이다. 청자거북형연적은 고려시대 비석의 귀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머리가 달린 거북을 형상한 연적이다. 이미 삼국시대 신라 토기 주자 가운데 이러한 양식의 유형적인 선례가 있었으며, 고려에 들어와서 이런 모습으로 세련 발전한 것으로 짐작된다. 거북의 등에 뚫린 물구멍은 둘레가 꽃잎 모양으로 싸여 있고 등 전체에 육각형 귀갑문이 음각되었으며 귀갑문 안에는 왕(王)자 모양의 무늬가 하나씩 있다. 귀갑 가장자리에는 주름 무늬를 띄엄띄엄 반양각했고, 용두의 눈에 철사(鐵砂)를 찍어 눈동자를 표현하였다. 용이나 거북, 물고기 등의 동물과 참외나 죽순 등의 식물, 인물의 모습을 본뜬 상형 청자는 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전반에 많이 만들어졌다. 특히 국보 제74호로 지정된 오리모양 연적은 그 제작수법이 섬세하고 뛰어나서 윤기 나는 색 등은 나무랄 데 없는 걸작품이다. 한 마리의 물오리가 연못에 떠서 연꽃 고갱이를 입에 문 한가로운 모습을 형상한 것으로 등 위에는 연꽃잎을 오그려 붙인 공기구멍이 있고, 물은 오리의 입부리에 물린 연꽃 봉오리로 따르도록 된 기막힌 표현이다. 이 작은 물체가 실물처럼 느긋하게 보이기도 하고 아기자기한 맛을 느끼게 하지만 잔재주가 아닌 탁 트인 심미안을 표현한 진실성을 느낄 수 있다. 출토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래 일본에 살던 존카스비라는 영국인 수집가가 모은 한 무리의 고려청자 속에 들어 있던 것으로 그가 은퇴하고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한국의 청년 수장가 고(故) 전형필 씨가 도쿄의 유력한 수장가들과 맞서서 이 수집품을 서울로 되사들여 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를 높은 학식과 안목으로 수집했던 고(故) 전형필 씨는 수집의 목적도 목적이려니와 애국적인 열의가 더 대단하여 일본인들도 이에 감명을 받아 이해를 초월하여 이양해 준 것이다. 어질고 신선한 멋, 백자연적 우리나라 재래 문방 용품 중에서 조선시대 연적처럼 특색 있는 것은 없다.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하나하나의 품격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품격 정도와 생활정서를 잘 엿보게 해 주어 누구나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조선백자 중 백자연적처럼 순정적인 표현을 보인 예는 드물다. 청개구리, 두꺼비, 소, 잉어, 자라, 토끼, 동자에 이르기까지 익살스럽고도 순직한 모습 속에 도공들의 순정을 읽을 수 있다. 그 중 잉어연적은 늠름한 자태를 표현한 것으로 남성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조형의 일종으로 공예 의장에 많이 다루어져 왔던 것이다. 한국 연적은 중국이나 일본 연적들처럼 잔재주나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수수한 모습으로 너그럽고 조촐한 선비들의 기개를 드러낸 것이 많다. 백자연적이 조선시대에 다양하고 흔하였지만 많은 명품들이 일본으로 수없이 건너갔다. 사람들이 흔히 무릎연적이라고 부르는 둥근 원형모양의 백자연적은 마치 젊은 여인의 무릎마루처럼 부드럽고 희고 잘 생겼다. 아무런 장식도 없고 다만 둥그런 몸체와 흰 빛깔만으로 이루어진 청백색으로 어질고 신선하여 무릎연적만이 지닌 독특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지닌다. 때로는 청백색 유약만으로 티 없는 멋을 느끼게 해 주지만, 때로는 파초 한 그루를 은은하게 음각해 넣거나, 파초 앞에 앉은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를 쪽빛 청화로 칠해서 흰 백자 바탕이 시원한 맛을 줄 때도 있고 때로는 태극무늬나 매화나무 한 그루를 그려 넣기도 하였다. 백자무릎연적의 흰 맛과 둥근 맛, 쪽빛과 백색의 환상적인 조화는 한국인의 미의식과 어우러져 친근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다소곳이 한 옆에 앉아 오므린 입으로 물을 따르도록 만든 청개구리의 주둥이는 겉치레가 아니라 연적의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다. 백자연적 중에는 복숭아모양의 연적이 많다. 이것은 문방 용품으로서 실용적인 역할과 방치레의 장식품의 역할도 지니고 있다. 연적은 방주인의 취향이나 교양에 따라서 자기가 선택해서 쓸모와 놓일 자리를 잡는다. 그 중 ‘복숭아모양 연적(선도형연적(仙桃形硯滴))’도 그러한 공간구성에 한몫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며, 그 아름다움은 도공의 예술인 동시에 자기생활 공간에 멋지게 정착시킨 방주인의 안목이기도 하다. 조선 전기의 복숭아 연적은 복숭아 형태를 단순화하면서 봉오리 끝이 봉긋한 것이 특징이다. 물론 봉오리가 좀 더 뾰족하게 솟아나 경쾌한 맛을 주는 것도 있지만, 이 연적은 전체가 풍만하고 편안한 선을 지니면서 봉오리는 의젓한 양감을 지녔다. ‘청화백자진사천도형연적(靑華白磁辰砂天桃形硯滴)’은 탐스럽게 영근 복숭아 모양을 한 연적이다. 줄기와 잎사귀까지 장식하여 마치 나무에 매달린 듯 자연스럽게 꾸몄다. 복숭아의 꼭대기에는 선명한 붉은 자줏빛 동화안료를 채색하여 풋풋한 생명감을 부여하고 줄기에는 갈색의 철화안료, 잎사귀에는 청화안료를 옅게 칠하여 사실감을 높였다. 이 외의 백자연적이나 청화백자연적들도 각기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멋과 형상을 지니고 있다. 그 형상만으로도 유연한 선의 아름다움은 물론 고졸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연적은 하나하나가 갖는 아름다움이 모두 이유가 있다. 대체로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기형에서 한국적인 특유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민족의 명산 지리산 높이 1915m의 지리산은 3개도(道) 5개군(郡)에 걸쳐 있는데, 경상남도의 산청군·하동군·함양군, 전라남도의 구례군, 전라북도의 남원시에 몸을 펼치고 있다. 남도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동쪽 날개는 중봉, 하봉, 두류봉, 쑥밭재, 왕등재, 웅석봉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쪽 날개는 제석봉, 삼신봉, 촛대봉, 칠선봉, 반야봉, 노고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산은 두류산 또는 방장산으로도 불리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류산은 멀리 백두대간의 머리가 흘려왔다는 의미이고, 방장산은 신선이 사는 삼신산에서 유래되었다. 웅장한 산세와 넉넉한 자연의 품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리산 산행의 백미는 주능선 산행이다. 능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펼쳐진 산하를 보면서 25.5㎞의 주능선을 걷노라면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몰아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에는 1500m 이상의 봉우리만도 16개나 있어 더욱 운치를 더한다. 어느 코스에서 접근하더라도 주능선은 짧지만 실제 산행거리는 등정과 하산까지 합쳐 50㎞ 정도 된다. 백두대간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원시 덕두산에서 산청군 웅석봉까지의 산행을 고집한다. 전체 산행거리는 80.9㎞이고, 산행의 코스가 북에서 출발하여 남으로 왔다가 동으로 가는 모양이라 태극형 종주코스라 부른다. 지리산은 몸통의 곳곳에서 많은 물줄기를 뿜어내어 계곡마다 헤아릴 수 없는 맑고 검푸른 소와 폭포를 만들어 비경을 더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을 지리산 12동천이라 하는데, 청학동, 화개동, 덕산동, 악양동, 마천동, 백무동, 칠선동, 밤밭골, 피아골, 연곡골, 들돋골, 뱀사골 등이다. 골짜기에서 모여든 물들은 지리산 몸통을 각각 남북으로 감싸는 큰 강을 이룬다. 그 중 하나는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고, 다른 하나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이다. 남강은 함양과 산청을 적시고 내린 경호강과 천왕샘에서 출발한 덕천강이 진주 근방에서 만나 이루어진다. 섬진강은 마이산과 봉황산에서 시작되어 지리산의 서쪽을 감싸고 흐려다가 연곡천, 화개천을 만나 몸통을 불린다. 또 지리산에는 유서 깊은 사찰이 많이 남아 있어 다양한 국보와 보물 등의 문화재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사찰에는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법계사, 대원사, 내원사, 실상사, 벽송사, 영원사 등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지리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식물 800종류, 동물 400종류 이상이 있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과 이곳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울려진 이곳은 문화와 자연경관의 보고이기에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왕이 오른 고개에 자리 잡은 산지늪 지리산 12동천 중 하나인 덕산동은 천왕샘에서 출발한 물이 흐르는 중산리계곡과 대원사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 학자 남명 조식 선생은 양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는 덕산동 초입에 정자를 만들고 많은 후학들을 기르면서 이곳의 경치를 다음의 시조로 표현하였다. 지리산 양단수를 옛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도원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양단수의 하나인 대원사계곡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쓴 유홍준은 발을 담구고 여가를 즐기는 남한 제일의 탁족장소로 소개하고 있다. ‘너럭바위에 앉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먼 하늘을 쳐다보며 인생의 긴 여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있으랴’라고 하였다. 이곳은 계곡이 깊고 계곡 옆에 많은 나무들이 자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다. 계곡의 절경마다 붙여진 이름은 선녀탕, 세신대, 세심대, 옥녀탕 등으로 세속에 찌든 몸과 마음을 비우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친 숨을 내쉬면서 계곡을 따라가면 대원사와 (구)가랑잎초등학교가 나타난다. 이 길을 계속 올라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조개골계곡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유평계곡이 나온다. 유평계곡은 길이가 짧고 규모가 작으나 2개의 산지늪을 품었으니 왕등재늪과 외고개늪이다. 고개를 이르는 말에는 재, 치, 령, 현 등이 있는데, 왕등재와 외고개는 삼장면 유평리에서 금서면 오봉리로 넘어가는 고개길이다. 외곡마을 끝자락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30분가량 오르면 왕등재늪이 나타난다. ‘왕이 오른 고개’라는 의미를 지닌 왕등재에 올라서면 산청과 함양 및 경호강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이곳에는 가락국 제10대 왕인 구형왕(기록에는 나라를 넘겨준 의미로 양왕)의 슬픈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신라군에 쫓긴 구형왕은 지리산의 언저리인 왕산에 들어와 왕궁을 만들고, 천혜의 요새인 왕등재에 토성을 쌓고 항전하다 끝내 왕산 아래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이야기로 왕산에는 가락국의 별궁인 태왕궁(또는 수정궁)이 있어 왕족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532년 구형왕은 신라에 대항하여 많은 백성들에게 아픔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밀양의 이궁대에서 신라의 법흥왕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이곳의 태왕궁으로 들어와 은거하다 5년 후 세상을 떠난 것으로 가락국 2000년사에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왕등재늪 주변에는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토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되어 있고, 성을 따라 성문이 적당한 간격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성문이 있던 곳에는 석축을 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외에도 왕등재 남쪽에는 깃대를 걸었다는 깃대봉, 망을 보았다는 망덕재, 말을 사육했다는 망생이골 등이 있다. 왕등재늪은 길이 200m, 폭 80m 정도로 사철 물이 있어 습지에 들어서면 발목까지 물이 차오른다. 등산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고, 늪 옆으로 목도를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대암산 용늪 다음으로 발견된 왕등재늪은 다양한 생물들을 품고 있어 보존의 값어치가 높은 곳이다. 왕등재늪에서 동쪽으로 가면 삼장면과 산청읍을 연결하는 밤머리재를 만날 수 있고, 서쪽으로 가면 외고개와 새재 및 쑥밭재를 지나 천왕봉으로 갈 수 있다. 외고개에서는 왕등재, 금서면 오봉리, 새재, 유평의 외목마을 등으로 갈 수 있다. 유평의 외목마을로 가는 길로 접어들어 산비탈을 내려가면 잣나무 식재림을 만나게 된다. 가을에 이곳을 오게 되면 갑자기 은빛의 물결이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이곳이 외고개늪이다. 등산로가 늪의 중간을 가로질러 있어 은빛의 물결 속을 걸어가는 기분은 가보지 않은 사람을 알지 못하리라. 외고개늪은 해발 약 800m의 계곡 사면에 형성되어 있는데, 주변 능선의 경사면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모이면서 넓게 만들어졌고 대부분이 갈대 군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습지의 대부분은 갈대군락으로 되어 있어 저층습원으로 보이나 지형이나 지하수위로 볼 때는 중층습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계절별로 다양한 들풀 자생해 산이 높으면 구름이 쉬고 가는 날이 많은 법이다. 산할아버지가 구름 모자를 쓰듯이 많은 날들이 구름과 안개로 뒤덮인 왕등재와 외고개늪! 왕등재늪은 봄이면 안개 속에 동의나물, 참꽃마리, 산비늘사초, 자란초 등을 싹 틔우고, 여름이면 감자개발나물, 범꼬리, 세모부추, 방울새란, 닭의난초, 잠자리난초, 창포가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온갖 식물들이 알록달록한 단풍옷을 입는 가을이면 숫잔대가 보라색 꽃을 나홀로 자랑한다. 왕등재늪 주변은 신갈나무 군락으로 덮여 있고, 산림과 늪 주변에는 고사리를 비롯한 산나물도 많이 자라고 있다. 특히 늪 주변에는 1m 정도 자라는 꿩고비가 무리지어 있는데, 안개 속에서 만나는 꿩고비 군락은 이곳이 열대우림의 한 부분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꿩고비의 포자엽은 영양엽보다 작고 2회 깃꼴로 갈라지며 붉은빛이 도는 갈색의 포자낭이 입체적으로 달린다. 어린 싹을 나물로 먹고, 한방에서는 뿌리줄기를 약재로 사용한다. 그 외에도 주변 산림에는 고추나무, 노각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병꽃나무, 층꽃나무, 큰꽃으아리, 족두리풀, 쥐오줌풀, 활량나물, 톱풀, 층층잔대 등이 자라고 있다.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져 자라는 이곳에는 여러 곤충들과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꼬마잠자리와 도롱뇽이 있다. 외고개늪의 습지에는 갈대군락이 넓게 분포하고, 작은 개울이 거미줄처럼 펴져 있어 물이 많은 곳이다. 물길이 흐르는 곳에는 진퍼리새, 삿갓사초, 골풀이 작은 군락을 이루고, 사이사이에 큰방울새란, 닭의난초, 흰제비란, 꽃창포, 노루오줌, 하늘나리, 동의나물, 곰취, 도깨비사초, 왕비늘사초, 솜방망이가 자라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외고개늪 주변에는 뻐국나리, 엉겅퀴, 억새, 털중나리, 꿀풀, 흰꿀풀, 조팝나무가 자라고 있다. 동물로는 꼬마잠자리를 비롯한 여러 곤충들과 척추동물인 무당개구리, 아무르산개구리, 살모사, 까치살모사가 발견되었고, 노루와 멧돼지도 살고 있다. 가락국의 슬픈 역사 간직한 계곡 왕등재와 외고개늪이 위치한 대원사계곡은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으로 원래의 이름은 유평계곡이다. 아직도 이 지역의 사람들은 “덕산 유독골”이라 부른다. 유독골 하면 아주 깊고 험한 골짜기를 의미하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지역 노인들은 “유독골로 보낸다”는 말을 자주 쓴다. 유독골은 민족동란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빨치산이든 이들을 토벌한 군인이든 살아 나오기 힘든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 가장 무서운 말이 ‘덕산 유독골로 보낸다’였다. 이것이 세상에 알려져 지금도 사람들은 ‘골로 갔다, 골로 보낸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죽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대원사골은 골이 깊어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삶의 피난처이자 안식처였다. 1862년 이곳의 인근인 단성면에서 시작된 농민항쟁이 동학혁명으로 이어질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면서 모여든 곳도 지리산이요, 한국동란에서 사상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품어준 곳도 지리산이기에 이곳은 갈등과 융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역사의 한 장소이다. 이루지 못한 꿈을 역사에서 찾고, 그 의미를 부여한 왕등재늪이 대원사골에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에 대원사골은 도피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땅인 것이다. 왕등재늪과 관련이 높은 구형왕릉은 늪의 북쪽 사면인 금서면의 왕산 근처에 있다. 역사적으로 밝혀지지 못하여 전구형왕릉으로 지칭되는 왕릉은 국가지정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잡석으로 방형의 단을 만들었는데, 피라밋 모양으로 모두 7단으로 이루어진 돌무덤으로 특이하게 4단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감실이 마련되어 있다. 왕산 주변의 가락국의 유적에는 구형왕릉 외에 덕양전과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의 유허비, 수정궁, 왕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할아버지인 구형왕의 무덤을 지키면서 무술을 연마한 곳 등이 있다. 대원사골이란 이름이 있게 한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곳으로 1955년 법일 스님에 의해 비구니선원으로 중창되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참선도량이면서 보물 제1112호인 대원사 다층석탑을 가지고 있다. 며느리밥풀꽃이나 동자꽃은 원망과 슬픔을 품고 있기에 꽃 색깔이 대체로 붉다. 그처럼 대원사골에 진하게 맺힌 아픔들은 가을이면 붉은 단풍으로 태어난다. 그것에 더하여 유평계곡에는 맛있는 사과로 알려진 유평사과가 가을이면 붉은색으로 익어간다. 억만 겁의 세월 속에서도 지리산은 영원한 우리의 영산이다. 넓고 높아서 영산이 아니라 사람과 여러 생물들에게 큰 도움을 주기에 영산인 것이다. 오늘도 왕등재와 외고개늪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수는 계곡과 하천을 적시며 생물들에게 생명수를 주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행복을 주고 있다.
“이슬람제국의 아랍인들, ‘0’의 사용은커녕 그 개념조차 알지 못했다.” 그랬다면 오늘날 우리의 문명수준은 매우 낮을 것이다. 인류는 달에 사람을 보내는 것을 넘어 화성에 탐사선을 착륙시키는가 하면 동영상 이동전화기를 비롯한 최첨단의 이기를 사용하는 등 20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과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내일 혹은 모레엔 또 어떤 신기한 기계가 발명되어 우리를 놀라게 할까? 생활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다못해 인간성의 상실을 염려하게 하는 과학기술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수준 높은 과학기술의 토대 이끈 ‘0’ 인류가 발견·발명한 각종의 원리나 기호들 중에서 인류로 하여금 한계를 알 수 없는 과학과 기술에 도전할 수 있게 한 것 중의 하나는 숫자 ‘0’일 것이다. 매우 단순하게 접근해도 0의 개념이 없으면 ‘-’, 즉 음수(陰數)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고 더군다나 미분이나 적분 같은 고등수학은 생각할 수 없다. 인공위성, 컴퓨터, 휴대전화기, 나노 등은 모두 고등수학의 소산물이다. 화약, 나침반, 종이가 동양에서 발명되었지만 고등수학을 가능하게 한 0 또한 동양인의 고안물이었다. 사실 누가 최초로 0을 고안해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사가들은 견해일치에 이르지 못했다. 1 ~ 9까지의 숫자는 아랍인들이 인도로부터 배워 사용한 것으로 이야기되지만 0의 경우 사가들은 아랍인들이 인도가 아닌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고안해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중국문화권인 인도차이나의 7세기경 문헌들에 0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미루어 볼 때 인도나 아랍이 아닌 중국이 0의 발명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가들은 ‘없음’을 의미하는 아랍어 ‘sifr’와 ‘0(cipher)’을 관련지어 위의 관점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이처럼 0을 처음 고안해낸 사람은 혹 중국인일지 모르나 그것을 실제로 사용한 사람은 아랍인들이었다.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대체로 8세기부터 11세기의 아랍세계는, 언뜻 석유·종교분쟁·이슬람원리주의·자살폭탄테러·지하드 등을 떠올리게 하는 금일과는 달리, 높은 수준의 문화를 자랑했다. 새교육 9월호에서 약술했지만 무함마드의 이슬람교는 동으로는 인도의 인더스강에 이르고 서로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이베리아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으로 퍼져갔다. 이슬람교를 모체로 삼은 이슬람제국 또한 메카, 바그다드, 다마스쿠스 등을 중심으로 중동지역과 지중해세계를 장악했다. 서양에 앞선 높은 수준의 문명 이뤄 이슬람세계의 종교·군사적 성공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탁월한 문명이다. 당시의 아랍인들은 수학과 과학은 물론 다방면에서 경이로운 창조력을 발휘하여 인류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들의 왕성한 문화 창조력은 봉건적 서유럽의 그것을 압도했다. 대체로 15, 16세기 이후 세계문화를 주도해 온(물론 정신문화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서구도 중세에는 비잔틴제국이나 이슬람제국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후진적이었다. 서구 중심적 사관에서 사유하는 사가들도 그 시기에는 서양이 문화적으로도 이슬람세계에 현저히 뒤졌다는 점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아랍인들로 하여금 9, 10세기 전후에 그처럼 탁월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 한 것은 주로 이슬람교였다. 이슬람교는 아랍인들의 예술·문학·과학적 성취를 자극하고 촉진했다. 아랍인들에 있어서 삶 그 자체였던 이슬람교는 그들의 문화 창조력과 지적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더욱이 이슬람교는 성지순례를 요구함으로써 사상과 문화의 교류를 촉진했다. 거기다 꾸란은 다른 언어로의 번역이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그것을 읽기 위해서 아랍인들은 아라비아어를 익혀야 했다. 아라비아어는 융통성이 비교적 큰데다 꾸란의 언어였으므로 쉽게 이슬람세계의 표준어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아라비아어는 이슬람교와 함께 이슬람세계의 통합과 문화 창조를 촉진하고 자극했던 것이다. 이슬람제국은 또한 학문을 후원하고 장려했는데 아바스조의 7대 칼리파 알 마문이 가장 좋은 사례이다. 철학·수학·천문학·의학 등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바그다드에 도서관이 딸린 학문의 집 ‘바야트-알-히크마’를 세워 그리스 고전들을 번역하게 했다. 천문대가 있어 천문학자들은 경도와 위도를 측정했는데 금일의 기준으로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지구표면적을 계산했다. 당시에도 꾸란의 해석과 관련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가 하면 꾸란을 인간인 무함마드의 창조물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리스철학의 영향을 받은 알 마문 또한 그런 경향에 동조했다. 그리하여 그는 827년에 칙령으로 꾸란의 창조설을 확인했고 833년에는 창조설에 반대하는 자들을 추방하고 탄압했다. 탁월한 흡수력으로 업적 이룬 아랍 거기다 아랍인들은 주변의 문화적 유산을 잘 흡수하여 소화시켰다. 이슬람제국에 정복당한 지역들은 훌륭한 문화를 자랑하던 페르시아나 비잔틴제국의 일부였다. 아랍인들은 페르시아로부터 정치, 그리스로부터 철학, 페르시아와 그리스로부터 문학을 배웠다고 하지만 그들은 페르시아·그리스·로마·비잔틴 등의 우수한 문화를 효과적으로 흡수했다. 이슬람제국과 비잔틴제국은 줄곧 대립했지만 간혹 평화롭게 지낼 동안 아랍인들은 비잔틴문화를 존중하고 배웠다. 아랍인들은 비잔틴제국의 그리스인들을 자기들 외의 유일한 문화민족으로 대우하고 외교적으로도 배려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두 문화가 활발히 교류되고 아랍인들이 그리스문화에 자주 접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인들도 아랍인들을 소홀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들도 아랍인의 여성에 대한 태도를 인정했으며, 외교상의 관례였지만 칼리프의 사신들에게만은 칼리프가(家)의 부녀자들의 안부를 묻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이슬람제국의 문화는 특히 과학부문에서 높은 성취를 자랑했다. 아랍인들은 그리스는 물론 주변세계의 과학적 열매를 흡수하여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었다(역시 문물을 교류할 때의 그리스인들과 아랍인들은 서로 상대의 과학상의 성취를 인정하고 예찬했다). 아랍인들은 그리스와 인도의 위대한 과학·철학적 저작들을 아라비아어로 번역하였다. 그들은 또한 전술했듯이 중국과 인도로부터 정교한 수학적 기법을 배우고 특히 인도로부터는 1에서 9까지의 문자사용을 배웠다. 과학 분야에서도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수학·화학·의학이었다. ‘아라비아숫자’가 말해 주지만 아랍인들의 수학 상 업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은 오늘날 전 인류가 사용하는 아라비아숫자를 이용하여 일상적 계산을 쉽고 편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고등수학의 길을 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라비아숫자에는 로마인이 알지 못했던 0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0’개념을 모르면 음수개념은 존재할 수 없고, 음수를 알지 못했을 경우 오늘날 수학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아랍인들은 유클리드기하학을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해석기하학에 도전했다. 그들은 평면 및 구면 삼각법을 창시했으며 3차 방정식 등 대수학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0을 최초로 책에 기록한 사람으로 알려진 9세기의 알-카와리즈미는 그리스와 힌두적 요소를 결합하여 대수학을 발전시켰다. 오늘날 대수학을 의미하는 영어 ‘알제브라(algebra)’는 그의 아랍어책 알-제브라(al-Gebra)에서 유래했다. 11세기경에 톨레도 등 스페인의 아랍계 도시들을 통해 아랍의 수학, 철학, 의학 등이 유럽에 유입되었다. 아라비아숫자는 처음 대학들에서 사용되고 이어 상인사회에 수용되었다. 동지중해 지역과 활발히 교류하던 이탈리아 상인들이 13세기부터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점차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연금술 통해 화학·의학 발전에 기여 다음은 아랍의 화학과 의학에 관한 이야기다. 9, 10세기경의 아랍에서는 연금술이 유행했고, 그것은 화학에서도 놀라운 업적을 남기게 했다. 중국의 경우 연금술은 주로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발전했고, 그리하여 중국적 신비주의와 결합했다. 반면 아랍에서는 비(卑)금속으로 귀금속(철학자의 돌)을 합성해내는 연금술, 즉 마술과 과학이 결합한 연금술로 발전했다. 아연이나 알루미늄 같은 비금속으로 금과 같은 귀금속을 만들어낸다면 얼마나 신날까? 연금술사들은 각종 비금속에 이런저런 화학약품을 넣고 열을 가하거나 감하는 시행착오적 실험을 되풀이했고, 그런 실험과정을 통해 증류·여과·승화 등 과학적 방법을 개발하거나 발전시켰다. 또한 탄산소다·알룸(명반)·붕산·질산·유황산·질산은·초산·알코올 등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내었다. 화학실험과 화학원소의 발견은 당연히 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아랍인들은 그들 스스로 의학을 연구하고 치료술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의학서적을 번역하는 등 그리스 의학지식을 활발하게 수용했다. 그처럼 아랍인들은 그리스인들로부터 의학을 배웠으되 그들을 능가했다. 중세 전성기와 중세 말부터 근대 초까지 유럽 대학에서의 의학교육은 주로 아랍 의학자들(알 라지·이븐알아바스·이븐시나(아비세나)·아불카심 등)의 의서(醫書)들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에 의존했다. 특히 안질·천연두·홍역 등의 치료에 관한 아랍 의서들은 18세기까지도 그 분야의 권위서로 통했다. 아마도 아랍의 가장 유명한 의학자는 알라지와 이븐시나일 것이다. 알라지는 10세기에 모든 의학지식을 집대성한 20권의 개론서 의학대전을 남겼다. 이븐 시나는 기왕의 의학을 체계화하여 중세의 가장 뛰어난 의학서로 평가받은 의학규범을 썼으며 회복의 서도 남겼다. 특히 의학대전은 그리스와 아랍의 의학은 물론 페르시아와 인도의 의학까지 종합한 의서였고,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된 이래 17세기까지 서구 대학들의 의학교재로 사용되었다. 그밖에 이슬람세계의 중요한 도시들에는 대소 병원과 의학도서관들이 있었다. 그들은 약전(藥典)도 처음으로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이곳저곳의 효험 있는 다수의 식물이나 약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한 것에서 비롯했다. 이슬람제국의 아랍인들이 인도와 중국의 도움을 받아 0을 포함한 아라비아숫자를 고안해 내거나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특히 0을 고안해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위에서 지적했지만 현재의 첨단과학은 불가능하거나 그 수준이 훨씬 낮을 것이다. 로마의 숫자 I(1), V(5), X(10), L(50), C(100)를 염두에 둘 경우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IV(4) IX(9) LV(55), CL(150) 등으로 미·적분은커녕 제곱, 세제곱을 수행할 수 있을까? 로마숫자로 수행되는 수학을 바탕으로 인공위성이나 컴퓨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아마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한국 교육 발전과 함께 해온 60년 올해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출범한 지 60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1947년 11월 23일 회원 상호 간의 강력한 단결을 통해 교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교직의 전문성을 확립함으로써 교육의 진흥과 문화의 창달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출범한 지 어언 60년의 성상(星霜)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 교총은 조선교육연합회(1947~1948), 대한교육연합회(1948~1989),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1989~현재)로 발전하면서 큰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현재 회원만 해도 약 20만 명에 이르며, 지역조직으로 190개의 시·군·구교원총연합회와 1만 1000여 개의 학교 분회를 거느린 16개 시·도교원단체총연합회가 있고, 직능조직으로 초등교사회, 중등교사회, 초등교장(감)회, 중등교장(감)회, 대학교수회 그리고 산하단체로 학교급별·직위별·설립별·성별·전공별 단체 25개 등을 둔 방대한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방대한 조직과 회원을 가진 교총은 한 일간지의 국내 파워조직 영향력 조사에서 청와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을 능가하는 13위, 국가기관 및 대기업을 제외한 시민사회단체 중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파워와 영향력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성장은 교총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교원전문직단체로서 각급 학교의 교사로부터 대학의 교수에 이르기까지 교육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교원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고 그들만의 이익이 아닌 우리나라의 교육 발전이라는 대의를 추구해 온 데 힘입은 것이다. 지금 교총은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수립과 추진, 학교교육의 발전과 내실화 그리고 사회문화 발전과 풍토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내적으로는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각종 연수와 교권 옹호 활동 그리고 학교공동체 신뢰 회복과 교육 복지 향상을 위한 적극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교원들의 권익과 복지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다각도로 전개하고 있다. 60년의 회고와 반성 지금까지 한국교총이 우리나라 교육 발전과 교원들의 권익 보호에 기여해 온 점에 대해서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교총의 전신인 대한교련은 해방 이후 혼돈의 시대에 유일한 합법적 교원단체로서 국민교육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교육공무원법 제정을 실현하여 교원의 신분과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교총은 1991년에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실현하여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1992년 이후에는 교육부와의 단체교섭을 통해 교원의 지위와 복리를 증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고, 다양한 정책 협의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을 발전시키고 내실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교총은 양적 성장과 함께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였다. 대한교련 시절 우리나라 교육의 발전과 교원의 복리보다는 일신의 영예와 안위만을 생각하는 인물이 회장으로 임명되어 정치권력과 유착된 일탈 행태를 보임으로써 회원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고, 정권의 홍위병처럼 활동하여 어용단체라는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하는 등 많은 내홍과 외환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적 변화와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독재정권에 유착된 행태를 보임으로써 많은 회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결과적으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태동시키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한국교총으로의 새로운 태동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원죄의 그늘이 교총의 과거와 현재를 옥죄고 있는 부분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과거에 거의 자동적으로 학교장이 맡아오던 분회장을 평교사가 맡을 수 있도록 분회장 직선제를 도입하고, 교총 회장 선출도 회원 모두가 참여하는 직선제로 전환하여 회원들의 참여에 기반한 민주적 운영의 기틀을 마련하고 모든 교원들의 뜻과 전문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전문직 공동체로서 역할을 다함으로써 서서히 그 위상을 올바르게 정립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교총의 지난 60년은 새로운 거듭남을 위한 진통과 도약을 위한 몸부림의 과정이었고 앞으로의 창대한 발전을 위한 기반 다지기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직 단체로 교육발전 앞장서야 전통적으로 60년은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의 조합에 의한 60갑자(甲子)의 1주기를 의미하며, 60세는 장수(長壽)의 삶과 새로운 삶의 시작을 나타내는 환력(還曆)을 의미한다. 그래서 60주년은 한 주기가 완성되고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는 매우 의미 있는 해이며, 개인의 삶으로 말하면 오랜 삶을 완성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뜻 깊은 감흥의 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총이 지금 60주년을 맞이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 있는 해를 맞이했음을 의미한다. 즉, 태동과 성장의 60년이라는 한 시대를 완성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출발선상에 서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교총의 회원으로서 출발선에 서 있는 한국교육의 대표 주자(走者)를 보는 설레는 마음으로 60주년을 맞이한 교총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대와 바람을 주문해 본다. 첫째, 우리 시대와 사회를 이끄는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논어(論語)에서는 60년의 삶을 이순(耳順)이라고 하여 단지 듣기만 해도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는 지극히 높은 삶의 경지를 표현한다. 이제 교총도 60년의 발전 역사를 가진 만큼 이순(耳順)의 원리에 따라 모든 것을 포용하고 아우르는 지극히 높은 경륜과 활동의 경지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둘째, 전문직 교원단체로서 교총이 교육과 국가 발전을 선도하는 큰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총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직 단체이다. 전문직은 한 사회의 지성을 대표하는 직종으로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활동하고, 봉사와 헌신으로 핵심적인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최고의 직업이다. 따라서 교총은 회원들의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그를 바탕으로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추구하여 교육과 국가 발전을 선도하는 견인차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셋째, 교총이 자신의 이익에 앞서 학생과 학부모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품격 높은 전문직 공동체주의를 실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은 자아를 실현하고 창조적 능력을 계발하는 행복한 삶의 과정이다. 따라서 교원들은 청출어람의 자세로 자신보다는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학생과 학부모의 복지와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관점을 견지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바로 전문직 공동체주의를 표방하는 교총이 추구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입장일 것이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교원들의 권익과 복리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총이 노조처럼 자신들의 권익만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교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불의한 처우를 받았을 때 침묵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60년을 유지해온 전문직 단체로서의 명예에 걸맞지 않은 이익집단으로 보일 정도로 과해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교육의 발전과 학생의 성장에 이바지하는 올바른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추구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될 때 한국교총은 국민과 회원들의 강력한 지지와 후원을 받으며, 우리 교육의 발전과 동행하는 또 다른 발전의 역사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60주년이 되는 날,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멋진 교총의 새로운 거듭남을 기대해 본다.
인간의 영원한 원초적 욕망, 변신 사람들은 누구나 변신을 꿈꾼다. 인류가 화장을 하고 가면을 쓰는 것은 현실의 자신에서 벗어나려는 가장 손쉬운 시도다. 여기에 경제적 차원이 개입되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의도했던 화장은 변장으로 이어져 마침내 성형 수술에 이른다. 이러한 인류의 열망은 문명사의 거대한 새 물결과 맞닿아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인터넷 세상에서 누리꾼들이 별칭을 구사하고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아바타(Avatar)를 치장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도 한 예다. 아이디를 여러 개 사용하여 남녀노소를 두루 연기하는 다중 자아(Multiple-Ego)들도 결국은 변신을 꿈꾸는 또 다른 모습들이다. 변신을 젖혀놓고 인간이란 존재를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간을 이해하는 원형인 신화에서도 변신은 제일의 중심 테마다. 신화의 영웅들은 자유롭게 변신을 거듭하는 존재들이다. 온갖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제우스의 능력은 모든 신들을 압도하는 권위를 지니고 그의 번개는 모든 존재를 완전한 무로 변신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전 세계 모든 신화는 변신의 능력이 신성과 연관됨을 보여준다. 우리 의식의 뿌리를 이루는 단군 신화에서도 변신은 가장 핵심에 놓여 있다. 한마디로 우리의 조상 단군은 웅녀와 환웅이 각각 변신하여 결합한 성과다. 곰이 인간으로 변신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여 성공하고, 다시 이를 가상하게 여긴 신이 인간으로 기꺼이 변신하여 이루어진 결과가 바로 단군이다. 인간 존재는 동물과 인간이 각각 자신의 존재를 벗어나고자 노력하여 이루어진 화신(化身)과 현신(現身), 곧 변신의 결과다. 동물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인간이 되고, 거기에 감동한 신이 화답하면서 태어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단군 신화는 성(聖)과 속(俗)이라는 인간 존재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신화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행위도 결국 변신을 꿈꾸는 가장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 아닐까.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주인공으로 변신하고, 다시 저자로 변신하고 독자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그때마다 나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 태어나면서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고 만든다. 내 안의 곰이 오랜 고통 속에서 인간으로 태어나고 다시 신과 접하여 내일을 위한 꿈을 꾸며 현실에 뿌리를 내린다.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책을 읽은 후의 ‘나’는 변신의 전과 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체적 진실 그 자체다. 그렇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형성되는 존재다. ‘변신’하기에 존재하고, 존재하기에 ‘변신’하는 존재가 바로 ‘나’다. 프란츠 카프카는 변신을 통해 현대인의 변신이 어떻게 비극적으로 그려지는지 보여준다. 벌레가 되어 깨어난 외로운 현대인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7쪽)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되어 깨어난다. 그는 출장 영업사원으로서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다섯 시에 기차를 타러 가야 하는 고달픈 신세의 가장이다. 천식을 앓는 어머니,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17살도 안 된 여동생을 위하여 열심히 일해 온 성실한 남자다. 일곱 시 십오 분도 안 되어 회사 지배인은 직접 찾아와 그레고르 잠자가 왜 출근을 하지 않았냐며 수금한 돈을 빼돌리지 않을까 의심한다. 하지만 벌레로 변한 주인공 잠자는 그야말로 속수무책,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그의 말은 인간이 아닌 벌레의 언어로 바뀌었기에 예전과 같은 의사소통은 전혀 불가능해진 것이다. 마침내 그가 흉측한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지배인과 집안 식구들은 모두 경악한다. 지배인은 도망가고 하녀는 자신을 해고해달라며 그만 둔다. 어머니와 아버지, 여동생은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그레고르 잠자를 돌봐주기 시작하지만 생계유지에 필요한 수단을 마련하자 곧 귀찮아한다. 특히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해 도우려던 여동생은 노골적으로 오빠인 잠자를 매몰차게 대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요. 두 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깨달았어요. 저는 저런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오직 한 가지, 우리가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동안 저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어요.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111쪽) 그레고르 잠자는 마침내 죽어간다. 슬프고 허망한 현대인의 변신을 암시한다. 그는 가족들에 대해 감동과 사랑의 마음으로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그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 여동생 보다 그 자신이 더욱 단호할 것이다. 탑시계가 새벽 세 시를 칠 때까지 그는 이렇게 공허하고도 평화로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창밖의 세상이 훤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는 것까지는 아직 알 수 있었다. 그러고는 그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아래로 푹 떨어졌고, 콧구멍에서는 마지막 숨이 힘없이 흘러나왔다.(117쪽) 다양한 의미로 해석 가능한 변신 카프카의 변신은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다. 여기서 ‘벌레가 된’이란 표현을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벌레가 되려고 ‘변신한 것인지’ 어쩔 수 없이 벌레로 ‘변신된 것인지’에 따라 작품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비인간이 되기를 강요하는 폭압적 현실 자체 가 곧 변신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반대로 그러한 비인간적 현실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강렬한 (무의식적) 소망이 변신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그레고르를 벌레로 변신시킨 것은 현실 자체인가 아니면 현실로부터의 탈출 충동인가? (중략) 이와 같이 변신의 원인을 외적 요인(=현실자체)에 의한 것으로 볼 것인가, 내적 요인(=현실로부터의 탈출 충동)에 의한 것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변신의 의미는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이해된다.(132~133쪽, 옮긴이 해설) 실제로 작품을 읽다보면 벌레가 되는 ‘변신’이 과연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결정적인 구속인가, 아니면 주인공이 스스로의 삶의 상황을 명료하게 파악하는 순간에 다가온 제한적인 해방인가 쉽사리 판단하기가 어렵다. 일단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흉측한 갑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는 첫 대목에서부터 자신의 존재를 명료하게 직시한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어보니 불룩하게 솟은 갈색의 배가 보였고 그 배는 다시 활 모양으로 흰 각질의 칸들로 나뉘어있었다. 이불은 금방이라도 주르륵 미끄러져내릴 듯 둥그런 언덕 같은 배 위에 가까스로 덮여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7쪽) 이러한 치밀한 관찰은 곧 명료한 자기 인식을 뜻하며, 곧바로 지금까지의 자기 삶에 대한 예리한 반성과 성찰로 이어진다. 읽어보면 지금도 공감이 될 만한 진술들로 압도해 오는 대목이다. 더구나 창졸지간에 벌레로 변한 사람의 생각이라 보기 힘들게 긴 분량이다. 아아, 세상에! 나는 어쩌다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허구한 날 여행만 다녀야 하다니. 회사에앉아 실제의 업무를 보는 일보다 스트레스가 훨씬더 심하다. 게다가 여행할 때의 이런저런 피곤한 일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기차를 제대로 갈아타기 위해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일, 불규칙하고 형편없는식사, 상대가 늘 바뀌어 결코 오래 갈 수 없는 만남과결코 진실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적 교류 등등.악마여, 제발 좀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가다오.(8~9쪽) 마지막 구절인 “악마여, 제발 좀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가다오”는 벌레로 변신한 상태를 서술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과거 삶을 돌이켜 보는 고통 어린 시도다. 이는 변신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변신’의 원인과 의미를 곱씹게 해주는 대목이다. 벌레로 변한 잠자의 의식과 행동은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벌레, 다시 말해 몸은 벌레이나 영혼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로서 그레고르 잠자는 변신 이전의 부정하고 싶은 상태에서 벗어나 오히려 생각하는 동물로서 인간 존재의 모습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벌레가 되면서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고 할까. 판에 박힌 생활을 하면서 벌레 같은 삶을 살던 과거와 벌레이면서 새로운 삶,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상태의 인간다운 삶을 살던 현재가 교묘하게 병치된다. 무엇이 벌레이고 무엇이 인간인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생각하는 벌레로 변신했다는 사실은 시종 일관 작품 속에 명료하게 강조된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7쪽) 그는 생각에 잠겼다. ‘아아, 세상에! 나는 어쩌다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8쪽) 그는 다시 미끄러져 이전 자세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9쪽) 아무 쪽이나 펼쳐보아도 카프카의 벌레, 잠자의 변신인 갑충은 생각하는 존재요, 기존의 구속에서 벗어난 불안한 인간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인간의 존재에 깃든 삶의 한계를 벌레로 변신한, 또는 변신된 순간부터 명백하고 심도 있게 깨닫는다. 변신은 결국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인간 존재가 벌레와 같이 불행하게 전락하는 모습, 그리고 스스로를 벌레라고 깨달은 순간부터 행복하게 자신의 마지막 본질을 지킬 수 있는 풍경. 이 두 가지 의미를 바탕으로 무수히 많은 코드로 읽을 수 있는 현대의 고전이 바로 소설 변신이다. 슬프고 허망한 현대인의 비극은 누가 읽느냐에 따라, 어떻게 읽느냐, 왜 읽느냐에 따라 실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의 의미 따져보는 변신 읽기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변신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카프카 생전에 간행된 소수의 작품 중의 하나이며, 변형기담(變形奇譚)에 특유한 유머와 이상한 사건을 예사로운 일처럼 묘사하는 작자의 냉정하고 사실적인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실존(實存)의 차원과 부조리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박력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인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 처하게 될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세계 속에 유폐된 소시민의 생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카프카 문학 중에서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이런 식의 해설을 읽고 문학 작품에 대해 무엇인가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을까. 메뉴판에 있는 음식 사진들을 보면서 배부른 표정으로 만족스러워하는 경우나 마찬가지일 듯싶다. 그러니 이런 해설을 조사해 오라는 과제는 이제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문학 작품을 멀리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짜깁기하는 악습까지 물들게 할 수 있다. 필자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유명한 아무개 시인의 제1시집, 제2시집, 제3시집…. 열심히 조사했지만 실제로 시집들을 제대로 읽은 것은 대학에 진학한 뒤였다. 그때까지 필자는 시가 그렇게 훌륭한 언어 예술이라는 사실을 결코 실감하지 못했다. 그저 동일한 해설 자료를 베껴야 하는 대상인 줄만 알았다.아, 그나마 이 정도는 나은지도 모르겠다.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다음과 같은 자습서식 해설이 여전하니까! 요점 정리 작자 : 카프카(Kafka : 1883∼1924) 갈래 : 중편 소설, 실존주의 소설 성격 : 객관적, 사실적 제재 : 벌레로 변한 인간, 변신 주제 : 소외된 인간의 고독, 인간 실존의 허무 의의 : 현대 문명 속에서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고 살아가는 소외된 인간 모습을 형상화한 표현주의적 소설이며, 실존의 문제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실존주의 소설로 간주되기도 한다. 섬뜩하기까지 한 해설이다.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감동을 어쩌지 못하며, 읽다가 말고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는 행위다. 가슴과 머리가 꿈틀거리지 않는다면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할 까닭은 없다. 카프카의 변신은 현대인의 소외, 가족 공동체의 해체, 비현실적이고 우화적인 이야기, 임금 노동자의 안전, 소통 불가의 세계 등 여러 가지 논제들이 늘 관련되는 현대판 고전이다. 그만큼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은 1915년 체코 프라하에서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다양하고 심오하게 해석되어 오고 있다. 카프카를 직접 읽기가 조금 어렵다면 ‘변신’의 의미를 다양하게 따져보면서 차츰차츰 접근하게 유도하는 것도 좋겠다. *작가, 그리고 함께 읽으면 좋은 작품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1883년 프라하에서 태어난 유태계 독일 소설가로서 1924년에 사망하였다. 체코와 유태계, 독일인 등의 출생 배경은 카프카의 작품 세계를 논의할 때 십중팔구 언급된다. 실제로 프라하만 해도 독일의 신비주의와 슬라브적 경건성, 유대교의 비교 사상이 융합되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유태계라는 특성 때문에 고독감을 키워주었을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여기에 선천적으로 허약하여 훗날 사망 원인이 되는 폐병에 건강 악화로 인한 언어 장애 등 평생 따라다닌 질병은 그의 작품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도 아주 심했는데 변신에서도 잠자의 아버지 모습을 묘사하는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카프카는 극도의 열등감에 시달렸는데 자신이 죽으면 자기 작품 모두를 태워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을 정도였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 가운데 심판과 성(城,) 실종자, 시골의사, 단식 광대 등의 작품이 인상 깊었다. 카프카에 관한 자료나 그의 어록 등을 묶어서 낸 책들도 적지 않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으로 위대한 꿈의 기록(이윤택 옮김, 북인)이 있다. 이 글에서 인용 출처로 활용한 책은 변신(이재황 옮김, 문학동네, 2005)이다. 아르헨티나의 세계적인 화가인 루이스 사카파티(Luis Scafati)의 영감 가득한 삽화가 돋보이는 책으로 변신만 담겨 있다. *생각해 볼만한 문제들 1. 변신, 욕망과 연관된 작품과 현상을 주위에서 찾아보자. 얼마 전에 개봉한 트랜스포머(transformer) 같은 영화도 좋은 사례. (참고 : 다음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타난 ‘변신’의 상징적 의미를 해석하고, 오늘날 이와 유사한 상황으로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지 구체적 경우를 들어 설명하시오.(1998년 한양대 기출문제)) 2. 변신을 그레고르 잠자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읽어 볼 것. 아버지의 말과 행동의 변화는 어떻게 전개되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3. 그레고르 잠자의 시체를 치운 다음에 가족들은 교외로 전차를 타고 나간다. 따스한 햇살을 쬐면서 그들은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장래에 대한 설계를 하느라 바쁘다. 변신의 이러한 마지막 대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과 함께 읽어 보자. 4. 아서 밀러가 쓴 현대의 비극 세일즈 맨의 죽음(The Death of Salesman)(1949)을 읽으며 카프카의 변신과 비교해 볼 것. 세일즈맨인 아버지 윌리 로먼이 자살하는 현대의 미국 가족 이야기는 ‘변신’ 모티프 없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살펴보자. 나아가 변신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도 비교 분석해 보면 ‘딱!’이다. 5. 카프카라면 무조건 읽는 광팬들이 예상보다 많다. 카프카는 시대를 앞서 태어난 천재 문학가다. 카프카의 전 작품에 도전해 보자.
1980년 광주의 봄을 시작으로 80년대를 관통했던 암울한 시대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삶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황석영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오래된 정원은 이러한 질문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영화이다.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등을 통해 시대와 사회의 부조리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을 형상화하는 데 장기를 보여준 임상수 감독은 시대의 그늘과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를 모색하는 원작의 구성을 바탕으로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그 시절 청춘들의 슬픈 자화상에 연민의 시선을 던진다. 우리가 망각해버린 ‘오래된 정원’ 영화는 오랜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온 현재의 오현우(지진희)의 회상에서 시작된다. 80년대 군부독재에 반대하다가 젊음을 온통 감옥에서 보낸 현우. 17년이 지난 눈 내리는 어느 겨울, 교도소를 나선다. 변해 버린 가족과 서울풍경, 모든 것이 그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단 한 사람, 감옥에 있던 17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지갑 속 사진의 얼굴만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바로 한윤희(염정아)다. 며칠 후, 현우의 어머니는 그에게 한윤희의 편지를 건넨다. “소식 들었니? 한 선생, 죽었어.” 이제 카메라는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검거를 피해 숨어든 운동권 대학생 현우를 ‘갈뫼’라는 한적한 마을에 숨겨준 윤희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피생활을 하던 현우를 숨겨줄 사람으로 소개받은 윤희는 첫눈에 봐도 당차고 씩씩하다. 자신은 운동권이 아니라고 미리 선언하면서, 사회주의자라는 현우의 말에 “아… 그러세요? 어서 씻기나 하세요, 사회주의자 아저씨!” 라며 환하게 웃는다. 현우는 그런 윤희와 지내면서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한 평화로움을 느낀다. 두 사람만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은신처인 갈뫼와 최루탄이 난무하는 살벌한 거리를 오가는 카메라는 험난한 시절을 통과해온 이들의 아픔과 시대상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인물들과 일정부분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감독의 연출에 의해 주인공들의 가슴 아픈 사연은 신파적인 눈물을 덜어내고 담담하게 진행된다. 갈뫼에서의 천국 같은 6개월이 지난 후, 동료들이 모두 붙잡혔다는 소식에 갈등하던 현우는 갈뫼를 떠날 결심을 한다. 윤희는 그를 잡고 싶지만 차마 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현우를 떠나보낸 후, 윤희는 수감 중인 현우의 얼굴도 한 번 못보고 홀로 그의 아이를 키우면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감독은 화가의 길을 걸으면서 꿋꿋하게 현재에 충실하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채워나간 윤희의 시선으로 당시의 운동권과 시대를 바라본다. 혼자만 행복한 게 미안했던 시절 영화는 80년 광주에 대해, 한 운동권의 삶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재현하면서 그 시절의 불행한 청춘들을 위로하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섣불리 결론내리지 않는다. ‘사랑도 사치이고 혼자서만 행복하면 왠지 죄책감이 들던’ 시대에 현우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기 위해 개인적인 삶과 청춘을 저당 잡혔다. 이에 반해 윤희는 “인생은 길고 역사는 더 길다. 우리 좀 더 겸손하자… 상황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때 그때 할 일이 또 있을 거야”라고 말하며 힘든 세월을 버텨낸다. 현우의 후배인 ‘영작’은 투쟁의 전면에 나서라는 운동권 조직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한다(이 캐릭터는 후에 정치가의 길을 걸어갈 것임을 암시해 씁쓸함을 남긴다). 감독은 이들 등장인물들에게 때론 연민을 보여주고, 때론 냉소를 보내면서 삶보다 이념이 지배하던 시대의 흉물스러움을 잘 보여 준다. 영화 오래된 정원은 또한 현재의 우리는 80년대의 그 암울한 시절보다 얼마나 더 나은 시대를 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현우의 수감 기간 동안 부동산 졸부로 변모한 현우 어머니(윤여정)의 모습을 보며 부동산이 서민들을 웃기고 울리는 한국 사회를 떠올리면서 쓴웃음을 짓게 된다. 섬뜩하리만치 리얼하게 묘사된 80년대 당시 한 여공의 분신 모습은 현재의 생계형 시위를 연상시키며 마음을 무겁게 한다. 청년 ‘사회주의자’ 현우가 흰머리가 듬성한 중년이 되어 갈뫼를 찾아와 윤희가 남긴 기록과 기억을 더듬어가는 모습은 살아남은 자의 쓸쓸함과 회한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윤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그곳에서 현우는 윤희가 남긴 일기와 그림을 통해 17년 전의 과거와 윤희의 삶 속으로 빠져든다. 이제 한 발자국 떨어진 위치에서 그때 그 시절과 그때 그 사람들을 떠올리고 반추하면서 그리고 윤희가 자신에게 남기고 간 선물을 통해 그는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갈 힘을 얻는다.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윤희가 남기고 간 이 마지막 편지를 통해 그 사랑의 깊이를 헤아리면서 현우는 비로소 자신의 청춘과 사랑을 저당 잡히게 했던 그 시절과 그 자신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심 되살려 영화 오래된 정원은 잘 알려져 있듯이 소설가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자신이 80년 5월 광주를 직접 경험했고 방북 등의 대외 활동으로 인해 수감 생활을 해야 했던 저자의 생생한 체험과 진지한 사색에 의해 탄생된 역작이다. 그래서 소설 오래된 정원은 시대와 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 고통스런 시절을 겪어 내면서 가슴 속에 사연과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묵직하게 담겨 있다. 거기다 저자 특유의 힘 있고 유려한 문체와 유기적이고 서사적인 구성이 더해져서 이야기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이에 비해 영화 오래된 정원은 두 주연 배우의 성숙한 연기에 의해 캐릭터는 생생하게 빛을 발하지만, 원작소설이 주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깊은 울림과 이해는 다소 부족하다. 이는 방대한 분량의 장편 소설을 2시간 내외의 영화로 만들 때 핵심적인 플롯 중심으로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각색을 거치면서 빚어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전작들에서 보여준 감독의 예리한 풍자와 연출력이 뭉툭해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픈 역사라는 무거운 소재를 들고 대중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주인공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의 선택이 보다 적절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지금의 젊은 세대들, 특히 과거의 역사를 잘 모르는 십대들에게는 이런 영화를 통해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또한 특정한 시대와 사회를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늘 사건보다는 그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보여주었던 감독의 관점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더불어 사람들이 망각해버린 것들에 대해 자꾸만 환기시키려는 감독의 노력과 진심도 살아 있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임상수 감독은 그간의 냉소적인 관찰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따뜻한 온기를 뿜어낸다. 살아 있노라면 언젠가는 영화 종반부에 중년의 아버지 현우와 윤희의 당당함을 쏙 빼닮은 딸이 눈 내리는 거리에서 조우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17년 동안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살았던 딸 은결(이은성)은 원망이나 눈물이 아닌 신세대다운 쿨한 태도로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우리 자주 만나죠, … 아버지.” 은결의 이 한마디에 현우는 그간의 모진 세월이 할퀴고 간 가슴의 상처들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윤희가 험한 시절을 살아 내면서 현우의 외로운 인생에 남겨 준 귀한 선물 ‘은결’. 감옥에서의 세월을 버티며 힘겹게 살아남은 현우에게 이 감격적인 순간과 은결의 존재는 남은 인생을 살아갈 이유가 될 것이다. 젊은 현우와 윤희의 아버지, 삭발한 윤희 그리고 딸이 나란히 등장하는 윤희의 그림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살며시 손을 잡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 뭉클함을 자아낸다. “인생은 길다”는 윤희의 말처럼 살아 있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을 꿈꿀 수 있을 것이라는 따스한 위로를 넌지시 건네고 있는 것이다. *영화정보 제 목 : 오래된 정원 감 독 : 임상수 출 연 : 지진희, 염정아 관람등급 : 12세 관람가 제작연도 : 2007년
Q1. 휴가 관련 규정 개정으로 유산 또는 사산한 경우 유산·사산휴가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합니다. A1 교원휴가업무처리요령(교원정책과-1181, 2007. 3. 8)에 따르면 임신 16주 이후 유산 또는 사산한 경우로서 교원이 신청하는 때에는 다음 기준에 따라 유산·사산휴가를 주어야 합니다. 다만, 인공임신중절수술(「모건보자법」제14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경우는 제외)에 의한 유산의 경우는 휴가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임신기간에 따른 휴가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산 또는 사산한 교원의 임신기간(이하 “임신기간”이라 한다)이 16주 이상 21주 이내인 경우 : 유산 또는 사산한 날부터 30일까지 (2) 임신기간이 22주 이상 27주 이내인 경우 : 유산 또는 사산한 날부터 60일까지 (3) 임신기간이 28주 이상인 경우 : 유산 또는 사산한 날부터 90일까지 ※ 참고로 1주는 7일이므로 임신 106일부터 147일까지 30일, 임신 148일부터 189일까지는 60일, 임신 190일 이후는 90일이 됩니다. ※ 휴가기간은 유산·사산한 날부터 기산하므로 유산·사산한 날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서 청구하면 그 기간만큼 휴가기간이 단축됩니다. ※ 임신 16주 미만(105일까지) 기간 중에 발생한 유산의 경우는 일반병가를 허가받을 수 있습니다. Q2. 정년퇴직 예정인 교원입니다. 일반공무원은 퇴직 전 휴가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교원의 경우도 휴가가 없어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A2 퇴직준비휴가의 경우 일반공무원은 2006. 1. 1부터 폐지되었으나, 교원의 경우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교육공무원법」제47조에 의한 정년퇴직과 「교육공무원법」제36조에 의한 명예퇴직을 할 교원은 퇴직예정일 전 3월이 되는 날부터 퇴직예정일 전일까지 퇴직준비휴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명예퇴직 시 퇴직준비휴가는 「국가공무원명예퇴직수당지급규정」또는 「교육공무원명예퇴직수당지급에관한특례규정」에 의하여 명예퇴직수당 지급대상자로 결정되어 그 통보를 받은 날의 다음 날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명품 환경으로 명품 교육 제공해요”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서부초(교장 김성) 운동장에 들어서면 옛 초가집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선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운동장 한 쪽에 위치한 체육 교보재 창고에 그려진 벽화의 모습이다. 건립된 지 30년이 넘어 미관상 보기 싫었던 건물의 외벽에 벽화를 그린 것은 김 교장의 아이디어. 김 교장은 학교 환경 개선을 위해 지난 여름방학 내내 아이들과 직접 벽화를 완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벽화는 운동장 한쪽에 조성돼 있는 정원과 함께 서부초의 자랑이 됐다. 주민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학교 만들어 서부초는 행정구역상 경기도지만 서울시 강동지역과 인접해있어 학생들이 모두 서울로 진학을 하는 특수한 환경에 있다. 서울의 인접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낙후한 지역 환경 탓에 지역 주민들로부터도 외면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지난 2003년 김 교장이 부임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김 교장은 우선 학교 환경미화에 공을 들였다. 학교 담을 없애고, 체육관을 새롭게 지어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또 오래된 온실 내부에 벽화를 그리고, 마치 작은 숲속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정원을 새롭게 조성했다. 수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고등학교 못지않은 다양한 기자재를 갖춘 과학실을 만들고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실내 골프장, 탁구장 등 운동시설도 보강했다. 전교생의 80%가 넘는 학생들이 프로골퍼로부터 매주 골프 수업을 받고 있다. 또 도서관에도 책을 보충해 현재 학생 1인당 35권이 넘는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김 교장은 학교 환경미화에 힘을 쏟은 것에 대해 “처음 부임했을 때 학교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고, 학생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며 “학생들에게 애교심을 심어주고 지역 주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부모 대상으로 강의하는 교장 선생님 서부초에서는 학부모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도 공을 들였다. 우선 교내에 학부모실을 만들어 학부모들이 편하게 찾고 동네 사랑방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모든 재량활동과 체험활동을 학부모들과 의논해 결정하고 직접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2달에 한 번씩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김 교장이 직접 특강을 진행한다. 김 교장이 교육부, 여성부, 환경부 자문위원, 양성평등·성희롱·성교육·학교폭력·환경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쌓은 노하우를 학부모들에게 전수하는 시간이다. 김 교장은 “우리 학교 학부모가 100여 명에 불과하지만 매 강의 때마다 6~70명씩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가정의 소중함, 양성평등에 대한 교육을 하는데 가정불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학부모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강의 내용에 대한 호응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이 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효과도 크다”고 자랑했다. 서부초에서는 학생들에게 애교심을 높여주기 위해서도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벽화 그리기, 정원 조성 등에 학생들이 참여했다. 온실 내부 벽화 그리기에 참여한 학생들은 졸업한 이후에도 학교를 찾는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또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학교 정원에 설치한 새장에는 새들이 날아와 알을 낳기도 했다. 학교 학생들을 모델로 한 학교 엽서도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 모습이 담긴 엽서는 매년 1500장 이상이 사용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학교에 대한 홍보 효과도 높이고 있다. 이 밖에도 체험학습에 참여하는 모습을 촬영해 1시간 분량으로 편집한 비디오나 CD를 제작해 나눠주고 매년 전교생이 참여하는 동시집 봄 새싹을 발간하고 있다. 김 교장은 “모교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학생은 상급학교로 진학한 이후에도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명품 환경을 통해 명품 교육을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아이들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제1.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현실을 진단하고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이를 근거로 바람직한 한국 초등학교 수업의 청사진을 밝히시오. 제시문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지향점은 객관주의 패러다임(objective paradigm)에서 주관주의 패러다임(subjective paradigm)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주관주의 패러다임은 보편적 진리(truth)의 존재를 부정하며, 이것은 객관적 지식(knowledge)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주관적 패러다임은 학교교육의 전문가인 교사가 갖고 있는 전문적 지식의 보편적 객관적 과학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학생 개인의 능력에 맞게 수정되고 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학교교육도 학생중심, 발견학습, 팀 티칭, 멀티교육과정, 무학년제, 협동학습, 개별화교육 등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현재 우리나라 교육과정도 주관적인 패러다임이 제시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주관주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교실수업 혁신방안에 따르면 선도·협력학교로 선정된 24개교 학생들은 교사들로부터 학습과제만 제시받을 뿐 수업방식이나 장소는 스스로 결정하게 됩니다. 서울시교육청 손웅 장학사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팀을 짜 도서관도 찾아가고 교실 밖에서 토론도 하며 학습 계획과 과제물 형태까지 스스로 정하는 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의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은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현실여건에 비추어 볼 때 그 실현가능성에서 많은 논란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답안 작성 시 유의사항 1.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200자 이내로 작성할 것 2. 자신의 신원이 드러날 수 있는 표현이나 표식을 하지 말 것 예시답안 시대가 변하면 수업내용과 방법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교양을 위한 관조적, 이론적 지식관이 아닌 실생활과 연결되는 문제해결을 위한 총체적 지식관을 바탕으로 자기주도적 학습력 신장에 주력해야 한다(학교는 학생들의 풍요한 미래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미래의 삶과 괴리된 많은 양의 지식을 피상적으로 주입·암기시키고 있다. 현실과 괴리된 학교교육은 아동들의 흥미, 능력, 요구 등이 쉽게 무시되고, 수동적인 학습 태도를 형성하며, 일제식·주입식과 같은 설명 위주의 수업, 분절된 단편적인 지식 주입 교육은 사회·문화적인 특수성의 고려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수동적인 학습자를 양산한다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객관적 패러다임이 아닌 주관적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지식을 생산하는 학습자관을 바탕으로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을 마련했다고 본다. 이는 정보화, 세계화, 지식기반사회의 시대적 배경과 구성주의 철학의 입장에서 우리가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선 학교와 지역사회의 학습의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과 평가체제 등이 마련돼야 하고, 교사들의 의욕과 전문성이 구비되지 못했다. 지역사회에서는 주관적 패러다임에 따라 학습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을 제공해 줄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교실 수업에 익숙한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 학습이나 협동학습을 할 만큼 자율성과 학습 방법 및 능력이 구비되지 못했다. 결국 현재의 여건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예상된다. 따라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적으로 주관적 패러다임에 의한 교실수업방안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수를 실시한 후 지원하는 학교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실시하면서 지역사회가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 학교는 그와 관련된 연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교사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평가체제를 마련해야 하며, 학생들도 자율적 학습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즉, 가정·학교·사회가 상호 연계하여 학생들의 자율적 학습을 도울 수 있는 여건과 풍토를 제공해야 교실개혁방안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교육도 변하기 마련이다. 객관적 지식을 습득하기보다 지식과 정보를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해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지식의 창조자로 보는 구성주의적 학습방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정, 학교, 사회의 여건이 요구되는 만큼 학생과 학부모들은 시대적 지식관을 인식하고, 지역사회는 학습의 장으로서 조건을 구비해야 하며, 학교와 교사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합한 교육내용과 방법 및 평가체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현실을 진단하기는 매우 광범위하고 어렵다. 초등교육의 현실을 지문에서 제기된 교실수업방법을 중심으로 제시하면, 현재 교육현장은 객관적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주관적 패러다임, 즉 아동중심교육으로 옮아가는 과정에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제시한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수업 형태는 극단적이고 배타적 형태의 아동중심교육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초등학교 교육현장은 급당 크기가 40여 명에 이르며, 교사들은 아동 중심 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다. 교육개혁에의 요구는 학교현장의 실천적 문제에 기인하여 하의상달(bottom-up)된 것이 아니라 상명하달(top-down)식의 형태를 띤다. 그리고 학생들은 학교환경에서 전문가 중심 교육에 노출되어 있다. 더구나 서구에서의 교육개혁 기본 전체가 기계적 관료체제와 전문적 관료체제로 된 현재의 공교육체제를 아동중심, 프로젝트 중심의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같은 특별위원회 성격으로 변화시킴을 기본 전제로 하는데 반해, 현재 한국의 교육체제에서는 여기에서의 본질적인 변화를 전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팀 티칭, 멀티교육과정의 운용, 무학년제 실시, 개별화 교육 등과 같은 주관주의 교육의 한국적 전개는 현 상황이나 가까운 미래에 성공적으로 접목되기는 어렵다고 보며, 지문에서 제시된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은 한국의 교육현실을 고려하면 실현가능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를 토대로 바람직한 한국 초등학교 수업의 청사진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문가 중심 교육과 아동 중심 교육이 배타적 관점에서가 아닌 상보적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반복학습 등의 전문가 중심 수업은 발견학습 등의 학생 중심 수업과 공존할 수 있다. 그리고 발견학습 등의 아동주도 학습은 이상적이기는 하나 시간의 부족이나 시행착오 등 비현실적인 측면이 많다. 둘째, 교실수업 혁신방안은 한국의 교육적 자원을 고려하여 점진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40여 명에 이르는 급당 크기에서 개별화 교육에 의한 수업이나 멀티교육과정을 적용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학급당 크기의 감소나 보조교사 확보 등의 교육적 자원의 확보가 변화의 기본 전제가 돼야 한다. 셋째, 학교 체제가 특별위원회 성격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학교 체제에서는 행정전문가가 교육전문가를 통제하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교육전문가가 아동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문제가 된다. 미국 항공우주국과 같은 특별위원회 성격의 학교에서는 기계적 관료체제가 전문적 지배체제를 간섭하지 못하며 전문가들은 아동의 요구 중심으로 쉽게 이합집산할 수 있다. 넷째, 초등학교 수업은 서구에서 도입된 특정 지배 패러다임에 의해 진행하기보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교육적 토대 하에서 초등교육학의 지식기초를 끊임없이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집단적이고 전문가 중심의 수업보다 개인의 독특한 요구에 부합하는 주관주의 교육철학이나 당위성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패러다임이나 이론 등의 상위지식은 수업실제 등 교육현실을 고려하여 실천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교육에서의 주관주의 패러다임의 교실수업 전개 또한 한국의 독특한 교육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문제2. 제시문 (가), (나) 두 인간상은 형식적 교육과 비형식적 교육이 낳은 결과이다. (가), (나) 두 인간상을 지식 중심 교육과 인간 중심 교육의 관점에서 비교 서술하고 (다), (라) 내용을 참고하여 우리나라 교육의 지향점에 대해 논하시오. 제시문 (가)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비리사건 기사 내용 : 비도덕적 기업 운영과 불법 대출, 재산은닉, 해외도피 등 (나) 이희승의 딸깍바리라는 소설의 한 내용 : 쪼들리는 생활 속에서도 샌님이 가정 경제는 생각하지 않고, 사서오경 등과 같은 자신의 도덕과 지식의 수양에만 몰두함. (다) 대구교대 조용기 교수의 논문 일부 : 학교교육은 지식습득이 아니라 삶의 형식을 확립하는 일이 그 주된 목적이 됩니다. 학습이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듀이 식으로 말하자면, 학습은 학습이기 이전에 우선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브루너(1963) 식으로 말하자면 교실은 ‘문화살기(culture-in-practice)’를 하는 곳, 즉 삶을 준비하는 곳이라기보다 ‘연습’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지식을 가르치지 말고 삶을 가르치자는 것이며, 지식을 살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식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삶의 형식에 손상을 줄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의미 있는 지식습득의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성주의의 ‘맥락’이라는 용어는, 학습과정은 지식습득 과정이라기보다 삶의 연습과정으로, 학생들이 학습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삶의 진보란 개인의 진보보다 ‘공동체의 진보’를 더 중요시해야 하고, 인류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할 것임. 길잡이 본 문제는 최근의 지식중심교육의 문제와 비실용적 지식(실생활과 괴리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구성주의 교육과 도덕성 및 공동체 의식 함양교육에 대한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한 배경지식은 지식교육의 한계점과 구성주의 학습이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예시답안 바람직하지 못한 교육풍토 속에서 올바른 지식인이 성장할 수 없다. 얼마 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초등학생의 사건은 우리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된 교육은 인간의 다양성을 전제로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이 발현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촉진하는 활동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지식위주의 획일적 교육과 삶과 괴리된 교육으로 인해 교육병리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제시문 (가)는 지식중심교육으로 지·덕·체의 조화로운 발달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도구화됨으로써 인간성과 도덕성 부재로 사회문제를 유발하게 된 것이다. 즉, 가슴은 없고 머리만 성장한 인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제시문 (나)의 ‘샌님’은 인간중심 교육으로 인(仁)과 예(禮)를 갖춘 도덕적인 군자로 성장했지만, 삶과 괴리된 교육으로 실생활에서의 문제해결능력이 떨어진 인간을 양성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전체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통찰적 이해가 부족한데 기인한다. 그런데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요구되는 인간은 자기주도적인 학습력을 신장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식을 재구성하고 실생활 속에서의 문제해결을 잘하며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해야 한다. 지식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맥락적 요청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으로서 학습자의 삶에 의미가 있으면 진리이고 지식인 것이다. 이에 교사는 학습자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하여 교실의 경험들이 실제 생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안목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공동체 의식 함양교육을 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사회를 떠난 개인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민주주의를 생활양식으로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체험학습, 협동학습, 토론 등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교의 지식이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환원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 있고, 학교는 지식전달의 장임과 동시에 삶의 터전이다. 지·덕·체의 조화로운 인간과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앎으로서의 지식이 학습자에게 내면화되고 삶 속에서 생활화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교육이 바로 서고 사회와 국가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PCK 1. PCK의 의미 PCK는 PK(Pedagogical Knowledge)와 CK(Content Knowledge)의 합성어로 교수법적인 지식과 기능(PK) 그리고 교과 내용에 대한 지식(CK)을 함께 의미한다. 즉, 내용 교수법이란 ‘특정 내용을 특정 학생들의 이해를 촉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교사의 지식’을 말한다. PCK는 본질적으로 교과 내용에 따라 달라지므로, 교과 내용에 고유한 교수법이라고도 불린다. 2. 내용 교수법 지식(PCK)과 일반 교수법 지식의 차이점 가. 내용 교수법에서는 특수성이 일반화의 토대가 된다. 교과 내용의 특수성, 학생 수준과 요구의 특수성, 교실 상황의 특수성이 내용 교수법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특수성들을 기초로 표출되는 고유의 내용 교수법이 주어진 주제에 대한 하나의 내용 교수법의 전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일반 교수법은 일반화가 특수성의 토대가 된다.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절차와 모형을 특수한 교실 상황에 적용하면서 특정 사례들을 축적해나간다. 나. 내용 교수법은 지속적인 발전 과정에 있는 것으로 완성형을 지향하지 않는다. 특정 내용에 적합한 교수법은 하나일 수 없으며, 적게는 내용 교수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수만큼, 많게는 그 주제를 가르치는 교과 교실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일반 교수법은 교과 특수성이나 교실 특수성을 초월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진술문으로서, 구체적인 상황과 맞지 않을 때는 교사 스스로 그 세부 사항들을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3. PCK와 수업 컨설팅 가. 교과별 PCK는 교사 전문성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므로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교과별 수업 컨설팅, 즉 교사 전문성의 구성 요소별 문제점 진단 및 학습 프로그램 처방을 통해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 수업 컨설팅이 학교현장에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수업 컨설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의 토대 위에 전문적인 수업상담 능력을 갖춘 컨설턴트가 반드시 요구된다. 일반 상담에서 상담가를 양성해 내는 것과 같이 수업 컨설턴트 또한 직접 수업을 해 본 경험이 있어야 하며,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고 상담을 받아보고 그 과정을 통해 수업을 개선하려는 교사의 입장과 상담 과정에서 받게 되는 다양한 자극들을 직접 경험해 봐야 하고, 수업상담의 과정을 수련하는 과정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잘 체계화된다면 자격을 갖춘 전문 수업상담가가 양성될 수 있을 것이며, 수업의 질을 제고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제도는 합리성을 가정하고 만들어진다. 제도의 합리성은 제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결정된 제도를 관련자들이 받아들일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제도의 모습이 결정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비추어 반대도 하게 되는데, 제각기 자기의 이익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합리성이 필요하게 된다. 일찍이 디싱(Dissing, 1962)은 합리성의 내용을 중심으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어떠한 내용의 합리성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합리성을 구분하였다. 즉, 합리성을 기술적·사회적·법적·정치적 합리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교장공모제의 합리성을 살펴보기 위해 디싱의 분류방식을 분석의 틀로 삼고자 한다. 목표 달성하기 어려운 해결방안 기술적 합리성(technical rationality)이란 목표에 대한 수단의 정확성을 의미한다. 목표와 수단의 이분적 관계를 전제하고 목표성취에 가장 적합한 수단을 찾는 것이 기술적 합리성이다. 교장공모제의 목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공모제를 통해 과열승진 풍토를 해결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모제를 통해 젊고 유능한 교원에게 교장응모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먼저 전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과연 교장공모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교원들이 승진으로 인한 교육력 낭비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예전의 승진임용제보다 경쟁자가 많아져서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교장 임용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교장 승진제도가 없다고 해서 교장이 되려고 경쟁하는 대신에 교사 본연의 역할에만 매진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인간은 대부분 상위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상위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거나 제한된다고 해서 그 욕구가 없어지거나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든다면 일선 학교에서는 교원들 가운데 일명 ‘교포교사(교장·교감 포기자)’가 있다. 교장공모제의 주장대로라면 교포교사는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전념하는 교사였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포교사 중에는 승진의 욕구를 학생교육활동에 전념함으로써 해소하는 경우보다는 각자의 취미, 여가생활을 통해 조직사회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교장공모제의 두 번째 목표는 공모제를 통해 젊고 유능한 교원에게 교장응모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고, 그래서 공모교장의 응모자격을 초·중·고 교육경력 15년 이상의 현직교원 및 교육공무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초·중·고 교원의 교육경력 15년이면 1급 정교사에다가 보직 경험이 있을 정도의 경력이다. 보직은 해마다 업무분장이 바뀌게 되어 있어, 일관성 있고 체계성 있는 경험이 어렵다. 그리고 보직교사 중에서도 학교경영과 관련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교무업무를 총괄하는 교무부장 경험이 필요한데, 교직경력 15년 정도에 교무부장을 경험하기는 우리나라의 교직풍토에서는 어렵다. 따라서 학교경영 소양을 가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교감 직급의 경험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교감은 법적으로 그 지위와 권한이 보장되고 있고, 그에 따라 교장의 학교경영을 보좌하고 때로는 그 직을 대행하기도 한다. 학교경영은 학교조직을 제대로 이해할 때 가능하다. 교직경력 15년 정도이면 가르치는 교수 전문성과 더불어 업무분장에 따른 담당 사무의 전문성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학교를 경영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에는 경험상, 직급상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구성원 통합 저해할 수 있어 사회적 합리성(social rationality)이란 사회체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간의 조화로운 통합을 의미한다. 사회체제의 구성요소들이 서로 갈등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에 나타나는 상호의존적인 질서체계를 사회적 합리성으로 간주한다. 교장공모제의 사회적 합리성은 이 제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 통합을 이루는지 그리고 교직문화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지의 여부와 관련된다. 먼저 교장공모제의 사회적 책임 측면을 살펴보면, 학교교육은 공공재이므로 교육당국은 국민에게 운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의 교육체제로 보면 교육당국(교육부, 교육청)이 학교의 지도·감독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교장에게 일정 부분의 책임과 권한을 위임·이양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국민을 상대로 교장의 전문성을 보증하는 최소한의 기제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자격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격 없는 교장의 임용은 교육당국의 국민에 대한 책무성에 문제를 야기한다. 그리고 가르치는(teaching) 전문성과 경영(management) 전문성은 다르다. 교사로서 교수행위, 학급경영, 학생이해 등에 대한 능력이 교장으로서 학교경영의 전문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물론 교사로서의 경험이 학교를 경영하는 데 폭넓은 식견을 발휘하는 토대가 될 수는 있지만, 교장의 역할 수행에 직접적인 자질은 아니다. 이는 마치 기업에서 생산직 근로자 경력 15년이면 누구나 좋은 CEO가 될 수 있다는 논리와 같다. 최근에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교장의 자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다양화되었던 교장자격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전국적인 표준화를 진행시키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국립 교장자격 연수원을 설치하고 모든 교장에게 반드시 이곳의 자격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교장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고 있다는 시대적 흐름을 보여준다. 둘째로 교장공모제의 문화적 측면을 살펴보면, 공모로 선발된 교장이 교직사회 안에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교직사회는 일반직 공무원이나 군인, 경찰 조직에 비해 상하 간의 관계가 느슨히 결합(loosed coupling)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직급에 따른 명령체계보다는 교직을 지배하는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교직사회는 직급으로 보면 교장, 교감, 교사로 구분되지만, 그 안에 비공식적으로 교육경력에 의한 위계질서가 상당히 크게 작용하는 조직이다. 비록 교사들은 직급 상으로는 같은 교사이지만 교육경력이 높은 교사가 낮은 교사에게 작용하는 권위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공모과정을 거처 임용된 교장은 이러한 연공서열에 익숙한 교직사회에서 적절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모교장과 교사 사이의 갈등과 더불어 교장 사이에서도 갈등의 소지가 많다. 교장들 사이에서 교사출신 공모교장과 교장자격증을 갖고 승진 임용된 교장 사이에도 갈등이 예견된다. 중앙집권적 학교관리 체제 하에서 단위학교의 교장은 인근 학교 교장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공모교장이 교장사회에서 주류로 진입하지 못한다면 교장직 수행에도 영향이 미치게 된다. 나아가 공모교장과 교육청(인사)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의 소지가 있다. 중앙집권적 교육행정체제 내에서 교육청 인사는 그들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승진 임용된 교장에 더 호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권 보장 위한 법적 타당성 부족 법적 합리성(legal rationality)이란 사람들 사이에 권리와 의무의 관계가 성립하고 이를 준수할 때 나타난다. 법적 합리성은 공식적인 질서와 규범을 제시해 주고 여기에 근거하여 인간행동을 예측가능하게 한다. 교장공모제는 학교의 책무성, 나아가 교장의 책무성에서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공모교장은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이 교장 선발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들 참여자들은 권한과 권리만 있고 책임이 불확실하다. 현재의 학교는 학생들이 선택한 곳이 아니라, 교육청에서 지정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가 좋으나 싫으나 다녀야 한다. 학교의 학부모들은 이들 자녀의 부모들로 구성되는데, 이들 중 학부모 대표가 공모교장의 심사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한편, 교사들은 그들이 영원토록 근무하는 학교가 아닌 잠시 근무하는 학교의 구성원이며, 교육청 인사 또한 잠시 담당하는 학교에 참여하게 될 뿐이다. 이와 같이 공모교장은 선택이 제한된 학생과 그들의 학부모, 책무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교사와 교육청 인사들이 구성돼 선발하게 된다. 이때 공모교장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학교 교육력을 높이면 문제는 드러나지 않겠지만, 문제는 만약 공모교장이 교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 때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이다. 그 책임은 교사, 교육청 인사도 아닌 학생들의 피해로 끝이 나버린다. 정부에서 임명한 교장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법적으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민주적 절차에 의해 임용된 공모교장의 역할 수행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전적으로 질 수 있는지, 아니면 공모 심사과정에 참여한 이해당사자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공모교장 개인이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등과 관련하여 법적 합리성이 미흡한 상태다. 즉, 교장공모제가 우리나라의 교육체제에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하겠다. 선진국의 교장공모제는 우리나라와의 상황과는 다르다. 거기에는 학교자치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에 따라 학생 및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이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 선택, 학교 자치와 같은 교육구조가 공모교장의 책무성을 통제할 수 있는 기제로써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즉, 공모교장의 경영실적이 부족하면 바로 해고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교장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교원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교장하는 것이 밑져야 본전이다. 외국의 경우 공모교장이 운영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교장의 학교경영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일반학교는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제한되어 있으며, 만약 공모교장의 학교경영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교육연한을 마쳐야 한다. 이와 같이 교장공모제는 우리나라의 교육체제에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법적 적합성이 상당히 미흡해 보인다. 학교의 정치장화 막을 길 막막 정치적 합리성(political rationality)이란 사회의 가치를 수렴하여 이익이나 목표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인 절충이나 협상 및 흥정의 과정을 통한 합의 형성의 정도가 정치적 합리성의 평가기준이 된다. 여기에서는 참여자들 사이의 의견일치가 그 핵심이 된다. 교장공모제는 학교의 상급기관에서 교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관련된 다양한 인사들이 공모교장 심사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민주적인 교장 임용제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치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교장공모제가 학교에서 교장 임용과 관련하여 정치장화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때 교장 공모 과정에서 교육청 인사, 단위학교 교사, 학부모, 지역인사 간의 알력 다툼, 나아가 교직단체 간의 대립과 갈등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교장을 공모할 경우 교직단체 사이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정치적 과정이 수반되게 되고 그 가운데 교사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그리고 특정 교직단체의 배경을 얻고 임용된 교장은 반대편 교직단체 소속 교사들과의 대립관계가 교장 임기 동안 계속될 수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이미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성과 운영과정에서 교직단체 간의 세력화 나아가 대립, 운영위원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학교운영위원회의 기능뿐만 아니라 학교 구성원의 편 가르기로 이어지고, 결국 학교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학교의 정치장화는 교육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다. 정치가로서 국회의원은 국정운영에서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하면 선거를 통해 평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무작정 알력 다툼이나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일반 공립학교의 교원은 순환전보체제로 되어 있어서 구성원들 간에 정치적 다툼이 있다고 해도 몇 년 뒤에는 그 학교에 없다. 교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른 학교로 옮겨가기 때문에 학교의 정치장화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리고 학부모나 지역사회 대표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도 권리만 있지, 그 책임을 묻거나 직무수행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전무하다. 결국 학교의 정치장화의 폐해는 오직 학생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다. 잘못된 제도의 희생양은 학생들 교장공모제의 탄생 배경은 그동안에 교장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과 교장이 되기 위한 승진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것이 안 좋으니까 저렇게 해보자는 식의 방향 설정은 곤란하다. 만약에 그 방향이 틀리면 그동안의 학생들은 어쩌란 말인가. 국가는 교육사업에 대한 책무가 있다. 그리고 교육의 질을 보장할 책임도 있다. 그 어떤 개선방향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보장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면 곤란하다.
이 글은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다각도에서 평가하고자 하는데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이다. 우선 ‘참여정부’란 용어 자체가 별로 탐탁하지 않다. 아마 노무현행정부를 의미하는 모양인데 이 행정부는 ‘참여’라는 용어와는 반대로 편 가르기와 패거리를 많이 하고 편향된 정책과 행정을 많이 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원평가제와 교원승진규정 개정의 뿌리를 찾기 위하여 먼저 노무현 대통령의 교육공약을 회상해보고, 참여정부의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정책평가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해 정책의 목적과 방법의 주 측면에서 나름대로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교육공약 현 정부는 ‘우수교원확보법 제정과 초정권적 교육혁신 기구 설치’를 공약하고 출발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교육공약 특징은 교원정년 현행 유지 공약에서 드러나듯이 국민의 정부 정책을 계승하고 또 보직제 등 교장임용제 개선, 학교운영위원회 기능 강화, 사립학교법 전향적 개정 등을 들고 나와 자칫 학교를 정치장화 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머물고 싶은 학교, 학벌사회를 실력사회로, 획일교육을 다양성교육으로, 타율적 학교를 자율적 학교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노무현 대통령의 주요 교육공약은 다음과 같았다. ▲우수교원확보법 제정 ▲담임수당 현실화 ▲교원자녀 대학학비 보조 ▲무주택 교원 주택마련 지원 확대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정 ▲점수제에 의한 승진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편 ▲외부초빙제·보직제 포함 학교장 임용제도 다양화 ▲기간제 교원 신분 보장·처우 개선 ▲초과수업수당 근거 마련 ▲교과전담교사 확충 ▲교원자율연수 휴직제 수혜자 대폭 확대 ▲교원 연구비 지원 대폭 확대 ▲학교운영위원회 기능 강화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를 법제화하고 그 대표자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교사의 수업자율성 확대 ▲사립학교법 전향적 개정 ▲고교평준화 정책 기조 유지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단위학교 수준으로 대폭 자율화·특성화 ▲수능시험 복수 응시 가능 ▲특기·적성교육에 과감한 예산 지원 ▲대안교육과 실험학교 적극 확대 ▲도시개발 시 교육환경 영향평가제 도입 ▲학생체험활동 최소이수시간제 도입 ▲재택학습 가능토록 정보화 연계망 구축 ▲대학의 다양화·특성화 추진 ▲고등교육 재정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확대 ▲지방대 육성 지원법 제정 ▲초·중등 과학교육의 내실화, 과학영재교육 체제 구축 ▲대학 시간강사 법적 지위 마련 ▲농어촌교육진흥특별법 제정 ▲만 5세아 무상교육 전면 실시 ▲학교보건지원센터 설립 ▲실고 교육 무상화 실현 ▲국가 인력수급 중장기 계획 수립 ▲교육재정 GDP 6% 확보 ▲지방자치단체 전입금 단계적 확대 ▲초정권적 초당적 교육혁신 기구 설치 ▲교육부 개혁 적극 추진 ▲교육정책 실명제 실효화 이 중에서 ‘점수제에 의한 승진제도 합리적으로 개편’이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의 불씨가 됐다. 좋은 공약은 하나도 실천할 생각을 못하고 나쁜 것만 끝까지 끌고 오는 셈이다. 대통령직인수위의 중점추진과제 중 교원 전문성 강화 방안의 하나로 역시 ‘승진제도를 점수제에서 능력위주로 개편한다(2003. 2. 28)’는 것이 들어있었지만 참여정부 5년 로드맵(2003. 6. 7)에는 이 내용이 빠졌다. 그러나 교원승진제도개선위를 구성(2003. 7. 5)하여 경력, 교육성적, 가산점으로 되어 있는 평정방식을 개선한다고 교원정책현안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를 한다고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교육혁신위가 마련한 ‘교원양성 및 연수·승진·임용제도 개선안’을 보고하려다 교원평가제(전교조)와 교장공모제(교총)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하였다. 이어서 교원안정화대책위를 만들어 3개영역 16개 과제를 마련하였는데 제2영역(교원인사제도 혁신을 통한 전문성·책무성 강화)에 ‘교원평가·승진제도 개선’이 들어 있었고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어 대토론회를 한다고 발표하였다. 교원평가제의 추진과정과 주요내용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승진규정 안에 교원의 근무평정과 경력평정, 연수성적 등 교원평가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승진규정 개선에 관한 논의가 나오고 이를 추진하다가 교원평가제가 별도로 떨어져 나와교원평가제가 더 부각되는 결과가 되었다. 현재의 교원평가제는 1998년 국민의 정부 대통령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1999년 교육발전5개년계획시안, 2001년 교육부 교직발전종합방안, 2003년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원인사정책혁신방안에서 논의 되다가 2004년 2월 17일 당시 안병영 교육부장관이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교원평가시스템을 도입하고 교원의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 지원을 위한 평가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교육계 안팎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김동석, 2006)고 한다. 당시 교육부는 다면평가제란 이름으로 동료교사와 학부모가 교원평가에 참여하고 교원의 자기계발과 교수·학습지도력 향상에 활용하고, 우수교원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며, 교수·학습지도력 부족 교원에 대하여는 특별연수 등의 조치를 취하고 학교경영결과를 교장인사에 반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2004년 3월 2일 청와대에 보고하였다. 공청회를 하는 동안 반대에 부딪치자 교육부는 이에 대한 연구를 한국교육학회, 한국교육행정학회, 한국교육평가학회에 의뢰하여 새로운 교원평가시안을 마련하여 교육부에 제출하면서 힘을 받게 되었다. 결국 3개 학회가 교육부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이어서 2004년 12월에 광주, 대구, 서울 토론회와 공청회의 형식을 거치게 되는데 교원, 학부모는 모두 이를 거부하게 된다. 그 사이 교육부장관이 김진표 장관으로 바뀌면서 교육부는 청와대 주요업무보고에서 교원평가에 교장까지 포함하고 48개 학교를 시범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완화된 교원평가제 개선방안을 내놓았지만 교원평가제는 계속적인 반대에 부딪친다. 그리고 전교조에 의하여 공청회 자체가 무산되기도 하고(2005. 5. 3),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각종 반대운동이 전개되는 중에 교육부는 2005년 9월 시범운영을 고집하면서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교육부는 2005년 11월 교원평가 시범학교 운영계획을 마련하고 48개교 공모에 들어갔다가 67개로 확대하였다(2006. 1. 18). 그리고 ‘교원능력개발평가정책추진방향(시안)’에서 3년 주기로 교사의 수업계획·실행·평가에 관한 사항을 평가, 개별 교사에게 통보하여 교원의 능력 신장에 활용하는데 평가에는 교장, 교감, 동료교사,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게 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교원평가에 관한 법을 연내에 입법예고하고 500개 학교에 적용한다고 하였다. 2007년 현재 전국 500여개 학교에서 교원평가제가 시범 운용되고 있는 셈이다. 교원평가 시범학교 운영결과가 일부 보고되었는데 서울시교육청에 의하면 교사의 93%가 동료교사에게 ‘탁월’ 또는 ‘우수’ 평가를 하고 수업계획, 수업목표, 수업설계, 수업평가에 ‘미흡’ 또는 ‘매우 미흡’으로 평가한 것은 1%도 안 되어 변별력이 없고, 교사들은 ‘친분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하였다. 학생들의 만족도 조사에서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져 초등학교에서는 74%가 만족 이상인 반면 중등학교에서는 57%에 그쳤다. 학부모도 초등학교는 61%가 만족 이상인 반면 중학교는 48%에 그쳐 학생과 마찬가지로 상급학교로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지고 또 학부모가 학생에 비하여 만족도가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한교닷컴 2007.08.02, 문화일보 2007.08.02). 국회는 교육부가 제출한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는 교원능력개발평가 시행 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심의하려다 논란이 일자 이를 2007년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미룬 상태에 있고 그 사이 교육공무원승진규정만 개정되었다. 현재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제9조 제2항(교원능력개발평가)에 ‘①교육인적자원부장관 및 교육감은 제2조의 초등학교, 중학교 및 고등학교 소속의 교원에 대하여 상급자 및 동료, 학생 또는 학부모의 참여에 의해 실시되는 교원의 능력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평가를 실시한다 ②교육감 또는 학교장은 제1항에 의한 교원능력개발평가와 능력개발 지원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시하여야 한다 ③제1항에 의한 교원능력개발평가의 시행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여 국회 통과로 개정해놓고 시행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으로 쉽게 신설하려는 속셈인 것으로 보인다. 승진제도 변경 과정과 주요내용 2003년 8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어 실시한 대토론회 이후 승진제도에 관한 논란은 잠시 뜸했지만 2005년 12월 교육부는 ‘교원연수성적 산출방식 개선방향’을 발표하고 점수별 분포비율을 바꿔 90점대를 줄어들게 하였다. 그러다가 교원승진제·교장임용제에 관한 교육부 시안이 나왔는데(2006. 2. 20) 경력평정기간을 25년에서 5~10년 줄이고, 점수비중도 90점에서 70~80점으로 줄이고, 근무평정에 동료의 다면평가를 도입하며 근평기간도 2년에서 10년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개정된 승진규정의 골격은 이미 이때 마련된 셈이다. 2007년 5월에 통과된 승진규정개정안의 주요내용을 보면 경력 반영은 25년에서 20년으로 연차적으로 5년 단축하고 90점에서 70점으로 줄이며 근평기간을 2009년까지는 2년으로 하지만 2010년부터는 매년 1년씩 늘려 2017년까지 10년치가 반영되게 한다. 근평점수 비중도 80점에서 100점으로 높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교장 40%, 교감 30%, 동료교사 30% 비율로 반영되고 근무평정 총점이 공개된다. 선택 가산점은 교육부 연구·실험·시범학교, 재외국민교육기관 파견, 직무연수 등과 관련한 공통가산점 만점을 3.5점에서 3점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직무연수 성적을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바꿨다. 박사 3점, 석사 1.5, 전국연구대회 1등급 1.5, 시도대회 1등급 1점으로 상향 조정됐다. 교감·전문직 근무평정제도 교사와 비슷한데 근무평정기간은 3년으로 한다. 정치적 의도로 진행된 교원정책 정책평가란 정책의 내용과 집행 및 그 영향 등을 추정하거나 평정하는 것을 말한다. 정책집행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여 보다 나은 집행 전략과 방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실시되는 ‘형성적 평가(formative evaluation)’와 정책 집행 후 당초 의도했던 효과를 성취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총괄적 평가(summative evaluation)’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형성적 평가는 과정평가·도중평가·진행평가 등으로도 불린다. 이외에도 정책평가에는 착수직전평가, 평가성 사정, 프로그램 모니터링, 정책영향평가, 능률성 평가, 적합성 평가, 평가 종합, 메타 평가 등이 있을 수 있는데(노화준, 2006)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에 관한 정책은 어느 것도 정확하게 적용하기 어렵다. 참여정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 이 교육정책이 완전히 집행되거나 결과나 영향이 나온 것도 아니므로 이 글에서 정책평가는 형성평가적 성격이어야 하나 집행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보다 나은 집행 전략과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것도 아니므로 정확히 형성평가도 아니고 총괄평가라고 하기도 어렵다. 다만 참여정부가 끝나가므로 한번 이 교육정책을 검토해보고 진단해보는 정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정책은 사실 평가의 가치조차 없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평가의 기준과 평가질문이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정책목적과 정책방법의 두 측면에서만 생각해보기로 한다. 첫째,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의 목적이 무엇인가? 교원평가제의 출발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교원평가시스템을 도입하고 교원의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 지원을 위한 평가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안병영 전 교육부장관의 발언에서 비롯되었다. 교원평가제가 ‘사교육비 경감대책’과 ‘교원의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과 얼마나 관련이 있고 교원평가제를 통하여 이 목적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사교육 경감대책은 지금까지 수많은 정책을 동원해도 해결 못한 문제이고, 교원의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은 연수 등 적극적 정책을 동원했어야 한다. 교원평가를 통해서 교원의 능력을 개발한다는 것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부적방법이 된다. 교원평가제는 이 정책목적과는 상관없이 정치적 목적과 의도에서 출발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교원평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국민들에게 교육부가 뭔가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막연히 교원을 평가하면 평가가 무서워서 교원들은 아이들을 잘 가르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려는 인기주의의 목적과 의도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매스컴과 언론플레이를 동원하여 인기몰이로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마치 교원들은 평가를 안 받는 것처럼 언론에 호도하여 국민과 교원을 이간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교원에게도 근무평정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이를 숨기고 마치 처음으로 교원을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국민의 몇 퍼센트가 교원평가제 도입을 찬성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였다. 근무평정제가 잘못되었으면 이를 고치는 작업을 하면 된다. 근무평정 이외에 평가가 더 필요했다면 일반 공무원에게도 똑같이 새로운 평가제를 도입했어야 논리에 맞을 것이다. 겉으로 내세운 목적과 달리 교원평가제 부과의 법제화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한 셈이다. 교원평가제는 근본적으로 정책의 목적과 목표가 아예 없었거나 불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승진규정 개정의 목적으로 내세운 것은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점수제에 의한 승진제도 합리적으로 개편’, ‘승진제도를 점수제에서 능력위주로 개편한다’는 것이었다. 점수제가 잘못되어 개편한다고 목적을 내세운 것이다. 자기들이 수십 년 동안 해온 일을 전적으로 부정한 셈이다. 그런데 개정된 규정을 보면 여전히 ‘점수제’이다. 이것만 봐도 여기에도 개정의 목적과 목표가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개정된 승진규정이 ‘능력위주’로 개편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경력평정의 연(年)수를 낮추고 근무평정 사용 기간을 늘리는 정도의 점수 조정을 놓고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하면서 현장을 혼란에 몰아넣고 있다. 현존 제도를 바꾸려면 교육부는 먼저 자기들이 저질러 놓은 과거의 정책에 대하여 사죄부터 했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교육부의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평가와 평정 통합해 다시 연구해야 둘째,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 정책의 추진방법과 절차가 적절하였는가? 우선 정책의제의 형성에 실패하였다.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의 논리도 개발하지 못하고 정책 타겟 집단인 교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점수제의 승진규정을 개편한다고 해놓고 점수제를 대체하는 방법을 개발하지 못하고 점수제를 더욱 복잡하게만 만들어 놓았다. 근무평정제를 교원평가제로 바꾼다고 했어도 교원들을 설득하기 어려운데 근무평정제와 별도로 교원평가제를 부과해야하는 이유를 설득하기는 더 어려운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을 위해서는 교사에 대한 부적정책보다 적극적 정적정책을 썼어야 한다. 오도된 여론몰이와 언론플레이를 동원한 것도 올바른 방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우격다짐의 정책추진 방법에 반감만 불러일으키고 혼란만 야기한 정책이다. 또 정책개발에 전문성이 없었다. 교육부의 교육연구관 1명과 교육연구사 1명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교원평가의 정책을 개발하였으니 이 정책이 얼마나 거칠었겠는가? 교원정책과 과장과 서기관은 모두 비전문의 일반직이고 수시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이 이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학생과 학부모를 교원평가자로 명명하고 이들이 교원을 평가한다고 했었다. 나중에서야 ‘만족도 조사’로 바뀌었으니 학부모와 국민들이 이 제도에 또 불만을 터뜨리게 되었다. 교원평가제와 승진제도를 교육부가 다뤘다는 자체도 잘못된 것이다. 지방교육자치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정도의 정책은 시·도교육청에 맡겼어야 하는 제도이고 정책에 해당되는 것이다. 자치제를 한다면 시·도교육청에 따라 교원평가와 승진제가 달라야 한다고 본다. 학자나 학회에서 무심히 꺼내놓은 방안이나 용어를 관료들이 교묘히 포장하여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것도 문제이다. 교직발전종합방안이나 다면평가제, 학자나 학회가 간여한 보고서에서 뱉어 놓은 용어를 교육부 직원들이 엉뚱한 정책으로 포장해놓는 것을 경계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기왕에 이 문제가 이슈가 되었으니 교육과 교육정책의 본질로 돌아와 교원평가제와 근무평정제를 통합하여 연구하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교사평가는 교장의 책임이고 학부모와 학생, 동료교사의 의견은 교장의 평가자료 일부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교원의 인사에 반영 안 되는 평가와 근무평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교원평가의 결과는 반드시 교원의 인사에 반영되어야 한다. 평가를 잘 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대가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교원의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은 평가와 별도의 방법과 정책으로 추구해야 한다. 교원들은 평가를 안 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평가를 받고 있다. 교원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겠다는 것이다. 교육전문가는 전문가에 해당하는 전문적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다. 평가는 최고도의 고등정신 기능이 요구되는 전문영역이며 평가라는 말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평가라는 용어도 모르고 교원을 거칠게 아무렇게나 평가하겠다고 하는 교육부 장관과 직원들이 불쌍하다. 교원의 직급별 직무기준 설정해야 교원평가 이전에 먼저 할 일은 교원의 직급별로 직무기(표)준을 설정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원하는 교원의 직급별 직무기(표)준을 설정하고, 이 기(표)준에 의하여 교원양성교육의 교육과정이 결정되고, 이 교육과정에 의하여 교원양성교육을 하고, 이 직무기(표)준을 수행할 수 있는지 확인하여 교원자격증을 부여하고, 이 직무기(표)준에 의하여 임용고사를 실시하여 교사를 채용하고, 근무 중에도 이 기(표)준에 의하여 근무평정이나 교원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직무기(표)준도 없이 교사양성교육을 하고, 또 임용고사는 다른 기준에 의하여 실시하여 교사를 선발하고, 평가는 또 그때그때 엉뚱한 기준에 의하여 평가한다고 하면 일관성이 없다. 기준이나 표준도 없이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전문적인 교사의 일을 평가하라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교감의 직무표준, 교장의 표준도 미리 설정해 이 표준에 도달한 사람을 승진시켜야 옳을 것이다. 교감이나 교장의 직무와 상관없이 승진점수의 비중만 이리저리 바꾼다고 우수한 교육행정가를 선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원평가를 끄집어내기 전에 먼저 교원의 직급별 직무기(표)준을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교원의 직무수행표준이 모든 인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교원의 승진제는 교원의 전문성과 연결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교사의 전문성과 지도하고 행정하는 지도자와 행정가의 전문성을 어떻게 얼마나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깊은 연구가 요구된다. 두 전문성을 분리할 것인가, 연결시킬 것인가, 연결시키면 어떻게 어느 정도 연결시킬 것인가에 깊은 고민과 연구에 의하여 승진제도와 정책이 나와야 한다. 단순한 점수 조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못하고 현장에 혼란만 야기시키게 된다. 잘 가르치는 사람은 교실에 남아서 교실에서 행복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잘 가르치는 사람을 교실 밖으로 내쫓아 교감·교장으로 승진시키는 것도 문제가 아니겠는가? 교감·교장은 교사로 하여금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봉사하는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 가르치는 교사가 교감·교장보다 손해 보는 체제가 되어서는 어떤 승진제도 성공할 수 없다. 행복한 교사와 보람 찾는 교감·교장이 모든 학생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참고문헌* 김동석(2006). 교원평가 쟁점과정과 과제, 새교육 2006. 06. 한국교총. 노화준(2006). 정책평가론(제4판). 경기, 파주: 법문사. 주삼환(2007). 한국교원행정. 서울: 태영출판사.
NEIS 시행 방법의 문제로 갈등 야기 학생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하여 학습기회를 제공한다는 교육 본래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학생들과 관련된 정보가 교육 목적상 생성·수집·관리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하여 생성된 학생들에 대한 개별적이고 다양한 정보들은 학생들의 인권이 보호되는 범위 내에서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될 때만이 생성된 정보를 통하여 학생 개개인에 맞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될 수 있다. 이 정보들을 공유함으로 인하여 인권침해의 논란이 불거질 수 있으나 학생 개개인의 포괄적인 인권신장을 위해서는 교육과정상 생성되는 다양한 학생들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공교육의 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학교현장에서 생성·수집된 학생 정보는 학교생활기록부라는 규정된 양식에 맞춰 종합적으로 관리되고 50년 동안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 수기로 작성되고 관리되던 학교생활기록부는 6·7차 학교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항목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복잡해졌다. 이전처럼 수기로 규정된 양식에 기록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어 전국적으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전산화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개인적인 이력서인 학교생활기록부의 전산화는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수기 → SA → CS → NEIS → 교무업무시스템’으로 변화하였다. 수기로 작성된 생활기록부와 건강기록부에 전산화가 최초로 적용된 SA가 도입되었을 때만 해도 교단의 갈등은 없었다. 교육부에서 시행하기에 당연히 해야 되는 일로 알고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우고 프로그램의 버그와 싸워가면서 전산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2002년 7월 전달 강사 연수 시 불완전한 프로그램에 대한 많은 문제점과 어려움을 지적하였으나 교육부가 무리한 강행을 시도했다. 2002년 8월에 실시한 NEIS에 대한 연수에서 사전 홍보부족과 완성되지 못한 시스템에 대하여 많은 일선 학교교사들의 불만이 쏟아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용상의 어려움과 프로그램의 불완전함이 주된 원인이었지만 교총과 전교조에서도 반발을 하면서 점차적으로 개인정보보호, 인권, 법적근거, 보안 등과 같은 면이 부각되어 사회적으로도 점차 이슈화되었다. 교총과 전교조가 정책적인 면에서 각각 다른 입장-교총은 수정보완 후 시행, 전교조는 교무학사, 입학, 보건시스템 완전폐기-에서 반대를 표명하여 단위학교에서도 혼란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단위학교의 교육정보부에서 주도하여 생활기록부 및 건강기록부를 전산화하는 데 앞장섰지만 교육부의 일방적인 강행에 맞서 전교조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단위학교에서는 NEIS 시행을 두고 교원 간의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다. 1996년부터 학교에 정보화 도입 수기(手記)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던 학교행정 업무에 정보화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1996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즉, 교육부가 1996년 8월 ‘교육정보화 촉진 시행계획’을 세워 21세기 열린 교육사회 및 평생학습사회 실현의 기반을 제공하고 교육의 국제 경쟁력을 높일 목표로 초·중등학교 종합정보관리시스템을 개발하여 초·중등학교의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997년도부터 전국의 초·중등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 관리 등 순수한 교육활동 외에 발생하는 교무/학사 업무를 종합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SA(Stand Alone)와 교원용 PC, 각 단위학교용 서버를 교내 전산망으로 연결하여 자료를 종합하는 UNIX기반의 CS(Client Server)시스템인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이 개발·보급되었다. 이러한 1단계 정보화 사업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학교행정 업무를 27개 분야로 구분, 시스템을 개발하여 2002년 9월 1일부터 초·중등학교에 적용하고자 한 것이 NEIS이다. NEIS는 기존에 운영되던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이 학교 자체에 서버를 두고 관리하는 네트워크를 이용한 제한적 개방형 시스템인데 비해, Web을 이용한 개방형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 NEIS)의 시행을 둘러싸고 교육부와 교원단체 등을 통하여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지지하는 측은 새 시스템이 수요자 중심의 교육행정 서비스를 실시하고 교육행정업무의 효율성을 크게 제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측은 새 시스템이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정보인권, 개인정보보호, 정보 집적, 보안, 노동통제 및 교사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을 들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육적인 면보다 인권적인 측면만 고려하여 NEIS의 27개 분야 중 교무·학사, 보건 등의 분야는 NEIS를 사용하지 말고 CS를 보완 사용하라고 권고 결정을 내렸다. CS와 NEIS 문제점 비교 여기서는 CS와 NEIS의 문제점을 간략히 비교해보도록 한다. CS의 중요한 문제점은 7차 교육과정에 대한 지원이 되지 않으며, 교육정보부의 특정교사에게 업무가 가중되고, 정보보안과 자료관리가 매우 불안하다는 것이다. 특히 1997년부터 보급된 서버를 교체, 보수하려면 유지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CS시스템에서는 업무의 처리가 항상 서버가 있는 학교에서만 이루어져야 하지만, NEIS에서는 인터넷에 연결된 어떤 PC에서도 인증서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차이를 보인다. CS시스템을 살펴보면 첫째, CS시스템은 2002년 9월 이후 패치 작업이 중단된 관계로 현재 고교 2학년 이하의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7차 교육과정에 대한 작업이 프로그램 상 지원이 안 되고 프로그램의 오류로 인한 잦은 패치에 따른 불안감으로 자료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둘째, CS시스템은 Unix체제의 전문 프로그래밍에 의한 것으로 각 학교에 전산학을 전공한 교사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특정 1, 2명의 운영자에 대한 업무 부담이 지나치게 높고 운영자를 포함하여 사용자 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운영자가 전출 갈 경우 운영상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셋째, 단위학교 내에 서버를 두고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제한적 개방형 프로그램으로 Unix시스템에 대한 전문지식 부족으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보 유출에 대해 매우 불안정하다. 자료나 서버에 이상이 있을 경우 유지보수업체 직원에게 일임하여 처리하고 단위학교에서 그 책임을 진다. 넷째, 1997년부터 보급한 CS서버는 이미 서버의 대략적인 사용연한인 4~5년을 넘었기에 현 시점에서 CS를 사용하려면 대부분의 학교에 서버교체 및 유지보수비용이 필요하다. 다섯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개인인권침해 소지는 사실상 CS시스템에서 더 가능하다. 반면에 NEIS는 첫째, 각 단위학교에서 모든 교사가 PC로 인터넷에 접근하여 사용하는데 H/W적 지원이 다소 미흡하다. 교사들의 PC 상태와 인터넷 전용선의 속도가 제대로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둘째, 개인 인증서를 사용하여 주어진 권한에 따라 각 개인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인증서를 사용하지 않고는 누구라도 그 업무를 대신할 수 없다는 데 부담을 느끼는 교원들이 존재한다. 셋째, 학년 초나 학년말, 시험기간 등에는 업무가 몰려 접속이 폭주할 우려가 있다. NEIS 운영과 관련된 쟁점사항 NEIS의 운영과 관련해서 그 동안 갈등을 빚어왔던 쟁점사항들을 교육적인 면에서 분석해보면 정보인권, 법적인 근거, 정보 집적과 관련된 문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① 정보인권 정보인권 측면에서 보면 수기를 포함하여 기존의 학교생활기록부 양식을 전산화해서 사용하고 있는 S·A, CS, NEIS의 경우 모두가 공통적으로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 문제점으로는 담임교사의 교무수첩에만 기록되어 은밀히 관리되어야 할 각종 개인적인 정보들이 인터넷상에 올려서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진다는데 대한 반감이 크게 일어난 것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생활기록부의 양식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하여 개인적인 인권이 침해되는 항목은 모두 삭제하였다. 이를 통해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게 될 정보를 구분하고 정보의 기술 범위와 수준, 정보의 획득 방법과 관리에 대한 책임에 관한 기준이 재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② 법적근거 NEIS 운영의 근거로는 전자정부법 제8조(행정기관 업무의 전자적 처리), 교육기본법 제23조(학교정보화), 초·중등교육법 제25조(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학교장의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관리), 전산처리지침, NEIS 운영 지침 등이었지만 법적인 근거 미비와 관련된 시비에 휘말렸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현재 불명확하게 규정된 상위의 법률적 근거와 하위의 지침(교육부 훈령)에 명시된 학교정보화 및 교육행정정보화 근거, 학교생활기록부 기록과 관리 책임 및 방법, NEIS 운영에 따른 이용 주체들과 관련된 역할분담과 책임과 관련된 사항들을 보다 더 명확하게 상위의 관계법과 시행령의 조문에 명문화하여 포함시켜야 했다. 관련법 또한 미비한 점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 법적인 논란을 종식시켜야 하며, 현재 이에 대한 법적 근거는 보완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③ 정보 집적 NEIS에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정보가 학교 담장을 넘어서 시·도교육청 서버에 정보가 집적되어 관리된다는 점 때문에 운영주체인 시·도교육청과 교육부가 임의의 목적으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 관리의 책임주체(학교장)와 시스템 운영주체(시·도교육감)의 구분과 공인인증서 기반의 능동적인 정보 접근 제한을 통하여 당사자의 동의 없는 정보에 대한 임의적인 접근 및 활용 가능성을 배제하였다. 교육을 위한 정보 공개 이뤄져야 우리나라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교육행정정보와 관련한 패러다임을 특정 집단(학교, 교육당국, 교사)의 독점에서 전 국민에게로의 공개로 바꾸었다. 학생 개개인의 출결이나 성적 산출과정(수행평가 포함 각 단계 모두)을 해당 학부모님에게 공개해야할 뿐만 아니라 학교의 모든 학사업무에서 개인에 해당하는 것은 해당 학부모 개개인에게 공개해야 한다. 또한 학교 학생들의 전체적인 학업이나, 자격증 등 학업성취에 관한 통계 및 학교회계 등의 정보들도 NEIS를 통해 당사자들인 학생, 학부모, 교사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해야 한다. 즉, 증권시장의 공시제도처럼 학교별 학업성취 및 기타 통계를 정부 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정보는 장롱 속에 꼭꼭 숨겨놓으면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반대로 다양한 정보가 모아져 경향성이 분석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교육계가 안으로부터의 자기반성을 통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생 각자도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자신의 적성과 특기를 살려서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새로운 각오로 학업에 임해야 한다. 학사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통하여 학생의 적성과 특기에 맞는 진로를 모색한다면, 해당 학생도 학부모도 납득할 것이다. 학교현장에서는 원하는 통계를 손쉽게 산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다양한 산출물들을 학교에서 직접 활용하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는 이를 통하여 공교육의 발전을 제고할 수 있어야 한다. 통계의 대상은 학생의 성적, 자격증, 봉사활동, 수상경력 등 학업뿐만 아니라 민원업무를 기본으로 하여 학교의 연간학사일정, 월중계획표, 특기적성교육 운영현황과 지출내역, 학교교육과정, 육성회비 지출현황, 학교운영예산의 지출현황 등 거의 모든 항목을 대상으로 통계자료를 공개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교육과정상 산출되어지는 결과를 활용할 수 있고 교육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는 입력 항목들을 개발해야 한다. 교육학자들은 이러한 정보들을 통해 교육개혁의 방안과 학교별 개선점들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며, 교육부는 효과적으로 단위학교를 지원할 수 있고, 학부모는 교육 수요자로서 진정한 권리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현재 학부모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대입전형자료로의 활용도 높아져 학교생활기록부가 전산화됨에 따라 대입전형 시 제출하게 되는 학생들의 자료인 학교생활기록부 사본을 개인별로 제출하던 방식에서 필요한 항목을 추출하여 전산자료로 일괄 제출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전에는 학교생활기록부의 원본을 복사하여 원본대조필 도장 찍고, 학교장 직인 찍고, 스카치테이프를 붙여서 위변조를 방지하였다. 대입전형자료의 경우 교육과정의 변화와 대학의 자율적인 모집요강에 따라 필요한 자료도 점점 다양해지고 모든 학생들의 자료를 확인하고 점검하면서 CD로 일괄 제작하여 자료의 신뢰성을 인정받아 대학에 배포되었다. 그러나 2003년 10월 28일 교육부를 상대로 고교생 3명이 낸 ‘대입 전형자료 CD 제작·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학생들의 극히 개인적인 정보를 전국의 대학에 일괄배포를 하는 것은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관한 권리, 정보관리 통제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것은 그동안 관례적으로 처리해왔던 대입전형 자료 CD 제작 배포에 대한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학생들의 개인정보가 필요이상으로 남용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NEIS를 이용하면 대입전형자료를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지도 않고 현재 문제로 지적되는 지원하지도 않는 대학에 일괄 배포되는 방식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NEIS를 거쳐 교무업무시스템에서 대입전형자료인 학생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학적사항, 봉사활동, 수상, 인증, 성적, 행동발달, 종합의견 등의 자료를 추출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개인별로 대입전형자료를 생성할 수 있도록 하여 지원하는 대학에 해당 고등학교에서 자료를 전송하고 대학에서는 다운받아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쉽게 해결하였다. 현장 배려 없는 정책은 거부감 불러 우리나라의 NEIS 시스템이 상부에서 행정의 필요성에 의하여 오로지 자료의 효율적인 관리라는 측면에서 개발되어 현장의 필요성 및 교육적인 배려가 없는 시스템에 대하여 현장에서 거부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일부 교원단체에서는 이를 빌미로 하여 NEIS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하여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현장적용이 난항을 겪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회 각 분야에서 정보화에 대한 수단 선택이 다양화되며 이와 함께 개인 인권의 존중과 보호 문제는 정보인권이라는 새로운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과 이용의 일반화에 따라 사회 제반 분야는 인터넷과 웹 브라우저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해당 업무의 효율적인 처리가 어려운 상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정부의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노력과 각급 학교의 인터넷 환경 구축에 힘입어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 부문에서는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선두 그룹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이러한 국제적인 평가에 따른 정보통신 분야의 위상과는 달리 국내의 현실은 NEIS의 경우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었듯이 교육행정정보처리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다양한 주체 간의 갈등의 소지가 얼마나 많고 인식의 차이가 큰가에 대하여 확인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다양하게 표출된 문제점들이 있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기술발전과 궤를 함께 해 왔던 사회의 진화단계를 반추해 본다면 수단을 선택하는 문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이전 단계로 되돌릴 만큼 국내의 현실이 여유로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 같다. 한동안 앞서 나갔던 것으로 알고 있던 우리의 국가적 규모의 정보화 사업이 세계 각국의 전자정부 추진과 인터넷 기술을 활용한 사회 변혁 움직임을 계속 선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미 추월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입장으로 급격한 위상 변화를 겪고 있고 지표상의 각종 평가에 이미 빨간불이 켜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정보통신 인프라의 개선에 교육현장의 행정정보처리의 효율화를 위하여 SA → CS → NEIS → 교무업무시스템으로 진화되어온 교육행정정보처리체제 또한 시행과 더불어 더욱 발전적인 모습으로 개선하고 혁신해야 할 필요성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교육행정정보처리체제 개선과 함께 또 다른 하나의 축으로 추진되어왔던 교육정보화의 노력 또한 보조적 S/W 개발 → 교육콘텐츠 개발 → 디지털 콘텐츠 개발과 DB 구축 단계로 진화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정보화와 교육행정정보화를 서로 분리된 영역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교육의 질 개선을 통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환경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자료를 전자적으로 효율성 있게 처리하고 공개하는 것은 사회적인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무업무 시스템의 교육적 활용 및 개선에 관한 교육계의 교육평가적인 관점과 공교육의 발전을 위한 투명한 정보의 공개 차원에 대한 심층적인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 2002년도에 나타난 NEIS에 대한 논란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정보사회의 발달에 따른 효율성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보호와 정보인권, 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모두가 정보지킴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더불어 개인정보보호만 강조하여 교육의 위축을 가져오기보다는 생성된 자료를 이용하여 추출되는 각종 자료의 통계에 대한 공개를 통하여 학생들도 자기 자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자기발전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학부모서비스를 활성화됨으로써 한 걸음씩 접근해가고 있다. 교육적으로 활용되는 정보를 학부모와 함께 공유하여 학부모서비스를 통하여 학부모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자녀 교육에 대한 참여 기회를 확대하여, 자녀 교육에 대한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교육의 질과 공교육의 내실화를 통하여 신뢰도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감이 없잖아 있다. 교육정책의 속성상 그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는 경우가 많아 기존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예단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8월 17일,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위원장 정홍섭)는 2010년께부터 교육의 큰 틀을 바꿀 수 ‘미래교육의 비전과 전망’을 쏟아낸 바 있다. 여기에 대한 평가는커녕 비전 도출 과정과 내용에 대한 검토도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평가는 수시로 이뤄져 왔다. 교육관련 학회와 교원·시민단체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두고 숱하게 토론회를 해 왔고 교육부도 노무현 대통령의 교육 공약 이행 정도를 점검하고 있다. 나아가 차기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을 수립하기 위해서 현 시점에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미 유력한 대선 후보들은 참여정부의 공과를 토대로 자신들의 교육공약을 마련하고 있고, 당선자의 교육공약은 인수위 과정을 거치면서 향후 5년간의 교육정책으로 발현될 것이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방향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그 기조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교육정책을 이어 받은 측면이 강하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참여정부는 교육정책도 같은 색채를 띠었는데, 뒤에 언급할 사립학교법 개정, 대입시 3불(不) 정책 고수, 무자격 교장공모제 도입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교의 지배 구조를 바꿔 재집권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아왔고, 추진 과정에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숱한 갈등을 초래했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출범과 동시에 발표한 12대 국정 과제가 그 청사진이 됐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평가는 국정 과제 점검부터 선행돼야 한다. ‘교육개혁과 지식 문화 강국 실현’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교육 부문 국정과제는 ▲참여와 자치를 통한 교육공동체 구축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 복지 확대 ▲과학기술 교육의 질적 고도화 ▲창조적 문화 역량 강화 ▲문화적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산업 육성 ▲지식정보산업의 전면화 추진 등의 6개 목표를 내걸었다. 이 중 초·중등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가지 항목으로 ▲참여와 자치를 통한 교육공동체 구축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 복지 확대를 들 수 있다. 참여와 자치를 통한 교육공동체 구축 항목은 다시 ▲교육정책의 입안 조정 평가 기능 등을 수행할 대통령 직속 법률 기구로 교육혁신기구 상설 ▲단위학교의 참여와 자치 확대를 위해서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 법제화를 핵심으로 하는 학교자치 기능 강화 ▲교육주체의 참여 확대 및 대표성을 제고하는 교육감, 교육위원 선출 방식 개선 ▲교육과정 편성 운영 등 단위학교의 재량 확대와 자율운영체제 확립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자율성 강화를 위해, 교수회 법제화 및 교직원 학생회, 지역인사가 대학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방향의 대학 지배구조 개편 등이 그 주요 내용이다.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복지 확대 항목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역할을 재정립해 나가고 공교육 내실화와 함께 장·단기적인 사교육비 경감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 평준화 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자립형 사립고, 특수목적고, 자율학교 등에 대한 실태 파악과 평가를 통해 본래 취지대로 운영할 수 있는 학교 정책 마련을 들 수 있다. 또 학벌 타파와 대학 서열 완화를 위해 ▲서울대 학부 정원의 단계적 축소 및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집중 육성 ▲국립대와 사립대 간 역할 분담 및 영역별 대학 특성화 ▲학력 차별 금지제도 도입 등 학벌 중심에서 능력 중심으로 다양한 정책 강구를 내세웠다. 교원의 전문성 강화 및 승진제도 개선을 위해 ▲적정 수업시수 법제화 등 교원의 전문성 신장 기반 조성 ▲교원 양성 임용체제 개선과 능력 중심의 승진제도 마련 ▲초빙제, 보직제 등 학교장 임용제도 다양화를 설정했다. 유아 및 특수아 학습권 보장과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유아교육의 공교육화와 특수교육에 있어 통합기조 유지 및 특수교육 기회의 실질적 확대 추진 ▲농어촌 도서벽지학교 지원 육성과 취약 계층에 대한 교육격차 해소도 공교육 내실화 방안의 세부 계획에 속한다. 참여정부의 이러한 국정 과제에는 행정 도시 이전으로 상징되는 분권화, 수월성보다는 평등성에 치중하는 기본 원리가 작동되고 있다. 교육혁신위원회의 역할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청와대, 교육부, 국회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교육정책에 관여하는 청와대 기구로는 교육문화비서관과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를 들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12대 국정과제에서 밝힌 대로 법률 상설 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를 설치했고, 1·2·3대 위원장으로 전성은 경남 거창 샛별중 교장, 설동근 부산시교육감, 정홍섭 신라대 총장을 각각 임명했다. 전성은 위원장이 이끈 전반기 교육혁신위는 ▲2008년 이후의 대학입학 제도 개혁 ▲직업교육 혁신 ▲교육과정 교과서 현대화 방안 제시를 주요 실적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 중에서 2008년 이후의 대학입학제도 개혁 방안이 가장 큰 파급력을 가졌다. 대학입시에서 내신을 주요 전형 요소로 삼고, 수능시험 성적도 점수 대신 1~9등급만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입시 개선 방안은 ‘방향성은 옳지만 현실과 맞지 않다’는 비판 속에 지금도 갈등 요인을 안고 있다. 가장 큰 비판은 학교 간 교육격차가 엄존하고 학교 간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신이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 등급만으로는 변별력을 갖지 못해, 대학이 대학별 고사 등 본고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설동근 위원장의 후반기 교육혁신위원회는 교원정책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교원승진규정 개정, 무자격 교장공모제와 수석교사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교원정책개선방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교원정책 개선 특위가 부결시킨 무자격 교장공모제 방안을 교육혁신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켜 논란이 일었고, 교육부는 이 밑그림을 토대로 추진하고 있다. 자격증 없어도 15년 이상의 교육경력만 있으면 교장 직에 공모할 수 있는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교단의 핵심 논란거리였다. 전교조가 주장하는 교장선출보직제의 변형인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9월 시범 실시를 앞두고 전국 41개 학교에서 공모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교장공모과정에서 숱한 잡음을 발생시켜 유능하고 젊은 교장으로 교단을 혁신한다는 교육부의 취지와는 달리 교단이 정치판화 되는 것 아니냐는 교총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교장공모제와 더불어 수석교사제가 올해 하반기 국·공립학교에서 처음으로 시범 운영된다. 1981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제안한 이래 25년간 교총과 교육부가 네 번이나 도입을 합의한 이력이 있다. 교육부는 상반기 중 구체적인 수석교사 도입방안을 마련, 시범학교를 선정해 9월부터 1년간 시범운영 하고 확대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연구결과가 늦어져 시범실시가 늦어지고 있다. 첫 주민 직선 부산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중도 하차한 설동근 위원장 후임에 신라대 정홍섭 총장이 올해 2월 9일 임명됐다. 정 위원장 체제는 앞에서 언급한 교육비전과 전망을 발표했다. 비전에는 ▲2010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2~3개 학년을 묶어 하나의 학년으로 정하고 교육하는 교육학군제 도입 ▲장기적으로 교대와 사대를 폐지하는 대신 교원전문대학원을 설립해 그 졸업자에게 교사자격증을 주는 방안 ▲교사가 5, 10년 등 일정한 기간마다 규정된 연수를 받고 평가를 통과해야 교사자격증을 갱신해 주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법률 개정을 동반해야 하는 이런 파격적인 방안들이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임기 몇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됐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약할 것으로 보인다. 잦은 장관 교체, 정책 일관성 상실 “교육부총리는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초기 약속이 무색하게 벌써 여섯 번째 부총리가 바뀌었다. 잦은 장관 교체는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업무를 파악할 만하면 물러나게 돼 소신 있는 정책을 펼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 지금까지의 부총리들은 한결같이 ‘소신보다는 정권 눈치만 본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재경부장관 시절 “판교에 학원 단지를 건설하겠다”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를 정도로 시장주의자로 손꼽혀온 김진표 부총리는 고교평준화 제도의 보완책으로 추진돼 오던 자립형사립고 확대에 반대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해 눈총을 받았다. 김신일 부총리도 ‘학자 시절 대학의 자율성을 강조했던 철학은 팽개치고, 3불 전도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진표, 김신일 부총리 모두 ‘자신들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유독 안병영 전 부총리는 대통령과의 설전에서도 고집을 꺾지 않아 수능 9등급제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8월 교육혁신위원회가 2008년 이후의 대입제도 개선안을 확정할 무렵, 수능등급제를 두고 대학 - 교육부 - 청와대 간에는 견해차가 컸었다. 표준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변경할 경우 변별력 약화를 우려한 대학은 15등급,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문재인 시민사회수석 등은 7등급, 교육부는 절충안인 9등급제를 주장했다. 임기 내내 사학법 갈등 사립학교법 개정은 참여정부 내내 논란을 일으켰다.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참여정부의 대표 개혁입법으로 여겨져 이에 찬성하는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반대하는 한나라당 편으로 전 국민을 분열시켰다. 2005년 말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국회는 파행을 거듭해 왔고, 급기야 지난 7월 3일 개방형 이사회 구성 요건을 변경하는 쪽으로 재개정했다. 사학법 재개정안은 개방형 이사 추천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일반사학의 경우 학교운영위(또는 대학평의회)와 이사회 추천 비율을 6대 5로 정해 학교운영위측이 과반을 차지하도록 하되, 종교사학의 경우 이사회에 해당하는 종단이 과반을 점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재개정된 사학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새로 제기하기로 해 사학법 갈등은 새 국면을 맞았다. 재개정된 사학법 또한 개방형 이사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임시이사제도를 교육부와 산하 사학법인분쟁조정위원회의 주도 하에 운영되도록 규정해 위헌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쪽 된 교육자치 2006년 12월 7일 교육감·교육위원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고, 시·도교육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시·도의회의 특별상임위원회 형태로 편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올해 2월 14일 전 주민이 선거인단이 돼 부산시교육감을 선출했다. 2010년 6월 31일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는 모든 교육감들이 동시에 뽑히게 된다. 교육감·교육위원 주민직선제는 대표성 확보와 주민의 교육 참여를 극대화한다는 차원에서 교육계가 오랫동안 염원해 온 사항이다. 그러나 시·도교육위원회가 폐지되고 시·도의회의 특별상임위 형태로 편입되게 됨에 따라 교육이 일반 행정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교육행정학회는 “지방교육자치는 교육자치라는 영역적 자치와 지방자치라는 지역적 자치가 결합한 형태로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헌법재판소가 2003년 판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은 집행기관의 자치만 남겨두고 의결 기관 자치를 폐지하는 것으로 교육자치를 규정한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교육위원회가 폐지될 경우 교육은 지방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교육예산은 정치적 흥정과 선거공약 이행수단으로 전락해 교육의 미래를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원평가, 성과급 확대 적용도 논란 이외에도 초·중등 교원평가 도입, 성과금 차등 폭 확대 실시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교원평가 도입은 2004년 2월 서울 진선여고를 방문한 안병영 부총리가 실무진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즉흥적으로 발언한 것이 직접적인 도입 계기다. 교원평가를 사이에 두고 적극 도입을 주장하는 교육부와 학부모 단체, 이에 반대하는 교원단체 간에는 좁혀지지 않은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 성과급 확대 실시도 마찬가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두 번 지급하던 방식을 올해는 한번으로 횟수를 줄여 지급한다는 방침이지만 차등 확대 폭을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원평가와 마찬가지로 성과를 도출한 교원에게는 더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발상이지만,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논리와 도구를 제시하지 못해 설득력을 잃고 있다. 空約된 ‘GDP 6% 교육재정 확보’ 노무현 대통령은 ‘교육재정 GDP 6% 확보’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지난 4년간 교육재정은 4.9%에 그쳤다. 또 재임기간 동안 교육여건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학급당 학생 수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OECD보다 20년이나 후진적 상황에 머물러 있다. 학교 운영비가 부족한 교실에서는 전기료 낼 돈이 없어 찜통 여름에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못하고, 심지어 복사 용지까지 학부모에게 구걸하는 실정이다. 교육청에서 예산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학교장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찾아다니며 시설비 마련을 읍소하고 있다. 앞서 밝힌 대로 참여정부는 12대 국정과제서 교육정책의 방향을 제시했고, 실제로는 더 광범위한 분야의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됐다. 하지만 지면 관계상 초·중등 교육의 극히 한정된 부문에 대해서만 언급했음을 밝힌다.
조국의 주권을 되찾은 해방의 기쁨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 해인 1947년 11월 23일에 조선교육연합회가 태동하여 정부수립 다음해인 1949년 2월 7일에 대한교육연합회로 변신하여 수많은 역경을 딛고 발전을 거듭해 오다가 1989년 5월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라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하여 이제 회갑을 맞게 되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16개 시·도의 지역조직과 5개의 직능단체, 산하단체 25개를 두고 교원의 지위향상과 교직의 전문성 확립을 기함으로써 교육의 진흥과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교총은 명실 공히 건실하고 튼튼한 교원단체로 발전해 왔으며 올해는 사상처음 보통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회장으로 당선되어 학교현장에 근무하는 많은 교원들이 현장과 한발 가까워진 교총으로 변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하나의 교원단체로 안주하면서 관변단체였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었고 현장교원과 거리감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러나 1999년 전교조의 합법화와 한꺼번에 3년이나 정년단축이 되면서 학교현장은 반목과 갈등으로 얼룩졌고 안정이 흔들리면서 복수의 교원단체가 생겨나 경쟁의 대열로 들어선 후 수년이 흘러오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많은 발전과 변화를 가져왔다고 본다. 60주년이라는 큰 고개를 넘으면서 어떻게 하면 한국교총이 환골탈퇴하면서 교권회복을 주도하는 새로운 교원단체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몇 가지 생각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첫째, 나무가 튼튼하게 잘 자라려면 실뿌리가 건강해야 하듯이 학교단위 1만 1000여 분회의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여 단위학교 분회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존경받는 교육자 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둘째,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며 선생님을 따르는 참다운 스승의 길을 가며 학교현장에서 보람을 맛보는 단체로 학교현장교육을 주도하는 교원단체에 초점을 맞추어 현장의 조직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교총회원의 교권(권위)을 회복하도록 자정노력과 함께 현장지원에 교총이 앞장서서 단결된 모습으로 수석교사제 실시 관철, 무자격교장공모제 철회, 공무원연금법개정저지, 교육재정 GDP 대비 6% 확충 등 현안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넷째, 젊은 교사가 교총의 매력에 푹 빠져서 회원가입에 줄을 서도록 교총이 더 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선생님들이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즉, 연령층이 골고루 분포되는 조직으로 구성원이 모여야 교총 발전에 활력소가 될것이라고 본다. 교총의 조직과 운영방안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여 비대한 조직은 단순하면서도 튼튼한 조직으로 체질개선을 하고 세대 간의 요구조건을 반영하여 건실하고 튼튼한 조직으로 교총회원 모두가 보람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조직으로 대 변신을 꾀하여야 할 것이다. ‘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이라는 교총의 정신이 학교현장에 정착되도록 항상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그 동안 교총의 수많은 업적이 더욱 빛나도록 하고, 새로운 정책개발로 회원에게 힘을 실어주고, 선생님들이 학생 앞에서 가슴을 활짝 펴고 신바람 나게 가르치는 학교현장을 만드는 데 교총이 밑거름이 되어주어야만 한국교총의 앞날은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교총의 육순을 축하합니다. 짝짝짝.” 한 생명이 태어나 자라서 결혼을 하고, 새 가정을 이룩해 낳은 아이가 성장해 결혼한 뒤에 한숨 돌리는 나이가 육순이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약 30년 기간을 1세대라고 한다면 정확히 2세대를 산 시기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60년 동안 불귀의 객이 되지 않고 온전하게 육순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더군다나 자기가 이룬 세대의 후손들에게 육순 잔치상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터이다. 한 개인의 가족사도 이렇게 영광스러울진대 하물며 20만 교원의 식솔을 거느리고 있는 대규모 단체가 육순을 맞았다면 박수를 한 바가지로 받는다 해도 모자랄 것이다. 1947년의 격변기에 태어나 세대가 두 번 바뀌는 동안 수많은 외풍을 견디면서 교총이라는 단체를 굳건히 지켜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고 작은 신생단체가 하루에도 수십개씩 생겨났다 사라지는 다변화 시대에 육순이 되도록 오직 외길만을 고집한 장인정신만으로도. 190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그 이름을 고수하며 60년을 버티고 있는 단체는 아마 우리 교총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60살이면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이다. 耳順은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고사 ‘六十而耳順’에서 나온 말이다.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우리 교총이 耳順의 뜻풀이처럼 그런 나잇값을 하는 단체가 됐으면 좋겠다. 60년이라는 녹록치 않은 세월동안 쌓아왔던 노하우와 혜안을 바탕으로 진정으로 20만 회원뿐만이 아닌 40만 교사들의 든든한 대변인이자 후견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솔직히 교총은 격동의 시대를 홀로 고군분투하며 이룩해낸 교육적 성과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후발 주자인 젊은 단체에 밀려서 제대로 자리매김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모 포털사이트에 ‘교총과 전교조의 차이점’이라고 검색하면 교총은 전국 교장이 주축인 연합단체, 전교조는 전국 평교사가 주축인 단체라고 나올까?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교총은 40만 교사를 위해 발 벗고 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6·25동란,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 운동의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교원들을 위해 땀 흘렸던 그 동안의 성과를 다시 부각시키고, 다른 단체에 비해 행동력이 부족하다는 그 오점을 보완하여 명실상부한 최고의 단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땅의 교사들이 한목소리로 호소하는 고통은 무엇인가?”, “교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만 치고 있는 일은 없는가?”, “선생 해먹기 정말 힘들다고 하는데 왜 한결같이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그 어떤 일보다 먼저 교사들의 아픔을 1순위에 올려놓고 해결해주는 교총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에 당선된 신임회장이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교권 119’를 출범시킨 것과 ‘현장교육지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움직이는 교총의 모습을 표방한 것은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60과 교총의 심벌이 어우러져 역동적이며 진취적인 이미지를 표현했다는 한국교총창립 60주년기념 엠블럼처럼 도전적이며 활기찬 교총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이 땅의 40만 교사들이 육순이 된 교총나무에 기대어 마음 편히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런 날을 그리며…
모든 단체와 조직은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조직력을 강화·촉진하기 위해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대 상황과 수요자의 요구에 맞는 치밀한 전략과 기획을 하고, 홍보와 조직의 기능 및 유연한 조직형태로 회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교총에 가입을 한 것은 30여 년 전 초임발령을 받았을 때 특별한 의미나 관심도 없이 그냥 교장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것도 한국교총이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가입을 하여 어떤 혜택이나 도움을 받는 것인지, 고려해 본 일도 없다. 오랜 기간 동안 교원단체 회원이라는 것조차도 잊고 생활해 왔던 것이 어언 30여년이 넘었다. 그야말로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고 단체에 가입을 하여 남들이 흔히 한국교총이 승진자들의, 승진자들을 위한, 승진자들을 대변하는 어용단체로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도, 한국교총이 어떤 일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고 넋두리를 하여도 계속 회원으로 유지하였던 것이다. 관료적인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참신한 새바람을 불어 넣는다며 참교육을 부르짖는 새로운 단체의 회유도 있었지만, 회원을 탈퇴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혜택이나 도움을 받은 일도 없었던 것으로만 알고 생활해 왔다. 그래서 한때 가끔 함께하는 모임에서 교총을 비난할 때에 동조하기도 하고 회비만 내게 되어 회비가 아깝다며 목에 벌겋게 핏줄을 세워가며 열변을 토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도 모르고 경솔한 언행을 하였다는 점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전국교육현장연구대회, 교육자료 전시회에 여러 번 출품하여 현장교육 연구보고서 작성과 자료제작 등으로 교실수업개선을 위해 노력을 해왔던 것이나, 교실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학교안전공제회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던 일, 또 스승의 날 동료 간 체육대회, 학습현장의 길잡이인 새교실, 교육전문 월간지 새교육, 교육관련 주간 신문인 한국교육신문 구독, 한국교육신문 e-리포터 활동하는 일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교총과 관련되지 않은 일이 없음을 어찌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또 필자가 무명교사나 회원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음을 깨닫고 지난 해는 대전교총 부회장으로 입후보하여, 훌륭한 교육동지이며 선후배님들이 필자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대전교총부회장으로 활동하게 하였던 것도 모두 교총회원들인 것이다. 교총회원들의 교권옹호, 교권침해, 회원복지, 정책제언 등의 리포터 활동과 대전교총부회장 직을 하면서 평교사의 입장에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등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나 교육부 또는 교육청에 확고히 전달하고 관철되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어느 순간에 필자가 세월 따라 한국교총과 함께 활동중심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올해로 한국교총의 역사가 60년이 된다고 한다. 중앙일보가 국내 25개 파워조직 영향력과 신뢰도 조사결과(2007. 7. 3) 한국교총이 영향력 13위, 신뢰도 13위로 1면과 8면을 통해 발표한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교총이 주요 국가기관 및 기업체를 제외하고는 시민·사회단체 중에서는 사실상 1위를 차지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총은 회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속에 국민과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단체로 거듭나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이루었던 것이다. 한국교총은 변화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시대 상황과 수요자의 요구에 맞는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기획을 하여, 홍보와 조직의 기능 및 유연한 조직형태로 국민과 회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때 국민으로부터 더욱 사랑받고 신뢰받는 교원단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얼핏 보면 쉬울 것 같으면서도, 막상 하려고 들면 어려운 일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시험 공부하는 학생들이 크게 공감하는 것 중에는, ‘시험보기 일주일 전부터 열심히 공부하기’가 있다. 리모컨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는 ‘리모컨 없이 텔레비전 채널 바꾸기’도 꽤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주식투자를 좀 해 본 사람들은 ‘주식으로 돈 벌기’가 어렵다는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한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 풍토에서는 ‘컴퓨터 CD, 정품으로 구입하기’가 엄청 어려운 일에 속한다. 또 있다. 호사가(好事家)들에 따르면, ‘다리가 아름다운 여성의 각선미를 30초 동안 쳐다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쉬울 것 같은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쉬울 것 같은 데 쉽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들이 상식의 습속(習俗)에서 벗어나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 시험공부라는 것이 계획과 실천이 따로 논다. 당일 벼락치기가 되기 십상이다. 학생들에게는 이미 상식화 된 습관이 되었다. 또 리모컨 자체가 디지털 환경에서는 상식적 기구가 되어 버렸다. ‘주식으로 돈 벌기’는 남의 이야기일 때는 쉽지만 내 이야기일 때는 어렵다. 이 사실이 곧 상식인 것이다. ‘컴퓨터 CD를 정품으로 사기’는 교과서적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현실 삶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각선미(脚線美)에 정신을 잃는다고 해도, 아직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의 윤리가 우리의 상식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백하기’는 쉬운 일일까, 어려운 일일까. 쉬운 듯 어려운 일일까, 어려운 듯 쉬운 일일까. 흔히 방송에서 보면, 사람들은 ‘고백하기’를 다반사로 한다. 특히 ‘이성에게 고백하기’ 같은 것은 아주 쉬운 과업으로도 비치는 것 같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로도 인식되지만 말이다. 분명한 것은 ‘고백하기’를 만만히 보는 쪽으로 세태가 변화된다는 느낌이 든다. 고백이 변질되는 것일까. 가수 송창식이 불렀던 1970년대 노래 가운데 맨 처음 고백이라는 노래가 있다. 유행하던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지금 다시 웅얼거려 보니 다분히 그 때 그 무렵의 사회적 분위기와 정서가 느껴진다. 말을 해도 좋을까, 좋아하고 있다고 / 마음 한 번 먹는 데 하루 이틀 사흘 //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 // 무엇을 고백했다는, 고백의 내용을 문제 삼는 노래라기보다는, 고백하기가 너무 힘이 든다는, 고백 그 자체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노래이다. 이런 노래가 널리 소통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일반인들도 고백하기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느끼고, 그러한 고백의 심리적 분위기에 동조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성에게 고백하기이든 아니면 다른 유형의 고백이든 고백은 어렵다. 고백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으려니와, 설사 고백하기로 마음을 먹었더라도 실제로 고백의 행위를 실현하기까지 가는 데는 다시 엄청난 갈등과 머뭇거림의 난관이 놓인다. 어찌 그것이 단순한 어려움이겠는가. 고백이란 가장 진정한 자리에서 하는 말이다. 진정한 자리에 나를 세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고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뜯어보면 ‘고백하기’에는 참으로 복합적인 어려움이 엉켜 있다. 고백은 어렵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고백은 스스로를 믿는 행위인 것 같기도 하고, 오로지 상대만을 믿는 행위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나도 남도 못 믿을 때, 최종적으로 나를 겸허하게 벼랑에 내세우는 행위가 바로 ‘고백하기’인지도 모른다. 고백은 스스로를 바로 세워 높이려는 행위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비판의 십자가 위에 스스로를 처벌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백 자체는 사람의 일상의 상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고백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고백을 어디까지 신뢰해 주어야 할 것인가. 오히려 고백은 특단의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고백은 고백이기 때문에 어렵다. 모든 고백은 본질적으로 부끄러움을 토양으로 가진다. 또한 모든 고백은 자기응시(自己凝視)의 과정을 수반한다. 자기응시를 통해서 ‘부끄러운 자아’를 발견해 가는 것이다. 숨어 있던 부끄러움은 ‘고백’을 투과함으로써 비로소 단단한 자기 다스림의 세계로 승화한다. 윤동주 시인은 시 참회록에서 말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이 순정한 내면의 언어를 읽는 순간, 우리는 해맑게 숙연해진다. 그런 점에서 모든 고백은 거룩하다. 아픈 마음으로 부끄러운 자아를 향하여 내 안의 눈을 뜨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모든 고백은 거룩하다. 고백이 거룩한 것은, 그것이 참회의 심정으로 말해지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담은 양심의 고백일 때는 더욱 그러하고, 이성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라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한없이 자기를 낮추는 경지야말로 참회의 본령일진대, 참회에 가까운 사랑고백이 진짜 사랑고백인 것이다. 사랑을 고백한답시고 자기를 낮추기는커녕 돼먹지 않은 자존심을 앞세워, 돈이나 학벌이나 권력을 사랑고백 속에 담는다면, 그건 고백에 대한 모욕이다. 그런데 세간에는 그런 엉터리 사랑고백이 승리의 깃발처럼 세를 얻는다는데, 이는 고백의 타락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고백이 타락하면 타락하지 않을 것이 없다. 고백의 타락은 타락의 끝이다. 일찍이 고백록을 쓴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첫 페이지에서 이렇게 다짐한다. 자신을 돋보이려고 없었던 일을 한 줄도 보태지 않을 것이며, 부끄러운 것을 숨기려고 있었던 것을 한 줄도 빠뜨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고백록의 서두에서 부끄러운 참회를 보여준다. 소년 시절, 그가 의지할 데 없어 한 백작의 집에 기거하던 중, 그는 백작이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훔치었음을 고백한다. 그뿐인가. 자신에 대한 백작의 신뢰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평소 자신에게 냉정했다는 이유로, 아무 죄 없는 한 소녀를 범인으로 덮어씌우고 일러바친다. 그 집에 고아처럼 의탁되어 있던 그 소녀는 루소의 무고(誣告)로 백작의 집에서 추방된다. 루소는 이 모두를 고백한다. 소년 루소가 질투하고, 주저하고, 후회하고, 번민했던 인간적 약점의 과정이 진솔하게 참회되어 있다. 루소의 고백록 서두에 나오는 이런 고백을 들으면서, 대부분의 독자는 고백록에 친화된다. 루소가 전하는 고백의 내용과 고백의 맥락에 대해서 한없는 신뢰를 가지게 된다. 비록 어떤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 하더라도, 고백록이 주는 고백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게 된다. 성 어거스틴(San Augstin)의 고백록 또한 자신의 죄를 적나라하게 토로하는 데서 고백의 떨림이 진솔하게 와 닿는다. 루소나 어거스틴이 고백록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들의 고백은 쉬운 것이었을까.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것이었을까.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그의 반성적 인식을 그의 삶에서 참회하듯 소명하겠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웠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웬만한 고백은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것처럼 보이게도 되었다. 그래서 ‘그까짓 고백쯤이야 나도 해치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도 되었다. 고백하기는 밝은 조명과 잘 치장된 꽃다발과 막강한 미디어 매개에 의하여 찬란한 이벤트로 재탄생한다. 사랑고백만을 전문으로 해주는 이벤트 회사도 있단다. 최소한의 의지와 충분한 경비만 있으면 고백은 그 어떤 의전보다도 빛나고 당당한 이벤트로 재탄생한다. 고백의 주체인 ‘나’는 한낱 기표(記標)의 조각으로 고백하기의 껍질에 노출될 뿐이다. 이벤트로서의 고백은 한 장면의 가장무도회처럼 연출될 뿐이다. 참회의 마음[心田]이 없어도, 고백은 조명으로 빛난다. 아니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진솔한 떨림을 안으로 배태하지 못하여도 무슨 잘못이 있으리오. 선거가 무지개처럼 걸려 있는 정치의 계절이다. 이 시간에도 고백의 자서전이 넘쳐 나지만 그 고백 속에 감동이 없다. 자기 자랑으로 일관하는 자서전에는 ‘고백’이 숨쉴 공간이 없다. 더러는 전지적 통찰자의 모양으로 과거의 시간을 재단하기도 하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숨은 역사의 주인공인 양 당당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있어야 할 참회의 자리에 노회한 욕망들이 비집고 들어 와 있다. 지나간 스캔들을 덧칠하여서 괜찮은 로맨스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욕망을 향해 일로매진할 뿐, 희미한 회의(懷疑)조차도 머물지 않는다. 회의(懷疑)야말로 반성을 싹 틔우는 씨앗이 아니던가. 그래서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운 고백들이, 사이비(似而非) 고백들이 천지에 난무한다. 참으로 고백은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 헤쳐 나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어떻게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 왔을까? 필자는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 우리 국민들의 근면성과 교육에 대한 열정, 즉 교육의 힘이었다고 단언하고 싶다. UN의 발표자료에 의하면 1953년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3달러였으며 우리나라는 132달러였다. 우리의 경제수준은 1960년대까지 필리핀보다 뒤졌다. 그러나 지금 필리핀과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는 1960년대 1인당 GNP 규모가 가나(Ghana)와 동일한 230달러였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격차가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두 나라는 모두 주로 농업경제에 의존해 왔고 반세기 가까이 식민통치 하에 살았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가나를 포함한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의 부류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국가에서 현재는 무역대국으로 성장하였으며 이제 선진국 진입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회고해 보면 1960년대, 수출입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모든 국민들이 일심 단결하여 밤낮없이 일해 1964년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하였다. 그 당시의 주요 수출상품으로는 외화벌이의 효자였던 가발을 비롯하여 합판, 면직 등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제품들이었으며 세계 국가 중 수출 순위는 90위였다. 하지만 40여 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3260억 달러(2006년 통계)로 2700배 증가하였으며 세계 수출 순위는 11위다. 최근 수출 주요상품으로는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선박 등으로 60년대의 수출상품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주요 수입상품으로는 원유, 반도체, 천연가스, 석유제품, 컴퓨터, 철강판 등으로 경제적으로 몇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더구나 과거 우리나라와 생활수준이 비슷했던 아프리카의 가나, 우리보다 수준이 높았던 필리핀은 우리나라의 발전에 대해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이와 같은 결과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국민들의 근면성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가장 크게 작용되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1% 미만이며, ‘도이치뱅크의 연구보고서’(2005년 8월)에서 한국의 인적자본 수준이 세계 6위라고 발표한 것은 지식기반사회인 오늘날 우리의 인적자원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이웃국가인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음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아시아 경제대국인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침체기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다. 요즘 세계 경제 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발전을 유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뒷걸음치는 경우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남미의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등의 국가들은 1900년대에는 선진국의 생활 경제 수준이었으며 특히 아르헨티나는 세계 7대 부국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 폴 케네디는 ‘21세기 준비’라는 글에서 “아르헨티나의 몰락은 한 세기 이상 문맹률을 저하시켜온 교육이 파멸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난방이 없고 많은 공립학교 창틀에는 유리가 없다. 경력 10년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지난 여름(1990년) 월 소득은 110달러가 채 못 됐다. 주 10시간을 강의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의 부교수는 월 37달러를 받았다. 시립병원의 의사 월급은 120달러였다. 교사들은 교대로 남의 강의를 떠맡고 단축수업을 했는데 그것은 선생과 학생 모두가 교통수단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라며 아르헨티나가 몰락할 수밖에 없었음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1980년대에 실질소득이 감소하여 오늘날 대다수 남미 국가들은 10년 또는 20년 전보다 낮은 국민소득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들을 볼 때 아프리카, 남미의 여러 나라들, 중동 및 동아시아 국가들은 천연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적어 발전 속도가 느리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거대한 석유매장량의 보유나 많은 석유 외의 천연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없이는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없음을 시사해 준다. 이제,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근면성과 교육의 열정으로 해방 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왔던 경험을 살려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때다. 우리의 인적자원으로 다시 도약해 보자. 그리고 세계를 한 번 더 놀라게 해주자. 이를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재정을 GDP 대비 6%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에 힘쓰지 않는 국가, 교육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가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우리 교육자 모두는 한마음이 되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계기의 선두에 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계발과 교육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자! ‘교육은 百年大計’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 모두 앞으로 다가올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그려보면서 노력하자. 스피노자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과 같이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우뚝 서는 그날까지 교육경쟁력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