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은 제기처럼 용도 한정 존재여선 안 돼 우리가 보통 그릇이 크다거나 작다라는 말을 할 때 그릇이 의미하는 바는 능력이나 인격 또는 포용력을 가리킨다. 그릇은 이렇듯 종종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한자성어인 ‘군자불기’(君子不器)의 경우 이를 직역해보면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의 뜻이 되니 그릇이 반드시 좋은 뜻으로만 쓰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그릇’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을 알려면 우선 한자인 기(器)자의 원뜻을 살펴보아야 한다. 기(器)자의 모양을 분석해보면 우선 네 개의 구(口)자가 있고 그 가운데에 견(犬)자가 있다. 이것은 어떤 상황인가 하면, 바로 여러 그릇이 있는데 이를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만약 이 그릇이 평범한 것이라면 개가 지킬 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릇은 보통의 그릇이 아닌 아주 귀중한 그릇임에 틀림없다. 옛날에 그릇 중 어떤 것이 귀중한 물건으로 대접받았을까? 그것은 바로 제기(祭器)이다. 옛날에 자연신이나 조상신께 제사지낼 때 쓰던 그릇은 특별한 재질에 화려한 장식을 가해 정성스레 만든 것으로, 제사가 없는 평소에는 사당에 보관했다. 그러나 항상 도난의 위험이 상존했기 때문에
나라가 몇 달째 청문회 몸살을 앓고 있다. 김태호 총리후보를 비롯한 몇몇 장관후보들이 청문회의 관문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으며, 얼마 전 김황식 총리도 곤욕을 치르고서야 국회의 인준을 얻었다. 지금은 김성환 외통부장관 후보가 청문회 도마 위에 올라 검증을 받고 있는데, 이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 늘 도덕적 자질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인재를 선발함에 있어서 당사자가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하였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능력은 훌륭한데 도덕성에 결함이 있다면 무조건 그 인재는 버려야하는가? 옛날 전국시대에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위(衛)나라 제후의 스승이 됐다. 하루는 자사가 위나라 임금에게 구변(苟變)이라는 사람이 “전차 오백 대를 능히 지휘할 수 있는 재목”이라고 추천했다. 임금은 “나는 그가 장수가 될 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에 관리였을 때에 백성들의 세금을 거두면서 달걀 두 개를 착복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등용하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자사는 이에 “성인(聖人)이 사람을 등용하는 방법은 목수가 나무를 고르는 것과 같습니다. 장점만 취하고 단점은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두 아름드리 나무라면 설
대한민국 축구가 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월드컵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냈다. 그러나 그 주역은 다름 아닌 한국의 17세 이하 소녀들이었다. 이들의 승리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매우 열악하고 척박한 국내 여자축구 환경에서 나온 것이어서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낳은 또 하나의 영웅들이다. 이런 여자 영웅을 성어로는 건괵영웅(巾幗英雄)이라고 하는데, ‘건괵’(巾幗)이란 여자들이 머리를 장식할 때 쓰는 일종의 수건이다. 이것이 여성을 상징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에서 유래한다. 중국 삼국시대에 촉(蜀)의 승상 제갈량은 위(魏)나라 사마의를 정벌하러 위남에 당도했다. 촉군은 군량미 부족으로 빨리 전투를 하고자 했으나, 이를 안 사마의는 좀처럼 성 밖에 나와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제갈량은 이런 대치상태가 지속되는 것도 촉군에게 극히 불리하며 그렇다고 위군(魏軍)의 높고 견고한 성벽을 공격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묘책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사마의에게 ‘건괵’을 선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편지를 보내 “당신은 수많은 장수와 병졸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끝내 용감히 성 밖으로
"크게 공정하여 사심이 없다" 요즘 외통부의 장관딸 특채 파동을 필두로 공직 곳곳에서 특혜채용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설자들은 이것을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서 옛사람의 관리임용은 어떠했는가를 보자.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기황상(祁黃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평공(平公)이 그에게 “남양의 현령자리가 비었는데 누가 적임자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해호(解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평공이 의아해하며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니오?”라고 말하니, 기황상은 “임금께서는 적임자를 물었지 신의 원수에 대해 물은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평공이 그의 추천대로 해호를 임명하니 백성들이 모두 해호를 칭찬했다. 얼마 후 평공이 또 황기상에게 “나라에 도위(都尉)자리가 비었는데 누가 적임자인가?”라고 물었다. 기황상은 “기오(祁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평공은 놀라 “기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니오? 어찌 스스로 아들을 추천한단 말이오?”라고 힐난했다. 그러자 황기상은 “임금께서는 적임자를 물었지 신의 아들에 대해 물은 것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평공이 그의 추천대로 기오를 임명하니 백성들이 모두 기오를
세종시 문제가 드디어 결판이 났다. 원안대로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중앙행정부처의 절반쯤에 해당하는 9부2처2청이 세종시로 옮겨간다는 것이니, 이는 사실상 수도를 분할하는 셈이다. 이쯤에서 수도(首都)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수도란 “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도시” 또는 “한 나라의 통치기관이 있는 정치적 활동의 중심지” 등으로 되어 있다. 즉, 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존재해야 함이 필수인가 보다. 물론 예외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 나라의 특수한 상황이나 역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공자가 하루는 제사에 쓰이는 한 술잔을 보고 탄식했다. “각술잔에 각이 없다면 각술잔이겠는가, 각술잔이겠는가?”(觚不觚, 觚哉? 觚哉?) 즉, 예법에 다 뜻이 있어 제사에는 각이 진 술잔을 쓰도록 규정하였고 따라서 그 술잔의 이름도 각술잔이라고 하였는데, 후세에는 만들기 좋고 쓰기 편한 둥근 술잔을 사용하면서도 단지 이름으로만 이를 각술잔이라 하니, 공자가 이런 모순된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물론 공자의 용의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 당시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하고 신하가 신하 이상의 권력
'주역'의 건괘는 인생의 발전과정을 매우 재미있는 비유로 보여준다. 첫 단계는 어린 용은 물에 잠겨 있으면서 힘을 길러야 할 때이니, 이 때 자신의 능력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어느 정도 자란 용이 땅위로 올라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수 있을 때이니, 이때에도 자신의 능력이 성숙하지 않았으므로 반드시 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세상에 나와 한번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용이 낮에는 부지런히 노력하고 밤에는 뼈아픈 자기성찰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이렇게 준비된 용이라 하더라도 바로 공중으로 오르지 말고 연못에서 하늘로 도약할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단계는 완벽히 준비된 용이 날아올라 하늘에서 노니는 때이니, 그렇다할지라도 항상 현자의 도움을 청해야 유리하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단계는 교만한 용이 자신의 능력만 믿고 너무 하늘 높이 올라간 때이니 이때에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은 사람이 높은 위치에 올라가게 되더라도 항상 겸손하고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찾아 그의 조언을 구해야 것이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현재
6·2지방선거의 결과는 예상과 달리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는 4년 전과 8년 전의 지방선거에도 똑같이 일어났던 일이다. 말하자면 그때에도 당시의 여당이 선거에서 완패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는 속설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되는 원인에 대해서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정부·여당의 독주와 오만에 대하여 국민들의 견제심리가 발동한 결과라는 데 쉽게 의견을 모아왔다. 그렇다면 이전이나 지금의 정부·여당은 왜 더욱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못하고 끝내 선거에 번번히 참패하고 말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의 정책의 당위성에 대한 과도한 확신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옳다고 믿은 나머지 주위의 의견은 모두 트집이나 발목잡기로 치부하여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정책을 빨리 추진하여 공적을 만들려는 데만 급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없으며 그래서 결국 그 정책은 실패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나아가 그 실패는 정책이나 정권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국민과 국가에 막대한 손실과 해악을 끼치
한국, 중국, 일본은 지리적인 관계로 예로부터 서로 빈번한 접촉을 해왔다. 그러다보면 상대에 대해 좋은 감정을 느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서운함을 느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감정이 쌓여 대를 물리다보면 자연히 상대를 얕잡아보는 표현이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서로를 비하하는 멸칭이 먼저 만들어지게 되는데, 예를 들어 우리가 일본인을 ‘왜놈’, ‘쪽바리’라고 부르거나 중국인을 ‘되놈’, ‘짱꼴라’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한국인을 비하하여 부르는 호칭이 있다. 일본인은 한국인을 ‘죠센징’ 또는 ‘쭁’이라고 부르는데, 중국인은 일찍부터 우리를 ‘까오리빵즈’(高麗棒子)라고 불렀다. 이 말은 굳이 번역하자면 ‘몽둥이 같은 고려놈’ 정도이다. 하지만 그 유래는 아직 정설이 없다. 대개, 옛날 만주에서 일본 경찰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조선 사람들이 몽둥이 휘두르며 중국인을 괴롭혔기 때문에 이러한 호칭이 나왔다는 설, 몽둥이가 무식함을 상징한다는 설 또는 몽둥이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는 설 등 수많은 단편적 근거와 추론이 존재해, 중국인들도 사실 이 말의 의미를 정확이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이 말
중국 동진(東晉)때 은호(殷浩)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평소에 재주가 뛰어나고 덕망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어느 전쟁에 나아가 대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은호의 죽마고우이면서 커서는 평소 은호의 재주를 시기하던 환온(桓溫)이 이 일을 빌미로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은호의 죄를 묻고 심지어는 은호를 무고하기 까지했다. 그리하여 결국 은호는 멀리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입 밖으로 원망하는 말을 조금도 내뱉지 않았으며, 도리어 평상시와 같이 시를 읊조리며 유유자적하게 지내어 근심하는 낯빛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때부터 하루 종일 허공에다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써대는 버릇이 생겼다. 식구들이 이를 걱정하여 그 손동작을 자세히 관찰하니 그가 허공에 쓰고 있던 것은 ‘돌돌괴사’(咄咄怪事) 넉 자뿐이었다고 한다. ‘돌돌’(咄咄)이란 혀를 차는 소리로 ‘쯔쯔’, ‘끌끌’ 정도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돌돌괴사’(咄咄怪事)란 ‘쯔쯔, 괴상한 일이로다’라는 말이다. 그는 자신에 전쟁에 패한 일이나, 둘도 없는 친구가 자신을 모함한 일이 전혀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여기
‘후한서’에 나오는 양진(楊震)이란 사람은 평생 교육에만 종사하던 학자로, 당시 뛰어난 학식과 고매한 인품으로 ‘관서지역의 공자’라는 평이 있었다. 나이 50이 돼서야 태수라는 벼슬자리를 맡게 돼 임지로 가고 있는데, 때마침 전에 자신이 추천했던 왕밀(王密)이 현령으로 있는 고을을 지나게 됐다. 왕밀은 앞으로도 계속 양진의 덕을 볼 요량으로 깊은 밤에 양진을 찾아와 황금 열 근을 덥석 바쳤다. 그러자 양진은 “나는 그대를 알아주었는데, 그대는 나를 몰라주니, 이럴 수 있는가?”라고 힐난했다. 이때 왕밀은 “캄캄한 밤이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暮夜無知者)라고 대답하니, 양진은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알고 있다.”(天知, 神知, 我知, 子知)라고 일갈했다. 이 말은 들은 왕밀은 너무 부끄러워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양진은 사적인 만남을 일체 거절했으며 더욱 공명정대한 태도로 직무에 임했다. 양진은 이후에 고관이 됐으나, 그의 자식들은 늘 평범한 음식을 먹었으며 외출 시에는 그 흔한 가마도 타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 후손들도 좀 고려해야 되지 않겠냐며 재산을 모을 것을 권하자, 그는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내 자손이 청백리의
계포(季布)는 한(漢)나라 때 사람으로 신의와 정의로운 행동으로 명망이 높았다. 한때 항우를 도와 번번히 유방을 곤궁에 빠뜨렸었는데도, 유방은 승리를 거둔 후 그의 인품을 높이 사 그를 사면해주고 나아가 벼슬을 내릴 정도였다. 한 번은 유방이 죽고 그의 황후인 여후(呂后)가 정권을 쥐고 있었는데 흉노왕이 여후를 희롱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것은 ‘당신은 과부고 나는 홀아비이니 서로 잘 지내는 것이 어떠한가?’라는 매우 모욕적인 내용이었다. 이에 여후는 노하여 여러 장수를 불러 이 일을 논의했다. 그러자 상장군 번쾌가 십만 병의 병사를 이끌고 쳐들어가서 흉노를 혼내주겠노라며 큰소리쳤다. 여러 장수들이 여후에게 아부하느라 번쾌의 말대로 하자고 서로 거들었다. 그러나 계포는 “이전에 고조는 흉노와의 전투에서 사십만의 병사를 이끌고도 평성에 갇힌 적이 있었는데, 번쾌는 십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하니 이는 거짓입니다. 황후의 면전에서 아첨하느라 천하를 동요케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순간 모든 사람이 계포가 이번에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두려워했으나, 여후는 곧 회의를 끝내고 다시는 흉노를 공격하는 일을 꺼내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의 국세가 흉노만 못하였는데,
요즘 장안의 화제는 단연 밴쿠버 올림픽의 스피드 스케이팅이다. 모태범, 이상화 선수는 500m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승훈 선수는 5000m에서 동양인의 체력한계를 극복하고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은메달을 땄다. 그런데 이들 세 선수는 본래 이렇게까지 성적을 내리라고는 기대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물론 세계가 “도대체 이들이 누구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이럴 때 쓰는 고사성어가 ‘일명경인’(一鳴驚人)이다. '사기'의 ‘골계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전국시대 때 제(齊)나라 위왕(威王)은 처음에 정사를 돌보지 않아 결국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됐다. 신하들은 왕의 진노가 두려워 아무도 간언을 올리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때 순우곤(淳于髡)이라는 신하가 나서서 왕에게 “나라에 큰 새가 있는데 삼 년 동안 대궐에 머물면서 울지도 날지도 않습니다. 왕은 이 새를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왕은 이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날았다하면 하늘 끝까지 치솟고, 울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울었다하면 사람을 놀라게 한다.”(此鳥, 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