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시절 이제 교단에 선지도 35년째다. 내가 걸어온 길을 머릿속으로나마 한번 돌아보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과연 교사로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안은 채 1977년 3월 발령을 받고 교사가 됐다. 배우는 입장에서 가르치는 입장으로의 전환이 어색했다. 해가 밝아오는 아침이 싫어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출근 시간에 몰려 몸을 힘겹게 일으키고 출근하기를 한 달. 나도 모르게 가르치는 일에 재미가 솔솔 나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 자연에서 뒹굴던 나였기에 어느새 칠판 우측에 윤동주의 서시를 써 놓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낭송해주며 말했다. “선생님이 이 시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란다. 생명은 그만큼 다 중요하지. 풀 한 포기든 작은 벌레 한 마리든 말이야.” 시를 통해 아이들에게 생명존중의 정신을 심어주고 싶었다. 교사 초기에는 훌륭한 교사를 목표로 세우고 교육도서를 읽고 각 과목별 특징을 살린 수업모형을 알려고 노력하면서 나름대로의 모형을 정리해 학생들의 사고력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했다. 학생들의 사고를 건드려주기 위해 발문에 유의해 공통점, 차이점을 찾고 비교하며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정리해보게…
2012-04-06 09:49한국교육신문에서 ‘2011 교단수기 공모’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손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기쁜 소식을 옆 반 선생님께 달려가 말씀드렸더니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습니다. 마음을 진정하고 교실로 돌아와 공모에 보낸 수기를 다시 읽어보니 그동안 걸어온 일들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어쩐지 제 자랑만 늘어놓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값진 일이었고 현장논문을 365일 노심초사해가며 썼던 기억은 나만의 집요한 고뇌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개학 후 전교 선생님들을 모시고 상장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한 선생님이 수기내용이 궁금하다며 보내달라셔서 파일을 드렸더니 전교에 메신저로 전달해 많은 선생님들이 읽게 됐습니다. 수기를 읽어보신 선생님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교사생활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다며 더 열심히 학생들과 소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행복한 마음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끝으로 전임 학교인 휘봉초 3-3반 학생들이 저에게쓴 편지 중 시를 잘 썼던 이재린 학생의 글 일부를 소개하면서 당선 소감을 줄입니다. 저는 올 한해 정말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여행을 했어요. 삼삼반이라는 여행지에서 말이에요
2012-04-06 09:42'體認知=Change=體認智' 철학은 영어의 변화에 해당하는 ‘change'를 발음하면 ’체인지‘로 읽힌다는 점에 착안해 창안한 새로운 변화지향적 학습관이자 지식관이다. 체인지 철학에 따르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몸(體)이 동반된 ’고통‘ 체험이 있고, 그 가운데 지적 ’고뇌‘의 작용으로 새로운 깨달음이 인식(認識)으로 다가오면서 마지막 순간에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정리된 결과가 바로 지식(知識)이라는 것이다. 체인지 철학은 머리로 고민만 하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매개로 결연한 실천을 전개하지 않는 고통체험이 생략된 창백한 교실학습의 폐단을 지적한다. 나아가 내 몸이 직접 움직여서 내가 고통체험한 결과 창조해내는 지식만이 나의 사고방식, 행동, 삶의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식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체인지 철학은 디지털 시대의 만개와 함께 한 없이 가벼워지고 빨라진 지식담론에 무게와 여유, 그리고 느림의 철학을 반영하려는 운동이다. 이런 점에서 체인지 철학은 기본과 토대 없는 가벼운 디지털 지식담론의 위험과 위기현상에 경종을 울리고, 그런 지식관이 만들어가는 위험 사회에 맞서 대항할 수 있는 대안담론인 것이다. 체인지 철학은 지식을
2012-04-04 18:57나는 정치와 정신과는 별개로 알았다. 또 그렇게 배웠다.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상대적 거대담론인 정치와 개인의 정신질환을 치유하는 정신과는 스테이크와 짜장면만큼 서로 멀리 떨어진 다른 동네다. 그런데 제임스 길리건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보수가 집권하면 자살과 살인이 급증한다고 주장을 하는 책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를 냈다. 이 사람 정치하려고 하나 싶었는데, 하버드대학 교수를 무지 오래한 사람이고, 지금도 뉴욕대 정신과에서 근무하는 노교수였다. 지금까지 자살과 살인의 원인을 푸는 것은 주로 개인의 문제가 중심이었다. 자살의 원인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70%라는 것, 또 뇌척수액에서 신경전달물질의 전구체가 상승되어있는 것과 같이 생물학적 개인의 취약성을 찾는 것이었다. 자살 예방도 개개인의 위험성을 통제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살인은 어떤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신경생리적 특성이나, 뇌의 기능과 구조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있었다. 한 마디로 살인을 일삼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보통사람과 확연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려는 노력이 아니었을까? 저자 제임스 길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메사추세츠 주립 교수도의 수
2012-04-03 14:08필자는 시간 관리법에 관한 책을 매년 초마다 한두 권씩 사서 밑줄 그어가며 읽곤 했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내가 늘 이 모양 이 처지’라는 자책. 그런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책이 플로리안 오피츠의 ‘슬로우’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수많은 일을 처리하며 고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 오피츠. 그에게 늘 시간은 부족하기만 했고 시계바늘에 떠밀려 산다는 느낌뿐이었다. ‘효율성으로 절약한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속도전을 치르며 살면 더 나은 세계와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는 먼저 시간 전문가들을 찾아 조언을 들었다. 시간관리 전문가 자이베르트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계획을 세우고 하루를 작은 단위로 쪼개 중요한 일부터 집중하라 말해주었지만, 이는 수많은 시간 관리법 책들이 늘 반복하는 내용 아닌가. 반면 시간 연구자 가이슬러 교수의 조언은 유익했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할 일이 너무 많거나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에요. 누구나 하나의 인생을 살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여러 삶을 살 수
2012-03-29 10:19당신이 원하는 사람도, 당신을 원하는 사람도 아닌, 당신과 가장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그 사람이 당신의 ‘짝’이자 ‘사랑’이다. 짝, 사랑이라기에 짝사랑에 대한 책인가 하여 넘겨보았으나 아니었다. 짝, 그리고 사랑에 대한 글이었다. 여기에서 짝이라 함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맞선 프로그램 비슷한 걸 이야기할 때 말하는 그 ‘짝’이다. 맞선이 요즘처럼 기업 수준이 될 줄은 몰랐다. 지하철 문짝에서 커다랗게 ‘결혼해 듀오’라고 몇 번이나 문이 여닫히는 걸 보면 정말이지 대기업 수준이다. 소위 알음알음으로 ‘매파’를 낀 중매를 통해 짝을 찾는 광경은 80년대를 그린 박완서의 문학에서나 남아 있는 것 같다. 상큼하고 세련되게, 커다란 전광판에 나선 당당한 결혼정보업체 광고에서 활짝 웃고 있는 선남선녀의 미소는 아마 우리 삶에서 결혼이 조건과 조건의 결합이라는 것을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황상민의 ‘짝, 사랑’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결혼에 있어서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송곳처럼 꼭 집어 낱낱이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정말 돈 안 보고 이 사람 하나만을 보고 세속적 조건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부부가 있다면 이 둘은 ‘낭만형’ 사랑이다. 즉…
2012-03-20 10:24많은 사람들이 “나도 상담을 좀 받아야 할 텐데”라고 말을 한다.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으면 “누구나 다 문제가 있지 않나요? 사는 게 너무 복잡해요”라는 답이 열에 일곱이다. 반가운 마음에 꼭 한 번 해보시라고 권한다. 그러나 제대로 정신치료를 받았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필요해보이나, 막상 하기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막연히 필요성은 느끼지만 정신치료가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나도 모르는 나의 내면이 드러나고 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콤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책을 찾아보면 나아질까 찾아본다. 그러나 대부분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거나, 정신치료의 대가가 일방적인 관점에서 쓴 환자의 사례집들이다. 이런 막막함과 불안을 필리파 페리의 ‘필리파 페리 박사의 심리치료극장’은 깔끔하게 풀어준다. 그렇다고 대단한 분량일 것이라 지레 겁먹지 말라. 책은 어이없을 정도로 가볍다. 펼쳐보면 페이지의 상단은 만화로 구성되어 치료자 펫과 환자 제임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신치료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하단에는 각 장면의 의미에 대해서 이론적 설명과 벌어진 상황에 대한 풀이가 있
2012-03-13 17:09‘직업’ 주제의식 ‘서 말의 구슬을 하나로 꿰어’ 근대초기 생활‧문화사 풍경 재현, 의미 추적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이명세 감독)에서 영민(박중훈)이 다니는 출판사는 소박하며 누추해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 2011년 MBC 주말드라마 ‘반짝 반짝 빛나는’에서 주인공들이 다니는 출판사는 대규모 자본력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출판사들이 다수지만, 출판업과 출판 직종의 변화를 반영한다.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은 드라마가 제작되는 시기 대중들의 욕망과 사회 흐름을 보여준다. 같은 직업이라도 바뀐 환경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세상이 변할 때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고 오랜 직업이 사라진다. 지금은 사라진 전화교환수는 근대의 새로운 매체, 전화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대한제국 시대에 등장했다. 조선의 첫 전화는 1898년 경운궁에 개설됐다. 고종이 전화를 걸면 신하들은 큰 절을 네 번 하고 수화기를 두 손으로 들었다. 조선의 황태자 의친왕 이강은 61세 때 19살의 궁궐 전화교환수를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비둘기 집’으로 유명한 가수 이석 씨가 새로운 매체 발달이 낳은 이 로맨스에서 태어난 분이다. 국문학자이자…
2012-02-27 13:45공부는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현상에 대해서 남다른 호기심과 의심의 눈초리로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시비를 걸면서 의문을 던지고 구체적인 질문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이다. 공부는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현명한 답, 현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보다는 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가 더욱 중요하다. 남다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그 동안 남들이 던지지 않은 질문을 찾아 헤매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연구 성과물을 통독(通讀)하고 정독(精讀)하면서 묵독(黙讀)해서 기존의 학자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하며, 물론 그렇다고 간과한 부분을 들춰내야 하며, 원래 그렇다고 폄하한 부분을 헤집고 드러내야 한다. 평이한 질문은 식상한 답을 가져다주지만, 색다른 질문은 일면 몰상식한 답을 가져다준다. 지금 당장 겉으로 보기에 몰상식해 보이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몰상식한 답에 세상을 뒤집는 비밀의 열쇠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학문발전은 소수의 몰상식한 사람이 일으킨 지적 혁명의 산물이다. 몰상식한 소수 이외의 다른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이 제기한 문제의식에 조소와 조롱, 비난
2012-02-23 19:22훌∼쩍! 벌써 이만큼 건너뛰었습니다. 오늘은 늘 길게만 느껴지지만, 막상 지나버린 어제는 단 몇 분의 회상으로 갈무리되고 맙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는 사이에 삶은 이미 너무도 멀리 와 버렸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많은 일들을 했더라면 내가 서 있는 이곳은 결코 여기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서성이는 내가 마냥 초라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아직도 손을 내밀고 있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항상 감사함과 고마움을 안고 길게만 느껴지는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그것입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수기 공모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생 자살, 학교 폭력, 교내 성추행 등 학교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연일 꼬리를 물고 우리 사회를 온통 헤집어 놓고 있습니다. 우리 관내도 예외는 아닙니다. 밝은 내일이 태동하고 튼실한 미래의 주인공이 성장해야 할 학교에서의 사건·사고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입니다. 혼란스러운 학교 현장에서 늘 묵묵히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되뇌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자화
2012-02-16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