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보화는 정부와 민간의 전폭적인 지지없이는 불가능하다. 상호간의 긴밀한 협조와 지원이 있어야 정보화시대의 학생들에게 다양하고 폭넓은 학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된 학교의 불법 소프트웨어 문제도 사실은 정부의 적절한 지원없이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일선의 반응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 교육계에서도 정부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최근 미국 교육계는 교육정보화를 위한 일선의 요구를 정부와 민간기업에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E-rate' 프로그램. 교사와 학생이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등 통신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막대한 요금이 장애요인이다. 97년 5월7일 클린턴 대통령과 교육부장관 Riley의 2년간의 노력 끝에 모든 학교와 도서관이 정보초고속망에 연결 가능하도록 하는 'E-rate'가 통과됐다. 즉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전국의 가난한 학교와 도서관이 기기 설치, 연결비용, 월 서비스 비용을 할인받을 수 있도록 연 22억5천만달러(2조7천억원)의 비용을 할인하는 데 동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소한 70%의 학교들이 소요비용의 약 50%를 할인받게 됐고 경제사정이 아주 어려운 학교들은 9
1878년 평남 강서군 초리면에서 태어나 16세때 청일전쟁을 겪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신념을 키워 나갔다. 상경 후 밀러학당(구세학당) 보통부에 입학, 영어와 서양의 선진 과학문명을 접했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담해 서당 선배 필대은과 독립협회 관서지회 설립에 참여해 자신의 정치 및 사회사상을 키워나갔다. 이때 평양지회 결성식이 열린 평양 쾌재정(快哉亭)에서 정부와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 명성을 얻었다. 1898년 이상재, 윤치호, 이승만 등과 서울 종로에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개최해 새 시대의 도래와 새로운 민중의 자각을 외쳤으며 1899년 고향으로 돌아온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세웠다. '점진공부와 수양을 계속해 민족의 힘을 기른다'는 교육목표를 설정한 점진학교는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최초의 초등과정 사립학교이며 남녀공학 학교였다. 1900년에는 미국에서 재미동포들의 생활혁명 운동에 전력했다. 도산은 교포들에게 진실과 협동 정신, 준법정신을 특히 강조했으며 대한 인공립협회(公立協會)를 만들고 공립신보(共立新報)를 창간해 동포의 조직과 지도에 힘썼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 늑결(勒結)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구국운동을 하
교사들이 '잡무의 늪'에 빠져 헤쳐 나올 줄 모른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예가 있다. 지난해 전남의 모 초등학교(43학급 규모의 읍 소재지)에서 98년도에 발생하여 처리된 공문서의 경우 교무부 소관은 1030여 쪽, 연구부 소관은 900여 쪽으로서 1일 평균 교무부는 4∼5쪽을 연구부는 3∼4쪽의 공문서를 처리한 셈이 된다. 그런데 지난 3월1일자 한국교육신문 보도를 보면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99학년도부터 '모든 공문서를 서무실에서 취급처리 하겠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이 보도를 보고 대다수의 교사들이 공문서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제까지 교육부를 위시한 관계 당국의 탁상공론적인 잡무경감 시책에 식상한 전국의 많은 교사들이 환영하리라 여겨진다. 모든 교사들이 공문서의 늪에서 벗어나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지난해 실추되었던 교권의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처럼 선생님이 힘든 때는 없었다. 정년 단축, 박봉 삭감, 교사 폭행, 교권 침해, 모진 여론의 화살 등으로 선생님들은 동네북처럼 이리 맞고 저리 받혀 기진맥진 실신상태다. 그래도 말 한마디 못하고 무거운 침묵으로 현실을 비관한다. 이 사회가 선생님을 무시하고 경시하니까 학생들도 선생님을 무시하며 지도까지 받지 않으려고 한다. 도통 말이 먹히지 않는다. 결과는 심각한 교권침해와 폭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면하는 선생님들은 넋을 잃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 술렁이는 학교현장이 딱하기만 하다. 교육적 체벌까지 인권 모독이라는 풍조인데 어떻게 교육이 바로 서겠는가. 때문에 학교는 점점 교육부재와 공황에서 교사와 학생간의 믿음은 상실되어 험악한 공해로 숨막히는 황폐는 거듭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교사의 입지는 황당하고 막연할 뿐이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누가 뭐래도 우린 묵묵히 이 나라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다. 우리가 포기하면 이 나라 교육은 영원한 퇴행일 뿐이다. 이대론 안 된다. 용기를 내어 바로 잡아야 한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우린 우리의 길을 가야한다. 스승의 길이란 험하고 고달픈 역경임을 숙명으
곡식을 심음은 1년 농사요, 과수를 심음은 적어도 10년을 바라봄이다. 하물며 사람을 교육하는 마당에 그 결과를 금방 눈으로 확인하려는 어리석음은 마치 화분에 꽃씨를 심고는 다음날 아침에 싹이 텄는가 흙을 파보고 다시 흙을 덮는 것과 같은 일을 매일같이 되풀이하는 어떤 어리석은 사람과 같은 못난 짓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우리들 교육현장에도 이렇듯 학교 교육을 당장 눈으로 확인해서 교육을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평가하려는 답답한 사람들이 있어 한심스럽다. 사실 교육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는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영역이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가시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평가해서 보상을 하고 성과급을 주는 식으로 교육을 다룬다면 우리 교육은 알맹이 있는 사람 만드는 인격교육을 하기보다는 그럴듯한 계획서나 잘 만들어 몇백만원씩 나눠주는 보상금이나 타고 장부 만들고 자료 만들고 보고서 잘 만드는 일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교육은 무엇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가령 몇백억을 투입했다해서 당장 그만큼 산출됐는가를 결산하려는 생각은 참으로 곤란하다. 교육을 경제논리로 대입하려는 생각부터가
한국교육신문이 창간 된지 어언 38년이 됐다. 1961년 새한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창간된 이래 본지는 발전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오늘날 ABC공사(公査) 인증 25만여부를 자랑하는 가장 대표적인 교육전문지로 성장하였다. 특히 창간 38주년을 맞는 금년도에는 기존의 PC통신 하이텔과 에듀넷을 통한 정보제공 서비스 이외에 '인터넷한국교육신문'(http://kew.webclass.net)을 개설함으로써 '사이버교육언론'시대도 함께 이끌어 가고 있다. 본지는 교원독자들의 사랑과 채찍을 자양분으로 성장해왔다. 본지가 과거 사회·정치적 격동과 질곡을 겪으면서도 학부모는 물론 사회·정치적 분야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육공론의 대명사로 발돋움하게 된 것도 바로 40만 교육가족의 적극적인 참여와 뜨거운 격려와 따가운 질책이 그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본지는 창간 38돌을 자축하기에 앞서 지금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위기에 처한 교육현실을 보고 참담한 심정으로 교육언론의 역할을 되새겨보면서 한편 책임이 막중함을 통감한다. 교원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오히려 비하하는 분위기에서 교육 개혁에 동참하기 위하여 교원들은 건전한 참여의지를 보여줬지만 오히려
한국교총이 열흘남짓한 기간동안 전개한 '교육공황 부른 이해찬 교육부장관 퇴진 촉구 서명운동'에 23만1천8백45명의 교원이 참여한 것으로 13일현재 집계됐다. 이는 전국 초·중등 교원 약 34만6천명의 약 67%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교총은 10일 대통령과 총리에게 서명운동 결과를 전하고 교직안정을 위해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이번 서명운동에서 철회 또는 시정을 요구한 졸속 정책과제들은 교육부와 교섭·협의를 통해 풀어나갈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이번 서명운동에 전체교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교원들이 참여한 것은 현 정부의 교육개혁 추진 방식과 교육부장관에 대한 교원들의 불신의 정도가 심각한 수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욱이 이번 서명운동이 현직 장관의 신분관련 사안인데다 교육부가 불법적 집단행위로 몰았으며 시·도교육감들의 자제 요청과 설득 활동이 있었고, 일 부의 부정적 여론이 있었던 점 등 외부의 압력요인이 크게 작용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더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그동안 과도한 경제논리에 입각한 개혁정책과 현장실정을 무시한 일방적 정책추진으로 교권불신과 공동화의 위기상황을 불러온 교육부장관은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
지난달 22일 경기 파주 K초등학교. 1학년 담임인 문모교사가 가정통신문을 찢고 다른 아이를 건드리는 등 수업에 지장을 주는 학생에게 "말을 듣지 않으려면 책가방을 싸 집으로 가라"고 훈계했다. 이 학생은 결국 쉬는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고 문교사는 학생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전화를 받은 아이의 아버지는 즉시 학교로 찾아와 수업중인 문교사의 멱살을 잡고 교장실, 서무실 등으로 끌고 다니는 한편 이를 말리는 교감의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학생의 아버지는 문교사를 도교육청에 고발했고 문교사도 학교 무단침입, 명예훼손, 수업방해, 폭행 등으로 아버지를 경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학생은 사건 하루 뒤 인근 학교로 전학했다. 현재 이 사건은 도교육청과 경찰의 조사가 진행중에 있다. 최근 이같이 교내에서 학생·학부모에 의해 교사가 폭행당하는 사건이 급증,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교총이 지난 97년부터 올 4월까지 발생한 교내 교사폭행 사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97년 1건이던 것이 98년에는 8건, 올 들어서는 6건에 이르고 있다. 이는 언론보도와 교총에 접수된 사건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학교 자체에서 처리된 사건까지 감안할 경우 이보다 훨씬
서울 금천구에서 '여주이발관'을 운영하는 이용사 張在喆씨(46). 그는 매주 화요일이면 가게문을 닫고 아침 일찍부터 이발가방을 챙긴다. 한 달 내내 그의 손길과 가위소리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張씨는 26년간 재활원, 양로원, 고아원 등을 찾아 '이발봉사'를 해 왔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어렵게 배운 이용기술을 정말 필요한 곳에서 발휘하 고 싶어서다. "15살때 홀홀단신 상경해서 이발소에 취직했습니다. 외롭고 힘들게 몇 년간 고생하며 배운 기술을 돈 버는데만 쓰기엔 아깝더군요" 그는 72년부터 이발봉사를 시작했다. 그 때 나이 19살. 당시 인연을 맺은 곳은 화곡동 천애재활원과 노원구 맹인대린원·홍파양로원. 어린 나이라 처음에는 냄새나고 덥수룩한 머리를 한 노인들, 갈고리 팔·외다리 아저씨가 너무 무서워 가위질마저 떨렸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이용사였다. "움직이지 못해 지저분한 분들을 깔끔하게 이발시키고 나면 마음까지 후련해진다"는 그는 "보람도 보람이지만 우선 마음이 즐겁다"고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그는 어디든 간다. 구로구 오류애육원, 삼육재활원, 화곡동 천사의 집, 대방동 신망원 등 한참 많이 다닐때는 10군데를 돌며 이발
한번 마음이 떠나면 남남보다 못한 게 부모-자녀간. 어떻게 하면 존경스런 부모, 친구같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제안하는 10가지 방법을 실천해보자. △솔직한 대화 나누기=관심의 시작은 대화. 자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부모의 생각을 솔직히 말해야 한다. 자녀를 학교나 유치원에 맡겨 두지만 말고 자녀의 꿈과 관심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비판보다는 칭찬을=자녀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말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오히려 칭찬과 격려가 자녀의 마 음을 되돌리는 기적을 낳는다. △자녀에게 사랑의 편지를=친구처럼 사랑을 듬뿍 담은 편지를 보낸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다. △마마보이를 만들지 말자=숙제나 방청소 등을 대신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녀를 바보로 만드는 것. 가정 생활의 한 몫을 맡기면 자 녀도 자신을 인정해 준다고 좋아할 것이다. △자녀와 책읽기=하루 10분만이라도 함께 책을 읽어보자. 공부하라는 말보다 더 효과가 있고 친밀감 형성에도 좋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금물=약속을 지키지 않는 부모는 불신을 주고 상처를 준다. 작은 약속도 충실히 지키고 못 지킬 경우에는 미리 말한다. △함께하는 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