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는 누구에 의해 움직일까?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주체는 누구일까? 얼마 전 구운동 단체장협의회 월례회에 참석했다. 학교라는 직장에서 현직에 있을 때에는 단체장하면 공공기관의 장을 말했다. 초·중·고교 교장을 비롯해 지역에 있는 관공서의 장을 지칭하는 거였다. 그런데 주민센터에서 말하는 단체장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공직자는 아니고 지역사회 주민을 말한다. 지역사회 주민들로부터 자발적으로 구성된 단체의 리더를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주민자치위원회, 방위협의회, 새마을부녀회, 마을만들기 협의회 등을 말하는 것. 주로 본인이 가입하기를 희망하고 동장이 위촉하는 자리다. 구운동 마을만들기 협의회 총무로서 회장과 함께 처음으로 2월 월례회의에 참석했다. 이웃에 사는 회장이 만나서 함께 가자고 연락이 왔다. 이번에 새로 선임된 회장은 작년까지 마을 만들기 총무를 맡았었다. 단체장 모임은 처음이기에 어색함을 덜어주고자 하는 그의 따뜻한 배려다. 회장과 총무는 구운오거리에서 만나 회의 장소인 구운동 주민센터로 향한다. 가다보니 내가 살고 있는 구운동에서 해결할 문제점이 그대로 보인다. 바로 주차문제와 쓰레기 처리를 말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주차
얼마 전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주관하는 은빛 동행 특강을 들었다. 이 특강은 공제회 특별회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특별회원은 교직에서 은퇴는 했지만 그 동안 공제회에 장기 불입한 금액을 완전히 찾지 않고 퇴직생활 급여나 목돈 급여로 다시 저축하여 공제회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교총도 이런 제도를 참고해 퇴직자들을 계속 회원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강구했으면 한다. 은퇴한 교육자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노후 재무관리, 평생 취미생활, 신체 건강, 자녀 독립, 여가 선용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공제회에서는 어떤 주제를 선택했을까? 대부분의 은퇴자가 연금을 선택하고 있기에 ‘돈’은 우선 순위에서 제외 되었나 보다. 경기도남부회관에서 열린 이번 특강의 주제는 ‘건강+행복+안전’이다. 이 자리에 무려 300여 명의 신청자가 모였다. 첫 강사로 나온 윤태익 교수(62). 자칭 소통전문가로서 매스컴을 탄 유명 강사다. 그는 사람들의 성격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머리형, 가슴형, 장형이 바로 그것. 이 세 가지 유형의 특징을 설명하고 자신과 상대방이 어디에 속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수원에 있는 연세직업전문학교 교장 전형배(57). 그를 만나고 나서 직업전문학교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이 학교는 전체 재학생이 380명인데 이 중 비진학 인문계고교 3학년 학생이 80명이라는 것. 이른바 ‘고3 위탁 교육과정’이다. 이 학생들은 1년 동안 원적 고등학교를 다니는 대신 전문학교에서 실습 위주의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그러면 재학생 300명은 어떤 부류의 학생들일까? 전문대학 이상을 졸업한 사람이 60%를 차지하고 나머지들은 검정고시, 특성화고교, 인문계 졸업생들이다. 그러니까 60% 정도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한 사람들이 이 학교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을 하는 것. 이곳은 바로 취업 전 단계의 교육을 받고 있는 것. 그러니까 이 학교는 취업을 목전에 둔 인문계 고교 3학년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다니는 직업 전문학교다. 이 학교는 수원시내 중심인 영화동에 독립된 최신식 건물 빌딩에서 최신 기자재로 수업을 전개하고 있다. 14학급 규모에 교직원 수만 30여 명에 달한다. 급당 인원수는 30명이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는 수업료가 없다. 전액 국비지원이기 때문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 하늘 저산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고향을 떠나온 지 몇 몇 해 더냐/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이 노래는 우리의 선배들이 불렀던 ‘꿈에 본 내 고향’이란 가요의 가사다. 나의 고향은 수원인지라 또 지금 수원에 살고 있어 이 가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노래는 결혼하고 나서 장인께서 즐겨 부르시던 노래다. 고향이 황해도인 장인은 술 한 잔 하시거나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부를 때면 으레 이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1948년 스무 살 때 혈혈단신 사선을 넘어 남으로 오셨다. 남한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셨다. 자식으로 4남4녀를 두셨다. 첫째 딸은 대사관 직원, 둘째 딸은 통일부 공무원, 셋째와 넷째 딸은 교육공무원이다. 첫째 아들은 의사, 둘째 아들은 축산업, 셋째 아들은 운수업, 넷째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운 것이다. 장인께서는 작년 1월, 89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이번 설을 맞이하여 자식들이 산소에 모였다. 선영은 경기도
당신은 쓸 만한 재활용품을 팔아본 적이 있는가? 젊은이들이라면 인터넷 판매를 택하겠지만 우리는 발품을 택했다. 바로 어제 우리 부부는 중고물품 팔기에 도전했다. 성공했을까 아니면 실패했을까? 완전 실패다. 팔려고 가져간 그 물건 다시 집으로 가져왔다. 우리 부부는 여기서 인생의 많은 것을 깨달았다. 비록 물건은 팔지 못했지만 많은 교훈을 얻은 것이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도대체 한 번 물건을 구입하면 버리지 못하는 나. 아내는 사실 나와는 달랐지만 부부가 되다 보니 그 습성이 조금은 닮아갔다. 그러니 집에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그대로 쌓여 있다. 심지어 딸이 사용하는 방은 이제 방이 아니다. 물건을 쌓아 놓는 창고가 되었다. ‘언젠가 치워야지’ 마음만 먹지 실행을 못하고 있다. 지금 보고 있는 브라운관 TV. 디지털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시대가 빠르게 변하다 보니 이 TV를 사용하는 가정은 없는 듯하다. 아마도 박물관에나 가야할 것이다. 그런 TV를 우리 집은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보다 못해 누님이 5년 전 3백만 원을 건네면서 최신식 TV로 교체하라고 한다. 구닥다리 물건을 사용하다가 누님에게 피해를 준 것이다. 드디어 결행의 말이 왔다.
“대학이나 대학원 학력으로 현직에 있을 때 교육에 헌신하던 분들이 은퇴 후 연금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입니다. 퇴직 후에도 갖고 있는 능력을 발휘해 사회에 기여해야 합니다. 특히 연금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이 돈 욕심 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발휘하여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을 우리 사회를 위해 되돌리려는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정사교(62. 2014년 2월 경기모바일과학고 퇴직) 님이 사회적 기업에 뛰어든 동기다. 상업교사로서 36년간 교직에 있다가 퇴직을 한 그에게 재능 기부할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사회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 기업은 이윤 창출이 목적이지만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다. 그리하여 그는 현재의 모담하우징케어를 창업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즉, 오래된 건물, 주택의 수도배관과 난방배관에 쌓여있는 각종슬러지와 녹을 제거함으로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난방배관청소로 난방효율증가와 함께 난방비를 절감해 환경에 기여하는 사회적 미션을 수행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로 사회적 취약 계층을 끌어들인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
‘나와 구운동(九雲洞)’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구운동과의 인연을 살펴본다. 1990년대 초반 구운동 삼환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총각 교사 시절 주택청약부금을 꾸준히 부어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이다. 결혼에 대비해 분양을 받은 것인데 이만하면 신랑의 자격조건 하나를 구비한 것 아닐까? 그리하여 1990년에 결혼을 하고 1992년 삼환아파트에 입주를 하였다. 1992년 3월 구운중학교 국어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그 당시 다른 학교를 희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굳이 다른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다. 직장과 집이 가까워 통근 거리가 짧은 것이 영전이라고 생각하였다. 신설교인 그 학교에서는 학년주임, 환경주임, 연구주임을 역임하면서 1회부터 5회 졸업생까지 배출했다. 이후 삼환아파트 15동과 7동에서 13년 간 살았다. 우리 자식인 딸과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던 것이다. 이어서 살고 있는 아파트가 지금 현재의 아파트다. 일월저수지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일월공원을 내 집 앞 정원처럼 누릴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공원 내에 일월도서관까지 건립돼 문화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우리지역 사회인 구운동을 위해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 환경주임 시절 일월공원 환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모교는 바꿀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학연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겨난 것일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합치면 학연의 범위는 넓어진다. 학연으로 인맥을 구성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학연을 모교 교육 발전을 비롯해 지역사회와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면 좋은 것이다. 개교 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 세류초등학교. 이 학교 동문들로 구성된 총동문회 회장 이·취임식 및 신년하례회가 1월 14일 저녁 6시, 수원월드컵경기장 내 웨딩홀에서 동문, 수원시내 초등학교 총동문회장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이 자리에서 새로 2년 임기를 시작하는 제11대 세류초등학교 총동문회 김광수(62) 회장은 제10대 총동문회장인 이승옥(63) 회장으로부터 총동문회기를 넘겨받았다. 이 행사는 제1부 식전 행사, 제2부 기념식, 제3부 만찬 및 여흥시간으로 이뤄졌다. 이임사에서 이승옥 회장은 “임기 시작과 함께 열심히 뛰어왔으나 지금 생각하니 아쉬움도 많았다”며 “신임 회장은 동문회가 지금보다 더 활발히 움직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김광수 신임 회장은 “동문회 활동에 동문참여
교직 동료 세 명이 태백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정기적인 모임으로 식당에 모여 이야기하고 식사하는 대신 여행을 택한 것이다. 요즘 가슴에 와 닿은 ‘물질을 소비하지 말고 경험을 소비하라’를 실천하려는 것. 모임의 의미를 ‘먹고 마시는 것’ 외에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로 정한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여행이다. 교통수단도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 버스를 이용했다. 사람들은 흔히들 여행을 준비하는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전개될 여행을 설계하는 것이다. 태백시 관광문화과에 안내자료와 1박2일 일정을 요청하니 우편으로 안내책자와 팜플렛 한 묶음이 왔다. 관광안내소 직원은 아예 전화로 장시간 상담을 해 준다. 요즘 지자체 관광행정의 적극성을 엿볼 수 있다. 수원터미널에서 오전 9시 태백행 버스를 타니 3시간 20분만에 목적지 도착이다. 점심 메뉴는 물닭갈비. 1인분이 6천원인데 실속이 있다. 태백 대표먹거리로는 한우고기, 감자수제비, 나물밥, 순두부 등이 있다. 우리가 먹을 저녁은 한우갈비살이다. 태백에서 한우가 생산 되는 것은 아니고 인근 안동이나 봉화에서 고기를 들여온다고 알려준다. 갈비살 가격은 200g에 2만8000원이다. 우리가 찾은 첫 방문지
경기 수원 영화초등학교(교장 손창곤)는 지난 12월 30일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3회 영화꿈터축제 행사를 열었다. 이날 꿈터축제는 그동안 영화교육가족이 염원하던 다목적체육관(이하 꿈빛관)이 완공돼 꿈빛관 개관식과 함께 치러졌다.개관식에는 꿈빛관 건립에 도움을 주신 관계자들과 영화 어린이, 교직원, 학부모 그리고 지역인사 등이 함께 참여하여 뜻 깊은 날을 축하하였다. ‘꿈빛관’은 ‘꿈이 이루어지는 곳’ 이란 의미로 학생 공모를 통해 붙여진 이름이다.꿈터축제는 꿈빛관의 개관을 알리는 테이프 커팅식의 축포와 함께 학생락밴드 ‘슈퍼키즈’의 우렁찬 공연으로 시작됐다. 이어 학부모 락밴드 ‘슈퍼맘’의 공연으로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뛰어난 실력으로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리코더 합주부의 연주, 귀여운 유치원생의 뮤지컬, 1학년 학생들의 화려한 무용은 관객들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꿈터축제는 학생들의 꿈과 끼, 그리고 예술적 감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활동으로서 영화초등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는 행복한 잔치가 되었다. 이번 공연된 프로그램은 그동안 혁신학교로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예술적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물이다. 꿈터
은퇴자의 작은 소망 가운데 첫째가 여행이다. 이번 부부 도보여행의 주인공인 황윤록(64,소사중 퇴직) 교장. 그는 작년 8월 퇴직하자마자 평소 꿈꾸던 알래스카 크루즈여행을 15일간 떠났다. 공직생활을 뒷바라지한 아내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의 표시도 있었다. 그는 여행에서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다. 바로 76세 노인이 다리가 불편하여 체력을 요하는 프로그램은 관광을 포기하고 버스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 그것을 자기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여행을 떠나자’라고 결심을 한다. 그가 올해 도전한 것은 동해안 해파랑길 도보여행. 지난 9월 하순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하여 주로 주중 3박4일을 이용하여 12월 23일 오륙도 해맞이공원에 도착, 총 28박 29일의 대장정을 마쳤다. 해파랑길이란 부산에서 강원도에 이르는 초광역 걷기여행길이다. 이 길은 동해안을 따라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총거리 770km 노선이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도전은 작년 가을, 4대강을 따라 서울 현충원에서 부산 을숙도로 내려가는 600km 도보여행의 성공이 밑바탕이 되었다
어제 우리 아이들 외가 친척 모임이 있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장모님마저 병원에 계시니 외가 모임 인원수가 그리 많지 않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활발히 활동하실 때는 그 분들을 구심점으로 단합이 잘 된다.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기시면 자식들마저 그 모임 횟수가 잦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어제는 처형의 중앙부처 서기관 승진, 생일 기념 모임이었다. 모인 사람은 모두 8명. 아내와 처형, 처제가 안산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지극히 간병한다. 의식조차 없지만 1시간 이상 손을 잡고 귓속 대화를 나눈다. 온 몸을 쓰다듬으며 어머니의 체온을 느낀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 했거늘 아름다운 모습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처형, 처제 그리고 우리 식구 3명이 우리 집에 모여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차 한 잔을 마셨다. 이야기의 화제가 과거로 돌아갔다. 우리 딸이 초등학교 시절 길 잃어버린 이야기를 하는데 진지하기만 하다. 안산 00초교에 다니던 우리 딸이 교육청에 근무하는 아빠를 만나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다가 트럭을 얻어 타고 수원집에 도착한 사건이다. 10년이 넘은 이 사건, 당사자인 우리 딸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빠와 교육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주차장
우리 부부는교원으로 만나 딸과 아들을 두었다. 남들이 보면 부부가 교원이니 자식교육도 모범적으로 잘 했으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부모가 될 준비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니 항상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무엇이 정답인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세월을 보냈다. 우리 딸은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통신회사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은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취를 하고 있다. 딸과 아들, 모두 우리 집에 있는 자기 방을 비우고 독립세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요즘 핵가족의 새로운 트랜드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자식들, 부모가 있는 수원집 방문이 뜸하다. 두 달에 한번 정도 자기가 필요할 때 부모를 찾는다. 부모가 얼굴 보고 싶다고 오라고 해도 일이 바쁘다고 하면서 미룬다. 한편으로는 이젠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고, 자립정신이 강하다고 스스로 위로도 해보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정은 더 이상 깊게 맺을 수가 없다. 얼마 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직장에서 거는 모양인데 속삭이듯 말한다. 용건인즉 자기 통장에 40만원 정도를 입금시켜 달란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있지만 적금을 붓고 이번 달엔 운전면허 강습
“우와, 이게 얼마만의 모교 방문인가?“ 1975년 2월 고교를 졸업하였으니 무려 40여년 만이다. 오늘 내가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1학년이니 45년 후배가 된다. 정말 감회가 새롭다. 오늘 들어가는 교실은 고교 때 내가 공부하던 교실이다. 교사(校舍)의 형태는 바뀌었지만 골격은 그대로다.바로 어제 모교인 경기 수원고에서 있었던 ‘동문 초청 진로탐색의 날’에 특강 강사로 참가했다. 한 달 여전 총동문회의 행사 연락을 받고 자진하여 신청했다. 일종의 후배들을 위한 재능기부다. 내가 진로교육 특강에 참가해 후배들의 진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 때문이다.모임 장소인 모둠학습실에 가니 모교 교감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벌써 많은 강사들이 도착해서 상호 인사를 나누고 있다. 모교 졸업생 24회(1975년 졸업)부터 54회(2005년 졸업)까지 모였다. 모교 역사가 깊어 특강 강사의 나이도 30살 차이가 난다. 여기서 내가 24회이니 최고참이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흐른 것이다. 오늘 참가한 사람들의 직업을 살펴본다. 중학교 교장, 교육청 사무관, 미술대학 교수, 은행 팀장, 세무사, 건축사, 사회적 기업대표, 스포츠 트레이너,
얼마 전 교직에 있었던 동료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필자의 경우, 지난 2월에 퇴직하여 은퇴생활이 1년이 다 되어 간다. 초등교사에서 출발하여 중등학교 교장 중임, 장학관까지 39년간을 교직생활을 했다. 이제 동료였던 교장들도 2월 퇴임을 바로 앞두고 있거나 조만간 퇴임을 맞이할 것이다.나는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학년에 입학하여 제2인생을 출발했다. 그러나 퇴직자들에게 나와 같은 이런 과정을 모두 권할 수는 없다. 평생교육 차원에서 새로이 대학에 입학해 공부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다. 학습 부담이 만만치 않고 학점을 이수하려면 부단한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퇴직한 교직선배 어떤 분은 ‘공부’는 더 이상하지 않고 있다. 대학 졸업하고 교직에서 40년 정도 학생들을 가르쳤기에 더 이상 책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시간 여유를 즐기면서 스트레스 쌓이는 것은 피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은퇴 후 생활은 아마도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내년 8월 정년퇴임을 앞둔 동료가 걱정이 되는 지 은퇴 후 생활에 대한 조언을 요청한다. 은퇴 1년차이기에 노하우는 별로 없다. 다만 우리보다 20년 정도 앞서 가고 있다는 일본의 사례는 어느 정도 참고할만 하다. 우리는