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로 병설유치원에서 교사로 재직한지 10년차에 접어든다. 아이들 속에 파묻혀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적지 않은 경력이 쌓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결코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쉽다거나, 수업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해 다양한 특성을 지닌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낯선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교사로써의 가치관과 교육관이 흔들릴 때가 적지 않다. 유치원교사는 유아들이 처음 접하게 되는 선생님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특수하고 재미있는 상황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장면들이 곧잘 연출된다. 아침 등원시간, 문 앞에서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우는 녀석, 문 앞에서 신발을 못 벗어서 낑낑 대는 아이, 외투를 벗어야 하는데 지퍼를 못 내려서 울고 있는 아이, 화장실에 혼자 못가는 아이, 걷다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아이 등. 이런 위급한 상황을 재빨리 수습하지 못하면 유치원 교사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안에 숨어있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돌발 상황들을 해결하기 위해 슈퍼맨처럼 날아다녀야 한다. 그래서 3월의 내 모습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라기보다는 아이들과…
2018-12-17 17:07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어려운 것이 많은 요즘, 희망을 섞어 이야기할 소식이 있다. 남과 북이 철도 연결 문제를 놓고 상의한다는 것이다. 남쪽에서 올라간 기차가 북쪽의 철길을 달린다는 것은 흥미를 떠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철도 연결 이슈는 이미 오래전에도 나온 적이 있다. 2002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은 경의선 도라산역을 방문해 연설을 하고 침목에 공동 서명을 했다. 그 배경에는 군사분계선이 생기면서 끊긴 경의선 기찻길을 두 대통령이 방문하기 직전에 복원했던 일이 있다. 기차는 시범 운행으로 임진각을 지나 도라산역을 거쳐 북쪽의 판문점역까지 다녀왔다. 만약 남북관계가 이후로도 계속 좋은 상태를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다행히 다시 남북이 철도를 연결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기차가 지나간 도라산역의 이름이 갖는 내력이 흥미롭다. 역 근처에 있는 도라산(都羅山)은 신라(羅) 도읍지(都)를 돌아보는 산이란 의미가 있다. 그런데 누가 여기까지 와서 신라의 도읍지, 서라벌을 돌아보았을까. 그 이야기를 찾아 왕릉으로 떠나보자. ‘도라산’의 배경이 된 연천 경…
2018-12-11 15:47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노년의 따뜻한 로맨스를 그린 강풀의 동명 웹툰을 연극 무대에서 만나보자. 작품은 우유 배달을 하는 김만석과 파지를 줍는 송씨, 주차관리원 장군봉, 치매를 앓고 있는 조순이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서로 인연을 맺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순재, 박인환, 손숙, 정영숙 등 연륜 있는 배우들이 뭉쳐 이야기에 감동을 더한다. 특히 이순재는 이번 작품으로 영화와 드라마, 연극까지 세 가지 장르에서 ‘김만석’ 역을 연기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12.6-2019.1.27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 02-3672-0900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 심청이 온다 춘향이 온다 놀보가 온다까지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마당놀이를 선보여온 국립창극단의 작품.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위기에 처한 남편을 구하기 위해 활약을 펼치는 여중호걸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린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2018년표 유머와 재치로 웃음을 안기는 것은 물론 무대 위에 객석을 설치해 배우와 무용수, 연주자들과 관객이 어울려 흥겨운 춤판을 벌이는 마당놀이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2018 12.6-12.30, 2019.1.1-1.20 | 국
2018-12-04 15:58어느덧 2018년 무술년 한 해도 저물어간다. 12월은 어느 해나, 누구에게나 그렇듯 개운함과 헛헛함이 동시에 찾아오는 시기다. 올해의 마지막 한 달을 좋은 공연들과 함께 보내면 어떨까.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말처럼 예술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아름다운 끝맺음으로 기억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브로드웨이에서 4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고전 뮤지컬 애니는 어린이와 어른 관객이 함께 관람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작품은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뉴욕을 배경으로, 불우한 환경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당찬 소녀 애니의 이야기다. 고아원에서 살고 있는 애니는 11년 후 찾아오겠다는 부모님의 편지를 굴뚝같이 믿고 못된 원장의 핍박도 꿋꿋이 견뎌내는 중이다. 그러던 중 세계적인 갑부 워벅스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자신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보낼 어린이를 고르러 고아원을 방문하고, 애니를 데려간다. 긍정적이고 밝은 애니는 평생 일에만 몰두해와 정이라고는 모르는 차가운 어른 워벅스를 바꿔놓는다. 워벅스가 애니를 친딸로 입양하겠다고 결심한 그때, 갑자기 애니의 친부모님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작품에서는 ‘투모로우’ ‘고달픈 삶’ ‘어쩌면’
2018-12-04 15:54어느새 가을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단풍 든 나무들의 발밑으로 낙엽이 수북이 쌓여간다. 만추의 분위기가 한껏 돋는 11월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만큼 겨울에 성큼 다가섰다는 뜻이다. 햇빛이 없는 날이면 차가운 바람이 매섭고 햇살이 비치는 날이면 일교차 때문에 적응이 쉽지 않다. 어쩌다 약간 무리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감기 기운이 올라오고, 손과 발도 점점 차가워진다. 이번 시간에는 가을철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우리 몸의 말초(末梢)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염증을 억제하며 손과 발의 냉증과 쥐가 나는 듯 한 근육경련, 그리고 여성의 갱년기증상 개선에 유익한 약재 작약(芍藥)을 소개한다. 한약재 작약(芍藥)은 작약과(Paeoniaceae) 식물 작약(Paeonia lactiflora Pasllas), 그리고 같은 속(屬) 근연식물의 뿌리다. 작약은 뿌리의 단면이 어떤 것은 희고 어떤 것은 붉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본초학에서는 백작약과 적작약으로 구분해왔다. 현대 의약품의 기준을 규정하는 약전의 내용은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대한민국약전(KP)에서는 작약을 1개 항목으로 통합해 규정하고 있지만 중국약전(CP)에서는 백작약과 적작약 항…
2018-11-28 16:14지난번 글에서 ‘돈 쓸 때를 잘 구분해야 돈관리가 쉬워진다’는 주제로 미리 쓴 돈에 대해 알아봤다. 미리 쓴 돈이 가벼워야 재량껏 쓸 수 있는 돈이 늘어 돈 관리가 쉬워진다. 미리 쓴 돈을 예방하는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이 나중에 쓸 돈을 준비하는 일, 바로 저축이다. 예전에 저축은 무조건 은행 예적금이었지만 지금은 투자상품이나 보험도 있고 상품 종류도 매우 다양해졌다. 나중에 쓸 돈의 성격과 사용 시기에 따라 준비 방법도 달라진다. ■예적금=저축을 하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 적금을 통해 일정 기간 동안 얼마씩 저축하거나 가지고 있는 돈을 용도에 따라 구분해 예금으로 나눠두는 것이다. 경제가 압축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는 저축을 적극적으로 장려했고 금리도 높아 예적금을 통해 재산을 형성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재형저축과 같은 비과세 상품도 많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저성장이 자리 잡은 ‘뉴 노멀(new normal)’은 예적금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제로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까지 내려간 일부 선진국의 상황과 나날이 새롭게 선보이는 투자 상품들은 ‘저축은 구시대적이고 할수록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돈을 모으고 굴리는데도 특별한 기술…
2018-11-19 17:07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덕분에 유명해진(?) 사진이 있다. 대한제국 시절 활동 중인 의병들을 찍은 유일한 사진으로 국사교과서나 한국의 근대 역사책이라면 빠지지 않고 실린 사진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이 사진이 조명을 받기 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친 경우가 많았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이 사진을 누가 어떻게 찍었는지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죄송한 마음 이전에 놀라움마저 들게 된다. 이 사진은 캐나나 출신 영국 언론인으로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특파원 매켄지(F.A. Mckenzie)가 1907년, 양평에서 찍은 사진이다. 러일전쟁을 취재하러 온 매켄지는 한국의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제천 일대의 의병을 취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의병을 만난 것이다. 매켄지를 본 젊은 아낙네는 ‘당신이 우리의 현실을 외국에 알려 달라’고 했고 의병 중 한 명은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무기를 구해 달라’고 했다. 무엇보다 의병들은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라며 독립전선에 뛰어든 비장한 심정을 밝혔다. 이런 내용은 그가 쓴 대…
2018-11-06 10:38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가난하게 살아온 몬티 나바로가 어느 날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후계자들을 한 명씩 없애는 과정을 다룬 코미디. 단 한 명의 배우가 9명의 다이스퀴스 가문 후계자들로 분하는 연기가 작품의 백미다. 2014년 토니어워드 최우수 뮤지컬, 최우수 극본, 연출, 의상상 수상작. 유연석, 김동완, 오만석, 한지상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은다. 11.9-2019.1.27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뮤지컬 팬텀 작가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한 작품. 같은 제목의 뮤지컬 역시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지만 팬텀은 오페라극장에 숨어 사는 미스터리한 남자 ‘에릭’의 인간적인 면에 집중한다. 그의 사랑과 분노, 두려움 등 폭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이 클래시컬한 음악과 화려한 무대, 비극적인 스토리 속에 담겨있다. 임태경, 정성화, 카이가 타이틀롤을 소화한다. 12.1-2019.2.17 |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전시 MIKE: 마이큐 감각적이고 세련된 음악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한 싱어송라이터 마이큐(My Q)의 첫 번째 전시. 몽환적인 오렌지빛으로 채워진 갤러리에
2018-10-30 11:34얼마 전까지 공연계, 특히 뮤지컬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흥행공식이 우스개처럼 떠돌았다. 남자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갈 것, 주인공 다음의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배역들 역시 남자로 설정할 것. 둘 또는 셋 사이에 긴밀한 관계를 설정할 것. 아닌 게 아니라 한동안 대학로는 ‘남자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남성 출연진, 남성 제작진으로 꾸려진 무대가 주를 이뤘다. 아마 위의 우스갯소리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누군가 던진 뼈있는 농담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서사’에 대한 목마름이 높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차츰 여성들의 무대를 요구하는 관객들의 목소리도 높아져갔다. 덕분에 최근 1~2년 사이 여성들에 의한, 여성들을 위한 작품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전 출연진이 여성 배우로만 꾸려진 뮤지컬도 등장했다. 이번 가을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전 출연진이 여성 ‘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에 출연하는 10명의 모든 배우가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간 전 출연자가 남자인 극은 많았으나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전무(全無)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덕분에 캐스팅 발표와 동시…
2018-10-30 11:18쉽게 끝나지 않을 듯 보였던 여름 더위도 자연의 순리 앞에서 어느덧 조용히 떠나버리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는 계절이 됐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의 섭리는 참 오묘하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진리이기도 하다. 가을이 되면 우리 주변에는 좋은 먹거리들이 넘쳐나게 되는데 아마도 추운 겨울을 대비해 우리 몸을 좀 더 보하라는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서는 풍성한 가을 식재료로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을 꽃게를 이용한 꽃게탕과 늦가을에 맛있는 배추를 이용한 배추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꽃게=게는 고단백 식품으로 그 맛이 독특하고 감칠맛이 풍부하다. 국내에서는 갯벌이 많은 서해안이 좋은 서식처로 연평도 꽃게가 유명하다. 꽃게는 게장, 게무침, 게장국, 게찜, 게튀김 등 매우 다양하게 요리에 이용되는데 산란기가 시작되기 전 봄철 암게를 최고로 치지만 국내에서는 꽃게 산란기인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금어기가 풀리는 가을철이 되면 수확량이 많아지고 값이 떨어져 가을 역시 꽃게를 즐기기 좋은 계절이다. 게를 사서 바로 먹지 않을 때는 냉동 보관해두는 것이 좋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섬유질이 단단해 지고 질겨 지는 등 식감이나 신선도는 떨어…
2018-10-25 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