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11월은 어정쩡하다. 가을이 다 간 것도, 또 그렇다고 겨울이 온 것도 아닌 그 사이에서 움찔거린다. 후드득 떨어지는 낙엽, 휑하니 불어오는 알싸한 바람, 그리고 짧은 햇살. 같은 가을이지만, 풍요롭고 화려한 10월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며 푸른빛을 잃고 토해낸 빛바랜 낙엽이 우리 인생사를 닮아서일까. 11월의 늦가을은 깊은 성찰로 빠져들게 한다. 유명 단풍 명소 부럽지 않은 소박한 고택, 춘천 ‘김정은 가옥’ 달아나는 가을을 붙잡으려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유명 여행지는 초만원이다. 단풍구경은 고사하고 제대로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다. 평온하고 운치 있는 가을여행을 하고 싶다면 고즈넉한 마을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고택(古宅)에서 ‘사랑방 손님’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춘천 ‘김정은 가옥’은 100년 남짓 된 소박한 고택이다. 경주나 안동에 있는 고택처럼 규모가 크지 않아 마치 어린 시절 외갓집에 온 듯 편안하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 넓지 않은 마당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붉은 단풍이 든 단풍나무 두 그루와 한옥의 조화는 유명 단풍 명소가 전혀 부럽지 않다. 나른한 오후의
2014-11-01 09:00광해군 시기 서북면을 방비하던 장수 박엽(朴燁)은 용감하고 지략이 출중한 무인이었지만 서인(西人)이 중심이 되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옹립한 인조반정 이후 바로 처형되었다. 반정을 일으킨 서인 정권은 광해군 밑에서 힘깨나 썼던 인물들을 모조리 제거해나갈 때 평안도 병권을 틀어쥐고 있던 박엽을 가장 먼저 숙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엽은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명분으로 숙청됐다. 이는 그가 그만큼 청렴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북면 방어 태세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인 엄중한 군율은 동원된 관과 민 모두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강력한 전시 체제의 유지는 지도자의 청렴 없이는 불가능했다. 때문에 만약 박엽이 건재했더라면 인조반정 이후 발발한 병자호란 때 서북면 조선군이 그리 쉽게 궤멸되지는 않았으리란 추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박엽의 인간적 풍모는 정조대 재상 채제공(蔡濟恭)이 남긴 글 「이충백전(李忠伯傳)」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평양의 싸움꾼 이충백의 일화를 다룬 이 글에서 박엽은 잔인무도하기 그지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자신이 총애하던 기생과 간통한 이충백을 사살하라 명하는 평안감사 박엽은 언뜻 몹시 치졸해 보이며, 천 명을 살해해야 모진 업에
2014-11-01 09:0001 중국의 ‘문화혁명’을 기억하는 젊은 세대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혁명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에는 오늘날 중국 인민은 물론이고 세계가 공감하는 것 같다. 나는 1992년 처음으로 중국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은 나에게 세계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의미 있는 충격도 주었다. 우리 일행은 북경대학교를 방문하여 그 대학 경제학과 교수에게서 특강을 들었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얻고 온 사람이었다. 강의에 임하는 그에게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덕담에 가까운 조크를 했다. “교수님!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요, 나이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돌아온 그의 대답이 정말 기막힌 것이었다.“지난 시기 중국 현대사의 한 지점에서 약 10년 동안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니 저도 나이를 먹을 수가 없었던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화혁명에 대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논평이었다. 문화혁명이 한창 광기를 뿜어대며 시작되던 1966년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이 미친 듯한 대소동을 국내 언론들도 연일 크게 보도했었는데, 나는 이것이 왜 ‘문화혁명’인지를 이해할…
2014-10-01 09:00‘독소’는 모든 병의 근원이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병(독소)을 섭취하고 병(독소)을 만들면서,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며 살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맛을 위해 자연식과 거리가 먼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독소가 우리 몸속에 잔류하면서 우리 몸 각 부위나 장기를 공격하여 병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해독(detox)이란? 고전에서는 모든 사람은 다 ‘미병(未病)’ 상태라고 말한다. 즉, ‘아직 병들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한 상태’라는 것은 독소를 스스로 만들고 끝없이 섭취하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병증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해독(디톡스:detox)’은 중요하다. 쌓아 두었다가 한 번씩 해독하면 되는 게 아니라, 독소가 체내에 유입되는 족족 해독될 수 있도록 평소에 우리 몸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들 장세척, 장청소를 ‘디톡스’와 같은 뜻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디톡스는 모든 몸의 해독을 뜻한다. 다만, 대장에서 몸속 독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소는 코, 입, 피부를 통해 배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대장과…
2014-10-01 09:00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오지여행 오지여행은 ‘버림의 여행’이다. 단순하고 가볍다. 이동 수단은 오로지 내 두 다리와 배낭 하나. 최대한 짐을 줄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물건만 엄선하여 배낭에 넣는다. 있으면 편리하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것들…. 결국 백패킹(Backpacking)을 위한 짐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만 남는다. ‘죽도록 벌어서, 죽도록 사 모으고, 죽도록 버리는’ 문명 생활을 버리고, 오늘 하루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사는 법’을 배워본다. 비수구미, 막지리, 살둔마을…. 오지마을은 이름마저도 생경스럽다. 방송을 탄 탓인지 찾는 사람도 많아지고 사람들의 손때도 탔지만, 여전히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이 많다.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반쯤 무너진 돌담도, 녹슨 양철 지붕도, 툇마루에서 졸고 있는 강아지도 고향 할머니의 포근한 정서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시간이 멈춘 듯한 장소에서 꼭 뭘 해야만 한다는 종종거림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가벼워진다. 막 물들기 시작한 가을나무 사이를 타박타박 걷다보면 자유로움에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오지여행의 행복은 딱 이만큼이다. 욕심은 금물이다. 절대 낭만과는…
2014-10-01 09:00자아를 텅 비워 타인과 갈등의 소지를 없애려는 달관의 인생 태도는 선불교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근대 일본의 대표적 의승(醫僧)이었던 하라 탄잔(原 坦山) 이야기가 유명하다. 탄잔이 다른 승려와 한 개울가에 이르렀을 때 어떤 처녀가 불어난 물을 건너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었다. 탄잔이 선뜻 처녀를 들쳐 업고 개울을 건너 주었다. 한참을 함께 걷던 다른 승려가 탄잔에게 어찌 승려 신분으로 처녀를 업을 수 있었느냐 힐난했다. 그러자 탄잔이 말했다. “이보게, 난 이미 처녀를 내려놨네만 자넨 아직도 안고 있었나?” 흔히 한국의 경허(鏡虛) 스님 고사로 잘못 알려져 있는 일화다. 처녀를 붙잡아두려는 마음의 집착이 없다면 처녀는 이미 내 삶에서 떠난 것이다. 탄잔의 마음은 마치 텅 빈 배처럼 처녀를 실어 건너편에 내려주고 도로 비어버렸다. 그 안에 처녀는 없었다. 처녀를 마음에 간직하고 괴로워한 건 다른 승려였다. 그는 집착의 마음으로 그녀를 자기 안에 옭아맨 채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탄잔을 질투하여 화가 나 있었다. 허나 탄잔의 마음속에 그녀는 이미 없었고 그는 그저 고요한 빈 배로 세상을 떠돌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원문】 我若被人罵, 佯聾不分說, 譬如火燒空, 不救
2014-10-01 09:00처음에 먹방 스타로 떠오른 건 배우 하정우였다. 그가 영화 속에서 김과 탕수육을 ‘우적우적’ 먹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이후 가수 윤민수의 아들 윤후 먹방이 인터넷을 평정했고, 다음엔 추성훈의 딸 추사랑이 먹방계의 슈퍼스타로 등극했다. 대한민국 대표 예능 프로그램 곳곳에 먹방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진짜 사나이에선 PX나 식당에서 맛보는 부대별 군대음식이 훈련에 지친 출연자들의 단비가 되어준다. 아빠 어디가는 전국 각지를 돌며 현지 식재료로 밥을 해먹으며, 1박2일은 복불복으로 현지 특산물을 시식하는 장면이 매주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과거 강호동이 라면을 맛있게 먹는 장면에서 순간 시청률이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선 일본의 일상적인 식사 광경이 소개됐고, 정글의 법칙은 ‘맛 기행’의 범위를 넓혀 지구촌 오지를 돌며 투구 게, 왕도마뱀 등 현지 음식을 먹곤 한다. 과거엔 저녁식사 시간대에 하는 6시 내고향류의 프로그램과 아침 요리 프로그램에서만 먹는 장면을 내보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음식이 일반 예능까지 평정했고, 이제 인터넷 개인방송에까지 확산됐다. 한 일반인 ‘먹방 BJ’의 경우 누
2014-10-01 09:00아폴론(Apollon)적인 것에서 디오니소스(Dionysos)적인 것으로 해체를! 우리 인간은 추잡하고 타락한 욕망과 고귀한 이성이라는 양극단을 갖고 균형을 지키며 살아간다. 디오니소스(Dionysos)의 추악함을 극복하기 위해 이성을 가진 아폴론(Apollon)의 결합을 니체(Nietsche)는 ‘초인’이라고 표현한다. 디오니소스가 아폴론에 의해 억압을 받으면 미쳐(광기)버리게 된다. 아폴론적인 것은 이성과 합리성이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감성과 열정인데 니체는 세계문명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의 발전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런 발전은 역설적으로 이 ‘아폴론적인 것’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의 해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온갖 이성과 합리성으로 포장하여 왜곡하는 것 보다는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해체될 때 세계를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오니소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만 ‘내가 나이가 많아 정민이를 사랑할 수 없다’는 명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사랑은 이성과 합리성 보다는 감성과 열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이 갖고 있는 왜소함을 극복할 수 있다. 초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자신이 갖고 있
2014-10-01 09:00최근 2015 국가교육과정 개정 방향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대부분이 국·영·수·사·과 등 주요과목에 대한 편재와 시수에 대한 논의지만, 그중 SW교육 관련 논의 또한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SW교육이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과연 왜곡된 입시체제 하에서, 그리고 각 교과목들 간의 첨예한 영역싸움판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운영되어 나갈 것인지는 관심 가지고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SW교육 관련 논의가 한창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고 개인적인 경험과 상식에 의존해 판단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SW교육에 대한 궁금증과 오해를 풀고자 한다. 질문 1 SW교육은 무엇을 배우는 과목인가? ICT 활용교육, 정보교육, 프로그램 코딩교육 등과 다른 것인가? 세계적으로 지금까지의 컴퓨터교육은 ICT 활용교육, 즉 이미 있는 ICT 기술과 도구, 서비스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이었다. 예를 들면, 아래한글 사용법이나 인터넷 서비스 사용법 등을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산업 경제에서 벗어나 디지털 경제로 나아가면서, 이러한 소비자교육에서 벗어나 생산자(maker)교육을 해야 한다는
2014-10-01 09:00“엄마는 내편이 아닌 것 같아요. 용기내서 말했는데…. 별거 아니라고, 내가 너보다 더 힘들다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자살위험도가 꽤 높았던 학생은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절박한 고통스러움도, 끈질긴 괴롭힘도 없다고 했다. 그저 ‘사는 게 재미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무척 당황스러운 맞닥뜨림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의 행복을 빼앗아갔을까? 혼돈에 빠져들었다. 나의 사고체계가 오작동 하던 중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게 되었다. 가슴에 팍, 꽂힌 한 구절. 고개가 끄덕여지며 오작동은 멈췄다. 우리의 삶은 특별한 시간보다 평범한 시간들이 더 많습니다. 은행에서 순서표를 뽑아 기다리고, 식당에서 음식 나오길 또 기다리고,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오면 문자를 보내고…. 결국 이 평범한 시간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특별한 행복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행복이란 소소한 곳에서 나온다. 일 년 365일 말썽을 더 많이 부리고 날 괴롭히는 녀석들이지만, 아침 일찍 씨익 웃으며 건네주는 캔 커피에 행복해지고, 체육대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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